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도대체 얼마나 더 수모를 당해야겠어!”참다 못한 임국종이 호통과 함께 다른 이들을 제지했고 그 기백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천우야, 유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와 완유는 한때 인연을 맺었던 사이니 굳이 널 막진 않으마. 떠나거라. 최대한 멀리 떠나서 숨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가문은 더 이상 너와 엮이지 않을 것이다.”임국종의 말에 예천우는 살짝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역시 아직 나한테 남은 앙금이 많은 모양이네.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싫은 거야.’할아버지의 말에 임완유 역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허탈한 기분에 휩싸였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걸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할아버지, 안돼요. 지금 이대로 떠나면...”“가만히 있어.”“알겠습니다.”살짝 한숨을 내쉰 예천우가 말을 이어갔다.“할아버님, 그럼 몸 건강히 지내십시오.”이 말을 마지막으로 예천우는 결연히 돌아섰다.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정은 두 눈을 반짝였다.‘천우가 지금까지 했던 일을 전부 말했는데도 이렇게 내쫓는다고? 하여간 멍청하긴...’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무시무시한 사태수를 예천우가 정말 상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걱정이 밀려들며 조심스레 예천우의 뒤를 따랐다.유걸도, 예천우도 자리를 뜨자 잠시나마 조용했던 집안이 다시 술렁대기 시작했다.“끝이야. 이젠 정말 끝이라고.”“예천우 그 자식이 이런 큰 사고를 쳤으니... 사태수 회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이제 우린 어떡하죠?”겁에 질린 다른 가족들과 달리 임국종의 표정은 그나마 의연했다.“그만들 해. 사태수 회장이 어디 보통 사람이야? 3일만에 천우가 제대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리고 완유도 말했잖아. 천우도 어디까지나 완유를 구하려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거야. 설령 우리한테 불이익이 떨어진다 해도 천우한테 은혜 갚는다 생각해야지 뭐.”임국종의 말에 그제
평소 가족이네 뭐네 하며 서로 치켜세워주던 사이였지만 정말 돈이 달린 문제와 마주하니 다들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서로를 향한 비난, 원망의 말이 쏟아지고 임완유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다들 그만하세요.”참다 못한 그녀가 소리쳤다.“솔직히 저희가 강요해서 투자한 거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저희도 피해 금액이 만만치 않아요. 설령 정말...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다 해도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죠.”“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임완유의 말에 더 흥분한 가족들은 아예 주먹다짐까지 하려는 듯 으르렁대기 시작했다.“그만!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정말 다들 쫓겨나고 싶어?”임국종도 화가 단단히 났는지 눈동자까지 빨개진 모습이었다.“그깟 푼돈 좀 잃었다고 목소리를 높여? 지금 그룹이 어떤 상황인지 알긴 해? 임연그룹이 무너지면 그때야말로 정말 다들 길바닥에 나앉을 줄 알아!”이때다 싶었는지 임국진이 불쑥 끼어들었다.“형님, 그게 사실이라면 완유의 대표 자격을 다시 검토해 봐야 하지 않겠어? 따지고 보면 우리가 유걸 그 자식한테 사기를 당한 것도, 회사가 위기에 처한 것도 완유 탓이잖아. 대표이사로서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맞아.”“그럼 그 자리는 누가 맡는데?”“찬이, 찬이를 그 자리로 올리는 게 어때? 찬이도 우리 집안 사람이지, 그리고 대학교에서 금융학 전공까지 했었지. 나름 엘리트 인재라고. 우리 찬이가 대표이사가 되면...”“그룹이 하루라도 더 빨리 문을 닫게 되겠지. 네 아들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임국종이 차갑게 동생의 말을 잘라버렸다.“다들 의미없는 싸움은 여기서 끝내. 투자로 손해입은 돈은 알아서들 처리하고. 이 결과에 불만있는 자식들은 나한테 직접 얘기하고.”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가족들 앞에서는 침착한 척, 의연한 척 했지만 임국종 본인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유걸 그 자식 말에 홀려서 회사 자금까지 투자에 퍼부었어. 그나마 은행 대출금은 확보했으니 아직 되돌릴 가능성은 충분
점점 멀어져가는 예천우를 바라보는 소정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솔직히 방금 전 그 돈도 정말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예천우의 진짜 능력치를 알아보고 싶어 시험조로 건넨 게 컸다. 그런데...‘뭐지 저 자신만만한 태도는? 정말 사태수를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만약 저게 그저 허세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이라면 더 꽉 잡아야 해. 날... 이 세상 꼭대기로 올려줄 수 있는 남자일 테니까.’같은 시각, 차에 시동을 걸려던 예천우가 들려오는 알림음에 휴대폰을 확인했다.2억이라는 계좌이체 알림과 비행기 티켓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그리고 입금인 이름을 확인한 예천우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완유가 보낸 거잖아? 개인적으로 사기를 당한데다 회사 상황도 안 좋을 텐데 그 와중에...’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휴대폰이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내일 아침 가장 이른 티켓으로 예매했어.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수화기에서 임완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싫어. 내가 왜.”