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이었다. 이순은 늘 이렇게 사라진 듯 사라지지 않았다. 번호를 차단하면 또 새로 번호를 만들고, 이쯤되면 그가 번호를 바꾸는 게 더 나을 법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계속 예군작이 전지인지 알아내지 못 했는데, 지금 이순이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 이용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미 이 문제를 생각해 봤었지만 또 다른 귀찮은 일들이 생길까 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지금 이순이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살짝 망설였다. 만약 진짜라면? 그와 이순은 그래도 정이 있었고, 그저 원하던 대로 발전하지 못 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빠르게 답장했다. ‘오후 3시에 연락해.’ 점심은 진몽요와 함께 먹은 뒤 그는 그녀를 데리고 사무실에 와서 낮잠을 재웠다. 그는 계속시간을 확인하며 진몽요가 거의 잠들 때 작게 말했다. “자고 있어요, 3시에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요. 금방 와서 저녁에 맛있는 거 사줄게요.” 진몽요는 비몽사몽하게 말했다. “그래요, 다녀와요. 나 자는 거 방해하지 말고요.” 그는 조심스럽게 외투를 걸치고 회사 밖으로 나와 차에 탄 후에 이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항에 그 카페로 와.” 카페는 공공장소라서 시끄럽진 않지만 사람이 적지도 않고 딱 이순을 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녀에게 그래도 경계심을 늦추진 않았다. 카페에 도착해서 앉자 이순도 바로 도착했다. 그녀는 조용하고 어두워 보이는 색깔을 좋아했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검은 색이었다. 게다가 늘 조용한 모습까지 보면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억눌렸다. “이렇게 먼 곳에서 만나자고 하시다니, 진몽요씨한테 저랑 만나는 거 들킬까 봐 그러세요?” 이순은 장난식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용건만 말해.” 경소경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순은 웨이터를 불러 커피를 주문한 뒤 본론을 말했다. “제가 꼭 용건이 있어야 하나요? 제가 말했잖아요, 그냥 만나고 싶었다고요. 이제 예군작 밑에서 일도 그만두고, 이 도시를
그녀는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는 이미 목숨을 받쳤는데 이정도는 별 거 아니에요. 나중에 다 되면 연락 드릴게요. 얼른 가보세요, 저 만난 거 들키지 마시고요. 저랑 연락했던 흔적도 다 지우세요.” 그녀는 바로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다. 직원은 따뜻한 커피를 가져와서 빈 자리 앞에 두었고, 경소경은 그 커피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마음이 불안했다. 이순이 일처리를 하는 건 안심이 됐지만 그래도 위험요소는 배제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모험을 시킨 걸 살짝 후회했고, 여자를 이용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진몽요와 연관이 있으니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눈이 내리는 날. 하늘은 금방 어두워졌고, 경소경은 차를 끌고 진몽요를 데리고 백수완 별장으로 향했다. 평소에 그는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눈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불안해져 신호위반까지 했다. 진몽요는 요즘 그의 정서가 불안정한 걸 알아서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녀도 마음이 무거워졌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 그녀는 일부러 문을 세게 닫았고, 그에게 화가 난 티를 내지 않는다면 그는 진지하게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경소경은 그녀의 달라진 태도를 눈치채고 어이없이 웃으며 그녀를 따라가 안았다. “아주머니, 또 왜 그래요? 배고파요?” 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도대체 왜 그래요? 난 당신이 자꾸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방금 운전할 때 신호위반 했잖아요. 이렇게 조심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닌데 당신이 이럴수록 스트레스 받아요. 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싫어요.” 그의 미소는 살짝 굳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그녀는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히터 켜줄게요, 추우면 안되니까. 내가 저녁 금방 해줄게요. 그리고 의심 좀 그만해요. 그냥 오늘 회의 생각하느라 정신이 좀 팔려 있던 것뿐이에요.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 게요. 차에 당신이랑 아이를 태웠는데
