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뒤, 온사는 그 당시 폐하의 서재에 서있었다.그녀가 왕궁으로 들어온 과정은 아주 간단하고 쉬웠다고 할 수 있다.그녀의 손에 아직 어머니가 물려주신 부적, 선왕께서 친히 내리신 어명이 있었다.전생에 그녀는 곁에서 시중들던 노비, 즉 춘향이에게 이 어명을 도둑맞고 춘향이는 그것을 온모에게 가져다주어,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다행히 다시 태어난 이번 생에서 어명은 아직 도둑맞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 선왕의 어명으로 이 젊은 폐하 앞에 설 수 있었다.“신녀 온사, 폐하께 인사드리옵니다.”“온사? 짐의 기억이 옳다면 넌 진국공의 다섯째 여식이구나, 맞는가?”어안 뒤에 앉아있던 왕은 조서를 내려두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온사를 한 번 보았다.폐하는 선왕의 아홉째 아들이었고, 즉위 때는 겨우 열한 살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겨우 열다섯 살 정도였다.비록 온사와 나이가 같지만 용포를 입은 그는 온몸의 기운이 굉장했고, 심지어 알 수 없는 압박감까지 느껴졌다.온사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네, 폐하 말씀대로 그 신녀가 맞습니다.”“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궁에 오다니, 혹시 온씨 가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왕은 궁금하다는 듯 그녀를 보고 말했다.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말투가 마치 그녀의 뜻에 관심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보아하니 어제 온씨 가문의 성년식에서 있던 사건이 이미 폐하의 귀에 들어간 것 같았다.그래서 폐하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온씨 가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 그녀였다.그녀는 뭘 하고 싶은 걸까?“폐하의 보살핌 덕에 온씨 가문은 항상 평안하고 무사했습니다. 다만 신녀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폐하께 은혜를 구하러 왔습니다.”흥미진진하던 왕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좋다. 짐에게 말해보거라. 무슨 부탁이더냐?”온사는 가볍게 말했다.“신녀 출가하여 여승이 되고자 하옵니다. 폐하께서 도와주십시오.”“출가를 하겠다고?”왕은 깜짝 놀랐다.그는 온사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왔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
됐다. 누구의 몫이든, 기회만 있으면 된다.“명을 내리시옵소서, 폐하.”온사가 정중하게 말했다.왕은 몸을 일으켜 온사의 앞까지 가서 어명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최근 몇 년 간 나라 남쪽에서 천재지변이 끊이질 않아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어, 짐의 근심이 깊다. 그리하여 국가와 백성을 위해 진심을 다해 기도할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신녀 하겠사옵니다!”온사는 바로 하겠다고 했다.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네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경성 근처 남산 수월관의 관주가 덕망이 높고 덕을 많이 쌓은 스승이다. 만약 스승께서 동의하신다면, 짐도 동의하겠다.”“네, 폐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감사하기엔 아직 이르다. 만약 스승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짐도 네게 도움을 줄 수 없다.”말을 마친 왕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가거라. 짐이 소식을 기다리겠노라.”지금의 온사에게는 이미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아무리 험악하고 위험하더라도 온씨 가문을 떠나야만 했다.온사가 물러가겠다 하며 돌아섰을 때, 왕이 갑자기 다시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시.”온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그녀의 이런 표정을 본 왕은 더더욱 복잡해진 눈빛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남산으로 가는 길이 멀다. 만약 바로 가려거든 덕자에게 마차를 준비하라 하겠다.”이 말을 들은 온사는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감사합니다, 폐하. 그럼 덕공께서 고생하시겠네요.”“아닙니다. 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죠.”온사가 떠난 뒤, 왕의 뒤에 있던 내시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온씨 아가씨, 아프신 것 같사옵니다”혈흔이 가득하고, 상처가 가득한 것이 딱 봐도 곤장에 맞아 새로 생긴 상처였다.위대한 진국공 정실의 딸인데, 만약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녀가 이렇게 맞았다는 것을 누가 감히 믿을 수 있겠는가?어쩐지 출가하여 여승이 되겠다면서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니.정말 불쌍하구나.왕은 그저 담담
