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자식, 아내가 있는데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가? 너무해.’예천우는 임완유가 차에 타자 쫓아가서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임완유가 엑셀을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래도 멀리서 보니 속도가 점차 늦춰져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양체은도 멍한 채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천우 오빠, 내가 뭘 잘못 말했어? 근데,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네 문제가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내가 뭘 잘못했을 거야.”“응, 천우 오빠도 너무 걱정하지 마. 여자애들은 원래 잘 삐지거든. 언니도 금방 괜찮아질 거야.”양체은이 위로했다.“응.”“저기... 내일 저녁?”“나 정말 시간 없어.”“내가 그렇게도 싫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리 오랫동안 내 연락도 안 받고, 나랑 한 번 만나주는 것도 싫어?”양체은은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잠깐, 울지 마.”예천우는 여자가 우는 걸 못 본다. “나도 울기 싫은데 속상하잖아. 나 속상하다고. 천우 오빠가 날 미워하면 난 콱 죽어버릴 거야......”“그래, 그래. 알았어. 내일 저녁 나갈게. 됐지?”예천우도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 연락받지도 않았던 걸 생각하니 좀 미안하기도 해서 승낙하고야 말았다. “정말? 너무 좋아! 고마워, 천우 오빠!”양체은은 너무 기쁜 나머지 예천우를 와락 껴안았다. 예천우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렸다. 이 계집애는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건가? 청순하고 예쁜 얼굴은 그렇다 치자.아담하고 귀여운 몸매인데 이렇게 볼륨있고 빵빵하기까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향기가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양체은도 예천우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발견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꼭 끌어안고 몸을 꼬며 비벼댔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예천우와 임완유의 혼인은 핍박에 의해서 한 거고, 곧 갈라설거라는 것도. 다행히 예천우가 정신을 차리고 아무
임완유가 또 한 번 끊어버리자 예천우는 더는 전화하지 않았다. 확실히 전화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바로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현의 전화였다. “팀장님!”“네. 무슨 일이세요?”“여기 반년 넘게 연체된 외상매출금이 있는데요. 팀장님 오늘 오후 그쪽에 가서 서로 얘기하기로 일정이 잡혀있어요.”유현이 입을 열었다.“유현 씨가 저 대신 가줄 수 있을까요?”“좀 곤란할 것 같아요. 상대방이 꼭 팀장님과 얘기하고 싶답니다. 아니면 이 돈을 못주겠다고 합니다.”“뭐 그런 일이 다 있어요?”예천우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회사에 들를 테니 이따 만나서 얘기해요.”“네.”유현이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후, 예천우가 회사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영업팀 사무실에 갈 생각은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곧장 임완유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는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들어오세요.”안에서 임완유의 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약간 차가운 느낌이었다. 분명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예천우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일하느라 바쁜 임완유를 한 눈보고는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에요?”임완유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 “오해한 일.”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 예천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임완유는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예천우였다. 그를 보니 그녀는 순식간에 기분이 나아졌다. 이제 몇 분 지나지도 않았다. 자신이 떠난 후 예천우가 양체은과 같이 있지 않고 바로 뒤따라 나온 모양이다. 그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입으로는 못된 말만 했다. “무슨 오해?”“정말 오해야!”“아까 양체은이 말하는 거 들었잖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걔랑 정말 뭐가 있었으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이 말을 듣고 임완유의 표정이 좀 폈다. 사실 임완유는 좀 전에 진정되고 나서 양체은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그녀의 말에서도 둘이 별로 친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만 열었다 하면 이혼이란 말로 예천우의 속을 긁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뭐.’예천우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임완유는 멈칫했다. 어렴풋이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 처진 예천우의 뒷모습을 보며 마지못해 한 마디 했다. “예천우, 오해하지 마,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응, 알아.”예천우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나가버렸다. 임완유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음속 한구석이 왠지 찌릿찌릿 아파났다. 