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아주머니가 모닝을 노려보았다.“어린 아가씨가 잘못 배워서는, 하루 종일 남의 일에나 간섭하고, 안 부끄러우세요?! 할 일 하러 가보세요!”유씨 아주머니가 콧방귀를 뀌었다.“저희 사모님 몸 안 좋으신 거 모르시지 않잖아요! 도련님도 사람 아끼는 거 모르시는 분 아니세요! 여기서 또 사람 놀리고 계신 걸 보니, 오늘 또 하루 종일 빈둥거리셨군요!”욕실 안에서 유씨 아주머니와 모닝의 대화를 들은 온연은 어딘가 면목이 없었다. 모두 목정침 탓이었다. 왜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그녀를 위층으로 이끌었을까? 그의 행동이 이상했다는 것은 눈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었다.온연은 욕실에서 잠시동안 더 꾸물거리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목정침은 이미 잠든 상태였고,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온연은 조심스레 눕고는 조명마저 꺼버렸다. 목정침은 곧 그녀의 허리를 감싸왔고, 목 언저리에 닿는 그의 뜨거운 숨결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평소에는 같이 잠을 잤더라도 친밀히 몸을 맞대고 잔 적은 없었기에, 돌연 몸을 맞닿아오니 온연은 어색할 뿐이었다. 한참을 잠들지 못하였고, 눈꺼풀이 감겨와도 머릿속의 정신줄은 팽팽하였다.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목정침이 잠을 설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시로 자세를 가다듬어왔고, 그녀에게 닿아오는 그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한 소녀가 아니었다. 이러다 가는 둘 다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온연은 얼마 후 용기를 내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저… 저 이제 거의 회복된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문제없을 거예요……”목정침의 몸이 약간 경직되었다.“나 그렇게 악질은 아니야. 어서 자.”온연은 의외라고 느꼈다. 마음 속에 따뜻한 기류가 몰려왔고, 이어서 꾸는 꿈 마저도 행복하였다.……다음 날 아침, 백수완 별장.별장 지구에 하늘을 가를 듯한 비명이 울려 펴졌다진몽요는 침대에 앉아 입고 있던 흰 셔츠를 필사적으로 쥐어 보였다. 한 편으로는 놀란 눈으로 경
”아무 일 없었다면서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한 침대에서 자게 된 건데요?! 거짓말도 적당히 해요. 난 어른이니까, 내가 한 일에는 책임 질 수 있는데, 스스로 자신이 한 행동 인정 못하는 당신같은 사람은 봐줄 수 없어요!”진몽요는 끈질기게 생각 해보았으나, 세부적인 상황을 따져봤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어이구. 당신이 죽어도 집에 안 가겠다 했고, 집 주소를 알려주지도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데려온 거라고요. 다른 방에는 침대가 없어서 여기에서 재웠어야 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소파에 가서 자요? 안 그래도 밤새 뒤척거려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어 놓고, 침대 아니면 어디서 자라는 거에요?”경소경이 양치질을 하며 화장실 문에서 얼굴만 내민 채, 지난 밤 동안 그녀의 행실을 고발 해댔다.경소경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진몽요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녀는 술을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셨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박이 불가능했다.진몽요는 저번 식당에서 대머리 남자와 함께 있을 때, 경소경과 같이 있던 여자를 떠올렸고, 자신의 행동들이 수치스러워졌다. 그 여자는 분명 애인이었을 것이다. 둘은 그렇게나 친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본인 이야말로 숨겨놓은 애인이 되는 것이었다.심사숙고 끝에, 그녀는 결국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제 옷은 어딨어요? 저 먼저 갈게요. 당신은 좀 이따가 늦게 나와요.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경소경이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무서운 거에요? 당신 옷들은 못 입을 것 같아서 진작 버렸어요. 사람 시켜서 옷 좀 사오라고 할게요.”진몽요의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겉옷은 살 수 있겠는데, 다른 건 어쩔 건데요? 속옷은 어쩔 거냐고요!”경소경은 빨래통에서 그녀가 말한 ‘그 옷’을 집어 들었다.“이거 말하는 건가? 이것도 더러워졌어요. 이것도 사오라고 할게요. 걱정 말아요, 내 비서도 여자니
