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다. 네가 그렇게 싫다면 앞으로는 얘기 안 하마.”막수는 온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숙제 검사까지 마친 후에 말했다.“참. 근래 나랑 하산해야 할 일이 있다.”“예?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기운 없던 온사는 그 말을 듣자 눈을 반짝 빛냈다.“당연하지.”막수 사태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산 아래에 내 환자가 한 명 있는데 하산해서 치료를 해주어야 해.”잠시 머뭇거리던 막수가 말을 이었다.“그런데 상대의 신분이 너한테 좀 곤란할 수도 있겠구나.”“누구인데요?”온사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충용 후작가의 노부인이시다.”그 말을 들은 온사는 왜 막수가 머뭇거렸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충용 후작가의 노부인이면 그녀의 전 약혼자 최소택의 할머니였다.하지만 온사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분이셨군요. 괜찮아요, 사부님. 저와 충용 후작가는 이미 혼약을 해지했고 최소택을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니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안심이구나.”안 그래도 이 일로 걱정이 많았던 막수였다.전에 알아본 바로 온사와 최소택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우애가 아주 깊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최소택은 온사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충용 후작가의 노부인이 오래 전에 막수에게 은혜를 베푼 일이 있지 않았다면 그 요청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온사는 안도하는 스승의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설마 이 일로 오래 고민하신 건 아니지요?”“오래 고민했지.”그러자 막수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것 봐. 어젯밤에 잠을 설쳐서 안색도 안 좋아졌어.”오늘 하루 종일 시무룩해 있는 온사를 위해 기분전환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면 이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온사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사부.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인걸요.”“그리고 사부께서 그리 가르치셨잖아요. 출가인은 욕망을 끊어야 한다고요. 연정도 그 중 하나에 속하지요.”온사는 두 손을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외웠다.막
온사는 후작 부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원래부터 그녀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던 고모이기도 했다.전에는 원래 그런 성격이려니 했는데 온모가 가문에 들어온 후로부터는 온아려가 극진히 챙기는 모습을 보고 고모는 단순히 자신을 안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온아려가 자신을 불렀음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온아려는 요지부동으로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고 불쾌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이 계집애가 뭘 멍 때리고 있어? 고모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여전히 예의가 없구나.”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뻗어 온사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당장 일어나. 웃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도리 몰라?”“시주.”막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길을 내치고 싸늘하게 말했다.“제 제자에게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온아려 막수를 그저 나이 든 여승으로만 생각했다.“온사야, 출가해서 드디어 의지할 사람을 찾았니? 늙은 여승이나 데리고 와서 의기양양한 꼴이라니. 설마 너 성녀가 됐다고 우리가 널 두려워할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지?”“우리 소택이는 절대 너 같은 애와 혼인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출가인이든 성녀든 앞으로 우리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고 소택이한테서 멀리 떨어져!”“후작 부인!”막수의 얼굴에 짙은 분노가 피어났다. 그녀는 온사를 뒤에 감추고 싸늘한 눈빛으로 온아려를 노려보며 말했다.“말은 똑바로 해야죠. 저희는 노부인의 초대를 받고 진료를 보러 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상한 망상에 젖어 무례한 발언하지 마십시오.”온아려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진료를 봐? 여자 땡중들이 무슨 진료를 본다고. 너희들….”“에미야, 당장 그 입 안 다물어?”온아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침상에 누운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노인은 굳은 얼굴로 온아려에게 호통치고는 말했다.“막수 사태와 이 어린 승려분은 내 손님이다. 계속 내 손님들에게 무례를 범한다면 아무리 너라도 용서 못해.”“어머님, 저 사람들은….”“당장 안 나가?”더 이상 그녀의 말이 듣기 싫어
