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모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그러고는 여전히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저도 몰라요… 그때 홍옥이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의원을 찾아가 보라고 했어요. 다른 건 저도 정말 몰라요! 그렇게 의심 가시면 홍옥이를 불러서 대질 심문이라도 해보시는 거 어떤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몰래 홍옥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그리고 그 뜻을 알아본 홍옥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을 때, 온모가 입모양으로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다. ‘가족들을 생각해야지.’홍옥은 점점 심장이 쫄리고 온몸이 얼어붙었다.털썩!결국 그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다.“소인이 했어요. 모든 건 소인이 혼자 한 짓이고 아가씨와는 무관해요.”“오리구이는 소인이 아가씨의 이름을 대고 가서 산 거고 독 역시 소인이 몰래 음식에 뿌렸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들킬까 봐 남은 약을 넷째 공자의 방 안에 숨겨두었어요. 모든 건 소인이 한 게 맞아요.”“홍옥아, 내 그리 너를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 오라버니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온모는 홍옥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자 곧바로 연극을 시작했다.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해서 혐의를 벗어야만 했다.“역시, 막내가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지.”온장온이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온옥지도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희생양을 내세우네.’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에 꿇고 있는 홍옥을 바라보았다.어쩔 수 없이 끌려나와 죄를 인정한 시종이지만 그녀는 전혀 가엾게 느껴지지 않았다.전생에 그녀를 배신한 춘향을 제외하고 홍옥은 온모를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한 인간이었다.이제는 주인을 위해 희생양까지 자처하고 나섰으니 자업자득이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온모가 빠져나가게 그냥 둘 수는 없었다.“오리구이는 홍옥이 산 게 맞는 것 같군요.”온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그
“됐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온권승은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이 들어, 바로 대화를 끊고 결론을 내렸다.“이제 모든 진실이 밝혀졌군요. 모든 건 불경한 시종이 주인을 독살하려고 음모를 꾸민 것이니 가문의 법도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굳이 섭정왕 전하와 성녀 전하께 폐를 끼칠 이유가 없지요.”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온사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온모 너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온모는 당연히 끝까지 발뺌했다.“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언니… 아니 성녀 전하께서 저에 대한 편견이 깊어서 오해를 하셨나 보네요.”그녀는 일부러 편견을 강조해서 말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온사가 온모에게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다.온장온이 뭐라고 하려는데 온사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편견이라?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난 한 번도 널 안중에 두지 않았거늘.”그 말을 들은 현장의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온사가 아무리 온모를 못마땅하게 생각해도 명성을 생각해서 이렇게 당당하게는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온사, 너….!”“됐네요.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온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온권승을 무시한 채로 담담히 말했다.“네가 수많은 희생양을 내세우려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거짓말이 너무 서투르네.”그러자 온모는 겁이라도 먹은 듯이 떨며 말했다.“성녀 전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온사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뒤돌아서 북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됐으니 이만 나오라고 하세요.”누굴 또 불렀다는 말인가?온씨 가문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가운데 북진연이 피식 웃더니 흑기군 수장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자 곧이어 네 사람이 앞으로 나왔는데, 맨 앞에 선 사람은 바로 봉선루 점주였다.“이제 시작하지.”이미 여기 오기 전에 뭘 하러 왔는지 전달을 받은 그들이었다. 봉선루 점주는 앞으로 나서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온모와 홍옥을 힐끗 보더니 손으로 홍옥을 가리켰다.“왕야, 성녀 전하, 어제 봉선루에
“저 사람들이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다 거짓말이에요!”“저 억울해요. 언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온모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혐의를 씻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온사는 그저 조용히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이때 한 약방 점주가 종이 한장을 꺼내면서 말했다.“아가씨께서 잊으셨나 보네요. 어제 우리 약방에서 여기 성함을 적고 가셨죠. 비록 다른 점주들이 받은 것과 모두 다르지만 약을 구매한 시간은 같습니다.”다른 점주들도 온모가 서명한 종이를 꺼냈다.종이를 받은 북진연은 바로 그것을 온사에게 건넸고, 온사는 힐끗 보고는 그것을 다시 온권승에게 건넸다.온권승은 대충 훑어보고 침묵을 지켰지만, 눈앞의 진실을 믿을 수 없었던 온장온은 아버지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 시간을 대조하고는 눈을 감았다.온모는 가슴이 철렁했다.종이에 이름을 적은 게 사실이긴 해도 모두 가짜로 적었는데 이게 어떻게 증거가 될 수 있단 말인가!“아니에요! 아버지, 이거 다 가짜예요. 저를 믿어주셔야 해요. 