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임 원장은 눈꺼풀을 치켜들고 부승민을 바라보며 손가락 세 개를 내밀었다."내가 최선을 다해 3개월만 지킬 수 있어. 더 많으면 하늘의 명을 따를 수 밖에 없어."부승민은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자 가슴은 마치 쇠망치로 세게 맞은 것 같았고 오장육부가 살살 아파 났다.석 달.할아버지는 석 달밖에 시간이 없다.부승민은 단지 그것이 농담이기를 바랐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임 원장은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인데 그마저도 속수무책이라니…"네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 알아. 사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이미 준비를 다 했어. 다만 그가 가장 마음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너야. 그동안 나도 뉴스를 봤는데 혹시 아내와 이혼을 하는 거 아니야?"임 원장은 앞으로 나와 부승민의 어깨를 툭툭 쳤다."결국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인데, 정말 살아갈 수 없는 이상 나도 너에게 떠나지 말라고 충고할 수 없지 않으냐. 다만, 네 할아버지가 이 정도의 시간이 남았으니 기분 좋게 떠나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부승민은 눈시울을 살짝 붉히며 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삼촌, 감사합니다."부승민은 쓸쓸하게 몸을 돌려 떠났다.그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퇴폐적으로 앉아 마치 석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저더러 밥을 갖다 드리라고 하셨어요."운전기사는 도시락을 들고 들어와서 온하랑을 도와 포장을 뜯었다.온하랑이 물었다. "그 사람은요?""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차를 이용하지 않으셨기에 틀림없이 여전히 병원에 계실 거예요." 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하여 부승민의 마음도 괴로워하고 있다고 믿은 온하랑은 지금 그가 아마 혼자 조용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식욕이 별로 없었지만 자기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밥을 몇 숟가락 더 먹었다.밖에서 돌아온 부승민의 안색은 정상이었지만 두 눈동자는 칠흑같이 어두워 어떤 감정도
"하랑아, 너 머리가 왜 그래? 왜 다쳤어? 심각해?" 할아버지는 온하랑 머리 위의 거즈를 보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온하랑은 할아버지가 이렇게 아프신데도 작은 상처까지 신경 쓰시니 가슴이 미어지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왜? 많이 아파?" 할아버지는 온하랑의 처량한 얼굴을 보고 안쓰러워하며 물었다.온하랑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실수로 부딪쳤을 뿐이에요. 심하지 않고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자기 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돼. 할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 할아버지는 몸이 약해서 오래 못 버틸 거야." 할아버지는 힘없이 말했다."아니요. 할아버지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건강이 좋아지실 거예요. 오래 사실 거예요." 온하랑의 눈물이 눈에서 맴돌았다."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울어."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온하랑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할아버지가 멀쩡하신다면 저 울지 않을 거예요." 온하랑은 목이 잠긴 목소리로 울며 말했다."하랑아, 할아버지처럼 연세가 많으면 누구나 다 이렇게 될 거야. 할아버지는 벌써 마음의 준비를 해서 무섭지 않아. 그래서 너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때?"입술이 천근처럼 무겁게 굳어진 온하랑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불 위에 엎드려 울부짖었다.그녀가 어찌 몰랐겠는가, 사람은 항상 이런 순서를 밟기 마련이다.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그녀는 너무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자기를 가장 아끼는 할아버지도 곧 떠나려 하는데…"아이야, 울지 마." 할아버지는 온하랑의 머리를 자애롭게 쓰다듬고 있었다.부승민은 앞으로 가서 온하랑을 일으켜 세우고 낮은 소리로 달랬다."울지 마, 하랑아. 할아버지가 멀쩡하잖니?"온하랑은 눈물을 흘리며 웃으며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나 정말 미쳤네. 할아버지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계시는데 내가 왜 울어, 웃어야 지."부승민은 온하랑이 억지로 웃는 모습을 보고 입술을 오므리고