그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호기심이 많은 거예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예가네 저택. 예군작과 국청곡 그리고 어르신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국청곡과 어르신만 얘기를 나누고 예군작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 대화를 하던 중 어르신이 물었다. “청곡아, 요즘 왜 이렇게 고기를 잘 먹어? 예전에는 다이어트 한다면서 세끼를 다 조금 먹더니. 요즘 잘 먹어서 살 좀 붙은 거 같은데 오히려 더 좋아보이네. 앞으로도 이렇게 잘 먹어야 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국청곡은 예군작을 보며 그의 동작이 살짝 굳은 걸 보자 얼른 말했다. “건강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이 요즘 빈혈기가 심한 것 같다고 편식하지 말라고 하셔서요. 이렇게 한번 잘 먹으면 또 잘 먹는 편이에요.” 어르신은 웃었다. “그래? 의사 선생님이 말이 맞아. 빈혈이면 잘 먹어줘야지. 좋아하는 거 있으면 다 주방에 시켜. 나랑 군작이는 뭐든 잘 먹으니까. 난 너가 임신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보구나. 나중에 군작이 다리 다 나으면 아이 생각해 봐. 그래도 살아 있을 때 증손주 봤으면 좋겠어서.” 국청곡은 식은 땀을 흘렸다. “어…네…알겠습니다…” 예군작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저 다 먹었어요, 방에 들어가 볼게요.” 국청곡은 얼른 일어나서 그를 방으로 보내려 했는데 이때 배가 식탁 모서리에 살짝 부딪혔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통증을 느꼈지만 심호흡을 한 뒤 예군작의 뒤를 따라가 그를 안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문을 닫고, 예군작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픈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어차피 오래 못 숨길 거 병원에 검사하러 갈 겸 그냥 지워요.” 그는 그녀의 배가 부딪힌 걸 보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안 아파요. 그리고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는 생각 말아요. 이 아이는 내가 낳고싶으면 낳는 거예요, 다 내 마음이라고요. 쉬어요, 난 아직 밥 다 못 먹었어요. 무슨 일 있으면 아택씨 불러요
그는 입술을 움직여 아택을 불렀다. “감시 카메라 봐봐. 나 밥 먹을 때 누가 내 방에 왔었나.” 아택은 의아했다. “방에는 감시 카메라가 없는데요. 안방에도 없고요. 밖에만 있습니다.” 그는 아택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방 밖에 안방 대문 비추고 있는 카메라 있어. 너가 모르는 거지 노인네가 설치해 뒀어. 노인네 직원들 찾아가서 알아봐. 숨기고 그럴 거 없어.” 아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5분 후, 아택이 돌아왔다. “도련님, 이순이었습니다! 방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아무렇지 않게 나갔습니다. 뭐 가져간 것도 없는 거 같은데 뭐 잃어버린 거 있으십니까? 오늘 미리 사직서 냈는데, 도련님께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예군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걔 당장 잡아서 지하에 가둬. 그리고 핸드폰부터 뺏어서 안에 있는 어떠한 내용도 삭제 못하게 해.” 아택은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얼른 사람들을 데리고 이순을 찾아나섰다. 이순은 물건을 정리하고 나가려던 순간, 문이 열리고 도망치기도 전에 잡혀버렸다. 그녀는 이렇게 빨리 들킬 줄 몰랐다. 어쩐지 경소경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하더라니… 지하실로 끌려온 그녀는 예군작 앞에 던져졌고, 무릎이 바닥 쓸려서 아픈 나머지 순간 바닥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예군작은 휠체어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핸드폰을 뒤지며 경소경과 연락한 흔적을 보고 차갑게 물었다. “오늘 경소경 만나고 왔어? 예전에는 다 나한테 말해줬었잖아. 나를 위해서 일 했으니까. 근데 이번엔 왜 말을 안 했을까? 응? 너 그만둔다는 얘기 들었어. 이게 우연일까? 너 사실대로 말해. 너한테 뭘 시킨 거야? 얌전히 말하면 내가 좀 봐줄게.” 이순은 이를 꽉 물고 말했다. “저한테 아무것도 안 시켰어요. 저는 이제 다른 곳도 다녀보고 싶어서 그만두는 것뿐이에요. 이번엔 그 분이랑 사적으로 만난 거였어서 말씀 안