저 정말 약방에 간 적이 없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저들이 저를 모함하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큰 오라버니, 저를 가장 아껴주셨잖아요.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거예요?”“둘째 오라버니도 저를 안 믿는 거예요? 외부인의 말을 믿는 거냐고요!”온장온은 한숨을 쉬며 온모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손을 뻗자, 온자신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이번에는 온모가 다른 희생양을 내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홍옥이 같은 시간에 봉선루에 나타났으니 동시간대에 약방에 나타났을 리 없었다.만약 약방 점주 한명이라면 몰라도 세 명이 다 거짓말을 하는 건 현실성이 없었다.게다가 계화떡도 맞추지 않았는가.세 약방에서 구매한 약재는 의원의 대조를 거쳐 온자월의 체내에 있는 독과 일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봉선루와 약방 점주들을 돌려보낸 후, 온권승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막내아가씨를 끌고 가서 사당에 가두고는 반성하게 하거라.”“아버지….”처벌 내용을 들은 온모는 속으로 안도의
저들이 먼저 수월관을 포위해 놓고 진실이 밝혀지자 양녀를 감싸주었다고 말한다면 온권승은 의도적으로 성녀를 모함한 꼴이 된다.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음침해졌다.“그래서 바라는 게 대체 뭐지?”온사는 담담히 답했다.“바라는 건 딱히 없습니다. 그저 진국공 어르신께서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이 사건을 처리해 주시는 것, 그거 하나뿐입니다.”하지만 과연 온권승이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만약 그녀가 진국공부를 떠나지 않고 폐하가 책봉한 성녀가 되지 않아서 범인으로 몰렸다면 오늘 같은 상황에서 온권승은 절대 그저 사당에 무릎 꿇리는 것만으로 일을 끝맺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그렇게나 고상한 척하던 아버지가 얼마나 공정하게 처리하는지 보고 싶었다.온권승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온사를 빤히 노려보았다.압박과 경고의 의미가 가득 담긴 눈빛을 마주하고도 온사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싸한 분위기 속에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온사를 등 뒤로 감추었다.“진국공, 그게 무슨 불손한 눈빛이지?”북진연은 위엄이 넘치는 얼굴을 하고 싸늘하게 말했다.“성녀께서 그렇게 큰 억울함을 당하셨는데 이 정도 요구도 못 들어준단 말인가?”“진국공은 요즘 너무 일이 순조로워서 자신의 신분을 망각했나 보군.”그러자 온권승은 순식간에 똥 씹은 얼굴로 바뀌었다.그는 음침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장온아, 채찍 가져오너라.”“아버지!”채찍 얘기가 나오자 온장온과 온모 남매가 동시에 경악한 비명을 질렀다.‘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정녕 온모에게 채찍질을 하시겠단 말인가!’“어서 가라는데도!”온장온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온권승은 싸늘하게 명령했다.그가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직감한 온권승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채찍이 준비되고 창백해진 온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온사는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북진연은 딱 봐도 단단한 채찍을 보고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표정이 굳었다.“아버지, 저 무서워요.
온사는 사람들의 착잡한 시선을 마주하며 담담히 말했다.“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죠? 귀하신 둘째 공자께서 그러시잖아요. 죽지 않는다고요. 그러니 빨리 시작하세요.”그녀의 느긋한 말투에 온모는 화가 나서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까짓 게 감히 재촉을 해?’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지만 않았다면 온모는 당장 달려가서 저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결국 채찍질이라는 무거운 임무는 장남인 온장온에게로 돌아갔다.온권승이 명령을 내리고 온장온이 집행하는 것, 두 달 전과 똑 같은 상황이었다.단지 이번에는 맞는 상대가 온사에서 온모로 바뀌었을 뿐이다.온장온은 차가운 채찍을 들고 처음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착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고개를 돌려 온사를 바라보며 혹시라도 온사가 막내를 용서해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의 눈빛을 보냈다.“온사야, 아무리 그래도 온모는 네 동생인데….”온장온은 예전에도 여러 번 했던 말을 입에 올렸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온 온사의 싸늘한 눈빛에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온사는 담담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나도 한때는 공자의 동생이었지요. 그런데 사당에서 내게 매를 들 때는 왜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았을까요?”같은 동생인데 왜 온모만 편애하나요?왜 나는 안타깝게 여겨주지 않았나요?온장온은 귓가에 온사의 목소리가 더 들리는 것 같았다.비록 온사는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그 동안 온사를 냉대했던 자신에게서 온 죄책감 같았다. 그녀가 억울하다는 것을 어쩌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때의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을 더 아꼈다.“막내야.”오랜 침묵 후에 온장온은 드디어 채찍을 들며 말했다.“좀… 참아.”그 말을 끝으로 채찍이 온모의 몸에 떨어졌다.짝!“악!”얼얼한 아픔이 전해지자 온모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소리쳤다.“아파요! 오라버니, 저 너무 아파요!”예전이었다면 온모가 이렇게 말하면 바로 채찍을 내려놓고 동생을 위로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온장온은 마치 귀가 먹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털썩!“막내야!”온장온은 재빨리 채찍을 내려놓고는 조심스럽게 온모를 부축했다.“막내야, 괜찮아? 더 버틸 수 있겠어?”온모는 눈을 질끈 감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다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가는 온권승을 보고 북진연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이집 막내는 참으로 연약하군. 분명 밖에서 자라다가 얼마전에 이집으로 온 양녀인데 어째 귀족가에서 곱게 자란 적녀보다 더 연약해?”그는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을 이었다.“고작 스무 대 맞았다고 기절하다니. 무우 사태는 대체 어떻게 오십 대가 끝날 때까지 버텼는지 모르겠군.”