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8화

Author: 고운
아침 식사 후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온하랑은 할아버지가 이미 깨어났음을 짐작하고 부승민과 함께 다시 병실로 갔다.

이때 병실에는 부승민의 둘째 숙모와 조금 먼 사촌인 고모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구석에 선물 상자가 좀 있었는데 분명히 방문객들이 왔었던 것 같았다.

"아, 승민이랑 하랑 씨가 왔네요."

"둘째 숙모님, 고모님."

온하랑은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눈앞의 상황을 보니 할아버지는 아직 깨지 않았다.

"할머니 곁에 가서 앉아 있어."

부승민이 온하랑에게 말했다.

중간에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상이 두 개 있었는데 그는 온하랑이 잘 보이지 않을까 봐 일부러 온하랑을 부축하고 걸어가서 할머니 곁의 소파에 앉혔다.

"어린 부부 사이가 참 좋네."

이 장면을 본 둘째 숙모는 웃으며 놀렸다.

둘째 숙모도 부승민과 추서윤의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두지 않았다. 남자는 다 그렇지 않은가. 밖에서 놀아도 집에 다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게 말이예요. 승민이와 하랑 씨는 내가 봤던 중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고모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아첨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씨 집안과의 관계가 좀 멀었다. 온 가족이 부씨 집안의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약간의 장사로 살아가길 바라고 있는데, 어르신이 아프셔서 병원에 바로 달려와 성의를 표하여 할아버지와 부승민의 앞에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부승민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모와 인사를 나눴다.

"고모부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최근에 또 조그만 공장을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고모는 부승민이 불쾌해하지 않자 적극적으로 말했고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대답했다.

"그래, 가방 쪽으로 사업을 좀 확장하려고 하는 거야..."

부승민이 몇 마디 말을 이어가자 고모는 매우 기뻐했다.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화제는 또 갈라졌다.

고모의 시선은 온하랑과 부승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승민이는 올해 곧 서른이지, 하랑 씨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언제 아이를 가질 생각이야?"

말을 마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위태로운 제안   제89화

    부승민은 온하랑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온하랑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천천히 먹어."온하랑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멈추고 부승민을 올려다보았다.“오빠도 먹어봐."묻고 나니 온하랑은 문득 부승민이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생각났다."응." 부승민은 온하랑의 두 눈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멈칫하다 정신을 차리고 케이크를 한점 집어 부승민의 입에 넣어주었다.부승민은 냉큼 받아먹었다.할머니는 두 사람의 깨 볶는 모습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농담을 하셨다. "승민아, 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선물도 사오지 않았어? 우리 두 늙은이는 다 잊은거니?""선물도 없는 건 둘째치고, 승민이는 케이크를 싫어해서 먹으라고 해도 안 먹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주…"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으셨다.할머니는 흐뭇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승민이가 하랑이를 이리도 좋아하니 어쩌면 우리 증손자를 볼 날도 멀지 않은것 같네."두 사람의 말에 온하랑은 볼이 빨개졌다.할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신 후, 부승민은 며칠 동안 온하랑과 병실에서 지내며 아침저녁으로 같이 자고 있으니,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추서윤이 없었으면 이혼 합의서를 쓸일도 없었다.그들은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고 화목한 부부였다.부승민은 온하랑의 홍조를 띤 얼굴을 보며 생긋 웃었다."그만 하세요, 두 분 때문에 하랑이가 부끄러워 하잖아요. 하랑이가 시집을 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단 음식을 이렇게 좋아해요."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마음이 힘드니까 달콤한 게 당기는 거고, 이런 식으로 계속 먹다보니 습관이 되어 버린 거겠지.”"할아버지, 그만 좀 놀리세요."온하랑은 남은 케이크 한점을 마저 먹고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던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갑자기 발에 뭐가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부승민은 재빠르게 달려가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온하랑은 부

