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소월각으로 돌아갔다. 원경능은 등불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우문호가 싱글벙글하며 들어오자 고개를 들며 물었다."동생은 돌아갔어요?""돌아갔어!"우문호는 다가가 그녀 수중의 책을 흘깃 보았다."칠국지(七国志)? 왜 이 책을 보는 거야?"원경능은 책을 한 켠에 내려놓았다."북당 외에 또 무슨 나라가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그녀는 일어나 우문호의 겉옷을 벗겨주며 물었다."당신의 동생은....괜찮아요?""무엇인지 보아야지. 외상은 아마 중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마음은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아."우문호는 원경능의 동작에 따라 겉옷을 벗고는 곁에 휙 던졌다. 그리고는 원경능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원경능은 담담하게 말했다."참지 못하고 제왕을 때렸어요.""잘 때렸어. 일곱째 동생은 호되게 맞아야 해. 괴로워하지마."우문호가 위로했다."괴로워하는 것이 아니에요. 전 후회하지 않아요. 그저 제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멍청이처럼 아무리 귀띔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네요."원경능은 이렇게 말하면서 불안간 고개를 들고 우문호를 빤히 바라 보았다. 우문호는 그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졌다."왜?"원경능은 싸늘하게 말했다."하마터면 당신도 예전에는 제왕과 다름이 없었다는 걸 잊을 뻔 했네요."우문호가 변명했다."내가 어찌 일곱째 동생과 같아?""왜 달라요? 당신도 예전에는 저명취에게 미쳐있었잖아요!"원경능은 "미쳐있었다"는 말을 곱씹었다. 마음이 불쾌하지 그지 없었다. 우문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쳐 올리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그저 속았을 뿐이야.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후 멀리했잖아. 누가 젊은 시절에 바보 같은 짓을 한 번도 하지 않겠어?""언제 사실을 알았어요?"원경능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회왕부에서 호수로 떨어졌을 때인가요?"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주 예전이야.""어떤 일에서요?""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야. 아무 일도 발생
제왕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있으면 내 앞에서 말해. 내가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를 속이면 안돼."저명취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소리예요? 이미 큰 부상이 아니라고 의원이 말했잖아요. 조용히 의원의 치료를 받으세요. 왕야에게 할 말이 있어요."제왕은 순식간에 불쾌함이 가득한 저명취의 얼굴을 보며 원경능의 말이 떠올랐다. 일시에 마음속에 만감이 교차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명취는 제왕이 아직도 자신의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줄 알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에는 실망이 어려있었다. 그녀는 정말 못난이에게 시집온 것이었다. 그녀는 우문호를 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왕야, 이리로 오시지요!"우문호는 고요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끔 보고는 고개를 돌려 제왕에게 말했다."곧 돌아오마."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두 사람은 편청으로 갔다. 저명취는 모든 사람을 물리고 문을 닫으려 했다. 우문호가 말했다."문 닫을 필요가 없어."저명취는 고개를 들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흘끔 보며 비꼬았다."왜요? 당신에게 나쁜 짓을 할까 봐 그래요? 일년 전 공주부에서 원경능이 했던 것처럼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았다."공연한 생각을 하는군요. 본왕은 그저 모두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의심 받을 일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의심을 피한다고요?"저명취는 싸늘하게 웃었다."언제부터 저와도 의심을 피하면서 만나야 하는 사이가 되었나요? 당신은 과연 원경능에게 마음이 동했군요. 일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마음이 변했군요. 당신때문에 저는 마음이 아파요."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본왕과 이것을 말하려는 것이요? 본왕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이때의 우문호는 연기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툭하면 얼굴을 붉히는 것은 참으로 꼴불견이었다."도대체 원경능의 뭐가 마음에 든 건가요? 원경능이 비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저명취는 밖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개의치 않고 질문했다. 어차피 제왕비의 하
