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잠옷차림을 한 고운이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소란에 깬 것 같았다.아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엄마를 보자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작은 몸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이 나쁜 사람들! 당신들 다 나쁜 사람이야!""고운아!"강우연은 딸을 품에 꼭 끌어안고 두려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하! 하나는 미친년이고 하나는 더러운 핏줄이네? 이 인간들을 우리 가문에 들이는 게 아니었어!""강우연, 이제 그만하고 솔직하게 털어놔! 안 그러면 저 꼬마랑 같이 짐 싸서 쫓겨날 줄알아!"고운이는 침착하게 손을 뻗어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엄마, 울지 마. 아빠가 우리 지켜준다고 약속했어.""야, 꼬마야! 너 지금 꿈 꾸니? 무능한 네 아빠가 무슨 수로 너희를 지켜줘? 그래서 너희 아빠 지금 어디 있는데? 혼자 도망갔을걸?"설해연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아니야! 우리 아빠 고운이랑 엄마를 두고 도망갔을 리 없어! 아빠가 꼭 돌아와서 지켜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강우연의 품을 벗어난 한고운은 설해연에게 달려가서 작은 손으로 힘껏 그녀를 밀치며 반박했다. 놀란 설해연은 다급히 뒤로 물러서다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이 잡것이 어디서! 어쩐지 멍청한 네 아빠를 꼭 닮았네! 넌 오늘 내 손에 혼날 줄 알아!"분노한 설해연은 일어서자마자 손을 들어 고운이의 뺨을 때렸다.묵직한 힘에 고운이는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고 입가에 피가 스며나왔다. 아이의 하얀 볼에는 뻘건 손자국이 찍혔다."아… 아파…."고운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고운아!"그 모습을 본 강우연은 바로 달려가서 아이를 품에 안았다."고운아,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아이의 입가에 배어난 피를 보자 강우연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설해연을 쏘아보았다."당신이 뭔데 내 딸을 때려요!"설해연은 잠깐 당황하나 싶었지만 이내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말했다."애가 예의 없이 굴면 맞아야지! 이래
그 사나운 기세에 강씨 가문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한지훈이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를 마주한 듯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전혀 숨길 생각도 없는 날카로운 살기에 짓눌린 사람들은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라도 튈까 봐 저마다 몸을 사렸다.모녀는 땅에 엎드린 채 서로를 감싸 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지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제 아버지를 발견한 아이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저 사람들이 엄마랑 고운이를 괴롭혔어. 흑흑..."한고운을 안아 든 한지훈은 아이의 뺨에 난 커다란 손자국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어본 그가 소리쳤다."누가 감히!"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강씨 가문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숨을 자리를 찾기 바빴다. 겁을 잔뜩 먹은 설해연도 마찬가지였다.한지훈의 기세에 모두 몸을 벌벌 떨었다. 그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거니와 변변찮은 저항도 할 수 없었다."다시 묻겠습니다. 누가 고운이를 이 꼴로 만들었습니까!"한지훈의 두 눈은 분노로 번들거리고 있었다.자그마치 오 년이다. 그동안 강우연과 딸 고운이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두 사람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주제에 지금, 이 꼴은 다 뭐란 말인가, 딸아이가 뺨을 얻어맞다니! 한지훈은 가슴이 미어지는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북양구 총사령관의 딸이었다. 용국의 공주님과 마찬가지인 아이가 누군가에게 이런 폭력을 당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이곳이 아니었다면 한고운에게 손을 댄 이는 진즉 사지가 찢겼을 터였다.한지훈의 사나운 고함에 사람들은 일제히 설해연에게 눈길을 던졌다. 더는 숨을 곳이 없다고 판단한 설해연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오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맞아, 내가 그랬어.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설마
자신 때문에 무릎을 꿇은 강우연을 보며 한지훈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한결같이 착하고 가냘팠다. 마치 강씨 가문 사람들의 악마와 같은 본성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이."우연아, 일어나. 나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무릎 꿇을 필요 없어."한지훈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다.짝!그러나 몸을 일으킨 강우연은 한지훈의 뺨을 때리며 고통스럽게 절규했다. 두 볼엔 눈물 자국이 흥건했다."지훈 씨, 제발 좀 그만 해요! 언제까지 이럴 건데요? 당신 때문에 5년 동안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데... 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제발 더는 일을 키우지 말란 말이에요!"눈시울을 잔뜩 붉힌 강우연이 한고운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지훈 씨, 고운이는 내 딸이에요. 내 아이라고요. 그러니 지훈 씨가 뭔가를 해줄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대체 무슨 사이라고요! 물론 그날 나를 위해 나서주고, 그동안 고운이를 아껴준 건 고맙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건 다 당신 때문이잖아요!"