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마스터의 말 한마디에, 그는 죽는 것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만약 그가 용국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온 가문이 카일 가문에 의해 몰살될 것이니까. 멀어져 가는 한지훈과 필칸트의 뒷모습에, 칼은 털썩하고는 땅에 쓰러졌다. 마리오도 마치 가위눌리다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칼, 네가 이렇게나 어리석은 놈일 줄은 몰랐어. 다른 사람한테 손을 대기 전에 상대의 배경을 제대로 조사했었어야지!”방금 칼이 한지훈에게 한 말을, 마리오로부터 곧이곧대로 돌려받게 됐다. 이튿날 아침, 필칸트는 일찍 고성에 와 한지훈을 찾았다. “한 선생님, 마영리와 1000톤의 황금은 이미 용국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가문의 족장께서는, 한 선생님께서 마영리에게 공을 세워 지난 과실을 메울 수 있는 기회를 한번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한 선생님을 만찬에 초대하려고 합니다!”그러자 한지훈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저희 족장님께서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희 칸트 가문이 한 선생님을 위해 한 몸 바칠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필칸트는 매우 공손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전날 밤 자신이 본 모든 광경을 가문에게 보고했다. 칸트 가문 현 족장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내심 한지훈에 대해 좀 더 거리낌이 생겼다. 만약 이 기회에 한지훈과의 관계를 잘 맺지 않는다면, 한지훈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칸트 가문이 아예 역사 속에서 지워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필칸트더러 한지훈을 초청하라고 한 것이다. 게다가 족장 베레칸트는, 한지훈을 모셔오지 못하면 다시는 칸트 가문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필칸트에게 압박까지 가했다. 그 말은 즉, 한지훈을 초청하지 않으면 그는 칸트 가문에서 제명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무도 학원이 개학일인데, 이렇게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겠어?”그러자 필칸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제 말 한마디면 무도 학
심기 불편한 여청양의 표정을 읽어낸 에밀리는,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급히 일어서서 말했다. “선생님께 보고 드립니다. 한... 한군림은 오늘 휴가를 냈습니다!”사실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필칸트가 이미 진작에 얘기를 해뒀었다. 하지만 용국에서 온 몇 명의 선생님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를 않았다. 심지어 부교장한테도 다 얘기를 해놓은 상황인데, 용국에서 온 고작 몇 명의 선생님들이 감히 어떻게 이 상황을 빌어 한지훈한테 트집을 잡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실은, 여청양은 남다르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에밀리가 눈치 빠르게 나서서 한지훈을 도와주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한지훈은 용국에서 온 학생이고 여청양 또한 마찬가지로 용국인이니 반드시 한지훈을 특별히 돌보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에밀리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여청양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차갑게 물었다. “뭐라고? 개학 첫날부터 휴가를 냈다고? 배짱이 대단하네!”“너희들 아마 인체 자기장 이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잘 모르고 있을 텐데, 설사 상위 가문의 직계 자녀라 하더라도 감히 함부로 내 수업을 빼먹지는 못할 거야.”“하물며 한군림은 아무런 배경도 없고 내력도 없는 일반 학생인데 말이야! 그리고 이참에 너희들한테 충고할게. 나는 너희들이 각자 어느 가문에서 왔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배후에 어떤 사람이 있든!”“나 여청양의 수업은 그 누구도 결석해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여청양은 노발대발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한편 장령풍만이, 한군림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듣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사실 용국에 한 씨 집안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용국의 한 씨 집안이 전부 한용 일가만의 것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도학원에 사람을 파견할 수 있는 건 오직 한용의 가문뿐이었다. 설마 한군림과 한지훈 사이에 다른 혈연관계라도 있는 건가? 정말 그런 거라면 심상치 않은 사실이 숨겨져 있을 것
이내 동방설령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 됐든 한군림은 결코 한지훈이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긴 한 걸까? 차라리 짓밟히게끔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을까? 일단 한군림이 무도 학원에 나타나기만 하면, 동방설령은 그와 한 씨 가문을 모욕할 방법은 수만 가지가 됐다. 설사 한지훈이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한 씨 집안의 체면을 철저히 구기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용히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한편 오늘 있을 이 수업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듣지 못한 수업이었다. 예를 들자면, 자석을 몸에 그었을 때 자력에 빨려 붙는 느낌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긴 할 테지만 아무도 마음에 두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깊고 진지하게 그 속의 함의를 체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청양이 강의할 내용은, 어떻게 보면 수강생들이 진법루로 들어설 때 과연 어떤 진법을 얻을 수 있는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한평생 이 한 번의 기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한지훈은 이 길을 걸어오면서 무수한 진법을 얻기는 했지만, 일반인에게 있어 그것은 아득히 일이었다. 도청 전인 역시, 만약 한지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남은 일생은 줄곧 검경에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법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테고, 더더욱 접촉할 인연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배경과 신분은 한 무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필칸트가 젊은 나이에 유럽 10대 샛별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칸트 가문이 모든 자원을 그 한 사람에게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들 여청양이 강의하는 자기장과 인체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한편, 유독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에밀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한지훈을 걱정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야 에밀리는 직접 여청양을 찾아가, 한지훈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사전에 확실히 휴가를 먼저 냈다고 재초 강조했다.
