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이 카메라 앞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는 기사는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서 퍼져나갔다.네티즌들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사람들이었다. 대응하면 궤변으로 치부되었고 회피로만 일관하면 암묵적인 인정으로 여겨졌다.떠들썩한 언론 때문에 일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그런 언론을 살피며 심기가 불편해진 김시연은 화를 참지 못한 나머지 한 줄의 문장과 함께 영상 하나를 공유했다.‘양심도 없지.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같은 게, 감히 누굴 건드려.’메이크업 사건 이후로 김시연은 항상 온하랑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여러 글을 공개적인 SNS 계정에 올려왔다. 그로 인해 네티즌들도 두 사람이 각별한 친구 사이라는 것쯤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로 인해 김시연의 인스타 계정까지 함께 차고 들어간 네티즌들은 온하랑에게만 퍼붓던 공격을 김시연에게까지 퍼붓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것에 지레 겁먹고 가만히 있을 김시연이 아니었다. 자신의 게시글에 악성 댓글을 남긴 한 네티즌과 살벌하게 싸웠던 증거가 여전히 그녀의 인스타 게시물 댓글 창에 그대로 남아있었다....오후에 작은 회의 일정이 잡혀 있던 온하랑은 회의를 마치자마자 서류를 든 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전무님.”근무실에 있던 연민우가 온하랑을 맞이했다.“대표님 찾으러 오셨어요?”“네, 결재받을 서류가 있어서요.””대표님 지금 회사에 안 계시는데. 급한 일 아니시면 일단 그 서류 저한테 맡기실래요? 나중에 대표님 돌아오시면 그때 제가 대신 전달해드릴게요.”연민우의 말에 온하랑은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침은 어느덧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네, 그렇게 하죠.”온하랑은 손에 들려있던 서류를 연민우에게 건네며 말했다.“거래처에서 최대한 빨리 처리해달라고 재촉하는 서류라서요. 적어도 오늘 퇴근 전까지는 저한테 다시 제출해주세요.”“물론이죠.”연민우에게 서류를 맡긴 온하랑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에 몰두
재벌들의 세상은 법으로 통제가 가능한 범위가 아니었다. 부승민의 곁에 널린 게 바로 법조계 인물들이었다. 그만큼 그의 단순한 암시 한 번에 부승민을 위해 발 벗고 나서줄 사람도 많았다. 경찰의 징계 사유도 부승민과는 관련도 없는 타당한 사유로 마무리가 되었다.유민상의 말에 주위의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멀대 같은 직원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애써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했다.“민상 씨가 쓸데없이 겁만 많아서는.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우린 돈만 벌면 돼!”그 순간, 문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가볼게.”컵라면을 뜨던 젓가락을 내려놓은 유민상이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누군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유민상의 복부로 거센 발길질이 가해졌다.무방비 상태로 복부를 걷어차인 유민상은 그대로 배를 부여잡고 털썩 뒤로 쓰러졌다.뒤이어 머리를 빡빡 민 험한 인상의 청년이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두어 걸음 옮겨 자신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유민상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일어나!”갑자기 날아온 발길질을 피하지도 못하고 정통으로 맞아버린 유민상은 매우 놀랐는지 겁에 질린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며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으며 말했다.“이...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이거 범죄야!”청년은 그런 유민상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는 멱살을 잡고 일으킨 그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아 벽에 들이받아 버렸다.“쿵”하는 소리와 함께 유민상의 이마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뒤이어 몰려오는 뇌가 튀어나올 듯한 극심한 통증과 어지러움에 이를 악물었다.2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어진 소란에 사무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나머지 네 명의 직원들이 달려 나왔다.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직원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너 누구야?”“네가 뭔데 함부로 남의 몸에 손을 대?”네 명의 직원들이 뒤늦게 달려 나와 유민상을 도와주려던 그때, 문밖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 여럿이
