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경은 무표정으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주스 가져올 게요.” 진몽요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앉았다. “네… 그럼 밥만 먹고 갈게요…” 하람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밥 먹고 소경이도 갈 거니까 같이 가면 되겠다. 소경이는 네가 주스 좋아하는 거 아직 기억하고 있나 보네…” 진몽요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을 잇지 않았고, 사실 하람은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알았지만 일부러 물었다. 커피는 너무 써서 그녀는 한 입만 마셔도 하루 종일 괴로워했고, 그녀가 주스를 좋아하는 건 경소경도 기억할 정도로 비밀은 아니었다… 아무 말없는 그녀를 보자 하람은 주제를 돌렸다. “듣기로는 너 회사랑 집이 가까워서 운전 안 한다고 어머님께 차 드렸다며? 여기에 안 쓰는 차 많은데 한 대 가져갈래? 나중에 휴가라도 가야 될 때 차 없으면 불편하잖아.” 진몽요는 완곡히 거절했다. “괜찮아요, 저 평소에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 안 나가고, 회사도 가까워서 차 쓸 일이 정말 없어요. 정 필요하면 엄마한테 빌려오면 돼요…” 그녀는 진땀을 흘렸다. 강령한테 차를 넘겨 준지 얼마 안됐는데 하람이 이렇게 빨리 알고 있는 걸 보면, 경소경과 자신이 재결합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두 엄마는 잘 지낼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경소경과 사이가 안 좋을 수 없었고 적어도 어른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해야했다. 잠시 후, 경소경은 주방에서 주스를 가져왔고, 그녀를 보지도 않고 식탁에 올려뒀다. “저는 일이 있어서 가 볼 게요.” 하람은 그를 노려보며 “몽요도 먹고 간다는데 넌 어딜 가? 애 차 안 끌고 왔으니까 밥 먹고 가는 길에 데려다 줘.” 경소경이 대답하기 전에 진몽요가 황급히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알아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 경소경이 말하려 하자 하람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아프다… 또 아파… 화가 나니까 허리부터 아프네…” 경소경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 “됐어요, 연기 그만하세요. 안 가면 되잖아요.” 하람은 다시 아무
진몽요는 바로 대답했다. “네, 왜요? 이건 내 일이라 그쪽이랑 상관없을 텐데요.” 경소경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고, 참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헤어지자고 한 거 설마 그 사람 때문은 아니겠죠?” 진몽요는 벙 쪘지만 화도 났다. “무슨 뜻이에요? 내가 바람나서 당신을 찼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이순이랑 차에서 한 건 뭔데요? 경소경씨! 제발 말 같은 소리를 해요. 그런 말 할 거면 닥쳐요!” 경소경은 웃었다. “난 내가 그 장애인한테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아님 말고요, 내 문제였던 거 인정할 게요.” 그녀는 이를 꽉 깨물며 “이순이랑 그런 사이였던 거 인정할 거예요?” 그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제 내 설명 듣고 싶은 가봐요?”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허허,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갑자기 두 사람의 전화가 동시에 울리며 서로 눈치를 보더니 각자의전화를 받았다. 진몽요는 예군작의 만나자는 전화였고, 경소경은 샤샤의 전화를 이어폰을 끼고 받았다. 그의 관심은 이쪽이 아닌 진몽요한테 가 있었고, 작게 예군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샤샤가 저녁에 시간 되냐는 질문에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진몽요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진몽요는 시계를 보더니 예군작에게 말했다. “오늘은 좀 그렇고, 주말에 다시 얘기해요.” 동시에, 경소경도 샤샤를 거절했다. “오늘은 됐어요, 나중에요.” 두 사람은 동시에 전화를 끊었고, 진몽요는 왠지 모르게 찔렸다. “나… 그 예군작이랑 진짜 아무 사이 아니에요. 비록 지금 당신이랑은 상관없지만… 헤어지기 전에는 정말 아무 사이 아니였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난 그런 사람 아니니까.” 경소경은 짜증이 났다. “그럼 지금은 아무 사이가 맞다는 거네요? 하긴, 그 사람이 몸은 고장 났어도 마음이 고장 난 건 아니니 여자를 꽤나 잘 꼬시나 보네요. 당신한테 애초부터 꿍꿍이가 있었잖아요. 술도 주고 나 대신 귀찮은 일도 해