이 말을 듣자, 에밀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여 선생님, 방금 전에 다른 사람은 한 달 동안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한 선생님은 하루도 안 된다는 거죠?!”“그리고 한 선생님도 용국에서 오셨잖아요. 같은 용국 사람이라면 서로 좀 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에밀리는 도저히 여청양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오륙의 모든 국가와 가문들이 전부 용국을 적대하는 걸까?선생님이라면서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가?!“나에게 전화한 사람은 우리 용국의 대단한 인물의 자손인데, 어찌 감히 한군림 따위와 비교를 한단 말인가!”여청양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수십 년 전, 서천술은 역외 전장에 들어가 용국의 중심인물 중 한명이 되었다!용국 전체의 무종조차 서천술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할 정도였고, 심지어 무종의 원로들조차 그를 선배라고 부르며 존경했다.그러니 그의 직계 아들인 서영호의 지위가 낮을 리가 있겠는가?!한군림이란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지금까지 받은 건 국왕의 구두 명령 한 장뿐, 그것도 정식 칙서도 아니었다!즉, 한군림은 무종 내에서 아무런 배경도, 든든한 후원자도 없다는 뜻이었다!그야말로 뿌리 없는 잡초 같은 존재인데, 누가 그런 잡초에 신경이나 쓰겠는가?!“용국 사람들은 원래 단결을 중시한다고 들었는데요? 한마디만 해주시면 될 일을요!”에밀리도 참을 수 없어 목소리를 높였다.그녀의 가문 역시 오륙의 10대 가문 중 하나였기에, 말투는 더더욱 강경해졌다.“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 한군림이라는 자가 누군데 왜 내가 그 한마디를 해줘야 하지?”“게다가, 너는 도대체 그와 무슨 관계인데 계속 그의 편을 드는 것인가? 솔직히 말해두지, 네가 아무리 입술이 닳도록 설득해도 나는 절대 그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여청양의 분노가 폭발하자, 에밀리는 속으로 울컥하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그녀가 여청양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무도 학원의 공식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안드레였고, 10
여청양과 말싸움하지 않은 건 순전히 안드레의 체면을 생각해서였지만, 여청양에게 무슨 체면이 있단 말인가! 장령풍은 에밀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지훈에 대한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그는 심지어 에밀리가 자신을 무시한 것조차 한지훈의 탓으로 돌렸다.자신은 조룡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이지 않은가! 용국이든 오륙이든, 그가 나타나면 누구든 고개를 숙이는데 이 에밀리라는 여자는 뭐란 말인가?그저 한군림을 먼저 알았다는 이유로, 장령풍의 호의를 가차 없이 무시해 버렸다!“장 도령, 그 여자는 지금 네가 넘볼 상대가 아니다. 그녀의 가문도 오륙의 10대 가문 중 하나이니 일정 수준의 힘이 없다면, 그녀의 눈길조차 받기 어려울 거야.”“오륙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출신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실력이야! 이 점은 용국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도록 해라!”여청양은 장령풍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그는 이미 오래전에 오륙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용국과 오륙의 본질적인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용국에서는 인맥 관계를 중요시 여겼고, 출신과 가문이 충분히 좋다면 어디를 가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륙에서는 실력이 없는 자는, 어떤 명문가의 자손이라도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감사합니다 여 선생님. 잘 새기겠습니다!”장령풍은 이를 악물며 속으로 되뇌었다.한군림이 무도 학원에 도착하는 순간, 반드시 모든 사람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들어줄 테다!그리고 에밀리에게 자신만이 그녀에게 어울리는 선택지라는 걸 똑똑히 알려주겠다고 되뇌었다. 그 시각, 한지훈은 필칸트와 함께 칸트 가문의 연회에서 막 돌아와 찰리 고성으로 들어섰다.성문을 통과하자마자, 필칸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가문의 어르신인 것을 확인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황급히 받았다.몇 번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끊은 필칸트는 한지훈에게 급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한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무도 학원 내
