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나운 기세에 강씨 가문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한지훈이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를 마주한 듯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전혀 숨길 생각도 없는 날카로운 살기에 짓눌린 사람들은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라도 튈까 봐 저마다 몸을 사렸다.모녀는 땅에 엎드린 채 서로를 감싸 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지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제 아버지를 발견한 아이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저 사람들이 엄마랑 고운이를 괴롭혔어. 흑흑..."한고운을 안아 든 한지훈은 아이의 뺨에 난 커다란 손자국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어본 그가 소리쳤다."누가 감히!"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강씨 가문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숨을 자리를 찾기 바빴다. 겁을 잔뜩 먹은 설해연도 마찬가지였다.한지훈의 기세에 모두 몸을 벌벌 떨었다. 그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거니와 변변찮은 저항도 할 수 없었다."다시 묻겠습니다. 누가 고운이를 이 꼴로 만들었습니까!"한지훈의 두 눈은 분노로 번들거리고 있었다.자그마치 오 년이다. 그동안 강우연과 딸 고운이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두 사람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주제에 지금, 이 꼴은 다 뭐란 말인가, 딸아이가 뺨을 얻어맞다니! 한지훈은 가슴이 미어지는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북양구 총사령관의 딸이었다. 용국의 공주님과 마찬가지인 아이가 누군가에게 이런 폭력을 당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이곳이 아니었다면 한고운에게 손을 댄 이는 진즉 사지가 찢겼을 터였다.한지훈의 사나운 고함에 사람들은 일제히 설해연에게 눈길을 던졌다. 더는 숨을 곳이 없다고 판단한 설해연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오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맞아, 내가 그랬어.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설마
자신 때문에 무릎을 꿇은 강우연을 보며 한지훈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한결같이 착하고 가냘팠다. 마치 강씨 가문 사람들의 악마와 같은 본성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이."우연아, 일어나. 나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무릎 꿇을 필요 없어."한지훈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다.짝!그러나 몸을 일으킨 강우연은 한지훈의 뺨을 때리며 고통스럽게 절규했다. 두 볼엔 눈물 자국이 흥건했다."지훈 씨, 제발 좀 그만 해요! 언제까지 이럴 건데요? 당신 때문에 5년 동안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데... 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제발 더는 일을 키우지 말란 말이에요!"눈시울을 잔뜩 붉힌 강우연이 한고운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지훈 씨, 고운이는 내 딸이에요. 내 아이라고요. 그러니 지훈 씨가 뭔가를 해줄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대체 무슨 사이라고요! 물론 그날 나를 위해 나서주고, 그동안 고운이를 아껴준 건 고맙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건 다 당신 때문이잖아요!"강우연은 아예 목 놓아 울어버렸다. 5년 동안 겪었던 수모들, 요 며칠 사이 강씨 가문에서 당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마침내 감정이 둑 터지듯 쏟아졌다.그녀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5년 사이, 강우연은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웃음, 욕설을 홀로 견뎌야 했다. 강씨 가문에 돌아가면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싶었으나 그녀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한지훈의 한쪽 볼에 선명한 손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멍하니 서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강우연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심장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고통스러웠다.단지 강우연을 아껴주고 지켜주며 그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우연아, 내가 미안해."사과를 내뱉는 한지훈의 눈에 자책의 감정이 가득 서렸다.강준상이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대답해 보거라. 저 차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의심
한지훈은 입을 다물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서렸다.마음 같아서는 강우연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걸핏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거나 누군가의 원한을 살 만한 몹시도 위험한 일들이었다.물론 한지훈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매 순간 강우연과 한고운의 곁에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지금으로선 사사로이 북양구 삼십만의 사병들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삼천 명의 신룡전 인재들을 귀국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용각 원로들은 용일을 통해 지난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는 의사를 넌지시 표명했다. 비록 책망하진 않았으나 그들은 은근히 경고를 보냈었다.북양구 총사령관이 삼십만 사병을 움직였으니 용국에서 충분히 경계할만했다. 높으신 분들에게 불안을 조성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으니.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한지훈을 바라보는 강우연의 눈시울이 또다시 젖어 들기 시작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떨어지는 눈물을 감춘 그녀는 크게 심호흡했다."됐어요. 말하기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요. 지훈 씨, 난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고 고운이를 잘 키울 수도 있어요. 만약 지훈 씨가 정말 고운이의 아빠가 되고 싶은 거라면, 더 많은 시간을 아이에게 투자하고 나랑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내게 필요한 건 저런 차가 아니라..."차마 그다음 말을 내뱉지 못한 강우연은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쾅, 거친 소리와 함께 방문이 굳게 닫혔다. 좁은 거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한숨을 내쉰 한지훈은 정원에서 쓸쓸하게 담배를 피웠다.강우연의 마음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모녀에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두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었다.십 분 사이에 한지훈은 담배를 다섯 대나 태웠다. 불현듯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풀메이크업에 클러치백을 멘 강우연이 걸어 나왔다.
