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양체은이 예천우를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가. 동생같은 여자애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예천우는 거절해버리든지, 아니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양체은은 할 수없이 씩씩거리며 직접 예천우네 집으로 찾아가려고 했다.그런데 아직 가기도 전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양체은은 뜻밖의 만남에 너무 기뻤다.“오, 너야?”더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안 예천우는 억지로 웃으며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양체은이 평소 자신에게는 잘했으니... 그에게 일이 있으면 항상 나서서 도와줬다. “왜, 내가 반갑지 않아? 요즘 어디에 숨어있었어? 코빼기조차 못 봤잖아.”양체은은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요즘 바빴어.”예천우가 건성으로 대답했다.“뭐가 그리 바쁘다고... 내일 저녁 반드시 나랑 만나.”양체은은 오늘 어떻게 해서라도 예천우와 내일 저녁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임완유는 옆에 서서 둘이 웃으며 얘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일 저녁 반드시 만나야 된다는 말이 그녀 귀에 거슬렸다. 그녀는 이 여자애가 예천우와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지난번 연회에서도 둘은 아주 친해보였다.그래서 임완유는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이걸로 자신의 주권을 선언한 셈이다.이때가 되어서야 양체은은 옆에 임완유가 있는 것을 보았다. 예천우도 눈치채고 급히 소개했다.“체은아, 소개할게. 이쪽은 우리 집사람 임완유야.”“알아. 임 씨 그룹 미녀 대표님.”양체은은 웃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양체은이라고 합니다.”양체은?임완유가 놀라며 물었다. “아가씨가 양 회장님 댁 따님이세요?”그녀는 양 회장의 보배 딸 양체은에 대해서 이름만 들어봤지, 실물을 본 적은 없었다. 이 이름을 듣고 방금 전 용등 블랙카드 일, 그리고 예천우가 양 회장의 딸을 치료해준 일이 겹쳐져, 그녀는 자연스럽게 양대복의 딸을 연결시키게 되었다. “네. 그런데요?”양체은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임완유는 듣고 나서 안색이
‘나쁜 자식, 아내가 있는데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가? 너무해.’예천우는 임완유가 차에 타자 쫓아가서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임완유가 엑셀을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래도 멀리서 보니 속도가 점차 늦춰져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양체은도 멍한 채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천우 오빠, 내가 뭘 잘못 말했어? 근데,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네 문제가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내가 뭘 잘못했을 거야.”“응, 천우 오빠도 너무 걱정하지 마. 여자애들은 원래 잘 삐지거든. 언니도 금방 괜찮아질 거야.”양체은이 위로했다.“응.”“저기... 내일 저녁?”“나 정말 시간 없어.”“내가 그렇게도 싫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리 오랫동안 내 연락도 안 받고, 나랑 한 번 만나주는 것도 싫어?”양체은은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잠깐, 울지 마.”예천우는 여자가 우는 걸 못 본다. “나도 울기 싫은데 속상하잖아. 나 속상하다고. 천우 오빠가 날 미워하면 난 콱 죽어버릴 거야......”“그래, 그래. 알았어. 내일 저녁 나갈게. 됐지?”예천우도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 연락받지도 않았던 걸 생각하니 좀 미안하기도 해서 승낙하고야 말았다. “정말? 너무 좋아! 고마워, 천우 오빠!”양체은은 너무 기쁜 나머지 예천우를 와락 껴안았다. 예천우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렸다. 이 계집애는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건가? 청순하고 예쁜 얼굴은 그렇다 치자.아담하고 귀여운 몸매인데 이렇게 볼륨있고 빵빵하기까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향기가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양체은도 예천우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발견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꼭 끌어안고 몸을 꼬며 비벼댔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예천우와 임완유의 혼인은 핍박에 의해서 한 거고, 곧 갈라설거라는 것도. 다행히 예천우가 정신을 차리고 아무
임완유가 또 한 번 끊어버리자 예천우는 더는 전화하지 않았다. 확실히 전화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바로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현의 전화였다. “팀장님!”“네. 무슨 일이세요?”“여기 반년 넘게 연체된 외상매출금이 있는데요. 팀장님 오늘 오후 그쪽에 가서 서로 얘기하기로 일정이 잡혀있어요.”유현이 입을 열었다.“유현 씨가 저 대신 가줄 수 있을까요?”“좀 곤란할 것 같아요. 상대방이 꼭 팀장님과 얘기하고 싶답니다. 아니면 이 돈을 못주겠다고 합니다.”“뭐 그런 일이 다 있어요?”예천우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회사에 들를 테니 이따 만나서 얘기해요.”“네.”유현이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후, 예천우가 회사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영업팀 사무실에 갈 생각은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곧장 임완유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는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들어오세요.”안에서 임완유의 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약간 차가운 느낌이었다. 