그의 말투에서 진한 분노가 느껴졌다.그는 하인을 시켜 온사에 관한 일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엄청 많았지만 온사를 처음 만난 날에 그녀의 등에 난 상처가 어떻게 된 건지는 조사해내지 못했다.오늘에 와서야 그는 그 상처가 전부 가족에게서 맞아 난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대체 뭘 그리 잘못했기에 오십 대나 맞은 걸까?어린 딸한테 저런 채찍을 휘두른 진국공도 꼴사나웠다.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온사가 안쓰러워 견딜 수 없었다.그는 이제야 그녀의 눈에 가끔 스쳐가던 아픈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런 인간들을 가족이라 두었으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싶었다. 북진연은 안쓰러운 눈으로 온사를 바라보았다.그러자 그의 시선을 느낀 온사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의 마음을 알고서 위로하는 것처럼 말이다.“물 가져와서 당장 막내아가씨 정신 차리게 해.”북진연의 말은 이대로 어물쩍 넘어가려던 온권승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온장온은 조용히 온모를 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하인들이 물을 가져오자 바닥에서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온모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아버지, 큰 오라버니….”온자신은 완전히 온사에게 돌아선 것을 확인한 온모는 더 이상 그를 부르고도 싶지 않았다.‘멍청이 같으니라고!’“저… 기절해 있었나요?”온모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떨리는 목
온권승은 음침한 눈으로 온사와 북진연을 노려보며 물었다.“오늘 일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이제 처벌도 끝났으니 성녀 전하께서도 해독제를 내놓으시지요?”온사는 눈썹을 꿈틀하며 말했다.“진국공 어르신, 해독제는 막내 따님에게 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범인은 따님이지 제가 아닙니다.”온권승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넌 내가 무슨 말하는지 다 알고 있지 않니.”온자월이 피를 토하게 쓰러지게 만든 독은 온모의 것이지만 그 전에 당한 독은 온사의 소행이었다.그 독으로 인해 온자월은 연회에서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온사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진국공 어르신은 또 저를 모함하시네요. 의원은 어르신이 부른 사람이니 직접 물어보세요. 셋째 공자의 몸에 또다른 독소가 있는지 말입니다.”온권승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원에게 눈빛을 보냈으나 의원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온권승은 그제야 표정을 수습하고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볼일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장온아, 손님 나가신다.”옆에서 멍하니 서 있던 온장온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서려던 순간, 줄곧 침묵을 고수하던 온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갈게요, 아버지.”온권승은 더 이상 그들과 입씨름을 벌일 여유가 없었다. 그는 의원을 시켜 온모의 치료를 지시한 뒤, 마음대로 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더 이상 온사와 북진연을 상대하기 싫다는 태도가 명백했다.오늘 가장 후회하는 일이라면 아침부터 수월관으로 찾아간 일이었다.만약 아침에 가지 않았더라면 북진연도 온사를 따라 진국공 저택까지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둘이 오지 않았다면 집안에 이런 소란이 일었을 리 없었고 사랑하는 막내딸이 혹독한 매를 맞을 이유도 없었다.온모가 셋째에게 독을 먹인 사실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에게 매정하게 굴 수는 없었다.온모는 그 여인이 목숨을 걸고 그를 위해 낳아준 자식이었다.그러니 어찌 안쓰럽지 않을 수 있을까?온권승 일행이 자리를 뜬 후, 온자신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온자신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온사에게 물었다.“그래줄 수 있겠니, 온사야?”“안 됩니다.”온사는 단박에 거절했다.그녀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 말을 이었다.“내가 왜 기회를 줘야 하죠?”전생의 그녀가 그렇게 애원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앞으로 귀찮게 하지 마세요.”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온자신을 지나쳐 저택을 나갔다.홀로 남은 온자신은 한참이 지나도록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어떡하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동생과 다시 화해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어머니,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어머니가 온사를 달래주었다면 어쩌면 온사가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그 시각.진국공부를 나온 온사는 북진연이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차안에 오른 그녀는 피곤한 기색으로 눈을 감았다.잠깐 눈을 붙이려던 찰나,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눈을 뜬 온사가 놀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섭정왕 전하, 무슨 일이신가요?”혹시라도 마차에 북진연과 단둘이 있는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그의 명성에 금이 갈까 온사는 걱정 되었다.“이… 일단 나가서….”온사는 차마 그에게 당장 내리라는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북진연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아팠소?”온사는 그 질문의 의미를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북진연이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지. 채찍으로 매를 맞았는데 안 아팠을 리가.”‘진국공부의 채찍을 말하는 건가?’온사는 그제야 말뜻을 알아듣고 입을 다물었다.“미안하오.”오늘 누군가가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 두번째였다. 온사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전하, 어찌 저에게 미안하다 하십니까?”북진연은 죄책감 가득한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그날 밤에 떠나는 사태를 잡아서 치료라도 받게 했어야 했는데. 참으로 후회스럽군.”그는 그때 당시 아무것도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