“한 선생님, 이 그림에 관심 있으십니까? 원하시면 사람을 불러서 거실로 옮기겠습니다.”필칸트는 한지훈이 거의 오후 내내 지하실에 머물러 있는 걸 보고, 직접 갓 짜낸 과일주스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한지훈은 필칸트를 흘깃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이 그림 자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하실을 벗어나면 이 그림은 완전히 무의미해진다.이 고성 아래에는 틀림없이 어마어마한 비밀이 묻혀 있을 것이다!한지훈이 고개를 젓자, 필칸트는 다급히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한 선생님, 이 그림은 옛날에 찰리 대제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우리 가문의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찰리 대제는 과거에 역외 전장에서 돌아온 강자였다고 합니다!”“뭐라고? 역외 전장에서 돌아온 강자라니? 그 말은 그는 원래 플랜지 제국의 국주가 아니었단 말인가?”한지훈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고, 필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이 찰리 대제는 플랜지 제국을 통일한 찰리 대제와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워낙 위대해서 후세 사람들이 그에게 같은 칭호를 붙인 겁니다.”“가문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역외 강자들이 대거 귀환하면서 각국이 플랜지 제국을 압박했을 뿐 아니라, 플랜지 제국 내부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어떤 문제이지?”한지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많은 강자들이 군주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고, 당시 군주는 결국 퇴위당하며 부르봉 왕조가 무너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찰리 대제는 그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군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죠.”“그 후 그는 플랜지 제국을 이끌고 오륙을 휩쓸며, 국경을 우란산까지 확장했습니다. 원래 목표는 용국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갑자기 이 성에서 급사해 버렸습니다.”한지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이것은 무도 현세가 곧 다시 열릴 것이라는 소문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였다.용국에서만 무력을 기반으로 왕권이 바뀐 것이 아니라,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전날 수업을 빠진 한군림임이 틀림없었다!어쨌든 서 도령은 홀로 교실 문 앞에 나타날 리가 없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한지훈의 옷차림은 너무 평범해서 도저히 명문가 출신처럼 보이지 않았다.장령풍과 동방설령은 한지훈을 몇 번 훑어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이런 작은 인물쯤은 언제든 가볍게 밟아줄 수 있었으니, 굳이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한지훈은 그들의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빈자리에 앉았다.오늘의 시간표를 한 번 훑어본 장령풍은 코웃음을 쳤다.어제 여청양을 건드려 놓고, 오늘도 뻔뻔하게 그의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한지훈은 정말 죽고 싶다는 건가?!예상대로 잠시 후, 여청양이 실험 도구와 사전에 준비한 강의 자료를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문을 열자마자 여청양의 시선은 바로 한지훈에게 고정되었다.그는 이미 서 도령를 본 적 있었으니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이 사람이 바로 어제 결석한 용국의 젊은이, 한 군림이었다!“자네가 한군림인가?”여청양은 강단으로 올라가면서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한지훈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지훈에게 쏠렸다.어제 여청양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오늘은 대놓고 무시한다고? 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한군림 이게 무슨 태도지? 내가 묻고 있지 않나!”여청양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책상 위에 세게 내던지며,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 노려봤다.여청양이 화를 내자 교실 안의 학생들은 다들 재미있다는 듯 구경하기 시작했다.무도 학원의 배경이 얼마나 무서운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교장인 안드레는 오륙의 10대 명문가조차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인물이었으니, 그런 학원에서 누가 감히 거들먹거릴 수 있을까?그런데 한지훈은 감히 교수까지 무시하고 있었다!한지훈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여청양은 냉소하며 말했다.“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지 다들 기억하지? 내 수업
