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내가 처리할게. 너는 기분을 망치지 말고 겐팅 스카이에서 기다려."고청하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머뭇거리며 천도준을 한 번 바라보았다.그녀는 결국 마영석을 따라 자리를 뜨기로 했다.그녀는 천도준이 잘 처리하리라 믿었다.고청하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천도준이 천천히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그는 수많은 시선과 플래시의 주목을 받으며 그를 저지하는 경비원을 스쳐 지나가 절망적인 모습으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오남미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우리는 이미 끝난 사인데, 지금 여기서 이렇게 울고 있는 이유가 내 인생을 망치기 위해서야?”오남미가 버둥거리며 일어나더니 빨개진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미친 사람처럼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네 일을 망쳐 네 인생을 망치기 위해서야. 이것이 네가 나를 속인 대가야!"가슴속에 분노가 들끓어 오른 천도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오남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너희 집, 사람들은 정말 말이 통하지를 않는구나!”"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오남미는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은 내 부모이자 남동생인데, 내가 도와주지 말아야 하는 거야?"천도준은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고 그저 코웃음쳤다.그는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이 정말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만약 오남미가 정말 말이 통했다면,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이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말해. 어디 말 좀 해봐?"오남미는 침묵하는 천도준을 바라보며 자신이 도덕적으로 그를 몰아붙였다는 생각에 기가 살아나 말했다.세도 일어났다."천도준, 잘 기억해. 우리가 이혼한 이유는 네가 싫어져서 내가 떠난 거야. 그러나 나, 오남미는 네가 이렇게 나를 속이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네가 고청하 저 여우 같은 년이랑 함께하고 싶다면 내게 일억 원을 줘. 그러면 내가 당장 사라져 줄게.”"그렇지 않으면, 내가 온 도시 사람들 앞에서 짐승 같은 네 모습을 까발려버릴 거야!”“
단호하고도 두려운 것 없는 듯한 천도준의 모습에 오남미는 그만 당황해 버렸다.그녀는 어쩐지 무력감이 느껴졌다.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그녀를 거의 삼켜 버릴 듯했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도준은 이미 자리를 떠 사라진 뒤였다.용정 화원 분양센터가 문을 열자, 주택 구매자들이 우르르 분양 센터로 몰려들어 그 열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리고 그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피에로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택시를 타고 용정 화원을 떠난 천도준은 곧장 겐팅 스카이로 향했다.오씨 가문 사람들의 양심 없는 모습에 그를 그만 구역질이 났다.오늘 현장에 나타난 오남미는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오남미에 대한 그의 마음은 오남미가 어머니의 목숨을 구해줄 병원비를 가져갔을 때 이미 완전히 식어버렸다.만약 이수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의 어머니는 이미 죽어버렸을 것이다.그는 이 일로 오남미와 오씨 가문에 완전히 정떨어졌다.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삼 년간의 결혼 생활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뿐이었다.만약 그더러 오남미와 오씨 가문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봐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가 얼굴을 문지르며 울분을 삭였다.천도준이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손가락을 비비적거리다가 사람들이 왜 이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늘 담배를 찾는지 알게 되었다.문득 그의 머릿속에 고청하의 모습이 떠올랐다.그가 살짝 웃으면서 생각했다.‘아마 이것이 내가 아직도 버틸 수 있는 이유겠지.’적어도 그녀는 그가 지쳤을 때, 힘든 그의 모습을 눈치채고 그가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절대 오남미처럼 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그를 짐승처럼 부려 먹으려 하지 않았다."청하는 담배 냄새를 싫어하지.”천도준은 고개를 저으며 앞을 내다보았다.그가 겐팅 스카이에 도착했다.이 도시의 최고 빌딩에 있는 겐팅 스카이는 마치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비싼 소비를 과시하며
게다가 그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는 고청하에게 있어 오남미가 벌인 짓은 너무도 불공평했다."그걸 말이라고 해?"고청하가 질책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왜 정태건설의 대표가 된 걸 말하지 않았어? 네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외국에서 네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너를 돕고 싶어 부랴부랴 귀국했는데, 너는 오히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정태건설의 대표가 돼 있었네?”"고마워."천도준이 고청하의 손 위에 손을 겹치며 말했다."내가 가장 절망스러웠을 때, 내 곁에 와줘서."고청하의 아름다운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비쳤다.손등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낀 그녀는 무심결에 손을 빼려 했지만, 천도준이 손에 힘을 준 상태라 손을 뺄 수 없었다."왜 이래? 여기 식당이야. 사람들이 다 쳐다봐.""내가 내 여자 친구의 손을 잡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천도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이건 네가 스스로 잡힌 거야. 앞으로 절대 도망 못 가."이 한마디에 고청하는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새빨개졌다.고청하가 급히 화제를 돌렸다."참, 네가 어떻게 정태건설의 대표가 되었는지 아직 내게 말해주지 않았어."그녀는 지금 이것이 가장 궁금했다.그녀가 알기로 오남미가 천도준에게 남은 4천만 원을 가져간 뒤로 그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었다.그런데 그녀가 귀국해 보니, 천도준의 어머니는 병세가 이미 회복되는 중이었고, 천도준은 정태건설의 대표가 돼 있었다.그녀는 마치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천도준이 한순간에 막다른 골목에서 구름 위로 날아오른 듯했으니 말이다.그녀는 이런 격변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천도준을 도와 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려고 급급히 귀국한 것이었다.천도준의 얼굴에 걸렸던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가 고청하의 손을 잡은 손을 거두었다.고청하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어?”"아니."천도준이 겨우 미소를 지으며 해명해 주었다."사실은,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
