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야는 문을 닫고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어렸을 때, 아마 제가 4살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저희 아빠가 사람을 죽였다고 했어요. 그 이후로 아빠를 만난적이 없었어요. 엄마도 집을 나갔고요. 저랑 할아버지만 서로를 의지했죠.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면 살인범의 딸이라고 말했고, 자기네 자식들한테 저랑 놀지 말라면서 그때 많은 구박을 받았었죠. 할아버지는 제가 그런 환경에서 잘 못 바랄까 봐 갖고 있던 돈을 다 털어서 그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로 나왔어요. 그때 저는 8살이었어요. 하지만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죠. 저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할아버지 말처럼 다른 사람을 보면 늘 잘 웃고 잘 해줬어요. 할아버지께서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잘 웃는 사람은 절대 불행해질 수 없다고 신이 저를 보호해주실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힘들고 아픈 게 두렵지 않았고, 할아버지랑 길에서 청소도 하고 막 노동도 많이 했었어요. 예전에 그 흙탕물 같은 삶에서 벗어나려고…” 여기까지 듣고 경소경은 말을 끊었다. “여기 앉았다 가라는 이유가 겨우 하소연하려고 그런 거였어요? 난 흥미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 동정할 가치도 없고, 당신 과거랑 우리는 상관없어요.” 안야는 숨을 들이 마시고 씁쓸하게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저도 아 아이도 받아주지 않으실 거라는 거. 제가 졌네요. 만약 제가 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면 예전처럼 저를 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한번 실수했다 치고요… 저는 제가 돈 때문에, 지위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소경씨랑 몽요씨가 제 인생에 나타났을 때가 제일 빛났어요. 죄송해요, 제가 애초에 좋아하면 안됐었는데.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으면 안됐었는데, 혼자 남기 싫었어요. 안 그래도 후회중이에요…” 경소경은 의심했다. 이 모든 걸 바꾼다? 어떻게 바꿀 수 있지? 아이가 그의 것이 아니거나 그 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지 않은 이상 바꿀 수 없었다. 그 날 저녁 그도 취해서 전혀 기억이 없었
그녀가 안방에서 나왔을 때 경소경은 이미 떠났다. 그녀는 영혼이 나간 나무인형처럼 소파에 앉아 방금 전화한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만나고 싶어요.’ 오후 3시, 남자는 시간 맞춰 그녀의 집에 나타났고, 경소경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훤칠하고 잘생겨서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만한 외모였다. 안야는 이 남자와 몇 번 밖에 안 만나봤고, 그 중 3번은 임신 때문에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는 진몽요와 예군작과 식사를 할 때였고, 이 남자는 아택이었다. 그는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였지만 아직 낯선 사람이라 어색했다. “그… 제가 이 아이를 지우고 경소경씨에게 자백해도 될까요? 더 못 하겠어요, 분명 절 받아주지 않을 거고 저도 이미 지쳤어요.” 아택은 무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진짜 못 하겠으면 나도 강요는 안 해요. 근데 잘 생각해요,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 처음에 이미 얘기가 다 끝났는데 말을 바꾸면 나도 곤란하죠. 그쪽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고요.” 안야는 확실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무런 보상도 필요없어요. 후폭풍은 제가 감당할게요. 예군작씨가 진몽요씨의 마음을 얻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제가 경소경씨의 마음을 얻는 건 불가능해요. 평생 불가능해요. 저는 저조차도 싫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택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미 결정한 거 같으니 그렇게 하시죠.” 그는 이때 핸드폰을 꺼내 예군작과의 전화를 끊고 말했다. “미쳤어요? 당신 이런 식으면 죽을 거 몰라서 이래요? 이렇게 바보 같은 여자는 처음 보네요. 처음부터 시작을 말든가 끝까지 가든가 했어야죠!” 안야는 이해하지 못 했다. “왜… 왜요? 제가 왜 죽어요? 저는 그냥 그만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쪽 얘기도 절대 안 할 거예요.” 아택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당신이 비밀을 지켜준다는 걸 예군작이 믿을 것 같아요? 당신은 그 사람을 몰라요. 영원히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그 분은 당신이 입을 평생 다 물게 만들 거예요. 내가 아이 아빠니까