강우연은 아예 목 놓아 울어버렸다. 5년 동안 겪었던 수모들, 요 며칠 사이 강씨 가문에서 당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마침내 감정이 둑 터지듯 쏟아졌다.그녀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5년 사이, 강우연은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비웃음, 욕설을 홀로 견뎌야 했다. 강씨 가문에 돌아가면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싶었으나 그녀의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한지훈의 한쪽 볼에 선명한 손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멍하니 서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강우연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심장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고통스러웠다.단지 강우연을 아껴주고 지켜주며 그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우연아, 내가 미안해."사과를 내뱉는 한지훈의 눈에 자책의 감정이 가득 서렸다.강준상이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대답해 보거라. 저 차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의심
한지훈은 입을 다물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서렸다.마음 같아서는 강우연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걸핏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거나 누군가의 원한을 살 만한 몹시도 위험한 일들이었다.물론 한지훈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매 순간 강우연과 한고운의 곁에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지금으로선 사사로이 북양구 삼십만의 사병들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삼천 명의 신룡전 인재들을 귀국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용각 원로들은 용일을 통해 지난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는 의사를 넌지시 표명했다. 비록 책망하진 않았으나 그들은 은근히 경고를 보냈었다.북양구 총사령관이 삼십만 사병을 움직였으니 용국에서 충분히 경계할만했다. 높으신 분들에게 불안을 조성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으니.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한지훈을 바라보는 강우연의 눈시울이 또다시 젖어 들기 시작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떨어지는 눈물을 감춘 그녀는 크게 심호흡했다."됐어요. 말하기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요. 지훈 씨, 난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고 고운이를 잘 키울 수도 있어요. 만약 지훈 씨가 정말 고운이의 아빠가 되고 싶은 거라면, 더 많은 시간을 아이에게 투자하고 나랑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내게 필요한 건 저런 차가 아니라..."차마 그다음 말을 내뱉지 못한 강우연은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쾅, 거친 소리와 함께 방문이 굳게 닫혔다. 좁은 거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한숨을 내쉰 한지훈은 정원에서 쓸쓸하게 담배를 피웠다.강우연의 마음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모녀에게 필요한 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두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었다.십 분 사이에 한지훈은 담배를 다섯 대나 태웠다. 불현듯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풀메이크업에 클러치백을 멘 강우연이 걸어 나왔다.
BMW의 미끈한 차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우연은 순순히 조수석에 올랐다.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차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강우연은 어쩐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창밖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한지훈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강우연이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은 약속 장소인 그랜드 호텔에 도착했다. 주차를 마친 한지훈과 강우연이 차에서 내리자 바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어머, 강우연? 진짜 강우연이네? 웬일이야. 너도 방금 왔어? 이쪽은... 네 남편? 훗, BMW가 웬 말이야. 너무 궁상맞은 거 아니니?"미간을 찌푸린 두 사람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화장을 하고 명품 옷에 값비싼 액서서리를 주렁주렁 매단 여자가 차키를 무심하게 눌렀다. 그러자 뒤에 주차된 페라리가 번쩍 빛났다. 그녀는 한정 출시된 루이비통 신상 가방을 손에 쥐고 있었다.강우연은 그녀의 무례함에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예의를 지켰다. 귀 뒤로 머리를 넘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수연아, 오랜만이야."수연이라 불린 20대 여성은 평범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짙한 화장 덕분에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가느다란 허리를 살랑 흔들며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 그녀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우리 너무 오랜만이다, 우연아. 요즘은 어떻게 지내? 5년 전의 일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났다며? 진짜야? 정말 힘들었겠다.""너도 참,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말했어야지. 우린 친구잖아? 알았으면 당연히 내가 도와줬지."강우연은 그 말들이 너무 불편했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마워, 수연아."수연은 겉으로는 거짓 미소를 한껏 짓고 있었으나 마음속으론 그녀를 무시하고 비웃었다.가식으로 가득 찬 이 우정 놀음 속, 강우연은 한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명문가 도련님과 부자들의 구애를 받는 강우연의
