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정침이 도저히 불안해서 회의를 오래 하지 않았다. 최소 2시간짜리 회의는 1시간만에 끝났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은 다 생략됐다.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울지 않았고 서여령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아이는 무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비록 즐거워 보이진 않았지만 울지 않은 게 중요했다. 목정침은 안도하며 다가갔다. “아이 진짜 잘 보나 봐요. 예전에 애 엄마 말고 콩알이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서여령은 그가 돌아오자 살짝 겸손 해져 한쪽으로 비켰다. “콩알이요? 별명인가요? 너무 귀엽네요.” 목정침은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엄마가 지어준 거예요. 진짜 이름은 목성언이예요.” 서여령은 그를 보며 눈을 꿈뻑거렸다. 회사 사람들은 그가 웃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가 웃는 모습은 참 잘 어울렸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 모습은 소문처럼 무섭지도 않았고, 마치 저녁 하늘 속에 별처럼 빛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는 칭찬을 했다. “작은 도련님 이름 너무 잘 지으신 것 같아요. 대표님이 사모님 엄청 사랑하시는 것도 눈에 보이고요.” 목정침은 온연을 떠올리자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 그 여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말이 없자 서여령은 바로 나가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목대표님은 저를 잊으신 것 같은데… 저는 기억하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목정침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우리가 구면인가요?” 서여령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밝게 웃었다. “아니요… 그때 제가 학교 다닐 때 집안 상황이 안 좋았었는데 대표님께서 후원해 주셨었어요. 후원해주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기억은 못 하시겠죠. 그래서 제가 졸업하자마자 이 회사로 왔어요. 대표님 이 후원하신 금액이 헛되지 않게 제가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예전에 후원했던 사람? 그는 의심을 풀었다. 확실히 그가 후원했던 사람은 많았고, 매달 마다 서명하는 종이만 해도 그렇게 많으니 ‘서여령’이라는 이름을 기억
안야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 했고, 그저 할아버지와 손자가 친하지 않다는 것만 느꼈다. ”네, 그럴게요. 두 분이서 얘기 나누세요.” 예가네 어르신은 아택을 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너도 사생활을 여자한테 다 들키긴 싫을 테니.”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어르신… 뭐가 궁금해서 오신 건가요? 제가 결혼한 일까지는 귀찮으실 거 같아서 말씀 안 드렸을 뿐입니다. 크게 할 생각도 없었고요…” 예가네 어르신은 불 같이 화를 냈다. “네 여자가 이미 아는 건 나한테 다 말했어! 내가 진짜 할아버지인 줄 알고 의심하지 않더구나. 언제까지 나를 속일 생각이었니? 감히 날 배신해? 잊지 마, 넌 내가 없었으면 오늘의 너도 없었어.” 아택은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안야씨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제발 노여움을 베푸시고 저 여자는 건들지 말아주세요.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르신은 침대에 앉았다. “딱 한번 기회 더 줄게. 예군작이 하고 있는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 내가 아직 살아 있으니 예가네 주인은 절대 그 애가 될 수 없어!” 아택은 인상을 찌푸리고 잠깐 망설였다. 어르신이라고 예군작보다 인자한 사람은 아니었고, 만약 어르신의 화를 돋군다면 오늘 밤 그와 안야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경호원들이 지금 이 근처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엔 예군작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일부만 털어놓았다. “도련님이 제도에 온 뒤로 진몽요라는 여자를 가까이하셨습니다. 도련님 말로는… 그 여자분을 사랑한지 3년이나 됐다고 하시는데… 그거 외에는 땅 구매하신 거랑 진몽요의 약혼남과 대치중인 상황 밖에 없습니다.” 어르신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예가네 결혼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줄 아나보지? 아무나랑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어림도 없지! 그 여자 어떤 사람인지 내가