이순은 벙찐 채로 바닥에 있던 핸드폰을 주웠고, 경소경의 번호를 보며 핸드폰 위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무섭고, 죽을까 봐 두려웠다. 아무리 강해도 그녀는 여자였고, 그녀는 정말 살고 싶었다. 누군가 구하러 와 주길 바랐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그녀가 위험해졌을 때 제일 먼저 경소경을 찾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전화를 걸었고 경소경이 당연히 안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시간 그는 분명 자상하게 임신한 아내 진몽요를 돌보고 있을테다… 하지만 예상외로 전화가 연결됐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의 몸은 하염없이 떨리고 있으며 최대한 울음을 참으며 구원해 달라는 욕망을 눌렀다. “소경씨, 이번 생에 만날 수 있어서 제 인생에 모든 운을 다 쓴 것 같아요. 이제 여기까지 인 것 같아요.” 말을 하고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었고, 경소경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고, 그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예군작은 이 상황을 보고 무표정으로 휠체어를 문 앞까지 끌고 갔다. “아택, 나 데려다 줘. 이 일은 다른 사람한테 맡겨. 너가 직접 못 할 거 알아.” 아택은 경고하는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았고, 그건 이순을 너무 잔인하게 다루지 말라는 의미였다. 방으로 돌아온 후, 예군작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제 가 봐. 가서 국청곡 어디 아픈데 없는지 물어보고. 저녁 먹을 때 책상에 배 좀 부딪혔거든.” 아택은 예군작의 옆모습을 보며 살짝 의외라고 생각했다. 예군작이 언제부터 국청곡을 신경 썼었지? 그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국청곡 방 앞까지 걸어오자 그는 갑자기 국청곡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열었다. “사모님, 저와 같이 지하실 좀 가주시죠!” 국청곡은 샤워를 하고 막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아택씨! 뭐하는 거예요? 문부터 두들겼어야죠. 만약에 제가 옷도 안 입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무슨 일인데요?” 아택은 그런 걸
한편 경소경은 핸드폰 화면을 보며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순의 전화는 무슨 의미였을까? 마치… 마지막 인사 같았다. 그래서 결국 들킨 건가? 물론 이건 예상하지 못 한 결과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 이렇게 됐다면 예군작이 이순을 가만두지 않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앞치마를 푸르고 차 키를 챙겼다. “몽요씨, 나 좀 나갔다 올 게요. 밥 먼저 먹고 있어요. 다 먹고 쉬고 있으면 금방 올 게요.” 진몽요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어디가요? 밥도 다 했는데, 먹고 가지 그래요?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고 가야죠.” 그는 그녀에게 거짓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나 일부러 눈빛을 피했다. “그… 회사에 급한 일이 갑자기 생겼어요. 괜찮아요. 난 이제 당신이랑 아이가 있으니 집안을 책임져야죠. 예전처럼 혼자가 아니잖아요. 돈 버는 게 중요하죠.” 비록 기쁘진 않았지만 진몽요도 불평하지 않고 그에게 조심히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밖으로 나온 경소경은 안도했다. 매번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는 반복해서 이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이순이 예가네 저택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걸 알아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그가 막 침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이순이 전화 받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차를 타고 예가네 저택 근처에 도착했고, 어둠 속에 호화로운 저택을 보며 그는 예군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는 진몽요의 핸드폰에서 몰래 얻었다. 금세 전화가 연결되어 예군작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차갑게 물었다. “이순은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예군작은 소리내어 웃었다. “경소경씨? 진짜 재밌네요. 이순이 전화 건지가 좀 된 거 같은데, 왜 이제와서 전화를 주시는 거죠? 저는 경소경씨가 여자를 이용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쯧.” 예군작의 말투를 들으니 이순이 들통난 걸 기정
