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는 화장하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니 은은한 여인의 향기가 풍겨왔다.진사형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짓했다."이리 오거라."유양월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치맛자락이 살짝 들리며 가느다랗고 하얀 발목이 드러났다.그녀가 천천히 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진사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그림자로 유양월을 가려버렸다. 그의 강한 팔은 마치 벽과도 같았다. 그는 유양월을 번쩍 들어 침상으로 향했다.유양월은 두 눈을 감았고 그의 목을 감싼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진사형은 그녀가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녀가 두려움 때문에 떨고 있다는 것을 그녀만 알고 있었다.그녀는 진사형이 그녀의 눈빛에서 야망과 욕망을 알아차릴까 봐 두려웠다.침대에 이미 이불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다소 거친 손길로 유양월을 이불 위에 눕혔고, 이내 그녀의 옷을 풀기 시작했다.역시 전생처럼 진사형은 여인을 아낄 줄 몰랐다.그의 팔에 둘러싸인 그녀는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할 이유도 없었다.곧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고, 점점 아래로 향했다...갑자기 진사형의 행동이 멈췄다. 유양월은 정신을 가다듬고, 행동에 실수가 있었는지 빠르게 생각했다."앞으로 많이 먹거라. 너무 말랐구나."그는 그녀를 몸으로 누르고 있었고 그의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의 연약한 몸집을 보고 진사형이 참다못해 한마디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행동은 더 뜨겁고 거칠어졌다.그날 밤, 그녀는 폭풍우 속에서 떠도는 작은 배와 같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속삭였다."제발... 살살…"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가파른 숨결은 울먹이는 것 같았다. 몸 위에 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고 그녀의 모습은 그의 욕망을 더 자극했다.하지만 촛불을 밝혀 본다면 그녀의 맑은 눈빛과 옅은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절대 빠져들지 않았다.그녀는 진사형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어떤 여
진사형은 비록 냉담한 편이지만 진목보다 대범하고,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니 의지할 상대로 손색이 없었다.유양월은 치장을 마친 뒤, 얼굴에 적당한 미소를 띠고, 청유와 함께 익숙한 정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걸어가는 동안 익숙한 풍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전생에 그녀가 수없이 지나왔던 길이지만,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져 걸음도 훨씬 가벼웠다.전생 진사형의 여인으로 지내며 무미건조하게 기회만 기다리던 것과 달리, 이번 생의 유양월은 다가올 날들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가는 곳마다 하인들과 시녀들이 소식을 들었는지, 그녀를 보고 몸을 바르게 하고 예를 갖추었다.유양월은 과하지 않게 행동하며 품위를 지켰다. 덕분에 그녀가 명문가 출신이 아닌 첩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그녀를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망월각에서 태자비의 정원까지 약 반 시진이 걸렸다. 도착했을 때 정원은 고요했다.잠시 후, 단정히 차려입은 한 시녀가 나타나 말했다.“태자비께서는 아직 단장을 마치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려주시지요.”유양월은 고개를 끄덕이고 청유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와 다과가 준비되었다.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거만하고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나, 어제 태자를 모셨다는 유봉의 아니오? 하룻밤을 모시자마자 안부를 여쭈러 오다니. 태자께서 참으로 매정하시오. 하루만이라도 예를 면제해 주시지 않으시고.”그녀는 유양월이 태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익숙한 목소리와 말투였다. 추승휘는 여전히 기억 속 그대로였다. 거만하고 무례하며, 집안 배경과 자신의 미모를 앞세워 거리낌 없이 남을 깔보았다.유양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추승휘께 인사 올립니다.”추승휘는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고개를 들어 보시오. 자네가 얼마나 미인인지 확인해 봐야겠소.”유양월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눈을 깜박이며 조용히 말했다.“추승휘께서 저를