  • 위태로운 제안   제90화

    증거 앞에서 송 모씨와 이 모씨는 계획된 범죄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경찰은 이들을 형사 소송하기로 했지만 피해가 크진 않아 형량이 무겁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온하랑은 의문이 들었다."그들은 어떻게 제 차 번호와 위치를 알았을까요?""송 모씨는 S자동차 서비스 센터의 수리공인데 하랑 씨가 그 곳에서 차를 수리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어요. 이 모 씨은 미행을 상습적으로 한 놈인데, 그 친구한테서 하랑 씨 행적을 알아냈더라고요.""네, 알겠습니다.""송 모씨와 이 모씨 가족분들이 하랑 씨를 만나 선처를 구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안 만날게요. 저는 어떠한 배상도 필요 없고 가중처벌을 위해 집중해주세요.""네.""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무슨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세요."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온하랑을 보고 말했다. "이 일은 계성진 보고 지속 주시하게 말해둘게. 그놈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계성진은 부 씨 법무부에서 특채 변호사로, 강남 시에서 제일 잘 나가고 맡은 사건은 거의 패한 적이 없는 거로 명성이 자자했다."고마워.""뭘."레스토랑은 화려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홀에는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두 사람은 안쪽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는 그들에게 메뉴판을 하나씩 건넸다.부승민은 메뉴판을 펼쳐 처음부터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자 온하랑은 그의 말을 끊었다. "저녁에 그렇게 많이 시키면 다 못 먹지 않을까?""나 지금 너 들으라고 읽어주는 거야."부승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네 눈은, 지금 잘 보여?"온하랑은 그제야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를 향해 환히 웃으며 말했다."내가 앞이 안보이는 것도 아니고, 다만 희미할 뿐이지 글씨는 다 잘 보여."그 틈을 타 웨이터는 메뉴 소개에 나섰다."손님, 이건 커플 세트인데. 가성비가 좋아서 저희 가게에서 아주 인기가 많아요. 두 분도 한번 드셔보세요."온하랑은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거로 하자."

  • 위태로운 제안   제91화

    온하랑이 댄스 플로어에서 눈을 못 떼는 모습을 보자 부승민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춤추고 싶어?"온하랑은 부끄럽게 웃었다."나 잘 못 춰.""내가 가르쳐 줄게."온하랑은 두 눈이 번쩍 뜨였다.부승민은 온하랑를 마주하고 서서 허리를 굽히고는 손바닥을 내밀었고 온하랑은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고 천천히 댄스 플로어로 걸어가며 매혹적인 미소를 띠었다. "내 어깨에 네 손을 얹고 내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오면서 리듬에 몸을 맡기면 돼."잔잔한 음악에 맞춰 그들은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부승민은 온하랑한테 바싹 기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박자를 세었다.부승민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서 느껴지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온하랑은 삐걱거리다가 부승민의 스탭을 겨우 따라가다가 실수로 그의 구두를 밟았다."미안해." 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너무 가까운 얼굴사이 거리에 당황했다.부승민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괜찮아."온하랑은 그대로 넋이 나가버렸다. 무대 위의 조명은 유난히 반짝였고 그의 잘생긴 얼굴을 비추어 마치 고대 그리스의 조각처럼 각진 이목구비를 돋보이게 했다.부승민은 입꼬리가 위로 한껏 올라간 채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내 미모에 반했어?""아니거든." 온하랑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 자칫 자신의 발을 밟을 뻔했다.부승민은 조용히 웃었다.온하랑의 귀 끝이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다.잠시 후, 그녀는 어느 정도 스텝에 능숙해졌다.치맛자락이 펄럭이고 스텝은 가볍고 춤 선은 우아했다.부승민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잡고 온하리에게 리듬을 맡기고 그저 따라갔다."이제는 어떻게 추는지 감이 와?"부승민은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물었다."응."그때, 온하랑은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쳤다.그녀는 순간 평형을 잡지 못해 부승민의 넓은 가슴통에 머리를 토갰다.그러자 부승민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괜찮