얼마 전,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온사는 서재에서 잠시 무릎을 꿇고 있었을 뿐인데, 일어날 때 조금 어지럽고 눈이 침침했다.하지만 그녀는 폐하 앞에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 강제로 버텼고, 원래 마차에서 쉴 생각이었지만, 서재에서 막 나오자 눈앞이 깜깜해져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덕공의 ‘섭정왕 전하’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부딪혔다.섭정왕?부축을 받은 온사는 매섭게 자신의 혀를 물었다. 고통으로 머릿속이 훨씬 맑아졌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부축한 사람이 누군지 보았을 때, 차갑고 비할 데 없는 아름다운 얼굴에 그녀는 깜짝 놀라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명나라 전체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은발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바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명나라의 전신, 섭정왕 전하 북진연이었다.“신녀 예의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섭정왕 전하.”온사는 급히 몸을 똑바로 세우고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말했다.그녀는 섭정왕의 살신이라는 이름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명나라가 지금처럼 평안할 수 있는 것은 다 전하의 덕분이었다.그저 예전에 섭정왕 전하는 여인이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경성으로 돌아오기 전, 오는 길에 만난 관료들이 북진연에게 여인 몇 명을 보냈지만, 다음 날 그 여인들은 모두 죽었다. 심지어 모두 손이 잘린 채였다.듣기로는 여인들의 손이 섭정왕 전하에 닿아서 그가 베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아무리 소문은 믿을 수 없다지만, 지금 온사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북진연에게 용서를 구했다.다행히 전하의 안중에 그녀는 없었고, 그저 담담히 그녀를 훑어보고는 그녀가 똑바로 서자마자 손을 거두고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서재로 향했다.온사는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역시 전하는 여인을 싫어하시는구나, 나중에 또 만나면 아무래도 조금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겠어.하지만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켜 덕공과 함께
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막수 스승님도 엄청 까다로우십니다. 짐이 보기에 그 아이는 크게 실망하고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왕이 온사에게 들게 한 시험은 쉬워 보였지만, 막수 스승님을 만나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수월관의 막수 스승은 고집불통이었다.왕은 물론, 선왕도 그녀의 앞에서는 체면을 조금도 챙길 수 없었다.그녀가 만약 온사가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온사에게도 기회는 없다.그래서 왕은 온사가 수월관에 가면 분명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이 일로 그녀가 출가하여 여승이 되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결국 그 역시 란 고모의 딸이 여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북진연은 그 아이가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 여전히 몸에 입은 상처들로 고통스러워 하긴 했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자리를 뜨는 모습을 떠올렸고, 왕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온사는 이때까지도 그녀가 얻은 이 기회에도 희망이 크지 않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포기할 리 없었다.마차에서 온사는 덕공이 따로 준비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덕공은 진작부터 그녀의 상처를 눈치챘고, 약 한 병과 붕대도 조금 챙겨 주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상처가 등 뒤에 있어 온사는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조금 뒤, 공간에 있던 시냇물을 담은 작은 병을 꺼냈다. 상처를 씻어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그대로 마셔버렸다.이 시냇물은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 주니, 분명 그대로 마셔도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이다.그녀는 이제 상처가 너무 빨리 아물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은 멀쩡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역시 온사가 예상한 대로, 아주 조금만 마셨을 뿐인데, 우울하고 무겁던 머릿속이 마치 맑은 바람에 먼지가 날아간 듯 금방 상쾌해졌다.온사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염탐을 시작했다.그녀는 수월관의 그 스승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폐하가 알고