지난번 명절 때 한번 뵙고 몇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노부인은 원래는 손주며느리였어야 할 아이를 다시 마주하니 마음이 착잡했다.온사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그래서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막수에게 말했다.막수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바로 돌아와서 나를 찾거라.”그 말인 즉 후작가에서 온사를 괴롭히기라도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미였다.온사는 노부인의 오색한 표정을 힐끗 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그녀 역시 어색한 상황이기에 어디 멀리 나갈 생각은 아니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입구에 서서 멍하니 정원 풍경을 바라보았다.그녀가 그렇게 잠시 따분함을 느끼고 있을 때, 온아려는 분을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그녀의 목적은 온사와 마주치지 않게 오늘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오지 말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온사가 집에 왔다는 소리를 들은 최소택은 사람을 보내 국공부에 서신을 전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노부인의 처소에 들자 밖에서 멍 때리고 있는 온사가 보였다.출가한 후 법복을 입은 온사의 모습은 그 역시 처음이었다.그는 청색의 법복을 입은 소녀를 보고 순간 멈칫하고 걸음을 멈추었다.자신의 전 약혼녀가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여자복이 넘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도 했지만 그는 외모만 따지는 속물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여인은 온모처럼 마음이 선량한 여인이었다.그는 내적 아름다움만이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여겼고, 그런 여자만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온사처럼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은 시커먼 여인은 자신을 진심으로 연모하는 마음도 없었더라면 절대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최소택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러자 온사가 화들짝 놀란 것을 보고는 느긋하게 다가갔다.“네가 왜 여기 있어? 일부러 나 보려고 온 거니?”최소택은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고 온사에게 물었다.온사는 그를 힐
그 순간 최소택의 표정이 굳어졌다.“온사,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못 알아듣겠어?!”온사가 짜증스럽게 말했다.“나한테서 멀리 꺼지라는 소리야. 자꾸 귀찮게 하지 말라고.”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최소택이 이를 갈았다.“지금 나한테 꺼지라고 했어? 온사야, 지금 나랑 밀고 당기기를 시전하는 거니?”“누가 너한테 그런 짓을 한대?”그녀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최소택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그게 아니면 뭐야? 전에는 그렇게 나한테 매달리더니 지금 나한테 꺼지라고? 그런 걸 밀고 당기기라고 하는 거야.”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냉소를 지으며 네 속을 내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바라보았다.“다른 사내들한테는 그런 수법이 통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정실의 자리는 온모여야만 해. 그러니 앞으로 그딴 역겨운 수작 나한테 부리지 마. 안 그럼 첩실의 자리도 안 남겨줄 테니까!”“역겨운 건 너야.”최소택은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인간이었다.게다가 자기애가 과한 듯했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최소택은 그녀가 자신을 유혹한다고 해석했다.그래서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뒤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최소택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잠깐, 어딜 가려고?”온사는 힘껏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최소택은 손아귀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분노가 치민 그녀가 말했다.“사부한테 가는데 그것도 막으려고?”“안 돼.”최소택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내가 그랬지. 내 첩실이 되려면 먼저 속세로 돌아오라고. 그러니 그 사부라는 사람한테 갈 필요 없어.”온사는 눈을 감고 길게 심호흡한 뒤에 차갑게 말했다.“나도 그랬지. 첩실이든 정실이든 네 사람이 되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이만 나 좀 놔주면 안 될까?”그녀는 충분히 입장을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최소택은 말을 듣지 않았다.“홧김에 하는 말인 거 알아. 가자. 국공부 사람들이 너 데리러 오고 있어. 나랑 같이 집에 돌아가자.”온사의 얼굴이 급변했다.더 이상 참을 수 없
