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그녀가 한두 마디 질투의 말을 내뱉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직접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바로 일곱째는 확실히 태자의 자리를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여러 개의 목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이건 아마 저수부가 좀처럼 태도를 표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절대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그도 매우 궁금했다. 그녀는 정말로 태자비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을까? 태자비가 되면 이후에는 황후가 될 것이다. 물론 그 태자가 제위에 오를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그대는 본왕이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걸 정말 바라지 않는 거야?”우문호가 물었다.원경능은 그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봤다.“어째서 제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로 넘어왔죠? 제가 태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내가 만약 태자가 된다면, 그대는 태자비가 되는 것 아닌가.”원경능이 웃으며 말했다.“태자비랑 왕비가 뭐가 다른데요?”“어떻게 다른 게 없겠어? 본왕 앞에서 모른 척 하지마. 그댄 황후가 되고 싶지 않아?”우문호가 그녀를 쳐다봤다. 원경능은 탁자 위의 잔을 조금 옮기며 조용히 말했다.“마음은 쉽게 끌리지만, 길이 험하잖아요. 할 만한 것이 못 돼요.”대가가 너무 커서 꼭 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이었다.“그저….”우문호는 그녀를 보며,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만약 일곱째가 태자 자리를 무사히 지켜낸다면 그런대로 괜찮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태자 자리에 오르는 그 사람은 결코 당신과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는대도 결국엔 목이 잘릴 수 있다는 말이야.”원경능의 눈동자가 조금 반짝였다.“당신은 원하고 있는 거예요?”우문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건 아니야. 다만 최악의 상황을 먼저 말하고 있는 거야.”만약 정말 거기까지 가게 된다면, 그도 도망치진 않을 생각이었다. 원경능은 어깨를 으쓱했다.“사실 당분간 크게 걱정할 건 없다고 봐요. 부황께선 아직 젊으시니까요. 지금은 먼저
우문호는 궁문 앞에서 초조하게 원경능을 기다리고 있었다.혼나고 있는 건 아닐까? 맞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몸은 절대 매를 견디지 못할 텐데….서일은 그가 줄곧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왕야, 궁에 들어가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비는 입이 험하여 남의 미움을 사기 쉽습니다. 만약 폐하의 진노를 사게 되면 큰일 아닙니까?”“시끄럽다.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것인가? 곤장을 맞아도 다 맞았을 시간인데, 걷지 못하면 들려서라도 나올 텐데.서일이 입을 비쭉거렸다.“설마, 왕비가 행패를 부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물고 늘어져서 폐하의 미움을 사신 건 아닐까요? 곤장을 맞는 건 그렇다 쳐도 혹시….”우문호는 목을 세우며 그에게 분노를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서일, 너는 잠시 말을 안 하면 입에 부스럼이라도 나는 것이냐?”서일이 작게 웅얼거렸다.“소인 걱정이 되어 그럽니다.”그는 일단 걱정이 되면 입을 마구 놀리는데, 그렇게 지껄일 땐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십상이었다. 그도 자신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마침내 희씨 어멈이 원경능과 함께 큰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가슴을 편 채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의기양양한 그 모습이 마치 갓 승전하고 돌아온 붉은 암탉 같았다.한참 동안 마음을 졸이던 우문호가 마침내 안심했다. 급히 그녀를 맞이하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며 쭉 훑어보았다.“맞은 건 아니지?”원경능은 그에게 눈을 흘겼다.“말을 그렇게 밖에 못해요? 내가 맞기라도 바라는 거예요?”“걱정이 되어서 그러지!”우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부축하여 마차에 오르게 했다.“조심해.”원경능이 웃었다.“뭐에요? 제 처우가 확 개선됐네요? 입궁하기 전까진 그다지 좋은 대접을 못 받았는데.”그녀가 마차에 앉자 우문호도 앉았다. 한 손으로 그녀를 안으며 연이어 질문을 퍼부었다.“어떻게 됐어? 부황께서 뭐라고 하셔
