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한 배미희는 핏줄이 솟구치는 듯했다. “엄마, 제 친구인 임하나 씨예요.”상언이 하나를 소개했다. 그가 곧바로 하나에게 말했다.“제 어머니세요.”“안녕하세요, 사모님.”하나를 자세히 살핀 배미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상언이의 친구라고 하니까 더 마음에 드네.’“하나 씨라고 했나요?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어요.”하나가 배미희에게 이끌려 고택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상언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웃기만 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나는 이만 가볼게. 오늘은 친구랑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해.”지환이 이서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이서가 스킨십을 조금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지환은 때때로 이서에게 스킨십을 했다. ‘이서가 무의식중에 서서히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이를 알아차린 지환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서는 지환을 배웅하고 나서야 상언을 따라 고택의 거실로 들어섰는데, 거실에서는 배미희가 하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하나 씨, 남자 친구는 있어요?” 배미희의 열정을 당해낼 힘이 없었던 하나가 도움을 원하는 눈길로 이서와 상언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파악한 상언이 앞으로 나아가서 배미희에게 말했다.“엄마, 사실 하나 씨는 이서 씨의 친구예요. 단지 이서 씨를 보러 왔을 뿐이니까, 인제 그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 좀 비켜주세요.”“아, 이서의 친구예요? 아이고, 그러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바로 자리를 비켜줬을 텐데요.” 배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언을 한 번 보았다. “상언아, 너는 위층에서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더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재에 들어선 배미희가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맞지? 그렇지?” 상언이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뭐가요?” “역시, 하나 씨를 좋아하는 거 맞구나?” 상언이 배미희의 기세등등한 눈빛을
‘이게 무슨 소리야?’배미희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상언이가 가끔은 상투적인 표현조차 할 줄 모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분명 괜찮은 아이인데...’‘게다가 상언이는 의학계의 최고 권위자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재력, 외모, 학식,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아이인데, 대체 왜...’‘우리 가문과 연을 맺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그런 상언이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엄마, 이제 그만 물어보세요.”배미희의 질문을 예상한 상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배미희는 이 말을 믿을 수 없는 듯했다.“정말 네가 해결할 수 있는 거야?”“여자의 마음 하나 다잡지 못해서 결혼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대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어요.”배미희가 기뻐하며 상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남자라면 패기가 있어야지, 역시 내 아들이야. 혹시라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렴. 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마.” “네, 알겠어요. 엄마, 이제 그만 나가보세요.”상언이 서재 밖으로 배미희를 밀어냈다. 배미희가 서재를 나서자, 상언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사실, 그동안 계속 하나 씨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었어.’ ‘끝내 좋은 방법을 찾지는 못했지만 말이야.’...같은 시각, 아래층.이서의 손을 잡은 하나가 외국 생활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서는 찬찬히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모든 대답을 들은 하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서야, 며칠 전에 사고가 났었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야?”멍해진 이서가 물었다.“어떻게 알았어?” ‘아, 이 선생님께서 알려주셨구나.’하나는 이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정말이냐니까?”“응.”하나가 긴장하기 시작했다.“그... 그 사람은 잡힌 거야?”“응, 잡혔어.”“하지만, 사건은 H선생님께서 처리하고 있어서, 나도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르겠어.”“잡혔다니 다행이다.”하나는
잠시 후, 두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에 살짝 기대어 앉은 하나가 말했다.“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아주 서툰 것 같네요.”하나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상언이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앉았다.“얼마나 있다가 갈 생각이에요?”하나가 서서히 원래의 호흡을 되찾았다.“프로젝트가 끝나는 대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하나가 불쑥 물었다.“이서는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하이먼 스웨이 여사님을 만나러 갔다던데...”“그리고, 형부랑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언이 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그의 눈빛을 마주한 하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봐요?”“이서 씨가 어떻게 지냈는지만 궁금하고,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거예요?”온화하고 부드러운 상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원망도 서려 있지 않았으나, 하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 그동안 잘 지냈어요?”상언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온화하고 따스했으나, 눈동자에서는 능글맞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니요.”하나가 물었다.“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매일 하나 씨를 그리워하면서도 하나 씨를 볼 수 없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었겠어요.”“...”몸을 일으킨 하나가 한참이나 상언을 내려다보았다.“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좀 자세히 말해주면 안 되는 거예요?”상언은 늘 폭발 직전의 하나를 가라앉히곤 했다.“알겠어요.”몸을 일으킨 상언이 정색하며 말했다. “...”상언이 서재에서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에게 털어놓을 때, 지환은 부서진 CCTV를 노려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지환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조수, 조백이었다.조백은 이천의 수하였다. 이천은 H국에 남는 것을 선택했기에, 지환은 조백을 고용하여 자신의 임시 비서으로 삼은 것이었다.조백의 능력은 상당했으며, 확실히 이천의 업무를 대신할 만했다.하지만 오늘은.