분명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예천우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일하느라 바쁜 임완유를 한 눈보고는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에요?”임완유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 “오해한 일.”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 예천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임완유는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예천우였다. 그를 보니 그녀는 순식간에 기분이 나아졌다. 이제 몇 분 지나지도 않았다. 자신이 떠난 후 예천우가 양체은과 같이 있지 않고 바로 뒤따라 나온 모양이다. 그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입으로는 못된 말만 했다. “무슨 오해?”“정말 오해야!”“아까 양체은이 말하는 거 들었잖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걔랑 정말 뭐가 있었으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이 말을 듣고 임완유의 표정이 좀 폈다. 사실 임완유는 좀 전에 진정되고 나서 양체은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그녀의 말에서도 둘이 별로 친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만 열었다 하면 이혼이란 말로 예천우의 속을 긁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뭐.’예천우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임완유는 멈칫했다. 어렴풋이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 처진 예천우의 뒷모습을 보며 마지못해 한 마디 했다. “예천우, 오해하지 마,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응, 알아.”예천우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나가버렸다. 임완유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음속 한구석이 왠지 찌릿찌릿 아파났다. 왜 아픈지 그녀도 영문을 몰랐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것일까.설마, 자신이 정말 그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일까?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람이다. 그는 자신과 너무나도 먼 곳에 있다. 같이 있으면 과연 행복할까?임완유의 사무실에서 나온 예천우는 영업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현이 예천우가 온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상대는 한 공장의 사장인데 소문에 의하면 사람이 거칠고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현은 예천우에게 최대한 몸을 사리고 만약 그쪽에서 생떼 부리고 돈을 안 내놓으면 그냥 돌아오라고 귀띔했다. 어차피 지금 사회에서 파산이면 모를까, 돈을 갚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외상매출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도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그렇게 많은 자금난이 왜 생기겠는가.“괜찮아요. 어차피 가기로 했으니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죠.”예천우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후에 스케줄 있어요?”유현이 듣고 바로 대답했다. “회의가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소집하셨습니다. 원래는 팀장님이 참석하기로 되어있는데 사장님께 제가 대신 참석해도 되냐고 여쭤봤더니 문제없다고 하십니다.”그는 예천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잘 됐네요. 사장님께서도 제 상황을 알고 계시나 보네요.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앞으로 제 업무를 전부 대신해도 괜찮습니다.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근데... 그분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던데요.”유사라는 계속 예천우를 유심히 지켜봤다. 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도 하는 말이나 행동은 다 괜찮아 보였다. 정말 그런 사람인지는 먼저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장연희가 듣더니 대뜸 화내듯이 말했다. “나쁜 사람이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겠어요? 사라 씨 그 사람을 안 지 얼마나 됐다고... 그놈 입에 발린 소리에 홀딱 넘어간 건 아니죠?”“사라 씨 설마 입사 때부터 업무 가르쳐 주고 지금까지 이끌어준 김 팀장님의 말을 의심하는 거예요?”“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김 팀장님은 저의 사수고 저에게 은인 같은 존재예요. 제가 어떻게 김 팀장님을 의심하겠어요.”“그럼요. 우리의 은인이 그놈 때문에 회사 쫓겨났는데 이렇게 그놈 편 들어줘서야 되겠어요?”장연희는 정말 화났다. 유사라는 이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희 씨,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알았으면 됐어요. 이 일 절대 예천우가 알면 안 돼요.”장연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현이 걸어오며 말했다. “유사라 씨, 팀장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유사라는 흠칫하며 물었다. “예 팀장님께서 저를 왜요?”“수금을 사라 씨랑 같이 갈 생각이신가 봐요. 팀장님보다는 사라 씨가 상대방 상황을 더 잘 아니까요.”유사라가 혹시라도 오해할 가봐 유현이 해석했다. “알았어요. 연희 씨랑 하던 일 마무리 짓고 금방 가볼게요.”“네. 빨리 끝내고 가봐요. 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유현은 별생각 없이 가버렸다. 유현이 가자 장연희가 인차 입을 열었다. “사라 씨, 봤죠? 이제 부임 1일째인데 벌써 변태 본색을 드러내네요. 첫 번째 목표로 사라 씨를 찍었나 봐요.”“네. 이제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연희 씨. 제가 절대 그놈 마음대로 되게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정 안되면 핑계 대고 안 가면 되죠, 뭐.”“아, 잠깐만요, 제가 려 팀장님 뜻은 어떤지 물어볼게요.”장연희는