“스승님과 제 아버지요?”온사는 이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덕자는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왼쪽의 햇살을 즐기며 온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일은 말하자면 재밌습니다. 예전에 막수 스승님께서는 하산을 하지 않으셨고, 수월관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태어나신 해에 막수 스승님께서 사람을 시켜 진국공 저택에 선물을 보냈고, 외부 사람들은 그제야 세상사에 관심 없던 막수 스승과 진국공 저택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사람들은 진국공 어르신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뒤로 막수 스승님은 더 이상 진국공 저택과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진국공 부인의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뜨던 날까지요. 그날 막수 스승님께서는 급히 하산하시어 진국공 부인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장례를 치른 뒤, 막수 스승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진국공께 양심이 없다며 욕을 퍼붓고 그의 부인에게 미안하니 앞으로 다시는 진국공 저택의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그제야 외부 사람들은 알게 되었죠. 알고 보니 막수 스승님께서 오래 알던 사람은 진국공이 아닌 국공 부인이었다는 것을요.”덕자가 묵묵히 얘기했다.“아가씨, 어머니와 막수 스승님께서는 확실히 오래 알고 지내셨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는 진국공의 딸이기도 하시니 막수 스승님께서는 아가씨 체면을 살려주지 않으실 겁니다.”“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온사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그녀는 수월관의 관주인 스승이 온씨 가문과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상상도 못했고, 그게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이 일은 그녀의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온사는 입술을 문지르며 말했다.“덕공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기왕 이렇게 된 거, 그녀도 수월관에 가봐야 한다.마차는 한참을 흔들거리며 남산에 도착했다.덕자는 온사를 수월관 앞까지 바래다주고 말했다.“아가씨, 들어가세요.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자군은 그녀의 어머니 별명, 란자군을 뜻하는 것이었다.막수 스승과 그녀의 어머니는 정말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온사는 상대방이 자신을 어머니라고 착각했다는 것을 알고 살짝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추었다.“소녀 온사, 막수 스승님을 뵙습니다.”막수 스승은 멈칫했다.그녀는 순식간에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고, 난초를 안은 채 뒤로 돌아 안뜰의 다른 방향으로 갔다.그곳에는 다양한 난초가 놓인 나무 선반이 있었는데, 그 위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품에 있던 것은 아마 손질을 한 것 같았다. 막수는 난초를 올려둔 뒤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맨 처음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여기는 대전이 아닙니다. 참배를 하시려면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온사는 안타까웠다.역시 이 스승은 온씨 가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이 말은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람을 쫓아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스승님, 오늘 소녀는 참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일로……”“참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면, 시주께서는 돌아가 주시지요. 수월관은 경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머물 곳이 못 됩니다.”막수 스승은 온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아쉽지만 그녀도 오늘 목표를 달성하기 전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온사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스승님 소녀에게 시간을 조금만 내어 주십시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최소한 소녀가 이곳에 온 사유만이라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하지만 막수 스승의 태도도 아주 단호했다.“시주께서 무슨 연유로 오셨든, 여승은 듣고 싶지 않고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심지어 그대로 뒤돌아 가버렸다.온사가 가지 않으니 그녀가 가는 것 같았다.온사는 어쩔 수 없이 급히 월동문의 앞을 가로막고 빠르게 말했다.“저도 스승님께서 온씨 가문과 어떠한 관계도 맺고 싶지 않으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온씨 가문의 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온
온사는 멍해졌다.그녀는 스승의 화난 얼굴을 보며 속에서 우러나온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의 생일은 두 달 뒤가 맞다.만약 온모라는 예외가 없었다면, 규정대로 두 달 뒤에야 그녀의 성년식이 진행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온모의 ‘언니랑 같이 성년식 하고 싶어’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은 그녀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강제로 두 달을 앞당겨, 온모의 생일인 어제 그녀와 함께 성년식을 치른 것이었다.이게 바로 그녀의 좋은 아버지, 좋은 오라버니들이다.하지만 온사가 다시 태어난 뒤로, 그녀는 예외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그러나 온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은 막수 스승이 그녀의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덕공의 말을 듣고 온사는 막수 스승님이 예전에 그녀가 태어났을 때 진국공 저택에 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 어머니와 막수 스승님 간의 우정은 아주 깊었을 것이다.