"응, 그럼 먼저 갈게.""내가 데려다줄게."온하랑은 병실에 들어가면서 부승민에게 물었다."문 좀 열어둘까?""그래. 금방 갈게.""음."온하랑은 침대에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이미 잠이 없어 뒤척였다.할아버지의 병세를 생각하자 그녀는 마음속으로 비통함을 금할 수 없었다.그리고 할아버지가 부승민에게 부탁한 일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의 죽음을 위해 부승민과 친하게 지낼 기회를 주었다.그녀가 어찌 할아버지를 이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만약 반대로 부승민과 헤어졌다면 할아버지가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녀는 부승민과 관계를 끊는 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만약은 없다.세상의 일을 다 처리하기는 어렵다.복도에서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 온하랑의 병실 앞에 멈추었다.부승민은 가볍게 문을 열고 병상 쪽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안 잤어?""아니, 잠 안 와."부승민은 병실의 독립된 화장실을 빌려 간단히 씻고 외투를 벗은 후 이불을 들추고 침대로 들어갔다. "자자.""음."그들은 묵묵히 할아버지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온하랑도 눈을 감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날이 밝아올 무렵, 온하랑은 한바탕 휴대전화 벨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그녀는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움츠렸다.그것은 그녀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아니었다.부승민은 침대 옆 탁자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부승민이 전화를 받으러 나간 줄 알았던 온하랑은 그가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전화하는 것을 보았다."응, 서윤아.""승민아, 나 악몽 꿨어. 나 좀 보러 와줄래?""오늘은 안 돼.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서 같이 있어야 해.""응? 할아버지가 아프신데 심각해? 내가 한번 가봐도 될까?"부승민은 침묵을 지키며 침대 위의 온하랑의 눈빛을 보았다.온하랑은 서둘러 시선을 돌려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분명히 부승민에게 들켰다.부승민은 마이크를 막고 온하랑에게 물었다. "서윤이 할아버지를 보러 오고 싶
아침 식사 후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온하랑은 할아버지가 이미 깨어났음을 짐작하고 부승민과 함께 다시 병실로 갔다.이때 병실에는 부승민의 둘째 숙모와 조금 먼 사촌인 고모 두 사람이 더 있었다.구석에 선물 상자가 좀 있었는데 분명히 방문객들이 왔었던 것 같았다."아, 승민이랑 하랑 씨가 왔네요.""둘째 숙모님, 고모님." 온하랑은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눈앞의 상황을 보니 할아버지는 아직 깨지 않았다."할머니 곁에 가서 앉아 있어." 부승민이 온하랑에게 말했다.중간에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상이 두 개 있었는데 그는 온하랑이 잘 보이지 않을까 봐 일부러 온하랑을 부축하고 걸어가서 할머니 곁의 소파에 앉혔다."어린 부부 사이가 참 좋네." 이 장면을 본 둘째 숙모는 웃으며 놀렸다.둘째 숙모도 부승민과 추서윤의 뉴스를 본 적이 있다.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두지 않았다. 남자는 다 그렇지 않은가. 밖에서 놀아도 집에 다시 돌아가기 마련이다."그러게 말이예요. 승민이와 하랑 씨는 내가 봤던 중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고모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아첨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부씨 집안과의 관계가 좀 멀었다. 온 가족이 부씨 집안의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약간의 장사로 살아가길 바라고 있는데, 어르신이 아프셔서 병원에 바로 달려와 성의를 표하여 할아버지와 부승민의 앞에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부승민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모와 인사를 나눴다. "고모부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최근에 또 조그만 공장을 운영한다고 들었는데..."고모는 부승민이 불쾌해하지 않자 적극적으로 말했고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대답했다."그래, 가방 쪽으로 사업을 좀 확장하려고 하는 거야..."부승민이 몇 마디 말을 이어가자 고모는 매우 기뻐했다.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화제는 또 갈라졌다.고모의 시선은 온하랑과 부승민을 돌아보며 말했다."승민이는 올해 곧 서른이지, 하랑 씨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언제 아이를 가질 생각이야?"말을 마
