어둠이 깔리자 도시에는 화려한 불빛이 켜졌다. 천도준이 리빙턴 호텔에 도착했을 때쯤, 주차장은 이미 비싼 외제차로 붐볐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천도준은 해진각으로 갔다. 해진각 문 앞에는 정장 차림의 건장한 젊은이가 선글라스를 낀 채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천도준을 발견하고는 냉큼 해진각의 문을 열었다. 가야금 소리가 천도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천도준은 머쓱하게 코를 문지르며 미소 지었다. “이 노래는 ‘사방잠복’?” 널찍한 해진각 내부에는 산 조형물과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인테리어도 있었다. 물안개까지 피어오르는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고 공기 중에는 옅은 솔잎향이 풍겼다. 고즈넉하고 분위기 있는 공간이었다. 널찍한 원형 테이블 앞에는 정장 차림의 민머리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그는 덤덤하게 중앙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젊은이 둘이 서 있었다. 천도준은 민머리 중년 남자를 보며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주 대표님, 밤에 웬 선글라스예요? 안 어두워요?” “천 대표님이 걱정할 건 아닐 텐데요.” 주준용이 선글라스를 벗자 독기 가득한 두 눈이 드러났다. 그는 천도준을 노려보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앉으시죠, 주 대표님.” 주준용이 가리킨 자리는 입구와 가까운 자리였다. 테이블에 앉는 순서로 따지면 그 자리는 가장 볼품없는 자리였다. 천도준은 덤덤히 웃었다. 계략이 있는 식사 자리인 데다가 재생하고 있는 음악의 제목마저도 ‘사방 잠복’이라니, 천도준은 주준용이 이처럼 디테일한 사람인 줄 몰랐다. 자리에 앉은 뒤, 주준용은 이어질 절차를 안내하듯 손짓하며 말했다. “식사하시죠.” “좋습니다.” 천도준은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으려 했다. 그 순간, 주준용은 테이블을 회전시켰다. 천도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준용을 바라보았다. “아, 음식을 집어 가는 줄 모르고 테이블을 돌렸네요.” 주준용은 또다시 안내하듯 손짓하며 말했다. “식사하시죠.
주준용이 오늘날까지 온 것은 악랄한 계략 덕분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주건희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면서, 주준용은 갖은 방법과 수단을 썼다. 최소한 건설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기와 힘을 겨룰 수 있다고 주준용이 마음 속으로 인정한 사람은 주건희 뿐이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천도준의 출현은 주준용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주준용의 공사장에서 소란까지 피웠으니 말이다. 이런 일은 주건희라면 벌일 수 없을 일이었다. 천도준은 갑자기 오른손을 들더니 주준용을 제지했다. “주 대표님, 대표님의 사촌 동생 다리를 부러트린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표님의 사촌 동생분과 부하가 흘린 피 때문에 맞춤 정장을 버려야 할 판인데 정장값은 일단 물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천도준의 덤덤한 말투는 오로지 맞춤 정장 때문에 하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주준용은 잠깐 멈칫했다. ‘이 새끼,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잖아!’ 잠시 주춤하던 주준용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짝짝짝......” 그는 박수를 세 번 쳤다. 그러자 주준용의 뒤에 서 있던 두 젊은이와 문밖을 지키고 서 있던 두 젊은이가 다가와 천도준을 둘러쌌다. 그와 동시에 복도에서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젊은이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몰려왔다. 열 명도 더 되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주준용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천도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 다리부터 부러트린 다음 정장 값을 물어줄게. 두 벌 값으로 쳐줄게!” “좋죠.” 천도준은 냉랭한 웃음을 짓더니 눈빛을 반짝였다. 천도준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의 접시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두 사람에게 접시를 날렸다. 그리고 그는 의자를 집어 들고 마구 휘두르며 사람들을 물러서게 했다. “망할, 주환을 쓰러 눕힌 이유가 있었네. 보통 실력이 아니야!” 주준용도 천도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무, 물어줄테니까...... 그만 해, 이 새끼야! 그만하라고......” 주준용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땀을 비 오듯 흘렸고 고통스러워하며 부르짖었다. 