서일은 이마에 꿀밤 두 대를 맞은 뒤 말을 타고 초왕부로 돌아갔다. 원경능은 아직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녹아에게서 왕야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은 원경능은 바로 나왔다.우문호는 탕양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말을 타고 돌아왔는지라 기분이 꽤 좋았다. 그리하여 탕양이 제왕부에서 물은 상황에 대해 묻지 않았다."어때요? 부상이 심해요?"원경능은 연신 물었다. 우문호는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문제 될 것이 없어. 아마 칼에 조금 찔렸는지 조그마한 상처가 두 개 났어. 피만 조금 흘렸을 뿐이야.""참 무능한 자객이네요!"원경능은 이렇게 말했으나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제왕이 매우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왕이 먼저 자신에게 맞은 뒤에 초왕부 멀지 않는 곳에서 자객을 만난 것이었다. 우문호는 탕양에게 물었다."자세한 상황에 대해 말해보거라."탕양이 답했다."네, 제왕 신변의 시위와 마부에게 물었는데 길모퉁이에서 자객을 만났다고 합니다. 검은 옷을 입고 얼굴을 가렸는데 무술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차를 전복시키고는 대치하던 중에 제왕이 칼을 맞았습니다. 시위는 자객을 뒤를 쫓으며 자객을 물리쳤습니다."원경능은 의아했다."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는데 달리고 있는 마차를 전복시키고 제왕을 찔렀다고? 제왕도 무술을 익히지 않았는가? 시위는?"탕양과 우문호는 서로를 바라 보았다."보십시오. 왕비도 이상한 것을 보아내지 않습니까?""그래서?"원경능은 멍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우문호가 설명했다."이 자객은 무술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곱째 동생을 죽이지 못한 것도 아니야. 그저 일곱째 동생에게 경상을 입혀 자객을 만나 것처럼 현혹시키려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일곱째 동생과 성문의 일을 연루시키게 만들기 위함이야. 성문의 일을 자세하게 조사한 뒤 만일 누군가가 당시에 고의적으로 소란을 피운 것이라고 반박한다면 어떨까? 이 일은...."원경능은 멍하니
문은 오랫동안 닫혀있지 않았다. 한참 뒤 원경능은 문을 열어 우문호를 들였다. 이번에 우문호는 얌전해졌다. 문 밖에서 냉정을 되찾고 생각하였는데 원경능이 화를 낸 유일한 이유가 자신이 저명취와 단독으로 만난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하여 우문호는 성실하게 약속했다."이후로 절대 제왕비와 단독으로 만나지 않을게."원경능은 그를 바라 보았다."이번에는 정말 질투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화내는 것도 아니에요. 당신의 경계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비록 더 이상 저명취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으나 함께 자랐으니 어느 정도 정분이 있을 거예요. 저명취가 이 정분으로 당신을 모함하고 함정에 빠트리려 한다면 얼마나 쉽겠어요? 공주부의 교훈을 모두 잊었어요?"원경능은 자신을 반면교재로 하면서 그를 꾸짖었다. 정말 좋은 의도로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우문호는 매우 감동되었다. 그와 동시에 원경능이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체면으로 당당하게 공주부의 사건을 말한단 말인가? 다만 우문호는 감히 이 말을 하지 못하고 고분고분하게 가르침을 받았다.이 점은 그때 우문호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밖에는 비록 사람이 있었으나 서일을 제외하고 모두 저명취의 하인들이었다. 만일 저명취가 무슨 짓을 꾸몄다면 자신은 아마 지위도 명예도 잃게 될 것이었다.또한 저명취가 절대 해내지 못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 당시는 아마 자신의 말에 멍해졌을 것이다. 우문호는 얌전하게 원경능의 옷을 한 벌씩 벗겼다."왕비의 말이 맞아. 본왕은 이후에 꼭 주의를 돌릴 거야. 지금 먼저 자리에 누워. 그래 이렇게 움직이지 마...."원경능은 화가 나 그의 손을 쳐냈다."당신은 잠시라도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돼요?""무슨 일?"우문호의 손과 입술은 매우 분망했다. 그리고 원경능은 매우 시끄러웠다. "읍...."원경능은 입이 막혔는지라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소리 없이 반항할 수 밖에 없었다. 애정씬을 찍은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잠이 들었