부승민은 온하랑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온하랑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천천히 먹어."온하랑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멈추고 부승민을 올려다보았다.“오빠도 먹어봐."묻고 나니 온하랑은 문득 부승민이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생각났다."응." 부승민은 온하랑의 두 눈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멈칫하다 정신을 차리고 케이크를 한점 집어 부승민의 입에 넣어주었다.부승민은 냉큼 받아먹었다.할머니는 두 사람의 깨 볶는 모습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농담을 하셨다. "승민아, 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선물도 사오지 않았어? 우리 두 늙은이는 다 잊은거니?""선물도 없는 건 둘째치고, 승민이는 케이크를 싫어해서 먹으라고 해도 안 먹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주…"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으셨다.할머니는 흐뭇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승민이가 하랑이를 이리도 좋아하니 어쩌면 우리 증손자를 볼 날도 멀지 않은것 같네."두 사람의 말에 온하랑은 볼이 빨개졌다.할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신 후, 부승민은 며칠 동안 온하랑과 병실에서 지내며 아침저녁으로 같이 자고 있으니,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추서윤이 없었으면 이혼 합의서를 쓸일도 없었다.그들은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고 화목한 부부였다.부승민은 온하랑의 홍조를 띤 얼굴을 보며 생긋 웃었다."그만 하세요, 두 분 때문에 하랑이가 부끄러워 하잖아요. 하랑이가 시집을 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단 음식을 이렇게 좋아해요."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마음이 힘드니까 달콤한 게 당기는 거고, 이런 식으로 계속 먹다보니 습관이 되어 버린 거겠지.”"할아버지, 그만 좀 놀리세요."온하랑은 남은 케이크 한점을 마저 먹고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던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갑자기 발에 뭐가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부승민은 재빠르게 달려가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온하랑은 부
증거 앞에서 송 모씨와 이 모씨는 계획된 범죄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경찰은 이들을 형사 소송하기로 했지만 피해가 크진 않아 형량이 무겁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온하랑은 의문이 들었다."그들은 어떻게 제 차 번호와 위치를 알았을까요?""송 모씨는 S자동차 서비스 센터의 수리공인데 하랑 씨가 그 곳에서 차를 수리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어요. 이 모 씨은 미행을 상습적으로 한 놈인데, 그 친구한테서 하랑 씨 행적을 알아냈더라고요.""네, 알겠습니다.""송 모씨와 이 모씨 가족분들이 하랑 씨를 만나 선처를 구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안 만날게요. 저는 어떠한 배상도 필요 없고 가중처벌을 위해 집중해주세요.""네.""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무슨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세요."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온하랑을 보고 말했다. "이 일은 계성진 보고 지속 주시하게 말해둘게. 그놈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계성진은 부 씨 법무부에서 특채 변호사로, 강남 시에서 제일 잘 나가고 맡은 사건은 거의 패한 적이 없는 거로 명성이 자자했다."고마워.""뭘."레스토랑은 화려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홀에는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두 사람은 안쪽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는 그들에게 메뉴판을 하나씩 건넸다.부승민은 메뉴판을 펼쳐 처음부터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자 온하랑은 그의 말을 끊었다. "저녁에 그렇게 많이 시키면 다 못 먹지 않을까?""나 지금 너 들으라고 읽어주는 거야."부승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네 눈은, 지금 잘 보여?"온하랑은 그제야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를 향해 환히 웃으며 말했다."내가 앞이 안보이는 것도 아니고, 다만 희미할 뿐이지 글씨는 다 잘 보여."그 틈을 타 웨이터는 메뉴 소개에 나섰다."손님, 이건 커플 세트인데. 가성비가 좋아서 저희 가게에서 아주 인기가 많아요. 두 분도 한번 드셔보세요."온하랑은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거로 하자."