임완유한테서 차 키를 받아온 예천우는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찾아서 올라탔다.유사라도 따라서 탔다. 다만 뒷좌석에 앉았다.예천우는 좀 의외이긴 했으나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할까 봐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다.유사라는 예천우가 앞에 타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내내 말 한마디도 없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예 팀장님, 분부하실 것 없으세요?”유사라가 끝내 먼저 입을 열었다. “없는데요. 저도 아직 뭐가 뭔지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라 말해줄 게 없네요.”“아... 상대방의 배경조사를 하지 않았다고요? 그럼 어떤 방식으로 담판해야 할지는 알고 계시나요?”“아니요. 그런 것도 필요해요? 어떤 방식으로 갚을 건지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자료정리만 좀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그게……”유사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예 팀장이 순진한 건지 뭔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와 같이 회사를 나와서부터 그는 한 번도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처럼 음침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았을뿐더러 아예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이건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상상대로라면 그가 자신한테서 눈을 떼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리고 말로 희롱하거나해야 하는 게 아닌가.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지자 유사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귀띔했다.“예 팀장님, 듣기로는 상대가 만만하지 않대요.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제가 왜 도망가요, 도망을 가더라도 사라 씨가 먼저 가야죠.”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 “유사라 씨, 이렇게 귀띔해 주는 게 거기에 무슨 함정이 있어서가 아니겠죠?”유사라는 속이 뜨끔해나서 급히 말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전 귀띔한 적 없어요. 전 그냥 오랫동안 돈을 갚지 않는사람들 치고 좋은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어요.”“그건 그렇네요.”“그러니 꼭 조심하셔야 돼요.”“저한테 조심하라고
그와는 반대로 유사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바짝 긴장해 있었다. 비록 려 팀장이 미리 분부해둬서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도 여전히 무서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예천우를 봤다. 의외로 예천우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고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설마 그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혼내려고 온 것인 걸 모르는 건가?중간에 앉아있던, 인상이 험한 고두식도 약간 놀라며 물었다. “당신이 임 씨 그룹 새로 부임한 팀장 예천우요?”“네.”예천우는 차분한 기색이었다. 심지어 여유롭게 앞으로 가서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사장님, 보자고 하셔서 오기는 왔는데 돈은 준비되셨습니까?”이 말을 듣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장내가 떠나갈 듯 웃었다. “하하하, 이 자식 진짜 웃기는 놈이네. 정말 돈 받으러 오라고 한 줄 알아?”“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미련한 놈은 처음 봅니다.”까까머리를 한 남자도 말했다. 유사라도 어이가 없었다. 예 팀장이 회사에서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지금 눈앞의 형세도 못 알아보는 건가?그 머리로 어떻게 회사에서 큰소리를 뻥뻥 쳤단 말인가.고두식이 손을 휘익 저었다. 다들 조용하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팀장,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나?”“압니다. 귀사에 10억 외상금이 연체되고 있어서 제가 여기 받으러 왔습니다. 아주 명백한 사실이지요.”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하하, 예 팀장님 이렇게 재밌는 분인 줄은 몰랐네. 돈을 갚는 건 문제없네만, 옆에 있는 계집애를 나한테 넘기게. 내가 며칠 좀 데리고 있을 테니.”고두식은 처음부터 예천우 옆에 있는 유사라를 눈여겨봤다. 꽤 마음이 동했다. 그가 수많은 여자를 만나봤지만 이처럼 예쁘고 청아한 얼음공주 스타일은 드물었다. 일부러 이런 말로 예천우를 욕보이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예천우가 유사라를 넘긴다 해도 돈을 줄 생각은 없었다. 이 말을 듣자 유사라의 얼굴색이 변했다. 특히 고두식이 자신을
“어휴, 아무리 소리쳐 봤자 소용없어. 려 팀장이 아무 말도 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려 팀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아가씨를 나에게 줬을 거야.”고두식이 비웃으며 말했다.려 팀장이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 여자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게다가, 그는 려 팀장의 부하가 아니고 려 팀장을 도와 예천우를 혼내주는 협력관계일 뿐이다. 그는 예천우를 아예 불구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그게 안되면 적어도 다리를 분질러버릴 생각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려 팀장이 뭐라 했든 상관없었다. 고두식의 말을 듣고 유사라는 사색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오지 말 걸 하는 후회뿐이었다. 그녀는 급한 나머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예 팀장님, 자기 팀원은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여기 온 것도 팀장님 지시잖아요, 그냥 보고만 계실 거예요?”