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경은 무표정으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주스 가져올 게요.” 진몽요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앉았다. “네… 그럼 밥만 먹고 갈게요…” 하람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밥 먹고 소경이도 갈 거니까 같이 가면 되겠다. 소경이는 네가 주스 좋아하는 거 아직 기억하고 있나 보네…” 진몽요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을 잇지 않았고, 사실 하람은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알았지만 일부러 물었다. 커피는 너무 써서 그녀는 한 입만 마셔도 하루 종일 괴로워했고, 그녀가 주스를 좋아하는 건 경소경도 기억할 정도로 비밀은 아니었다… 아무 말없는 그녀를 보자 하람은 주제를 돌렸다. “듣기로는 너 회사랑 집이 가까워서 운전 안 한다고 어머님께 차 드렸다며? 여기에 안 쓰는 차 많은데 한 대 가져갈래? 나중에 휴가라도 가야 될 때 차 없으면 불편하잖아.” 진몽요는 완곡히 거절했다. “괜찮아요, 저 평소에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 안 나가고, 회사도 가까워서 차 쓸 일이 정말 없어요. 정 필요하면 엄마한테 빌려오면 돼요…” 그녀는 진땀을 흘렸다. 강령한테 차를 넘겨 준지 얼마 안됐는데 하람이 이렇게 빨리 알고 있는 걸 보면, 경소경과 자신이 재결합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두 엄마는 잘 지낼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경소경과 사이가 안 좋을 수 없었고 적어도 어른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해야했다. 잠시 후, 경소경은 주방에서 주스를 가져왔고, 그녀를 보지도 않고 식탁에 올려뒀다. “저는 일이 있어서 가 볼 게요.” 하람은 그를 노려보며 “몽요도 먹고 간다는데 넌 어딜 가? 애 차 안 끌고 왔으니까 밥 먹고 가는 길에 데려다 줘.” 경소경이 대답하기 전에 진몽요가 황급히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알아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 경소경이 말하려 하자 하람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아프다… 또 아파… 화가 나니까 허리부터 아프네…” 경소경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 “됐어요, 연기 그만하세요. 안 가면 되잖아요.” 하람은 다시 아무
진몽요는 바로 대답했다. “네, 왜요? 이건 내 일이라 그쪽이랑 상관없을 텐데요.” 경소경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고, 참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헤어지자고 한 거 설마 그 사람 때문은 아니겠죠?” 진몽요는 벙 쪘지만 화도 났다. “무슨 뜻이에요? 내가 바람나서 당신을 찼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이순이랑 차에서 한 건 뭔데요? 경소경씨! 제발 말 같은 소리를 해요. 그런 말 할 거면 닥쳐요!” 경소경은 웃었다. “난 내가 그 장애인한테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아님 말고요, 내 문제였던 거 인정할 게요.” 그녀는 이를 꽉 깨물며 “이순이랑 그런 사이였던 거 인정할 거예요?” 그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제 내 설명 듣고 싶은 가봐요?”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허허,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갑자기 두 사람의 전화가 동시에 울리며 서로 눈치를 보더니 각자의전화를 받았다. 진몽요는 예군작의 만나자는 전화였고, 경소경은 샤샤의 전화를 이어폰을 끼고 받았다. 그의 관심은 이쪽이 아닌 진몽요한테 가 있었고, 작게 예군작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샤샤가 저녁에 시간 되냐는 질문에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진몽요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진몽요는 시계를 보더니 예군작에게 말했다. “오늘은 좀 그렇고, 주말에 다시 얘기해요.” 동시에, 경소경도 샤샤를 거절했다. “오늘은 됐어요, 나중에요.” 두 사람은 동시에 전화를 끊었고, 진몽요는 왠지 모르게 찔렸다. “나… 그 예군작이랑 진짜 아무 사이 아니에요. 비록 지금 당신이랑은 상관없지만… 헤어지기 전에는 정말 아무 사이 아니였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난 그런 사람 아니니까.” 경소경은 짜증이 났다. “그럼 지금은 아무 사이가 맞다는 거네요? 하긴, 그 사람이 몸은 고장 났어도 마음이 고장 난 건 아니니 여자를 꽤나 잘 꼬시나 보네요. 당신한테 애초부터 꿍꿍이가 있었잖아요. 술도 주고 나 대신 귀찮은 일도 해
