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린의 얼굴이 뜨거워졌고, 그녀는 엄마가 오해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설명할수록 더욱 오해는 깊어지는 법이다. "엄마...유환 씨를 먼저 데려다주고 올게요.” 윤서린은 고개를 숙이고 임유환을 데리고 집을 나서려 했다. "서린아, 유환 씨랑 아침을 먹고 가는 건 어때? 엄마가 위에 좋은 호박죽을 끓였어.” 김선은 친절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아니요, 엄마. 유환 씨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가야 헤요.” 윤서린이 핑계를 대며 말했다. "알겠어, 그럼 나중에라도 아침 챙겨 먹는 걸 잊지 말고.” "알겠어요, 엄마.” "안전 운전하고! 그리고 유환 씨, 시간 되면 자주 놀러 와요.”“알겠습니다 아주머니. 저랑 서린이는 먼저 가볼게요.” "그레."..."후.” 차에 앉아 마침내 엄마의 눈에서 벗어난 윤서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방금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녀의 예쁜 얼굴이 다시 뜨거워졌다."유…유환 씨, 어디 살아요?” 윤서린은 임유환을 쳐다보지 않고 물었다. "청운 별장에 데려다줘.” 임유환도 윤서린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알겠어요.” 윤서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시동을 건 뒤 청운 별장 방향으로 향했다. 차 안의 분위기는 매우 조용했고, 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운전대를 잡은 윤서린은 손바닥에 살짝 땀이 맺혀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입가에서 맴돌 뿐이었다. 임유환도 마음을 졸이며 윤서린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오해할까 봐 두려웠다.이런 식으로 조용한 분위기가 30분 동안 지속됐고, 반 시간 뒤 차가 청운 별장에 도착했다. 임유환의 눈빛이 움직였고, 윤서린도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말이에요…”“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말이야…” 두 사람은 거의 한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먼저 말해!""그럼 먼저 말할게요!""그래 서린아, 먼저 말해.” 임유환이 어색하게
S 그룹.과거를 회상하는 임유환의 눈빛은 차가웠다.따르릉.이때 시끄러운 휴대폰 벨 소리가 그의 생각을 중단시켰고, 휴대폰을 꺼내보니 낯선 번호였다. 임유환은 스팸 전화라고 생각하고 바로 전화를 거절했지만, 곧 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 임유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잘못 거셨습니다.” 임유환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 "임유환, 정말 네 목소리네…”이때 상대방이 말을 꺼냈고, 여자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매우 공허하며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임유환은 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서인아, 바로 그녀였다."7년이 지났는데, 잘 지냈어?"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응, 잘 지냈어."임유환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네가 이런 태도로 말할 줄 알았어.” 여자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더해졌고, 임유환은 대답하지 않았다."7년 동안 널 찾느라고 고생했어.”그 여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고, 서늘한 말투에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하하, 그래."하지만 임유환은 그저 차갑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고, 여자는 그의 반응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유환아, 나 내일 S 시에 가는데, 한 번 볼 수 있을까?” “만나자고? 우리가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유환아, 난…” "서인아 씨, 당신은 지금 연경 제일의 명문가인 S 그룹의 천금 같은 아가씨이고, 난 몰락한 가문의 도련님인데,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나면 당신 눈을 더럽힐까 봐 두렵네.” 임유환의 말투에는 약간의 조롱과 자기 비하가 담겨 있었고, 그는 과거 일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임유환, 내 말 좀...""필요 없어, 피차 시간 아까우니 앞으로는 내 삶을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당신이 알고 있는 임유환은 7년 전에 이미 죽었어.”이 말을 한 뒤 임유환은 전화를 끊었다.그는 서인아가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흑제
다음 날 아침, S 시 공항.공항 통로 밖에는 긴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수백 명의 군인들이 총을 메고 현장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밖에는 이미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으며 모두가 팻말을 들고 서인아의 이름을 외쳤다.시간대로라면 서인아는 30분 후에 공항에서 나올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경의 여신을 보고 싶어 했다. 임유환과 윤서린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윤서린은 붐비는 인파를 보자 들떠 있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어요. 서인아는커녕 서인아의 그림자도 못 볼 것 같은데, 저랑 헛걸음을 한 유환 씨는 어떡하죠.” 현재 상황에서 S 시 사람들의 서인아에 대한 열정은 그녀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임유환 역시 서인아의 인기에 조금 놀랐고, 옆에서 걱정을 하고 있는 윤서린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럴 일은 없으니까 일단 따라와.”"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윤서린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응.” 임유환은 미소를 지으며 윤서린을 옆에 있는 특별 통로로 데리고 갔고, 가는 길 내내 막힘이 없이 바리케이드 밖 가장 안쪽에 도착했다. "와, 저희가 맨 앞쪽으로 왔어요! 유환 씨, 정말 대단해요!” 윤서린은 흥분해서 뛰어오를 뻔했고, 감탄을 하며 임유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임유환이 그의 인맥을 이용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제 기분 좋아?” 