결국 고청하는 말 하지 않기로 했다.천도준이 오늘 그녀에게 준 놀라움이 너무 많고 너무 커서 그녀는 자신이 준비한 서프라이즈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다.‘도준이가 내 말을 듣고 놀라기는 할까?’자신이 말하고 난 뒤의 상황을 확신할 수 없었던 그녀는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자기가 하려던 말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아직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을 거야.’이렇게 생각한 고청하는 천도준이 그녀에게 줄 또 다른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천도준과 고청하는 식사를 마친 뒤 겐팅 스카이를 떠났다.고청하는 포르쉐 911에 오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서프라이즈가 또 있어?"만약 오남미의 일만 아니라면 오늘 하루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그녀는 천도준이 그녀를 위해 다른 무엇인가를 더 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천도준이 그동안 용정 화원의 예매를 위해 바삐 돌아쳐 이미 매우 지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천도준이 이 바쁜 와중에 설마 그녀에게 줄 또 다른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응."천도준은 신비롭게 웃었다.고청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늘 네가 내게 준 서프라이즈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무척 마음에 들어. 너, 그동안 너무 피곤했잖아? 이제 예매를 시작했으니 너도 좀 푹 쉬어.”천도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그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괜찮아. 그곳에 가서도 쉴 수 있어."이 말에 고청하가 몸을 흠칫 떨더니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며 당황스러워했다.‘이 일 중독자가... 설마....’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고청하는 온몸에 불이 붙은 듯 뜨거워졌다.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이건... 너무 빠르잖아? 확실히 너무 빨라!’‘이제 관계를 확정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이 일 중독자가 어찌 그런 쪽으로 생각했지?’"청하야, 어디 아파?"고청하의 이상한 모습을 본 천도준이 걱정
‘그런데 도준이는 어디서 그 많은 돈이 났을까?’‘정태걸설도 인수하고, 서천구 낡은 집도 재개발하고, 저택도 사고!’그러나 고청영은 곧 머릿속의 의혹을 억눌렀다.‘도준이가 귀인이 도와줬다고 했잖아.’천도준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그녀도 이쪽으로 더 이상 캐묻지 못했다.‘더 캐묻다 보면 분명 그 귀인과 연관돼 있을 거야.’생각을 잠시 멈춘 고청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런데, 너 지금 돈이 그렇게 많다면서 왜 차를 사지 않았어?"천도준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의 처지가 변한 것이 바로 이 한 달 사이였기에, 그는 예전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그럴 생각이 들었을 때는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그가 유일하게 차를 살 생각이 들었을 때가 바로 고청하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갔을 때인데, 고청하가 그보다 먼저 차를 샀다.천도준이 피식 웃더니 눈을 깜박이며 농담하듯 말했다."네가 차를 샀으니, 내가 얻어 타면 되잖아?”"하, 헛소리하기는.”고청하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그녀는 천도준의 성격 상 그녀에게 빌붙어 살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포르쉐 911이 곧 천문동에 도착해 산 위에 난 도로 위를 달렸다.이것은 천도준이 천문동 별장단지에 두 번째로 오는 것이었다.지난번에는 주건희의 도움을 청하러 오느라 주변 풍경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라, 차에 탄 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니 남다른 운치가 있었다."여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고청하도 감탄을 금지 못했다.천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이러니 천문동 별장구역이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구역이 됐겠지.”"하하.... 주건희는 이름난 사업가야.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유명세를 유지한 거로 보아 그가 개발한 구역이 나쁠 리가 없잖아?”고청하가 갑자기 교활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참, 지난번에 재료상들이 보이콧한 일을 어떻게 주건희를 설득해 너를 돕게 했어?”"그는 내 예전 상사라 내게 거는 기대가 컸어. 그래서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천도준에게 돈이 얼마 있는지 직접적으로 묻는 것은 그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셈이었다.만약 평소의 고청하라면 이렇게 실례되는 질문을 할 리 없었다.그런데 오늘 천도준이 그녀에게 안겨준 놀라움이 너무 커, 그녀는 마치 무거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해,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정태건설을 인수한 것이든, 서천구 낡은 집을 개발한 것이든, 아니면 눈앞에 있는 이 별장을 산 것이든,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100억 단위보다 작은 것이 없잖아?’‘설령 귀인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귀인이 천도준에게 돈을 마구 쏟아부을 리 없잖아?’