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들이 온옥지의 방에서 밀실을 수색해낸 순간, 온권승은 이 일이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그래서 일단은 안을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눈치 빠른 이 태의는 그저 아무것도 못 들은 척을 하며 약가루의 연구에만 집중했다.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간 뒤, 이 태의는 굳은 표정으로 온권승에게 말했다.“진국공 나리, 이건 저도 어쩔 방법이 없네요.”이 태의마저 방법이 없다는 말에 온권승은 인상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독이기에 이 태의마저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이게 그렇게 독한 약이었소?”“해독이 어려운 이유는 안에 들어 있는 약의 성분이 복잡한데다가 흔히 볼 수 없는 사린이라는 희귀 독초가 들어가 있습니다.”“이것 때문에 저도 해독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희귀 약초인 청사화가 들어가야만 해독할 수 있지만 경성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던 청사화는 이미 일년 전에 사용되었죠. 지금 그걸 구하려면 힘들 겁니다.”이 태의의 한숨소리에 온권승 일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이 태의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실 건 없어요. 독성이 강한 독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거든요. 공자에게 독을 먹인 자는 아마 목숨을 취할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온권승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이 독으로 넷째 공자는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지만 몸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해독하지 않아도 온옥지가 죽진 않을 거란 뜻이었다.기껏해야 말을 할 수 없고 침상에서 내릴 수 없을 뿐이었다.약간 의식을 회복한 온옥지는 눈을 뜨자마자 그 말을 들었다.그는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하지만 아무리 입을 열고 말을 하려고 해도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결국 감정이 격해진 그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넷째야!”다행히 이 태의가 돌아가지 않았기에 침술로 다시 의식을 깨울 수 있었다.이 태의는 자신의 말을 듣고 충격 받아 기절했다고 생각해서 다급히 온옥지를
“아까는 네 독이 맞다면서 고개는 왜 흔드는 것이냐?”온장온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하지만 온옥지 역시 억울하고 갑갑한 마음뿐이었다.최면제는 그가 만든 것이었지만 이런 효과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그의 최면제에는 중독자가 말을 못하고 온몸에 기력을 잃게 만드는 효과는 절대 포함되지 않았다. 그 약을 가져다준 온자월을 떠올리자 온옥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빨리 말해봐요! 형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거죠?’설마 그의 약을 누가 바꿔치기 한 것일까?‘온사? 아니면 그 야행복을 입은 자..?’온옥지는 스스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그저 온자월의 대답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애원의 눈빛에 온자월은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온옥지는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마침 그때, 둘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누군가가 생각이 났다.“넷째 오라버니, 왜 계속 셋째 오라버니를 보고 계세요? 셋째 오라버니가 뭐 아는 거라도 있나요?”온모의 목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온자월에게 향한 탓에, 아무도 온모의 눈빛에 비친 혐오감을 보지 못했다.‘멍청한 것들!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는… 이러니 평생 약골로 살지.’온모는 비참한 온옥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온사의 작품임을 직감했다.‘그렇게 자신 있어하더니 이게 뭐야? 데려오라는 애는 안 데려오고 자기가 당하는 꼴이라니!’온모는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저런 것들에게 기댄 내가 잘못이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어.’“셋째 오라버니, 아는 게 있으면 말씀 좀 해보세요. 넷째 오라버니가 너무 안쓰럽잖아요.”온모는 안타까운 얼굴로 온자월을 다그쳤다.그녀는 온자월이 자신에게 불리한 답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사형제 중에 가장 그녀의 말을 잘 듣는 개가 온자월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평소의 온자월과는 완전히 달랐다.온장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막내 말이 맞아. 셋째야, 아는 게 있으면 어서 말해봐.”그
온자월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온자신은 참고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퍽!온자신의 주먹에 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그리고 곧이어 분노에 사무친 주먹질이 시작되었다.“너희들 왜 그랬어! 어떻게 동생한테 그럴 수가 있어! 온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었어도 걔 너희들한테 뭐 잘못한 적도 없잖아! 너희가 뭔데 걔한테 그런 짓을 해? 너희가 뭔데!”온자신은 그 약이 개조된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자신의 두 남동생이 짜고 여동생에게 독을 먹이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피를 나눈 남매인데 그렇게 화목하게 지냈는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만해! 그러다 애 죽겠어!”