왜 아픈지 그녀도 영문을 몰랐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것일까.설마, 자신이 정말 그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일까?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람이다. 그는 자신과 너무나도 먼 곳에 있다. 같이 있으면 과연 행복할까?임완유의 사무실에서 나온 예천우는 영업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현이 예천우가 온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상대는 한 공장의 사장인데 소문에 의하면 사람이 거칠고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현은 예천우에게 최대한 몸을 사리고 만약 그쪽에서 생떼 부리고 돈을 안 내놓으면 그냥 돌아오라고 귀띔했다. 어차피 지금 사회에서 파산이면 모를까, 돈을 갚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외상매출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도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그렇게 많은 자금난이 왜 생기겠는가.“괜찮아요. 어차피 가기로 했으니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죠.”예천우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후에 스케줄 있어요?”유현이 듣고 바로 대답했다. “회의가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소집하셨습니다. 원래는 팀장님이 참석하기로 되어있는데 사장님께 제가 대신 참석해도 되냐고 여쭤봤더니 문제없다고 하십니다.”그는 예천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잘 됐네요. 사장님께서도 제 상황을 알고 계시나 보네요.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앞으로 제 업무를 전부 대신해도 괜찮습니다.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근데... 그분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던데요.”유사라는 계속 예천우를 유심히 지켜봤다. 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도 하는 말이나 행동은 다 괜찮아 보였다. 정말 그런 사람인지는 먼저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장연희가 듣더니 대뜸 화내듯이 말했다. “나쁜 사람이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겠어요? 사라 씨 그 사람을 안 지 얼마나 됐다고... 그놈 입에 발린 소리에 홀딱 넘어간 건 아니죠?”“사라 씨 설마 입사 때부터 업무 가르쳐 주고 지금까지 이끌어준 김 팀장님의 말을 의심하는 거예요?”“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김 팀장님은 저의 사수고 저에게 은인 같은 존재예요. 제가 어떻게 김 팀장님을 의심하겠어요.”“그럼요. 우리의 은인이 그놈 때문에 회사 쫓겨났는데 이렇게 그놈 편 들어줘서야 되겠어요?”장연희는 정말 화났다. 유사라는 이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희 씨,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알았으면 됐어요. 이 일 절대 예천우가 알면 안 돼요.”장연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현이 걸어오며 말했다. “유사라 씨, 팀장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유사라는 흠칫하며 물었다. “예 팀장님께서 저를 왜요?”“수금을 사라 씨랑 같이 갈 생각이신가 봐요. 팀장님보다는 사라 씨가 상대방 상황을 더 잘 아니까요.”유사라가 혹시라도 오해할 가봐 유현이 해석했다. “알았어요. 연희 씨랑 하던 일 마무리 짓고 금방 가볼게요.”“네. 빨리 끝내고 가봐요. 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유현은 별생각 없이 가버렸다. 유현이 가자 장연희가 인차 입을 열었다. “사라 씨, 봤죠? 이제 부임 1일째인데 벌써 변태 본색을 드러내네요. 첫 번째 목표로 사라 씨를 찍었나 봐요.”“네. 이제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연희 씨. 제가 절대 그놈 마음대로 되게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정 안되면 핑계 대고 안 가면 되죠, 뭐.”“아, 잠깐만요, 제가 려 팀장님 뜻은 어떤지 물어볼게요.”장연희는
임완유한테서 차 키를 받아온 예천우는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찾아서 올라탔다.유사라도 따라서 탔다. 다만 뒷좌석에 앉았다.예천우는 좀 의외이긴 했으나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할까 봐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다.유사라는 예천우가 앞에 타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내내 말 한마디도 없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예 팀장님, 분부하실 것 없으세요?”유사라가 끝내 먼저 입을 열었다. “없는데요. 저도 아직 뭐가 뭔지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라 말해줄 게 없네요.”“아... 상대방의 배경조사를 하지 않았다고요? 그럼 어떤 방식으로 담판해야 할지는 알고 계시나요?”“아니요. 그런 것도 필요해요? 어떤 방식으로 갚을 건지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자료정리만 좀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그게……”유사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예 팀장이 순진한 건지 뭔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와 같이 회사를 나와서부터 그는 한 번도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처럼 음침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았을뿐더러 아예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이건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상상대로라면 그가 자신한테서 눈을 떼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리고 말로 희롱하거나해야 하는 게 아닌가.