경소경은 운전대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창문 밖으로 예가네 저택의 대문을 보며 쳐들어 가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렇게 못 할 걸 알았다. 아니면 내일 신문 헤드라인엔 그가 타인에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기사로 도배될 거고, 그럼 진몽요에게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또 한가지의 경우는 그가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하나? 이순은 그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고, 그는 그녀에게 부탁한 걸 후회했다. 만약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부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계속 서로에게 신경 끄고 살면서 지금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 테다. 그가 못하는 일은 목정침에게 대신 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목정침에게 연락을 하자 그는 전화 너머 아이의 목소리와 온연의 웃음소리가 들려 순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이럴 때 목정침의 생활을 방해하는 게 적절하지 않았다. “소경아, 무슨 일이야?” 목정침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경소경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예군작 관련해서 계속 진전이 없었잖아. 이순이 만나자고 하길래 만났는데, 내가 유전자 샘플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거든, 근데… 예군작한테 들켰어.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아직 예가네 저택에 있는 거 같은데 확신할 수는 없어. 몽요씨한테 속이고 나와서 지금 예가네 저택 앞에 있어. 절대 못 들어갈 거 아는데, 마음이 너무 불안해…” 전화 너머 목정침은 진지해졌다. “지금 네 기분 알아, 네가 신경을 안 쓸 수 없겠지. 예군작 성격이라면 아마 이순한테 겁을 많이 줬을 거야. 그냥, 신고하자. 아무 핑계나 찾아서 경찰이 어떻게든 집에 들어가게 한 다음에 시간을 좀 끌자. 경찰이 들어가면 아무리 이순을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예가네 저택 안에서는 어쩌지 못 할 거야. 내가 사람 시켜서 그쪽 감시 하라고 할 게. 만약 이순이 그 집에서 나오면 돌려 보내주자. 집으로 가 있어, 진몽요가 의심하기 전에.” 방법을 찾은 뒤, 목정침은 임집사를
이 일에 관해서 진몽요는 관대하지 않으려 해도 관대할 수밖에 없었다. 경소경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 그녀는 주말을 목가네에서 보내기로 했고, 하람네 집으로 가지도 않고, 강령의 집에도 가지 않았다. 이유는 어른들이 알면 경소경의 행동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활기가 가득 차 있던 그녀는 표정이 좋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오전 내내 멍을 때렸다. 온연은 속상했다. “몽요야, 너… 경소경씨가 이순의 뒷처리를 맡아줘서 싫은 거지?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그냥 하고싶은 대로 하게 해줘. 우리가 아량을 베풀자.” 진몽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내가 기분 안 좋은 이유는 따로 있어.” 온연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뭔데?” 진몽요는 심호흡을 했다. “난 그 사람이 나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아. 내가 아무리 물어도 말을 안 해, 그냥 계속 넘어가. 이순이 죽었던 그 날 밤, 밥이 다 됐는데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면서 나갔어. 내가 먹고 가라 했는데도 무시하고. 내가 집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안 오길래, 먹을 거랑 목도리 갔다 줄 겸 회사에 갔는데, 없었어. 날 속인 거지. 예전에는 나한테 거짓말 같은 거 안 했는데…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없었어. 내가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가 다음 날 일어나보니 집에 있더라고. 이상한 점은 없었는데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이순이 죽은 걸 알게 됐지. 됐어, 나중에 그냥 이순 일 좀 해결 되는대로 애기 좀 해 봐야지. 그 사람이 이럴수록 나도 스트레스 받아.” 그녀의 말투에서 불안함이 느껴졌고 온연은 진심으로 경청했다. 이순이 죽은 그 날 밤, 경소경은 예가네 저택에 갔다가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가 좀 있으니 아마 왔다갔다 하는데 오래 걸렸을 테다. 온연은 경소경을 대신해서 말했다. “너 그 사람 바람 났을까 봐 의심하는 거지? 절대 아니야. 그 날 저녁에 목정침씨랑 둘이 전화했는데, 그냥 회사 일로 바빴나 봐. 회사에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