예천우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슬쩍 웃으며 말했다. “사라 씨 말이 맞아요. 저의 사람은 제가 지킵니다. 근데 사라 씨는 저의 사람 맞습니까? 방금 자기 입으로 려 팀장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이 말을 들은 유사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때 예천우가 다시 말을 돌렸다. “근데 어찌 됐든 제가 사라 씨를 데리고 온 것은 사실이니 안전하게 다시 데려가야죠.”“그러니, 형씨, 이 아가씨가 싫다는데 그만 손 놓으시죠.”덕규는 멍해졌다가 금방 다시 비웃으며 말했다. “이건 구걸하는 거요?”“구걸이라니요?”“아닙니다. 형씨가 오해했나 본데 지금 저는 명령하는 겁니다.”“그리고 명령에 따르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결과는 제가 책임 못 집니다.”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하하, 이 자식 봐라. 오늘이 지 제삿날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주마.” 어차피 고 사장이 예천우가 앞으로 찍소리도 못 하게 오늘 밤 죽도록 패라고 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유사라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예천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고두식
임완유는 예천우 덕분에 완전히 달라진 동생을 보며 감동에 젖어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천우야, 정말 고마워.”만약 예천우의 꾸짖음과 조언이 없었다면 동생이 이렇게 책임감 있고 당당하게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다.임선호가 열심히 무술을 연습한 것도 분명 예천우의 영향을 받은 덕분이었다.비록 싸움 도중 몇 번 다치기는 했지만 임선호는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상대와 끝까지 맞섰고 치열한 싸움 끝에 마침내 그들 모두를 물리쳤다.예천우가 직접 나섰다면 이 정도 상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임선호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듯 가만히 지켜보았다.그 모습에 임완유뿐만 아니라 허가연의 부모들도 속으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임선호의 실력이 아직 부족할지라도 그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고 그런 끈기와 단호함이 허가연의 부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허가연의 부모는 속으로 어쩌면 임선호가 정말로 딸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전에 임선호에 대한 정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이제 손씨 가문의 일만 잘 넘어간다면 더는 임선호와 허가연의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싸움이 끝나자마자 허가연은 달려가 임선호를 걱정하며 연신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했다.임선호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이 정도 상처쯤이야.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그 말에 허가연은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반면 임선호가 뿌듯해하는 모습에 손씨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강지혜와 손동욱은 주성한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허씨 가문 사람들이 뿌듯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성한이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주성한 또한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고 분노와 불만이 치밀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고 위로는커녕 비난만 받으니 정말 못마땅했다.오히려 손승우가 황급히 주
주변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전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오히려 손씨 가문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허성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이 더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예천우가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성한이 갑자기 넘어지게 된 것도 어쩌면 예천우가 한 짓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그때 허광호의 전화가 울렸고 사부님이었다. 주성한과 강지혜의 다툼을 뒤로 한 채 그는 서둘러 전화기를 들고 한쪽으로 물러나 전화를 받았다.“사부님!”“그래. 네 아버지가 지금 집에 계셔?”위무권관의 관장인 진은수는 마침 허씨 저택 근처에 있었고 얼마 전에 허성태의 몸 상태를 진단해 주겠다고 한 약속을 떠올리며 들를 겸 전화를 걸었다.“계십니다!”허광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서둘러 물었다.“사부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뭐든 제가 처리하겠습니다.”사부님은 아주 높으신 분이니 사부님 곁에 머물 기회만 주어져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허씨 가문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에 이 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 앞으로 좋은 점이 많았다.“별일 아니야. 근처에 있어서 그냥 네 아버지 보러 들르려고.”진은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허광호는 집안에서 난리가 난 걸 언급할지 생각하다가 이내 말을 삼켰다. 사부님의 어마어마한 무공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번에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만약 손씨 가문이 허씨 가문을 공격하려 든다면 사부님이 눈앞에 계시는데 그냥 넘어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부님은 동성 4대 가문들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한 인물이었다.위무권관 관장은 동성에서 명망 높은 사람이었다.진은수는 무공이 절정에 달해 언제든 종사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실력자였고 그의 부하 중에는 뛰어난 강자들도 많았다.그래서 누구든지 진은수의 체면을 챙겨줘야 했다.허광호는 지금