  • 위태로운 제안   제92화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서로 맞닿자 온하랑의 심장은 두근거렸다.부승민이 그녀의 입술을 깊이 입으로 빨아들이자 격렬한 접촉에 온하랑의 입술은 이내 빨개졌다. 부승민의 혀끝은 날렵하게 그녀의 입안 곳곳을 헤집으며 달콤한 입맛을 마음껏 맛보고 있었다.온하랑은 두 손을 그의 어깨에 걸치고 손가락은 그의 목덜미를 스치자 그의 말끔한 머리카락이 그녀에게 사랑스럽게 대꾸했다.두 사람의 숨결이 가쁘게 교차했다.밀폐된 차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가 더욱 굵어졌다.부승민의 숨이 뜨거워지며 그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몸 선을 따라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정신이 번쩍 든 온하랑은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아 그를 제지하며 흐리멍덩하게 말을 했다."그만해, 지금 밖에 사람들 있어."부승민은 어쩔 수 없이 동작을 멈추고 그녀의 따뜻한 입술을 한 번 더 맛보고는 천천히 손을 뗐다.한 줄기의 투명한 줄이 늘어지더니 부승민이 멀어짐과 동시에 줄이 탁 끊어지더니 두 사람의 옷깃에 떨어졌다. 좁은 차 안에는 애매한 기운이 흘렀다.부승민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그의 하얗고 긴 손은 핸들을 꽉 잡았다.차가 출발한 지 한참 후에야 온하랑은 창밖의 풍경을 보고는 이 길이 병원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눈치챘다."병원에는 안 가?"부승민은 고개를 돌려 덤덤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 먼저 집에 가고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자.""그래."차는 더원파크힐로 들어가 집 앞 마당에서 멈춰섰다.부승민은 안전벨트를 풀고 옷깃을 느슨하게 한 다음 바로 온하랑을 향해 덮쳤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물고 핥고 뜯고 하면서 두 혀끝이 뒤엉켜 진액이 섞이고 거친 숨결이 서로 얽혔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안전벨트를 풀어 자신의 다리에 앉힌 채 한 손으로는 그녀의 뒷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걷어내며 속을 기웃거렸다."앗...음..."온하랑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두 볼은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부승민의 뜨거운

  • 위태로운 제안   제93화

    전화기 너머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부승민의 얼굴은 어느새 더욱 굳어있었다. "그래, 알았어, 금방 갈게."그는 곧바로 옷깃을 정리하고 외투를 입은 뒤 온하랑에게 말했다."나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무슨 일이야?"온하랑은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 쓰고 몸은 반쯤 괴고 있었다."이 늦은 시간에 꼭 가야 돼?"부승민은 옷을 정리하다 손을 멈칫했다."안 매니저? 설마 안수빈이야? 서윤 씨 한테 뭔일 생긴 거야?"그의 침묵에 온하랑의 눈엔 걱정이 가득했고 온몸은 차가워 졌다."추서윤이 연락이 안된대.""연락이 안돼? 그럼 경찰에 먼저 신고해야지, 지금 가도 도움이 안되잖아."온하랑은 추서윤이 그가 찾으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서윤의 심리가 불안정한 상황에 혼자 떠돌아 다니게 냅두면 너무 위험해. 게다가 걔는 공인이여서 경찰에 신고하면 피해가 너무 커. 약속할게. 가능한 한 빨리 걔를 찾아서 돌아올게."부승민의 완강한 표정을 보니 온하랑은 가슴이 아팠다.관심이란 어지러운 것이다.이건 아마 추서윤이 부승민을 불러내기 위한 꼼수일 것이다. 온하랑은 바로 알아차렸지만 안타깝게도 부승민은 아니었다.그의 눈에 추서윤은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온하랑은 부승민이 이대로 가면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내가 오빠를 보내기 싫다면?"온하랑은 입술을 깨물고 용기를 내고 말했다."온하랑, 애처럼 떼쓰지 마.""오빠가 할아버지한테 약속한 말 잊었어?"온하랑은 서러움을 참고 다시 한번 잡아보았다.그는 마음속으로 추서윤을 걱정하고 있었다. 추서윤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그녀와 함께 지내겠다고 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언제든 다른 여자에게 불려갈 수 있는 남편을 곁에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난 그저 할아버지한테 너랑 잘 지내겠다고 한 것 뿐이야,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 한 사람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꼭 나랑 싸워야겠어?

  • 위태로운 제안   제94화

    부승민이 추서윤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것이다.그는 감히 애인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뵈었다.바람결에 쏟아지는 차가운 빗방울과 같은 따뜻한 마음의 그늘이 그녀를 흠뻑 적셨다.온하랑은 그가 왜 자신한테 이토록 가혹하게 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그들이 잠자리를 가지려는 중, 추서윤의 전화 한 통에 불려가고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추서윤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뵈러 왔다.부승민은 도대체 아내인 그녀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 걸까.온하랑은 병실 문 앞에 서서 안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추서윤은 환심을 사려는 듯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태도는 무뚝뚝했다."아가씨의 좋은 말씀에 감사드려요."이야기하는 동안 할머니는 부승민에게 화제를 돌렸다. "승민아, 너 어제 하랑이랑 같이 돌아가지 않았니? 오늘은 왜 너 혼자 이 아가씨랑 같이 왔어? 이 아가씨는 일이 바쁘실 텐데. 너도 그래! 굳이 이렇게 오라고 귀찮게 할 필요가 있었냐? 만약 또 어느 언론사 기레기에게 찍혀서 한바탕 기사를 휘갈겨 쓴다면 아가씨한테 피해 끼치지 않겠어?"추서윤은 발 빠르게 부승민을 옹호하고 나섰다. "할머니, 제가 직접 오겠다고 했어요.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걱정돼서 승민한테 데려다 달라고 한 거에요."할머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승민아, 너는 왜 모든 일은 남한테 떠벌이고 다니는 거냐? 아가씨, 나는 지금 그쪽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만약 다른 외부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다는 것을 알고 물건을 사 들고 와서 뻔뻔하게 들러붙어 사람 짜증 나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부승민과의 평온한 결혼생활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할아버지한테 까지 찾아와 날뛰니 할머니는 최대한 정중하게 경고를 날렸다.추서윤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억울한 표정으로 부승민을 쳐다보았다."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먼저 서윤이를 데리고 오려고 한 거에요. 탓을 하려면 제 탓을 하세요."부승민은 모든 질책을 떠안고 말했다.그는 어젯밤에 한참 동안 돌아다녀서