온권승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바닥에 쓰러진 온자월은 반격도 하지 않고 그저 온자신의 매를 그대로 맞고만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온자신의 귀에 아버지의 호령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분노한 목소리로 온권승을 향해 소리쳤다.“아니, 아직 부족해요!”그는 고통과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든 것에는 아버지의 잘못도 있고 저의 잘못도 있고 우리 모두의 잘못이에요. 하지만 온사가 뭘 잘못했죠? 걔가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당해야만 하는 거냐고요!”아버지는 틀렸다. 그는 온사를 집에서 내쫓지 말았어야 했다.큰 형님도 틀렸다. 그는 온사의 말을 믿어줬어야 했다.그리고 그 역시 잘못했다. 온사에게 욕을 퍼붓고 매를 들지 말았어야 했다.셋째, 넷째, 그리고 막내까지!온자신은 처음으로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온모를 노려보았다.“왜 저들에게 온사를 찾아가라고 했니? 너 쟤네들이 온사를 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으면서 왜 굳이 쟤네들에게 그런 일을 시켰어?”온모는 온자신의 사나운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곧이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 멍청이가 지금 나한테 화를 내? 감히 나한테?’온모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상황에 같이 화를 내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그녀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하지만 그때의 온모는 독에 당한 것이 온옥지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온장온은 온옥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푹 쉬라고 당부한 뒤, 온권승과 함께 서재로 향했다. “아버지, 넷째는 어떻게 할까요? 사람을 보내 해독초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그래야지. 하지만 저애들이 말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자리에 앉은 온권승이 담담히 말했다.온장온은 의아한 얼굴로 차를 따르고는 자리에 앉았다.“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독약을 넷째가 만들어낸 거라면 그 정도로 대비를 안 해뒀을 리가 없어.”온권승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전에 소택이도 독에 당한 적 있었는데 그 독도 보통의 의원들은 방법이 없다고 해서 이 태의가 나서서 해결했지. 그 일이 있기 전에 충용 후작가에 다녀온 사람이 둘 있었어.”온장온이 긴장한 얼굴로 온권승에게 물었다.“온사와 막수 사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온권승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러자 온장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버지의 의심은 이해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온사는 어릴 때부터 독초와 접촉한 적도 없고, 사람에게 독을 먹이는 짓은 절대 못할 애예요.”온권승은 장남을 힐끗 바라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걔는 아니라 할지라도 걔 사부라면 얘기가 다르지.”“설마 막수 사태 말씀이에요?”온장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아무리 봐도 평범한 승려로만 보이던데요.”“그 여승이 온사랑 충용 후작가에 왜 갔는 줄 아니? 그 사람 그 댁 노부인의 병치료를 위해 간 거야.”온권승은 담담히 말했다.“의술을 행하는 자라면 독도 만들 수 있지.”그는 막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가 아는 사실은 단지 상대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란씨 가문과도 연관이 있고 황실 사람들과도 왕래가 잦았다는 것이다.그게 아니라면 어린 황제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수월관에 맡겼을 리 없기에, 그는 넷째의 독은 어쩌면 막수의 짓이라고 의심했다.그녀가 직접 나선 게 아니라
“저 사람 예전 진국공부 적녀 온사 아가씨 아니야?”“맞아. 그런데 지금은 온사 아가씨가 아니라 폐하께서 친히 책봉하신 성녀이지.”“성녀는 무슨. 그냥 여승이지 뭐!”“조용히 해. 아무리 여승이라도 우리가 건들면 안 되는 존재이셔.”“폐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몰라. 어찌 저런 악하고 비열한 인간을 성녀로 만들었을까.”“난 괜찮은 것 같은데. 전에 기도의식에서 봤는데 그럴싸하더라고.”“그럴싸하긴 무슨, 얼굴만 좀 예뻤지 마음씨 착한 거로 치면 온사는 여동생에 비해 한참 멀었지.”“저런 인간이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니 재수없어. 안 그래, 제성아?”한 놈은 아예 마차에서 머리를 내밀고 온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다.그런데 이때 그의 옆에 서 있던 제씨 가문 마차에서 갑자기 커다란 손이 튀어나오더니 턱 하고 그자의 정수리를 후려쳤다.제성은 성난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혓바닥이 왜 이리 더러워? 아침에 양치도 안 하고 왔어? 그러다가 태후마마 눈밖에 나면 어쩌려고!”말을 마친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가림막을 내렸다.그러자 제성에게 맞은 사내는 그가 있는 쪽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이상한 놈일세.”제성 본인도 자신이 요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당나귀차에 앉은 어린 여승을 보고 있자니 분명 촌스러운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제성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머릿속에는 그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절을 하며 남산을 오르던 온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인상 깊은 기억이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잊혀지지 않았다.그는 그날 돌아온 이후로 틈만 나면 온사의 소식을 알아보았고, 자신이 그녀를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온사가 참배를 하며 산을 오른 것은 최소택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그래서 최소택을 찾아가서 이 일을 얘기했더니, 그로 인해 온사가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최소택의 수모를 당한 것이었다.지금 생각해도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는 온사를 직접 만나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생
