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자리 앞에 멍하니 서 있지만,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자궁을 쥐어뜯는 통증이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눈앞에는 피로 얼룩진 바닥 대신 내가 매일 일하던 사무실 풍경이 펼쳐져 있다.전생의 죽음의 기억에 빠져 있을 때, 윤아가 다가왔다.나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 여름은 홍수철이라 시청에서는 모든 부서에 24시간 당직을 지시했고, 우리 부서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날 밤, 시 감찰팀이 갑자기 직장을 점검하러 내려왔다. 윤아는 연애 때문에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았고 그 일로 감찰팀에게 걸려 다음 날 바로 해고당했다.시 감찰팀이 밤에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이 7월 25일이라는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 윤아는 자신이 해고된 이유가 나와 교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그 일로 나에게 깊은 앙심을 품었다.출산을 앞둔 나를 일부러 집에 찾아와 계단 입구로 유도하더니, 망설임 없이 나를 밀어버렸다.나는 휴대폰도 가져오지 않아 남편이 나를 찾아 병원에 데려다주기까지 7,8시간이 걸렸다.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혈이 너무 심했고, 결국 나와 아이는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하지만 신은 나를 다시 살려주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이번엔 절대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그렇게 다짐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순간, 윤아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먼저 근무 교대를 부탁하게 둘 순 없었다.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윤아, 너랑 상의할 게 있어.”“지은아, 무슨 일 있어?”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윤아, 나 집 살 거야. 4천만 원만 빌려줘. 너 돈 많잖아. 꼭 도와줘야지!” 윤아의 얼굴이 확 굳는 게 눈에 보였다.윤아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책상 위에 있던 가방을 집어 들고 빠르게 일어섰다.문
윤아는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고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유 국장님, 절대 잊지 마세요. 신덕 부동산과의 대화, 그리고 모든 계획은 제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당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맞아, 그게 있었지.’ 나는 재빨리 유 국장님 앞으로 다가갔다.“유 국장님, 이 대리님께서 저와 윤아가 함께 진행 중인 신덕 안치 계획인데요, 제가 방금 그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윤아는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깜빡였다.“윤아야, 네가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서둘러 왔잖아. 뭔가 문제가 있니?”“너, 너!”“장윤아, 빨리 가. 불만이 있으면 시청에 가서 얘기해.”유 국장은 윤아를 보냈다. 그 순간 유 국장이 내 눈에 비친 이미지는 더 높아 보였다. 역시 유 국장답게 책임 전가 1등이다.“다들 돌아가! 사무실로 돌아가!”유 국장은 외쳤다.모든 것이 나아질 줄 알았다.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윤아는 여전히 나를 원망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날 아침, 윤아가 해고된 후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지만, 오후가 되자 윤아가 다시 돌아왔다.사무실에서 미수 언니는 나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지은아, 윤아 같은 사람은 우리 직장 쌀벌레야. 아무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야근도 제멋대로 그만두고. 그런 사람을 안 자르면 누굴 자르겠니?”미수 언니는 늘 윤아의 경솔한 모습을 싫어했다. 그녀는 윤아가 사귀는 남자친구가 바람둥이일 거라고, 아니면 윤아가 내연녀일지도 모른다고 자주 얘기하곤 했다.그렇게 얘기하던 중, 사무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윤아가 경찰 몇 명을 이끌고 들어왔다.윤아는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경찰 아저씨! 바로 저 여자예요. 저 여자가 제 현금 천만 원을 훔쳤어요.”윤아는 이번에도 나를 원망했고, 그녀는 사무실 서랍에 현금을 보관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오전에 나만 그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경찰 아저씨, 오늘 아침에
전생에서 나는 윤아에게 속아 계단으로 불려 나갔고, 결국 그녀의 손에 의해 아래로 밀려 떨어졌다. 성주는 7, 8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와 나를 발견했다. 그날 그는 원래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왔어야 했다. 만약 그가 제때에 도착했다면, 나는 살았을 것이다.‘그랬구나, 그랬던 거였어.’나는 정말로 어리석었다. 성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조종하며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의 모든 행동은 다 계획적이었다.‘정말로 신이 보고 있었던 걸까? 나를 다시 이 세상으로 돌려보낸 이유가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을까?’나는 눈물을 훔치며 은행 출금 영수증을 화장실 변기에 던져 물을 내렸다.그 순간, 성주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엄마는 공무원이었고, 아빠는 작은 사업을 운영하며 성공을 거뒀다. 결혼 당시 아빠의 회사는 이미 시내에서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었다. 