BMW의 미끈한 차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우연은 순순히 조수석에 올랐다.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차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강우연은 어쩐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창밖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한지훈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강우연이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은 약속 장소인 그랜드 호텔에 도착했다. 주차를 마친 한지훈과 강우연이 차에서 내리자 바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어머, 강우연? 진짜 강우연이네? 웬일이야. 너도 방금 왔어? 이쪽은... 네 남편? 훗, BMW가 웬 말이야. 너무 궁상맞은 거 아니니?"미간을 찌푸린 두 사람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화장을 하고 명품 옷에 값비싼 액서서리를 주렁주렁 매단 여자가 차키를 무심하게 눌렀다. 그러자 뒤에 주차된 페라리가 번쩍 빛났다. 그녀는 한정 출시된 루이비통 신상 가방을 손에 쥐고 있었다.강우연은 그녀의 무례함에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예의를 지켰다. 귀 뒤로 머리를 넘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수연아, 오랜만이야."수연이라 불린 20대 여성은 평범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짙한 화장 덕분에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가느다란 허리를 살랑 흔들며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 그녀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우리 너무 오랜만이다, 우연아. 요즘은 어떻게 지내? 5년 전의 일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났다며? 진짜야? 정말 힘들었겠다.""너도 참,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말했어야지. 우린 친구잖아? 알았으면 당연히 내가 도와줬지."강우연은 그 말들이 너무 불편했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마워, 수연아."수연은 겉으로는 거짓 미소를 한껏 짓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론 그녀를 무시하고 비웃었다.가식으로 가득 찬 이 우정 놀음 속, 강우연은 한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명문가 도련님과 부자들의 구애를 받는 강우연의
그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강우연을 쫓아다녔지만 강우연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마침 한윤아는 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강우연과 한윤아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윤아는 그 남자 때문에 강우연에게 손찌검하기까지 했다.강우연이 머뭇거리자 수연이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무슨 생각해? 얼른 들어가자니까."세 사람은 빠르게 예약 장소로 올 수 있었다. 방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남녀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명품백이나 시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다들 주목해 주세요, 여신 강우연 님이 왔답니다!"방안에 들어선 수연이 손뼉을 치며 모두의 주의를 끌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커다란 파티룸 테이블 위에는 값비싼 술과 디저트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또 저마다 포르쉐나 페라리, 또는 람보르기니 차키를 보란 듯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게다가 방 안에 앉아 있는 서너 명의 여자들은 모두 명품 브랜드의 옷을 걸치고 있었고 그들의 곁에는 루이비통, 구찌, 발렌시아가를 비롯한 명품백들이 놓여 있었다. 액세서리들도 하나같이 비싼 것들이었다.잘난 남성들이 그런 그녀들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그들은 모두 부잣집 도련님이거나 상류 계층 사람들 같았다.웃음소리가 만연했던 방안은 강우연의 등장으로 금세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무리의 중간에 예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청순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미인은 강우연을 발견하고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한껏 미소를 머금은 여자가 강우연을 덥석 끌어안으며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우연아, 너무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갑작스러운 포옹에 잔뜩 굳어버린 강우연은 한참 뒤에야 가까스로 여자를 안아줄 수 있었다. 이내 눈시울을 붉힌 강우연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윤아야..."강우연을 놓아준 윤아도 눈물을 글썽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자신의 곁으로 강우연을 슬쩍 잡아당겼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조