“스승님 노여워 마십시오. 작은 일로 크게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온사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풀어지며 좋게 타일렀다.“겨우 성년식일 뿐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온씨 가문에 머무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도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스승님께서도 저희 아버지께서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니, 진국공 저택의 체면을 위해 저를 온씨 가문에서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궁으로 가 폐하께 도움을 청했고, 스승님께서 고개만 끄덕여 동의해 주시면 저는 출가하여 여승이 되어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온사가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막수 스승도 이번엔 그녀의 말에 마음이 동해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 밖이었다.“안됩니다.”막수 스승의 눈에 안타깝다는 눈빛이 스쳤지만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단호했다.어쩌면 아까보다 더 단호해진 것 같았다.온사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그러십니까?”“왜는 없습니다.”막수는 정색을 하며 돌아섰다.그리고
그녀는 막수 스승님의 말을 듣고, 갑자기 이 난초가 그녀의 두 생에서 처음 받은 축복의 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작은 난초를 정신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이 난초는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딱 봐도 평소에 정성껏 돌본 것 같았다.그녀는 뜰에 있던 다른 난초들은 모두 이 난초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런데 막수 스승님은 왜 이렇게 난초를 많이 심으시고, 또 가장 좋은 것을 그녀에게 주었을까?그저 난초를 좋아해서?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난초…… 난, 란자군……설마 어머니 때문에?온사는 갑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라 깜짝 놀랐다.스승님과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그 당시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온사는 정확히 알고 싶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말했다.“덕공님, 마차를 세워주세요.”돌아가는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마차를 세웠을 때는 이미 남산의 아래쪽이었다.온사는 난초를 끌어안고 다시 마차에서 내렸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눈앞의 산길을 보았다. 아주 높았다.“아가씨 수월관에 두고 오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덕자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온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그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고 싶어서요.”막수 스승님께서 무엇을 위해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님과 어머니의 관계가 아무리 좋았어도, 그녀는 죽어도 온씨 가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덕공님 죄송하지만 이 난초를 가지고 여기서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그녀는 난초를 건네고 웃으며 말했다.“이번엔 제가 반드시 스승님의 동의를 받아오겠습니다.”덕자는 처음엔 온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손에 있던 난초를 받아들고 그녀를 다시 설득할지 생각하던 중, 온사가 돌아서서 남산의 정상에 있는 수월관을 향해 가녀린 몸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이 보였다.덕자는 경악했지만 그녀는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일어나 한 걸음 걷고 다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아가씨
밭을 확인한 그녀는 활짝 웃으며 냇물을 길어 밭에 물을 주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옆에 있던 회춘초에 어느새 꽃봉오리가 피어 있었다.온사는 웃으며 꽃들을 쓰다듬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그녀는 약초를 지날 때마다 약재대전을 꺼내 일일이 대조를 했는데, 그러다가 또 한 약재가 눈에 들어왔다.약재대전에서 다른 약재들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있었지만 유독 이 약초만 대략적인 모양과 이름, 출처를 제외하고 효능에 대해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서홍화, 먼 타국에서 나는 약초라….”온사는 재차 대조한 후에야 이 약초가 서홍화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효능을 알 수 없어 아쉬웠다.‘한번 먹어봐?’온사는 호기심에 그런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독성이 있는지도 모르잖아.’