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를 꺼내 앉아 침술을 시행할 준비를 했다.“잠깐만요, 뭐 하는 겁니까?”양운철이 호통을 쳤다.“치료요!”“누가 당신더러 치료하라고 했어? 분명히 말하는데, 난 이미 경성의 명의인 이대선 신의를 청했어. 그분이 곧 도착할 거니까. 빨리 비켜.”양운철이 호통을 치다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버지가 착각하셨나? 이런 애송이를 신의라고 데려오다니, 사기꾼같이 생겼구만.”지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예천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그때 문 앞에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 명은 희끗희끗하고 약상자를 들고 있는 노인이었다.양운철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이 신의 맞으시죠? 드디어 오셨군요. 빨리 제 여동생 좀 봐주세요.”“그래!”이 신의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비키지 않고 뭐해? 내 여동생의 치료를 방해한다면, 너 같은 놈 10명의 목숨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양운철은 예천우에게 대놓고 욕을 퍼부었다.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옆으로 걸어갔다.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바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이 신의가 앞으로 나와 그녀의 맥을 짚어 보더니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단지 한독이 침입했을 뿐이야. 침 몇 번 맞고, 약 몇 번 바르면 반드시 나을 거야.”양운철은 자기가 무슨 큰 공이라도 세운 듯 기뻐하며 말했다. “봤어? 이게 진정한 신의야!”이 신의의 은침이 그녀의 손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 예천우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이 이 바늘로 찌르면, 목숨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숨을 앗아갈 겁니다.”그의 말에 이 신의가 살짝 멈칫했다, 도대체 무슨 신분이길래, 자신의 실력에 의문을 품는 건지, 기분이 언짢아졌다.그러자 또다시 양운철이 나서서 말했다.“이봐, 이 신의가 계신데,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너도 이 신의가 어떤 사람인지 알 거야. 의사협회의 부회장님이라고!”더 이상 헛소리하
“아이씨,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신의 라면서요.”양운철은 자기가 큰일을 해결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니 화가 치밀었다.만약 양체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정말 끝장이다.양체은은 점점 힘이 빠져 떨지도 못하고 있었다. 점점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양운철의 얼굴도 점점 더 굳어졌다. 방금 예천우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말할 줄 몰랐다. 순간, 자신이 진짜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바로 후회할 것이란는 예천우의 말이 생각났다.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정말 후회하고 있다.이때 양대복이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예천우를 보며 다급히 물었다.“예 선생님, 우리 체은이는 좀 어떤가요?”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양운철을 쳐다보았다.“저 사람한테 물어봐!”양대복은 다들 왜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옆에 침을 들고 있는 이신의를 보고, 대략 짐작한 듯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양운철, 어떻게 된 거야!”양대복의 분노에 찬 호통에, 양운철은 그대로 멍해졌다.이 신의는 창백한 얼굴로 씁쓸해하며 말했다.“양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용서하세요. 따님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뭐야!”양대복은 창백해진 얼굴로 휘청거렸다.아!지연수는 결국 못 참고 통곡했다. 그녀도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예천우가 손을 썼다면, 양체은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양운철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너, 너, 멍청한 놈!”양대복은 화가 나서 양운철을 발로 걷어차고는 애걸하는 눈빛으로 예천우를 쳐다봤다.“걱정 마, 아직 살아있으니까.”예천우가 말했다.“네?”양대복은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용왕께서 손 쓰셔서 우리 체은이를 살려주세요!”조급해서, 호칭을 바꿔 부르는 것도 잊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다들 그저 어이가 없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예천우가