  • 위태로운 제안   제95화

    추서윤은 온하랑한테 슬렁슬렁 다가갔다."며칠 전 교통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사고 낸 사람이 내 팬이야. 내 팬이 왜 그랬는지 알아?"온하랑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추서윤을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나와 부승민 둘 사이에 훼방 놓은 불륜녀니까!"온하랑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감히 제 앞에서 당당히 말하시네요. 도대체 누가 제3자인지 서윤 씨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근데 말이죠, 서윤 씨가 이렇게 제 앞에서 날뛰시면 제가 언론에 까발려서 서윤 씨가 불륜녀로 낙인 찍힐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추서윤은 하하 비웃었다."왜 웃어요?"온하랑은 저 웃음의 의미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내가 웃는 게 뭐? 너 정말 어리석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지금 언론과 네티즌들한테도 네가 불륜녀야!"온하랑이 침묵하자 추서윤은 계속 보탰다."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네. 네가 네 인스타를 보고만 와도 이런소리 못할 텐데."온하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요즘 눈앞이 흐릿해 핸드폰을 볼 때 증상이 더 심해져서 거의 보지 않았고 인스타 역시 들어가 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그녀는 요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안해 났고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원망도 하다가 부승민이 자신을 속인 건가 의심하기 시작했다."왜? 못 보겠어?"온하랑의 양쪽으로 떨어진 두 손은 꽉 움켜쥐어 손바닥에는 검붉은 자국을 남겼다.그녀는 이건 추서윤이 그녀를 자극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추서윤이 시비를 걸수록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게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하하, 하랑아, 네가 승민의 아내라고 자신만만해 하면서 이런 용기도 없어? 부승민이 너를 좋아하지는 않는거 너도 잘 알잖아. 봐, 내가 어제 부승민 한테 전화 한 통만 걸어도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나를 데리고 왔잖아. 너만 아니었으면 부승민은 나와 진작에 결혼했을 거야. 승민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네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거야.""서윤 씨, 대체 누가 불륜녀인지 저보다 그쪽이 더 잘 알겠죠

  • 위태로운 제안   제96화

    온하랑은 온몸이 굳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마음은 칼로 베인 듯 아팠다. 그녀는 단지 이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문제를 의식하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승민이가 일부러 너를 속였으니까. 그날 정말 승민이가 별생각 없이 네 핸드폰을 가져간 줄 알았어? 아니, 일부러 그런 거야. 네가 뉴스를 보면 분명 해명할 거라고. 그래서 네 핸드폰을 가져가고 너희 아주머니한테도 입단속을 시켰지."추서윤의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지옥의 잔인한 수라처럼 들려왔다."왜 아무도 해명하려 나서지 않는지 맞춰봐. 승민이가 다 차단했거든. 걔가 직접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해명할 기회도 모두 짓밟은 건 내가 불륜녀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승민이의 마음속에 진정한 아내는 나거든, 제일 사랑하는 사람 역시 나야!""하지만 너는 부승민 마음속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를 대신해 욕받이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걔 마음속에 제3자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제3자인거야!"온하랑의 머리는 어질어질 해났다.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정신없이 핸드폰을 열어 김시연과의 카카오톡 채팅 기록을 찾았다.여태껏 확인하지 못했던 채팅 기록들을 본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추서윤이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김시연이 보내온 톡이 었다. "하랑 씨, 실검 봤어요? 하랑 씨와 대표님이 파파라치에 찍혔던데요. 제가 두 사람이 그런 관계가 아닌 걸 몰랐다면 보고 바로 믿을 정도던데요."그 톡 밑에는 온하랑의 생소한 답장이 보내져 있었다. "고마워요. 이제 알았으니까 제가 처리할게요."하지만 온하랑은 이 답장이 자신이 보낸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채팅 기록을 계속 밑으로 밀어내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답장이 보내져 있었다. 전화 기록을 뒤집어 보니 그날 통화 기록이 몇 개 있었지만 온하랑은 그날 핸드폰을 손에 넣기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화를 아예 받지 못했다.이것들은 모두 부승민이 대신 처리해 준 것이었다.그는 줄곧 그녀를 속이고