만약에 강한 독성을 가진 약초라면 그걸 먹고 저 세상 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그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막수 사부께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며칠 후, 온씨 가문에서 또 사람을 보내왔다.이번에는 온모가 아니었다.그녀도 혼자 온사를 찾아오면 물을 맞거나 매를 맞는 결과밖에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번에는 온자월과 함께 왔다.온장오는 조정에 나가야 하고 온자신은 옥에 있고 온옥지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같이 올 수 있는 사람은 온자월뿐이었다.마침 아침 수업을 하고 있던 온사는 사저의 전갈을 듣고 손을 저으며 사저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기다리기 싫으면 말라고요.”어차피 급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사저는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두 사람에게 전했다.수월관 밖에서 기다리게 된 온모와 온자월의 표정을 좋지 못했다.기도 의식이 이미 끝났기에 수월관은 대문을 열고 손님을 받고 있었고 산기슭의 흑기군도 철수했다. 손님들과 신도들은 평소처럼 수월관으로 들어와서 참배하고 향을 피울 수 있었다.온자월은 수월관에 와본 횟수가 적어서 거절당한 경험도 거의 없었기에, 기다리라는 말에 짜증스럽게 말했다.“금방 입관한 막내 여승이 무슨 할 일이 그렇게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회춘초는 내가 알아서 찾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눴던 대화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절대 안 된다.”북진연은 눈을 감고 턱을 매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간도 크지. 이렇게 큰 비밀을 제대로 감추지도 않고 말이야.’고요 일행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살폈다.임자부는 북진연의 표정을 살피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왕야, 설마 그분에게 회춘초의 행방을 알아볼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북진연이 질문에 답하지 않자, 임자부는 그의 속셈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다급히 말했다.“하지만 왕야, 병세를 오래 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간을 길게 끌수록 발작의 빈도가 잦아지고 점점 힘들어질 겁니다. 회춘초가 코앞에 있는데 왜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겁니까?”“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단 회춘초만 확보하면 마지막 서홍화만 찾으면 모든 약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왜 주저하시나요?”고요 일행도 임자부의 말에 동의했다.“왕야, 어쨌거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왕야의 치료 아니겠습니까!”북진연은 부하들의 심정을 이해했다.하지만 수월관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를 생각하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그렇긴 하지만 두 가지 약재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서홍화를 찾지 못하면 쓸모없는 일 아니냐.”그 말에 임자부와 부하들은 입을 다물었다.북진연의 말처럼 백년 자령지와 회춘초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만 세 번째 약재인 서홍화는 임자부가 선배들이 남긴 고대 의술 서적에서 본 것이었고 그것에 대해 들어보거나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줄곧 바다에서 바늘 찾는 식으로 온 나라를 뒤지고 다녔다.“됐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북진연은 기가 푹 죽은 부하들을 보며 담담히 위로를 건넸다.그러자 임자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북진연까지 이렇게 말하는데 더 이상 재촉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한번 결정한 일을 번복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임자부와 고요가 방
그의 속셈을 꿰뚫어본 북진연이 담담히 말했다.“그 사람이 의술을 배우는 중인 건 맞지만 진짜 배우고 싶은 건 독이야. 영감은 독학에 대해 알아?”“독이요… 제 전문은 아니지만요, 조금은 알죠?”독 얘기가 나오자 임자부는 금세 시무룩해졌다.비록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소문난 의술의 성자이긴 하지만 독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다.“독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귀의 독왕 그 녀석이 있겠군요.”독왕과 의술을 비긴다면 그가 이길지 몰라도 독은 아니었다.“안 그래도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귀의 독왕 그 녀석이 경성에 있다고 하더군요.”임자부는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듯 무심코 한마디 했다.그러자 북진연이 물었다.“그자와 연락이 닿을 방법은 있고?”“저 그 녀석이랑 안 친합니다.”북진연이 물었다.“그럼 전에 의술 시합은 어떻게 했지?”“제가 도전장을 써서 거리에 붙여 놓았는데 마침 귀의가 그걸 보고 일년 안에 누가 사람을 더 많이 살리는지 내기하기로 했지요. 결국 제가 상대보다 열 명을 더 살렸고요.”“도전장이라...”잠시 고민하던 북진연은 이내 고요 일행에게 지시했다.“사람을 보내 귀의 독왕의 행방을 알아보거라. 못 찾겠거든 임자부의 명의로 도전장을 써서 붙여.”“예, 알겠습니다!”“저는 반대예요! 제 동의도 안 받으셨잖습니까!”“항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북진연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말했다.임자부는 홧김에 그를 향해 눈을 한번 부릅뜨고는 백년 자령지에 시선을 돌렸다.그런데 이때, 자령지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던 임자부의 표정이 순간 급변했다.“잠시만요!”문턱을 나서던 고요 일행이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임자부는 자령지를 코에 대고 계속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는데, 북진연이 짜증을 내려던 순간, 그가 갑자기 흥분의 비명을 질렀다.“회춘초입니다! 여기에 회춘초의 향기가 묻어 있어요!”백년 자령지도 진귀한 약초지만 그것에서 두 번째로 찾고 있던 진귀한 약재의 향을 맡았을 때 임자부는 더욱 더 흥분을