그 말을 들은 남성들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들은 애써 가식적인 미소를 쥐어짜 냈다.그중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한 남성이 몸을 일으키며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강우연 씨의 남편분이시군요.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차림새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옷을 갈아입을 시간조차 없었는지, 아니라면 저희를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네요."당황한 강우연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해명하려는 찰나, 한지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능력도 변변찮고 직업도 없습니다. 오늘은 그저 제 아내의 파트너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겁니다.""하하, 백수라는 말입니까?"남자가 한껏 비웃음을 담은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작게 코웃음 쳤다."다들 모르셨죠? 이 사람이 바로 그 5년 전 망해버린 한정그룹의 자제, 한지훈이에요. 이젠 강씨 가문의 데릴사위죠."한시라도 입을 놀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연이 얼른 끼어들며 한껏 비꼬았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뭐?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그 한정그룹 사람이라고?""세상에나. 우연아, 왜 모임에 이런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야. 재수 없게.""그러게, 윤아는 아직도 널 친구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설마 윤아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있던 강우연의 얼굴이 금세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가 얼른 해명했다."윤아야, 내가 다 설명할게. 다른 의도는 전혀 없고, 그냥 내 파트너로 데리고 온 것뿐이야."강우연이 간절한 시선을 담아 한지훈을 쳐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정말 미안한데 잠깐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어쩐지 절박해 보이는 강우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지훈이 한숨을 삼켰다."알았어. 문 앞에서 기다릴게. 무슨 일 있으면 불러."말을 마친 한지훈은 바로 복도로 나가 연신 담배를 피웠다.한지훈이 방 안을 벗어나자마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한윤아
"윤아야... 너 왜..."와인을 뒤집어쓴 강우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가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드디어 화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건 그녀만의 착각이었다."왜겠어. 다 네가 나보다 잘나고 예쁜 탓이지. 너 때문에 우리는 늘 조연으로 살 수밖에 없었어. 어느 누가 그런 삶을 원하겠어?"한윤아가 잔뜩 표정을 찡그리며 강우연을 노려보았다."지금 네 꼴을 봐. 넌 그냥 천박한 걸레일 뿐이야. 우리가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만약 네가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오늘은 봐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거부한다면 이 자리에서 네년을 망가뜨려 주겠어.""윤아 말이 맞아. 얼른 무릎 꿇고 우리에게 사과해.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부모님께 혼날 일도 없었을 거야."별 볼 일 없는 외모에 뚱뚱한 여자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강우연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너만 아니었으면 난 진작 우리 학교 킹카와 사귈 수 있었어! 그 바보 같은 녀석이 너를 쫓아다니지만 않았어도... 생각할수록 열받네. 강우연, 당장 사과하지 않고 뭐해!"수수한 외모의 여자도 벌떡 일어서며 강우연에게 손가락질했다.강우연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진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몹시 두렵고 억울했던 그녀는 당장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한윤아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윽고 머리채마저 잡힌 그녀는 꼼짝할 수 없었다. 한윤아가 사납게 소리 질렀다."도망치려고? 어림도 없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망한 집안 자식을 데려와. 네 눈엔 내가 호구로 보이지? 얘들아, 뭐해. 얼른 이년의 버릇을 고쳐주지 않고. 스스로 무릎 꿇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마."여자들이 사나운 기세로 강우연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이들은 강우연의 머리채를 잡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방 안은 마
한윤아가 차갑게 비웃었다."왜긴, 그냥 네가 강우연이라서 그래. 뭐해, 계속해."쾅!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믿을 수 없게도 방문은 거대한 위력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남자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붉게 핏발선 두 눈과 꽉 쥔 주먹에서 무지막지한 살기가 느껴졌다. 강우연을 모질게 괴롭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본 한지훈이 포악하게 고함을 질렀다."네놈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다."날렵하게 강우연 곁으로 다가간 한지훈의 발길질 한 번에 뚱뚱한 여자가 테이블 쪽으로 나가떨어졌다.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테이블이 두 조각나며 깨진 술병에서 온갖 술이 줄줄 흘러내렸다.땅에 고꾸라진 뚱뚱한 여자의 등에 날카로운 조각들이 박혔다. 살이 찢어지며 그녀의 등은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여자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아악! 내 등!"이윽고 한지훈은 강우연 곁에 서 있던 다른 여자의 뺨을 매섭게 내려쳤다. 뒤로 몇 미터나 날아간 그녀는 무서운 굉음과 함께 TV에 부딪혔다. 거대한 TV가 산산이 조각났다.이가 가득 부러진 여자는 몸이 바닥에 닿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우연아!"한지훈은 비틀거리는 강우연을 부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잔뜩 상처받은 강우연은 초라한 몰골로 한지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나 너무 지쳤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알았어. 집에 가자. 그렇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지훈이 싸늘한 시선으로 한윤아 무리를 훑었다.그는 먼저 강우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차 안으로 옮겼다. 뒷좌석에 누워 벌벌 떨고 있는 강우연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한지훈이 이내 야차 같은 얼굴로 온몸에 살의를 두른 채 파티룸으로 쳐들어갔다.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한기가 호텔을 순식간에 덮쳤다.호텔 내부에는 이미 한윤아의 명령을 받은 열몇 명의 경호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 호텔은 한윤아네 집안 소유였다."당