냉정언은 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왕야와는 관계가 없어요. 듣자 하니 그날 초왕비도 성밖에서 사람을 구했다지요?""맞아."우문호는 그를 바라 보며 먼저 경고했다."왕비를 문제 삼으려 하지마.""꼭 왕비를 문제 삼아야 해요!"냉정언이 말했다. 우문호는 또 탁자를 쾅 내리쳤다."단념해."냉정언은 그를 바라 보았다."왕야, 급해하지 마시고 먼저 저의 말을 들어 보세요."우문호는 손을 내저었다."말해봐. 허나 좋은 방법은 아닐 거야.""왕비가 성밖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대부분 백성들이 보았을 거예요. 요 이틀 동안 경중에서도 초왕비가 선량하고 의술이 뛰어나다며 아름답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만일 이 사건의 덤터기를 쓸 사람이 필요하다면 초왕비가 가장 적합해요.""뭐라는 거야?"우문호는 퉁명스럽게 그를 흘겼다. 냉정언은 웃으며 말했다."현재 태상황이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현재 왕비 중에서 명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에요? 초왕비가 사죄하러 가면 폐하께서 정말 죄를 내리실 것 같아요? 폐하께서 그러고 싶으셔도 태상황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왕비는 홍등군주도 구했으니, 왕야의 황숙도 수수방관하지 않을 거예요.""그러니 협박을 하라는 게 아니야?"우문호는 이 방법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황은 협박을 듣지 않을 것이었다. 만일 정말 노하셔서 원경능이 곤장을 맞는다면, 원경능의 엉덩이는 도마처럼 넓고도 납작해지지 않겠는가? 참으로 타당하지 못했다!냉정언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저의 말이 틀림없을 거에요, 그렇게 해요."우문호는 그를 노려보았다."만일 문제가 생긴다면....""왕야가 절로 감당하십시오!"냉정언이 단호하게 말했다."....뻔뻔하긴!"좋은 놈이 한 명도 없었다. 국자감에서 나온 우문호는 가는 내내 고민에 잠겼다. 또 특별히 말을 타고 원걸이 있는지 성문에 가보았다. 원걸은 그날 사람을 구할 때 어깨와 팔뚝이 다쳐서 붕대를 감고 있었다."왕야!"원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
우문호는 그녀가 한두 마디 질투의 말을 내뱉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직접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바로 일곱째는 확실히 태자의 자리를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여러 개의 목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이건 아마 저수부가 좀처럼 태도를 표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절대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그도 매우 궁금했다. 그녀는 정말로 태자비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을까? 태자비가 되면 이후에는 황후가 될 것이다. 물론 그 태자가 제위에 오를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그대는 본왕이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걸 정말 바라지 않는 거야?”우문호가 물었다.원경능은 그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봤다.“어째서 제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로 넘어왔죠? 제가 태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내가 만약 태자가 된다면, 그대는 태자비가 되는 것 아닌가.”원경능이 웃으며 말했다.“태자비랑 왕비가 뭐가 다른데요?”“어떻게 다른 게 없겠어? 본왕 앞에서 모른 척 하지마. 그댄 황후가 되고 싶지 않아?”우문호가 그녀를 쳐다봤다. 원경능은 탁자 위의 잔을 조금 옮기며 조용히 말했다.“마음은 쉽게 끌리지만, 길이 험하잖아요. 할 만한 것이 못 돼요.”대가가 너무 커서 꼭 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이었다.“그저….”우문호는 그녀를 보며,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만약 일곱째가 태자 자리를 무사히 지켜낸다면 그런대로 괜찮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태자 자리에 오르는 그 사람은 결코 당신과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는대도 결국엔 목이 잘릴 수 있다는 말이야.”원경능의 눈동자가 조금 반짝였다.“당신은 원하고 있는 거예요?”우문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건 아니야. 다만 최악의 상황을 먼저 말하고 있는 거야.”만약 정말 거기까지 가게 된다면, 그도 도망치진 않을 생각이었다. 원경능은 어깨를 으쓱했다.“사실 당분간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봐요. 부황께선 아직 젊으시니까요. 지금은 먼저