...... 목정침이 예상했던 것처럼 온지령의 무능한 남편은 그가 흔쾌히 돈을 주는 걸 보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10억으로 온연이 아이를 낳을 때까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기분은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고, 돈에 목 말랐던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10억을 도박에 탕진한 뒤 밤새 도박을 해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찾아왔다. 목정침은 안 그래도 인내심이 별로 없는데 온연을 생각해서 잠시 참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를 건들이니 이미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10억으로 고작 며칠만 잠재운 건 너무 큰 돈이었다. 사무실 안, 그는 쉰내 나는 이 남자를 보며 살짝 코를 막았다. “10억 드렸잖아요, 고작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저를 뭘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온지령의 남편은 도박 빚을 지고 있어서 간절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줘, 정말 마지막이야!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게!” 목정침은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 “도박꾼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요? 사업은 안 하고 그런 나쁜 것에 빠지기나 하시고. 제가 돈을 준 건 그저 눈 감아 주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연이의 고모부인 걸 생각해서 드린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계속 귀찮게 하실 줄 몰랐네요.” 온지령의 남편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맹세할 게, 다시는 도박 안 하고, 이 빚만 갚으면 네 고모랑 잘 살고 반성하면서 살게. 노부인이 돌아가신 건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어. 그냥 병들게만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되실 줄은 몰랐어. 나도 후회해… 내가 온연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줘… 너도 온연이 자기 고모부가 도박 빚 때문에 길바닥에 있는 모습을 보는 걸 원치 않잖아?” 목정침은 데이비드를 불렀다. “수표 드려.” 데이비드는 적잖이 놀랐다. 처음 돈을 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건 목정침 답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대표님은 이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데이비드는 재빨리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목가네에 돌아온 후 온연을 본 그 순간 그는 마음이 편안 해졌다. 그녀의 옆에 있으면 그는 모든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오늘은 어땠어? 애기가 말 잘 들었어?” 온연은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배를 만졌다. “괜찮았어요… 겨우 이만한 아이인데요 뭘. 오늘 안 바빴어요? 어떻게 일찍 왔어요? 곧 점심시간인데. 오후에 또 나가요?” 그는 쭈그려 앉아 그녀의 배에 귀를 대고 아이의 소리를 들었다. ‘꼬륵’ 거리는 액체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기분은 묘했다. 혹시 아이가 잠에서 깰까 봐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따가 밥만 먹고 갈 거야. 아직 일이 남아서 다 하고 올 게. 그냥 갑자기… 불안해서 네 얼굴이 보고싶길래 왔어.” 온연은 임신중이라 후각에 예민했고, 그의 담배냄새를 맡았다. “담배 폈어요?” 그의 몸은 약간 굳었고 일어나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미안해, 아까 회사에서 일이 좀 있어서 하나 폈어. 냄새 심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데 좀 불편하긴 해요, 살짝 입맛도 떨어지고. 웬만하면 끊는 게 좋겠어요, 간접흡연은 아이한테도 안 좋으니까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사실 나 이제 잘 안 펴…” 그저 온지령의 남편이 돈을 달라고 할 때만 그는 마음속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폈을 뿐이다. 온연만 아니었다면 온지령의 남편은 오늘 멀쩡히 집에 가지 못 했을 것이다. 점심식사 중, 온연이 물었다. “고모부가 당신 찾아왔었죠?” 목정침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알려줬어?” 그녀는 그의 반응에 의아했다. “왜요? 그냥 어쩌다가 임집사님이랑 기사님이 하는 얘기 들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찾아오셨데요? 돈 때문이면 주지마요, 당신이 돈 쉽게 버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아이 낳으면 할머니 다시 데려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맞다… 내가 요즘 출산관련해서 알아봤는데 아이 낳는 게 그렇게 위험하데요. 정상적인 사람들도 출