그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강우연을 쫓아다녔지만 강우연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마침 한윤아는 그 남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강우연과 한윤아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윤아는 그 남자 때문에 강우연에게 손찌검하기까지 했다.강우연이 머뭇거리자 수연이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무슨 생각해? 얼른 들어가자니까."세 사람은 빠르게 예약 장소로 올 수 있었다. 방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남녀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명품백이나 시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다들 주목해 주세요, 여신 강우연 님이 왔답니다!"방안에 들어선 수연이 손뼉을 치며 모두의 주의를 끌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커다란 파티룸 테이블 위에는 값비싼 술과 디저트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또 저마다 포르쉐나 페라리, 또는 람보르기니 차키를 보란 듯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게다가 방 안에 앉아 있는 서너 명의 여자들은 모두 명품 브랜드의 옷을 걸치고 있었고 그들의 곁에는 루이비통, 구찌, 발렌시아가를 비롯한 명품백들이 놓여 있었다. 액세서리들도 하나같이 비싼 것들이었다.잘난 남성들이 그런 그녀들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그들은 모두 부잣집 도련님이거나 상류 계층 사람들 같았다.웃음소리가 만연했던 방안은 강우연의 등장으로 금세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무리의 중간에 예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청순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미인은 강우연을 발견하고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한껏 미소를 머금은 여자가 강우연을 덥석 끌어안으며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우연아, 너무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갑작스러운 포옹에 잔뜩 굳어버린 강우연은 한참 뒤에야 가까스로 여자를 안아줄 수 있었다. 이내 눈시울을 붉힌 강우연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윤아야..."강우연을 놓아준 윤아도 눈물을 글썽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자신의 곁으로 강우연을 슬쩍 잡아당겼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조
그 말을 들은 남성들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들은 애써 가식적인 미소를 쥐어짜 냈다.그중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한 남성이 몸을 일으키며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강우연 씨의 남편분이시군요.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차림새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옷을 갈아입을 시간조차 없었는지, 아니라면 저희를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네요."당황한 강우연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해명하려는 찰나, 한지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능력도 변변찮고 직업도 없습니다. 오늘은 그저 제 아내의 파트너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겁니다.""하하, 백수라는 말입니까?"남자가 한껏 비웃음을 담은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작게 코웃음 쳤다."다들 모르셨죠? 이 사람이 바로 그 5년 전 망해버린 한정그룹의 자제, 한지훈이에요. 이젠 강씨 가문의 데릴사위죠."한시라도 입을 놀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연이 얼른 끼어들며 한껏 비꼬았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뭐?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그 한정그룹 사람이라고?""세상에나. 우연아, 왜 모임에 이런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야. 재수 없게.""그러게, 윤아는 아직도 널 친구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설마 윤아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있던 강우연의 얼굴이 금세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가 얼른 해명했다."윤아야, 내가 다 설명할게. 다른 의도는 전혀 없고, 그냥 내 파트너로 데리고 온 것뿐이야."강우연이 간절한 시선을 담아 한지훈을 쳐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정말 미안한데 잠깐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어쩐지 절박해 보이는 강우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지훈이 한숨을 삼켰다."알았어. 문 앞에서 기다릴게. 무슨 일 있으면 불러."말을 마친 한지훈은 바로 복도로 나가 연신 담배를 피웠다.한지훈이 방 안을 벗어나자마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한윤아