저명취는 천천히 걸어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의 손을 끌어당겨 그녀의 아랫배에 가져가며 말했다.“우리의 아이에요. 우리의 황자라고요.”제왕은 갑자기 놀라서 손을 확 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저명취가 그를 보며 냉담하게 물었다.“무엇이 두려운 거예요?”제옹은 정말 두려웠다. 그는 저명취가 이런 속셈을 갖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는 현재 친왕의 신분이었다. 아들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세자였다.“명취, 헛소리 하지마.”제왕은 불에 데인 듯 자신의 손을 움츠리며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웠다. 팔뚝에 난 상처가 눌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저명취는 그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넋이 나갔다. 자신이 이런 쓸모 없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간신히 미소를 쥐어짜낼 수 있었다.“조부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을 태자로 옹립할 것이라고요. 조부는 저더러 당신의 마음을 떠보라고 하셨지요, 아까는 당신을 떠본 것이에요.”제앙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떠보는 거라고?”“네, 조부는 다만 당신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럴 용기가 있는지, 이를 책임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저명취가 쓸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제왕은 잠시 침묵했다.“수부가 쓸데 없는 생각을 했어. 부황께서 가부를 결정하실 일이야. 더구나 부황은 아직 젊으시니 후계자를 세우는 일은 급하지 않아.”저명취는 속으로 냉소했다.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 급하지 않다고? 지금 모든 사람의 눈은 태자의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무백관(文武百官)들조차도 적당한 친왕을 물색하여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심지어 손왕도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런데 급하지 않다고? 참으로 어리석기가 극에 달했다. 저명취의 마음은 거의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일단은 쉬어요.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요.”그녀가 천천히 걸어 나가는데 제왕의 놀라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명취!”그녀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저명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똑똑한 그녀인데, 어찌 조부가 바둑을 어떻게 둘 것인지 모르겠는가? 조부에게 있어서 그녀는 이미 버린 패나 다름 없었다.그녀는 비분에 가득 차서 예의도 상관 안 하고 차갑게 질문했다.“조부께서는 제가 제왕비 자리에 앉아 있는 걸 원치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누구를 물색하셨습니까? 명양인가요?”“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네 구실만 잘하면 된다.”저수부는 눈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답했다.“왜인가요?”저명취가 원망스레 말했다.“손녀는 한 가지 일밖에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왜 조부께서는 저를 버리시나요? 제가 성밖에서 죽을 나눠준 일도 조부의 뜻이었습니다. 만약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면, 조부야말로….”‘원흉입니다.’ 라는 다섯 글자는 그대로 저지되었다. 저명취는 아무리 대담하더라도 이 다섯 자를 입밖에 낼 수 없었다.그러나 저수부가 차갑게 말했다.“원흉이라고? 그래, 죽 나눠주는 막사를 짓게 하여 어질다는 명성을 얻게 하려 한 것은 내 뜻이었다. 애석하게도 너는 일을 성공시키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망쳤지. 네가 막사를 널리 열고, 며칠 죽을 나눠준다면 경중에는 자연스레 누군가 너를 칭송할 텐데, 굳이 양 부인과 예친 왕비를 찾아갈 필요가 있었더냐?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너는 항상 파리나 개처럼 도처에 빌붙어 명리를 탐하려 하지. 마치 일이 헛되이 될까 봐 기회를 틈타 잔꾀를 부린단 말이다. 네가 무릇 한 가지 일이라도 착실하게 했다면 오늘 같은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상황의 병이 위독해 진후, 네가 나를 구실로 삼아 희씨 어멈을 위협했을 때부터 나는 너를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어쨌든 직계 손녀이니, 너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것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너는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사단이 터지니, 너는 임신을 구실로 죄를 회피하려고 했다. 조금의 책임도 지려하지 않다니, 어찌 제왕비라 할 수 있겠느냐? 난 네가 제왕의 명성을 훼손하는 걸 절대 용납할
