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에이미는 더 그녀를 지적하지 않았다. “오늘은 적응을 해야 되니까 저랑 같이 일하면 될 것 같네요. 자리는 왼쪽에 준비해 두었어요.” 진몽요는 고개를 돌려 자리를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부장이 따로 사무실이 있나? 게다가 에이미랑 같은 사무실을 쓴다고? 그녀의 자리는 딱 에이미의 맞은 편이었고, 시설도 동일했다. 계열사 부장인데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나?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에이미가 말했다. “여기 부장으로 온 거 아니고 부 이사직으로 온 거예요. 일 경험 별로 없는 거 아니까 내가 잘 가르쳐 줄 게요. 하 대표님이 부탁하고 가셨거든요.” 부이사? 부장 아니었다? 진몽요는당황했다. 만약 경소경이 그녀가 그의 계열사에서 부이사가 된 걸 알면 어이없지 않을까? 그녀도 본인이 그 정도 실력이 없다는 걸 알았고, 이제서야 하람의 계획을 알았다. 그녀가 안 온다고 할까 봐 우선 부장이라고 말한 뒤 부이사직을 주었다. 이왕 왔으니 열심히 해야했다. 에이미가 보기엔 무서워 보여도 에이미가 옆에 있으니 천천히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저… 아까 전 그 비웃음은 위협을 느껴서 한 말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이곳에 와서 부이사직을 맡으니 분명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테다. 물론 낙하산은 창피한 일이지만… 그녀는 감사인사를 한 뒤 자기 자리에 앉았다. “에이미씨… 아니, 이사님, 이 계열사에 경소경씨도 자주 오나요?” 에이미는 그녀를 흘낏 보며 “아니요, 본사가 그렇게 바쁜데 경대표님이 어떻게 자주 오시겠어요? 사소한 일까지 경대표님이 하셔야 된다면 저희 같은 사람들이 월급을 왜 받겠어요?” 진몽요는 안도했다. “다행이네요.” 첫 날이라 그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책상 앞에서 멍만 때렸다. 회사를 한바퀴를 돌아보고 에이미도 굳이 그녀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퇴근 후 호텔에 돌아온 뒤 그녀는 침대에 누워 하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부장이라고 하셨는데 왜 부이사직이나 주셨어요? 제 실력 아시잖아요… 이건
진몽요는 천장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실망시켜 드렸네요. 제가 못 나서 다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소경씨랑은 상관없어요.” 만약 그녀가 경소경을 일찍 찾으러 갔더라면 안야에게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수만 번 욕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람은 늘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이미 진몽요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굳이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 “아니야, 이런 얘기하지 말자. 잘 쉬고, 거기서 일 열심히 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내 마음속에 너는 딸 같은 존재니까. 너랑 소경이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된다면 난 네 편을 들 거야. 얼른 가서 쉬어.” 전화를 끊고 진몽요는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온연에게 남겼다. 아침 일찍 출발을 해서 그런지 무척 피곤해서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목가네. 온연은 문자를 보고 안도했다. 그녀가 알던 멍청한 진몽요는 드디어 날개를 펼치고 높이 날기 시작했고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그 과정은 힘들지라도 꼭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보면서 기운이 빠졌다. 만약 이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크지 않는 다면 그녀는 자유롭게 하고싶은 일도 못하기에 진몽요가 부러웠다. 적어도 진몽요는 자유로우니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안야는 경소경이 보낸 계약서 한 장을 받았다. 그녀는 계약서 위에 적힌 딱딱한 글씨들을 보며 온 몸이 서늘해졌다. 계약서에 적힌 글자들은 의사표현이 분명했고, 하람과 경소경이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아이를 지우면 그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아이를 낳겠다면 말리진 않지만 양육비는 못 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계약서는 실수로 생긴 아이를 굳이 낳겠다면 본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서명을 하면 끝이었다. 그녀는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런 계약서도 효력이 있나요? 아이 아빠가 생물학적으로 경소경씨라면 본인이 꼭 책임을 져야죠. 이런 계약서에 제가 서명한다고 뭐가 달라