퍽!이번에 온사는 귀뺨이 아닌 주먹을 날리고는, 최소택의 멱살을 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다시 정실이며 첩실 소리를 내 앞에서 꺼내면 네 뒤에 있는 사람 시켜서 거세해 버리겠어!”최소택은 순간 아랫도리가 싸늘해졌다.그는 경악한 표정을 하고 온사를 노려보았다.그러자 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시를 내렸다.“추월, 이자를 끌고 가서 한바탕 패줘. 머리가 정상이 될 때까지 패!”그녀는 자기애가 강한 최소택 같은 인간이 언제까지 버틸지 궁금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최소택은 더욱 완강했다.추월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서 그를 실컷 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온사,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야! 정도껏 해!”혹독한 매를 맞은 최소택은 입을 열자마자 불평을 늘어놓았다.“내가 너한테 관대하다고 감히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 측실의 자리는 꿈도 꾸지 마! 너 같이 악랄한 여자는 첩으로 들여도….”짝!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걸레를 최소택의 입에 물리고 싸늘하게 말했다.“더 패야겠네.”추월은 곧바로 그를 끌고 나갔다.충용 후작가의 세자가 자신의 저택 구석에서 맞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렇게 최소택이 결국 고통에 눈물까지 흘리고 나서야 온사는 추월을 멈추게 했다.그녀는 한심하다는 듯이 시선을 거두고 추월에게 말했다.“기절시켜서 아무데나 버려.”그녀는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더 이상 이 멍청이를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게 최선이었다.추월이 최소택을 해결한 후, 온사는 노부인의 방으로 돌아갔다.들어가 봤더니 노부인은 잠들어 있었고 곁을 지키는 어멈도 졸고 있었고, 막수 사태만 옆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소리를 들은 막수는 담담한 어조로 온사에게 물었다.“해결했어?”온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사부님, 이 사람들은….”막수가 담담히 말했다.“앞으로 사람을 때릴 땐 소리를 좀 줄여. 남이 들으면 어쩌려고.”온사는
온사는 주저없이 뒤돌아서 막수를 끌고 뒷문으로 향했다.이때, 떠나려는 그녀를 본 온자신이 마차가 서기도 전에 뛰어내려서 막았다.“둘째 도련님, 부상을 조심하셔야죠!”하지만 온자신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급히 온사에게 달려가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온사야, 가지 마!”“이거 놓으세요!”온사는 고개를 돌려 분노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그래, 그래. 놓을게. 네가 안 간다고 약속만 하면 오라비가 다신 건들지 않을게.”온사의 분노한 시선을 마주한 온자신은 다급히 손을 내렸다.“날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온사가 싸늘하게 말했다.“저는 수월관 여승이지, 공자께서 말하는 온사가 아닙니다.”온자신은 목구멍이 꽉 막히고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온사야, 그렇게 말하지 마….’“형님!”온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바로 온모와 온자월이었다!“형님, 아버지께서 했던 말씀 절대 잊지 마.”온자월은 들어오자마자 온사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온자신은 굳은 표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온자월에게 말했다.“셋째야! 쟤 온사야, 우리의 여동생이라고! 친동생한데 꼭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야겠어?”“이제는 아니지.”온자신에 비해 온자월의 태도는 매우 냉담했다.“지금 저 사람은 수월관 여승이지, 국공부의 온사가 아니야. 그러니 우리의 동생도 아니지.”“셋째 오라버니, 그런 말하지 마세요. 언니가 들으면 얼마나 상심이 크겠어요?”온모는 정말 걱정하는 척, 온사를 바라봤다.온자월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상심? 그건 자업자득이라고 해.”순간 온사는 가슴이 찔린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하지만 표정으로는 아무런 동요 없이 시선을 내릴 뿐이었다.그랬다.그녀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다. 그러니 절대 후회는 없을 것이다. 국공부에는 그녀가 미련을 둘만한 것이 이제 없다.“셋째야!”온자신은 온자월의 멱살을 잡고 분노해서 말했다.“그런 말은 나중에 하면 되잖아? 굳이 사람들 앞에서 온사한테 그런 말을 해야겠어?”충용 후작