원경능도 오늘 밤 자신이 마치 파리를 삼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문호가 말하길 어떻게 그녀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그녀의 본명인 원경능으로 부르자니, 너무 단조로운 것 같고 왕비라고 부르자니 너무 차갑고 도식적이란다.경경이… 라고 한마디 부르기만 하면 온 몸에 닭살이 돋아 건강에 좋지 않았다.아능(阿凌)은 아령(阿龄)과 발음이 같았다. 그는 늘 우문령을 아령이라고 불렀다.능이… 이 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원경능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언제적 부부인데 낯간지럽지도 않은 것인가? 결국 우문호는 그녀를 원씨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순간 원경능의 머릿속에 한 화면이 그려졌다.한 지도자가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늙은이의 손을 잡으며 기쁨과 위안을 담아 말을 건넨다.“원씨 선생님, 40년 동안 이 자리에서 고생스럽게 일하셨는데 오늘 영광스럽게 퇴직하시네요!”원경능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원씨라, 참으로 노티가 나는 호칭이었다. 그녀는 현재 열 일곱의 소녀일 뿐이었다.그녀가 퉁명스럽게 물었다.“그럼 난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되는데요?”우문호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영감님이라고 불러!”원경능은 대꾸할 가치도 못 느끼고 벌떡 몸을 돌려 그를 등졌다.우문호는 그녀의 팔뚝을 이리저리 젖히며 말했다.“화났어? 당신이 말해봐, 뭐라고 할지.”“ ‘우문호’요.”“그럼 난 당신을 뭐라고 불러?”“저는 개명하지도, 성을 바꾸지도 않을 거예요. ‘원경능’이요!”우문호는 양손을 베개 삼아 머리 뒤에 받치며 말했다.“그럼 너무 재미없잖아.”어쨌든 그는 원씨라는 호칭이 아주 듣기 좋다고 생각하며 계속 불렀다. 언젠가 그녀는 명실상부한 자신의 원씨 노부인(老元)이 될 것이다.그때 그들은 나이가 든 채 자손들에게 둘러 쌓여 있을 것이다. 얼마나 즐거운 인생이겠는가!반면 원경능의 머릿속은 황제가 과연 저명취를 처벌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우문호가 몸을 짓눌러왔다.“무슨 생각 해?”원경능은 그의 눈에
손왕은 목욕을 마친 후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나왔다.사실 그는 몸무게가 조금 줄어들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눈으로 보아낼 수 있을 정도이니 대단한 것이었다.“의지가 대단하세요. 둘째 아주버님.”원경능이 조금 그를 격려했다.손왕은 바나나 같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단련하는 건 좋은 일이지. 나중에 검술도 익혀야 해.”원경능은 의아해했다.“검술을 익힌다고요? 둘째 아주버님의 하루 운동량은 굉장하네요. 그러니까 살이 빠지셨죠.”“검술을 연마해야지. 무술은 꼭 정진해야 되는 거야.”손왕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본왕도 연습만 하면, 고수는 몰라도 다섯째와 비하면 아마 큰 차이가 없을 걸?”손왕비는 머금었던 차를 내뿜었다. 원경능이 그녀를 힐끔 쳐다봤다. 보아하니 그녀는 손왕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우문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원경능은 몰랐다.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손왕비의 이런 반응을 보니 그의 무공은 아마 뛰어난 모양이었다.“왜 웃어? 본왕이 다섯째를 못 따라간다는 거야?”손왕이 손왕비를 흘겼다.“그럴 리가요. 어찌 못 따라가겠어요. 정말 싸운다고 해도 다섯째는 당신의 상대가 안 되죠. 당신은 엉덩이만으로도 그를 깔아 죽일 수 있는 걸요.”손왕비가 진지하게 말했다. 손왕이 씩씩거리며 몸을 돌려 가버렸다.원경능은 손왕비를 보며 말했다.“둘째 동서는 왜 아주버님을 비꼬나요? 모처럼 투지가 넘치시는데요.”손왕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모처럼 투지가 있다고요? 정말 투지가 있었다면 제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에게는 그게 없죠. 그는 다만 살을 빼는 시늉만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정작 밖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원경능은 잠시 멍해졌다.“무슨 뜻이죠?”손왕비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많은 친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는 줄곧 음식에 빠져있었고 게을렀는데, 자객을 만난 후 갑자기 분발하여 단련하고 검술을 배우니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서일은 머리를 움켜쥐고 밖으로 나갔다. 얻어맞고 난 뒤에는 왕비의 마부 노릇도 해야 했다.원경능은 마차에 앉아 서일이 어두운 얼굴로 나와 마차에 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물었다.