예천우가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너 도대체 어쩌려고 이래.”그가 고집을 부리니 임완유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해? 그래, 아까는 일가 친척들 다 있었으니 그렇다고 쳐. 지금은 우리 둘뿐이잖아. 내 앞에서까지 자존심을 부려야겠어?”“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그럼 왜 이러는데? 나 때문에? 아니면 우리 집안 때문에? 그래, 나도 알아. 전에 너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었고 심한 말도 많이 했다는 거.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선 이미 사과했잖아.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듯이 넌 이제 우리 집안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야. 지금 중요한 건 일단 사는 거라고. 정말 몰라서 그래?”“알아.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마. 난 괜찮을 테니까.”어차피 더 설명해 봤자 임완유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예천우는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사태수가 죽으면 완유도 이렇게까지 불안해 하지 않겠지.’“천우야? 천우야?”
양박군은 예천우가 나름 아끼는 인재였으므로 간단한 대화 몇 마디 나눈 후 바로 그에게 청룡법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약 2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고 예천우가 기를 불어넣어준 덕에 양박군은 청룡법 1-3단계 수련에 성공한 것은 몸 자체가 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온몸에 힘이 차고 넘치는 기분이랄까?물론 그것은 예천우가 수련 돌파를 도와준 것은 물론이요 따로 진기를 넣어 경맥을 뚫어준 덕분이었다. 원래부터 육체적 재능이 뛰어난 양박군이었던지라 예천우의 작은 도움에도 크나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앞으로 더 수련에 정진하도록 해. 익숙해지면 청룡법의 다음 단계도 가르쳐줄 테니까.”“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앞으로 시키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양박군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예천우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또 숙였다.양박군에게 삶의 의미는 단 두 가지, 하나는 여동생을 잘 지키는 것,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강함에 대한 추구였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모두 예천우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으니 이렇게 나올만도 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저녁 8시.양대복은 제시간을 맞춰 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딱 봐도 고수인 게 분명한 노인 두 명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화경급 고수?’예천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화경급 고수들은 대부분 그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해 종사급으로 넘어가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양대복의 뒤를 따르는 두 남자들은 화경 중간 단계쯤 되어 보이는 이들이었으나 단 몇 시간만에 화경급 고수 두 명을 섭외했다는 것만으로도 양대복의 인맥과 실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한편, 양대복의 등장에 장혁은 오히려 허둥대기 시작했다.‘흑룡회 회장, 용등상회 회장, 천해시 지하세계의 왕 양대복을 직접 만나다니.’그런데 양대복을 직접 만났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천하의 양대복이 예천우를 보고 바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천우 씨.”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그저 고개만 까딱하
그 순간, 강력한 기운이 온몸을 휩싸고 가슴을 중심으로 충격이 퍼져나가더니 마치 트럭에라도 치인 듯 뒤로 튕겨나갔다.양대복의 곁을 지키던 다른 노인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대한 기운에 두 사람 모두 뒤로 밀려나가다 벽에 등을 부딪히고 겨우 멈출 수 있었다.“뭐... 뭐야?”하지만 젊은 나이의 초고수를 만났다는 사실이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강력하게 다가왔다.“너... 종사급 고수였어?”남자의 말에 양대복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놀라움과 묘한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용왕님께서도 종사급 고수였어?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만하셨던 거야?’‘종사급 고수? 전설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천우 씨가 종사급 고수였다고?’역시 깜짝 놀란 양박군과 달리 이 분야에 있어 문외한인 장혁만 눈을 껌벅버릴 뿐이었다.공포, 충격, 동경...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시선들 속에서도 예천우는 무덤덤했다.“종사급 고수가 뭐 그렇게 대단한가요?”이미 18살에 종사급 경지에 올랐으며 지금은 종사급 후기, 즉 종사급 정상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간 뒤로 넘어가겠다 싶었다.종사급부터는 한 단계를 넘어가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 한 단계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 사태수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예천우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예천우의 실력에 겁을 먹은 두 남자의 태도 역시 바로 공손하게 바뀌었다.“저희가 눈앞에 고수님을 두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손자 뻘인 남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치욕감보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인한 공포와 존경스러움이 앞섰다.“됐어. 양 회장 사람이니 굳이 건드리지 않겠어. 그리고 오늘 싸움에 두 사람은 참견하지 마.”“네, 알겠습니다!”지금까지 두 사람을 키워준 양대복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양대복 역시 그 상대가 예천우였으므로 전혀 개의치 않았다.잠시 후, 예천우는 양대복, 양박군, 장혁과 함께 사태수가 머무는 별장으로 이동하기