온하랑이 댄스 플로어에서 눈을 못 떼는 모습을 보자 부승민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춤추고 싶어?"온하랑은 부끄럽게 웃었다."나 잘 못 춰.""내가 가르쳐 줄게."온하랑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부승민은 온하랑를 마주하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는 손바닥을 내밀었고 온하랑은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고 천천히 댄스 플로어로 걸어가며 매혹적인 미소를 띠었다. "내 어깨에 네 손을 얹고 내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오면서 리듬에 몸을 맡기면 돼."잔잔한 음악에 맞춰 그들은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부승민은 온하랑한테 바싹 기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박자를 세었다.부승민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서 느껴지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온하랑은 삐걱거리다가 부승민의 스탭을 겨우 따라가다가 실수로 그의 구두를 밟았다."미안해." 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너무 가까운 얼굴사이 거리에 당황했다.부승민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괜찮아."온하랑은 그대로 넋이 나가버렸다. 무대 위의 조명은 유난히 반짝였고 그의 잘생긴 얼굴을 비추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조각처럼 각진 이목구비를 돋보이게 했다.부승민은 입꼬리가 위로 한껏 올라간 채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내 미모에 반했어?""아니거든." 온하랑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 자칫 자신의 발을 밟을 뻔했다.부승민은 조용히 웃었다.온하랑의 귀 끝이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다.잠시 후, 그녀는 어느 정도 스텝에 능숙해졌다.치맛자락이 펄럭이고 스텝은 가볍고 춤 선은 우아했다.부승민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잡고 온하리에게 리듬을 맡기고 그저 따라갔다."이제는 어떻게 추는지 감이 와?"부승민은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물었다."응."그때, 온하랑은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쳤다.그녀는 순간 평형을 잡지 못해 부승민의 넓은 가슴통에 머리를 토갰다.그러자 부승민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괜찮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서로 맞닿자 온하랑의 심장은 두근거렸다.부승민이 그녀의 입술을 깊이 입으로 빨아들이자 격렬한 접촉에 온하랑의 입술은 이내 빨개졌다. 부승민의 혀끝은 날렵하게 그녀의 입안 곳곳을 헤집으며 달콤한 입맛을 마음껏 맛보고 있었다.온하랑은 두 손을 그의 어깨에 걸치고 손가락은 그의 목덜미를 스치자 그의 말끔한 머리카락이 그녀에게 사랑스럽게 대꾸했다.두 사람의 숨결이 가쁘게 교차했다.밀폐된 차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가 더욱 굵어졌다.부승민의 숨이 뜨거워지며 그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몸 선을 따라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정신이 번쩍 든 온하랑은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아 그를 제지하며 흐리멍덩하게 말을 했다."그만해, 지금 밖에 사람들 있어."부승민은 어쩔 수 없이 동작을 멈추고 그녀의 따뜻한 입술을 한 번 더 맛보고는 천천히 손을 뗐다.한 줄기의 투명한 줄이 늘어지더니 부승민이 멀어짐과 동시에 줄이 탁 끊어지더니 두 사람의 옷깃에 떨어졌다. 좁은 차 안에는 애매한 기운이 흘렀다.부승민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그의 하얗고 긴 손은 핸들을 꽉 잡았다.차가 출발한 지 한참 후에야 온하랑은 창밖의 풍경을 보고는 이 길이 병원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눈치챘다."병원에는 안 가?"부승민은 고개를 돌려 덤덤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 먼저 집에 가고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자.""그래."차는 더원파크힐로 들어가 집 앞 마당에서 멈춰섰다.부승민은 안전벨트를 풀고 옷깃을 느슨하게 한 다음 바로 온하랑을 향해 덮쳤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물고 핥고 뜯고 하면서 두 혀끝이 뒤엉켜 진액이 섞이고 거친 숨결이 서로 얽혔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안전벨트를 풀어 자신의 다리에 앉힌 채 한 손으로는 그녀의 뒷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걷어내며 속을 기웃거렸다."앗...음..."온하랑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두 볼은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부승민의 뜨거운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
이튿날 아침, 최동철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패딩 점퍼에 청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새로 정리한 헤어스타일까지 더해지니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게다가 넉넉한 핏의 패딩은 그의 체형을 자연스럽게 감춰주었다.“자, 마스크도 잊지 말고 쓰세요.”“네.” 최동철은 대답하며 책상 위의 마스크를 집어 썼다.지금 이 모습이라면 자세히 보지 않는 한 그를 알아보긴 어려울 터였다.최동철은 설윤이 입고 있는 패딩 점퍼를 힐끗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윤은 웃으며 설명했다. “작은 가게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그리고 커플룩이 신분을 숨기기에 더 좋아요.”“그렇군요.”“제가 먼저 내려가서 체크아웃하고 주변 상황을 살펴볼게요. 연락드리면 그때 내려오세요. 미리 택시도 불러놓을게요.”“알겠습니다.”“그럼 다녀오겠습니다.”“네.”설윤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갔는데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그냥 두면 흔적이 남을 수 있어 길 가다 버릴 생각이었다.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설윤은 무사히 로비에 도착해 체크아웃을 마쳤다. 