주준용은 겁이 났다. 천도준의 악랄함과 결단력은 주준용마저도 겁에 질리게 했다. 주준용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천도준에게 맞선다면 그는 더 심한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야말로 미친 놈이었다. “진작에 변상해 준다고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 천도준은 냉소를 지으며 웃었다. “푹!” 주준용의 허벅지에서 칼이 뽑혔다. 주준용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호통쳤다. “너, 칼을 뽑긴 왜 뽑아!” “아, 그럼 다시 꽂을게요.” “푹!” 주준용은 온몸이 경직된 채, 허벅지에 다시 꽂힌 칼을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바라보았다. 주준용의 부하들은 그저 넋이 나간 채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이 맞나?’ 천도준은 덤덤히 양손의 피를 주준용의 정장에 닦았다. 이어서 그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주 대표님, 오늘 제가 온 것은 정장 변상 말고도 알려드릴 일이 하나 있어서 온 겁니다. 박유리 씨는 저희 쪽 사람이니 대표님 사촌 동생한테 전하세요. 박유리 씨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였지만 강인한 힘이 있었다. 주준용은 반사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강렬한 통증 때문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인데 웃음까지 지으니 더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도준은 한순간 표정이 굳었다. 검은색 물체가 주준용의 허리춤에서 나타났다. “너 싸움 잘하잖아. 할 수 있으면 계속해 봐.” 주준용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총으로 천도준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능력껏 해봐. 할 수 있으면 날 찔러 봐. 나한테 기어올라? 너 세상 물정 좀 모르나 본데, 이 세상에서 나한테 감히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퍽!” 주준용은 천도준의
“퍽!” 해진각의 대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렸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천도준은 고개를 돌렸다. 찾아온 사람은 울프였다. “천도준 씨!” 진해각의 상황을 두 눈으로 본 울프는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울프는 무작정 나서기에 앞서 주준용을 향해 호통쳤다. “주준용, 주건희 씨가 당신한테 말을 전해달래. 못 오를 나무를 바라보면 언젠간 죽는다고 말이야!” “쿠쿵!” 주준용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경악했다. 천도준이 조금 전에 했던 말 때문에 주준용은 이미 멘탈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 울프가 나타나 건넨 말은 주준용의 분노에 불탔던 마음을 차갑게 식게 만들었다. ‘망할, 정말 일이 잘못된 건가?’ “딸깍!” 주준용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쯤, 천도준은 자기를 향해 겨눠진 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냉랭하게 웃었다. “난 인젠 갈 테니 총 쏘고 싶다면 언제든 기꺼이 받아주지!” 말을 마친 천도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주준용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는 땀범벅이 된 채로 손에 쥔 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고민하는 듯 싶더니 후회 가득한 표정으로 총을 내려놓았다. 천도준의 덤덤한 태도 때문에 주준용은 총을 더는 쏠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오늘날의 걱정 없는 삶을 누리기까지 걸어온 길을 한순간에 어리석은 선택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 리빙턴 호텔 밖. 울프는 말없이 천도준의 뒤를 따랐다. 조금 전 해진각에서 마주한 모습은 울프도 놀라고 겁낼 정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도준의 반응은 신기할 정도로 덤덤했다. 울프는 천도준이 이럴 줄 몰랐다. “차 있어?” 천도준이 물었다. “네, 도준 씨. 이쪽으로 와요.” 울프는 다급히 천도준을 안내했다. 차에 앉은 뒤, 울프는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한참 달렸을 무렵, 고요한 차 안에서는 거칠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천도준은 좌석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며 힘겹게 정장 외투를 벗었다. 셔츠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천