결혼 후, 아빠는 성주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성주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업을 배워갔고, 아빠는 그를 칭찬하곤 했다. 아빠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성주에게 회사를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셨다.하지만 성주는 늑대였다. 전생에서 내가 비참하게 죽고 나서 성주가 우리 부모님의 회사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지킬 것이다.민수와 이혼 상담을 한 후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마치 약한 불로 오래 끓여야 좋은 탕이 되듯이. 성주는 지난 생에서 나에게 진 빚을 이번 생에서는 하나하나 되돌려주게 될 것이다.주말에 하루 종일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성주도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집 안은 로맨틱하게 꾸며져 있었고, 촛불과 음악, 꽃과 와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지은아, 어때? 이건 내가 널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이거야말로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 그날 밤이 아닌가?’‘성주, 너의 수법은 변하
영상 속에서 윤아는 우리 집에서 핸드폰을 찾고 있었다.[자기야, 빨리 핸드폰 찾아. 그녀가 보기 전에 지워야 해.][지성주, 그녀가 본다고 해도 뭐가 문제야?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 나는 이제 그녀와 너를 공유할 생각이 없거든. 그녀와의 스킨십을 떠올리기만 해도 역겨워.][윤아야, 나도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 걱정 마. 지금 지은 아버지가 회사의 대부분 일을 나한테 맡겼으니까, 거의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리고 있어.]성주는 윤아의 가슴을 만지며 말했다.[조금만 더 참아. 지은이 출산할 때, 그녀와 아이 둘 다 처리하면 우린 떳떳하게 결혼할 수 있어. 지금은 때가 아니야. 누가 너를 내연녀라고 말할 텐데, 그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성주, 넌 정말 최고야. 이렇게 말해주니, 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남자에게 절대 몸을 내주지 않을 거야. 널 위해 순결을 지킬게. 주성빈이랑도 관계를 맺지 않을 거야.]윤아는 행복에 젖어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주는 그 몇 마디로 윤아를 완전히 달래버렸다.그 이후 대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성빈을 보며 그의 어리숙한 모습을 비웃었다. 성빈이 나를 못마땅해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윤아의 남편이 바로 성빈이었으니 말이다.윤아는 같은 사무실의 성빈을 피해 불륜을 저질렀다니, 그녀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다만, 전생에 성빈이 내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해졌다.문득, 윤아가 보낸 불륜 사진을 성빈에게 전송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다른 계정으로 로그인해 윤아의 사진들을 성빈에게 전송했다.그리고는 사무실에서 성빈의 반응을 몰래 관찰했다.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성빈이 계단에서 전화로 윤아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 내용을 듣지 않아도, 전화를 건 상대가 윤아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윤아, 성빈, 이제 시작이니 서두르지 마라.‘임신’이라는 명목으로, 나는 성주에게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켰다.“자기야, 나 주스 마시고 싶어.”“자기
그날 오후, 나는 곧바로 민수를 통해 성주에게 이혼 신청서를 전달하게 하고, 집의 자물쇠도 새로 교체했다.그리고 바로 부모님 댁으로 달려가 성주의 상황을 설명했다. 성주가 바람을 피웠다고만 말했을 뿐, 그가 나를 죽였었다는 사실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충격을 받으실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아버지는 강하게 대응하셨다. 빠르게 회사 내에서 성주의 권한을 모두 회수하고, 그와 손잡은 사람들은 전부 해고하셨다.성주는 어딘가에 숨어있었지만, 나는 그가 지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가 치밀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틀 후, 성주는 예상 밖으로 우리 집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다 장윤아가 유혹한 거야. 그녀가 너의 동료라서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이야. 그녀가 나를 이렇게 망가뜨린 거야.”성주는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문을 두드렸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다른 여자에게 속지 않을게. 이번 생엔 너만 사랑할 거야. 우리 아이도 곧 태어나잖아. 그 아이에게 아빠 없는 삶을 주지 마, 지은아.”성주는 분명 내가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남자가 흔히 저지르는 단순한 실수라 여기며, 진심으로 뉘우치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다시 받아줄 거라 믿었겠지.과거의 나는 그의 눈에 순진하고 어리숙해 보였을지 모르나, 지금의 나는 달랐다. 복수해야 할 상대에게 내가 더 이상 마음을 약하게 먹을 순 없었다.나는 문을 열고 말했다.“성주, 우리 끝났어. 네가 장윤아에게 유혹당했는지 나는 신경 쓰지 않아. 우리 이혼하자.”성주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내 허리를 감싸 안았고, 그 순간 나는 깊은 혐오감이 치밀었다.“지은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나와 장윤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녀는 주성빈과 이혼해서 감정이 뒤틀린 거야. 그래서 나도 이혼하게 만들려고 한 것뿐이야. 그런 여자를 내가 어떻게 좋아하겠어? 제발 날 용서해줘.”