만약 이 없었더라면 한용은 지난 20년간, 무적천과 어깨를 겨누며 4성 천급 천신의 경지까지 쉽게 오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모색하고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적천과는 달리, 한 씨 집안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까지 손에 넣게 됐으니, 그 무엇보다도 탄탄한 백전백승의 체계를 보유하게 됐다. 능력이 진화하는 속도든, 각종 역량에 대한 장악 정도든 그들은 그 어느 하나 무적천에 뒤쳐지는 게 없었다. “너...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게 있어!”눈치 빠른 허연생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몸을 돌려 차갑게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난 오늘 반드시 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곧이어 한지훈은 쏜살같이 앞으로 한걸음 뛰어나와 한 주먹으로 허연생의 급소를 쳤다. 허연생은 비록 한지훈에 비해 얻은 깨달음도 적고 게다가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한 세대를 장악했던 강자였기에 역시나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가슴을 노리는 한지훈의 주먹을 보아낸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는 도리여 한지훈의 아랫배를 강하게 내리쳤다. “후!” 순간 한 줄기의 강한 바람과 기운이 한지훈의 급소를 공격하게 됐다. 분명 같은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허연생이 뻗은 이 주먹은 비록 보기에는 그렇게 큰 기세는 아니었지만 힘이 매우 강했다. 그는 모든 힘을 한 주먹에 집중하여 최대한 기운을 폭발시킬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역공격에 당황한 한지훈은 더욱 정신을 다잡고는 급히 주먹을 휘두르며 방어하였다. “팍!”그렇게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게 되었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그 충돌 소리는 매우 컸다. 두 강자가 뿜어낸 엄청난 기운에, 마당에 있던 바위마저도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죽어!”허연생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 그러자 푸하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독기가 그의
‘허연생? 이 사람은 이미 30년 전에 무종에서 물러난 사람 아니야?’ 사실 허연생에게는 휘황찬란한 과거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무종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수십 개 종문의 장교 문주들을 무너뜨리고는 무신종과도 대결을 겨룬 강자였다. 당시 무적천은 매우 의기양양하게 바로 허연생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2성 현급 천왕계 밖에 다다르지 못한 무적천과는 달리, 허연생은 당시 이미 4성 천급 천왕에 다다르게 됐다. 그러나 허연생은 무적천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중상까지 입어 하마터면 무신종에서 참사할 뻔하기도 했다. 만약 당시 무적천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체하지 못했더라면, 허연생은 진작에 그곳에 무덤으로 남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무적천에게 패한 후로부터 허연생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줄곧 무종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동안 그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살하여 죽었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수치심을 느끼고 자취를 감췄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 예상치 못한 허연생의 출현은 한지훈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그는 허연생을 꺼리는 것보다도, 낙 선생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잡히지가 않아 답답했다. 그동안 3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춰온 사람을 이렇게 손쉽게 드러내는 낙 선생의 절대적인 힘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한지훈의 모습에 허연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봐, 청년. 내 명성을 듣게 된 이상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는 없겠지? 당장 무릎 꿇어!”“한지훈, 어서 비켜.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강만용은 급히 앞으로 나가 한지훈을 타일렀다. 그 또한 허연생의 명성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허연생은 그야말로 모든 경계를 막론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강로 님은 그동안 용국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각로라는 칭호에 절대 부