멀대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유민상이 걱정 어린 말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빨리 덜미가 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부승민도 더 자세하게 따져 물으려는 생각은 없는 듯 바로 본론으로 화제를 돌렸다.“스캔들 연구소, 이슈텔러, 연예계의 모든 것. 이 계정들 다 너희들 거지?”부승민의 날카로운 질문에 사무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멀대는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조금 전의 뻔뻔하고도 당당하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말로만 듣던 그 부승민이 정말 자신들의 기사에 대한 복수를 하러 찾아왔다는데 감히 누가 나서려고 할까.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년은 다른 한쪽 발을 들어 올려 자신의 발밑에 깔려있던 직원의 다친 다리를 힘껏 짓밟았다. 직원의 고통 섞인 비명이 바닥에서 들려왔다. 말로 형용하기조차 힘든 고통에 직원은 눈가 실핏줄까지 다 터져버린 건지 눈가가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공포로 물든 직원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청년은 험상궂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호통쳤다.“지금 묻고 있잖아!”청년의 발밑에 깔린 직원이 가빠오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희 것 맞아요. 근데 그 계정 관리자는 제가 아녜요. 저랑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계정이라고요!”부승민은 시선을 옮겨 청년의 발밑에 깔린 직원을 흘겨보았다. 이윽고 다시 고개를 들어 멀대와 다른 직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계정 관리자가 누군데? 너희들한테 찌라시 퍼뜨리라고 시킨 사람이 따로 있을 거 아냐, 그게 누군데?”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에 침을 꿀꺽 삼킨 멀대가 저도 모르게 조용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다른 두 직원도 멀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그러던 중, 한 명이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멀대를 앞으로 밀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계정 관리자는 최민수예요. 유민상이 제보를 받으면 최민수가
만약 오늘 부승민이 정말 작정하고 손 볼 생각으로 찾아온 거라면 이들은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그대로 목숨을 잃거나, 부승민의 수하들 손에 불구가 되겠지.부승민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누가 봐도 뒷골목에서 싸움질 좀 하고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떨어진 인생이니 교도소든 뭐든 두려울 게 없었다. 게다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부승민의 입김으로 그 건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풀려날 게 뻔했다.게다가 풀려난 건달들이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은 평생 이 건달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인생이 피곤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부승민은 내리깔고 있던 눈을 치켜뜨고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유민상을 바라보았다.부승민의 시선에 흠칫 몸을 떤 유민상이 다급하게 용서를 구걸하기 시작했다.“부승민 씨,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 해주십시오!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그 기사들은 지금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승민 씨와 온하랑 씨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용서만 해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이거, 너랑 진재영이 만든 첫 작품 아니잖아, 내 말 맞지?”유민상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꿇고 있는 다리마저 달달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뒤늦게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그게...”부승민은 유민상의 변명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평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유민상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8월쯤에 진재영이 사진 몇 장을 들고 저를 한 번 찾아왔었습니다.”그는 덜덜 떨리는 눈빛으로 부승민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 사진은 바로 부승민 씨와 추서윤 씨가 함께 BX 그룹 본사로 들어가는 사진이었습니다.”“그리고?”“더 없습니다. 이 두 번이 다입니다.”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승민을 발견한
온하랑은 부승민 없이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주 편히 잘 수 있었다. 어찌나 잘 잤는지 평소엔 꿈도 꾸지 못한 늦잠까지 잤다.도우미 아주머니가 어젯밤 부승민의 일을 얘기해주기도 전에 온하랑은 급히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회사까지 이동하던 중, 온하랑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뜬 인스타 알림을 발견했다.제목은 바로 이러했다:[#스캔들_연구소_공식 사과]해시태그는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라가 있었다.호기심에 해시태그를 눌러본 온하랑의 눈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온 게시물은 다름 아닌 스캔들 연구소의 공식 사과문과 모든 게시글이 지워진 피드였다. 유명세를 먹고 사는 계정이 댓글 창과 공유기능을 모조리 폐쇄해버렸다.어제까지만 해도 게시글은 절대 지우지 않겠다고 고집하던 스캔들 연구소가 하루아침에 180도로 태도를 바꾸자 사람들은 계정이 해킹당했거나 누군가의 협박을 받고 모든 게시글을 지운 것으로 추측하기 시작했다. 