그 날 저녁 그녀는 경소경의 술에 약을 탔고, 경소경은 깊은 잠에 빠져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침대 위 핏자국은 그녀가 만들어낸 자국이었다. 예군작의 지시하에 그녀는 임신을 하기 위해서 아택과 3번정도 했다. 계획대로 그녀는 순조롭게 임신을 했고 시간도 그 날 저녁과 얼추 비슷하게 맞췄다. 만약 임신이 안됐더라도 임신한 척을 하며 임신이 될 때까지 시도할 생각이었고, 끝까지 안되면 이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임신이 됐을 때는 기뻤지만 지금은 큰 부담이었다. 순조로운 임신을 위해, 그녀도 임립네 회사를 어차피 그만두었으니 예군작은 그녀에게 잘 준비하라며 돈을 주었다. 그동안 예군작이 그녀를 후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군작이 이렇게 독한 줄 몰랐고 말을 번복하면 목숨까지 앗아갈 줄은 몰랐다. 진몽요가 알게 될까 봐 그런 거겠지? 비록 아택이 그녀에게 경고했지만 두려움에 떠는 것 외에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공포를 느끼며 그녀가 유일하게 생각한 방법은 경소경에게 모든 걸 자백하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틈새로 살짝 보니 아택이었다. 그녀는 경계하지 않고 문을 열었지만 아택도 예군작의 사람이라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문을 연 순간, 아택처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잡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은 막혀있었다. 아택은 내키지 않는 눈빛이었지만 핸드폰을 쥐고 있는 걸 보니 예군작과 전화 연결이 되어있는 듯했다… 예군작은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예군작은 지금까지 그를 믿지 못 했고, 그가 아까 집에서 나왔을 때 예군작이 파견한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안야를 희생해야 했다. 안야는 눈물을 머금고 아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택 밖에 없었고 그가 아이의 아빠였다. 나오면서 그녀에게 조심하라고 말했으니 그가 유일하게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안야를 이를 꽉 물고 막대기로 아택의 어깨를 내려쳤고, 아택은 낮게 소리쳤다. “지금 나 간지럽혀요? 경소경씨가 싸울 때 이렇게 살살 때릴 거 같아요? 골절 시킨다는 생각으로 해요,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 때려요!” 안야는 만약 예군작을 속이지 못 하면 죽게 될 건 아택이라는 걸 알았기에 죽는 것보다는 골절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온 힘을 다해 아택을 때렸고 머리 쪽은 피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고 살짝 아픈 배를 잡으며 물었다. “됐나요? 안 아프세요?” 아택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침대 맡 서랍에 있던 저금통을 자신의 머리 위에 깨트렸다. 도자기 재질의 저금통은 박살 났고 아택의 이마에 흐르는 빨간 피를 보고 안야는 깜짝 놀라서 입을 막았다. “가요!” 안야는 아택에 말에 휘청거리며 문 앞으로 뛰어 갔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으세요? 저 그럼 갈게요…” 아택은 손을 흔들며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다. 안야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도망가듯이 아파트에서 빠져나왔다. 옆에 기절한 두 사람을 보며 아택은 담배를 피웠다. 그는 안야를 속였다. 이 두 사람은 그가 때린 걸 봤기에 예군작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살인을 묵인할 자신도 없었다. 왜냐면 경소경이 안야를 죽일 수는 없으니 그가 입을 다 물어도 어쨌든 들통날 일이었다. 어찌 됐든 그는 피해갈 수 없었다. 택시를 잡고 경소경의 회사 주소를 부른 뒤 안야의 두려움을 가라 앉았다. 사람이 죽음을 향한공포는 본능이었다. 그녀는 방금 죽을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회사에 도착하기전 미리 경소경에게 꼭 만나야 된다고 연락을 해놨다. 그 날 저녁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얘기를 흘렸으니 당연히 경소경이 만나줄 줄 알았다. 회사 문 앞, 그녀가 택시에서 내리자 경소경은 그녀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요!” 그녀는 방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으니 옷이 너저분하고 얼굴이 초췌했다. “그 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