"마마, 한마디만 더 하자면 유씨의 미모가 너무도..."태자비 민 씨는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고 눈빛에는 경멸로 가득 찼다."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네. 미모가 뛰어나니, 그것으로 전하를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빼어난 집안 아가씨도 아니네. 이 동궁에 들어온 것도 그 얼굴 하나만 믿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전하의 안목이 참으로 뛰어나네. 유씨는 정녕 빼어난 미인일세."허 마마는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정실은 인품을 보고, 첩은 얼굴을 보고 얻는다고 하였지요. 백씨가 평소 워낙 거만하니, 이제 유씨가 마마를 위한 백씨의 상대가 되어야지요. 총애를 빼앗을 수 있다면, 백씨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민 씨는 비웃음이 담긴 눈빛으로 무심하게 대답했다."백씨는 어리석고 무지하네. 아직도 전하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니... 전하는 어려서 어머니와 헤어졌네. 어미 없는 아이니, 무엇이든 홀로 견뎌야 했지. 그러니 집안의 자식들은 모두 친어머니가 돌보게 하는 것이네. 첩실에 대한 유일한 배려라 할 수 있지."그녀는 이내 백양제의 행동을 떠올리며 냉소를 흘렸다."그저 그녀가 거만하게 굴게 내버려두시게."백씨는 자식을 제외하면 그저 가문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태자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그녀를 너그러이 대해줬고, 그 후 그녀는 태자를 믿고 거만해졌다."그래도 마마는 너무 선하십니다. 만약 사나운 정실이었으면 백씨는 벌써 처리되었을 것입니다."허 마마가 덧붙였다."선하다고? 첩이란 그저 노리개일 뿐이네. 시집오기 전 집에서 어머니께서 항상 첩들과 싸우며 지냈네. 그렇게 평생을 싸웠지만 무엇을 얻었는가? 나는 알고 있네. 내가 실수하지 않는 한 태자비의 자리는 누구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여느 여인이 총애받든 말든 내 앞에선 순종해야 하네. 순종하는 이들은 자식을 얻어 의지할 수 있게 하면 되고, 거역
추승휘는 자미각으로 들어섰고, 귀한 비단에 발을 디뎠다. 고개를 들자, 한 미인도와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백양제가 연탑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돋보이게 했고, 은은하게 드러난 하얀 피부는 빛나는 윤기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손바닥만 하게 작았고, 가느다랗고 매혹적인 눈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비할 수 없는 요염함이 묻어났다.연탑 옆에 시녀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백양제는 천천히 눈을 떴고, 이내 시녀를 가볍게 발로 차며 말했다."됐다."시녀는 얌전히 대답한 후 한쪽으로 물러났다."이렇게 찾아와서 양제가 쉬는 것을 방해한 것은 아닙니까.""할 얘기가 있으면 그리 서론을 얘기할 필요 없다. 어서 하거라."백양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자세 때문에 하얗고 풍만한 그곳이 유독 더 부각되었다. 그 모습에 추승휘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오늘 양제께서 자리에 없으셔서 새로 온 여인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미모가 어찌 아름답던.""그래? 오황자가 전하에게 잘 보이려 데리고 왔다던 여인이냐? 이름이 뭐였지."백양제는 그 말을 듣고 관심을 보였다."유씨입니다."추승휘가 급히 덧붙였다."그저 태자에게 아첨하려고 보낸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이곳까지 찾아와서 얘기할 정도이냐?"추승휘는 백양제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 짜증을 내는 듯한 모습에 다급히 말을 이었다."양제, 직접 그 여인을 보게 된다면 제가 헛소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그 여인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저 전하와 하루를 보내고 태자비께 예를 올렸을 뿐인데, 귀한 상을 망월각으로 보냈다고 들었습니다."백양제는 그 말에 흥미를 느끼며, 붉은 손톱으로 길게 늘어진 장신구를 만지며 비웃었다. "그저 가난한 집안의 딸에 불과하다. 하마터면