“누군데?”제성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무엇이라도 떠오른듯 눈을 부릅떴다.“설마 최소택이 한 짓이야?!”“맞아. 그 녀석이 훔친 거래. 처음에 인정했으면 될 것을 온사한테 뒤집어씌웠다나 봐.”사내는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처음엔 나도 안 믿었는데 지금 보니까 소문이 사실인 것 같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맞은편 마차에서 욕설이 들려왔다.“최소택 이 망할 자식이!”제성은 한때 최소택과 꽤 친하게 지냈어서 그의 성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 진국공부에서 최소택의 황당한 말을 들은 후로 그는 최소택에 대해 점점 실망했다. 그래도 점잖은 집안인 충용 후작가의 세자가 전 약혼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짓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아무리 약혼을 파기했어도 온사와 그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인데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을까!제성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마차가 황궁으로 들어간 후, 그는 곧바로 최소택을 찾아갔다.한편, 북진연은 친히 온사와 막수 사태를 호위하여 입궁한 후, 그들을 조용한 편전으로 안내했다.“폐하께서 마차를 보내려고 했는데 말이지.”그러자 북진연은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폐하의 그런 호의를 막수는 단박에 거절해버리고 말았다.“폐하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출가인이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요.”무고 사저도 그 말에 동의했다.비록 당나귀차를 타고 왔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편안했다.수월관은 본디 마음을 정화하고 수련을 하기 위한 곳이기에,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 당나귀차가 제격이었다.온사도 이미 수월관 생활에 적응했기에 사부와 사저들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그래서 당나귀차가 황궁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막수와 사저들은 가장 여린 온사를 당나귀에 태웠다.처음에는 온사도 약간 쑥스러웠지만 천천히 길을 걷는 당나귀 등에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그래서 당나귀
온권승의 방문은 온사가 예상했던 바이긴 했지만, 항상 진중하고 냉철하던 아버지가 이렇게 급하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황궁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찾아올 줄이야.막수 사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온사에게 물었다.“내가 같이 나갈까?”“왜 오셨는지는 아니까 그러실 필요 없어요.”온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막수에게 말했다.“그래. 내가 했던 말만 명심하면 돼.”온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궁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온권승은 편전에서 멀지 않은 구석진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온사가 나오는 걸 보고서도 그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온사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그가 있는 곳을 힐끗 바라본 후에 편전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러고는 온권승을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진국공 어르신께서 나를 먼저 보자고 하셨으면서 왜 다가오질 않으시는 거죠?”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당황했다.불과 두 달 사이에 딸이 자신을 이 정도로 경계할 줄은 몰랐다.잠깐 머뭇거리던 그는 등 뒤에 있는 이에게 손짓을 한 후에 온사에게 다가갔다.온사는 온권승의 어깨너머로 이쪽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비록 너무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온권승이 데려온 그림자 호위 정도로 보였다.온사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것에 있었다.부녀는 거리를 두고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았고,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온권승이었다.“해독약이 너한테 있어, 아니면 네 사부에게 있어?”온사는 담담한 미소로 답했다.“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성녀인 제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온권승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그를 분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권위로 누르는 거였다.특히나 항상 무시하고 심지어 혐오하던 딸에게 갑자기 권위로 밟히게 되었으니 속이 꽤나 쓰릴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들은 온권승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온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이제 시치미를 뗄 줄도 알고… 참 많이 컸구나.