하루 사이에 수많은 일들이 생겼다. 유난히 피곤했던 천도준은 울프의 차에서 금세 잠들었다. 차가 천문동 별장단지를 도착하자 울프는 천도준을 깨웠다. 집에 돌아오자 이난희는 잔소리를 쏟아내면서 천도준의 손에서 정장 외투를 건네받았다. “하루 종일 이렇게 힘들어서 어떡하니? 너 자신도 좀 챙겨.” “일이 바빠서 그런 거죠.” 천도준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배를 문지르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 박유리 씨가 차린 음식 남은 거 있어요? 아직 밥 못 먹었어요.” “없어. 엄마가 토마토 계란면 해줄게.” 이난희가 웃으며 말했다. 천도준은 이난희를 거절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천도준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이난희가 해준 토마토 계란면이었다. 이난희의 상태가 안 좋아진 뒤로 토마토 계란면을 자주 먹을 수 없었다. 지금 이난희의 상태로는 토마토 계란면 정도는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천도준은 소매를 걷으며 이난희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섰다. “왜 따라와? 나가서 좀 쉬고 있어. 엄마가 할게.” 이난희는 힘들게 일한 천도준이 안쓰러운 듯 말했다. 천도준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니야, 엄마. 같이 해요. 나도 오랫동안 요리 안 했어요.” 이난희는 미소 지으며 옆에 있는 마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마늘 몇 개 좀 까줘.” “좋아요.” 천도준이 웃으며 답했다. “참, 유리한테 무슨 일 있어? 오늘 저녁밥을 준비해 주고 내가 다 먹으니까 황급히 보온 도시락을 챙기고 가버렸어. 그리고 존은? 두 사람이 다 없이 나 홀로 이 큰 집에 있으니 얘기 나눌 사람도 없구나.” 이난희는 음식 준비를 하면서 천도준에게 물었다. 천도준은 이난희가 걱정할까 봐 웃으며 설명했다. “개인적인 일이 있나 봐요.” 이난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천도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도준아, 존이랑 유리, 혹시 연애하는 거 아니겠지?” 천도준은 흠칫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엮을까? 아니면 아줌마
더는 들어줄 수 없었던 오덕화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다 울었어? 난 설득했는데 안 들은 건 너야. 꼭 일을 크게 만드네.” “짝!” 장수지는 오덕화의 뺨을 때렸다. “쓸모없는 놈! 난 오늘 수모를 당하고 속상한 일을 겪었어. 그런데 날 위해 나설 생각은 못 해봤어?” 장수지의 원망에 오덕화는 그저 한숨만 내쉬며 말하지 않았다. 오덕화가 말을 아낄수록 장수지는 더 악에 받쳤다. 마침 그때, 오남준이 돌아왔다. 울고 있는 장수지를 발견한 오남준은 표정이 굳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오남준을 마주한 장수지는 더 심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남준아. 너 왔구나. 나랑 네 아빠가 괴롭힘을 당했어......” 오남준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화를 버럭버럭 내며 물었다. “누가? 누가 그랬어? 내가 찾아갈 거야!” 오남준의 반응에 장수지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장수지는 큰 목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말했다. “오늘 너희 아빠랑 천문동 별장단지에 갔거든......” “천도준이야? 망할 놈. 엄마, 나 지금 당장 그놈한테 갈 거야!” 잔뜩 화난 오남준은 집을 나서려 했다. “멈춰!” 오덕화가 오남준을 불러세우며 말했다. “천도준이 아니야. 나랑 네 엄마는 별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경호원한테 쫓겨났어.” 오남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거기로 가는데 왜 날 안 불렀어? 내가 있었다면 쫓기는 일은 없었을 거야.” 천도준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니 오남준은 이미 타오른 분노를 쏟아낼 곳이 없었다. 오남준은 쏘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 경호원 놈들이 그렇게 사람을 하대할 줄은 나도 몰랐어.” 장수지는 여전히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딸이나 남편이나 다 도움이 안 되지. 인젠 아들이 결혼해야하는데 예물값으로 내놓을 돈도 없네......” 얼굴이 시뻘게진 오덕화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남준은 예물값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