마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양체은 몸의 한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적지 않은 힘을 썼다.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양대복도 격동하여 소리쳤다.“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자기 딸의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명의들이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문제를 용왕은 쉽게 해결했다.“예 신의의 의술은 정말 놀랍습니다.”“방금 이 늙은이가 눈이 멀어서 이렇게 귀한 분을 알아보지 못했네요. 양해해 주세요.”이 신의도 놀라서 지켜보다가, 이어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습니다!”예천우도 이 신의를 인정하는 듯 예의를 차려 말했다.“그럼,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줄 수 있으실까요? 제가 의술을 잘 닦을 수 있도록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이 신의는 흥분한 목소리로 허리를 굽혀 부탁했다.당장이라도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었다.양운철은 멍하니 그 상황을 지켜봤다. 이 신의는 중의학계에서도 손꼽히고, 명성과 지위가 높은 신의인데, 지금 이 젊은이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니.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이 신의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끈질기게 말했다.“그럼, 카톡이라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 제가 물어볼 수 있게요.”양운철은 완전히 멍해졌다. 심지어 방금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잊어버릴 정도였다.예천우가 이 신의를 상대하려 하지 않는 걸 보고 양대복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양운철, 너 이 개자식! 거기 서서 뭐 해! 선생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고!”양운철은 머리가 하얘졌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끔찍이 아끼셨는데, 지금 이 어린 애송이에게 무릎을 꿇으라니.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란 말인가!“왜, 내 말이 말 같지 않냐?”“아니면 네가 양씨 집안에서 나갈래?”양대복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질렀다.자신도 용왕님께 공손히 대하는데, 그런 큰 잘못을 저질러
식사를 마친 후, 양대복은 예천우를 천궐 1호 별장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런 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선물을 꺼내 예천우에게 공손하게 건네 주었다.이신의는 예천우가 떠나는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매우 아쉬워했다.마음 같아서 그는 예천우의 집에 함께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집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다워…난 언제쯤 이런 근사한 별장을 가질 수 있을까.”같은 시각, 천궐의 산장을 걷고 있던 소정이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정도 가격의 집은 지금도 살 수 있어. 저기 산 중턱에 있는 천궐 1호 별장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돈을 모아도 사지 못할 거야…”옆에 있던 유걸이 말했다.“천궐 1호 별장이 얼마나 비싸길래, 너희 유 씨 가문도 사지 못하는 거야?”“우리 가문 재산을 통 틀어도 구매할 수 없을 거야.”유걸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천궐 1호 별장은 대가족 세력조차 마음대로 구매할 수 없는 저택이다. 간단히 말해서, 천궐 1호 별장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었다.“진짜? 너희 집안도 살 수 없다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인 걸까? 그 곳에 사는 사람을 한번 쯤은 만나보고 싶다…” 소정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하였다.“꿈도 꾸지 마. 넌 평생 그런 사람을 만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깐.”“하긴!” 소정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어? 저 차는 양 회장님 차 아니야?”“응, 맞아. 듣기로는 양 회장님도 천궐 1호 별장에 살고 있대.”“근데, 잠시만… 방금 양 회장님 차에서 예천우가 내린 것 같아… 심지어 조수석에서 말이야!” “그 촌 놈 말하는 거야?”유걸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농담하지 마. 그런 촌놈이 무슨 수로 양 회장님 차에 탈 수 있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소정도 유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천궐 산장은 빌라촌의 이름이다. 안에 많은 별장이 있었다. 매 채 가격이 최소 200억에
“완유야, 너 갑자기 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야? 설마, 할아버지께서 나와 같이 한방에서 지내라고 한 거야?”예천우는 방금 할아버지와의 전화를 곱씹어보며 생각하였다.“비…비슷해.”임완유는 부끄러운 듯 얼버무리며 말했다.그러자 예천우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 몸이 설마 2000만 원의 가치밖에 안 돼?”“무슨 헛소리야!”임완유는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네가 승낙한다고 해도, 난 그럴 생각 없으니 걱정하지 마. 근데, 정말 거절하면 그 돈 받을 수 있는 거야?.”“그럼, 좋아.”예천우가 대답했다.“정말?” 임완유는 예상치 못한 예천우의 대답에 크게 당황하였다.“음, 근데 2000만 원은 좀 부족한 거 같고, 2억 줘.”‘뻔뻔한 놈…역시 촌에서 온 티가 나.’ 임완유는 속으로는 그를 욕했지만, 그와의 동침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그래.”그녀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2억이 적힌 수표 한 장을 꺼내 예천우에게 주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임완유의 부모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유은수는 예천우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예천우, 내가 경고하는데, 그 헛된 망상을 접는 게 좋을 거야. 