허성태는 이 광경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이 녀석은 정말 끝났어. 살아남기 힘들 거야.’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고 심지어 허가연조차 그런 분위기였다.하지만 임선호와 임완유는 달랐다. 특히 임완유는 예천우의 실력을 여러 번 목격했기에 이 정도로는 그를 위협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게다가 예천우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어 더 안심할 수 있었다.예상대로 예천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견과류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 주성한의 다리에 명중했고 주성한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땅바닥에 쓰러졌다.원래라면 손이라도 짚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손마저 힘이 빠져 바닥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주변 사람들은 이 광경에 멍해졌다.주성한이 대단한 기세로 예천우에게 돌진했는데 결과는 그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예천우는 가볍게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이게 무슨 자세인가요? 제가 아무리 무서워도 굳이 이렇게 엎드려 절할 필요는 없잖아요?”“이, 이 자식이...”주성한은 속이 뒤집히는 듯했고 뭔가에 당한 게 분명했다.손승우도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 사부님,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일어나서 저 녀석을 박살 내세요!”자신이 돈을 들여 고용한 무술 고수가 이렇게 바닥에 나가떨어지는 꼴을 보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주성한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다리와 손의 통증도 마다하고 다시 예천우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그는 예천우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러다 예천우가 다시 무언가를 던지는 것을 포착했는데 그게 고작 견과류라는 걸 알고는 경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해도 피할 수 없었다.결국 주성한은 무릎에 다시 견과류를 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새가 되었다.주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아까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두 무릎을 꿇고 절하는 꼴이 되니 다들 어이없어했다.손승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
강지혜는 허겁지겁 피하려고 했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걸 다 피할 수가 없었고 결국 머리가 헝클어져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얼굴도 맞아서 약간 고통이 안겨 왔다.강지혜는 도저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소리쳤다.“이 자식아, 두고 보자. 내가 반드시 너를 지옥에 떨어뜨려 줄 거야.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그러자 예천우는 비웃는 얼굴로 대꾸했다.“또 그 소리네요. 역시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더니 쓰레기는 역시 쓰레기네요.”예천우는 강지혜의 협박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주변의 허씨 집안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완전히 얼어붙었다. 심지어 허광호마저도 예천우가 어떻게 비참한 결말을 맞을지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예천우를 혼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말았다.그때 누군가 들어와서 소식을 전했다. 손씨 가문의 가주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허성태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고 서둘러 문 쪽으로 향했다.마침내 문이 열리더니 허씨 집안 하인 둘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그 뒤로 험상궂은 얼굴에 강렬한 위엄을 풍기는 한 50대 중반의 남성이 들어왔다.그의 옆에는 날렵한 걸음걸이로 따라오는 노인이 있었는데 걸음 모양새만 봐도 상당한 실력의 고수임이 느껴졌다.그리고 그들 뒤로는 경호원들이 줄지어 들어왔는데 동일한 복장에 강한 기운을 뿜어내며 위압감을 자아냈다.허성태는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손 가주님께서 오셨군요.”“비켜!”손승우는 손동욱과 전화했을 때 이미 허씨 가문이 돕기는커녕 예천우 편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그래서 그는 즉시 사람을 데리고 허씨 저택으로 쳐들어왔다.예전 같았으면 허성태에게 몇 마디 예의를 차렸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런 모습 없이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러자 허성태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지만 곁에서 임선호가 빠르게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허성태는 임선호를 잠시 쏘아보며 손을 뿌리쳤다. 순간적으