경소경은 붙잡지 않았고 먹구름 뒤에 무지개를 보자 안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가 안야에게 누가 시켰냐고 물어본 이유는 여자 혼자서 이 모든 걸 실천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안야가 아이아빠가 누군지 말하지 않으니 더 묻진 않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안야는 집에 못 들어가고 한참을 밖에서 방황하다가 예군작을 찾으러 가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본인이 굳이 찾으러 가지 않아도 자신과 아택이 살아남지 못할 걸 알았기에 우선 경소경에게 예군작이 있다고 털어놓지 않았다. 예군작에게 전화를 거는 손을 떨리고 있었고 전화 너머 예군작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의외네요, 저한테 먼저 전화를 다 하시고.” 그녀는 용기 내어 말했다. “어디세요? 만나고 싶어요.” 예군작은 여유로웠다. “거기 가만히 있어요, 사람 보낼게요.” 전화를 끊고 안야는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주저 앉았다.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들이 많았으니 이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기껏해야 죽음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물러서지 않았다. 이때, 검은 색 벤틀리가 그녀의 앞에 섰고 그녀는 망설이다가 차에 탔다. 기사는 아무 말없이 예가네 저택으로 향했다. 창 밖, 반짝거리는 도시 저녁의 네온사인들을 보며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감상할 수 없었고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애초에 그녀와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흙탕물 속에서 살던 자신이 더럽고 싫었다. 저택에 도착한 후, 덩치가 큰 기사는 그녀가 도망갈까 봐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있었다. 분명 더운 여름 날이었는데 온 몸이 서늘했다. 그녀는 두 팔로 몸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넓은 현관을 지나 기사는 그녀를 어두운 문 앞에 데려다 주었고, 세 번 두들겼다. 문이 열리자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안야는 벽을 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는 문 안에 상황을 살짝 보고 두 다리를 떨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기사는 그녀를 들어 안으로 던졌고, 그제서야
안야는 너무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사람 하반신 마비 아니었나? 이 모든 게 다 거짓이었다니! 예군작의 큰 덩치에 조명이 가려져 더 어두워졌고 그는 아택 앞에 쭈그려 앉았다. “봤어? 연약한 여자 애가 널 구하러 날 찾아왔는데, 지금 기분이 어때? 설마 3번 했는데 벌써 서로 감정이 생긴 건 아니지? 난 진몽요를 사랑하는데… 3년이나 걸렸는데.” 아택은 피 비린내가 가득한 숨을 뱉었다. “잘못했습니다… 도련님…” 예군작은 아택의 피 범벅 된 얼굴을 톡톡 쳤다. “잘못했으면 고치면 돼. 걱정 마, 넌 노인네가 나한테 보낸 감시 카메라니까 내가 널 죽이면 골치 아프니까. 카메라가 고장 나면 얼마나 싫어하시겠어. 이정도 했으면 너도 알아들었을 테니 말해봐. 내가 이제 어떻게 해줄까? 너희가 말 안 할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지? 나중에 진몽요가 모든 걸 알아버리면 큰 일이잖아…” 안야는 자기의 배를 만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맹세할게요, 절대 말 안 할 거예요. 죽어도 말 안 해요! 그렇게 불안하시면 제가 이 아이를 낳을게요, 네? 제발요… 꼭 비밀 지킬게요.” 예군작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 아이는 아택거잖아요. 아택, 넌 저 여자가 아이 낳아도 돼? 두 사람 감정이 그렇게 깊었다니. 넌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딱이네. 둘이 만나면 서로 아깝지 않잖아.” 아택은 안야를 보고 몇 초간 침묵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예군작이 일어나자 옆에 있던 하인이 와인 한 잔을 건넸다. “하하, 그래 이거지. 이래야 네가 내 사람이지. 안야도 내 사람이고.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야 내 마음이 편해. 그럼 모두가 다 행복해질 수 있어.” 그가 손짓을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아택의 밧줄을 풀었다. 안야는 아택을 부축했고 아택은 이미 일어날 힘이 없어 예군작 발 밑에서 정직하게 말했다. ”도련님, 앞으로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예군작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인자함