변호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협박하는 방식이 특이하시네요, 절박해 보이세요. 그럼 이 계약서에 절대 서명을 안 하실 것 같으니 이후 양육비 청구 절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아이가 경 선생님의 친자가 맞다는 증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양육비 지불에 대한 소송을 거셔야 되고 경 선생님께서 응하지 않으시면 이 과정은 길어질 거예요. 혼자서 수입도 없으신데 비용이 감당 되실 까요? 잘 생각해 보세요. 저는 이만.” 변호사가 나가자 안야는 화가 나서 탁자 위 컵을 바닥에 던졌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꼭 아이를 낳고 싶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지만 이 아이만 있다면… 이 아이가 경소경의 아이가 확실하다면 진몽요의 마음은 더 멀어질 것이다. 그녀가 못 갖는 건 진몽요도 가져선 안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남들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아이만 있으면 나중에 경소경이 생각을 바꿔서 그녀와 아이를 받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변호사로부터 안야가 서명을 안 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소경은 짜증난 채 하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안야씨가 서명 안 했어요. 그 아이 절대 낳으면 안돼요. 모두가 다 불행해질 거예요! 그 날 일이 아예 기억이 안나요, 생각지도 못 했다고요…” 하람은 콧방귀를 뀌었다. “생각지도 못 했다고? 너 왜 그렇게 순진하니? 안야가 같은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기 마음대로 임신하면 안 사람이 될 줄 알지, 너 완전 속은 거야. 여자가 여자를 제일 잘 알지. 넌 우선 이 일에 신경 끄고 회사에 집중해. 내가 안야 만나볼게.” 하람은 전화를 끊고 안야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경성욱은 그녀가 사고 칠까 봐 당부했다. “성질 좀 죽여, 평화롭게 해결할수록 좋잖아.”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평화? 나도 당연히 알지, 설마 내가 손찌검이라도 하겠어? 그 애는 자기 마음대로 하면 우리가 순순히 알겠다고 할 줄 알았나?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설령 내가 타협을 하고 소경이랑
아파트에 도착한 후 하람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태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자 마자 그녀는 바로 4천만원어치의 현금을 꺼냈다. “4천만원이야, 세어 봐. 이정도면 수술비로 충분 할 거야.” 안야는 탁자 위에 빨간 현금 뭉치를 보며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돈 많으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욕하시나요? 저는 가난해도 자존심은 있어요.” 하람은 비웃었다. “그래? 자존심이 있어? 안 그래 보여서 몰랐네. 자존심 있다는 여자 애가 새벽에 혼자 남자 집에 찾아가고, 남의 애인을 뺏고 아이까지 임신해서 양육비를 요구하는 구나. 내가 너였으면 실수로 생긴 아이니까 고민도 하지 않고 지웠을 거야. 그래야 양심이 있지. 너 조차도 우리에게 이런 행동을 하면서 왜 존중을 바라는 거니?” 안야는 반박했다. “왜 실수라고 생각하세요? 왜 제가 남의 애인을 뺏은 거죠? 그 날 저녁 일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어요!” 하람은 그녀를 경멸했다. “그럼 단언할 수 없으니까 말 안 할게. 우리 소경이 잘못이라고 치고 법대로 하고싶으면 그렇게 해. 우리는 이 아이 인정 못하고, 돈이 부족한 거라면 더 줄 수 있어.” 안야의 얼굴을 창백해졌고 몸은 살짝 떨고 있었다. “이거 지금 저 괴롭히시는 거예요!” 하람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언제 널 괴롭혔어? 실수로 생긴 일이지만 우리 소경이는 널 좋아하지 않아. 우리 집안도 널 받아줄 수 없어. 이 아이를 낳는 건 네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안이랑도 관련되어 있으니 당연히 제일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지, 이게 왜 널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해? 돈 때문이라면 그냥 말해. 돈 때문이 아니고 소경이를 좋아해서라면 왜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거야? 서명을 하면 정말 네가 감정이 있어서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잖아. 서명을 안 하면 누가 봐도 돈 때문 아니겠니? 그러니까 돈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해줄 수 있어.” 안야는 눈시울을 붉히며 아무 말이 없었고 그녀도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몰랐다. 돈이라고 하기엔 4