임씨 가문은 너 같은 촌놈이 넘볼 수 있는 게 아니야. 특히 내 딸은, 너처럼 쓰레기 같은 놈이랑 같은 레벨이 아니라고!”임완유도 엄마의 입장을 지지하긴 했지만, 지금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려니 왠지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하지만 이것 또한 그를 물러나게 할 방법이라 생각했다.임강도 한마디 했다.“그래. 예천우, 주제 파악 좀 해. 영감이 아무리 널 감싸고 돈대도, 난 얼마든지 널 이 집에서 쫓아낼 수 있어.”예천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이때, 방 안에 있던 임 씨 할아버지가 거실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천우야, 왔니? 어젯밤 일은 미안하게 됐다. 다 내가 얘를 잘못 가르쳐서 그래… 널 밖
예상치 못한 임 씨 할아버지의 제안에 임완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하지만, 바로 그때 예천우가 이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할아버지의 마음만 받을게요. 전 당분간 회사에 출근하고 싶지 않습니다.”유은수는 한시를 참지 못하고 곧바로 예천우를 비꼬기 시작하였다. “출근하기 싫다고? 그럼, 집에 누워서 공짜로 먹고 자겠다는 거야 뭐야?”“그건 아니고요, 전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예천우가 담담히 말했다.‘뭐? 돈이 부족하지 않다고?’‘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집에 얹혀살아?’‘게다가 산에서 막 내려온 촌놈이, 무슨 돈이 있다고!’그러나, 유은수의 반응과는 다르게 임강은 예천우의 거절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그는 곧바로 유은수의 팔을 황급히 잡으며, 그녀를 제지하였다.그는 예천우를 지지하기 위해서 그녀를 제지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이런 촌놈이 딸과 함께 출근을 하게 된다면, 딸의 명성을 망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였다.유은수는 곧바로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순간, 임완유는 방금 말한 그 2억이 생각났다. 그런 뒤 그녀는 곧바로 경멸하는 눈빛으로 예천우를 바라보았다. ‘이 얍삽한 자식, 내가 준 2억으로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그러나, 이들의 반응과는 다르게 임 씨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그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그래.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우선 도시의 삶에 적응하는 것이 먼저겠구나. 내가 너무 성급했어.” 임 씨 할아버지가 말했다. “참, 완유야, 용등상회에 가입하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니?” 임 씨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임완유를 바라보았다.“운이 좋게도 이번에 저희 집안은 용등 상회 가입 예정명단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이번에 양 회장님께서 단 세 가정만 용등 상회에 들이겠다고 발표하시면서, 저희 가문이 용등 상회에 가입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지고 말았어요.그래서 우선 유걸한테 곧 열릴 용등 상회 만찬회 티켓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임완유가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주세요. 지금 제가 빨리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서요…”예천우는 서둘러 임강을 문 밖으로 밀어내고는 문을 닫아버렸다.임강은 어리둥절했다.왠지 자신이 예천우에게 놀아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렇게 임강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후,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조리 유은수에게 말해주었다.그 말을 들은 유은수는 당장이라도 예천우를 찾아가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다음날 점심, 예천우는 밥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내려왔다. 거실에서는 임강과 유은수 부부가 웬 처음보는 젊은 청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아버지, 어머니, 진정하세요. 그 놈은 그냥 시골에서 온 촌놈일 뿐이에요. 제가 한번 날 잡고 그 놈이 더 이상 기어오르지 못하게 그 놈의 콧대를 확 꺾어버릴 게요. 제가 그 놈을 어떻게 혼내는지 지켜보기만 하세요.”“응, 선호야, 그럼, 엄마 아빠는 너만 믿을게.” 임강이 말했다.“여보,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저런 촌놈 하나 혼내주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유은수가 말했다.“맞아요. 저런 촌 놈은 저 혼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요.” 임선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마침 나타났네...” 유은수가 말했다.임선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았다.이어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잔뜩 치켜세운 채 예천우를 바라보았다. “야 이 자식아, 우리 누나한테 들러붙는다는 촌놈이 바로 너야?”예천우는 일찍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맞아. 난 네 누나의 남편이니, 매형이라고 부르면 되겠네!” 예천우가 말했다.“뭐라고? 매형? 네까짓 게 내 매형이라고?” 임선호는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예천우를 바라보았다. “충고하는데,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만약 이래도 나가지 않는다면, 난 네 두 다리를 부러뜨려 버릴거야.”“네가?” 예천우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지금 내 앞에서 코웃음을 친 거야?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본데. 나 임선호