온연은 진몽요가 안 기쁘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경소경씨랑 화해하겠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안야 때문에 이렇게 돼서 그렇지 지금 아무 일도 없었던 걸 알았으니 이제 서둘러야지! 다른 여자가 채 가길 기다릴 거야? 난 벌써 아이도 낳았는데 너도 가만히만 있으면 안되지. 난 너가 빨리 경소경이랑 딸 낳아서 우리가 사돈 맺으면 좋겠어.” 진몽요는 웃었다. “됐어, 목가네가 얼마나 대단한 집안인데 감히 어떻게 그래? 그리고 내가 그때는 잠깐 흥분했었지만 지금은 진정됐어. 내가 경소경씨랑 화해할 거라고 누가 그래? 난 지조를 지킬 거야, 여자잖아. 이제 끊어야겠다, 오늘 드디어 이사님이 나한테 일거리를 주셨어. 야근중이라 수다 못 떨어. 나중에 얘기하자.” 전화를 끊고 온연은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남자니까 예쁜 누나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자. 어차피 연상 만나도 상관없잖아? 몽요 이모랑 소경이 삼촌 다 외모가 되니까 딸도 예쁠 거야, 우린 그저 기다리면 돼.” 아이는 아무것도 못 알아듣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구나. 아직 어려서 아무 고민도 없고. 아빠는 나한테 너 맡기고 혼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갔어. 이따가 오면 나 말고 아빠 괴롭혀야 돼.” 갑자기 임집사가 집으로 뛰어 들어왔고 거실의 온연을 보고 물었다. “도련님 안 계신가요?”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을 나갔어요. 일 있으면 전화해 보세요.” 임집사는 대답을 하고 다시 바람처럼 나갔다. 임집사가 나이가 꽤 많은데도 동작이 민첩하자 온연은 적잖이 놀랐다. 저렇게 움직이면 다리 안 아픈가? 유씨 아주머니는 임집사가 나간 쪽을 보며 웃었다. “저 나이에도 저렇게 튼튼하네…” 온연도 웃었다. “아주머니도 생각을 특이하게 하시네요.” 유씨 아주머니는 수줍게 웃었다. “무슨 소리야? 그냥 농담한 거지. 나도 나이가 있는데 밝혀서 뭐하겠어.” 온연은 유씨 아주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익숙해졌다. “아이고, 부끄러워하실 거 없어요. 저도
저녁 11시가 넘어서야 목정침은 술 냄새를 풍기며 귀가했다. 온연은 잠에 들어 있었고 누군가 얼굴에 뽀뽀하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고 목정침인 걸 확인하고 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어둠 속, 목정침이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끔이잖아.” 욕실 물소리에 온연은 잠에 들지 못 하고 다시 일어나 핸드폰을 했다. 아이는 옆에서 잘 자고 있었고 다양한 자세를 취해서 그런지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목정침이 샤워를 하고 나온 뒤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 “뭐야? 왜 안 자?” 그녀는 핸드폰을 하며 말했다. “조금 있다가 자려고요. 우리는 일찍 잠 들었어서 다시 깨니까 잠이 안 와요. 시간 보니까 아이 밥 줄 때도 된 거 같아요. 일찍 재웠으니 아침까지 절대 얌전히 안 잘 거예요. 맞다, 안야랑 경소경씨는 어떻게 된 거예요? 안야는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데요? 진짜 임신했으면 아이 아빠는 누구래요?” 목정침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소경이가 물어봤다는데 안야가 말을 안 하더래. 아이 아빠가 누가 됐든 소경이만 아니면 됐지. 그 날 저녁에 안야가 소경이한테 약을 먹인거라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데. 그러니까 너도 이제 안심해.” 갑자기 아까 임집사가 목정침을 급히 찾던 게 생각나 말했다. “임집사님이 저녁에 당신 집에 있냐고 물었었는데 없다고 하니까 급하게 나갔어요. 무슨 일이였어요? 되게 급해 보이던데.” 목정침은 살짝 굳었다. “아… 그 네 고모랑 고모부 찾았어. 해외로 여행 갔다 온 모양이야. 돈을 다 썼는지 다시 돌아오자마자 우리쪽 사람들한테 잡혔어. 난 거기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우선은 임집사님이 호텔에 묶어두었어. 내일 내가 가볼 거야.” 온연은 고개들어 그를 보았다. “찾았어요? 안되겠어요, 나도 만나고 싶어요! 왜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나와 아이를 해칠 뻔하고 할머니한테까지 그랬는지 물어봐야겠어요! 아무리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온지령은 할머니 손에서 컸잖아요. 두 사람은 할머니 재산까지 다 가져갔는데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