목정침은 좌석에 기대어 미간을 문질렀다. “감정조절이 잘 안됐어요, 너무 짜증이 나서… 매번 할머니 얘기를 꺼낼 때마다 무서워요. 그 미친놈이 계속해서 날 찾아와서 협박하다간 정말 나중에 못 숨기는 날이 올 것 같아요. 이렇게 흘러가는 건 좋지 않아요. 다음이 또 있다면… 그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맞다, 병원 쪽에 검사 예약해 두세요. 연이 몸 상태를 봐서는 조산을 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출산할 때 문제 생기게 하고싶지 않아요.” 진락은 한숨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저녁, 온연은 저녁밥을 먹지 않고 점심 때 목정침이 화내던 모습만 생각하면 입맛이 떨어졌다. 유씨 아주머니는 걱정하며 “연아, 그냥 도련님 머리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마. 남자들도 실수할 때가 있는건데, 그렇다고 너랑 아이는 잘못이 없잖아. 뭐라도 좀 먹어야지?” 그녀는 침대에서 움직이기 싫었다. “안 먹을래요, 입맛 없어요. 그 사람 아직 안 왔어요?” 유씨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일이 안 끝나셨나 봐. 어차피 일찍 오셔도 얼굴 보기 싫은 거 아니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 게. 안 먹으면 안돼. 너 봐봐,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도 이렇게 말랐잖아. 임신전보다도 얼굴 살이 더 빠졌어.” 온연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긴 그래요. 아이가 너무 커지면 위험할까 봐요. 제 몸상태는 제가 알아요. 아이가 너무 빨리 자라도 문제예요. 그리고… 자연분만이 좋다고 해서 제왕절개는 하고싶지 않아요. 전 괜찮아요. 배고프면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정말 배가 안 고파서 그래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서 일 보세요. 저는 한숨 잘게요.” 유씨 아주머니는 말리지 못 하고 자리를 비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마침 목정침이 집에 들어왔고, 그녀는 재빨리 다가가서 말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들어오세요? 평소에는 오후면 집에 오시더니. 오늘 연이한테 화 내셨는데도 이렇게 늦게 오시면 어떡해요> 애가 저녁도 안 먹었어요. 거의 9시가
유씨 아주머니는 상황을 보고 마음 편히 주방에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바로 그녀 앞 식탁에 올려주었다. “사모님, 앞으로 식사 거르시면 안돼요. 아이 생각하셔야죠.” 온연은 초음파에서 봤던 아이가 생각 나 기분이 이상했다. “아주머니, 제가 못생긴 아이를 낳게 될까요? 비록 제가 낳은 아이라서 미워하진 않겠지만… 너무 못 생겼으면 기분이 좀 그래서요.” 유씨 아주머니는 피식 웃었다. “그럴 수가 있나요? 두 분 다 외모가 출중하신데, 어떻게 못생긴 아이가 나올 수 있겠어요? 아이가 두 분 중 한 분만 닮았어도 예쁠 거예요. 그 사진만 봐서는 정확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는 뱃속에 있는데 어떻게 예쁠 수 있겠어요?” 온연은 살짝 마음이 놓였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제가 왜 지금까지 고생을 했겠어요.”그녀는 말을 하면서 그제서야 목정침이 신발도 안 갈아 신은 걸 발견했다. “왜 신발 안 갈아 신었어요? 다시 나가려고요?” 목정침은 그제서야 일어나 현관으로 가 신발을 갈아 신었다. “아니, 아까 퇴근하자마자 너 밥 안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신발 갈아 신을 새가 어딨어?” 온연은 마음이 따듯해졌다.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집에 들어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그녀는 강제로 방에 들어가 쉬었고 낮에 계속 누워만있던 그녀는 견딜 수 없었다. ”좀 움직였다가 자면 안돼요?” 목정침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10시가 넘었어. 자야지. 난 서재에 있을 게. 잘 자.” 그가 서재에 간다는 말에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이 저녁에 서재는 왜요? 일이 남았어요?” 그는 시선을 피했다. “응… 금방이면 돼. 먼저 자, 나 기다릴 필요 없어.” 온연은 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걸 알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그래요, 가 있어요.” 역시, 그는 밤새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이 밝자 회사로 나갔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유씨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 사람 어제