순간 어안이 벙벙 해난 집행 대원은 떨어진 손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손목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됐다. “아악! 내 손!”이내 집행 대원이 손을 뻗어 상처를 부여잡자, 피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구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장문로도 깜짝 놀랐다. “나야!”바로 그때, 한지훈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손으로 그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를 풀어주면 네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줄게. 그렇지 않으면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거야.”한지훈의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장문로는 순간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한지훈이 더 이상 북양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장문로는 얼굴에 흉악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 역시나 너희 사이에 뭔가 결탁이 있긴 하나 보네! 차라리 잘 됐어. 굳이 강중까지 찾아가서 사람 잡을 일은 덜게 됐네!”“여봐라, 당장 한지훈을 치워내!” 곧이어 10여 명의 집법 대원들이 동시에 권총을 꺼내 들어 총구를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겨누었다. 필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양 왕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한지훈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십여 자루의 권총을 마주하고도 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을 뿐,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크흠!”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검복을 입은 한 노인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지훈, 낙 선생은 진작에 네가 이렇게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어!” 노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훑어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한지훈 또한 그 노인을 훑어보았는데, 노인은 뜻밖에도 삼성 천왕계의 고수였다. 보아하니 낙 선생이 이번에 제대로 벼른 듯했다. “난 바로 낙 선생의 명령을 받들고 너를 잡으러 온 거야!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너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 좀 거칠어질 수도 있거든.” 삼성 지급 천왕계는 역시나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 남자는 큰 손으로 어린 남자아이의 머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이를 악물고는 절대 울지를 않았다. “장문로! 당시 넌 용국의 여자 아이를 추행했잖아. 그때 그 아이, 겨우 16살이었어. 하지만 넌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능욕했었지!”“용국의 전관으로서 그런 짓을 벌이면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그런데 만약 그 당시 내가 너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들 불공평할 거라고 생각할게 뻔하잖아?”강만용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노호하였다. 그러자 장문로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아이를 다른 한 집법 대원에게로 밀치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걸친 중산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만용, 너 지금 혹시 나를 질투하는 거야?”“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쨌든 현명하신 낙 선생이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난 지금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잖아. 반면 너는 비참한 미래를 앞두고 있고!”“너희들 정말 한통속이었구나! 언젠가는 고통스럽게 벌 받게 될 거야!”잔뜩 화가 난 강만용은 씩씩대며 눈을 부릅 떴지만, 장문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 당장 네 죄나 인정하라고!”이내 장문로는 이미 완벽하게 작성된 진술서 한 장을 강만용에게 던졌다. 위에 적힌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바로 그들 용각 삼로가 한지훈과 함께 군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 진술서를 확인한 강만용은 크게 웃었다. “왕년에 천 평이 넘는 땅을 국가에 순순히 바친 나인데, 내가 굳이 이 몇 조원의 군비를 횡령할 이유가 있을까?” “아휴...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네. 이렇게나 간사한 놈이 용권의 정권을 잡게 놔두시다니. 정말 보는 눈도 없으시네!” 강만용이 진술서를 찢으려 하자 장문로는 바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들어 단칼에 남자아이의 옷을 찢어버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만용, 너 잘 생각해. 내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자는 더 이상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얼핏 봐도 방금 전, 지독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지훈! 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강만용은 한지훈과 용운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금치 못하고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용경에서 온 한 무리의 문관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무고하게 산채로 맞아 죽게 되는 상황에서도 강만용은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신한국의 아들인 신국호 또한 몽둥이로 수차례 얻어맞아 두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고, 심지어 피까지 많이 흘리게 되어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야말로 두 집안이 하룻밤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누구예요! 