이튿날 아침.천도준은 기초체력훈련을 마치고 회사로 갔다.울프는 일찍이 정태건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천도준은 마영석더러 울프의 일자리를 안배해 주라고 했다. 울프의 신분은 그가 해결해 줘야 했다.울프도 자기가 어떤 일자리에 안배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진짜 목적은 천도준을 따르는 것이니, 자기가 할 일이 부동산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았다.울프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마영석에게 경비원이 되겠다고 말했다.마영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러나 어쨌든 천도준이 직접 소개한 자이기에 그는 울프를 경비팀 팀장 자리에 안배했다.용정 화원의 예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덕에 그 뒤에 잇달아 다른 매물들을 예매에 내놓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그것으로 천도준의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다.앞으로 순차적으로 예매를 완성하기만 하면 회수된 그 자금이 정태건설을 일거에 이 도시 부동산업계의 상위권에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천도준이 한창 바쁠 때 메시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다.바로 임설아가 보낸 메시지였다.내용은 아주 간단했다.[한번 만나 뵈고 싶어요!]천도준은 고개를 저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러나 십 분 뒤, 임설아가 또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이번의 내용은 협박하는 기색이 명백했다.[천도준 씨! 저는 그쪽이 고청하 씨랑 사귄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용정 화원의 예매식을 뉴스를 통해 다 보았어요. 만약 당신이 저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그날 밤 우리 사이의 일을 고청하 씨에게 알려줄지도 몰라요.]대놓고 하는 협박에 천도준은 그만 어이없었다.‘전 처남의 여자 친구는 아직 덜 혼난 것 같군!’‘다시 손봐줘야겠네!’그가 임설아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기도 전에 마영석이 황급히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대표님,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란을 피워요!""누가?"천도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마영석이 조금 이상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그게, 대표님의 처남이요. 아, 아니지. 대표님의 전 처남이요."‘오남준이?’천도준이
"울프 형!"경비원들이 곧바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부축해 주었다.울프가 비록 낙하산 팀장이라고 하지만, 울프가 천 대표가 직접 파견한 자라는 것을 경비원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불만을 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이 한방에 현장에 있던 경비원과 오남준 사이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돌았다.구경꾼들도 덩달아 수군대기 시작했다."저 사람, 너무 나대는 것 같아. 여기가 정말로 자기 집 안방인 줄 아나?""아이고, 저 사람이 하는 말 못 들었어? 자기가 정태건설 천 대표의 처남이라잖아? 하하하.... 참 어이가 없어서는. 천 대표가 이혼한 사실을 도시 주민 모두가 알고 있는데. 용정 화원 예매 발표회에서 새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한 일로 오씨 가문 사람들이 완전 망신을 당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또다시 찾아와서 망신을 당하려 하다니.""하긴, 그날 밤 뉴스를 나도 봤어. 오씨 가문 사람들은 정말 너무 뻔뻔하더군. 저 녀석도 스무 살 넘어 보이는데, 정말 너무 멍청한 것 같아!"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게 된 오남준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온몸에서 열이 났다.그는 더 이상 대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아, 오만방자하게 울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너, 자기가 좀 험악하게 생겼다고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어디 눈치 있게 비켜.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오늘 너를 완전 줘 패버릴 테니!"울프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눈동자를 사납게 번쩍였다.바로 이때.마영석이 급급히 달려와 울프의 뒤쪽에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네가 알아서 처리해!""알았어요!"울프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어렸다.그런 뒤,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뭐 하려는 거야?"오남준이 곧바로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너를 때리려고!"다른 군말은 필요 없이, 울프가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오남준의 어깨를 잡고는 그를 바닥에 엎어 메쳤다."당장 이 자리를 뜨지 않으면, 아예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