“아이고 이른 아침부터 대체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정신 차리고 이것부터 좀 봐주세요!”새벽에 섭정왕부의 하인에 의해 끌려온 임자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나무 상자 안의 물건을 확인하고는 잠이 확 깨기라도 한듯 놀라했다. “세상에나! 이건 자영지 아닙니까!”그러자 임자부는 곧바로 조심스럽게 영지를 꺼내들었다.“최상급 품질이네요! 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해왔답니까?”임자부는 자영지를 가까이 들이대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만 감탄하고 이 자영지가 백년짜리인지나 좀 봐주쇼!”다급해진 고요가 옆에서 재촉했지만, 유독 자리에 앉은 북진연만 덤덤한 표정이었다.임자부는 주저없이 답했다.“당연하지요! 이 크기를 좀 보십시오! 백년 자영지가 틀림없습니다!”“너무 잘됐네요!”그러자 고요와 부하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왕야! 이것이 정말 백년 자영지가 맞답니다!”“이제 다 됐네요. 왕야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했던 세 가지 약재 중에 한 가지를 찾은 것 아닙니까!”“게다가 이렇게 쉽게 구하다니!”북진연은 살짝 놀란 얼굴로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는 빈 상자를 빤히 보다가 그날 담담하게 선물을 건네던 온사를 떠올렸다. 그녀에게서 이런 큰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임자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북진연에게 물었다.“왕야, 이 백년 자영지는 누구한테서 받은 것입니까? 신선한 정도를 보니 금방 딴 게 분명합니다.”임자부는 북진연의 부하가 캐왔다고 생각해, 만약 약재를 캔 장소만 알아낸다면 어쩌면 횡재할 수 있겠다고 기대하며 손을 비볐다.“꿈 깨. 그건 내 부하가 캔 것이 아니다.”그러자 북진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임자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예? 그럼 누가 캔 겁니까?”임자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북진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누가 나에게 선물로 주더군.”“선물이요?”임자부는 순간 아쉬운듯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기에 이런 보물을 선물한답니까!”본디
온모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온사가 자신도 몰랐던 정곡을 찔렀으니 말이다. 그녀는 독기 어린 눈으로 온사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서 온씨 가문에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거야?”온사도 사실 그럴 생각이었지만 온모가 편하게 살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온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상황을 봐야겠지.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되면 돌아가서 진국공부의 적녀의 신분으로 복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적녀라는 두 글짜가 온모의 자존심을 찔렀다.대외적으로 그녀는 온권승이 은인의 딸을 입양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단지 그녀의 어머니가 정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제대로 따지면 온모는 서녀의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그녀는 비천한 사생아에 불과했다.온사의 어머니인 란자군의 이름을 족보에서 지우고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써넣지 않는 한은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영원히 온사를 뛰어넘어 진국공부 적녀가 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전생의 온모가 죽은 온사의 어머니를 괴롭혔던 이유기도 했다.“꿈 깨!”온모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치며 잔뜩 분노한 눈으로 온사를 노려보았다.“가문에서 나갔으면 다신 돌아오지 마!”온사의 말은 일부분 사실이었다. 그녀는 온사를 집에 다시 데려다가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두기를 원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온사는 이미 예전처럼 그녀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보다는 밖에서 해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온모의 눈빛에 살기가 스쳤다.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는 등 뒤가 무엇인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돌린 온사의 눈에는 막수 사태와 다른 사태들의 싸늘한 눈동자가 들어왔다.“이곳은 수월관 승려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입니다. 함부로 침입하지 마시지요.”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흉악한 모습을 들켰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온모는 처음부터 이 여승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래서 곧바로 표정을 수습하고는 온사에게 미