원하는 건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법이었다.온권승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뒤돌아서 그곳을 떠났는데, 아까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숨어 있던 그림자 호위가 모습을 드러냈다.“나리.”그러자 온권승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여기서 지키지 말고 지금 바로 수월관으로 가. 온사와 막수의 방을 뒤져서라도 어떻게든 해독제를 찾아내거라.”“예.”그림자 호위가 떠난 후, 온권승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자군아, 네 딸은 역시 널 닮아서 참으로 매정하구나. 하지만 난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거야.”하물며 상대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불효녀였다.온권승은 침착한 표정을 하고 그곳을 떠났고, 그가 떠나자마자 추월은 방금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온사에게 전했다.온사는 냉소를 지었다.“역시나, 처음부터 나랑 협상이나 하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어.”방금 정말 온권승의 곁으로 다가갔더라면 아마 그 그림자 호위가 바로 움직였을 것이다.협박이 가능하니, 그녀와 협상할 이유도 없었다.온권승의 의도를 알아챈 온사는 역겨워서 금방이라도 토해버릴 것만 같았다.“이 나라의 진국공이라는 사람이 자기 딸에게 이런 비열한 수를 쓰려고 했다니.”어쩌면 온옥지는 온권승을 가장 닮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할까요? 제가 돌아가볼까요?”“아니. 해독제는 수월관에 없어.”온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해독제는 옥패 공간 안에 있었기에, 온권승이 수월관 전체를 다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그러므로 그녀는 오늘의 연극이 점점 기대되기 시작되었다.잠시 후, 연회가 시작되었다.온사는 예부의 안배에 따라 먼저 태후를 위해 경을 읊고 축원을 올렸다.축원이 끝난 후, 각 가문에서 선물을 내놓을 시간이었다.온사는 이제 온씨 가문 사람이 아니기에 진국공부를 대표해서 선물을 선보일 임무는 자연스럽게 온모에게 돌아갔다.온모는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이 기회를 당연히 놓치지 않았고 아니나 다를까 태후의 치하도 받았다.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그는 혹시라도 막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해명을 덧붙였다.하지만 그럴수록 막수의 눈에는 더 수상해 보일 뿐이었다.온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랬군요.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죠.”그녀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고 북진연과 막수만 정원에 남았다.막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의 마음이 너무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일 정도예요. 무우는 현재 우리 수월관 사람이니 전하께서 이럴수록 무우의 수행을 망치는 것입니다.”북진연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서신을 받은 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그였다.수월관에 도착하고 막수와 부딪쳤을 때에야 그는 자신의 행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밤중에 여인의 처소로 달려오다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온사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칠 것이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생각이 짧았군. 사태,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다음엔 더 주의하겠습니다.”막수는 다음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불만 가득한 눈으로 북진연을 노려보았다.이때, 온사가 뜨거운 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세 사람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사는 북진연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막수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했다.“사부님, 독사의 사체는 어디에 쓰려고 남기라고 한 건가요?”온사는 혐오스러운 눈으로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북진연은 그제야 구석진 곳에 쌓인 피 묻은 보따리를 발견했다.살짝 풀어진 틈새로 독사의 머리가 보였다.비취색의 영롱한 색상을 보고 북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독성이 매우 강한 독사인데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보따리의 형태로 봐서 적어도 열 마리는 될 것 같았다.이게 모두 온사의 정원에서 나왔고 오늘 온사가 하마터면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북진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이미 죽은 녀석들이고 좋은 약재로 쓰일 수 있어. 마침 3일 후에 그 사구라는 인간을 만나야 하니 그 전에 이것들로 좋은 선물을 준비할
약속 시간을 잡은 사구는 그 길로 뒤돌아섰다.그렇게 온사의 정원을 지나던 그는 뭔가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사구는 그 여승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가 옷소매를 휘두르자 뱀들이 소매에서 기어나와 여승이 있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사구는 그걸 본 여승이 겁에 질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흥미가 사라진 사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길로 수월관을 벗어났다.사구가 떠난 후, 추월은 정원 안팎을 꼼꼼히 확인했다.그리고 정원 곳곳에서 십여 마리의 뱀을 잡아냈다.“사구 놈이 다녀간 후로 내 처소가 뱀 소굴이 다 되었네.”독사를 전부 처치한 추월은 굳은 표정으로 뱀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 불사르려 했다.그리고 이때, 막수의 목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다.“잠깐, 그 독사들은 그대로 둬.”고개를 돌린 온사가 물었다.“사부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내가 안 왔으면 네가 나 몰래 이렇게 큰 일을 치르고 있을 줄도 몰랐잖니.”막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온사를 쏘아보았고 온사는 괜히 찔려서 어깨를 움츠렸다.사부는 밖에서 그녀와 사구의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이었다.온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사부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작정하고 숨긴 게 아니라 확실해지면 사부님께 말하려고 했어요!”“정말이니?”막수 사태는 못 믿겠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온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저도 출가인입니다, 사부님!”“하, 말은 잘해.”막수는 냉소를 지으며 온사에게 말했다.“일단은 믿어주도록 하마. 허나 삼일 후 나도 너와 같이 가겠다.”“그건 안 돼요, 사부님!”온사는 당황하며 막수를 말렸다.“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상대가 몇이나 데리고 나올지도 모르고 그쪽에서 만약 사람이 많이 오면 한바탕 피바다가 될 거예요. 사부님은 출가인인데 어찌 그런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그럼 넌 출가인이 아니고?”