‘이건 도움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퍼주는 격이잖아!’고청하는 이런 일이 절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천도준은 행동을 멈춘 채 깜짝 놀란 고청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얼마 되지도 않아. 큰돈을 몇 번 썼더니 카드에 남은 돈이 많지 않아."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은행카드를 꺼내더니 진지하게 계산해 보고는 말했다."대략 천억 정도 남았어.”"보히니아 체크 카드?"은행카드를 본 순간 깜짝 놀란 고청하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가느다란 손으로 입을 막아 터져 나오려던 비명을 눌러버렸다.그녀는 천억 정도 남았다며 아쉬워하는 천도준의 말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눈앞의 은행카드 때문에 받은 충격이 오늘 그녀가 받은 충격 중 가장 컸으니 말이다.최저 예금 2천억 원은 말할 것도 없이, 각종 번잡하고도 가혹한 심사 조건은 골든 보히니아 은행 카드를 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그녀가 이렇게 잘 아는 것은 그의 아버지도 이 카드를 한 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천도준이... 어떻게 이 카드를 가지고 있지?’"이 카드를 알아?"천도준도 놀라며 물었다.은행 카운터 직원이었던 임설아조차도 이 카드를 몰라봤다.고청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격동된 목소리를 억누르며 물었다."이게 그 귀인이라는 분이 준 카드야?"천도준이 말한 그 귀
천도준은 어머니에게 좋은 휴양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쓰더라도 아깝지 않았다.저택의 인테리어는 천도준의 요구대로 호화롭지 않고, 따스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띠었다.천도준의 생각에 이곳은 그들이 살 집이니, 따스하고도 편안한 느낌을 줘야지 부를 과시하기 위해 호화롭고도 과장된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되었다.저택 안에 들어선 천도준은 인테리어 스타일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아늑한 색채의 배합에, 쓰기 편한 가구들. 모든 것이 서로 잘 어우러져 아주 완벽한 느낌을 주었다.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도준아, 이 인테리어 스타일, 너무 좋아."고청하가 감탄하며 말했다."어쩐지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어."천도준은 미소를 지었다."그럼... 부인의 귀가를 환영합니다."고청하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참, 얄미워. 쓸데없이 놀리지 말고 빨리 집구경이나 시켜줘.”천도준도 이 집에 처음 와봤기에 저택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그래서 그는 고청하와 함께 집안을 구경했다.천도준이 조금 이상하게 여긴 것은 그가 집안에 들어온 뒤로 존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존은 그가 오늘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가구 같은 인테리어 소품은 오늘에야 집에 들인 상태라, 존도 당연히 저택 안에 있었어야 했다.이 저택은 4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휴게실과 영화관 같은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집의 맨 꼭대기에는 넓은 테라스도 있었다.인테리어 디자이너는 테라스 변두리에 꽃을 가득 심어, 각양각색의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며 피어있는 상태라, 공기 중에 꽃향기가 가득했다.테라스 가운데에도 그네와 벤치가 놓여 있었다.고청하는 그네에 앉아 가볍게 흔들거리면서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천도준, 너 예전이랑 완전히 달라졌어.”하루를 바쁘게 보낸 천도준이 벤치에 누워 하늘가에 점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살며시 웃었다."그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왔지. 나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서로 한
노을빛이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천도준과 고청하가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석양이 그 둘을 뒤덮어 그 장면이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바로 이때, 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자리를 좀 비켜줄까?"아름다운 장면이 이 목소리 때문에 순식간에 깨졌다.고청하가 이 목소리를 듣고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마치 깜짝 놀란 사슴처럼 펄쩍 뛰어 일어나더니,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네로 돌아갔다. 그네에 앉은 뒤에도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아… 어색하네.’천도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계단 입구 쪽에 있는 존을 돌아보았다.‘조금 전 저택을 그렇게 오래 돌아다니며 찾아도 보이지 않던 녀석이, 왜 지금 나타나?’"어쩌는 게 좋을 것 같아?"존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럼, 계속해. 내가 자리를 비켜줄 테니."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이리 돌아와!"천도준이 존을 불렀다.‘겨우 쌓은 분위기가 저자의 말 한마디에 깨졌는데, 지금 자리를 피해준다고 무슨 소용이 있지?’설령 그가 계속하려 해도 고청하가 원하지 않을 것이다.천도준은 우울한 목소리로 존에게 물었다."조금 전에 어디 갔었어?"존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나도 도련님의 좋은 일을 망칠 줄은 몰랐어. 만약 도련님에게 이런 좋은 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맞아 죽더라도 바로 올라오지 않았을 거야.’‘적어도 삼십 분은 기다렸다 올라왔을 거야.’그러나 천도준이 그를 불렀으니, 그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안마의자가 하나 모자라, 조금 전에 사러 나갔다 왔어."그는 천도준의 당부를 똑똑히 기억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절대로 도련님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친구랑 대화하는 말투로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안마, 의자!"천도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가 꽉 깨물었다.‘안마의자 하나 때문에 내 좋은 일을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