임 씨 할아버지는 낯빛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는 자기 손자의 덕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임선호를 바라보았다..임선호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거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저, 전 정말 몰랐어요. 그 여자가 진관 님의 여자인 줄은 더더욱 몰랐고요...”“너… 이 망할 자식!”임 씨 할아버지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곧바로 그의 따귀를 세게 때렸다.뒤에 있던 임강과 유은수 역시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그들은 지금껏 장진관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의 소문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두 사람은 더욱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장진관은 천해 시의 폭군 중의 폭군으로 유명하였다.임 씨 할아버지는 어쨌든 자기 손자의 일이니, 그냥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임 씨 할아버지는 침착한 표정으로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진관 님, 이번엔 제 손자가 진관 님께 크게 실수를 했나보네요… 다 제가 가정교육을 잘 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부디 이번 일은 너그럽게 봐주시고, 제 손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세요…”.“이후 제가 반드시 제 손자 놈을 잘 교육시켜 놓겠습니다…”“그리고, 사죄의 의미로 진관 님께 합의금을 챙겨드리겠습니다… 금액은 결코 섭섭하지 않으실 거예요…” 임 씨 할아버지가 말했다.“합의금? 좋아. 영감 얼굴을 봐서 내가 특별히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합의금으로는 적어도 200억원은 준비해야 할 거야.”“네? 200억원이요?”임 씨 할아버지는 순간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였다. 임씨 가문의 전체 자산은 대략 2000억원 정도이다. 지금 같이 어려운 시기에 전체 자산의 10분의 1이되는 금액을 현금으로 내놓는다면 자금 부족으로 회사가 큰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왜, 싫어? 싫으면 임선호는 내가 데려가는 걸로 하지.”장진관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
예천우가 잠시 말이 없자 한지연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물론 그녀 입장에선 아들을 위해 이신향이 조신우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천우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그녀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서둘러 나섰다.“조신우 씨, 농담이죠? 여긴 그냥 평범한 식당인데 그런 최고급 술이 있을 리가 있나요.”하지만 조신우는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그럼 딴 데 가시죠. 이딴 데선 도저히 못 먹겠네요.”그 말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풋, 네가 나한테 밥 한번 사보겠다고? 한참 멀었어. 이 정도 식당에서 몇십만 원 쓰는 것만으로도 네 눈은 휘둥그레지겠지.’조신우는 속으로 그렇게 예천우를 조롱하고 있었다.그런데 예천우는 그를 슬쩍 쳐다볼 뿐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애초에 난 널 초대한 적도 없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그 말에 조신우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고 이제동은 깜짝 놀라 급히 끼어들었다.“천우야,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니. 조신우 씨가 어떤 분인데? 이런 분께 음식 대접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에겐 큰 영광이야.”예천우는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이신향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빠, 그런 말은 너무하시잖아요. 오늘은 천우 씨가 초대한 자리예요. 뭐가 나와도 그걸로 먹는 거죠. 손님이 무슨 메뉴까지 고르고 술까지 따져요?”그러고는 예천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천우 씨, 제가 가서 식당에 무슨 술 있는지 보고 올게요. 적당한 거 가져다드리면 되죠.”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괜찮아요. 제가 준비해 왔어요. 굳이 여기 술 안 써도 됩니다.”사실 그가 가져온 술은 모두 공간 반지 안에 들어 있었기에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아 자연스럽게 옆 가방에서 꺼내는 척을 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방금까지 분명 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술병이 나타난 것이다.하지만 누구