그는 생각에 잠겼다. 유양월은 예를 올린 뒤 일어나라는 말이 없자, 계속 자세를 유지하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녀는 언제라도 넘어질 듯했다.조전은 뒤에서 이를 지켜보며 몇 번이고 말하려 했지만, 갑자기 진사형이 움직였다.그는 손을 들어 유양월의 팔을 잡아,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일어나라고 말하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있을 생각이냐?”유양월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머리만 내리깔았다.두 사람은 문 앞에 서 있었다. 저녁 바람이 불자, 향기가 퍼져나갔다. 진사형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문 앞에 놓인 꽃을 보았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이 꽃이 낯이 익구나.”조전이 급히 다가와 덧붙였다.“전하, 이 꽃은 '우미인'이라고 합니다.”“그래? 무슨 뜻이 담겨 있느냐?”조전는 멈칫하며 말을 잇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했다.“전하, 이 꽃은 백양제가 저의 책봉을 축하하려고 보내준 것입니다. 참 마음에 듭니다.”유양월는 급히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는 진사형의 팔을 살짝 감았다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손을 풀었다.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녀는 긴장하고 두려운 듯 속눈썹을 살짝 떨고 있었고 몰래 고개를 들어 진사형을 바라보았다.마치 그를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녀의 모습은 두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귀여운 작은 여우 같았다.방 안은 잠시 고요해졌고, 진사형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다른 말을 하지도 않으며, 그저 앞으로 걸어가 유양월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그는 그녀를 방 안으로 이끌었다.두 사람은 연탑에 나란히 앉았다. 진사형는 다시 한번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불안한 모습으로,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그는 우미인이라는 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조전의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 꽃이 좋지 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런데도 그
다음 날, 동궁 하인들의 잡담이 끊이질 않았다.하룻밤 사이, 동궁의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태자는 유봉의를 유소훈으로 책봉했다. 봉의로 품계가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태자는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이로써 유씨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동궁의 하인들은 그녀를 무시하던 태도를 바꾸었다. 이른 아침 청유가 음식을 가지러 가자, 시녀들과 내시들이 모두 상냥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청유는 뚜껑을 열고 요리들을 힐긋 보더니,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내 유소훈을 위한 상들이 물 흐르듯이 망월각으로 밀려들었다.태자가 유소훈을 총애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과도 같았다.추승휘는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이 소식을 듣고 입맛을 잃어 더 이상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시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전하가 그 꽃들에 대해선 아무 말씀도 없었느냐?”시녀는 고개를 저었다.“예.”추승휘는 그제야 안심했지만, 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작은 계략은 유양월 그 천한 여인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게다가 태자도 그녀를 총애하고 있었다.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녀의 품계가 자신의 자리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 아닌가...그럴 수는 없었다.이건 명백히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었다!추승휘는 그 천한 여인을 동궁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동궁은 원래 평온했다. 하지만 그녀가 온 뒤로 며칠 사이에 태자를 홀려 이렇게 총애를 받았다.시일이 더 지나면 그 요망한 얼굴과 천박한 수작으로 동궁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것이다.가슴이 심하게 들썩이는 추승휘를 바라보며, 시녀가 달래듯 말했다.“마마, 화로 몸을 해치시면 안 됩니다. 유소훈이 잠깐 총애를 받는다 해도, 천한 신분입니다. 저런 신분으로 높은 품계에 오른 사람은 본 적 없습니다. 절대 마마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입니다.”“그래?”추승휘는 확신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물었다.화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마마,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유소훈의