이혼 후, 나는 속이 시원해져서 심지어 동네의 개들조차 귀엽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성주와 윤아는 나처럼 여유를 즐길 틈이 없어 보였다. 소문에 따르면, 성빈이 드디어 윤아와 이혼하며 한 번은 남자답게 행동했다고 한다. 윤아는 빈털터리가 되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곧바로 짐을 싸서 성주와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그러던 어느 날, 민서에게서 문자가 왔다.[지은 언니, 오늘 오후 6시, 스타 레스토랑에서 봐요. 아주 재밌는 구경거리 보여줄게요.]그 문자를 보고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퇴근 후 바로 스타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아래층 중앙에 앉아 있는 성주, 민서, 윤아의 모습을 보며, 그 상황이 내가 목격해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마치 여자들의 지옥 같은 경쟁 현장이었다.윤아는 연약한 척하며 성주에게 말했다.“성주야,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나 이제 이혼했으니까, 앞으로는 우리 둘이 떳떳하게 함께할 수 있잖아.”민서는 분노에 찬 얼굴로 성주를 노려보았다.“자기, 이 여자가 누구야? 오늘 확실히 설명해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오늘로 끝이야.”성주는 윤아가 민서를 자극한 것이 못마땅한 듯, 민서에게 해명했다.“민서야, 이 여자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야. 직장에서 쫓겨나고 남편과도 이혼했는데, 그 모든 걸 내 전처인 양지은 탓으로 돌리고 있어.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자기야, 다른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하자. 이 여자 신경 쓰지 마.”성주가 민서에게 다정하게 말하며 자신을 무시하자, 윤아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지성주, 내가 너 때문에 이혼했잖아! 네가 나를 해고시키고 이혼까지 하게 만들었어. 네가 이혼하면서 받은 2억, 나한테 1억만 줘. 그렇지 않으면 너 평생 편할 날 없을 거야.”윤아는 이미 모든 걸 잃었기에 성주를 더욱 집요하게 괴롭힐 게 분명했다. 성주는 윤아의 말을 무시하며 민서와 함께 나가려다가 윤아에게 따귀까지 때리며 서둘러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예전에는 몰래 바람을 피웠던 두 사람이 이제 이렇게 몰락하는 모습을
이혼 후 윤아와 성주의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던 나는, 결국 윤아에게 카톡을 보냈다.[윤아야, 할 말이 있어. 내가 성주 그 자식이 너를 속일까 봐 말하는 건데, 우리 이혼하기 전에 같이 건강검진을 받았거든. 오늘 결과가 나왔는데, 성주가 HIV에 감염된 것 같아.]잠시 후, 윤아가 격하게 반응하며 답장을 보냈다.[양지은, 너 미쳤어? 성주가 HIV에 걸렸다고 저주를 하다니.][성주는 절대 바람 피우지 않아! 네가 우리 사이를 질투해서 이런 말 하는 거지.][성주가 걸렸다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마지막 메시지에서는 약간의 두려움이 엿보였다.[양지은, 정말이야? 너도 검사했지? 너도 감염된 거 아니야?]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내 검사 결과는 문제없었어. 너도 빨리 검사해보는 게 좋을 거야. 일찍 발견하면 치료도 쉬워.]며칠 후, 민수에게서 연락이 왔다.[지은아, 어떻게 성주가 HIV에 걸렸는지 알았어? 병원 검사 결과 성주가 진짜 감염됐고, 다행히 윤아는 감염되지 않았어. 성주가 지금 미친 듯이 돈을 빌려서 치료받으려 하고 있어. 친척도 거의 없어서 돈 빌려줄 사람도 없고. 혹시 성주가 너에게 접근할지 모르니 조심해.]민수의 경고가 고마웠다. 성주는 항상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으니 말이다.이틀 후, 우리는 가족과 함께 푸켓으로 떠났다. 태양 아래 해변에서 휴식을 즐기며 나는 지난 생의 악몽이 서서히 사라져감을 느꼈다. 성주와 윤아 같은 사람들은 이제 내 삶에서 완전히 떠났다. 그들은 더 이상 내 인생의 중심이 아니었고, 가끔 막장 드라마처럼 떠오를 뿐이었다.어느 날 휴대폰에 뜬 뉴스 알림을 보았다.[삼산시 남성 HIV 감염, 여자친구가 감염되지 않은 것에 분노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 결국 여자친구도 감염시켜.]모자이크 처리가 된 사진이었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성주와 윤아였다. 더 이상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몇 달 후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성주와 우연히 마