...... 목정침이 예상했던 것처럼 온지령의 무능한 남편은 그가 흔쾌히 돈을 주는 걸 보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10억으로 온연이 아이를 낳을 때까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기분은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고, 돈에 목 말랐던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10억을 도박에 탕진한 뒤 밤새 도박을 해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찾아왔다. 목정침은 안 그래도 인내심이 별로 없는데 온연을 생각해서 잠시 참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를 건들이니 이미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10억으로 고작 며칠만 잠재운 건 너무 큰 돈이었다. 사무실 안, 그는 쉰내 나는 이 남자를 보며 살짝 코를 막았다. “10억 드렸잖아요, 고작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저를 뭘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온지령의 남편은 도박 빚을 지고 있어서 간절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줘, 정말 마지막이야!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게!” 목정침은 눈썹을 한껏 찌푸렸다. “도박꾼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요? 사업은 안 하고 그런 나쁜 것에 빠지기나 하시고. 제가 돈을 준 건 그저 눈 감아 주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연이의 고모부인 걸 생각해서 드린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계속 귀찮게 하실 줄 몰랐네요.” 온지령의 남편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맹세할 게, 다시는 도박 안 하고, 이 빚만 갚으면 네 고모랑 잘 살고 반성하면서 살게. 노부인이 돌아가신 건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어. 그냥 병들게만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되실 줄은 몰랐어. 나도 후회해… 내가 온연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줘… 너도 온연이 자기 고모부가 도박 빚 때문에 길바닥에 있는 모습을 보는 걸 원치 않잖아?” 목정침은 데이비드를 불렀다. “수표 드려.” 데이비드는 적잖이 놀랐다. 처음 돈을 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건 목정침 답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대표님은 이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데이비드는 재빨리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목가네에 돌아온 후 온연을 본 그 순간 그는 마음이 편안 해졌다. 그녀의 옆에 있으면 그는 모든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오늘은 어땠어? 애기가 말 잘 들었어?” 온연은 그의 부드러운 말투에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배를 만졌다. “괜찮았어요… 겨우 이만한 아이인데요 뭘. 오늘 안 바빴어요? 어떻게 일찍 왔어요? 곧 점심시간인데. 오후에 또 나가요?” 그는 쭈그려 앉아 그녀의 배에 귀를 대고 아이의 소리를 들었다. ‘꼬륵’ 거리는 액체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기분은 묘했다. 혹시 아이가 잠에서 깰까 봐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따가 밥만 먹고 갈 거야. 아직 일이 남아서 다 하고 올 게. 그냥 갑자기… 불안해서 네 얼굴이 보고싶길래 왔어.” 온연은 임신중이라 후각에 예민했고, 그의 담배냄새를 맡았다. “담배 폈어요?” 그의 몸은 약간 굳었고 일어나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미안해, 아까 회사에서 일이 좀 있어서 하나 폈어. 냄새 심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데 좀 불편하긴 해요, 살짝 입맛도 떨어지고. 웬만하면 끊는 게 좋겠어요, 간접흡연은 아이한테도 안 좋으니까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사실 나 이제 잘 안 펴…” 그저 온지령의 남편이 돈을 달라고 할 때만 그는 마음속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폈을 뿐이다. 온연만 아니었다면 온지령의 남편은 오늘 멀쩡히 집에 가지 못 했을 것이다. 점심식사 중, 온연이 물었다. “고모부가 당신 찾아왔었죠?” 목정침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알려줬어?” 그녀는 그의 반응에 의아했다. “왜요? 그냥 어쩌다가 임집사님이랑 기사님이 하는 얘기 들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찾아오셨데요? 돈 때문이면 주지마요, 당신이 돈 쉽게 버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아이 낳으면 할머니 다시 데려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맞다… 내가 요즘 출산관련해서 알아봤는데 아이 낳는 게 그렇게 위험하데요. 정상적인 사람들도 출