미리 대비를 해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그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나에 대한 정보를 대체 누가 줬을까?”중년 사내는 위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배신자는 빨리 제거해야 해서 말이야.”온사는 당연히 이 시점에 김사도를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주인이 워낙 겁쟁이라 좀 겁만 줬을 뿐인데 전부 말하더라고. 그걸 꼭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알아?”“쯧,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군.”사구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그런데 참 궁금하단 말이야. 고결하신 성녀 전하는 대체 우리 아가씨한테 어떤 식으로 겁을 줬을까?”능글맞게 웃는 그의 눈매에서 위협이 느껴졌다.하지만 온사에게는 저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도 많아서 말이야. 궁금하면 너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난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성녀 전하의 시련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본론부터 얘기하지.”사구는 손을 뻗더니 소매 안에서 고급 소재의 헝겊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성녀 전하, 이게 뭔지는 알고 있지?”온사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것은 사망하신 어머니께서 입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온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좋아. 어디 네 얘기 한번 들어보지.”그녀는 소매를 만지는 척하며 공간 안에서 뭔가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피 묻은 머리카락이었다. 딱 봐도 억지로 잡아당겨 뽑은 것으로 보였다.사구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온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물건으로 날 협박하려 하지 마. 네가 어머니를 완전한 상태로 돌려준다면 너희의 아가씨도 무사할 테니까.”물론 지금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손발가락 그대로 붙어 있으니 완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사구는 냉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호통쳤다.“이런 식으로 나에게 협박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어!”“그건 예전이고 지
“뭐라고?”온자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는 그런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말했다.“거래 안 한다고. 알아들었어? 내가 다시 말해줘?”“온사, 너!”온자월이 온사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검은 인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놀란 온자월은 품에 간직한 비수를 꺼내려 했다.하지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추월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추월은 주먹으로 온자월의 얼굴을 쳤다.퍽!온자월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그가 일어나서 반격하기도 전에 추월은 그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너… 넌 누구야? 감히 진국공가의 공자에게 무력을 휘두르다니!”온자월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신분으로 추월에게 겁을 주려 했다.온사는 그런 그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추월이 고개를 숙이고 온사의 뒤에 섰을 때에야 온자월은 상황을 눈치챘다.“이 아이는 내 사람이야. 뭐, 불만 있어?”온사는 바닥에 쓰러져서도 소중히 연을 감싸고 있는 온자월을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아들이 원수의 딸을 구한답시고 친히 만들어준 연을 거래 조건으로 들고 나온 걸 어머니가 아시면 참 후회하실 거야.”“원수의 딸이라니! 또 무슨 헛소리야!”온자월은 바닥에 쓰러져 몸도 못 일으키면서도 언성을 높여 말했다.“참, 내 정신 좀 봐.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온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생전에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어. 네가 불효자인 걸 아셨어도 후회는 없으셨을 거야.”말을 마친 온사는 온자월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온자월 너는 후회 안 해?”온자월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 넌 나와 막내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 하지만 착각하지 마. 혈연을 떠나서 막내는 내 동생이야!”“그래? 진실을 알게 되는 날에도 그 말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게.”그 말을 끝으로 온사는 수월관으로 돌아가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온자월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그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온사는 그가 뭐 하러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녀는 온자월이 대체 뭘 갖고 왔을지 궁금했다.밖으로 나가서 온자월이 들고 있는 연을 보자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연까지 가지고 왔네?”온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이 연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나도 쓸데없는 말 안 할게. 너 어머니의 물건을 원하잖아? 이 연을 너에게 줄게. 당장 막내를 풀어줘.”온사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온모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걔를 위해서 어머니까지 버릴 생각이야?”