우문호는 궁문 앞에서 초조하게 원경능을 기다리고 있었다.혼나고 있는 건 아닐까? 맞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몸은 절대 매를 견디지 못할 텐데….서일은 그가 줄곧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왕야, 궁에 들어가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비는 입이 험하여 남의 미움을 사기 쉽습니다. 만약 폐하의 진노를 사게 되면 큰일 아닙니까?”“시끄럽다.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것인가? 곤장을 맞아도 다 맞았을 시간인데, 걷지 못하면 들려서라도 나올 텐데.서일이 입을 비쭉거렸다.“설마, 왕비가 행패를 부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물고 늘어져서 폐하의 미움을 사신 건 아닐까요? 곤장을 맞는 건 그렇다 쳐도 혹시….”우문호는 목을 세우며 그에게 분노를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서일, 너는 잠시 말을 안 하면 입에 부스럼이라도 나는 것이냐?”서일이 작게 웅얼거렸다.“소인 걱정이 되어 그럽니다.”그는 일단 걱정이 되면 입을 마구 놀리는데, 그렇게 지껄일 땐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십상이었다. 그도 자신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마침내 희씨 어멈이 원경능과 함께 큰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가슴을 편 채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의기양양한 그 모습이 마치 갓 승전하고 돌아온 붉은 암탉 같았다.한참 동안 마음을 졸이던 우문호가 마침내 안심했다. 급히 그녀를 맞이하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며 쭉 훑어보았다.“맞은 건 아니지?”원경능은 그에게 눈을 흘겼다.“말을 그렇게 밖에 못해요? 내가 맞기라도 바라는 거예요?”“걱정이 되어서 그러지!”우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부축하여 마차에 오르게 했다.“조심해.”원경능이 웃었다.“뭐에요? 제 처우가 확 개선됐네요? 입궁하기 전까진 그다지 좋은 대접을 못 받았는데.”그녀가 마차에 앉자 우문호도 앉았다. 한 손으로 그녀를 안으며 연이어 질문을 퍼부었다.“어떻게 됐어? 부황께서 뭐라고 하셔
저명취는 천천히 걸어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의 손을 끌어당겨 그녀의 아랫배에 가져가며 말했다.“우리의 아이에요. 우리의 황자라고요.”제왕은 갑자기 놀라서 손을 확 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저명취가 그를 보며 냉담하게 물었다.“무엇이 두려운 거예요?”제옹은 정말 두려웠다. 그는 저명취가 이런 속셈을 갖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는 현재 친왕의 신분이었다. 아들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세자였다.“명취, 헛소리 하지마.”제왕은 불에 데인 듯 자신의 손을 움츠리며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웠다. 팔뚝에 난 상처가 눌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저명취는 그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넋이 나갔다. 자신이 이런 쓸모 없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간신히 미소를 쥐어짜낼 수 있었다.“조부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을 태자로 옹립할 것이라고요. 조부는 저더러 당신의 마음을 떠보라고 하셨지요, 아까는 당신을 떠본 것이에요.”제앙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떠보는 거라고?”“네, 조부는 다만 당신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럴 용기가 있는지, 이를 책임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저명취가 쓸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제왕은 잠시 침묵했다.“수부가 쓸데 없는 생각을 했어. 부황께서 가부를 결정하실 일이야. 더구나 부황은 아직 젊으시니 후계자를 세우는 일은 급하지 않아.”저명취는 속으로 냉소했다.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 급하지 않다고? 지금 모든 사람의 눈은 태자의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무백관(文武百官)들조차도 적당한 친왕을 물색하여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심지어 손왕도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런데 급하지 않다고? 참으로 어리석기가 극에 달했다. 저명취의 마음은 거의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일단은 쉬어요.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요.”그녀가 천천히 걸어 나가는데 제왕의 놀라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명취!”그녀가 고개를 돌려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