“흥, 그건 당연하지.”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쟤는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알아서 무릎 꿇게 될걸요?”“그럼요. 조신우 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이제동은 말하면서도 속으론 걱정이 가득했다.이신향이 갑자기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예천우가 무턱대고 나서서 조신우를 자극할까 봐 더 불안했다.특히나 예천우라는 사람은 뭘 좀 안다고 착각하는 무모함까지 있으니 더 위험했다.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먼저 안으로 향했다.그런 모습에 이제동과 한지연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신향은 난감한 마음에 얼른 뒤따랐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괜히 예천우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괜히 그가 모욕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조신우도 마지못해 따라 들어왔고 일행은 함께 식당 안으로 향했다.내부는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전통적이고 소박한 농가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대도시 고위층들이 선호하는 콘셉트 중 하나였다.하지만 조신우는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투덜댔다. “뭐야, 이런 촌스러운 데를? 딱 봐도 저질이네. 대도시에서 인당 2만 원도 안 되는 데면 분명 어디서 쿠폰이라도 긁어온 거겠지.”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히려 잘 됐네. 이따가 제대로 면박 줄 수 있겠다.”사실 오늘 조신우는 아버지에게서 활동 자금으로 4억 원을 통 크게 받아온 상태였다.그 돈으로 오늘 제대로 부자의 삶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이번 자리는 급하게 잡긴 했지만 예천우에겐 아무런 어려움도 아니었다.왜냐하면 이 동강루의 최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바로 천상 그룹이었고 결국 이 식당도 그의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그러니 예약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사실 식당 대표는 그에게 가장 최고급 방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예천우는 일부러 거절했다.너무 티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안내로 모
차는 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을 달린 끝에 곧바로 예동구 동강루 주차장에 도착했다.동강루는 동성에서 손꼽히는 고급 식당 중 하나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부자들과 고위 인사들이 주로 회식이나 접대를 위해 찾는 곳이었고 일반인들이라면 예약 잡기도 어려웠다.비록 이신향의 부모는 세상 물정에 밝진 않지만 식당 외관만 봐도 그 수준이 꽤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어머니는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천우야, 여기 꽤 괜찮아 보이네. 혹시너무 비싼 데는 아니겠지?”예천우는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평범한 집밥 수준이에요. 1인당 2만 원도 안 돼요.”이신향의 부모님이 괜히 위축될까 싶어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그래? 다행이네. 옷차림도 단정하고 검소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근데 너 옷이 참 잘 어울린다. 보통 옷 같은데도 은근히 멋스럽네?”식당 앞에 내린 뒤 한지연은 그제야 예천우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전엔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제서야 그의 차림새를 눈여겨본 것이다.“하하. 그냥 대충 산 거예요.”예천우는 웃으며 답했다.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입은 건 평범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다만 보는 눈이 없으면 모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스타일을 더 선호했고 편하고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가끔 무시당하는 걸 제외하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갈까요?”예천우가 말했다.하지만 그때 이제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잠깐만. 조금 있으면 조신우가 올 텐데 여기서 기다리자.”조금 전 조신우에게 실례를 한 것도 있고 괜히 먼저 들어갔다가 또 기분 상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눈치였다.이신향은 상황이 불편해질까 봐 급히 말했다.“우선 안으로 들어가요. 천우 씨가 여기 남아서 기다리게 하면 되잖아요. 게다가 조신우도 아마 엄마 아빠 전화번호는 알고 있을 텐데 도착하면 어느 방인지 물어보면 되죠.”하지만 이제동은 단호했다.“안 돼. 꼭