무도 학원이 설립된 지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한지훈이 첫 번째 퇴학생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게다가, 무도 학원의 규율에 따르면 단순한 규칙 위반 정도로 퇴학당하는 일은 없었다.심지어 수련 중 실수로 동료를 중상에 빠뜨리거나, 최악의 경우 상대를 죽이더라도 퇴학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지훈이 정말로 퇴학당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용국의 국격이 무너지는 일이었다.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여청양을 바라봤다.용국의 존엄성을 이렇게 쉽게 짓밟아도 된다는 것인가?! 여청양의 말을 듣자, 문을 나서려던 한지훈의 발걸음이 멈춘 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흥미롭다는 듯 여청양을 바라봤다.“제가 잘못 들은 것입니까? 저를 퇴학시킨다고요?”그러자 여청양은 비웃듯 두 번 웃고는 차갑게 말했다.“아주 잘 들었다, 너는 지금부터 퇴학이다. 당장 용국으로 돌아가!”그 말에 한지훈은 손가락을 살짝 흔들며 나지막이 말했다.“여청양 당신은 그냥 평범한 선생님일 뿐일 텐데요. 학원 규정에 따르면, 선생님은 학생을 퇴학시킬 권한이 없습니다!”“지금 당신이 하는 짓은 도를 넘었습니다!”여청양은 이 말을 듣고 차갑게 웃기 시작했다. 확실히 학칙에는 이 조항이 있었지만, 이곳에 와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단순한 배경 없이 올 수 있을 리 없었다. 여청양 자신도 화산파 출신이었고, 화산은 이미 오륙의 주요 세력들과 깊게 얽혀 있었다.그가 나서기만 하면, 교장 안드레조차 섣불리 반박하지 못할 터였다.게다가, 단지 학생 한 명을 퇴학시키는 것인데 무도 학원이 이런 사소한 일로 화산과의 사이를 틀어지게 할 리 있겠는가? “그래, 난 네 말대로 평범한 선생일 뿐이지. 하지만 내 뒤에는 화산이 있다! 내가 널 퇴학시킨다고 하면 아무도 네 편이 되지 못할 거다!”여청양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확실히 오륙의 10대 가문 중 절반 이상이 화산과 연관이 있을 정도로 화산의 영향력은 막강했다.여청양이
곧이어 한 백발의 노인이 광막 속으로 강림했고, 그의 두 발이 땅에 닿자 그 광막 또한 즉시 사라졌다.“장... 장 선배님!”허천지는 급히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대장로를 비롯한 일행도 잇따라 앞으로 나서 노인에게 공손히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조정의 대표로 이 자리에 온 것이었기에, 허천지처럼 저자세를 보일 수는 없었다.“흠! 듣자 하니, 소위 한지훈이라는 놈이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을 몇이나 죽였다던데, 그자를 당장 이리 끌어오너라. 죽음을 맞이하게 해야지!”누구도 장세풍이 막 돌아오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한지훈을 겨냥해 살의를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장 선배님, 북양왕은 이 자리에 없으니, 잠시만...”무종 대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세풍은 손을 들어 그대로 뺨을 후려쳤다.“짝!”대장로는 그대로 장세풍의 뺨을 맞고 쓰러졌다. “너...!”종묘 장로와 진우는 이 광경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흥! 한지훈이 감히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을 죽여? 그리고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나? 그런 조정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우리 장씨 가문은 조룡의 무덤을 지켜온 가문이다! 그게 얼마나 큰 공인지 아느냐?!”“하찮은 백성 몇을 죽인 것이 뭐 대단한가? 설사 용경을 몰살했다 해도, 그건 우리 장씨 가문이 잃은 이자의 일부를 되찾은 것일 뿐이다! 더구나 죽은 자들은 단지 한지훈으로 가장했던 자들뿐이었어!”“그게 오히려 그 한지훈에게 면을 세워준 일이다! 그따위 놈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장씨 가문 자손을 죽여?! 자손들을 연달아 살해당했는데, 국왕 폐하마저 침묵이라니! 그따위 국왕이 개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장세풍은 돌아오자마자 거칠게 포효하며 마치 미친 개처럼 날뛰었다. 무종 대장로와 종묘 장로 앞에서도 국왕을 개에 비유하며 조롱을 퍼붓는 건, 그야말로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장형, 지금은 한지훈과의 대립을 따질 시점이 아닙니다. 비무가 끝나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그때, 서른