대체 누굽니까? 어느 개자식이 감히 이렇게 잔인한 수를...”잔인하게 놈들의 수단에, 용운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당장이라도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에휴, 됐어. 아마도 이 늙은이가 그동안 사는 동안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이 날 벌하려나보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겠는데 일단 방에 가서 앉아있어!”신한국은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한지훈과 용운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강로님, 국왕께서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거랍니까? 낙 선생은 대체 또 어떤 구실로 강로 님의 가족을 건들게 된 건가요?”한지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강만용은 결국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물려받은 천 평 넘는 가택이 있는데, 낙 선생은 내가 군비를 횡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국왕이 직접 장문로까지 파견하여 조사하게 한 거고.”“조사요?”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찬 용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조사라는 거지? 사람이 죽게 됐잖아!’ “용운아!”한지훈이 낮은 소리로 호통을 치자 용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놈들은 어젯밤, 강로 님을 끌고 가기라도 했나요?”한지훈
“뭐라고?”그 소식을 들은 한지훈은 순간 대경실색하였다. 강만용과 신한국 두 사람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낙 선생이 굳이 그 둘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는 급급히 말했다.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인데?”“바로 어제저녁, 낙 선생이 파견한 사람들은 이미 두 각로의 거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저의 부하들이 찾아와서 보고한 데에 따르면 두 각로의 아들들 역시 모두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세한 상황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두 각로님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저희 쪽에서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한참을 깊이 생각하던 한지훈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거듭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직접 갈게!”사실 신룡전은 충분히 강만용과 신한국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낙선생에게 약점을 잡혀 다시 국왕 앞에 불려갈 가봐 신경이 쓰였다. “용왕 님, 차라리 제가 사람들을 먼저 보낼까요?”용운은 내심 걱정이 됐다. “괜찮아. 나 곧 출발할 거니까 바로 헬리콥터를 안배시켜!”한지훈은 말을 마치자 전화를 끊었다. “여보, 이렇게나 많이 다쳤는데 당분간은 외출하지 마요. 아무리 그래도 상처를 다 치료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야죠...”약재 한 그릇을 든 채 마침 마당으로 나온 강우연은 한지훈을 걱정하며 말했다. 그녀는 한지훈과 용운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잘 듣지는 못했지만 헬리콥터를 보낸다는 얘기는 듣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상처가 낫지 않은 한지훈을,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니게 놔둘 수는 없었다. “아니. 듣자 하니 두 각로가 큰 일을 당한 것 같아. 오양 각로께서 이미 나를 구하려다 희생하게 됐어. 더 이상 강로와 신로도 그 뒤를 따르게 놔둘 수는 없다고!”한지훈은 말을 마치고는 약재를 꿀꺽 마셨다. 이내 국그릇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강우연을 달래주었다. “나 괜찮아. 내가 강중에 없는 사이, 만
심지어 도청 전인의 나이는 강우연의 할아버지보다도 열몇 살이나 더 많았다. “이렇게 위급할 때일수록 강경한 태도로 나섰다가는 주상만 또 다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저희 천검종은 얼마든지 주상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감히 반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릴 겁니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한비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셋째 삼촌의 의견을 순순히 따라서 다행이지, 아니면 나 씨 집안 역시 풍비박산 날 뻔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피비린내 나지 않을까요?”강우연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리 복수를 한다 하더라도 아예 온 집안을 몰살시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사모님, 절대로 한 치의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오늘 반대로 주상께서 원효천에게 패하게 됐다면...” 감정이 북받친 도청 전인은 순간 멈칫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아요. 만약 오늘 한 선생님이 패하기라도 했다면 저희 나 씨 집안 또한 다른 가문에게 몰살당했을 것입니다!”나계홍은 극히 찬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두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한지후는 담담하게 강우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이번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강우연에게 맡겼다. 