"윤아야... 너 왜..."와인을 뒤집어쓴 강우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가슴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드디어 화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건 그녀만의 착각이었다."왜겠어. 다 네가 나보다 잘나고 예쁜 탓이지. 너 때문에 우리는 늘 조연으로 살 수밖에 없었어. 어느 누가 그런 삶을 원하겠어?"한윤아가 잔뜩 표정을 찡그리며 강우연을 노려보았다."지금 네 꼴을 봐. 넌 그냥 천박한 걸레일 뿐이야. 우리가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만약 네가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오늘은 봐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거부한다면 이 자리에서 네년을 망가뜨려 주겠어.""윤아 말이 맞아. 얼른 무릎 꿇고 우리에게 사과해.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부모님께 혼날 일도 없었을 거야."별 볼 일 없는 외모에 뚱뚱한 여자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강우연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너만 아니었으면 난 진작 우리 학교 킹카와 사귈 수 있었어! 그 바보 같은 녀석이 너를 쫓아다니지만 않았어도... 생각할수록 열받네. 강우연, 당장 사과하지 않고 뭐해!"수수한 외모의 여자도 벌떡 일어서며 강우연에게 손가락질했다.강우연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진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몹시 두렵고 억울했던 그녀는 당장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한윤아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윽고 머리채마저 잡힌 그녀는 꼼짝할 수 없었다. 한윤아가 사납게 소리 질렀다."도망치려고? 어림도 없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망한 집안 자식을 데려와. 네 눈엔 내가 호구로 보이지? 얘들아, 뭐해. 얼른 이년의 버릇을 고쳐주지 않고. 스스로 무릎 꿇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마."여자들이 사나운 기세로 강우연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이들은 강우연의 머리채를 잡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방 안은 마
정체 모를 필련이 떨어지게 되는 순간, 한지훈 체내의 자기장은 순식간에 봉쇄되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는 듯이 한지훈은 제자리에 몸을 고정하게 됐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필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찰칵!” 눈 깜짝할 사이에 필련은 완전히 떨어졌고, 한지훈은 순간 머리부터 발까지 심지어 몸속의 모든 세포가 비할 데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 느낌은 마치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은 것 같았고, 또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를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이 걸친 전투복은 사라지게 됐다. 심지어 그의 손에 있는 오릉군 가시조차 갑자기 알 수 없는 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갓 첫 번째 필련의 세례를 받은 후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수십 개의 필련이 다시 하늘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의 먹구름 덩어리 사이에서는 무수한 천둥 번개가 교차하면서 지면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지훈 발밑의 자갈조차도, 수많은 번개로 형성된 강력한 전류를 맞아 아예 투명하게 변해버렸다. 그렇게 한지훈이 거의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 알 수 없는 외부의 어떠한 힘이 한지훈의 체내 자기장을 다시 풀어냈다. 바로 그 순간, 한지훈은 급히 체내의 자기장을 동원하여 날아오는 수백 수천 개의 필련을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 두 갈래의 강대한 위압이 한곳에 부딪히게 된 순간, 곤륜허 전체는 순식간에 태양보다도 백배, 천배나 더 밝은 빛을 발했다. 비록 한지훈의 온몸은 금강석처럼 단단하긴 했지만, 그 역시나 이렇게나 강대한 위압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는 피부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지훈 몸 곳곳의 상처 부위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훈이 마지막 한 가닥의 힘을 동원하여 대항하고 있을 무렵, 그의 눈앞에 갑자기 붉은색과 검은색의 두 기류가 나타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두 갈래의 기류는 음양어의 형태로 바뀌어, 한지훈의 머리 위에서 맴
“넌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이 음양양의진은 너를 죽지 않게끔 보호해 줄 수 있어. 만약 네가 나중에 백룡심을 융합하게 된다면, 절대 이 비밀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명심해!”“그리고 백룡심을 융합하게 되면, 너의 실력은 천신계 강자까지 돌파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마음대로 세속의 일에 손을 댈 수가 없지. 하지만 그 규칙을 어겼다가는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을 초래하게 될 거야!”정봉교는 이내 단검 한 자루를 천천히 꺼냈다. “그런데... 두 분께서도 그동안 세속의 일에 자주 개입하면서...”한지훈은 예충기 역시 자신을 도와 세속의 일에 개입하여 사람을 참살한 건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정봉교와 예충기 두 사람은 일제히 단검을 자신들의 목구멍에 겨누었다. “두 분!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한지훈은 두 사람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설마 스스로 이곳에 무덤을 파려는 건 아니겠지? “한지훈,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그 놈들이 더 이상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 기 때문이야. 게다가 내가 그동안 죽인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아. 하나같이 다 마땅히 죽어야 할 놈들이긴 했어. 하지만 너는 다르지!”“우리 이 두 늙은이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만약 우리가 계속하여 살아있는다면, 혹시나 나중에 뇌해가 형성되기라도 한다면 그 위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우리가 죽어야만 네가 살 기회가 있어!”예충기는 고개를 들어 먹구름으로 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검은 구름층 속에는 천둥과 번개가 교차하고 있었다. 비록 뇌해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자극하는 그 기세는 이미 형성되었다. “안됩니다! 어르신, 설령 내가 이곳에서 분골쇄신하더라도 두 분과 함께 무사히 나갈 것입니다! 어떻게 저 혼자 살기 위해서 두 분을 여기서 죽게 놔둘 수 있겠습니까!”이내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뽑아 들어 자신의 목구멍을 겨눴다. “만약 두 분께서 기어코 이런 태도를