노인은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했지만, 그 몸부림은 전혀 무의미했다.오히려 그의 몸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강대한 위압감이 그의 온몸을 짓누르자 그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바로 그때, 밤하늘 위에 오색찬란한 빛줄기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천지 이변이 연달아 일어나자, 용경의 백성들조차 놀라 넋을 잃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마침내 용경 전체가 오색 광휘에 휩싸였고, 밤하늘의 별빛조차 모두 사라진 채 찬란한 광채만이 세상을 뒤덮었다.각국의 역외 강자들도 속속 복귀하고 있었다.이때, 안드레 역시 문 앞에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한때 오륙 최강자라 불리던 그였지만, 그의 몸은 도저히 제 의지로 버틸 수 없을 만큼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비록 그도 천신계 강자였지만, 이런 공포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이건…… 정말로 천신이 강림한 수준이지 않은가! 수백 년간 왜 각계에서 역외 강자들의 귀환을 막아왔는지 알겠군!”그는 온몸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감탄하듯 말했다.이는 그조차도 감히 맞설 수 없는 힘이었다.이때 안드레의 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심지어 예전 한지훈과 대면할 때조차 느끼지 못한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러나 한지훈은 뒷짐을 진 채 담담한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곁에 서 있던 도청전인 역시 떨리는 몸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그의 두려움을 감지한 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기침을 한 번 했다.그 순간, 도청전인의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공포감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전 세계가 왜 천신계 강자의 세속 출현을 금지해 온 건지 이제야 알겠군. 이건…… 핵무기보다 훨씬 무섭잖아!”“핵무기?! 핵은 고작 한 번밖에 못 쓰지만, 천신계 강자는 혼자서 만 리를 도륙할 수 있어!”사람들 사이에서 탄식과 경악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이건 겨우 첫 번째로 세속에 귀환한 역외 강자들일 뿐이었다.그것도, 가장 약한 자들만이 귀환했을 뿐이었다.
그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한, 누구도 감히 용국 땅을 밟게 두진 않을 것이다!잠시 더 앉아 있다가, 한지훈과 허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허천은 머뭇거리며 한지훈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한 선생님, 사실 드릴 말씀이 하나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어요.”한지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말하세요.”허천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어젯밤에 선생님을 모셔다드린 후, 우연히 할아버지와 서영호, 그리고 장령풍이라는 사람의 대화를 들었어요. 그들이 선생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한지훈은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물었다.“그래서,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말하길, 이번 비무가 끝난 후, 승패를 막론하고 서천술이 직접 선생님을 문책하러 올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번엔 반드시 선생님을 죽이려는 계획이라고 했어요! 한 선생님, 제발 지금이라도 도망치세요. 멀리, 아주 멀리 가셔야 해요!”허천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간절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한지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방금 그 노인장이 뭐라 했는지 못 들었나요? 그들은 이기지도 못하고 살아남지도 못할 거라고 합니다. 죽을 사람들인데, 그런 자들이 나를 어떻게 죽이겠어요?”“게다가 지금 용국이 큰 재앙을 맞이하려는 시점인데,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칠 수는 없지요.”“내가 더는 북양왕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는 용국 사람입니다. 우리 동포가 도살당하는 걸 눈 뜨고 볼 순 없는 노릇이에요!”한지훈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그 단호한 눈빛에, 허천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이후 이틀 동안, 각 방면의 세력은 잠잠해졌다.결국 천신계 강자가 눈 깜짝할 새에 살해당한 상황에서, 누구도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역외 강자와의 대결을 하루 앞둔 밤.허천지는 특별히 한지훈과 도청전인의 방을 찾아왔고, 진지한 얼굴로 당부하듯 말했다. “두 분, 오늘 밤에는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마십시