‘악인을 처리하는 것도 대단한데 영사파까지 맡기려 하다니.’ 양박군은 왠지 모르게 벅차오름을 느꼈다.물론 양박군은 이 모든 게 예천우가 의도적으로 그의 욕망을 끌어내려 하고 있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한편, 예천우의 계획을 들은 장혁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으로 모자라 말 그대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사태수, 천해시의 레전드 강자이자 싸움 좀 한다는 이들은 한 번쯤은 동경해 봤을 인물, 그런 그를 죽인다니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 건가 싶었다.지잉.‘완유잖아?’임완유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휴대폰이 울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예천우는 대충 무시하려고 했으나 상대가 워낙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터라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다.“어, 완유야.”“예천우 너 정말 미쳤어?”수화기 저편에서 화가 잔뜩 난 임완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안 미쳤는데?”“그런데 도대체 왜 비행기를 안 탄 건데. 정말 그렇게 죽고 싶어?”반면 임완유도 도무지 무슨 생각인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예천우가 답답할 따름이었다.“혹시 나 지금 걱정해 주는 거야?”“걱정? 내가 왜 네 걱정을 해?”“아니, 안 그럼 이렇게 화를 낼 리가 없잖아. 내가 죽든 말든.”예천우가 피식 웃었다.“걱정하지 마. 난 무조건 살아남을 거야. 예쁜 우리 와이프 평생 과부로 살게 할 순 없으니까.”“그건 또 무슨 소린데?”“별거 아니야. 나 지금 바빠서 먼저 끊을게.”“나쁜 자식! 개자식!”또다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임완유는 휴대폰에 대고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과부? 누가 과부로 살겠대? 너 죽으면 바로 다른 남자 만날 거야!”하지만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울분을 쏟아내고 나니 또다시 예천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사태수 그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이긴다는 건데...’...같은 시각, 사태수의 별장.“사태수는 자신의 실력에 굉장히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라 저택에 경호원은 거의 두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별장 안에는 아마 잔심부름을 할 부하 2명
“예천우, 너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건방진 거야? 기회를 줄 때 곱게 도망이나 칠 것이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 발로 여길 기어들어와?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직접 죽여주마.”말을 마친 사태수의 주위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고 아늑하던 거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섬뜩하게 변했다.그 기운에 양대복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고 장혁은 자꾸만 힘이 풀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았다.반면 양박군은 꽤 뜨거운 눈빛으로 사태수를 노려보고 있었다.지금으로선 저 사람과 싸워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왠지 자꾸 싸워보고 싶은 욕심이 머리를 치켜들었다.그런 양박군의 표정을 살피던 예천우가 싱긋 미소 지었다.“싸우고 싶으면 덤벼봐. 내가 있는 한 죽진 않을 테니까.”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양박군은 바로 그 자리에서 뛰어오르더니 사태수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와 같은 강력한 기세, 바람이 일 정도로 빠른 스피드.젊은 나이에 벌써 이 정도 기개를 보여주는 젊은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에 사태수도 흠칫 놀랐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하, 나이 치곤 대단하지만 내 상대는 아니지. 난 종사 중기를 앞두고 있는 몸이라고.’퍽!두 힘이 부딪히며 강렬한 충돌음을 빚어냈다.온힘을 다해 달린 양박군과 달리 그저 사태수는 그저 선 자리에서 오른손을 들었을 뿐임에도 그 강력한 기운에 양박군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에 휩싸였다.한편, 사태수 역시 꽤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아무리 절반 정도 힘 밖에 싣지 않았다지만 팔이 저릿해 오는 건 물론이요 뒤로 조금 물러날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양박군의 놀라운 재능에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힘이 아주 장사구나. 아직 종사급 고수가 아닌 게 아쉬울 따름이야. 조금만 더 성장했다면 꽤 성가신 상대가 되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구나.”그리고 다음 순간, 귀신처럼 조용히, 하지만 매섭게 이동하던 사태수는 양박군의 얼굴을 향해 장격을 날렸다.‘이건 못 피하면 죽는다.’훅 다가