기나긴 오솔길을 따라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긴 했지만 전방에는 짙은 안개만 있을 뿐 더 이상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예충기 부부는 한지훈과 함께 절벽을 돌아서고 나서야 한 낡은 비석 앞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는 마치 이곳에서 경계가 나뉘는 것 같았다. 앞쪽에는 안개가 전혀 없지만 뒤에는 짙은 안개 바다가 여전히 있었다. “더 앞으로 나아가면 바로 곤륜허야.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곤륜이라고 할 수 있지. 과거 많은 고대 전설들이 바로 그곳에서 유래된 거야.”예충기는 눈앞의 수림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곤륜허와 곤륜이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두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곤륜산에 관한 모든 전설은 사실 곤륜허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지훈은 눈앞의 광경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곳은 온통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르신, 그나저나 곤륜허는 왜 이렇게 죽음의 기운이 짙은 겁니까?”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예충기는 앞으로 나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백룡심 때문이야. 백룡심은 원래 생사를 좌우할 수 있기에 죽음과 삶을 얼마든지 번갈아 왕복할 수 있지. 즉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인 거야!”“그리하여 곤륜허 외부에 보이는 건 단지 죽음의 기운 뿐이야. 곤륜허 내부에 들어가야만 생기를 보아낼 수 있어. 진정한 제준의 유총에 들어서야 보아낼 수 있어.”예충기의 얘기를 들은 한지훈은 오히려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자고로 묘지라면 죽음의 기운이 모인 게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왜 제준의 유총에는 생기가 모여있는 걸까? 비록 내심 많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한지훈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그저 예충기 부부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곤륜허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한지훈은 짙은 죽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공기 중에서는 시체 썩은 냄새까지 나기도 했다. “쾅! 우르릉!”한참을 걸어가던 와중, 하늘에서 갑자기 천
조용하기 그지없던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새벽,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게 되었고 심지어 한지훈은 반경 1 미터 밖의 사물조차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예 씨 어르신, 이 산에는 왜 안개가 이렇게 뿌연 거예요?”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이것은 안개가 아니라 살기란다. 곤륜 뇌해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뇌해 부근에 다다르기만 하면 그 누구든지 죽게 되더라고!”“그 음산한 기운이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었기에 이렇게나 큰 안개를 드러낼 수 있었던 거야! 준비됐지?”예충기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출발할 준비됐습니다!”한지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예충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밖에 나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이내 예충기는 신한국과 강만용의 거처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 두 노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는 입구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부부 두 사람, 오늘 떠나게 되면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 작은 정원은 모두 내가 너희들에게 남기는 유물이라고 생각하거라. 그리고, 여기에는 책도 뒀으니 틈만 나면 아이한테 읽어도 주고!”“다시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는 그래도 이 세상에도 헛되이 살지는 않은 것 같네!”예충기는 고서를 강만용의 손에 건네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씨 어르신! 설마... 어르신이랑 사모님 혹시...”“하하, 생사는 원래 한 끗 차이일 뿐이야. 오래 살수록 더더욱 생사를 신경 쓰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어!”“옳든 그르든 오늘 어떻게든 한 판을 걸긴 해야 해. 만약 3일 후에 한지훈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우리 부부가 도박을 잘못 걸었다는 것을 설명하겠지. 결국 하느님한테 진 거라고 볼 수 있겠지!”“너희들 굳이 나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 용국이 유유한 역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과중에 죽은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난