한지훈은 상대를 한 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저는 그냥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어느 누가 감히 이렇게 공개적으로, 다른 나라가 이미 손에 넣은 진법 비기를 빼앗으려 드는 건지 말이지요.” 노인은 한지훈을 바라보며 수염을 비비고는 웃으며 말했다.“역외 강자들이 돌아오고 나면, 이 세상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뀔 거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하지.”한지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렇습니까? 역외 강자가 돌아온다면, 이 세상은 곧 난세로 접어든다는 뜻인가요?”“난세이기도 하고, 난세가 아니기도 하지. 사실 역외 강자들이 돌아오고 나면, 천신계 강자들이 마음껏 세상 위를 활보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무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핵무기조차 천신계 강자를 죽이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 세상이 오면 무공이 곧 권력이고, 누구 주먹이 세냐에 따라 세상을 명령할 수 있지.”“좋은 물건이 있다 해도, 그자가 손짓 한 번이면 약자는 고분고분 바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새로운 질서다.”“그리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 약자들뿐이야. 약자는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서로를 공격하며 생존을 모색하게 되지. 이게 바로 역외 강자들이 돌아온 후의 세상이다.”노인은 말을 마치고 혼자 차를 따라 느긋하게 한 모금 마셨고,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걱정은 전혀 없으신 듯하네요?”노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 역외 강자들이 전부 돌아온다 해도, 우리 미륙은 여전히 안전할 거다. 왜냐하면 미륙에는 역외 강자만 있는 게 아니거든.”“수백 년 전부터 미륙에 숨어 지내던 고수들도 있네. 그들은 심지어 역외 강자들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들이지.”노인의 이 말에 많은 이들이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지만,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자마자 곧 고개를 돌리고는 조용해졌다.모두가 입을 다물자, 노인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젊은이, 자네 인상이 좋아 보이니 특별히 충고 하나
“흠, 아마 약탈당한 국가에서 복수를 위해 고수를 보낸 걸지도 몰라.”“에이? 혹시 용국의 한지훈 아니야? 그자가 예전에 오륙의 이성 천신계 강자 넷을 상대로 싸운 적 있잖아!”“말도 안 돼.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한지훈이 감히 함부로 나설 리가 없지.”사람들 눈에는 한지훈이 지금 숨기 바쁠 시점이었고, 신분을 드러낼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고 본 것이다.같은 시각, 허씨 가문의 대청 안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그들 중에는 곧 천신계 돌파를 앞둔 고수들도 있었지만, 수십 명이나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이때 흰옷을 입은 남자가 바깥에서 급히 들어오자, 허천지가 얼른 일어나 물었다.“소식이 있나?”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손을 쓸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전부 조사해 봤지만, 단서 하나 찾지 못한 것이다.“가주님, 설마 얼굴조차 못 보신 겁니까?”그가 물었다.얼굴을 봤느냐고?허천지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처음부터 끝까지 상대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뭘 봤겠는가?“어젯밤, 그 자는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부끄럽게도, 누가 저희를 도운 건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허천지가 고개를 저었다.“가주님, 일성 준천신을 순식간에 죽인 실력이라면… 혹시 역외에서 귀환한 강자가 아닐까요? 설마 서천술 선배께서 은밀히 보낸 사람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아닐세. 서천술 선배라면 사전에 반드시 통보가 있었을 테지. 그래야 우리가 마중을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몰래 들어올 이유가 없지 않나.”허천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더 캐낼 게 없다면 그만두게. 당분간 모두 경계심을 늦추지 말도록 하고.”이때, 허천과 함께 방을 쓰는 허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할아버지, 혹시 천이가 데리고 온 그 친구 아닐까요? 어젯밤 그 친구 부탁으로, 천이가 할아버지를 뵈러 간 거잖아요.”허천지는 고개를 연신 저었다.“말도 안 된다! 한지훈이 그를 보낸 건 자기한테 불똥 튈까 봐