“함께 싸우시죠.”사태수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확인한 양대복이 어느새 예천우 곁으로 다가왔다.‘용왕님도 종사급 고수라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함께 싸운다면 그나마 이길 확률이 늘어날지도 몰라.’“같이 덤비시겠다? 오합지졸 몇 명 더 늘어난다고 결과가 바뀔 줄 알아?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사태수는 예천우 일행을 향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내가 직접 죽여주지.”“하, 너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건방진 거야?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 뭐 그런 건가?”사태수의 눈동자가 어느새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무식한 건 너야. 지금까지 네가 가장 강한 줄 알고 살아왔겠지.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이게 정말 죽으려고!”예천우의 도발에 참다 못한 사태수는 순식간에 예천우 앞으로 다가와 그를 향해 따귀를 날리려 했다.‘내가 곱게 죽여줄 줄 알아? 네 사지를 부러트리고 경맥을 전부 터트리고 근육 하나하나 전부 뒤틀리게 만들어주마.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해주겠어.’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다가온 사태수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양대복은 자신이 이 싸움에 끼어봤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천우 씨 조심하세요!”양박군의 목소리를 들은 사태수가 피식 웃었다.‘지금 피해 봤자 어차피 늦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왠지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에 사태수는 묘한 공포감에 휩싸였다.그리고 다음 순간, 본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수를 꺼내고 그리고 그 비수가 정확히그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을 발견한 사태수의 얼굴은 공포감으로 일그러졌다. ‘안돼!’하지만 이 짧은 단어를 미처 입 밖으로 내기도 전, 목 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너... 너도 종사급이었나?”겨우 입을 벌리고 중얼거리던 사태수가 털썩 쓰러졌다.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사태수의 눈동자에는 억울함, 후회로 가득했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에 재방송이란 없는 것을.그리고 이
조신우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특히 이신향이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더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봐라. 이게 바로 힘이란 거야.’그 순간 이선우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빌린 돈은 24억이었어요. 갑자기 50억이라니!”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씩씩거렸고 뭔가 이상하단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돈을 빌려놓고 이자가 없을 줄 알았어? 내가 대신 갚은 돈이 40억이 넘는데 이 정도 이자도 못 붙여? 솔직히 말해서 내가 딴 데다 굴렸으면 지금쯤 2배는 됐을 거다.”예천우는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운영하는 도박장이면 열 배도 가능하겠지.”“그래. 그게 뭐?”조신우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에서 굴리는 도박장이야. 돈 버는 건 시간 문제지.”“합법적이야?”예천우가 다시 묻자 순간 조신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고 그는 곧 다시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합법 아니면 어쩔 건데? 우리 집이 장산현에선 곧 법이야.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어?”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예천우를 노려봤다.“좋아. 네 말들 들으니 시름 놓고 너희 가문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어.”“됐고. 아까 큰소리쳤지? 날 죽이겠다고? 해 봐. 당장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조신우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고 지금 그는 예천우를 단지 입만 산 놈으로 여기고 있었다.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젠 정말 끝났어.’그들은 신고 같은 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집안은 다 뒷배가 탄탄하고 누구도 감히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이신향을 향해 물었다.“신향 씨, 장산군은 강흥시에 속하죠?”이신향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이 대화를 들은 조신우
예천우의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순간 얼어붙었다.사람들은 모두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이재동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속으로 절망했다.‘얘 지금 미쳤나? 이 상황에서 조신우한테 그런 말을? 아무리 무모해도 그렇지... 저건 그냥 자살 선언이나 다름없잖아! 조신우가 어떤 신분인데 감히 저런 말을 하는 거아. 조씨 가문은 돈도 있고 권력도 엄청난데... 정말 건드릴 수 없을 존재인데... 휴...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예천우도 날 탓하지 않겠지. 무식한 자식...’조신우는 한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하하! 야, 너 진짜 웃긴다... 나보고 죽을 준비를 해라고? 너 대체 뭔데 그런 말을 해? 무식하고 건방진 자식. 설마 그 이성진 회장한테 명함 한 장 받았다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맥 가진 줄 아는 거냐? 그 사람은 그냥 네 술 맛있어서 인사한 거다. 넌 그냥 술 한 병 준 들러리일 뿐이야. 네가 한 말 똑같게 돌려줄게. 지금 당장 여기서 꺼져. 아니면 줄은 준비나 하든지. 나 조신우가 한 말이야. 누구도 널 구할 수 없어!”물론이죠. 