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지자 유사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귀띔했다.“예 팀장님, 듣기로는 상대가 만만하지 않대요.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제가 왜 도망가요, 도망을 가더라도 사라 씨가 먼저 가야죠.”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 “유사라 씨, 이렇게 귀띔해 주는 게 거기에 무슨 함정이 있어서가 아니겠죠?”유사라는 속이 뜨끔해나서 급히 말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전 귀띔한 적 없어요. 전 그냥 오랫동안 돈을 갚지 않는사람들 치고 좋은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어요.”“그건 그렇네요.”“그러니 꼭 조심하셔야 돼요.”“저한테 조심하라고
그와는 반대로 유사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바짝 긴장해 있었다. 비록 려 팀장이 미리 분부해둬서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도 여전히 무서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예천우를 봤다. 의외로 예천우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고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설마 그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혼내려고 온 것인 걸 모르는 건가?중간에 앉아있던, 인상이 험한 고두식도 약간 놀라며 물었다. “당신이 임 씨 그룹 새로 부임한 팀장 예천우요?”“네.”예천우는 차분한 기색이었다. 심지어 여유롭게 앞으로 가서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사장님, 보자고 하셔서 오기는 왔는데 돈은 준비되셨습니까?”이 말을 듣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장내가 떠나갈 듯 웃었다. “하하하, 이 자식 진짜 웃기는 놈이네. 정말 돈 받으러 오라고 한 줄 알아?”“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미련한 놈은 처음 봅니다.”까까머리를 한 남자도 말했다. 유사라도 어이가 없었다. 예 팀장이 회사에서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지금 눈앞의 형세도 못 알아보는 건가?그 머리로 어떻게 회사에서 큰소리를 뻥뻥 쳤단 말인가.고두식이 손을 휘익 저었다. 다들 조용하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팀장,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나?”“압니다. 귀사에 10억 외상금이 연체되고 있어서 제가 여기 받으러 왔습니다. 아주 명백한 사실이지요.”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하하, 예 팀장님 이렇게 재밌는 분인 줄은 몰랐네. 돈을 갚는 건 문제없네만, 옆에 있는 계집애를 나한테 넘기게. 내가 며칠 좀 데리고 있을 테니.”고두식은 처음부터 예천우 옆에 있는 유사라를 눈여겨봤다. 꽤 마음이 동했다. 그가 수많은 여자를 만나봤지만 이처럼 예쁘고 청아한 얼음공주 스타일은 드물었다. 일부러 이런 말로 예천우를 욕보이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예천우가 유사라를 넘긴다 해도 돈을 줄 생각은 없었다. 이 말을 듣자 유사라의 얼굴색이 변했다. 특히 고두식이 자신을
“어휴, 아무리 소리쳐 봤자 소용없어. 려 팀장이 아무 말도 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려 팀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아가씨를 나에게 줬을 거야.”고두식이 비웃으며 말했다.려 팀장이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 여자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게다가, 그는 려 팀장의 부하가 아니고 려 팀장을 도와 예천우를 혼내주는 협력관계일 뿐이다. 그는 예천우를 아예 불구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그게 안되면 적어도 다리를 분질러버릴 생각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려 팀장이 뭐라 했든 상관없었다. 고두식의 말을 듣고 유사라는 사색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오지 말 걸 하는 후회뿐이었다. 그녀는 급한 나머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예 팀장님, 자기 팀원은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여기 온 것도 팀장님 지시잖아요, 그냥 보고만 계실 거예요?”예천우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슬쩍 웃으며 말했다. “사라 씨 말이 맞아요. 저의 사람은 제가 지킵니다. 근데 사라 씨는 저의 사람 맞습니까? 방금 자기 입으로 려 팀장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이 말을 들은 유사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때 예천우가 다시 말을 돌렸다. “근데 어찌 됐든 제가 사라 씨를 데리고 온 것은 사실이니 안전하게 다시 데려가야죠.”“그러니, 형씨, 이 아가씨가 싫다는데 그만 손 놓으시죠.”덕규는 멍해졌다가 금방 다시 비웃으며 말했다. “이건 구걸하는 거요?”“구걸이라니요?”“아닙니다. 형씨가 오해했나 본데 지금 저는 명령하는 겁니다.”“그리고 명령에 따르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결과는 제가 책임 못 집니다.”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하하, 이 자식 봐라. 오늘이 지 제삿날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주마.” 어차피 고 사장이 예천우가 앞으로 찍소리도 못 하게 오늘 밤 죽도록 패라고 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유사라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 예천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고두식