윤서린의 신나는 표정을 본 임유환의 얼굴에는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네!"그 소리를 들은 윤서린은 곧바로 뒤돌아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곳에는 허유나와 장문호가 서 있었다. "유나야, 문호 도련님.” 윤서린은 여전히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허유나의 안색은 좋지 않았으며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윤서린, 여기가 VIP 구역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우리는......""당신들도 있는데 우리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한 건가?” 윤서린이 말을 하기도 전에 임유환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아 아가씨야, 정말 인아 아가씨라고!” "미쳤다, 왜 이렇게 예쁜 거야!” "인아 씨!!!” 사람들은 즉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유나, 빨리 피켓을 들어서 인아 아가씨가 우리를 볼 수 있게 해!” 장문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허유나는 재빨리 "장안 그룹에서 서인아 씨의 S 시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피켓을 들어 올렸다.그녀 뒤에 있던 장 씨 집안사람들도 손에 있던 피켓을 들고 서인아의 이름을 외치며 그들의 존재를 알리려 했다. "유환 씨, 빨리 봐요. 정말 서인아예요!” 윤서린은 흥분한 듯 임유환의 팔을 잡아끌었고, 그도 시선을 돌렸다.통로 입구에서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서인아가 하이힐을 신고 천천히 걸어 나왔고, 그녀가 나타나자 주변이 순식간에 환해지는 듯했다. 그녀의 눈썹은 숲처럼 짙었고, 연하고 검은 두 눈동자는 호수처럼 매우 잔잔했다. 그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슬만 먹고 자란 요정이었다. 그녀 옆에는 옅은 베이지색 스커트와 검은 테 안경을 착용하고 손에 파일 가방을 들고 있는 개인 비서가 따라왔고, 그녀 또한 뛰어난 몸매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딜 가도 외모로 꿀리지 않을 듯했지만 서인아 옆에 서면 너무 평범해 보였다.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윤서린은 흥분해서 입술을 가렸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서인아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외모와 몸매, 기품 모두 TV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흠잡을 데가 없었다! 어떤 여자라도 그녀 앞에서는 부족함을 느낄 것 같았다…"인아 씨!!!”“인아 씨, 장 장안 그룹에서 인아 씨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장문호와 허유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뒤에 있던 가족들도 소리를 지르며 서인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서인아는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를 듣지 않는 듯했고, 얼음장 같은 눈으로 빠르게 인파를 훑어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옆에 있던 그녀의 비서인 수미가 도도하게 목을
서인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장 씨 가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인아 아가씨가 오잖아, 정말로 오고 있어!” 장문호의 몸은 흥분으로 떨렸고, 허유나도 숨을 참았다.잠시 뒤, 서인아가 바리케이드 앞에 멈춰 섰고 그녀는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며 눈을 살짝 깜빡였다.그 사람은…이미 간 건가…"서…서인아 씨, 안녕하세요! S 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때 장문호의 흥분된 목소리가 서인아의 귀에 들렸고, 그의 얼굴은 흥분해서 붉어졌다.서인아가 시선을 살짝 옮겨 장문호를 바라보았다.딱!장문호는 서인아와 눈이 마주치자 영혼이 얼어붙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갑다, 아주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저 그런 차가움이 아닌, 사람의 영혼을 쪼개버릴 정도의 차가움이었다! 그 차가운 눈빛에 세상의 모든 오물이 얼어붙어 멸망할 것만 같았다. "네.” 서인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미 최고의 긍정인 듯했다. 장문호의 심장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서인아가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해주다니! "안녕하세요, 인아 아가씨.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장문호라고 합니다. S 시의 장안 그룹 사람이며 앞으로 아가씨께서 S 시에서 불편을 겪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이 말을 할 때 장문호는 속마음을 꺼내 서인아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서인아는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비서 수미는 장문호를 바라보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우리 아가씨께서 이런 비좁은 곳에서 불편 따위를 겪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투는 인정사정이 전혀 없었다. "그럴리가요…저는 단지 아가씨께서 S 시로 오셨으니 S 시의 명문가인 장안 그룹에서 당연히 주인의 도리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장문호는 겁에 질려 재빨리 설명했다."네, 비서님. 제 남자친구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이 사람은 단지 아가씨께서
"문호 씨, 들었죠. 인아 아가씨가 나를 기억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 인생은 폈다고요!” 서인아가 떠난 후 허유나는 주먹을 꽉 쥐었고 그녀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어졌다."그래, 나도 들었어!” 장문호는 믿을 수 없었고, 서인아가 허유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이번에 서인아가 큰 프로젝트를 개발하기 위해 S 시에 온 것이 확실한 것 같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S 시의 주요 기업가에 대한 사전 조사와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허유나는 올해 S 시의 10대 뛰어난 기업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게다가 그녀는 가장 어렸기에 서인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서인아가 직접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규모는 짐작을 할 수 없었고, 그는 반드시 이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장문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허유나를 바라보았다."