거리로 나서며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면서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길 건너편 왼쪽, 작은 만두 가게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가게 앞에는 접이식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중 한 테이블에는 건장한 남자가 앉아 가끔씩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그 자리는 아침을 먹으며 호텔을 감시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설윤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감시자는 그 남자 한 사람뿐인 듯했다.아마도 어젯밤 이들이 호텔 방마다 수색했지만 최동철의 흔적을 찾지 못해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을 수색하러 간 모양이었다.2분쯤 지나 설윤이 부른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설윤은 최동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차 문을 열며 짐을 싣다가 말했다. “기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 남편이 금방 내려올 거예요.”“네, 알겠습니다.”설윤은 다시 로비로 들어갔다.1분쯤
최동철이 말했다.“그럼 내일 병원에 다녀와야겠어요.”“제가 도와드릴게요.”약을 다 바른 뒤, 설윤은 그에게 거즈를 감아주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좀 쉬세요.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려고요?” 최동철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임가희 쪽 사람들이랑 마주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요.”“필요한 물건을 좀 사야 하거든요. 걱정 마세요.” 설윤은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 인간들 손아귀에서 도망쳐 나온 제가 다시 잡힐 것 같아요?”최동철은 그녀가 방금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힐끗 보며 물었다. “왜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거예요?”“이미 기회를 놓쳤어요. 제가 뭐라 해도 믿지 않을걸요?”“그럼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아요?”“당연히 괜찮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다시 돌아갈 거예요.”“성공하길 바라요.” 최동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돈은 있어요? 부족하면 제 카드를 써요.”설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조금만 써도 돼요?”돈이야 많을 수록 좋은 법이니까.최동철은 벽에 걸린 외투를 가리켰다. “지갑은 저기 외투 주머니에 있으니까 직접 꺼내요. 현금은 많지 않지만 블랙카드는 비밀번호가 필요 없어요. 사람이 적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을 거예요.”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니 고급 가죽의 촉감이 손에 닿았다.“얼마든지 뽑아도 괜찮아요?” 그녀가 돌아보며 물었다.“물론이죠.”“최 대표님, 참 후하시네요.”“제 목숨은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까요.”설윤은 밖으로 나갔다.최동철은 항생제를 먹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했던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났다.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 시였다.설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최동철이 일어나 그녀를 찾으러 갈까 고민하던 찰나, 설윤이 돌아왔다. 그녀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늦었네요. 위험한 일은 없었어요?”“없었어요.” 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최동철은 그 말을 듣고 샤워기를 틀었다.설윤은 간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 위에 놓인 칼을 가렸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걸어가 문을 여니 예상대로 복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방 안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키우는 햄스터가 실수로 도망쳤는데, 혹시 보셨나요?”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방금 밖에 나갔다 와서요. 잘 모르겠네요. 남편한테 물어봐 드릴게요.”그녀는 욕실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혹시 햄스터가 들어오는 거 봤어?”샤워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설윤은 욕실 문을 살짝 열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보, 작은 햄스터가 들어온 거 못 봤어?”몇 초간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머리를 빼고 남자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못 봤대요. 다른 곳도 한번 찾아보세요.”“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의심 없이 돌아섰다.최동철처럼 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숨겨줄 이는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설윤은 차분히 문을 닫고 귀를 문에 붙여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었다. 남자가 정말로 떠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욕실 문을 열며 말했다. “갔으니 나와요.”그리고 테이블로 가서 비닐봉지 안에서 약들을 꺼냈다. “자요, 여기 이 약들이 충분한지 확인해봐요.”최동철은 뒤에서 걸어나와 약의 종류와 양을 살펴봤다.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설윤은 생수를 주전자에 붓고 버튼을 눌렀다. “제가 약 발라줄까요?”“그럼 부탁할게요. 고마워요.”최동철은 잠시 망설였으나 곧 수락하고 천천히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그가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자 설윤이 다가가 도와주었다. 그녀는 그의 겉옷을 벗기고 벽걸이에 걸었다.안에는 짙은 회색 니트가 있었고 상처 부위는 터져 피로 얼룩져 있었다. 니트를 벗으려면 팔을 들어야 했기에 설윤은 그의 어깨 상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잘라낼까요? 이 옷은 이미 알아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