진몽요는 두피까지 저려오는 듯했다. 경소경 이 사람, 바보였던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할수록 그는 더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었다.점심 시간이 다 되어 갈쯤, 디자인팀으로 경소경의 전화가 걸려왔고, 이를 받은 주임이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진몽요, 경대표님이 찾으신다. 빨리 사무실로 가봐!”진몽요는 경소경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 해졌다.“알겠습니다!”사무실로 향하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경소경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설마 어젯밤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자신을 찾아서 뭘 하려는 거지?꾸물거리며 사무실 문 앞에 다다랐고,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만일 그가 무언가 요구해온다면,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들어와.”사무실안에서 경소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을 가다듬고는 문을 열고 들어섰고, 가까이는 다가가지 못한 채, 문 앞에 서있었다.“무슨 일이신데요……?”경소경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이거 ‘비상’에 전달해줘요, 온연도 마침 거기에 있으니 같이 점심이나 먹고 오던지요. 또 잊어버리지 말고.”진몽요는 어리둥절했다.“절 부른 게 고작 이거 때문이라고요?”경소경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그러면?”그녀는 곧 긴장이 풀렸고, 서류를 받아 들고는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 때, 경소경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시만.”그녀가 놓았던 정신줄을 바로잡았다.“또 무슨 일……?”“그… 오전에 회사에 왔던 사람, 당신 어머님 맞죠? 두 사람 사이가 꽤나 안 좋아 보였거든요. 어제 클럽에서 내가 했던 말, 책임질 테니까 나랑 같이 퇴근하고 우리 집에서 일 해줘요. 일당은 바로 줄게요. 안 그래도 어제 당신이 들쑤셔 놨으니까, 오늘 청소 잘 해야 할 거에요.”경소경은 꽤나
진몽요는 어딘가 회의감이 들었다.“진짜로? 그럼 나 왜 아무 느낌도 느낄 수 없을까?”온연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너 지금… 너……? 너 이전에 전지랑 엄청 오래 됐었잖아? 이따금 같이 살기도 했고. 근데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해? 이런 쪽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잖아?”전지가 언급되자, 진몽요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나랑 전지…… 애초에 그 단계까지 가지도 않았어. 결혼할 때까지 미루겠다고 하더라, 누가 알았겠어… 하하. 걔는 나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네. 나를 만나는 동시에, 나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였던 거 잖아.”이 얘기를 듣던 온연이 무언가 실마리를 알아냈다.“너랑 전지가 그걸 겪지 않았는데, 왜 질문한 거야? 몽요, 나한테 솔직히 말해봐.”진몽요는 긴장이 되었는지, 컵을 들더니 담겨있던 물을 반 컵이나 들이켰다.“연아, 물어보지 마. 얘기해줄 수 없으니까… 괜찮아.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야. 네가 보기에도 나 문제없어 보이잖아?”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단정지은 후에야 마음을 편히 내려놓았고, 웃음까지 지어 보일 수 있었다. 전날 밤 경소경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설명되었고, 그녀는 더 이상 맘 졸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었다. 어찌됐건 부끄러운 일이었다.온연은 입술을 삐죽거렸으나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질문하지는 않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서씨 일은 진전이 좀 있어?”진몽요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내가 고용한 사람은 그래도 업계에서 명성도 있는 편인데, 몇 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 말은 금방이래, 매일같이 금방이라고 하는데, 날 놀려먹는건지 의심까지 들어. 그래도 명성이 자자하다니까 맡겨보려고. 게다가 계약금만 냈고, 잔금은 아직 우리 손에 있는 걸. 무서울 게 뭐 있어? 기껏 해봐야 계약금만 날리게 될 거고, 손해 볼 일도 없을 거야. 이틀만 더 기다려