누구나 한 번씩 겪어보게 될 과정이었기에, 그는 강우연의 선택을 지켜보기로 했다. 비록 내심 그 또한 도청 전인의 의견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만일 강우연이 다른 선택을 하게 되면 그 또한 지지할 생각이었다. “그...”강우연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창백한 얼굴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후에야 한지훈에게 말했다. “여보, 저랑 얘기 좀...”“네가 어떻게 결정하든 뭐든지 지지해!”한지훈은 강우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나계홍의 시선은 곧바로 강우연에게로 향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말 한마디로 앞으로 강중의 세력 구분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전투에서 나 씨 집안의 역할 또한 강우연의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사모님! 절대로 자비를 베풀어서는
낙 선생의 말을 들은 국왕은 뜻밖의 소식에 다소 놀라긴 했다. 신한국과 강만용의 저택이 천 평이 넘을 줄이야. 이 모든 건 진작에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무려 30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 저택들은 모두 두 집안의 조상이 직접 물려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30년 전, 신한국과 강만용 두 사람은 용각에 들어간 날 바로 천 평의 가옥을 모두 국가에 상납하여 자신들의 청렴을 증명하였다. “폐하, 왜... 왜 그러십니까?”국왕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아낸 낙 선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내 국왕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제 보니 너무 가증스러워서! 당장 사람들을 보내서 더욱 자세히 조사하고, 결과를 나한테 보고해!”“네!”발걸음을 옮기던 낙 선생은 뭔가 떠오른 듯이 다시 몸을 돌려 국왕에게 말했다. “폐하, 그 한지훈은...”“그것도 조사해. 하지만 한지훈한테는 들키지 않게 암암리에서 조사하고 있어!” 말을 마치자마자 국왕은 손을 살짝 흔들며 낙 선생더러 물러나라고 하였다. 그렇게 낙 선생이 멀리 떠나고 나서야, 국왕의 곁을 지키고 있던 한 궁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폐하, 저 자는 짐승 같은 야망을 갖고 있는데 정말 그냥 방심하실 생각이신겁니까?”“방심?”그러자 국왕의 눈빛에서는 갑자기 두 줄기의 차가운 빛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낚시를 하려면 미끼도 잘 골라야 해. 던지는 미끼가 클수록 물고기도 더 큰 걸 낚을 수가 있는 거야!”뒤이어 국왕은 천자각 9층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그는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 그 또한 낙 선생의 꿍꿍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용국을 향한 오양 각로의 충성도 대단했기에, 그는 애초에 조사를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낙 선생은 애초에 의도를 품은 채 국왕의 곁에 와서 그를 모시며 상위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었다. 이런 사람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큰 세력이 숨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는 결코 드러난 무신종의 존재
지금 그들에게 있어 가장 비참하게 느껴진 것은 바로 자신들의 운명이었다. 오늘 원 씨 집안이 허무하게 패배하게 된 이상, 그들은 자신들의 앞날이 대충 짐작이 갔다. 그 와중에도 매우 분통한 것은, 원효천 이 늙은 영감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한 수도 이겨내지 못하고 한지훈의 졸개 손에 죽게 되다니. 줄곧 원 씨 집안을 믿고 자신들의 모든 가산과 목숨마저 걸었던 그들은 이제 막막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패가망신하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원 씨 집안까지 끌어들여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우린... 일단 용경으로 돌아간다!”원상용은 겨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내 그는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강중의 세력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 원 씨 집안, 어찌 한지훈 어린놈한테 휘둘릴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용경으로 돌아간 후, 바로 남은 세 명의 노조한테 도움을 청할 겁니다. 반드시 한지훈을 죽일 수 있게!”말을 마치자마자 원상용은 성큼성큼 링 아래로 내려갔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비할 데 없는 후회감이 들었다. 애초에 원 씨 집안을 굳게 믿은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도 원 씨 집안이 자신들을 위협하려 할 줄은 몰랐다. 사실 원상용이 방금 한 말은,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원 씨 집안에는 아직 세 명의 노조가 있으니, 그들은 어떻게든 마음만 먹으면 복수를 할 수가 있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뒤이어 원 씨 집안사람들은 원상용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링에서 내려왔다. 한편 그 시각, 멀리 용경에 있는 국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지훈이 멋지게 전투를 치를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원 씨 집안에서 두 노조가 돌아가시게 된 것도, 이는 다른 가문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게 뻔했다. “폐하, 낙 선생께서 찾아오셨습니다!”바로 그때 한 궁인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