스캔들 연구소의 하루아침에 달라진 계정 상태는 오히려 네티즌들의 반감을 산 듯 보였다.하지만 스캔들 연구소가 댓글 창을 닫고 게시글을 내린다고 해도 진작에 그들의 게시물을 캡처해 보관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스캔들 연구소가 올렸던 찌라시들의 캡처 본과 화면 녹화본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또 다른 사이트가 생겨나고 그 사이트는 많은 네티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규모가 점점 커지더니 암호까지 맞춰가며 돈을 받고 사진과 영상들을 판매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ㅂㅅㅁ, ㅇㅎㄹ 50분짜리 호텔 XX 영상, 필요하신 분은 디엠 주세요.][ㅇㅎㄹ 고객 접대 영상, 구매하실 분만 디엠 해주세요.]무엇보다 온하랑과 관련된 선정적인 루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누구는 그녀가 지금 전무직까지 오른 건 다 잠자리 덕분이라 떠들었고, 또 누군가는 그녀가 항상 침대 위에서 고객을 접대한다고 떠들어댔다. 일부 성형외과들도 이 틈을 타 온하랑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비밀리에 성형수술을 받았다며 허위광고를 해댔다.
이주혁이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자신에게 손을 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한 스태프는 더 기가 산 건지 더 오만방자한 태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부 대표님이랑 추서윤 씨가 사귀고 있던 거 모르는 사람 있어요? 온하랑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중간에 끼어든 건데, 전 무슨 말도 못 합니까?”극도의 분노에 이주혁의 이마에 핏줄까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잡고 있던 사람들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고 그 스태프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극한의 분노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주혁을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결국, 진 감독이 직접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싸움이 일단락되었다.진 감독은 사건의 전후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촬영장 화장실에서 주먹다짐을 한 사람들을 따로 한 명씩 휴게실로 불러 개인 면담을 시작했다.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기사라면 진 감독도 진작에 확인했다. 그 기사의 진위는 알 수 없어도 이주혁이 온하랑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정도쯤은 일전 온하랑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결국, 스태프가 먼저 뒤에서 온하랑의 루머를 퍼뜨렸다는 것을 알게 된 진 감독은 그 스태프를 따로 불러 먼저 이주혁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건방지기 그지없던 스태프였지만 이성이 돌아온 지금, 괜한 오기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 일이 이주혁의 팬덤에게 알려지는 순간, 수많은 비난 여론 속에 잠겨 죽을 것이 뻔했다. 어디 그뿐일까, 여기서 괜히 고집만 더 부렸다간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다. 누가 봐도 지금 이 드라마 촬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태프가 아닌 주연 이주혁이었으니까.스태프가 이주혁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모습을 확인한 진 감독은 이제 이주혁더러 함부로 스태프에게 손찌검한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하지만 이주혁은 진 감독의 요구를 철저히 거절하며 자신은 스태프에게 사과할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강력하게 어필했다.이주혁이 먼저 주먹질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
온하랑의 끈질긴 추궁 끝에 이주혁은 혹시라도 온하랑에게 걱정거리가 될까 단지 드라마 촬영 중에 생긴 작은 트러블이라고만 대충 얼버무렸다. 이주혁의 대수롭지 않은 듯한 대답에 온하랑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별다른 방도가 없었던 온하랑은 그저 시답잖은 말들로 이주혁을 위로해주는 수밖에 없었다.[아무것도 모르면서 인터넷에서 함부로 지껄이는 사람들 말, 굳이 마음에 담아두려 하지 마.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일이니까.]온하랑의 위로에 이주혁이 바로 답장했다.[걱정하지 마.]공교롭게도 안티팬 단체의 멍청한 편집 덕분에 이주혁에게 역전승의 기회가 주어졌다.만약 자신에게 맞은 그 스태프가 카메라 앞에 얼굴만 비추지 않았더라도 지금쯤 모든 네티즌의 공격을 감수하고 있는 건 이주혁 하나뿐일 터였다.하지만 여론 조성을 위해서인지 안티팬 단체들은 굳이 자신에게 손찌검을 당한 스태프를 따로 섭외해 아무 잘못도 없는 무고한 사람으로 꾸며 진 감독까지 의도치 않게 이주혁의 편에 서도록 끌어들여 버렸다.이렇게 된 이상, 이주혁과 진 감독은 한마음 한뜻이 될 수밖에 없었다.수운성은 제작 규모가 꽤 큰 드라마로서 꽤 많은 투자자의 투자를 받아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었다. 