“겁먹은 얼굴로 그렇게 초조해하는 것 좀 봐. 그래서 감히 가연이랑 결혼하겠다고 나설 생각을 한 거야?”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네 아버지는 언제쯤 오는데?”“그게... 아마 30분 정도 걸릴 거야.”손동욱의 아버지가 있는 곳은 너무 멀진 않지만 당장 가까운 거리도 아니어서 시간이 좀 필요했다.손동욱의 아버지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즉시 오겠다고 했고 그는 다른 고수들을 부르지 않고 직접 와서 예천우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아직도 그렇게 오래 걸려? 너무 느린 거 아냐.”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주변 사람들은 예천우의 태도에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까지 이렇게 대담하게 나서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곧 손씨 가문의 가주인 손승우가 오면 예천우는 분명히 참담하게 당할 게 뻔해 보였다.하지만 예천우는 그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 위의 과일을 보고는 말했다.“시간이 좀 남는 것 같은데... 여기 과일이 꽤 잘 익었네.”“자, 다 같이 앉아서 천천히 먹으면서 기다려요!”예천우는 자리에 앉아 차를 따르고 견과류를 하나씩 천천히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는 여유롭게 임선호와 임완유에게도 자리를 권하며 함께 먹자고 했다. 임선호는 허가연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고 그들은 진짜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이를 지켜보던 허성태는 깜짝 놀랐다. 왠지 임선호의 매부 예천우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연기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손씨 가문에 감히 대적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예천우가 정말로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허가연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임선호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임완유는 부러운 눈빛으로 허가연을 바라보았다.허가연은 자기 부모와는 달리 진정으로 딸을 위해 생각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하지만 임완유의 부모는 오히려 그녀를 끝없는 위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예천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비참한 결말을
허성태는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결국 여기는 허씨 가문의 집이었으니 말이다.허씨네 저택에서 손동욱과 강지혜가 뺨을 맞았으니 어쩌면 허씨 가문도 역시 연루될 가능성이 컸다.허종우와 허광호도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아서 말문이 막혔다.분노에 찬 강지혜와 손동욱은 벌써 불같이 화가 났다. 특히 손동욱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으르렁댔다.“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어. 그 누구도 너희를 구하지 못할 거야. 나 손동욱이 분명히 말했어!”말을 마친 손동욱은 서둘러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상황을 본 허종우는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너희들은 정말 간탱이가 부었구나. 감히 사모님과 동욱 도련님을 때리다니! 광호야, 뭐 하고 있어? 빨리 저놈들을 잡아!”허종우는 자기가 이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손씨 가문의 고수들이 도착했을 때 불똥이 자신한테 튕길까 봐 두려웠다.허광호도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는 예천우에게 으르렁댔다.“이건 네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 날 탓하지 마!”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사납게 예천우에게 달려들었다.허광호는 위무권관의 관주 진은수에게서 오랫동안 배워 온 무술로 인해 비록 재능은 부족했으나 상당히 강한 내공을 가진 고수였고 지금은 명경 절정의 경지였다. 그는 평범한 상대는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였기에 예천우 같은 이 정도 상대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안 돼요!”그때 허가연이 재빨리 나서서 허광호를 막으려 했다.그러자 허광호는 더욱 분노에 휩싸였다.바로 그때 허성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광호야, 그만해.”“하지만...”“이 일은 손씨 가문과 임선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야. 우리 허씨 가문 사람은 끼어들지 마.”허성태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강지혜와 손동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이미 약속을 한 상태라 부득이하게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그러자 강지혜는 매섭게 허성태를 노려보며 비웃었다.“허성태
손동욱은 음산하게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오늘 이런 짓을 했으니 넌 이제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 그때 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빌지 말았으면 좋겠어. 하하...”손동욱이 비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허가연은 임선호가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아빠, 이게 대체 무슨...”“가연아, 앞으로 일은 아빠도 어쩔 수가 없었어. 네 남자 친구가 방금 자기 힘으로 널 지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니? 이제 그의 실력을 증명할 차례야.”허성태는 허가연의 말을 잘라 끊었다.“아니, 실력이라니요? 선호 오빠는 그저 평범한 집안 출신인데 무슨 수로 손씨 가문을 상대할 수 있겠어요?”허가연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가연아, 그만해. 손씨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 너도 알잖니. 네 아버지가 이 정도까지 양보한 건 이미 우리 허씨 가문의 운명을 건 일이야.”조은희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이제부턴 임선호한테 달렸어. 만약 정말 그가 살아남는다면 엄마도 너희를 축복해 줄게. 더구나 네가 선호와 사귄 그 순간부터 선호는 손씨 가문을 상대해야 하는 운명이었어. 이 난관을 넘지 못하면 너희들도 절대 행복한 미래가 없을 거야.”부모님의 행동이 이해되었지만 허가연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허씨 가문은 더 이상 임선호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즉시 임선호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물었다.