사무실 안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얼룩덜룩 묻어났다. 온연은 이런 장면 자체가 처음이었고, 두 다리가 후들거려왔다. 임립이 불리한 상황인 듯 밀려났고, 보다 못한 온연이 억지로 그들을 막아 섰다.“그만 둬요! 더 때렸다 가는 사람 죽겠어요! 제발 말로 해결할 수 없어요?!”그녀가 막아 섰기에 임립은 더 이상 큰 동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상대에게 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상대의 주먹에 맞아 쓰러져버렸고, 온연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사무실 책상 위의 작은 선인장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는 상대의 머리를 내리쳤다.“그만 둬!!!”이 한방에 상대 남자는 까무러쳤고, 온연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선인장 가시에 손을 찔린 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비틀거리며 일어선 임립이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싸왔다.“경찰……”이를 들은 온연이 고개를 내저었다.“경찰은 못 불러요… 사람을 이렇게 때려 놓고 경찰을 부르면, 우리도 처벌을 면치 못할 거예요……”임립이 한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이 사람이 회사에 찾아와 소란을 피운 거고, 우리는 정당방위였어요. 처벌을 왜 면치 못합니까…? 게다가… 이 사람은 내 둘째 형입니다. 우리 집안 어르신께서도 날 처벌받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이 사람 역시, 경찰 신고는 교훈으로만 끝나겠죠!”둘째 형?!온연은 이 사람이 그의 둘째 형일 것 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외모나, 신체 같은 게 모두 임립보다 뒤쳐져 있었다. 절대 친형제로는 보이지 않았다. 까무러쳐진 그는 보기에 이미 중년의 늙은 남자인 것처럼 보였다. 이미 아버지가 되고도 남을 나이로 짐작되었다.그녀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도 내리기 전, 목정침이 금세 도착하였다. 이 광경을 눈에 담고도 침착함을 유지했다.“임립, 구급차 불러. 일단 이 사람부터 병원으로 옮기고, 네 상처도 좀 치료 해야겠다. 집 안 일이니 괜히 경찰에 말려들지 말고, 개인적으로 처리하자.
목정침은 아무 말도 않았으나 그의 눈빛은 매우 고집스러웠다. 온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병원으로 가는 길, 온연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임립에게 형제가 몇 명이나 있는 거예요? 또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목정침이 손을 들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대답했다.“누나 한 명, 형 두 명. 걔는 그 집안의 늦둥이야. 세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애 거든. 앞서 태어난 형 누나들과 엄마가 달라. 아무튼, 관계들이 복잡해. 아마 그 집 어르신께서는 임립을 그렇게 신임하지는 않는 것 같아. 이 일은 임립이 잘 했다고 생각해. 나였다면 이것보다 더 했을 거야.”온연 역시 생각했다. 목정침이었다면,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 거다.병원에 곧 도착하였고, 의사는 그녀의 손바닥에 박힌 가시들을 빼 내주었다. 손바닥의 피와 살갗을 마주하고 서야 자신이 당시에 얼마나 힘을 썼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 차례 처리를 하니, 손바닥은 거의 거즈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녀의 손을 본 목정침이 눈살을 찌푸렸다.“오후에는 회사 가지마. 내가 데려다 줄 테니까.”온연은 내키지 않았다.“괜찮아요. 아직 업무를 다 완성하지 못했어요. 저녁에 잔업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안 갈 수 있어요? 이정도 상처는 일하는데 문제없을 거예요.”목정침은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였고, 거의 내팽개치듯 차 안에 그녀를 밀어 넣고는 저택으로 향하였다. 온연은 그가 다시 떠나면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그가 다시 나갈 일이 없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쉴 새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시선을 떼지 않았으나, 온연은 감히 그의 코 앞에서 도망칠 엄두를 내지는 못하였다.오후 3시가 됐을 무렵, 모닝이 그제서야 하품을 하며 침실에서 나왔다.“다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온연이 탕위엔을 끌어안은 채 원망 가득한 얼굴을 했다.“저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회사에 일이 좀 있었거든요.”모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옷을 갈아 입고는 다시금 방에서 나왔다