그 이유 중 첫 번째가 바로 추서윤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제작 감독이 진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투자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 감독이 이 드라마에서 손을 떼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진 감독을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니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이주혁이 스태프에게 손찌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 진 감독이 사과를 요구했다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게 만들기를 원했다.따라서 겉보기엔 언론이 지금 매섭게 이주혁을 물고 뜯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주혁이 임찬호라는 캐릭터를 잃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었다. 기껏해야 맡고 있던 광고나 타격 조금 입고 말 것이다.만약 이주혁이 수운성에서 뛰어난 연기실력만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면 이주혁은 그
눈을 잠깐 질끈 감았다 뜬 온하랑은 비서가 두고 간 서류로 손을 뻗으며 최대한 정신을 차려 곧 있을 회의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다급한 발걸음으로 회장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연민우의 목소리와 태도에까지 조급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났다.“전무님 전화번호와 온갖 개인 SNS 계정들이 모조리 공개되어 버렸습니다!”연민우의 말에 표정이 차갑게 식은 부승민 역시 바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대표님. 전무님께서도 이미 공개된 그 전화번호는 과감히 버리셨으니까요.”“가서 IP 추적부터 해.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수집하고 경찰에 신고 넣어!”화가 제대로 난듯한 부승민이 한 글자, 한 마디에 힘을 실어 얘기했다. 부승민은 주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공권력의 힘을 빌리기보다 자신의 선에서 조용히 끝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하는 것의 단점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끔은 공권력을 이용한 공개적인 본보기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목숨 소중한 줄도 모르고 함부로 덤벼대는데, 그렇다면 원하던 대로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지 제대로 느끼게 해줘야지!“네, 지금 바로 추적 시작하겠습니다.”부승민도 자리를 뜨려던 그 순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부승민은 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부승민 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수화기 너머로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뭡니까?”“진재용 말입니다. 오상철 부대표님의 먼 친척 되는 사람이던데요. 평소엔 빈둥대며 놀기만 하다가 최근 들어 오진후 군과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입니다.”오진후라면 오상철 부사장의 아들이었다.부승민은 의외의 소식에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그럼, 그 둘 사람 거래 내역은?”“이미 대표님께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오진후는 아마 오미연한테 철저하게 조종당한 걸 거야. 넌 그 두 사람에 대해서 계속 알아봐 줘.”“네
최국환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멈칫했다.“최 회장님,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메이슨은 상황이 특별하기에 반드시 진심으로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옆에서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동철 씨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 회장님은 정성껏 메이슨을 보살필 수 있을까?’게다가 최씨 가문에는 임가희가 있기 때문에 온하랑은 그녀가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최동림의 후계자 계승을 위하여 걸림돌인 그를 해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메이슨은 최동림보다 두세 살 어렸다.“동철이가 현재 실종되었기에 나의 손자인 메이슨을 내가 반드시 잘 돌볼 거야. 이미 결정된 일이야. 하랑이 너랑 상의하려고 온 거 아니야.”최국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온하랑이 엄마라는 점을 고려해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아니면 경호원더러 메이슨을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다.온하랑은 최국환이 끝까지 막으면 그와 메이슨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최 회장님께서 메이슨을 위하여 저의 몇 가지 조건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말해봐.”“첫째, 제가 떠난 후 메이슨을 최씨 가문에 데려가서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이 계속 돌보게 해주세요. 최 회장님께서는 매일 시간을 내셔서 메이슨의 학습 상황을 물어봐 주세요.”온하랑이 없는 상황에서 최국환은 메이슨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언젠가 임가희는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기에 최국환의 옆에 둔다면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다.메이슨이 계속 별장에 머물면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은 권력과 힘이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를 노릴 기회를 줄 수 있다.온하랑의 말을 들은 최국환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는 메이슨을 옆에 두고 잘 가르칠 생각이었다. 만약 좋은 후계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반대로 그가 자질이 평범해도 최국환은 그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잠시 후 최국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잠깐만. 먼저 통화 좀 할게.”“네, 최 회장님. 편안한 대로 하세요.”통화 중