죽은 두 사람은 비록 이제 막 준천신계를 돌파한 강자이긴 했지만, 외부 세계에선 대륙 하나를 제압할 만한 존재였다.그런데 방금 전, 단 한 방에 살해당한 것이다!게다가 그 천성구요 진법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였다!구하러 나섰던 허천지조차 넋을 잃었고, 방금 그 순간, 그는 하늘에 아홉 개의 태양이 뜬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그 뜨겁고 불타는 느낌은 너무나도 생생했다!바닥에 흩어진 투명한 살점들을 바라보며, 장령풍은 자신의 목숨을 간신히 건진 것에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피를 토하며 날아간 서영호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허천지는 급히 다가가 서영호의 상처를 살폈고, 다행히 내장은 다치지 않아 하루이틀만 쉬면 회복될 수 있었다.사람들을 시켜 서영호를 옮기게 한 뒤, 허천지는 냉랭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방금 전, 그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기운을 느꼈다.즉, 지금 죽은 둘 외에도 또 한 사람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그러나 앞선 두 명이 순식간에 살해당하는 걸 보고는, 나머지 한 사람이 은둔하여 손을 쓰지 않은 것이다.방금 전 천성구요의 위력에 겁을 먹고 움직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허천지는 장령풍을 한 번 흘겨보았고, 방금 전 무릎 꿇고 살려달라 외쳤던 모습이 너무 또렷했다.과연 저자가 장씨 가문의 미래라고 할 수 있을까?무겁게 한숨을 쉰 허천지가 장령풍을 향해 말했다.“장 도련님,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경호원을 붙여드릴 테니, 돌아가 쉬세요.”그러곤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장령풍의 흠뻑 젖은 바짓가랑이를 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민망함이 스쳤다.“예, 예, 허 선배님.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그 말을 남기고 장령풍은 서둘러 호텔 쪽으로 달려갔다.그날 밤, 진가복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죽은 자들 중에는 비륙의 고수뿐 아니라, 오륙 십 대 가문 중 하나인 로드 가문에서 파견한 강자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게다가 그들은 모두 무도학원 진법루에서 큰 수확을 얻은 자들이었지만, 운이 장령풍이나 서영호만큼은
하지만 그 누구도 정식 비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대학살극이 벌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서영호와 장령풍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을 때, 폭풍 같은 기류가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서영호는 반응조차 못 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장령풍은 겁에 질린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살려주십시오! 저는 하등 쓸모없는 놈입니다! 단지 이곳에 구경하러 온 것뿐입니다......”“저…… 저 그냥 시중도 들겠습니다! 종이든 말이든 다 할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그들은 사실 특수한 단약을 써서 겨우 실력을 끌어올린 상태였을 뿐, 진짜 실전 경험은 전무했다.그런데 상대는 고작 기류 한 줄기로 서영호를 반쯤 죽여놨으니, 분명 최소 준천신 강자일 것이다!자신보다 강한 강자를 만나자, 장령풍은 그대로 오줌을 싸버렸다.몸은 덜덜 떨리고, 눈조차 제대로 들 수 없었다.“휙!”그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한 명의 검은 복면을 찬 사람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왔고, 싸늘한 눈빛으로 장령풍을 노려보며 말했다.“진법루에서 가져온 진법 비책을 네가 갖고 있지?”장령풍은 이미 잔뜩 겁에 질린 상태였고, 지금 이 순간 목숨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그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용국 무종의 미래 따위는 전혀 그와 무관한 일이 되었다!상대가 다시 묻기도 전에, 장령풍은 품속에서 두툼한 비책들을 꺼내 내밀었다.분명히 상대는 진법을 빼앗기 위해 온 것이니, 넘겨주기만 하면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검은 복면인은 그것을 낚아채며 한쪽 손으로 품었다.“멈춰라!!”“쉬익!”그 순간, 한 줄기 은빛이 스치며 주변 집들이 한바탕 흔들렸다.마침 이때 허천지가 검을 들고 있었다.진작에 진가복 전체가 진법에 쌓여 있었고, 이때 허천지는 즉시 진법을 가동했다.동쪽 하늘에서 솟은 눈부신 백광 아래, 진가복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수많은 살기가 일순간에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을 겨눴다!그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허천지는 한눈에 필 칸트를 알아봤다.그는 오륙의 십 대 가문 중 하나인 칸트 가문의 가장 유망한 후계자였다!