Latest chapter

  • 위태로운 제안   제1383화

    “그렇다면 다행이네.”최국환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동림이도 이 병원에 있어. 천식이 재발해서 입원 중인데 같이 가서 보러 갈래?”온하랑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전 또 일이 있어서요.”“바로 아래층인데. 금방이면 돼.”최국환이 설득하듯 덧붙였지만 온하랑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회장님. 제가 좀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맺고 최국환을 지나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의 생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내가 필라시에서 메이슨을 낳았다는 얘기...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 하지만 사진도 있었고 메이슨이 다시 내 품에 돌아온 뒤로는 받아들이게 됐어. 그렇다면 메이슨이 유실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온하랑은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첫 번째 가능성은 출산한 후 며칠 지나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였다.그 사고로 기억을 잃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이 갓난아기 메이슨은 집에 혼자 남겨졌고 우는 소리에 놀란 이웃이나 행인이 아이를 구조했다가 연락처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다 양부모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 혹은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틈타 누군가 아이를 빼돌렸을 수도 있었다.두 번째는 임신 후반기에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였다.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기억을 잃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입원 생활을 이어갔고 아이는 병원의 판단이나 제삼자의 개입으로 다른 곳에 보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특히 병원 측이 메이슨의 혈액형이 특이하다는 걸 알고 그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무엇보다 그때 그녀에게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온하랑은 두 번째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라 생각했다.사고로 깨어난 뒤 그녀의 휴대폰에는 최동철이나 벨라, 혹은 진도원 등 사람들의 연락처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사고에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오늘 메이슨의 희귀 혈액형을 알게 된 뒤로

  • 위태로운 제안   제1382화

    온하랑은 조심스럽게 일반 병실 문을 밀어 열었고 문틈 사이로 소독약 특유의 냄새가 훅하고 밀려왔다.병실 안에서는 운전기사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깁스를 한 채 이마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온하랑이 들어오자 기사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말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움직이지 마세요.”온하랑은 재빨리 다가가 그를 제지하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푹 쉬셔야 해요.”기사는 눈에 띄게 미안한 기색이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그때 반응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기사님 잘못 아니에요.”온하랑은 그의 곁에 앉아 방금 사 온 과일 바구니를 건넸다. “CCTV 확인해 보니까 상대 차량이 고의로 신호를 어긴 게 맞아요. 경찰이 이미 수사에 들어갔어요.”기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그럼... 메이슨 도련님은요?”“아직 중환자실이에요.”온하랑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은 고스란히 전해졌다.“하...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어서 나아야 할 텐데...”“의사들이 최선을 다해주실 거예요. 기사님께서 필요한 거 있으면 간병인이나 비서한테 바로 말씀하세요. 전 이제 아주머니 병실도 보고 올게요.”“네,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온하랑은 장 선생 병실을 나온 뒤 가정부 아주머니의 병실도 들렀고 마지막으로 메이슨이 있는 중환자실 앞으로 향했다.아직 깨어나지 않은 메이슨을 보기 위해 간호 스테이션에 들러 서류에 서명하고 푸른색 보호복과 마스크, 모자를 착용한 뒤 무거운 격리실 문을 밀었다.침대 위 메이슨은 생각보다 더 창백했다.그의 긴 속눈썹이 병실 조명 아래 거의 투명해 보였고 여러 장비와 관이 그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고 의료 기기에서는 규칙적인 삑삑 소리가 들렸다.온하랑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엄지로 손등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낮게 속삭였다.“메이슨...”그녀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에게 물었다.“언제쯤 깰 수 있나요?”“수술 끝난 지 이제 다섯 시간