생각에 잠긴 그녀는 손수건으로 웃고 있는 모습을 가렸다. 하지만 점점 그 웃음은 사라지고 말았다.태자비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친근하게 사소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유양월은 공손하면서도 놀란 듯 기쁜 표정을 지으며 태자비의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이기까지 했다.백씨의 미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두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이유 모를 답답함이 솟구쳤다.‘정말 재미없구나. 태자비 저 늙은 여인이 유 씨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신분이 미천한 여자를 끌어들인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유양월과 이야기를 마친 태자비는 그제야 백씨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몸은 좀 괜찮아졌느냐? 몸이 좋지 않아 문안도 오지 못했다고 들었다. 홍운은 이제 겨우 한 살이라 손이 많이 갈 것이다. 만약 힘들면 몸부터 잘 챙기거라. 홍운은 내가 이틀 정도 돌봐줄 수 있으니.""그럴 필요 없습니다!"백씨는 대답한 후에야 자신의 목소리가 날카로웠음을 깨닫고,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 상태가 좋아져서 홍운을 돌보는 건 별로 힘들지 않으니, 태자비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태자비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유양월은 속으로 코웃음을 지었다. 백씨에게 대황손 진홍운은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난 생 그녀는 이 아이를 이용해 온갖 문제를 일으켰다. 아이가 아버지를 보고 싶다느니, 몸이 좋지 않다느니 하며 계속해서 진사형을 불러냈다.그렇게 몇 번이나 그녀에게 기회를 빼앗긴 적도 있었다.진홍운이 점차 커가자, 그녀가 드디어 얌전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새 또 아이를 가졌고 낳은 아이도... 참으로 이상했다.이야기가 한참 이어진 뒤, 태자비는 차를 들며 손님들을 배웅했다. 백씨가 가장 높은 신분이었기에 먼저 걸어 나갔고, 추승휘가 다급히 뒤따랐다.유양월은 공손하게 예를 갖춘 뒤 천천히 물러
그녀는 전생과 마찬가지로 동궁에서 유양월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녀는 유양월이 명을 따르도록 감시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녀가 태자의 환심을 사지 못한다고 일부러 괴롭히기도 했었다.한밤중에 몰래 방에 들어와 그녀를 협박하거나 경고하는 건 예사였다. 때로는 더 악랄하게 침으로 그녀의 손끝을 찌르곤 했다. 손끝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도만은 정말 그녀를 증오했고 진목을 깊이 사랑했다. 유양월은 진목의 저택에서 머물며 도만이 진목에게 사모의 정이 담긴 눈빛을 드러낸 것을 보았다. 도만은 그녀를 경멸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목은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다하지 않고 그저 이용할 뿐이었다.잠시 후,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어둠 속에서 누군가 손을 풀어놓자, 붙들려 있던 사람이 의지를 잃고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바닥으로 ‘쿵’하고 쓰러졌다. 그녀는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유양월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바닥에 떨어진 침을 집어 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왔구나.”유양월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미 예상하고 계셨던 것입니까?”달빛이 비치자, 어둠 속의 그림자가 정체가 드러냈다. 바로 청유였다.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순진하고 밝은 표정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유양월은 살포시 창문을 열었다. 방 안의 답답한 공기는 씻겨 나갔고, 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부드러운 빛을 방 안에 뿌렸다. 유양월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녀를 비추자, 그녀의 모습은 순수한 선녀와도 같았다.그녀의 뒤에는 눈이 뒤집히고 혀를 길게 늘어뜨린 도만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유양월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매혹적인 여우 같은 눈동자에는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흥미로운 빛이 감돌았다.“도만은 내가 알고 있는 첩자이고, 너는 숨어 있는 첩자다. 진목이 나를 감시하고, 보호하기 위해 보냈지. 그 꽃도 네가 알려준 것이다.