“수상한 여자?”온사는 멈칫하며 되물었다.“사람들과 같이 오고 있어?”“아니요.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온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그럼 넌 일단 숨어 있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고.”“예.”추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온사는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밖으로 향했다.막 대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다.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온사는 가볍게 고개를 비틀어 피하고는 손을 뻗어 상대의 귀뺨을 쳤다.선수를 치려다가 된통 당한 온모는 얼굴을 감싸며 분노해서 소리쳤다.“온사, 네가 감히 나를 쳐?”“그래 쳤다. 그래서 뭐?”온사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정말 머리가 안 좋은 건가. 내가 또 말해줘야 해? 내가 널 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말이야.”“너!”분노한 온모가 다시 손을 뻗었지만 온사가 더 빨랐다. 그녀는 바로 상대의 손목을 낚아채고 주저없이 귀뺨을 날렸다.짝!방금 전보다 더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온모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매를 맞은 탓에 볼이 빵빵하게 부어올랐다.온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디 다시 쳐봐. 내가 한대라도 맞나?”진작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전에는 기회가 없어서 못했는데, 그럼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온사는 몇 대 더 때릴까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러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온모가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그녀는 힘겨루기로 온사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화제를 돌렸다.“언니, 어떻게 동생한데 이렇게 할 수 있어? 내가 당장 폐하한테 가서 이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위선자 같으니라고! 네 본모습을 폐하한테 다 까발릴 거야!”“동생?”온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웃기지 마. 내 어머니는 내게 여동생을 낳아주지 않으셨어.”“그래. 같은 배에서 나온 게 아닌 건 인정해. 하지만 그래서 뭐?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은 다들 날 친딸,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챙겨줬어.”온모는 의기양양하게 온사를 도발했다.
오늘의 온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가 태어나기를 성녀로 태어났다고 감탄하며, 앞으로 본분을 다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면 성녀로 존중해 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온사 본인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진짜 성녀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삼촌, 보세요. 짐이 선택한 성녀 괜찮지요?”한편, 어린 황제는 조정의 대신들과 백성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그는 점점 더 온사가 마음에 들었다.처음에는 그저 기회를 준 것뿐이었지만, 그녀가 지금 보여준 모습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폐하의 안목이 참 탁월하십니다.”북연진도 어린 황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동안 온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북연진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기도 의식에 필요한 경문은 총 아홉 장,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전부 암기해서 읊어야 했다.이것이 온사가 급하게 수월관으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했다.다행히도 남은 며칠 동안 막수 사태의 도움으로 그녀는 결국 기도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아홉 장절의 경문을 모두 암기하는데 성공했다.“그런데 나보다 나이도 많은 영감탱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어린 황제는 피식 웃으며 온씨 가문 일행을 힐끗 바라보았다.온자신을 제외한 온씨 가문의 모두가 무대 아래에서 행사를 참여했지만, 온권승은 그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관망대에 올라간 딸을 바라볼 뿐이었다.온장온과 다른 형제들의 표정은 착잡했다. 지금도 그들은 여동생이 성녀이자 여승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리고 온사가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눈빛 한번 안 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분명 가족인데도 그녀는 그들을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대하고 있었다.