이혼 후, 나는 속이 시원해져서 심지어 동네의 개들조차 귀엽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성주와 윤아는 나처럼 여유를 즐길 틈이 없어 보였다. 소문에 따르면, 성빈이 드디어 윤아와 이혼하며 한 번은 남자답게 행동했다고 한다. 윤아는 빈털터리가 되어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곧바로 짐을 싸서 성주와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그러던 어느 날, 민서에게서 문자가 왔다.[지은 언니, 오늘 오후 6시, 스타 레스토랑에서 봐요. 아주 재밌는 구경거리 보여줄게요.]그 문자를 보고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퇴근 후 바로 스타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아래층 중앙에 앉아 있는 성주, 민서, 윤아의 모습을 보며, 그 상황이 내가 목격해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마치 여자들의 지옥 같은 경쟁 현장이었다.윤아는 연약한 척하며 성주에게 말했다.“성주야,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나 이제 이혼했으니까, 앞으로는 우리 둘이 떳떳하게 함께할 수 있잖아.”민서는 분노에 찬 얼굴로 성주를 노려보았다.“자기, 이 여자가 누구야? 오늘 확실히 설명해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오늘로 끝이야.”성주는 윤아가 민서를 자극한 것이 못마땅한 듯, 민서에게 해명했다.“민서야, 이 여자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야. 직장에서 쫓겨나고 남편과도 이혼했는데, 그 모든 걸 내 전처인 양지은 탓으로 돌리고 있어.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자기야, 다른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하자. 이 여자 신경 쓰지 마.”성주가 민서에게 다정하게 말하며 자신을 무시하자, 윤아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지성주, 내가 너 때문에 이혼했잖아! 네가 나를 해고시키고 이혼까지 하게 만들었어. 네가 이혼하면서 받은 2억, 나한테 1억만 줘. 그렇지 않으면 너 평생 편할 날 없을 거야.”윤아는 이미 모든 걸 잃었기에 성주를 더욱 집요하게 괴롭힐 게 분명했다. 성주는 윤아의 말을 무시하며 민서와 함께 나가려다가 윤아에게 따귀까지 때리며 서둘러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예전에는 몰래 바람을 피웠던 두 사람이 이제 이렇게 몰락하는 모습을
그날 오후, 나는 곧바로 민수를 통해 성주에게 이혼 신청서를 전달하게 하고, 집의 자물쇠도 새로 교체했다.그리고 바로 부모님 댁으로 달려가 성주의 상황을 설명했다. 성주가 바람을 피웠다고만 말했을 뿐, 그가 나를 죽였었다는 사실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충격을 받으실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아버지는 강하게 대응하셨다. 빠르게 회사 내에서 성주의 권한을 모두 회수하고, 그와 손잡은 사람들은 전부 해고하셨다.성주는 어딘가에 숨어있었지만, 나는 그가 지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가 치밀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틀 후, 성주는 예상 밖으로 우리 집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다 장윤아가 유혹한 거야. 그녀가 너의 동료라서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이야. 그녀가 나를 이렇게 망가뜨린 거야.”성주는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문을 두드렸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다른 여자에게 속지 않을게. 이번 생엔 너만 사랑할 거야. 우리 아이도 곧 태어나잖아. 그 아이에게 아빠 없는 삶을 주지 마, 지은아.”성주는 분명 내가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남자가 흔히 저지르는 단순한 실수라 여기며, 진심으로 뉘우치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다시 받아줄 거라 믿었겠지.과거의 나는 그의 눈에 순진하고 어리숙해 보였을지 모르나, 지금의 나는 달랐다. 복수해야 할 상대에게 내가 더 이상 마음을 약하게 먹을 순 없었다.나는 문을 열고 말했다.“성주, 우리 끝났어. 네가 장윤아에게 유혹당했는지 나는 신경 쓰지 않아. 우리 이혼하자.”성주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내 허리를 감싸 안았고, 그 순간 나는 깊은 혐오감이 치밀었다.“지은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나와 장윤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녀는 주성빈과 이혼해서 감정이 뒤틀린 거야. 그래서 나도 이혼하게 만들려고 한 것뿐이야. 그런 여자를 내가 어떻게 좋아하겠어? 제발 날 용서해줘.”