“예.”청유의 답에 돌아온 것은 유양월의 고른 숨소리뿐이었다.여자가 많은 곳은 항상 말썽도 많다. 겉으론 다들 친한 자매처럼 행동하며 화목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서로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었다.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일은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소식은 들었느냐? 대체 어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냐!”진목은 탁자 앞에 앉아 어두운 분위기로 말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의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무릎 꿇고 있던 책사는 몸을 떨고 있었고, 굵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그자는 원래... 부인과 관계가 몹시 나빴으며, 심지어는… 혐오하고 증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의 아내를 인질로 잡았을 때,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저희 요구와 계획을 파악한 뒤, 수작을 부리며 저희가 지시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진목은 유양월에게서 정보를 얻은 뒤, 즉시 움직였다.그는 그 인물을 이용해 태자의 운송 계획을 방해하고, 심지어 중간에서 빼앗으려 했다.그 구호금은 적은 편이 아니었다. 진목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그의 외가는 평범한 집안이었고, 어머니의 신분 또한 높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지금까지 그는 홀로 힘들게 기반을 마련해 왔다.조정의 신하들은 그를 우습게 보며 그의 손을 거절했고, 허황한 꿈을 꾸는 사람으로 여겼다.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태자는 그동안 거대한 산처럼 그와 다른 황자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태자는 태어나자마자 황후의 곁에서 자랐고 게다가 황후의 외가는 전적으로 그를 지지했다.그는 이런 행운이 정말 부러웠고 질투를 느꼈다!진목은 손에 들린 부채를 꽉 쥐어 손잡이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이번 기회가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힘들게 끌어들인 장군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그 장군은 관직은 높지 않았지만 충직하고 유용한 인물이었다.그런 인물을 이렇게 잃다니!만약 그를 가족으로 협박하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은 황제의 귀에 전해져 동궁의 서재에도 전달되
“유소훈.”“지승휘께 문안드립니다.”유양월이 미소 지으며 예를 올렸다.지추연은 다정하게 손짓하며 시녀에게 부축하라 명한 뒤, 급히 말했다.“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동궁에 갓 들어와, 모르는 것이 많소. 앞으로 유소훈께 많이 의지해야 할 것 같소.”유양월은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품계가 저보다 높고, 가문도 훌륭하시니, 앞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실 것이 분명합니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지추연의 부탁을 거절했다.지추연은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겸손하실 필요는 없소. 동궁에 들어온 순간부터 태자께 총애받고 계신다고 들었소. 우리는 전하를 한 번 모신 후, 다시는 뵙지 못했네.”지추연은 말하며 약간 슬픔 표정을 지었다.“전하가 누구를 찾으실지, 저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지승휘, 지금 좀 피곤해서 먼저 처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유양월은 말을 마치고, 지추연이 더 이야기를 이어갈 틈조차 주지 않고 몸을 돌렸다.지추연은 여전히 지난 생처럼, 선한 인상으로 수를 쓰려고 했다.하지만 이번 생의 유양월은 그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유양월의 가냘픈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지추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멀어지는 그림자를 차갑게 응시할 뿐이었다.곁에 있던 단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마마, 유씨는 지위가 낮은 데다 무례합니다. 어찌 마마에게 저렇게 대꾸할 수 있습니까?”“지위가 낮다고? 지위가 낮더라도 전하의 총애만 있다면 누가 그녀를 얕볼 수 있겠느냐? 태자비 마마에게 아무리 다가가도 냉정하셨지만, 유소훈에게는 따뜻한 태도를 보였다.”지추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단계는 상전의 매서운 말에 이내 입을 닫았다.곁에 있던 빙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마마, 총애를 받는 유씨가 저희 유상각도 가까우니 유씨와 친밀히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총애하시니, 그곳에서 전하를 마주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똑똑하구나.