  • 위태로운 제안   제1381화

    온하랑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예전에 강남시에서 마주친 소년이 떠올랐고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그들은 비록 이복남매 사이지만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게다가 지금 최동림이 입원 중이라면 보호자는 거의 확실하게 임가희일 것이고 온하랑은 그 여자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그래. 그럼 내가 잠깐 내려갔다 올게.”“네.”최동철은 조용히 병실로 내려가 잠시 임가희와 인사를 나누고 최동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수술실 앞으로 돌아왔다.보모가 먼저 수술을 마쳤고 이어 병원에서 혈장을 수급해 수술이 이어졌으며 결국 메이슨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그는 현재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의사는 메이슨이 깨어나려면 대략 4~6시간 정도 걸릴 거라 설명했다.최동철은 곧장 비서 김지환과 간병인 두 명을 병동에 상주시키도록 지시했다.한편, 메이슨과 같은 희귀 혈액형을 가진 친구도 병원에 도착했다.비록 실제 수혈은 필요 없었지만 최동철과 온하랑은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하고 고급 담배와 술도 선물했고 연락처도 서로 교환했다.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레 희귀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다.그 친구는 자신의 혈액형이 확인된 후 가족 전체가 무료 혈액형 검사를 받았고 그중 동생도 같은 혈액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현재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 도움 단체에 가입해 있으며 메이슨도 가입해 두라고 권했다.지금은 어린 나이라 헌혈이 안 되지만 이후 혹시 모를 수혈 상황에 대비해 혈액 공급망을 넓혀 두는 게 좋다는 것이다.메이슨이 성인이 되면 직접 헌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식사를 마친 뒤 온하랑은 협력사 미팅에 가야 했기에 최동철은 그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자신의 업무로 향했다.협력사 미팅을 마친 온하랑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고 택시에서 막 내린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부승민이었다.온하랑은 병원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어때? 장 대표님은 만났어?”수화기 너머에서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위태로운 제안   제1380화

    온하랑은 지금 경주 출장을 온 상태였다.그는 오늘 막 도착해 협력사 직원의 안내로 호텔에 체크인했지만 아직 현지 담당자와는 만나지 못한 상황이었다.원래는 저녁에 메이슨을 잠깐 보러 갈지 생각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최동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메이슨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고 그래서 온하랑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입구에는 최동철이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를 보자 온하랑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다급히 물었다.“동철 오빠, 메이슨은 어때요?”그러자 최동철은 깊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과다 출혈이 있어서 수혈이 필요해.”그 말에 온하랑은 아까 전화로 자신에게 혈액형을 물어본 이유가 떠올랐고 마음속 불안이 더욱 커졌다.“메이슨 혈액형이...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검사 결과, 메이슨은 Kidd 혈액형 중 Jk(a-b-)형이래. Rh 음성보다 더 희귀한 혈액형이야.”최동철의 목소리에는 짙은 걱정이 묻어 있었고 온하랑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그런 혈액이... 혈액은행에 있긴 있어요?”“응. 병원에서 이미 확보 요청했어.”그래도 온하랑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메이슨이 어쩌다 그런 희귀 혈액형을 갖게 된 거지? 혹시 혈액이 부족하면 어쩌지...’그러자 최동철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예전에 경주에서 같은 혈액형 가진 사람 중 헌혈 계약을 맺은 분들이 있어서 지금 연락 중이야. 메이슨 상태도 많이 안정됐고 잘 버틸 수 있을 거야.”만약 사고가 메이슨이 처음 귀국했을 때 터졌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병실로 가는 길에 최동철은 메이슨의 혈액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Kidd 혈액형은 ABO 혈액형과는 별개 체계로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ABO 혈액형상으로 메이슨은 O형이다.하지만 Kidd 혈액형 시스템에서는 적혈구 표면 항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Jk(a+b-), Jk(a-b+), Jk(a+b+), Jk(a-b-) 이렇게 네 가지로 나뉜다