예군작 쪽에서 물건을 부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내가 한말만 기억해. 난 노인네보다 인자하지 못 하니까 네 처신 똑바로 해!” 전화를 끊고 아택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안야에게 말했다.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가 봐야겠어요. 아마 며칠동안 못 올 거 같아요. 알아서 몸 잘 챙기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지 말고 문자로 해요.”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국수… 안 먹어요?”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서요. 그쪽이 먹어요.” 강남구. 퇴근 후 진몽요와 온연은 근처 포장마차에서 밥을 먹었고 두 사람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진몽요는 경소경 때문에, 온연은 목정침 때문에 짜증이 나 있었다. 갑자기, 진몽요는 예군작의 문자를 보냈다. ‘당분간 외출할 때 조심해요. 혼자 다니지 말고요.” 그녀는 의아해서 문자를 온연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무슨 뜻이야? 내가 왜 조심해야 되지? 혼자 다니라고 하는데… 나 누구한테 찍혔나? 괜히 무섭네…” 온연은 문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글쎄, 근데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마침 나도 있으니 혼자는 아니네.” 진몽요는 별 생각 없이 느릿느릿 답장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문자를 보내고 그녀는 핸드폰을 옆에 올려두었다. “너 호텔 가지 말고 우리 집 가서 지내자. 어차피 예전에도 우리 한 침대에서 같이 잤으니까 숙박비도 아끼고 좋지.”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따가 체크아웃 해야겠네. 중요한 건 너가 혼자 있으면 안될것 같아, 경소경씨랑 바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이곳에 올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예군작은 또 이런 이상한 문자를 보냈으니 내가 너랑 같이 있는 게 좋겠어.” 잠시 후, 예군작의 답장이 왔다. ‘이유 없어요, 그냥 내 말 믿고 내 말 들어요.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의심했다. 예전에 그녀가 연락을 끊고 싶었을 때는 그렇게 해주지 않았는데, 지
진몽요는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다. “그래, 너도 화장실이 급할 때가 있구나. 난 너가 전설 속에 ‘선녀’같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 사람들처럼 그런 생리 현상이 없는…” 온연은 대답하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그녀는 진몽요에게 불을 키지 말라고 한 뒤, 시야가 잘 보이는 창문 쪽에 자리를 잡고 밖을 내다보았다. 단지에는 가로등이 있어 누가 있는지는 보였지만 너무 높아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을 확인했다. 그녀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딱 봐도 단련된 사람들이었고, 걷는 자세마저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딱 봐도 경계해야하는 사람들이었고, 목가네 경호원들도 은퇴한 군인이거나 직업 경호원들이라 이 사람들도 같은 부류처럼 보였다. 진몽요는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다가가서 물었다. “너 뭐해? 불은 왜 안 켜? 화장실 급한 거 아니었어?” 온연은 그녀의 입을 막고 커튼을 쳤다. “우리 지금 미행 당하고 있어. 아까 오는 길에 누가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밑에서 맴돌고 있네. 저 사람들 뒷조사하려고 온 거 같으니까 너 행동 조심해.” 진몽요는 깜짝 놀랐다. “정말이야? 예군작이 말한 게 정말이라고? 누가 날 미행하지? 그렇다고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잖아? 밖에 아예 안 나갈 수도 없고.” 온연도 덩달아 긴장했다. 그녀도 무력한 여자일 뿐이기에 이런 일에 당연히 겁을 먹었다. 딱 봐도 이 사람들은 진몽요를 노리고 있었고 그녀는 절친 일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괜찮아. 일단 에이미님한테 양해 좀 구하고 지금부터 문 잘 잠구고 나가지 말자. 내가 목정침씨한테 연락해서 사람들 불러올 게.” 진몽요는 얼른 문 앞으로 뛰어가 안에서 문을 잠궜다. “그럼 얼른 연락해봐. 맞다, 지금 애 보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불편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경소경씨한테 연락할까? 지금 누구 애인지 의심하고 있어도 내가 무슨 일 생기진 바