“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야!”그 말을 들은 온자월은 곧바로 반박했다.“네가 막내를 납치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의 물건을 꺼낼 일도 없었어!”온사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결국 어머니와 외부인 둘 중에 외부인을 택했다는 거잖아!”“헛소리하지 마!”온자월은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막내는 외부인이 아니야. 외부인은 너지! 잊지 마, 넌 이미 진국공가의 딸이 아니야. 진국공가의 딸은 막내 한 명뿐이야. 걔가 내 동생이라고!”“그래! 양심도 없는 놈. 역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끼리 잘 어울리네. 원래부터 너희가 일가족이었나 봐!”온사는 눈을 부릅뜨고 온자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금 누굴 욕한 거야?”온자월도 눈을 부릅뜨고 온사를 노려보았다.“온사, 내가 너한테 주먹을 못 휘두른다고 함부로 막내 욕하지 마!”온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나한테 주먹을 휘둘러? 참 대단하네. 경성의 사내들 중에 여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너!”온자월은 발끈하며 온사에게 다가가려다가 손에 든 연을 놓칠 뻔했다. 그는 뒤늦게 연이 괜찮은지 살펴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온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연을 외부인인 나에게 갖고 와서 거래를 하자는 사람이 뭘 그렇게 긴장해?”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이걸 소중히 보관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온자월은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연 하나를 꺼냈다.이것은 그가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연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것을 꺼낸 적 없었다.오늘에 와서야 이것을 꺼내보지만 목적은 좀 달랐다.“분명 온사가 막내를 숨겨뒀을 거야. 온사가 막내를 풀어주게 하려면 걔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밖에.”온사가 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온자월은 잘 알고 있었다.온사는 출가하러 수월관으로 떠날 때도 그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를 가져간 사람이었다.나중에는 온자신을 갖고 그들을 협박하여 어머니의 혼수품까지 모두 챙겨갔다.그래서 이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물건은 별로 많지 않았다.이걸 온사에게 내어주기엔 너무 아깝지만 막내가 온사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온사는 막내가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고 있지 않은가! 빨리 막내를 구해내지 않으면 명성이 더럽혀질 것 같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세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막내만 구출하고 어떻게든 이 연은 다시 돌려받을게요.”온자월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그는 연을 들고 말에 올라 남산 쪽을 향해 달려갔다.그가 경성을 나간 후, 진국공부.“국공 어르신, 셋째 공자께서 외출하셨습니다. 성녀를 찾아간 것 같아요.”침상에서 휴양 중이던 온권승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집사가 재빨리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온권승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뭐 하러 가는지는 말이 없었고?”집사가 답했다.“셋째 공자께서는 손에 연 하나를 들고 나가셨습니다. 다른 건 소인도 모릅니다.”“연을 갖고 나가?”온권승은 잠시 기억을 회상하다가 집사에게 물었다.“제비 모양의 연 말이야?”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맞습니다. 크지 않고 자그마한 어린애용 연 같았습니다.”온권승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온자월이 뭐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았다.“됐어. 갈 테면 가라고 해. 수월관에 침입하지 못하도
그러나 김사도는 사구와 그저 몇번 지나치다 본 사이라고만 했다.말투나 표정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온사는 일단 제쳐두기로 했다.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옥패 공간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구가 찾아올 것을 미리 대비해 두기로 했다.그 시각, 경성 진국공부.“그럴 리 없어요. 막내가 그런 짓을 했을 기 없잖아요! 분명 온사 그 계집애가 막내를 모함하는 걸 거예요!”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완전히 실망한 온장온은 어머니의 무덤이 도굴당한 일을 두 동생에게 알렸다.두 사람의 반응은 무척 격했다. 하지만 온장온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지금 그게 중요해? 먼저 어머니의 시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니야?”“당연히 알죠. 하지만 형님, 온사가 막내를 모함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온자월은 격분해서 온장온에게 언성까지 높였다.온장온의 표정도 순간 차갑게 변했다.“온사가 이런 일로 장난칠 애로 보여? 잊지 마! 걔도 우리처럼 어머니의 자식이야!”“형님!”온자월은 실망한 눈으로 온장온을 바라보며 따져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막내는 우리와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의심해도 된다는 거예요?””내가 언제 그렇다고 했어? 셋째야, 내 말을 왜곡하지 마!”“제가 왜곡을 했다고요?”온자월은 냉소를 짓고는 온옥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그럼 넷째에게 물어보세요. 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형제는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옥지에게 고개를 돌렸다.