“오빠, 이제 어떡해요...”임선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서둘러 말했다.“가연아, 걱정하지 마. 나에겐 매부가 있어. 우린 절대 아무렇지 않을 거야.”그 말을 들은 허성태는 살짝 놀랐다. 그도 그제야 임선호가 말한 예천우라는 존재가 생각났다. 조금 전 예천우 덕분에 상황이 반전되었으니만큼 어쩌면 예천우가 정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희망이 피어올랐다.“언니, 형부... 제발 부탁드려요. 선호 오빠를 꼭 지켜주세요.”허가연은 눈을 반짝이며 필사적으로 부탁했다.그러자 예천우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네! 목숨을 잃는다 해도 전 상관없어요. 그래도 전 가연이와 함께할 겁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허씨 가문이 나설 필요도 없어요. 제가 스스로 가연이를 지켜낼 거니까요.”임선호는 예천우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매부 예천우는 바로 용왕님의 신분이었으니 말이다.“건방진 녀석, 네가 뭘 믿고 우리 손씨 가문을 상대한다는 거야?”손동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비웃었다.그도 역시 허성태의 태도가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다.임선호가 대답하려는 찰나 허성태가 그를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좋아. 임선호,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네 소원을 이뤄주마.”허성태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허성태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릴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허씨 집안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었다.‘단지 방금 본 영상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거야?’허성태의 말을 들은 허가연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형!”허종우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형, 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이렇게 하면 우리 허씨 가문의 체면은 어디에 두겠어?”허광호도 믿을 수 없어서 다급하게 말했다.“이러시면 안 돼요! 가연이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막말한 건데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요.”“그만해. 이미 결정했어.”허성태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제지했고 시커멓게 굳어버린 얼굴로 손동욱과 강지혜 쪽으로 돌아서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지금 이 상황에서 더 강압적으로 나가다가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허허. 허씨 가문에서 이렇게 나오면 오히려 큰일이 터질 것 같은데요?”강지혜가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그 말은 분명 협박이었다. 허씨 가문 사람들은 얼굴이 모두 어두워졌다. 가능하다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나서서 허성태에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럴 일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손씨 가문은 어엿한 동성의 4대 가문이 아닙니까? 이 작은 일을 굳이 크
사람들은 모두 잠시 멍하니 있었다. 허성태 역시 당황했지만 결국에는 예천우가 건넨 영상을 받아 보았다. 영상을 확인하자 그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더 문제였던 건 영상 속 여성은 한 명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손동욱은 완전히 변태적인 심리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예전에는 손동욱이 단지 젊어서 여색을 즐긴다는 말을 들었고 언젠가는 그도 철이 들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지독한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조은희도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결국 다가와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녀의 안색도 확 굳어졌다. 비록 허성태가 급히 영상을 끄고 지워버렸지만 조은희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눈빛이었다.아무리 가문을 위해서라도 그렇지 손동욱 같은 인간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건 절대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그렇게 된다면 허가연의 인생은 정말로 망가지고 말 것이다.허성태는 영상을 지운 뒤 예천우에게 돌려주며 차분하게 말했다.“영상을 보여줘서 고맙지만 영상은 이미 내가 삭제했어. 덕분에 내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군. 하지만 다시 확인하고 싶은데 이 영상들은 어떤 사본도 남아 있어서는 안 돼.”그러고는 한 번 더 손동욱 쪽을 돌아보며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널 구할 수 없어.”예천우는 순간 조금 놀랐다.‘설마 손동욱 저 자식을 지켜주려고 이러는 걸까?’하지만 허성태의 표정을 보니 손동욱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허가연을 위해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설마 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이러는 걸까? 그렇지 않았다면 동영상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도 안 했을 거야.’손동욱이 이 영상들을 보았다면 반드시 예천우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보아하니 허가연 씨의 부모님은 완유의 부모들보다도 엄청 좋으신 분들이네.’조은희 역시 허가연이 손동욱에게 시집가는 일에 대한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반면 허성태는 그동안 허가연의 결혼을 지지하는 듯했지만 지금 보니 그 또한 약간 망설이는 것 같았다.주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