목정침은 좌석에 기대어 미간을 문질렀다. “감정조절이 잘 안됐어요, 너무 짜증이 나서… 매번 할머니 얘기를 꺼낼 때마다 무서워요. 그 미친놈이 계속해서 날 찾아와서 협박하다간 정말 나중에 못 숨기는 날이 올 것 같아요. 이렇게 흘러가는 건 좋지 않아요. 다음이 또 있다면… 그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맞다, 병원 쪽에 검사 예약해 두세요. 연이 몸 상태를 봐서는 조산을 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출산할 때 문제 생기게 하고싶지 않아요.” 진락은 한숨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저녁, 온연은 저녁밥을 먹지 않고 점심 때 목정침이 화내던 모습만 생각하면 입맛이 떨어졌다. 유씨 아주머니는 걱정하며 “연아, 그냥 도련님 머리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마. 남자들도 실수할 때가 있는건데, 그렇다고 너랑 아이는 잘못이 없잖아. 뭐라도 좀 먹어야지?” 그녀는 침대에서 움직이기 싫었다. “안 먹을래요, 입맛 없어요. 그 사람 아직 안 왔어요?” 유씨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일이 안 끝나셨나 봐. 어차피 일찍 오셔도 얼굴 보기 싫은 거 아니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 게. 안 먹으면 안돼. 너 봐봐,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도 이렇게 말랐잖아. 임신전보다도 얼굴 살이 더 빠졌어.” 온연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긴 그래요. 아이가 너무 커지면 위험할까 봐요. 제 몸상태는 제가 알아요. 아이가 너무 빨리 자라도 문제예요. 그리고… 자연분만이 좋다고 해서 제왕절개는 하고싶지 않아요. 전 괜찮아요. 배고프면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정말 배가 안 고파서 그래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서 일 보세요. 저는 한숨 잘게요.” 유씨 아주머니는 말리지 못 하고 자리를 비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마침 목정침이 집에 들어왔고, 그녀는 재빨리 다가가서 말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들어오세요? 평소에는 오후면 집에 오시더니. 오늘 연이한테 화 내셨는데도 이렇게 늦게 오시면 어떡해요> 애가 저녁도 안 먹었어요. 거의 9시가
유씨 아주머니는 상황을 보고 마음 편히 주방에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바로 그녀 앞 식탁에 올려주었다. “사모님, 앞으로 식사 거르시면 안돼요. 아이 생각하셔야죠.” 온연은 초음파에서 봤던 아이가 생각 나 기분이 이상했다. “아주머니, 제가 못생긴 아이를 낳게 될까요? 비록 제가 낳은 아이라서 미워하진 않겠지만… 너무 못 생겼으면 기분이 좀 그래서요.” 유씨 아주머니는 피식 웃었다. “그럴 수가 있나요? 두 분 다 외모가 출중하신데, 어떻게 못생긴 아이가 나올 수 있겠어요? 아이가 두 분 중 한 분만 닮았어도 예쁠 거예요. 그 사진만 봐서는 정확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는 뱃속에 있는데 어떻게 예쁠 수 있겠어요?” 온연은 살짝 마음이 놓였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제가 왜 지금까지 고생을 했겠어요.”그녀는 말을 하면서 그제서야 목정침이 신발도 안 갈아 신은 걸 발견했다. “왜 신발 안 갈아 신었어요? 다시 나가려고요?” 목정침은 그제서야 일어나 현관으로 가 신발을 갈아 신었다. “아니, 아까 퇴근하자마자 너 밥 안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신발 갈아 신을 새가 어딨어?” 온연은 마음이 따듯해졌다.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집에 들어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그녀는 강제로 방에 들어가 쉬었고 낮에 계속 누워만있던 그녀는 견딜 수 없었다. ”좀 움직였다가 자면 안돼요?” 목정침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10시가 넘었어. 자야지. 난 서재에 있을 게. 잘 자.” 그가 서재에 간다는 말에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이 저녁에 서재는 왜요? 일이 남았어요?” 그는 시선을 피했다. “응… 금방이면 돼. 먼저 자, 나 기다릴 필요 없어.” 온연은 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걸 알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그래요, 가 있어요.” 역시, 그는 밤새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이 밝자 회사로 나갔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유씨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 사람 어제