온옥지는 담담히 말했다.“큰 형님, 어머니의 시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라고 초조한 마음 이해요. 하지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돌아온 막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얼마나 속상하겠냐고요?”온자월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온장온은 한숨이 나왔다.그는 이 둘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어쩌면 매번 막내와 연관된 일에 한해서는 그랬던 것 같았다.예전의 그 역시 막내의 편에 섰기에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최근에 그놈을 만났어?”온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놈이 나한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갔어. 그래서 놈을 찾고 있어.”김사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온모가 시킨 거겠지. 그 인간 평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해. 나도 몇 번 마주친 게 다라고. 사구의 다른 무리는 본 적도 없어.”“그렇게 은밀히 행동해?”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김사도가 말했다.“놈들을 찾자면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구는 곧 나타날걸.”온사가 흠칫하며 물었다.“온모가 내 손에 있기 때문에?”“맞아. 놈들은 온모가 변을 당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조심해. 내 해독제를 만들어내기 전에 죽지 말라고.”말은 그렇게 해도 김사도는 꽤 신이 난 표정이었다.온사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너도 조심해야겠지.”“내가 왜 조심해? 난 어차피 온모에게 조종당하던 허수아비일 뿐이야. 지금은 온사가 너에게 잡혀가고 내 통제권이 너한테 넘어간 것일뿐. 한낱 허수아비일 뿐인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김사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모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 넌 이미 내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사실을 말해주지. 온모의 몸에서 수색한 처방전을 보고 감히 확신하건대, 이 대명왕조에서 나를 제외하고 너희들의 해독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김사도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처방전을 훼손한 거야?”“그거도 그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자세한 원인은 지금은 말해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너희는 영원히 해독제를 못 구할 거라는 것만 명심해.”“정말 너무하네.”김사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이제 동맹이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그런 것도 얘기 못해줘?”“미안하지만 나한테 동맹과 친구는 달라. 동맹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거든. 그러니 넌 내 친구가 아니야.”온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김사도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나 상처 받았어.”“그래. 그
“쿨럭… 처리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해서… 시신은 사구한테 있어.”온사가 온모를 납치하던 날에 온모가 사구를 시켜 무덤을 도굴하게 했다는 얘기였다.온사는 만약 추월이 그날 온사를 납치해서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시신은 진작에 온모의 손에 훼손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사구는 누구야?”“모… 몰라. 난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그 사람들? 온모의 배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온사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환각제를 먹고도 상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김사도 무리처럼 온모의 어미 백초유가 미처 온모한테 알려주지 못하고 남기고 간 사람들일 것이다.‘아니면 온모의 배후에 비밀의 존재가 있거나.’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온사는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은 후에 바로 온모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놈은 어디 있어? 너희는 어떻게 연락해?”“나도 걔가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났어.”말을 마친 온모는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환각제의 약효가 끝난 것이다.온사는 싸늘한 눈으로 온모를 내려다보았다.“네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나타난다라….”‘그렇다면….’방법을 떠올린 온사는 온모를 끌고 가서 다시 철장에 가두었다.그러고는 김사도에게 서신을 보내 속히 수월관으로 오라고 했다.다음 날, 김사도는 저녁 무렵에 온사의 처소 앞에 나타났다.“무슨 일인데 이리도 급하게 사람을 불렀어? 고귀하신 성녀 전하께서 내가 그리웠나?”그는 늘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굴었다.온사는 한심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아, 알았어. 내가 안 보고 싶었나 보네. 그럼 내 해독제 연구에 진전이라도 있는 건가?”김사도는 온사의 옆으로 다가가서 싱글거리며 질문을 던졌다.“진전은 있어. 온모의 몸에서 네가 말한 해독제 처방을 찾았거든.”김사도는 순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성녀가 보기에 그 처방 어땠어? 만들어낼 수 있어?”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물론 온사는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