  • 위태로운 제안   제1379화

    아침이 밝고서야 최국환이 병원에서 돌아왔다.설윤은 그의 눈 밑이 시커멓게 팬 걸 보고 곧바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조심스레 물었다.“동림이는요?”“원래 있던 증상이지. 의사 말론 어제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그랬다고 했어. 당분간 입원해서 안정 취해야 한대. 지금 병원에 동림이 엄마랑 하인이 같이 있어.” 최국환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가 몰려와 그는 이제 더 이상 밤새우는 게 버겁다고 느꼈다.알레르기 유발성 천식과 감정 기복으로 인한 천식 발작은 증상이 조금 달랐다.경험 많은 의사가 문진과 혈액 검사 끝에 감정적 요인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큰일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회장님도 아주 피곤해 보이세요. 아침 드시고 바로 좀 쉬시는 게 어때요?”설윤이 조용히 말하자 최국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는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했고 임연지는 외출해 오재원을 만나러 나갔다.집에 혼자 남은 설윤은 심심하던 차에 기사에게 부탁해 병원으로 향했다.명분은 최동림의 병문안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임가희의 신경을 긁어놓는 데 있었다.병원에 도착해 입원실 방향으로 걷던 중 그녀는 익숙한 뒷모습 하나를 발견했다.그 사람은 통화 중이었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설윤보다 먼저 병동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최동철? 설마 동림이를 보러 온 걸까?’설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엘리베이터에 올라 최동림의 병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창밖으로 병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최동림은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었고 곁의 보호자 침대엔 임가희가 쉬고 있었다.설윤은 병실 문을 똑똑똑 세 번 두드렸다.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 소리에 임가희는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고 그녀의 눈빛은 곧장 경계심으로 바뀌었다.“설윤 씨, 여긴 무슨 일이죠?”임가희는 빠르게 몸을 돌려 병상 앞을 가로막았고 설윤은 손에 든 과일 바구니를 살짝 흔들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연히 동

  • 위태로운 제안   제1378화

    임연지는 설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분에 겨워 발을 굴렀다.‘진짜 싸가지 없는 여자야. 예전에 백화점에서 따귀 한 대 맞았을 땐 개처럼 쫄아서는 말도 못 하더니 지금은 고모부가 뒤를 봐준다고 어디 감히 자기를 상대로 맞불을 놓다니.’설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고 금세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려 억지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한편, 임연지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핸드폰을 들어 한진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을 죄다 털어놓았다.[이 년은 진짜 너무 교활해. 내가 못 봤으면 동림이는 완전히 넘어갔을 걸? 아무도 몰랐을 거야. 아까는 대놓고 동림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뭐냐고 묻더라니까? 고모부는 갑자기 노망이 났는지 그냥 다 알려주라고 하질 않나.]그러자 한진의 답장도 빠르게 도착했다.[이 여자 수위가 장난 아닌데.] [그렇지. 내 말 맞지!] [너네는 못 이겨. 이런 애 상대하려면 그냥 권력으로 찍어 눌러야 해. 지금처럼 고모부가 뒷배 봐주니까 애가 깝치는 거지. 그러니까 넌 빨리 오재원이랑 결혼하는 게 답이야.][곧 할 거야. 오씨 집안에서도 이번 주 안에 날짜 잡자고 올라온다고 했어.][근데 결혼했다고 끝난 건 아니야. 오재원이 예전처럼 아무 능력 없는 철부지라면 권한도 없고 집안에서 힘도 없을걸.]임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오재원네 집안 권력은 오형일, 큰아들 오하운, 그리고 작은아버지 오정우에게 집중돼 있었다.사실 그녀도 예전엔 오재원의 형 오하운에게 접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워낙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간신히 만나도 말도 안 섞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근데 솔직히 오재원은 회사에서 일할 깜냥도 안 돼.][그럼 그냥 가르치면 되지. 저 정도 집안이면 선생 몇 명 붙이는 거 일도 아니잖아. 회사 나가서 일하게 만들고 진심으로 개과천선은 못 해도 적어도 모양새는 갖춰야지. 부모님 눈에도 달라졌다고 보이게 말이야. 연지야, 지금은 오