즉, 백 년 안에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뜻이었다.만약 한지훈이 이를 포기한다면, 다시 백 년을 기다려야 했다.그렇지 않다면, 설령 뇌해에 들어간다 해도 필멸의 길이 될 터.하지만 지금 한지훈의 상태로 뇌해에 들어간다면, 그 또한 구사일생이었다!“구사일생일지라도, 백 년에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한지훈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강만용과 신한국은 아무 말 없이 침묵에 빠졌다.예충기는 한지훈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말로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생사는 이미 도외시한 지 오래입니다. 북양에서만 해도 수백, 수천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예충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쪽에 있는 나무집을 가리켰다.“먼저 들어가 쉬어라. 내일 아침, 함께 곤륜허에 들어가도록 하지.”그렇게 말한 뒤, 예충기는 뒷짐을 진 채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한지훈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정봉교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먼저 들어가 쉬라고 신호를 보냈다.그리고는 예충기를 따라 함께 작은 뜰을 나섰다.곤륜 대산 속에 도착하자, 예충기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정봉교에게 말했다. “내일, 우리 둘은 반드시 함께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반드시 죽을 거야!”“영감, 저는 오히려 우리의 경지로 더 강력한 천뢰의 세례를 불러오지 않을까 두려워요. 자칫하면 그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어요!”예충기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면, 우리가 진법을 완성한 후 곧바로…”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다.사실, 둘 다 이미 알고 있었다.만약 자신들이 진법을 완성한 후 곤륜허에서 사라진다면, 뇌해의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 신이 아니었기에 단숨에 자신의 기운을 완전히 숨길 방법도 없었다.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뇌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오직 죽은
한지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우연의 손을 잡고 함께 헬기에 올랐다.그들이 탄 헬기가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던 약종의 사람들은 비로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궁주님, 강중로 돌아갈까요, 아니면......?”부조종석에 앉아 있던 용월이 몸을 돌려 물었다.“우연이를 집까지 데려다줘라. 난 곤륜산으로 약속을 지키러 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 약종의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해! 그들이 수상한 행동을 하면 이 번호로 연락해라. 이자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거다.”한지훈은 말을 마치며 도청전인의 연락처를 용월에게 건넸다.이번에 도청전인은 한지훈과 동행하지 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진법을 깨우치고 있었다.그동안 강우연과 두 아이의 안전은 신룡전이 맡아야 했다.한지훈 역시 천신계 강자들의 금지가 해제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청전인의 실력이 강해지는 것은 그의 가족들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였다.만약 그가 이 기회를 통해 천신계를 돌파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지훈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알겠습니다!”용월은 즉시 대답하며 조종사에게 지시를 내려 헬기를 산 정상에 착륙시켰다.멀어지는 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우연은 불안한 듯 두 손을 꼭 쥐었다.그가 이번에 어떤 위험과 도전에 직면할지는 몰랐지만, 그의 굳은 표정을 보면 이번 여정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하지만, 어떤 일이든 한지훈은 반드시 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강우연은 그저 간절히 그를 위해 기도하며, 묵묵히 그의 뒤에서 응원할 뿐이었다.천부성에서 곤륜산까지는 수백 리 거리였지만, 한지훈은 단 하루 만에 곤륜허 옆의 작은 정원에 도착했다.마침 강만용과 신한국은 손자를 데리고 마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고, 옆에서는 예충기와 그의 아내가 각자의 의자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발소리를 들은 예충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오, 제법 정확한 시간에 왔군! 내일이 딱 한 달 기한인데, 좋아
이 옥고리는 한지훈에게 큰 쓸모가 없었지만, 강우연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보물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 효능을 검증하기 위해 한지훈은 냉정하게 말했다.“너희는 약종의 사람들이니 독을 다루는 고수들이 적지 않겠지? 비상을 갖고 있는 자가 있다면 꺼내도록!”“저, 저에게 있습니다!”군중 속에서 한 젊은 남자가 황급히 앞으로 나와 하얀 종이봉투를 한지훈에게 바쳤다.“그걸 먹어라!”한지훈은 말하며 그 하얀 종이봉투를 승소천에게 건넸고, 승소천은 침을 삼키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한 선생님, 제가 비록 옥고리를 차고 있다 해도, 이 독을 먹으면 삼 일 안에 옥고리를 다시 빼는 순간 저도 죽을 것입니다!”해독에도 시간이 필요했고, 삼 일 만에 비상의 독을 완전히 중화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었다.“안 먹으면 지금 당장 죽는다!”한지훈의 냉혹한 음성이 울렸다.승소천은 절망적으로 자신의 사형 초천서를 바라보았으나, 초천서는 감히 그를 거들떠보지도 못했다.조금이라도 경솔한 행동을 했다간 한지훈을 자극할 것이고, 그러면 순식간에 뼈도 남지 않게 될 터였다!