영상 속에서 윤아는 우리 집에서 핸드폰을 찾고 있었다.[자기야, 빨리 핸드폰 찾아. 그녀가 보기 전에 지워야 해.][지성주, 그녀가 본다고 해도 뭐가 문제야?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 나는 이제 그녀와 너를 공유할 생각이 없거든. 그녀와의 스킨십을 떠올리기만 해도 역겨워.][윤아야, 나도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 걱정 마. 지금 지은 아버지가 회사의 대부분 일을 나한테 맡겼으니까, 거의 모든 결정은 내가 내리고 있어.]성주는 윤아의 가슴을 만지며 말했다.[조금만 더 참아. 지은이 출산할 때, 그녀와 아이 둘 다 처리하면 우린 떳떳하게 결혼할 수 있어. 지금은 때가 아니야. 누가 너를 내연녀라고 말할 텐데, 그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성주, 넌 정말 최고야. 이렇게 말해주니, 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남자에게 절대 몸을 내주지 않을 거야. 널 위해 순결을 지킬게. 주성빈이랑도 관계를 맺지 않을 거야.]윤아는 행복에 젖어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주는 그 몇 마디로 윤아를 완전히 달래버렸다.그 이후 대화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성빈을 보며 그의 어리숙한 모습을 비웃었다. 성빈이 나를 못마땅해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되었다. 윤아의 남편이 바로 성빈이었으니 말이다.윤아는 같은 사무실의 성빈을 피해 불륜을 저질렀다니, 그녀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다만, 전생에 성빈이 내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해졌다.문득, 윤아가 보낸 불륜 사진을 성빈에게 전송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다른 계정으로 로그인해 윤아의 사진들을 성빈에게 전송했다.그리고는 사무실에서 성빈의 반응을 몰래 관찰했다.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성빈이 계단에서 전화로 윤아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 내용을 듣지 않아도, 전화를 건 상대가 윤아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윤아, 성빈, 이제 시작이니 서두르지 마라.‘임신’이라는 명목으로, 나는 성주에게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켰다.“자기야, 나 주스 마시고 싶어.”“자기
전생에서 나는 윤아에게 속아 계단으로 불려 나갔고, 결국 그녀의 손에 의해 아래로 밀려 떨어졌다. 성주는 7, 8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와 나를 발견했다. 그날 그는 원래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왔어야 했다. 만약 그가 제때에 도착했다면, 나는 살았을 것이다.‘그랬구나, 그랬던 거였어.’나는 정말로 어리석었다. 성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조종하며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의 모든 행동은 다 계획적이었다.‘정말로 신이 보고 있었던 걸까? 나를 다시 이 세상으로 돌려보낸 이유가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을까?’나는 눈물을 훔치며 은행 출금 영수증을 화장실 변기에 던져 물을 내렸다.그 순간, 성주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엄마는 공무원이었고, 아빠는 작은 사업을 운영하며 성공을 거뒀다. 결혼 당시 아빠의 회사는 이미 시내에서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었다. 결혼 후, 아빠는 성주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성주는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업을 배워갔고, 아빠는 그를 칭찬하곤 했다. 아빠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성주에게 회사를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셨다.하지만 성주는 늑대였다. 전생에서 내가 비참하게 죽고 나서 성주가 우리 부모님의 회사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지킬 것이다.민수와 이혼 상담을 한 후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마치 약한 불로 오래 끓여야 좋은 탕이 되듯이. 성주는 지난 생에서 나에게 진 빚을 이번 생에서는 하나하나 되돌려주게 될 것이다.주말에 하루 종일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성주도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집 안은 로맨틱하게 꾸며져 있었고, 촛불과 음악, 꽃과 와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지은아, 어때? 이건 내가 널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이거야말로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 그날 밤이 아닌가?’‘성주, 너의 수법은 변하