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사형은 곧장 설궁각으로 향했다. 그를 보자 백씨는 슬픔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고, 애처롭게 눈물을 흘렸다.한때 자신이 아끼던 여인이 슬퍼하고, 그도 아이를 잃은 슬픔이 컸기에 진사형은 한참 동안 그녀를 위로하며 그녀의 처소에서 머물렀다.그 이후 며칠 동안, 그는 매일 밤 그녀의 처소에서 묵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쓸하기만 했던 설궁각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한편, 여월각.태자비는 손에 든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는 자리에, 백씨는 여전히 자리를 비웠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참석한 상태였다.태자비는 별다른 내색 없었다. 유양월은 조용히 새로 들어온 두 명의 여인을 살펴보았다.한 사람은 성이 육이고, 이름은 육함향이었다. 그녀는 이름처럼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겼으며, 외모는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여월각에 들어온 이후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 그녀의 경멸이 담긴 태도를 유양월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다른 한 사람은…“태자비 마마께서 저희를 참으로 너그럽게 대해 주십니다. 집을 떠나 동궁으로 온 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마마께서 저희를 잘 챙겨 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이제는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이 사람은 지추연으로, 경성의 종2품 우보사 가문의 딸이다. 육함향의 차갑고 자존감 강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태자비에게 극도로 공손하며 아부를 늘어놓았다.심지어 태자비의 총애를 얻으려는 다른 이들조차 그녀의 재치에 감탄할 정도였다.그러나 전생의 기억을 가진 그녀는 지추연이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태자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대신 유양월에게 말을 걸었다.“요 며칠 전하께서 바쁘신 데다 백씨를 돌보느라 너의 처소에 가지 못했다. 너무 섭섭해하지 말거라.”유양월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태자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었지만
화단은 완전히 얼어붙은 듯 넋을 잃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교훈 덕분에 그녀는 곧 침착함을 되찾고 서둘러 물 한 잔을 떠와 백씨에게 건넸다.“양제, 물 한 모금 드십시오! 좀 나아지실 것입니다. 어의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으니, 기운도 없잖습니까?”백씨는 화를 내려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어 단숨에 물을 마셨다.물을 마시고 그녀는 긴 기다림을 참아야 했다.지금 그녀의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어의가 분명 편히 쉬며 감정을 격하게 하지 말라고 수없이 당부했었다.하지만 지금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치맛자락 아래에서 선명한 핏빛이 넓게 피어났다. 붉은 피를 본 화단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이 마치 목숨을 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여봐라! 큰일이다! 마마께서 위험하시다!”그녀는 체면을 잊은 채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머리에 꽂힌 비녀도 헝클어진 채로 문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들이 우르르 달려왔고, 어의를 재촉하러 뛰어간 하인도 있었다.설궁각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어의가 도착했을 때, 백씨는 이미 창백한 얼굴로 침상 위에 앉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평소 화려하던 그녀의 뺨은 생기를 잃고 창백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은 이전의 거만하고 당당했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어의, 저희 마마께서 갑자기 피를 보이셨습니다. 어서 살펴주세요.”소금이 어의를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어의는 맥을 짚고 상황을 살핀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양제의 유산은 이미 확정된 일입니다. 저도 이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아이를 깨끗이 정리하는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문제가...”“뭐라! 아이를 잃는다니! 어의지 않느냐? 어찌 아이가 없어질 수 있단 말이야!”백씨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어의의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손으로 이불을 힘껏 틀어쥐었다.“저는 어의일 뿐
“예, 알겠습니다.”조전은 태자 뒤를 따라가며 마음속 놀라움을 애써 억누르고,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태자는 여인을 탐닉한 적이 없었고, 게다가 여인에게 이토록 신경 쓰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겨우 몇 번 시중을 든 유소훈이 이렇게 빨리 태자의 총애를 받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러나 이것은 유소훈의 비범한 심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그 옥은 태상황이 남긴 물건으로, 폐하에게 하사되었고, 폐하께서 또 전하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을 유소훈에게 주셨다니. 그녀에게 마음을 준 것이 틀림없구나.”태자비는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보다가 멈칫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태자비는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백씨는 항상 교만하고 거만했다. 그녀의 집안 배경뿐만 아니라, 태자의 총애를 받고 황태손을 낳았기 때문이었다.유씨는 출신도, 조건도 백씨와 비교할 수 없었다.그런데도 보아하니, 백씨가 동궁에 금방 왔을 때보다도 더 많은 총애를 받는 것 같았다.태자비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뒤에 있는 허 마마에게 눈짓했다.“동궁에 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네.”그러더니 다시 한번 말을 돌리며 말했다.“전하께서 그녀를 좋아하시니, 우리 여월각에서도 무엇인가 준비해야겠네.”허 마마는 이를 듣고 찬사를 보냈다.“마마는 슬기롭고 마음이 넓으십니다. 전하께서 좋아하는 것을 품어주시다니,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전하께서도 그 마음을 감사히 여기실 것입니다.”태자비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눈가에 웃음을 담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양제, 조금만 더 드십시오. 하루 종일 식사를 안 하셨습니다.”“배가 아파서 먹을 수 없다!”백양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시녀가 들고 온 연유죽을 보더니 짜증스럽게 손을 휘저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녀들이 한데 모여 낮은 소리로 속닥거리며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시끄럽구나!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이냐!”그녀는 크게 소리쳤다.시녀들은 깜짝 놀라 무릎을 꿇었다. 앞장선 시녀가 대답했다.