설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네.”설윤의 쓸쓸한 모습을 본 최동철은 그녀에게 물었다.“함께 갈래요?”설윤은 돈을 좋아하기에 그도 그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다.그러나 설윤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나중에는?”“나중에? 그때 다시 얘기해요.”설윤은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저 혼자예요. 저만 신경 쓰면 돼요.”최동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최동철이 떠난 후 자신을 구해준 설윤에게 보답의 의미로 많은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았던 부승민은 첨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과 함께 강남시로 돌아갔다.경주에 며칠 더 머무른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최동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오랫동안 경주에 머물렀던 온하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가려고 했다.만약 최동철이 돌아온다면 온하랑은 메이슨을 다시 데려오면 되고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가 메이슨의 유일한 보호자이다.아줌마에게 메이슨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던 중 별장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거실에서 아줌마가 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던 메이슨은 최국환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온하랑의 뒤로 숨어버렸다.“최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최국환을 본 온하랑도 깜짝 놀랐다.“하랑아, 미리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최국환은 온하랑 뒤에 숨은 메이슨과 땅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간다고?”그는 오래전부터 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네, 맞아요. 동철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제가 메이슨을 강남시로 데려가 돌보려고 해요.”온하랑이 대답했다.“승민이는 동의한 거야?”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혹시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그녀는 눈길로 아줌마에게 먼저 메이슨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설윤 씨, 일어났어요?”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설윤은 최동철과 눈이 마주쳤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와서 아침을 먹어요.”최동철은 이미 건조된 설윤의 옷을 가져왔다.“네.”설윤은 베갯머리에 두었던 핸드폰을 보고 열 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 밑에서 속옷을 찾아 천천히 입었다.최동철은 쓰레기통을 옆으로 걷어차고 설윤에게 칫솔 컵과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주고는 그녀가 이를 닦은 후 따뜻한 수건도 건네주었다.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어젯밤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발목 찜질을 한 설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려고 했다. 집 앞까지 다음날 배송될 수가 있기에 아주 편리했다.옷을 몇 벌 고른 설윤은 소파에 앉아 있던 최동철을 보며 물었다.“최 대표님, 제가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면 내일 도착하는데, 혹시 대표님도 필요하신가요?”조건이 우월한 최동철과 같은 귀공자는 사람을 시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동철은 머리를 끄덕였다.“갈아입을 옷 두 벌만 골라주세요, 부탁드려요.”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네, 알았어요.”머리를 끄덕인 설윤은 남성 의상을 검색하며 물었다.“사이즈는 얼마 입어요?”“신장은 185, 몸무게는 75킬로로예요.”“네.”설윤은 최동철이 말한 사이즈에 따라 내의 한 벌과 니트 및 팬티 두 벌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해주었다.최동철은 설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말을 마친 후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오후쯤 부하의 전화를 받은 최동철은 통화 중 계획 하나를 언급했으나 설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이 없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저녁이 되자 설윤은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최동철이 그의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