“그래... 예천우란 사람은 내가 잘 모르긴 해도 조신우 같은 남자를 두고 굳이 다른 사람을 택하겠다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돼.”한지연이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예천우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조시욱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다.“조신우랑 결혼하면 적어도 네가 남은 인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 아니야.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말이야.”그 말을 덧붙인 뒤 그녀는 예천우를 향해 부드럽게 설명했다.“천우야, 오해하지 마. 아줌마가 너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그냥... 조신우가 너무 뛰어나서 그래. 신향이한테도 잘 어울리고. 너도 성격이 괜찮은 것 같긴 해. 근데 아무래도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것 같더라. 네가 신향이랑 안 어울린다는 게 아니라... 조신우랑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크잖아.”예천우는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냥 잠깐 가짜 남자 친구 행세를 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이 집에선 벌써 그를 깎아내리기 바빴다.그는 곁눈질로 이신향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그러자 이신향이 급히 나섰다.“누가 그래요? 천우 씨가 조신우보다 못하다는 건 말도 안 돼요. 엄마 아빠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어디인지 아세요? 바로 천우 씨 회사예요!”“무슨 헛소리야! 신향아, 넌 원래 거짓말 같은 거 안 하던 애였잖아. 근데 지금은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아빠가 그렇게 쉽게 속을 사람인 줄 알아?”이제동은 곧장 나무라듯 말했다.“진짜라니까요!”“진짜는 무슨... 너 며칠 전에 뭐라고 했어? 지금 백성 그룹 다닌다며?”“맞아요!”“그럼 됐지. 네가 그날 뭐랬는지 기억나? 백성그룹은 백씨 가문 거라며? 백씨 가문은 동성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 있는 집안인지 아빠도 다 아는데. 근데 지금 네 남자 친구가 백씨 가문 사람이야?”“아니에요.”“그럼 됐잖아. 백성 그룹이 예천우의 회사라니... 그건 완전 말도 안 되는 소리지.”“그건... 그게... 사실은...”“무슨 사실? 엄마 아빠도 네가 천우랑 사
“부구청장?”예천우가 잠시 멈칫했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높은 자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예천우에게 그 정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직위였다.용도에 있는 예씨 가문 사람들만 해도 대부분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용문 수하들은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성종의 인물들까지 따지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남강성의 총독, 왕 총독 한 사람만 해도 충분했다.그 왕 총독은 남강성의 최고 권력자이자 왕씨 가문의 일원이었다. 예천우와는 원래부터 인연이 깊은 데다 예천우가 왕 어르신을 직접 구해준 일이 있어 더욱 각별한 사이다.그런 배경을 가진 예천우가 멈칫한 걸 보고 이제동은 그가 겁먹은 줄 알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러니까 너도 조심 좀 해. 행여나 실수라도 하지 말고.”그리고 곧 덧붙였다.“잠시 후 식사 자리에 도착하면 술 몇 잔 올리면서 제대로 사과하는 게 좋아.”“그럴 필요까진 없어요.”예천우는 고개를 저었다.“맞아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천우 씨는 절대 그런 걸로 문제 생기는 사람 아니에요.” 이신향도 재빨리 거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예천우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게 대단했고 너무도 강력했다.예천우가 어떤 인맥을 가진 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그가 직접 운영하는 백성 그룹 하나만 봐도 이미 지역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었기에 시장님조차 그 앞에서는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예천우 말에 따르면 백성 그룹 같은 건 그에게 그저 별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하지만 이제동은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너희 둘은 아직 어려. 아마 회사 생활만 해봐서 그럴 거야. 세상 돌아가는 일... 특히 관직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그는 비록 지금은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예전엔 고등학교도 나왔고 지방 정부와 관련된 일을 해본 경험도 있었다.하지만 이신향이 어렸을 때 큰 병을 앓았고 아내도 건강이 좋지 않아 병치레가 잦다 보니 집안 형편은 점점 나빠졌고 그렇게 지금의 삶이 된 것이다.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예천우는 빠르고 쉽게 이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그렇게 말장난할 필요 없잖아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거죠. 비슷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조신우는 비웃음을 흘리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설마... 아예 사업도 하지 않으면서 일부러 허세 부리는 건 아니겠지?”그 말에 이신향이 벌컥 화를 냈다.“신우 씨야말로 허세 작작 부려요. 천우 씨 실력은 신우 씨 상상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고요.”“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보자고요. 도대체 뭘 믿고 나보다 나은지.”조신우는 이신향이 예천우 편을 드는 걸 보자 눈에 불이 일었다.설날에 처음 본 이후부터 그녀는 조신우에겐 그야말로 운명의 여자였다. ‘이런 여잔 내 거야. 감히 다른 남자랑? 말도 안 돼.’긴장된 공기를 눈치챈 이신향 아버지 이제동이 급히 나섰다.“자자, 다들 괜한 말로 기분 상하지 말고... 다 배고프지 않아요? 일단 밥부터 먹어요.”조신우는 속으론 이를 갈았지만 겉으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급해할 거 없어. 식사 자리에서 확실히 보여주지. 나랑 저놈 사이의 차이를 말이야.’