“뒤질래?”부하들은 괄시를 받자 우르르 예천우에게로 달려들었다. 연장을 휘두르는 본새가 하나같이 흉악한 것이 한두 번 휘둘러본 솜씨가 아니었다.쿵, 쾅......유사라가 기겁한 채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흉악한 무리들이 하나, 둘씩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목 고두식도 포함해서 말이다.고두식이 보기에도 험상궂게 생겼고 주먹도 잘 쓰는 것 같았지만 예 팀장 앞에서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바로 쓰러졌다. 이 순간 그녀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나 봤었지, 현실에서 이렇게 센 사람이 정말 존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녀는 금세 예천우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솔직히 신기함이 더 많았다.고두식과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믿기지 않는 듯 예천우게게 물었다.“너, 너 도대체 누구야?”“저는 임 씨 그룹 영업팀장 예천우, 예 팀장입니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예천우가 담담하게 웃더니 말했다. “당신들이야말로 다시 소개해야 할 것 같은데요?”“무, 무슨 뜻이야?”“예를 들면 누가 시켰는지 말입니다.”예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게... 아무도 시키지 않았어. 우리가 그 20억을 갚지 않으려고...”고두식은 일을 끝내면 20억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자신이 전부 떠안았다.무려 20억이니 말이다.“아직 덜 맞았나 보네요. 제가 좀 더 분발해야겠네요.”예천우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너, 뭐, 뭐하려고?”“별거 아닙니다. 사장님 정신 차리게 제가 좀 도와주려고요. 그럼 기억도 잘 나실 거예요.”예천우는 말을 끝내고 오른손으로 그의 몸을 몇 번 살짝 찍었다.고두식은 삽시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침습하여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아...... 말할게요, 전부 다 말씀드릴게요!”“벌써 기억났어요?”예천우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조신우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특히 이신향이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더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봐라. 이게 바로 힘이란 거야.’그 순간 이선우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빌린 돈은 24억이었어요. 갑자기 50억이라니!”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씩씩거렸고 뭔가 이상하단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돈을 빌려놓고 이자가 없을 줄 알았어? 내가 대신 갚은 돈이 40억이 넘는데 이 정도 이자도 못 붙여? 솔직히 말해서 내가 딴 데다 굴렸으면 지금쯤 2배는 됐을 거다.”예천우는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운영하는 도박장이면 열 배도 가능하겠지.”“그래. 그게 뭐?”조신우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에서 굴리는 도박장이야. 돈 버는 건 시간 문제지.”“합법적이야?”예천우가 다시 묻자 순간 조신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고 그는 곧 다시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합법 아니면 어쩔 건데? 우리 집이 장산현에선 곧 법이야.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어?”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예천우를 노려봤다.“좋아. 네 말들 들으니 시름 놓고 너희 가문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어.”“됐고. 아까 큰소리쳤지? 날 죽이겠다고? 해 봐. 당장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조신우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고 지금 그는 예천우를 단지 입만 산 놈으로 여기고 있었다.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젠 정말 끝났어.’그들은 신고 같은 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집안은 다 뒷배가 탄탄하고 누구도 감히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이신향을 향해 물었다.“신향 씨, 장산군은 강흥시에 속하죠?”이신향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이 대화를 들은 조신우
예천우의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순간 얼어붙었다.사람들은 모두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이재동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속으로 절망했다.‘얘 지금 미쳤나? 이 상황에서 조신우한테 그런 말을? 아무리 무모해도 그렇지... 저건 그냥 자살 선언이나 다름없잖아! 조신우가 어떤 신분인데 감히 저런 말을 하는 거아. 조씨 가문은 돈도 있고 권력도 엄청난데... 정말 건드릴 수 없을 존재인데... 휴...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예천우도 날 탓하지 않겠지. 무식한 자식...’조신우는 한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하하! 야, 너 진짜 웃긴다... 나보고 죽을 준비를 해라고? 너 대체 뭔데 그런 말을 해? 무식하고 건방진 자식. 설마 그 이성진 회장한테 명함 한 장 받았다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맥 가진 줄 아는 거냐? 그 사람은 그냥 네 술 맛있어서 인사한 거다. 넌 그냥 술 한 병 준 들러리일 뿐이야. 네가 한 말 똑같게 돌려줄게. 지금 당장 여기서 꺼져. 아니면 줄은 준비나 하든지. 나 조신우가 한 말이야. 누구도 널 구할 수 없어!”물론이죠. 