진몽요는 온연 때문에 기쁨이 식었다. “그러게, 분명 오면 혼자 올 텐데,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상대가 많으면 힘들지. 이따 상황 봐야겠네. 나 먼저 씻을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내가 씻을 때 너가 입구 쪽 잘 보고 있어. 경소경씨 아니면 아무한테도 문 열어주지 말고, 내가 다 씻으면 망 볼게. 우선은 자지 말자.”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얼른 가. 나 그렇게 바보 아니야.” 진몽요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 알고 경소경은 엑셀을 더 세게 밟았고, 무슨 일이 생길까 봐겁이나 한 시간 거리를 겨우 40분만에 도착했고, 차가 좀 덜 막혔더라면 더 빨리 올 수 있었다. 단지에 들어오자, 그는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봤고,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파트로 올라갔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진몽요와 온연은 놀랐지만 작은 구멍으로 경소경인 걸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진몽요는 가슴을 두들기며 투덜댔다. “1시간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놀랐잖아요.” 경소경은 불쾌한 듯 대답했다. “내가 일찍 온 게 놀랄 일이에요? 칭찬해줘야 되는 게 아니라요? 예군작이 보낸 문자 보여줘 봐요.” 진몽요는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고, 그는 썩은 표정으로 내용을 훑어봤다. 딱 봐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안 풀려 있었다. 그녀가 예군작과 별 다른 문자 내용이 없자 그의 태도는 훨씬 좋아졌다. “문제는 예군작한테 생겼네요. 그 예가네 어르신이 제도에 왔다고 들었어요. 그 사람이 당신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그 어르신이 당신한테 어떻게 할까 봐 그러는 거 일수도 있어요. 예가네는 생각보다 베일에 쌓여 있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상상할 수 없거든요.” 진몽요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어르신이 나를 왜요? 손자가 나한테 관심 갖는 거랑 무슨상관인데요? 그 말은 손자가 무슨 짓을 하든 피해를 보는 건 타인이라는 말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요? 진짜 이상한 집안이네.” 온연이 끼어들었다. “예군작한테 전화해서
진몽요는 그를 노려봤다. “당신이 옆에서 제대로 안 도와줬었잖아요?! 왜 이제 와서 내 탓을 해요? 목소리만 좀 컸어도 내가 박을 일은 없었을 거예요!” 두 사람은 툴툴대며 집을 나섰고, 밖으로 나오자 세 사람은 조용해졌다.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은 아직도 있었고, 차에 탄 뒤에 사라졌다. 진몽요는 임산부이고, 시간도 늦었으니 그녀가 편히 쉴 수 있게 온연은 조수석에 앉았고 경소경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떠나는 걸 보자 우두머리가 전화를 걸었다. “갔습니다, 아마 이쪽을 떠나려는 거 같은데 어떤 남자가 데리러 왔습니다. 옆에 다른 여자도 있었고요. 어떻게 할까요?” 전화 너머 예가네 어르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랑 여자는 누군데?” 우두머리는 대답했다. “남자는 진몽요의 약혼자 경소경이고 여자는… 목가네 사람입니다.” 목가네 사람… 예가네 어르신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선 건들이지 마. 목가네 사람은 건들이면 안되지. 여긴 해성이 아니야. 제도는 예가네 구역이 아니니까 일단 따라가. 내가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수시로 상황 보고해.” 전화를 끊고 어르신은 뒤에 있던 예군작을 보았다. “네가 좋아한다는 여자 만만치 않네, 목가네 사람이랑 인연이 있는 걸 보면. 네가 별 걱정 안하는 걸 보니 내가 목가네 사람은 안 건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예군작은 휠체어에 앉아 담담한 표정이었다. “능력이 되시면 온연까지 같이 죽여보시던가요. 그 여자 목정침의 보배 같은 존재인데, 그렇게 되면 아마 할아버지도 제도에서 같이 죽겠네요. 진몽요씨는 온연의 제일 친한 친구거든요. 이러다 털 끝 하나도 못 건들이겠네요… 목가네 뿐만이 아니라, 경가네도 만만치 않은데, 경가네는 아직까지 깨끗하지만 목가네는 과거엔 예가네 못지 않게 더러웠었죠.” 어르신은 차갑게 웃었다. “넌 내가 널 그냥 내버려 둘 것 같니?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땐 못하는 게 없단다. 군작아, 넌 날 잘 모르는 것 같