온아려는 피식 웃고는 온사를 바라보며 물었다.“설마 저 계집애랑 관련된 일이니?”온자신과 온자월 두 형제는 여전히 의견이 갈렸다.“형님, 아버지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니 언젠가는 꼭 해야 해. 그리고 고모가 남도 아니고, 여기서 얘기하는 게 밖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나을 텐데?”온자월이 담담히 말했다.“온자월, 그 입 다물어!”하지만 온자신은 여전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여기서 말하거나 밖에 사람들 있는 곳에서 말하거나 선택하라는 온자월의 압박이었다.온사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막수가 먼저 나섰다.“나무아미타불, 할 얘기 있으면 바로 하시죠. 더 할 얘기 없으면 저는 제자 데리고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온사를 이끌고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그들이 떠나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잠깐,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온아려는 일부러 다가가서 두 사람을 막고는 경멸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온사야, 그래도 한때는 온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네 아버지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잖니. 그걸 안 듣고 가? 넌 옛정이라는 것도 없어?”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온사는 결국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후작 부인께서 옛정 얘기를 꺼내셨으니 저도 묻고 싶은 게 있군요. 전에 부인께서 내 어머니께 애걸복걸해서 겨우 충용 후작가에 시집을 오셨는데 이것도 옛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그 말을 들은 온아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예전에 진국공부는 지금처럼 큰 힘이 없었으며, 실권도 없는 허울뿐이었다.교활하고 지략이 뛰어난 온권승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천천히 위로 올라가야 성공했다.그래서 온씨 가문은 란씨 가문을 찾아 정략혼인을 제안하고 한배를 타기로 한 것이었다.온권승이 란자군과 혼인하자 란씨 가문은 국공부를 도와 선황의 신임을 얻고 드디어 온권승은 대권을 쥐게 되었다.그때의 온권승은 중년이 되기도 전에 조정에서 발언권이 생겼다.권력의 맛을 본 그는 당연히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었기에 인맥을 넓히기로 했고, 그 중에는
듣고 있던 사람들도 화들짝 놀랐다.그들은 온사와 분노한 온아려를 번갈아보며 누구 말이 사실인지 궁금해했다.온자신과 온자월 또한 마찬가지였다. 온사의 어머니는 그들에게도 어머니였으니 말이다.란자군이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일을 온사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이 일을 알게 된 건 전생에 그녀가 온모 때문에 집에서 또 서러운 일을 당한 후에 몰라 어머니의 방을 찾았을 때 일기장을 발견하고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온사는 거기서 온씨 가문과 란씨 가문이 어머니를 압박하여 온아려를 위해 중매를 서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인 온권승의 비밀마저 알게 되었다.그 순간 그녀는 왜 아버지가 온모를 집에 데려오고 왜 더 이상 자신을 예뻐하지 않게 된 건지 이유를 알게 됐다.온사는 주먹을 꽉 쥐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부인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후작 나리를 불러서 물어보면 알 게 아닙니까?”온아려가 진실을 모를 리 없었다.그녀의 표정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어미 죽을 때 같이 죽을 것이지! 이런 사고뭉치가 대체 왜 살아남아서 날 괴롭히는 거야!’“어디서 어른한테 말대답이야? 맞고 싶어?!”앞으로 성큼 다가선 온아려가 온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막수는 바로 온사를 뒤로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온자신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짝!온아려의 귀뺨은 결국 온자신의 얼굴에 맞았다.온아려는 물론이고 온사마저 흠칫했다.온자신이 자신을 위해 매를 막아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아려는 당황한 듯 이내 손을 내리며 말했다.“자신아, 고모는 널 때리려던 게 아니었는데 왜 막아서고 그래?”얼굴이 뻘겋게 부은 온자신은 이를 갈며 말했다.“고모! 고모가 때리려던 애가 제 동생이잖아요!”온사는 고개를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저는 시주의 동생이 아닙니다.”“들었니? 동생이 아니라잖아!”“동생 맞아요!”온자신은 온아려의 권유에도 집요하게 온사를 바라보며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