결국, 승소천은 어쩔 수 없이 그 비상의 봉투를 받아 입을 벌리고 독약을 털어 넣었다.그가 독약을 삼킨 뒤에도 아무런 고통스러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30분이 지난 후에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한지훈은 그의 손에서 옥고리를 빼앗았다.하지만 옥고리를 빼앗은 지 불과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승소천은 바닥에 쓰러지며 코와 귀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초... 초 사형...... 구, 구해 줘...”승소천은 남은 힘을 다해 초천서에게 애원했지만, 초천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한지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됐다. 네가 살릴 수 있으면 살려 보도록 해라.”한지훈은 무심하게 말한 후, 옥고리를 강우연에게 건넸다. “예!”그제야 초천서는 허둥지둥 일어나 검은색 환약을 꺼내 승소천의 입에 넣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승소천의 상태는 서서히 호전되었다.“악
“북양왕님! 그들은 우리 천부성 약종의 중추적인 인물들입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나장명이 서둘러 뛰어 내려오더니, 퍽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그들을 살려달라고?”한지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무릎 꿇은 자들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푹!”낙천산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한지훈의 손날이 그의 몸을 내리쳤다.찰나의 순간, 낙천산 역시 낙천택과 마찬가지로 피비린내 나는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그가 누구인가? 오대 명산조차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낙천산이었다!그런 인물이, 한지훈의 손에 단숨에 소멸되다니!낙천산의 피가 튀어 나장명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고, 그 온기가 남아 있는 피가 피부에 닿는 순간 나장명의 몸이 절로 움찔했다! 한지훈은 북양왕으로 진정한 왕작이며, 그가 작은 시의 우두머리 따위를 처형하는 데는 어떠한 보고도 필요 없었다. 그것이 바로 북양왕의 특권이었다!그 순간, 나장명은 기어서 한지훈의 발 앞까지 다가가 외쳤다.“북양왕님!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시독을 치료할 방법이 있다고 들어서 직접 확인하러 왔을 뿐입니다!”“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강우연 아가씨께 물어보십시오! 저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단방을 내놓으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제발 믿어주십시오! 저는 정말 천부성의 백성을 위할 생각뿐이었습니다!”나장명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낙씨 가문의 두 기둥이 이미 죽었으니, 이제 그들을 위해 함께 죽을 이유는 없었다.“변명할 필요 없다. 너희들이 내 아내의 단방을 강탈하려 했다면, 너는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을 것이다. 너희들이 가진 것 중에서 내가 탐낼 만한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한지훈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낙천산조차 죽였으니, 자신들의 목숨 따위가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비록 낙씨 가문의 사람이
“쾅!”한지훈의 발길질이 떨어지자, 낙천택은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그것은 단순한 오성 용급 천왕의 일격이 아니었으며, 한지훈은 주변 자기장을 조종하여 공간을 압박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인 것이다!이 위압은 단순한 기세가 아닌, 공간 자체의 중력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것이었다.공기조차 무게를 가지는데, 하물며 수십 배로 강화된 자기장의 압박을 견딜 수 있겠는가?그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 낙천택은 감히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굉음과 함께 낙천택의 몸에서 순식간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천택아!”낙천산은 핏덩이조차 남지 않은 낙천택을 보며 비통한 절규를 터뜨렸다.그러나 그의 눈물이 눈가를 벗어나기도 전에, 한 짝의 전투화가 이미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한지훈! 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설마 나까지 죽이겠다는 거냐?!”낙천산은 붉어진 두 눈으로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었다.그는 한지훈이 감히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게다가 오늘 강우연을 노리고 온 것이 비단 천신종만이 아니었다.약종 전체의 팔 할 이상의 문파가 이 사건에 가담한 상태였으니, 만약 한지훈이 보복을 감행한다면 그는 약종 전체의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다!“널 죽이면 안 되나?”한지훈은 냉정하게 대꾸했다.“너 혼자서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 오늘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 넌 알고 있나? 약종의 팔 할 이상이 이 일에 관여했고, 게다가 항산 약종의 제자들도 있다!”낙천산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그가 죽는다면 한지훈은 그 후로 약종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 것이고, 심지어 항산까지도 그를 적대할 것이었다!한지훈이 아무리 강하고, 북양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종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없었다.무종은 오직 실력으로 말하는 곳이었다!여기서는 국왕의 어명도 절대적인 권위가 될 수 없었다.설령 한지훈이 천하무적이라 해도, 그의 가족과 친지, 그의 아내와 자식들도 한지훈처럼 무적일 수 있을까?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