안야의 태도는 견고했다. “안돼요! 어디 한번 강제로 지우게 해보시든가요!” 하람은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몽요랑 소경이가 너가 가족도 없으니까 예전에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어? 너 같은 사람은 이런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갈 거야! 자신을 계속 갉아먹게 될 거라고! 몽요네 집이랑 경가네는 비슷한 집안이고, 내가 몽요를 좋아하는 것도 너랑 달라서야. 빈곤한거랑 마음이 가난한 거랑은 완전 다른 문제야. 알겠니?” 평생 이렇게 밖에 못 사는 걸까? 안야는 하람의 말에 충격을 받고 흥분한 채 일어나 하람이 삿대질하던 손을 쳐냈다. “제가 어떻게 살든 신경 끄세요!” 안야가 그녀에게 손을 대자 하람은 경악했다. “지금 나한테 손 댄 거니?” 안야는 낮게 소리쳤다. “가세요! 당장 나가세요! 저희 집에서 나가시라고요! 저는 죽어도 그 계약서에 서명 안 해요! 꼭 이 아이 낳아서 당신들이 이 아이의 존재를 늘 기억할 수 있게 만들 거예요. 맞아요, 제가 못 지낼 바엔 다들 불행해지는 게 나아요! 진몽요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경소경씨랑 잘 될 일 없어요! 진몽요 좋아하시잖아요. 며느리로 바라셨잖아요. 안타깝네요, 그럴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테니. 저를 이런 식으로 대하시니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하람은 참지 못 하고 안야의 뺨을 때렸다. 이런 교양 없는 걸 봤나! 내가 네 부모 대신 혼 좀 내줘야겠어!” 안야는 빨개진 눈으로 따가운 볼을 부여잡았고, 분노와 증오가 끝없이 마음에서 끌어올라 무섭게 하람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바닥으로 밀쳤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었던 놀림들이 다시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네 아빠는 살인자고 네 엄마는 도망갔잖아. 다 널 버렸어.” “넌 잡종이야, 살인범의 딸도 똑같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살인범에 딸도 나중에 살인범이 될 거야. 멀리하자…” 그랬다. 그녀의 부모가 살아있다는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할아버지는 유일한 가족이 아니
이 모든 건 그녀가 자초한 일이 아니었어도 그녀는 다 견뎌왔다. 그녀는 단지 모든 게 불공평하다고 느낄 뿐인데 왜 하람은 그녀에게 불쾌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걸까? 이성을 되찾은 뒤 그녀는 하람의 목을 조르던 손을 풀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한테 욕하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하람은 목을 잡으며 안야를 밀쳤고 바닥에서 일어나 계속 기침을 했다. “켁켁… 너… 미쳤어…켁켁켁… 너 나 죽일 생각이었니?” 안야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죽일 생각 없었어요, 죄송해요…” 안야의 태도에 하람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게 정신분열 증세와 뭐가 다를까? 그녀는 더 이곳에 있다가는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봐 얼른 아파트에서 빠져나왔다. 안야는 하람이 그 4천만원을 두고 간 걸 보고 황급이 봉지에 담아 따라나갔다. “아주머니, 여기 돈이요! 저 이 돈 필요 없어요! 얼른 가져가세요!” 하람은 감히 뒤돌아보지 못하고 기사를 재촉했다. “얼른 출발하세요! 공관으로 얼른요!” 이때, 안야가 따라와서 강제로 차 문을 열고 봉지 안에 돈을 차 안으로 던졌다. “저 이 돈 필요 없어요! 방금 일은 제 잘못이에요, 죄송해요.”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고 차가 출발하자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아파트에서 정말 안야가 목을 졸라 살해하려는 줄 알고… 너무 끔찍했다! 경가네 공관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따듯한 샤워를 마치고 누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누워서 끙끙 앓았다. 나이 든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으니 정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했다. 경성욱은 걱정했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병원 가봐야 해?” 하람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냥 좀 놀랐어… 안야가 갑자기 미쳐서 날 죽일 뻔했어. 다시는 무서워서 거기 못 찾아가. 소경이도 걔랑 만나지 말라고 해야해. 나중에 걔가 소경이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무서워. 난 겨우 아들 하나잖아. 그 여자애 정말 끔찍해! 얼른 당신이 소경이한테 전화해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안야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고 누가 찾아왔는지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분노에 가득 찬 모습의 경소경을 보자 그녀는 얼었다. 