점심, 목정침이 집으로 오자 그녀는 일부러 물었다. “당신은 연애 몇 번 해봤어요?” 목정침은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건 왜 물어?” 그녀는 눈썹을 치켜들며 “궁금해서 물어보면 안돼요? 당신 과거 좀 알면 안돼요?” 그는 그녀의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 18살 이후에는 다 너가 있었는데 그걸 꼭 물어야 돼?” 그녀는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에 입술을 내밀었다. “연애 몇 번 해봤냐는 질문에 너무 돌려서 답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입술을 쭉 내민 애교스러운 모습에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언제부터 그녀가 그 앞에서 이렇게 귀여웠었나? 너무… 귀엽다… 그는 뽀뽀하고 싶은 걸 참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 건 모르는 게 좋아. 나는 우리의 과거를 중요시하지 많이 아는 건 오히려 독이야. 차라리 다른 거에 관심을 갖는 게 어때?” 그녀는 호기심이 생겨 꼭 궁금증을 풀고싶었다. “안돼요, 난 꼭 알아야겠어요, 빨리 말해줘요! 내 과거는 당신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나한테 불공평해요!” 그는 그녀의 그릇위에 갈비를 올려주며 “그래서 모르는 게 좋다는 거지. 아는 게 독이라니깐.” 그럼 당시에 그녀가 심개를 좋아했을 때 그에게 독이었다는 말인가? 그녀는 젓가락을 씹으며 “난 그런 거 무섭지 않아요. 내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니까 얼른 알려줘요, 아니면 궁금해서 밥 못 먹겠어요.” 목정침은 결국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연애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그녀가 그를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너 만나기 전에 연애한 적 없어, 이제 기분 좋아?”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해졌고, 그녀가 이상한 생각을 하기전에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나 이상한 취향 없어, 그러니까 더 깊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그녀는 의심했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연애를 한 번도 안 했어요? 당신 좋다는 여자들이 여기서부터 프랑스 줄 섰을 텐데 당신도 대단하네요.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보며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한번에 설명해 줄게. 처음에 내 생각은 이랬어. 어떤 여자도 믿고싶지 않았어. 물론 그땐 내가 너를 꼬마로 봤지, 그냥 예쁘게 생긴 꼬마~ 나중에 너가 점점 크면서 나도 마음에 서서히 변화가 생겼어. 어느 날,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키웠으니까 내 말도 잘 듣고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 날부터, 네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어, 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더라고.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걸 뺏기는 걸 두고 볼 수 있었겠어? 심개 일로… 나 아직도 미워하는 거 아니지? 미워해도 어쩔 수 없어, 네가 날 사랑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런 건 다 상관없으니까. 다시 한번 강조할게, 나 이상한 취향 없어, 너한테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거야. 너도 그땐 사춘기였고 ‘어린이’가 아니었으니까, 난 그저 너보다 10살 많았을 뿐이야. 그러니까 의심 접어두고, 이상한 생각도 하지 마!” 심개 일로 그를 미워할까? 온연은 자신에게 물었지만 지금의 대답은 ‘미워하지 않는다’ 였다. 당시에 그녀도 어느 정도의 배신을 했었지만, 사실 그녀의 반항은 꼭 심개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끌려 다니기 싫어서도 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심개를 좋아했던 감정과 지금 목정침을 좋아하는 감정은 달랐다. 심지어 그녀는 그때 자신이 정말 심개를 좋아했었나 의심했다. 좋아했겠지만 그땐 사춘기때의 작은 감정이었고, 호감이었지 사랑 혹은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저 심개 때문에 설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목정침의 솔직함에 그녀도 솔직해졌다. “난 그냥 당신한테 휘둘리는 게 싫었을 뿐이지 심개 때문에 당신을 미워했던 게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미워하지 않아요. 지금은 심개도 자기의 삶이 있고, 우리 다 각자 잘 살고 있으니까 아쉬울 거 없어요.” 목정침은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워서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그럼 됐어. 심개도 이미 결혼해서 아이도 우리보다 몇 개월 일찍 낳을 거 같던데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