인아 아가씨가 당신을 좋게 보고 있으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해. 그 사람을 실망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는 장안 그룹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허유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호 씨 미안해요, 방금 전에는 내가 말을 잘 못해서 인아 아가씨의 비서를 화나게 했어요. 난 당신을 돕고 싶은 마음에…너무 성급했어요…” "바보야, 나한테 무슨 사과를 하고 그래. 날 도와주려고 했던 거잖아.” 장문호의 말투는 유달리 부드러웠고, 지금 허유나의 가치는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문호 씨가 화 안 났으면 됐어요.” 허유나는 장문호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의 너그러움에 행복해했다. "문호 씨,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허유나가 물었다."응, 돌아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장문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누구요?” 허유나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일 것 같은데?”“임유환?”“맞아.” 장문호가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나는 그 사람이 방금 당신한테 한 말을 마
임유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자신이 언제 이 사람들을 자극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어이, 당신이 임유환인가?” 앞에 있던 대머리 남자가 건들거리며 임유환을 바라보았다. "당신은?"임유환이 물었다. "하하, 보아하니 맞는 것 같네. 얘들아, 잘 모시도록 해!” 대머리 남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예 보스!"그의 뒤에 있던 네 명의 부하들은 그의 말을 듣고 즉시 쇠몽둥이를 집어 들고 임유환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 했다. "유환 씨, 조심해요!” 윤서린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임유환은 무표정으로 손만 살짝 들어 올렸다. "아아..."몇 초 뒤, 네 명의 흉악한 건달들이 배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누워서 울부짖고 있었고, 바닥에 토를 하고 있었다. "꿀꺽!"대머리 남자는 이 광경을 보고 놀라 침을 삼켰다. "누가 당신들을 보냈는지 말해."이때 대머리 남자의 귓가에 임유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고, 대머리 남자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있는 임유환의 얼음장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재빨리 대답했다."저...저는 모릅니다. 그냥... 방금 길가에서 한 젊은 커플이 400만 원을 주면서 저희들에게 본때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젊은 커플?"임유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장문호와 허유나인가?”하지만 그 두 사람이 건달 몇 명을 부르면 본때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임유환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삐용삐용!임유환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다급하게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그의 앞에 경찰차 두 대가 멈춰 서며 제복을 입은 경찰관 4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중에서 리더인 뚱뚱한 남자가 임유환에게 직접 다가와 호통을 치며 말했다. "방금 공항 주차장에서 주먹다짐을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당신들이 맞습니까?” "경찰관님, 저는 피해자이고, 저를 쇠몽둥이로 위협한 건 바로 이 건달들입니다. 바닥에 있는 쇠몽둥이가 증거이고, 저는 정당방위입니다.”임유환이 대답했다
20분 뒤 경찰차가 인근 경찰서에 멈춰 섰다. 임유환은 곧장 취조실에 들어갔고, 두 손을 취조실의 의자에 수갑을 채웠다. 전 뚱보는 차가운 얼굴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 "네가 싸움을 꽤 하는가 보지? 전에 무술을 배운 적이라도 있는 건가?” "조금 연습을 했었습니다, 경찰관님. 이제 상황을 확실히 조사를 다 마친 것 같으니 저를 놓아주시겠어요?” 임유환은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손을 가리키며 정중하게 말했다."가고 싶다고? 여기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덴 줄 아는 거야?” 전 뚱보가 비웃었다."경찰관님, 무슨 말씀이시죠?” 임유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하하, 넌 무리를 지어 싸움을 벌이고 고의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어, 앞으로 몇 달은 구치소에서 보내게 될 거라고.” 전 뚱보가 차갑게 말했다."그래서, 고의로 나한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겁니까?” 임유환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고의로 누명을 씌운 거라고? 말 조심해, 안 그러면 경찰 모욕죄를 추가해 버릴 테니까!” 전 뚱보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나가서 당신을 고소할까 봐 두렵지 않은 겁니까?” 임유환이 다시 물었다."그건 네가 나간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나중에 불필요한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도록 눈치껏 빨리 자백서에 서명을 해.” 전 뚱보는 임유환 앞에 놓인 자백서를 두드렸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낼 작정인 건가?” 임유환은 종이에 적힌 흑백 글자를 보았고 그의 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넌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미움을 샀어, 그냥 이렇게 이해하도록 해.” "장문호가 당신들을 보낸 거죠?” 임유환이 물었다. "허허, 대답하지 않겠네. 당신은 그냥 자백서에 서명만 하면 돼.” 전 뚱보가 비웃자, 임유환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보아하니 장문호가 지시를 내린 게 틀림없을 것 같다. 그를 근거 없는 범죄로 기소한 후 구치소에 가두고 그곳의 경찰들의 특별 관리를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