경소경이 혀를 끌끌 찼다.“상처 한 번 지독하네. 손을 얼마나 험하게 휘둘렀으면…”온연은 식탁에 남자들만 앉아있는 게 매우 어색했다. 그녀는 그들의 말에 참견도 않고, 집히는 대로 음식을 먹고는 몸을 일으켰다.“저는 다 먹어서요. 천천히 드세요.”목정침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온연은 거실의 소파로 가 앉았고, 탕위엔이 자연스레 그녀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경소경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딘가 놀란 듯했다.“저 고양이 꽤나 살쪘네……”목정침이 가볍게 탄식을 내뱉었고, 경소경은 무언가 알아차린 듯 말했다.“어이구, 몰라봤네. 털 동물이라면 질색을 했으면서, 지금은 집 안에서까지 키우고 말이야. 누군가가 너한테 아주 크게 영향을 줬나보다.”목정침은 아무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으나, 입꼬리는 올라간 상태였다. 거실로 향하는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그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니 시간은 곧 밤 10시가 되었다. 경소경과 임립은 이미 취한 상태였고, 목정침 역시 적게 마신 것은 아닌 듯했다. 온연은 이 넓은 저택에 활기가 차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늘 고요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소경과 임립은 이제서야 처음 저택에 온 것이니까.목정침이 위층으로 걸음을 옮기며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연아, 올라와!”온연은 온 몸을 흠칫 떨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 왜 갑자기 나를 저렇게 부르는 거고? 이러면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식당을 정리하던 유씨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거실로 나오더니 눈짓을 했다.“빨리 가, 빨리 가. 도련님이 부르시잖아.”온연이 우물쭈물거렸다. 위층으로 따라 올라가는 것이 그 닥 내키지 않았다.“아주머니…… 소리치지 마세요…”유씨 아주머니가 소리를 죽인 채 말했다.“오랜만에 도련님 술 드시고 기분도 좋아보이잖아, 부르면 곧장 가보면 되지. 뭘 고민해?”온연은 눈을 딱 감은 채 위층으로 향하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목정침이 자신의 품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뭐 더 먹고
돌연, 그녀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려 대기 시작하였다. 온연이 필사적으로 그의 결박에서 벗어났고, 침대 맡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보니 수신자는 진몽요였다. 이는 무조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그녀는 당연히 그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뒷 일 걱정 없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 진몽요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려는 찰나, 목정침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살짝 깨물었고, 그녀의 온몸이 경직되더니 이내 힘이 다 빠져버렸다. 침착한 척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몽요…… 나 지금 전화 받기 좀 그래, 이따가 내가 다시 걸어 줄게.”진몽요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반문했다.“왜 그래 연아? 지금 뭐가 불편한데? 나 지금 너한테 할 말이 있거든, 그 서……”온연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온연의 심장 박동 속도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진몽요가 ‘서씨’라는 단어를 말 할 뻔했고, 정확히 알아내기 전까지는 목정침에게 알려서는 안 됐다. 현재 그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진몽요의 목소리가 그 에게까지 들릴까 두려웠다.다행히도 목정침은 술에 취한 상태였고,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은 채 그녀에게만 집중하였고, 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더니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렸다. “착하지……”그의 쉰 듯한 목소리는 무언가 마력을 가진 듯했고, 이내 온연의 얼굴이 붉어져왔고, 동시에 가슴 속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듯했다. 만약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겠지?목정침이 잠에 든 후, 온연은 살금살금 일어나 아래층으로 향하였다. 배가 고파왔다. 저녁에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뱃가죽이 곧 등에 달라붙을 듯했다.유씨 아주머니는 그녀가 먹이를 찾아올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곧바로 그녀에게 음식을 내주었고, 온연의 목에 생긴 자국을 발견하고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둘이 사이가 점점 좋아지네, 도련님은 주무셔?”온연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딱히 설명도 하지 않았다.야식을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