  • 위태로운 제안   제1377화

    “회장님! 동림 도련님이 천식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모시려는 중이에요. 어서 내려와 보세요.”복도에서 다급한 하인의 외침이 들려왔다.최국환은 눈을 번쩍 뜨고 곧장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 조명을 켠 뒤 겉옷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를 따라 일어난 설윤이 몸을 일으키자 그는 말했다. “그냥 자. 내가 가볼게.”하지만 설윤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동림이 천식이 있어요?”“응.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그럼 저도 같이 가볼게요.”설윤은 외투를 꺼내 입고 최국환과 함께 급히 방을 나섰다.1층 거실로 내려가 보니 최동림은 이미 약을 복용했지만 여전히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곁에서 지키고 있던 임가희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도대체 왜 갑자기 발작이 난 거야?” 최국환이 조급하게 묻자 임가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확실하진 않은데 혹시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노출된 게 아닐까 싶어요... 다만 의사 말로는 감정적인 변화 특히 슬픔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이런 감정이 심할 경우 몸속 자율신경 중 미주신경이 자극돼 기관지가 수축하고 천식 발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최동림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천식 판정을 받았고 그 뒤로 집안은 온통 방역과 청소, 위생 관리에 신경 써 왔다.최동림이 자라면서 체질도 좋아져 요즘엔 거의 발작이 없었고 학교에도 특이 사항을 알려 기숙사 생활을 하게 했던 터였다.“알레르기 때문은 아닐 거야. 아마 낮에 너무 놀랐던 것 같아.”최국환은 최동림 옆에 앉아 등을 두드리며 숨을 고르게 도와주었다.“동림아, 아빠가 너무 심했어. 미안해.”그때 임연지가 옆에서 코웃음을 치며 설윤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글쎄요, 고모부. 오늘 오후에 설윤 씨가 동림이 방에 다녀갔는데 혹시 몸에 뭐 안 좋은 걸 묻히고 온 건 아닐까요? 동림이 건강 생각하면 확인

  • 위태로운 제안   제1376화

    방금까지 부모에게 혼나 속이 뒤집힌 상태였던 최동림은 설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다가온 그 순간 그녀에 대한 인상이 한껏 좋아졌다.그녀는 확실히 임가희가 지금껏 상대해 온 사람 중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였다.최동철 쪽과도 특별히 친하지 않고 이 집에서 그녀가 기대고 있는 건 허공에 떠 있는 최국환의 사랑 말고는 오직 최동림이라는 아들뿐이었다.그리고 설윤은 단번에 그 약점을 정확히 찔러 들어왔다.임가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조용히 말했다.“연지야, 넌 먼저 나가 있어.”임연지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최동림을 노려보다가 억지로 돌아섰고, 문을 쿵 하고 세게 닫고 나갔다.그러자 방 안에는 모자 단둘만 남았다.짙은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임가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들 앞에 앉았다.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최동림은 피하듯 몸을 틀었다.허공에 멈춘 임가희의 손끝이 서글프게 떨리다가 조용히 내려왔다.“동림아.”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게임기... 엄마한테 줄래?”최동림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꼭 안으며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이건 제 거예요!”임가희는 눈빛을 거두며 일어섰다.“동림아, 엄마 정말 실망했어.”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 새 옷 사주고 장난감 사주고 아프면 병원에서 밤새 지켜봐 주고 늘 네 곁에 있었잖아. 그런데 네가 이런 식으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해?”그 말에 최동림의 눈이 붉어지며 금세 눈물이 고였고, 그는 와락 게임기를 내려놓고 임가희를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게임기 필요 없어요. 제발 화 풀어요...”임가희는 아들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말했다.“그래야 우리 동림이지.”그는 흐느끼며 품에 안겼고 임가희는 조용히 속삭였다.“아직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속셈이 오가는 거야. 설윤이란 여자는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은 달라. 그러니까 절대로 설윤한테 선물 받지 마. 가까이하

  • 위태로운 제안   제1375화

    “누나, 무슨 일이에요?”최동림은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물었다.“방금... 설윤이 여기 왔었지?”“네...”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던 최동림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안 왔어요.”임연지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고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 건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려다 문득 책상 위의 선물 포장 상자와 그가 들고 있는 게임기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이 게임기는... 누가 사준 거야?”최동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엄마가... 사줬어. 왜?”“정말?”임연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그럼 고모한테 물어볼게.”최동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아, 잠깐만! 누나, 그게…”그의 말을 끊고 임연지는 단단히 다그쳤다. “동림아, 솔직히 말해. 이 게임기는 진짜 누가 사준 거야?” 최동림은 두 손으로 게임기를 꼭 쥐었고 손등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그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말이 없다가 결국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설윤... 아줌마가 줬어.”“설윤... 아줌마?” 임연지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너 지금 그 여자를 아줌마라고 불러? 이렇게 비싼 걸 받았다고? 동림아, 설윤이 어떤 여자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갑작스러운 고함에 최동림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설... 설윤 아줌마는 착한 사람이야. 그냥...” “착하다고?”임연지는 분노에 찬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착한 여자가 남의 가정을 깨뜨리냐? 넌 그런 사람한테 선물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는 거야?”그녀는 그대로 손을 뻗어 최동림의 품에 있던 게임기를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리꽂았다.“쾅!”새 게임기는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화면은 깨지고 기계 외관도 부서져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졌다.최동림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 곧장 무릎을 꿇고 깨진 게임기를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