예천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무표정했다.‘이 자식을 죽이든 어찌하든 일단 밥은 먹은 먹어야겠지... 아무리 불편한 식사자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차라리 빨리 식사를 끝내고 상황 정리하는 게 낫겠네.’이제동이 겨우 분위기를 정리하고 모두가 이동하려는데 문제는 차량이었다.예천우의 차는 다섯 명이 정원이었다.조신우가 당당히 차에 타려 하자 예천우는 문 앞에서 가볍게 말했다. “미안한데 제 차는 다섯 명밖에 못 타요. 신우 씨를 위한 자리는 없으니까 택시 타세요.”“뭐라고요? 너!”조신우의 얼굴이 벌게졌고 분노가 치밀었다.‘고작 아우디 A6 주제에 뭘 잘났다고 지랄이야.’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이게 고향인 장산군이었다면 내가 전화 한 통이면 벤츠 S클래스 열 대는 바로 오는데. 줄지은 차들 문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이딴 놈은 바로 무릎 꿇었을걸.’그러자 이제동이 급히 중
다행히도 기차는 아주 정확하게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신향의 부모님이 역 출구로 모습을 드러냈다.그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었고 옷차림 역시 단정하지만 소박했다. 딱 봐도 평범한 노동자 가정이었고 손엔 몇 가지 짐도 들려 있었다.그들 옆에는 젊은 남자 둘이 함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두 손이 텅 빈 채였고 명품 옷으로 치장한 데다 코끝이 하늘을 찌를 듯 세워져 있었으며 주위를 거만하게 훑어보는 눈빛엔 자신을 대단히 잘났다고 여기는 오만함이 그대로 묻어났다.반면 다른 한 명은 조금은 어색해 보였고 얌전한 인상에 미간도 꽉 찌푸려져 있어 뭔가 마음에 걱정이나 불편함이 가득한 듯했고 그의 손엔 역시 무언가 짐이 들려 있었다.그들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이신향은 곧장 예천우의 팔을 풀고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예천우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사람 없을 땐 팔짱 꼭 끼더니 정작 보여줄 사람들 앞에선 바로 놔버리네? 이게 연기 맞아?’그렇지만 그녀의 팔이 팔에 닿던 그 순간의 부드러운 감촉은 꽤 인상 깊었다.이신향은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아빠, 엄마!”두 어르신은 딸의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 가득 기쁨이 번졌고 손을 흔들며 반가이 맞이했다.곧 이신향은 옆에 있는 두 남자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특히 명품으로 도배하고 있던 그 남자의 눈빛은 예천우에게 바싹 고정돼 있었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그를 본 순간 이신향은 얼굴을 찌푸렸다.‘설마 진짜로 따라온 거야?’그의 이름은 조신우였다. 올해 설날쯤에 이신향은 그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계속해서 자신에게 들이대며 집착하던 인물이었다. 조씨 가문 그중에서도 군내에서 최고 부잣집의 아들이었고 그 배경 때문에 그녀 부모도 강하게 결혼을 밀어붙이고 있었다.‘고향을 떠난 뒤로는 엮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이신향은 간신히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대충 인사만 했다.그에 비해 옆에 있는 또 다른 남자에게는 미소까지
“그런데...” 유사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예천우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그만해요. 그깟 돈 조금 주고 끝난 걸로도 저쪽은 행운인 거죠. 신향 씨와 사라 씨가 더 물고 늘어지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 일이에요.”“...”두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는 얘기할 수 없었다.“그럼, 두 번째 일은 뭐예요?” 예천우가 다시 물었다.“그게...” 이번엔 이신향이 말을 꺼냈다. 표정이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 천우 씨가 제 남자 친구 역할을 잠깐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예천우는 순간 멍해졌다. ‘남자 친구 역할? 지금 그럴 여유 없는데...’ 그는 곧장 떠오른 일정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동성시를 떠나야 했고 괜히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었다.이신향은 예천우의 표정이 살짝 굳자 급히 덧붙였다.“진짜 어쩔 수 없어서 그래요. 오늘 저희 부모님이 동성시에 오시는데요. 제가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는 맞선 상대를 같이 데리고 오신대요.”“제가 남자 친구가 없다고 하면... 강제로 그 사람이랑 약혼시키려 할 거예요.”예천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그렇게까지 강요하셔요? 부모님이?”“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사람이에요. 전엔 항상 제 뜻보단 가족 생각부터 하게 됐었고... 오늘 오후에 도착하신다니까 진짜 시간이 없어요.”이신향의 목소리는 애타게 떨려 있었다.그녀는 잠시 부모님을 떠올렸다. 대학 등록금부터 생활비까지 모든 걸 감당해 주기 위해 그들은 가진 걸 다 털었고 빚까지 졌었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은 대학도 못 갔기에 그런 부모에게 대놓고 맞서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벌어들인 돈도 거의 다 집으로 보냈을 만큼 그녀는 그만큼의 빚을 스스로에게도 안고 있었다.예천우는 문득 유사라의 일도 떠올랐다. 그때도 단순히 돕는다고 나섰다가 일이 꽤 복잡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저는 내일 아침에 동성시 떠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