“자네도 따라오나?”“왕야께서 소인더러 마차를 몰라고 하셨습니다. 왕비의 입궁을 호송하라고요.”서일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원경능이 웃었다.“왜 그러는 가, 또 천대를 받은 것인가?”서일은 감히 불평할 수 없었다.“소인 주둥이가 가벼워 왕야를 화나게 하곤 합니다.”원경능은 발을 내리고 웃었다. 서일은 정말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서일이 슬며시 발을 젖히고 고개를 들이밀었다.“왕비, 방금 전 물으셨던 그 곳 말입니다, 나중에 소인이 모시겠습니다.”왕야는 모시기 까다로운 사람이니 왕비의 비위를 맞추는 더 것이 좋았다. 일이 터지면 왕비는 그를 지켜줄 수도 있었다.희씨 어멈이 경멸하며 말했다.“정말 살고 싶지 않은 게지요? 왕비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합니까? 밖에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혀 잘릴라. 어쩐지 왕야가 늘 당신을 때리시던데 당신은 그래도 싸군요.”서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음속에 말 못할 슬픔이 밀려왔다. 요즘은 운이 나빠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인가? 왜 자꾸 혼난단 말인가?마차는 청조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바퀴가 데굴데굴 굴러가는데 삐걱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원경능은 그 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말했다.“서일….”갑자기 마차가 ‘덜컹’하는 큰 소리와 함께 차 전체가 낮아지더니 옆으로 기울어졌다. 다행히 서일이 재빠른 반사신경으로 곧 뛰어내려 한 쪽을 들고 급하게 말했다.“왕비, 어서 내리십시오. 차륜이 빠졌습니다.”희씨 어멈은 원경능을 부축하여 급히 마차에서 내렸다. 몸가짐을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서일이 버티지 못한다면 바로 떨어질 판국이었다.서일은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린 모습을 보더니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괴로운 표정으로 마차를 바라보며 말했다.“며칠 전부터 이 바퀴에 문제가 있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원경능이 말했다. “그때 감히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일 거네.”“감히 엄두를 못 내서요? 이건 그렇게 좋은 이유는 아닙니다.”희씨 어멈이 말했다.원경능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확실히 그렇게 좋은 이유는 아니야.”하지만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의 그녀는 사면초가였으니까.“그래서요?”희씨 어멈이 물었다. 원경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르겠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참 묘하다고 생각되네. 내가 그 당시 입궁했을 때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그때 어멈은 나를 유일하게 잘 대해준 사람이었네. 나는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네. 영원히.”이 말은 희씨 어멈의 배반을 겪고 나서는 확실히 입에 발린 소리였다. 하지만 희씨 어멈은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반짝였다.“영원이라고요.”희씨 어멈이 중얼거리다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오래 전, 어떤 사람도 제게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영원히 잘 대해주겠노라고.”“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인가?”원경능이 물었다. 아마 그 사람은 틀림없이 저수부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저수부가 어찌 한낱 궁녀를 마음에 들어 할 수 있겠는가?“전 안 믿었습니다!”희씨 어멈이 말했다. 그녀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누가 믿겠습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고, 제가 어떤 사람인데요? 믿지 않으면 저는 영원히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를 것 아닙니까? 이것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슈뢰딩거의 이론: 독극물과 함께 갇힌 상자 속 고양이의 생존여부는 그 상자를 열어서 관찰하는 여부에 의해 결정됨.)믿지도 않고 시도해 보지도 않는다. 그러면 답은 영원히 두 가지인 것이다.원경능은 한숨을 쉬었다.“이 일생도 이렇게 무지몽매하게 다 지나갔습니다.”희씨 어멈이 조용히 말했다.“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군.”원경능이 말했다.희씨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오직 당사자만이 하나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