그렇게 그녀를 보기 싫어하던 남자가 직접 찾아왔기에 그 순간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하든지 우리 엄마는 건들이지 마요!” 경소경은 여자를 때리진 않지만 이미 두 주먹을 꽉 쥐며 화를 참고 있었다. 안야는 그제서야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았고,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껴 고개를 숙였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물론 아주머니가 어떤 말을 하셨어도 참아야 됐던 거 저도 알아요…죄송해요. 병원비 필요하시면 드릴게요. 하지만, 저를 더 이상 협박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경소경은 그녀를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해놓고 죄책감 느끼는 척은 왜 하는 거예요? 임신만 안 했어도 가만 안 뒀어요.” 안야는 고개 들어 그를 보며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요! 저는 더 이상 살인범의 딸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저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왜 아무도 감싸주지 않는 거예요? 지금 보다 더 빛나게 살고 싶을 뿐인데… 그저 과거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을 뿐인데,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저… 저 정말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이성을 잃었을 뿐이라고요…” 경소경은 급 당황했다. 살인범의 딸? 안야의 말이 눈물보다 더 자극적이었고 그는 그녀의 과거에 흥미가 없었지만 조금 놀랐다. 그리고 하람이 무슨 말을 했길래 그녀를 자극했는지 궁금했다. “우리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그는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 과거는 모르세요… 말다툼을 하다가 제가 교양이 없다고 하신 말에 순간 어렸을 적이 생각나서 화를 참지 못 했어요. 일이 어찌 됐든 이 일은 제가 흥분했어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복수하러 오신거면 그렇게 하세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저를 때리셔도 좋고요.” 안야는 머리를 넘기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경소경은 당연히 때리지
안야는 문을 닫고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어렸을 때, 아마 제가 4살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저희 아빠가 사람을 죽였다고 했어요. 그 이후로 아빠를 만난적이 없었어요. 엄마도 집을 나갔고요. 저랑 할아버지만 서로를 의지했죠.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면 살인범의 딸이라고 말했고, 자기네 자식들한테 저랑 놀지 말라면서 그때 많은 구박을 받았었죠. 할아버지는 제가 그런 환경에서 잘 못 바랄까 봐 갖고 있던 돈을 다 털어서 그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로 나왔어요. 그때 저는 8살이었어요. 하지만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죠. 저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할아버지 말처럼 다른 사람을 보면 늘 잘 웃고 잘 해줬어요. 할아버지께서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잘 웃는 사람은 절대 불행해질 수 없다고 신이 저를 보호해주실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힘들고 아픈 게 두렵지 않았고, 할아버지랑 길에서 청소도 하고 막 노동도 많이 했었어요. 예전에 그 흙탕물 같은 삶에서 벗어나려고…” 여기까지 듣고 경소경은 말을 끊었다. “여기 앉았다 가라는 이유가 겨우 하소연하려고 그런 거였어요? 난 흥미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 동정할 가치도 없고, 당신 과거랑 우리는 상관없어요.” 안야는 숨을 들이 마시고 씁쓸하게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저도 아 아이도 받아주지 않으실 거라는 거. 제가 졌네요. 만약 제가 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면 예전처럼 저를 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한번 실수했다 치고요… 저는 제가 돈 때문에, 지위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소경씨랑 몽요씨가 제 인생에 나타났을 때가 제일 빛났어요. 죄송해요, 제가 애초에 좋아하면 안됐었는데.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으면 안됐었는데, 혼자 남기 싫었어요. 안 그래도 후회중이에요…” 경소경은 의심했다. 이 모든 걸 바꾼다? 어떻게 바꿀 수 있지? 아이가 그의 것이 아니거나 그 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지 않은 이상 바꿀 수 없었다. 그 날 저녁 그도 취해서 전혀 기억이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