윤아는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고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유 국장님, 절대 잊지 마세요. 신덕 부동산과의 대화, 그리고 모든 계획은 제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당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맞아, 그게 있었지.’ 나는 재빨리 유 국장님 앞으로 다가갔다.“유 국장님, 이 대리님께서 저와 윤아가 함께 진행 중인 신덕 안치 계획인데요, 제가 방금 그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윤아는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깜빡였다.“윤아야, 네가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서둘러 왔잖아. 뭔가 문제가 있니?”“너, 너!”“장윤아, 빨리 가. 불만이 있으면 시청에 가서 얘기해.”유 국장은 윤아를 보냈다. 그 순간 유 국장이 내 눈에 비친 이미지는 더 높아 보였다. 역시 유 국장답게 책임 전가 1등이다.“다들 돌아가! 사무실로 돌아가!”유 국장은 외쳤다.모든 것이 나아질 줄 알았다.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윤아는 여전히 나를 원망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날 아침, 윤아가 해고된 후 나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지만, 오후가 되자 윤아가 다시 돌아왔다.사무실에서 미수 언니는 나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지은아, 윤아 같은 사람은 우리 직장 쌀벌레야. 아무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야근도 제멋대로 그만두고. 그런 사람을 안 자르면 누굴 자르겠니?”미수 언니는 늘 윤아의 경솔한 모습을 싫어했다. 그녀는 윤아가 사귀는 남자친구가 바람둥이일 거라고, 아니면 윤아가 내연녀일지도 모른다고 자주 얘기하곤 했다.그렇게 얘기하던 중, 사무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윤아가 경찰 몇 명을 이끌고 들어왔다.윤아는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경찰 아저씨! 바로 저 여자예요. 저 여자가 제 현금 천만 원을 훔쳤어요.”윤아는 이번에도 나를 원망했고, 그녀는 사무실 서랍에 현금을 보관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오전에 나만 그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경찰 아저씨, 오늘 아침에
주변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자리 앞에 멍하니 서 있지만,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자궁을 쥐어뜯는 통증이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눈앞에는 피로 얼룩진 바닥 대신 내가 매일 일하던 사무실 풍경이 펼쳐져 있다.전생의 죽음의 기억에 빠져 있을 때, 윤아가 다가왔다.나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 여름은 홍수철이라 시청에서는 모든 부서에 24시간 당직을 지시했고, 우리 부서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날 밤, 시 감찰팀이 갑자기 직장을 점검하러 내려왔다. 윤아는 연애 때문에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았고 그 일로 감찰팀에게 걸려 다음 날 바로 해고당했다.시 감찰팀이 밤에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이 7월 25일이라는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 윤아는 자신이 해고된 이유가 나와 교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그 일로 나에게 깊은 앙심을 품었다.출산을 앞둔 나를 일부러 집에 찾아와 계단 입구로 유도하더니, 망설임 없이 나를 밀어버렸다.나는 휴대폰도 가져오지 않아 남편이 나를 찾아 병원에 데려다주기까지 7,8시간이 걸렸다.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혈이 너무 심했고, 결국 나와 아이는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하지만 신은 나를 다시 살려주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이번엔 절대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그렇게 다짐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순간, 윤아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먼저 근무 교대를 부탁하게 둘 순 없었다.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윤아, 너랑 상의할 게 있어.”“지은아, 무슨 일 있어?”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윤아, 나 집 살 거야. 4천만 원만 빌려줘. 너 돈 많잖아. 꼭 도와줘야지!” 윤아의 얼굴이 확 굳는 게 눈에 보였다.윤아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책상 위에 있던 가방을 집어 들고 빠르게 일어섰다.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