아래는 요청하신 다음 화의 자연스럽고 몰입감 있는 한국어 번역입니다:조금 전 무릎 꿇고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그 순간 싹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그래. 봤지? 이성진조차 우리 삼촌 눈치 본 거야. 이제 모든 체면이 돌아왔네.’조신우의 머릿속은 자만과 승리감으로 가득 찼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번엔 진짜 끝장이구나...’하지만 정작 이신향의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예천우에게 두고 있었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조신우 따위가 어떻게 천우 씨를 이겨...’그 순간 예천우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입을 열었다.“네가 그렇게 죽고 싶다니... 내가 도와줘야지.”“뭐?”조신우는 코웃음을 치며 맞받았다.“하하! 내가 지금 죽고 싶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야, 네가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너... 이신향, 네가 뭐 대단한 여자가되는 줄 알아?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봐주는 거 없어.”조신우는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며 이어 말했다.“이선우, 이건 네 누나 탓이니까 괜히 날 원망하진 마. 선택은 둘 중 하나야. 40억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감방 갈 준비나 해.”이쯤 되자 그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고 말 그대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분노 때문에 정작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조신우의 말이 끝나자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특히 이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애원하듯 말했다.“조 도련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줄곧 도련님 편이었는데요.”“그래?”조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간단하지. 당장 저놈 끌어내. 저 예천우란 놈 지금 당장 꺼져주면 내가 조금은 봐주지.”그 말에 이재동은 주춤거리며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그보다 먼저 이신향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이재동은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천우야, 그만 돌아가. 난 널 사위로 생각한 적 없어. 우리 신향이한텐 조 도련님이 훨씬 더 어울리는 짝이야.”그 말에 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이제 좀 상황 파악되냐?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남자인지. 어디서 싸구려 가짜 술이나 들고 와선 뭔가 될 줄 알았나 본데... 그런다고 네가 찌질이란 사실이 달라질 것 같아?”그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저 술을 어디서 주워왔든 아니면 맛이 그럴듯해서 속은 거든... 저 새끼는 결국 그냥 찌질한 놈이야.’그는 원래 몇 천만 원짜리 술이라도 꺼내서 겁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방 안 사람들 모두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결국 술은 이성진 회장의 손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이 술은 조신우가 내놓은 것도 그가 사죄의 의미로 바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말하자면 조신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단지 무릎만 꿇고 멋쩍은 사과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이 장면을 바라보던 조혁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감히 신우한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대체 무슨 심보일까.’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신우가 이번 사고만 무사히 넘기면 그땐 따로 시간을 내서 따끔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이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밌는 친구구먼. 이름이 뭐지?”예천우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예천우입니다.”“그래. 이름 기억해 두지. 오늘 자네 덕 좀 봤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술을 돈 주고 못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술이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82년산 라피노 같은 와인은 평생 마셔도 마실 수 있는 술이겠지만 이런 국보급 백주는 한 병 마실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회장님, 별말씀을요.”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이성진은 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오타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눈썹을 치켜세웠다.“오성 마오타이 58년산이라니... 자네 보통 친구는 아닌데?”“지인이 준 겁니다.”예천우가 가볍게 대답했다.“지인도 대단한 사람이구먼. 자네란 사람...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이성진은 감탄한 듯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내 명함이네. 기회 되면 같이 한잔하지.”조혁진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세상에... 술 한 병 때문에 회장님이 저 녀석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시다니. 대체 저놈 주변에 어떤 인맥이 있는 거야?’그는 그 순간 조신우보고 예천우를 조심하라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