그는 손을 뻗어 유양월의 가냘픈 허리를 끌어안아 자기 무릎 위에 앉히며 가볍게 웃었다."네가 동궁에 온 지도 꽤 되었구나. 듣자 하니 태자비를 아주 공경한다고 하더군."총애를 받으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건 분명 장점이었다.유양월은 저녁이 되어 머리의 화려한 장신구를 모두 빼고, 긴 머리카락을 뒤로 자연스럽게 풀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녀의 쇄골 위로 흘러내렸고, 이를 본 진사형의 시선이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태자비 마마는 늘 저에게 인자하셨습니다. 당연히 공경해야 하지요."그녀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내 대담하게 하얀 팔을 뻗어 태자의 목을 감싸 안으며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진사형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흐뭇해하며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쓰다듬었다."참하구나. 내가 더 아껴주마."유양월은 그의 말을 듣고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마음에 들 때면, 무슨 짓을 하든 용납될 것이다.하지만 미움을 받으면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먼지는 적어도 누군가가 쓸어주기라도 하지만, 지난 생 그녀는 사랑받지 못해 모두에게 짓밟혔다.유양월은 진사형의 가슴에 기대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눈빛을 감추었다. 청유와 조전에게 그 모습은 사랑이 넘치는 부부 같았다.진사형은 품에 안긴 따뜻하고 부드러운 유양월의 존재를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고, 그는 목이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로 향했다.이내 또 두사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그날 밤, 망월각은 늦은 시각까지 불빛이 사라지지 않았다.동궁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넘쳐났지만, 미모와 지혜를 겸비하고 게다가 마음마저 맞는 여인은 아마 유양월이 유일할 것이다.다음 날 아침, 진사형은 양팔을 벌려 태감과 궁녀들에게 시중을 맡겼다. 침대에 누운 여인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두어 마디 중얼거리고는 다시 잠들었다.그녀는 방 안의 상황과 다른 이들의 시선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후 그가 진실을 알아낸다 해도 이미 늦은 일이다.누가 감옥에 갇힌 죄수의 말을 믿겠는가? 죄수가 하는 미친 소리를 믿는 자야말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유양월은 가볍게 웃으며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발을 흔들며 얼음 다과를 단숨에 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조금은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청유야, 이게 이렇게 빨리 없어지다니... 수라간에 가서 한 그릇 더 가져오거라.”그녀는 이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청유가 답했다.“마마, 마마께 정해진 몫은 한 그릇뿐입니다. 다 드셨으니 더는 안 됩니다.”유양월은 속지 않았다. 다시 부탁하려던 찰나, 문밖에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말투가 즉시 바뀌었다.“전하께서 나를 총애하시니, 한 그릇 더 먹는다 해도 괜찮다! 전하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데, 어찌 다과 한 그릇을 신경 쓴다는 말이냐?”“맞는 말이다. 다과 몇 그릇으로 빈털터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구나.”진사형이 여유 있는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옅은 미소가 서려 있는 표정을 보아, 기분이 좋은 듯했다.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그것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말이다.하지만 낚인 사람이 그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생각을 마친 그의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그는 유양월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칭찬했다.“머릿결이 참 좋구나.”미인은 머리카락조차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워야 한다.그리고 유양월이 바로 그런 미인이었다.유양월은 오늘 태자가 다시 망월각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매번 그와 만남을 위해 신중히 준비했다.이제 저녁 식사 시간도 지난 뒤였다. 진사형은 연한 하늘빛이 도는 비단옷을 입고 흰 옥관으로 머리를 묶고 있어 외모가 한층 더 돋보였다. 그의 모습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유양월은 그를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상냥하고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그녀는 평소와 달리 화려한 색상의 옷이 아닌, 헐렁하고 연한 하얀색 치마를 입고