어르신은 예군작의 악담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진짜 그럴 수 있으면 어디 한번 덤벼봐. 만약에 네가 결혼하면 내가 다시는 네 일 신경 안쓸게. 그리고 결혼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야. 국가네 집안에서 네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절대 알아선 안돼. 절대적인 자상함으로 그 여자가 너한테 푹 빠지게 만들어. 손주까지 안겨주면 제일 좋고. 알겠어? 충고하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쟁취하려 하지 마. 너처럼 집착이 심하면 그 사람한테만 피해야.” 예군작은 눈을 감았다. “헛소리 그만하세요. 제가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진몽요씨 곁에서 사람들 죄다 치우세요. 만약에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국가네랑 절대 결혼 안 해요!” 어르신은 책상을 탁 쳤다. “좋아, 그렇게 합의하도록 하지. 나도 이제 네 눈 앞에서 안 알짱거리고 저녁에 해성으로 돌아 갈 거야. 네 일거수일투족은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허튼 짓 할 생각은 하지 마. 3일 줄게, 돌아가서 결혼해.” 대화가 끝나고 어르신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예가네 저택을 떠났다. 아택은 예군작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군작은 그를 일으켰다. “나도 알아. 상대가 대놓고 물으면 피해가기 힘들지. 그래도 그냥 날 얌전히 결혼시키려는 게 목적이었어. 진짜 진몽요씨를 해칠 거였다면 말없이 몰래 했겠지. 상관없어, 어차피… 그 사람은 나랑 안 만날 거니까, 이제 이 결혼도 다 아무 의미 없지…” 아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아가씨 보호하던 사람들은 철수할까요?” 예군작은 고개를 저었다. “경소경이 진몽요씨 데려갔다는 얘기 못 들었어? 그 사람은… 나 아니어도 돼. 경소경이 있으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노인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뿐이야. 그래도 너가 제도에 남아서 진몽요씨 주변 잘 지켜봐. 해성에는 나 혼자 가서 결혼만 하고 금방 올거야.” 아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뜨려는 찰나에 예군작이 말했다.
그는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아직도 고집 부리는 거야? 나한테 애 맡겨 놓고 하루 종일 놀다 왔으면 된 거 아니야? 네 소원대로 나 하루 종일 힘들었어. 그러니까 만족해? 만족하면 나랑 가서 같이 자!” 온연은 나지막이 말했다. “만족 못 해요. 어떤 일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어떤 일들은 아니에요. 확실하게 해결하기 전까지는 당신이랑 말도 하기 싫고 꼴도 보기 싫어요. 당신은 내가 어떻든 상관없지만 애는 꼭 안아야겠다면서요? 이제 겨우 하루 밖에 안됐는데 힘든 거예요? 나는 매일 이렇게 살았어요. 임신 기간 제외하고도 몇 달이나 이걸 견뎌왔다고요.” 조금 짜증이 난 목정침은 막말을 했다. “지금 날 원망하는 거야? 아이를 낳겠다고 한 건 너잖아!” 이 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온연은 오히려 화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더 무서웠다. “당신 말은… 내가 원해서 낳은 아이니까 매일 바보처럼 똑같은 날들을 보내고,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낳겠다고 해서, 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예요? 당신한테 털어놓지 말 걸 그랬네요. 이런 식이면, 아이를 낳은 건 내 책임이니 나랑 아이도 당신이랑 상관없잖아요. 그럼 왜 나를 당신 옆에 두는 거예요? 보고 있는 게 재밌어요? 애가 싫으면 안 키워줘도 괜찮아요. 어쨌든 당신은 내가 애 낳는 걸 못 막았을 테니까요.” 목정침의 태도는 누그러졌다. “미안해… 그런 말이 아니었어. 그냥 순간 충동적으로 말한 거였어. 나도 아이 싫어하지 않아. 원래는 너한테 위험할까 봐 막은 거였잖아. 아이는 우리 둘이 만든건데 그렇게 말한 건 내가 잘못했네. 취소할게. 나중에 애 좀만 더 크면, 그때 가서 일해. 그럼 내가 뭐라고 안 할게.” 온연은 편한 자세로 누워서 눈을 감았다. “할 얘기 끝났어요? 그럼 가세요, 얼굴 보기 싫어요. 나갈 때 불 끄는 거 잊지 말고요.” 목정침은 이럴 때 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고 냉전은 해결되지 못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