“온사 쟤는 정말 저렇게까지 우리랑 멀어지고 싶은 걸까?”하지만 온장온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그건 아닐 겁니다.”옆에 있던 온자월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집에서 좋은 것만 입고 좋은 것만 먹으면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온사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사부님이… 독왕이셨다고요? 귀의라고 불리는 독왕이요?”막수 사태가 눈썹을 찡긋했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단다.”대명 왕조에는 두 명의 유명한 의술 천재가 있었다.한명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의성 임자부, 그리고 또 한명은 의술과 독학을 겸비한 귀의 독왕이었다.그들의 명성은 안방에서 곱게 자란 온사마저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중 신출귀몰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귀의 독왕이었는데, 소문에 지금까지 귀의 독왕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그런데 오늘 온사가 그런 인물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신비에 둘러싸인 귀의 독왕이 여승들만 사는 허름한 사찰의 주지 사태인 줄을 누가 알았을까?“그럼 사부님, 정말 저에게 독학을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인가요?”“왜? 싫으냐?”“그럴 리 없잖아요!”온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냥 제가 이렇게 큰 행운을 가졌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요.”안 그래도 직전에 북진연이 믿을만한 스승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일깨워 줬었는데 독왕이 바로 신변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그렇게 대단한 분이 자신의 사부라니!온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지금 기뻐하긴 일러. 독학을 배워주는데 있어서 만큼은 나도 아주 엄격할 거니까.”막수는 온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지금은 먼저 날 따라서 의술부터 배우겠다고 맹세하렴.”“무슨 맹세요?”막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불가에서 해서는 안 될 것 중에 하나가 살생이야. 독을 배우겠다면 그 독으로 절대 살인을 하거나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그러자 온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그녀는 한참의 고민 끝에 막수에게 말했다.“걱정 마세요, 사부. 비록 독을 이용해서 복수할 생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제 신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녀는 출가하여 여승이 되겠다는 이유로 가문을 떠났고 나라를 위해 기도
“이건 섭정왕 전하께 드리는 저의 답례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폐하께 드리는 거예요. 귀찮으시겠지만 섭정왕 전하께서 소인을 대신해 폐하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북진연은 나무 상자를 건네받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렇게 북진연이 돌아간 후, 온사는 다시 경문을 베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필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바로 막수 사태였다! “무우야.”막수 사태는 진지하게 경문을 필사하는 온사를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사부님?”온사가 이내 붓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섭정왕 전하께서 그림자 호위 한 명을 데려왔다지?”“예. 감사히 받았습니다. 제가 추월이라는 이름도 지어줬어요! 그 아이를 만나보시렵니까?”사람을 수월관에 들이는 일은 막수 사태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럴 필요까지 없다. 네 사람이니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막수는 손사래를 치고는 온사가 건넨 찻잔을 받으며 말했다.“이리 와서 앉아 보거라. 내가 너한테 긴히 물어볼 게 있으니.”온사는 찻잔을 내려놓고 사부의 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무슨 일입니까?”막수는 온순한 그녀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너… 최근에 독약을 연구하고 있었니?”온사는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다급히 해독약을 그녀에게 먹여준 사람이 바로 사부였으니 말이다.“예.”온사는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다.막수 사태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불가에 발을 들인 제자는 독을 연구하면 안 되는 겁니까?”막수 사태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그런 건 아니다. 독이라도 잘 쓰면 사람을 구할 수도 있는 거니까.”온사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막수 사태가 말을 이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몰래 독을 연구하는 것은 안 된다.”막수는 엄중한 표정으로 온사를 바라보았다.“그날 자칫 잘못했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하지만 사부님, 저 이미 독경을 손에 넣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