게다가 요즘은 역외의 강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어, 칸트 가문에도 두 명의 강자가 상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그런데, 겨우 북양왕이라 불리는 자, 소문만 무성한 초라한 일성 준천신 경지의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그런 자격으로 오륙 십 대 가문의 정점에 선 젊은이에게 말을 건다고?만약 상대방이 기분이라도 상하면, 한지훈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지만 자신의 손녀까지 휘말리면 큰일이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허천지는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곁에 서 있던 허천을 확 잡아끌었다.“천아, 내가 뭐라고 했지? 밥 다 먹었으면 바로 한 선생을 모시고 돌아가서 쉬게 해드리라고 했잖아. 길거리에서 이러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할아버지, 이분이 먼저 한 선생님에게 아는 척하며 인사하셨어요. 우리가 무례할 수는 없잖아요.”허천은 억울하다는 듯 허천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긴 길 가다 아무나 붙잡아도 대단한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야. 괜히 문제 생기면 누가 너희를 지켜주겠어? 게다가 저 사람, 오륙 십 대 가문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이라니까!”“한지훈이 먼저 인사했다고? 웃기고 있군! 그쪽에서 먼저 말 걸 일이 뭐가 있어! 당장 데리고 돌아가! 이런 곳에 더 있지 마!”“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우리 허씨 가문은 책임질 의무 따위 없다!”허천지는 싸늘하게 한지훈을 한번 흘겨보곤, 멀리 서 있는 몇 사람을 보고는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가 말없이 돌아섰다.한지훈은 필 칸트와 몇 마디 더 나눈 뒤, 허천과 함께 허씨 가문에서 마련해 준 민박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밤이 막 내려앉은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졌다!곧이어 수많은 빛줄기가 창문을 뚫고 쏟아져 들어왔다.사람 그림자들이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다녔고, 한지훈은 창밖으로 수십 명이 피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한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문을 두
장세풍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허천지는 눈빛이 번쩍였다.장세풍, 세속 세계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외 강자들과 오대 명산에겐 익히 알려진 이름이었다.이 사람은 바로 천사도 제7대 조사, 즉 장천사의 일곱 번째 제자였던 것이다!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설마 장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천사도 전승을 이은 그 장세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허천지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맞습니다! 바로 우리 선조이지요.”장령풍은 허천지가 장세풍을 경외하는 태도를 보이자, 얼굴에 더한 자부심을 드러냈다.“흠, 장 선배께서 오신다면, 이번 대전은 틀림없이 압승이겠지요. 만약 당시 그분이 역외로 은둔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 후손의 변발 병사들이 용국을 차지했겠습니까?! 정말 생각지도 못했군요, 이번 대회에 그분까지 속세에 돌아오시다니!”허천지의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다.“흥, 이번엔 반드시 우리 용국이 승리할 겁니다. 누구나 알고 있잖습니까, 대전에서 이기는 자는 명성을 떨칠 뿐 아니라, 용국의 국운까지 계승할 수 있다는걸!”서영호가 냉소하며 말했다.“한지훈 그 자식의 좋은 날도 이제 끝났습니다. 대전이 끝나는 날이 바로 그가 용심을 넘기고, 목숨을 내놓는 날이 될 겁니다!”이 말을 하며, 서영호의 눈에서는 살기가 번뜩였다.태어나서 지금껏 누가 그를 무릎 꿇게 한 적 있었던가?하지만 오륙에서, 한지훈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그때의 굴욕을 떠올릴 때마다 서영호는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켰다.허천지는 서영호가 한지훈을 언급하며 증오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매우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속으로 기뻐했다.한편, 한지훈 일행은 점심을 먹은 뒤 허천이 한지훈을 데리고 마을을 둘러보러 나섰다.과거엔 이 작은 마을이 특별한 구석이라곤 없었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각국의 거물들이 몰려오면서, 연예계 스타나 유명 국제 서커스단까지 이곳에 모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길을 걷는 동안에도 한지훈은 익숙한 얼굴들을 여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