점심, 목정침이 집으로 오자 그녀는 일부러 물었다. “당신은 연애 몇 번 해봤어요?” 목정침은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건 왜 물어?” 그녀는 눈썹을 치켜들며 “궁금해서 물어보면 안돼요? 당신 과거 좀 알면 안돼요?” 그는 그녀의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 18살 이후에는 다 너가 있었는데 그걸 꼭 물어야 돼?” 그녀는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에 입술을 내밀었다. “연애 몇 번 해봤냐는 질문에 너무 돌려서 답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입술을 쭉 내민 애교스러운 모습에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언제부터 그녀가 그 앞에서 이렇게 귀여웠었나? 너무… 귀엽다… 그는 뽀뽀하고 싶은 걸 참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 건 모르는 게 좋아. 나는 우리의 과거를 중요시하지 많이 아는 건 오히려 독이야. 차라리 다른 거에 관심을 갖는 게 어때?” 그녀는 호기심이 생겨 꼭 궁금증을 풀고싶었다. “안돼요, 난 꼭 알아야겠어요, 빨리 말해줘요! 내 과거는 당신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나한테 불공평해요!” 그는 그녀의 그릇위에 갈비를 올려주며 “그래서 모르는 게 좋다는 거지. 아는 게 독이라니깐.” 그럼 당시에 그녀가 심개를 좋아했을 때 그에게 독이었다는 말인가? 그녀는 젓가락을 씹으며 “난 그런 거 무섭지 않아요. 내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니까 얼른 알려줘요, 아니면 궁금해서 밥 못 먹겠어요.” 목정침은 결국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연애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그녀가 그를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너 만나기 전에 연애한 적 없어, 이제 기분 좋아?”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해졌고, 그녀가 이상한 생각을 하기전에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나 이상한 취향 없어, 그러니까 더 깊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그녀는 의심했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연애를 한 번도 안 했어요? 당신 좋다는 여자들이 여기서부터 프랑스 줄 섰을 텐데 당신도 대단하네요.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보며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한번에 설명해 줄게. 처음에 내 생각은 이랬어. 어떤 여자도 믿고싶지 않았어. 물론 그땐 내가 너를 꼬마로 봤지, 그냥 예쁘게 생긴 꼬마~ 나중에 너가 점점 크면서 나도 마음에 서서히 변화가 생겼어. 어느 날,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키웠으니까 내 말도 잘 듣고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 날부터, 네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어, 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더라고.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걸 뺏기는 걸 두고 볼 수 있었겠어? 심개 일로… 나 아직도 미워하는 거 아니지? 미워해도 어쩔 수 없어, 네가 날 사랑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런 건 다 상관없으니까. 다시 한번 강조할게, 나 이상한 취향 없어, 너한테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거야. 너도 그땐 사춘기였고 ‘어린이’가 아니었으니까, 난 그저 너보다 10살 많았을 뿐이야. 그러니까 의심 접어두고, 이상한 생각도 하지 마!” 심개 일로 그를 미워할까? 온연은 자신에게 물었지만 지금의 대답은 ‘미워하지 않는다’ 였다. 당시에 그녀도 어느 정도의 배신을 했었지만, 사실 그녀의 반항은 꼭 심개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끌려 다니기 싫어서도 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심개를 좋아했던 감정과 지금 목정침을 좋아하는 감정은 달랐다. 심지어 그녀는 그때 자신이 정말 심개를 좋아했었나 의심했다. 좋아했겠지만 그땐 사춘기때의 작은 감정이었고, 호감이었지 사랑 혹은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저 심개 때문에 설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목정침의 솔직함에 그녀도 솔직해졌다. “난 그냥 당신한테 휘둘리는 게 싫었을 뿐이지 심개 때문에 당신을 미워했던 게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은 미워하지 않아요. 지금은 심개도 자기의 삶이 있고, 우리 다 각자 잘 살고 있으니까 아쉬울 거 없어요.” 목정침은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워서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그럼 됐어. 심개도 이미 결혼해서 아이도 우리보다 몇 개월 일찍 낳을 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