아래는 요청하신 다음 화의 자연스럽고 몰입감 있는 한국어 번역입니다:조금 전 무릎 꿇고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그 순간 싹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그래. 봤지? 이성진조차 우리 삼촌 눈치 본 거야. 이제 모든 체면이 돌아왔네.’조신우의 머릿속은 자만과 승리감으로 가득 찼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번엔 진짜 끝장이구나...’하지만 정작 이신향의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예천우에게 두고 있었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조신우 따위가 어떻게 천우 씨를 이겨...’그 순간 예천우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입을 열었다.“네가 그렇게 죽고 싶다니... 내가 도와줘야지.”“뭐?”조신우는 코웃음을 치며 맞받았다.“하하! 내가 지금 죽고 싶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야, 네가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너... 이신향, 네가 뭐 대단한 여자가되는 줄 알아?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봐주는 거 없어.”조신우는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며 이어 말했다.“이선우, 이건 네 누나 탓이니까 괜히 날 원망하진 마. 선택은 둘 중 하나야. 40억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감방 갈 준비나 해.”이쯤 되자 그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고 말 그대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분노 때문에 정작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조신우의 말이 끝나자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특히 이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애원하듯 말했다.“조 도련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줄곧 도련님 편이었는데요.”“그래?”조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간단하지. 당장 저놈 끌어내. 저 예천우란 놈 지금 당장 꺼져주면 내가 조금은 봐주지.”그 말에 이재동은 주춤거리며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그보다 먼저 이신향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이재동은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천우야, 그만 돌아가. 난 널 사위로 생각한 적 없어. 우리 신향이한텐 조 도련님이 훨씬 더 어울리는 짝이야.”그 말에 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이제 좀 상황 파악되냐?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남자인지. 어디서 싸구려 가짜 술이나 들고 와선 뭔가 될 줄 알았나 본데... 그런다고 네가 찌질이란 사실이 달라질 것 같아?”그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저 술을 어디서 주워왔든 아니면 맛이 그럴듯해서 속은 거든... 저 새끼는 결국 그냥 찌질한 놈이야.’그는 원래 몇 천만 원짜리 술이라도 꺼내서 겁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방 안 사람들 모두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결국 술은 이성진 회장의 손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이 술은 조신우가 내놓은 것도 그가 사죄의 의미로 바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말하자면 조신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단지 무릎만 꿇고 멋쩍은 사과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이 장면을 바라보던 조혁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감히 신우한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대체 무슨 심보일까.’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신우가 이번 사고만 무사히 넘기면 그땐 따로 시간을 내서 따끔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이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밌는 친구구먼. 이름이 뭐지?”예천우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예천우입니다.”“그래. 이름 기억해 두지. 오늘 자네 덕 좀 봤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술을 돈 주고 못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술이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82년산 라피노 같은 와인은 평생 마셔도 마실 수 있는 술이겠지만 이런 국보급 백주는 한 병 마실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회장님, 별말씀을요.”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이성진은 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오타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눈썹을 치켜세웠다.“오성 마오타이 58년산이라니... 자네 보통 친구는 아닌데?”“지인이 준 겁니다.”예천우가 가볍게 대답했다.“지인도 대단한 사람이구먼. 자네란 사람...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이성진은 감탄한 듯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내 명함이네. 기회 되면 같이 한잔하지.”조혁진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세상에... 술 한 병 때문에 회장님이 저 녀석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시다니. 대체 저놈 주변에 어떤 인맥이 있는 거야?’그는 그 순간 조신우보고 예천우를 조심하라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