청유가 넘긴 정보는 결국 진목에게 전해졌다. 그는 서신에 적힌 이름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이 사람의 배경을 조사했느냐?"아래에 있던 책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예. 조사해 본 결과, 이 일은 태자 전하께서 계속 관할해 온 일이었습니다. 그가 곡물 운송대에 있으니, 이 정보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진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날카로운 턱선에 냉혹한 미소를 드리웠다. 그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었고, 어두운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물었다."유씨는 동궁에서 잘 지내고 있느냐?"책사는 몰래 그의 표정을 살피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잘 지내옵니다."그 말을 들은 진목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그의 탁자 위에는 한 폭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림 속 여인은 절세의 미모를 지녔고, 얼굴은 선녀와도 같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눈은 영롱했고 눈가에는 요염함이 넘쳐 흘렸다.진목은 손을 들어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그림 속 여인의 뺨을 쓰다듬었다. 한참 후, 어두운 방 안에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너는 나의 것이다... 유양월.""마마, 우유죽을 드셔보십시오."소금은 뜨거운 우유죽을 들고 침대에 누워 있는 백양제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권했다.요즘 날이 이렇게 더운데도 백양제는 창백한 얼굴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늘 붉던 입술도 창백한 색을 띠었다.백양제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우유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넘어가지 않는구나.""마마, 이틀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마마께서 견딜 수 있다 해도 뱃속의 아이는 그렇지 못합니다..."소금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백양제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지더니, 곧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소금아, 이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다들 어미와 아이가 마음이 통한다고 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배를 어루만졌다.
청유는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말이 많으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니, 최대한 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진사형은 바로 알아차렸다. 동궁은 이번 달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고, 그에게 의지하던 유양월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추측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니,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쳤다.이런 기분은 그가 조회에 나간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다.조회를 마치고 동궁으로 돌아온 진사형은 조전의 시중을 받으며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밖에서 시녀가 찾아왔다. 백양제가 계속 토하고 있어, 태자께 봐달라는 전갈을 전했다.이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구토라니. 백양제는 회임한 지 이제 막 한 달을 넘겼으니 아직 이런 증상이 나타날 단계는 아니다. 게다가 회임 시 구토를 한다면 냄새 때문이거나 먹은 음식 때문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녀가 또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었다.조전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사형은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만지며 말했다.“어의를 불러 그녀를 잘 진찰하거라. 곧 보러 갈 테니, 잘 쉬라고 전하거라.”조전은 역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내 시녀에게 말을 전하고 방으로 돌아왔다.어쨌든 진사형은 자기 친자식에 대해 여전히 기대와 연민을 품고 있었다.이전에 백씨를 냉대했으니, 아마 백양제도 그동안 충분히 반성했을 것이다.그날 저녁, 진사형은 백씨의 처소에서 머물렀다.유양월도 이 소식을 접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다른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청유가 말했다.“마마, 그쪽에서 마마께 몰래 구호금을 운송하는 인원의 명단을 알아보라 하셨습니다. 용도가 있으시다고...“유양월의 미소가 굳어졌다. 역시나 진목이 요구를 제시헸다.그녀는 지난 생, 진목이 그 명단을 이용해 승승장구를 시작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진사형도 이 일로 황제의 미움을 사기 시작했다.과거의 그녀는 애를 써서 이름 하나를 알아냈고, 진목은 그자를 협박하여 구호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