이서에게 고스톱으로 굴욕을 당한 심가은은 집으로 돌아와 모든 옷을 자르는 것으로 기분을 풀었다.모든 옷을 자른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이먼 스웨이가 한 말을 다시 곱씹었다. “엄마, 제가 윤이서한테 줘야 하는 돈, 엄마가 대신 내주시면 안 돼요?”심가은은 하이먼 스웨이에게 애교를 부렸으나, 하이먼 스웨이는 처음으로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가은아, 너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야. 책임이라는 걸 져야 할 나이라고.”하이먼 스웨이의 말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그러니까, 나를 대신해서 돈을 내 줄 수 없으시겠다?’가은은 버럭 화를 내고만 싶었다. 그러나 하이먼 스웨이의 단호한 옆모습을 본 그녀는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그래, 이대로 엄마의 눈 밖에 나버린다면, 지금까지 누리던 것마저 빼앗길 수도 있어.’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을 느낀 가은은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려야 했다. “알겠어요, 엄마. 제가 스스로 해결해 볼게요.”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하니, 가은은 이서를 죽이지 못한 것이 더욱 한스럽게 느껴지는 듯했다. ‘안 봐도 뻔해, 윤이서가 엄마를 꼬드긴 거야.’‘지독한 X, 대체 어떻게 또 엄마를 꼬드긴 거지?’‘이래서 장희령이 윤이서랑 엄마를 만나게 하면 안 된다고 했던 건가?’‘처음에는 지엽 씨를 얻기 위해서 윤이서를 죽이려 했지만, 이제는 아니야.’‘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윤이서를 없애버려야겠어!’‘윤이서의 꼬드김에 넘어간 엄마가 또 윤이서랑 모녀 같은 관계를 맺게 된다면, 엄마의 모든 유산을 빼앗기게 될지도 몰라.’이 가능성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은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는 듯했다. 바로 그때, 가은의 머릿속에 그 의문의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는 곧 연결되었다.“저기...”심가은이 변태남이 일을 그르친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수화기 너머에서 박예솔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윤이서가 총에 맞은 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일 거야.’“하지만.”가은이 어려움을 토로했다.“이미 지난번 일을 겪은 윤이서와 이씨 가문의 행동이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어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거라고요.”박예솔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떠올랐다.[윤이서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면서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초대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려고 하지 않겠어요?] 가은의 눈동자가 다시 밝아졌다.”그럼 나는 뭘 하면 돼요?”예솔의 눈에 살의가 번뜩였다.[당연히 심가은 씨는...]심가은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세세하게 설명한 예솔이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박예솔이 옅은 미소를 짓는 하지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웃어?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긴 다리를 들어 책상 위에 올린 지호가 예솔을 자세히 살펴 보고서야 웃으며 말했다.“예솔아, 난 너를 비웃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방금 너한테서 내 모습을 봤거든. 내가 널 비웃으면, 나 자신을 비웃는 꼴이 되어버리는 거잖아?”“난 내 동생이 그렇게 똑똑할 줄 몰랐어. 아니, 무정하다고 해야 하나?” “지환이는 제수씨한테 문제가 생긴 그 순간부터 부하들을 시켜서 너를 조사하고 있었을 거야.”“아직도 모르겠니? 지환이가 널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거라는 뜻이야.”“허, 미안하지만, 나는 원래 좋은 사람이 아니야.”예솔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꽉 쥔 주먹은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호는 이미 지환이 예솔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을 거라고 말했으나, 예솔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미행을 눈치챈 그녀는 자신을 미행한 사람이 지환의 현재 비서인 조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순간, 그녀는 사그라진 줄 알았던 자신의 마음이 여전히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그래,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사람을 이대로 남한테 양보할 수는 없어!’‘지환이의 곁에 있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해!’ ‘나도 윤이서 못
임하나가 M국에 온 이후, 이서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하지만 하나는 놀러 온 것이 아닌 출장을 온 것이었기에, 이서와 이틀간 밤을 새우며 긴 대화를 나눈 것을 끝으로 시내에 있는 호텔로 떠나야만 했다. 이서도 그녀와 함께 시내에 가기를 원했으나, 하나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이서야, 네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까 이제야 좀 안심이 되는 것 같아.”“여기서 시내까지는 서너 시간이나 걸리는데, 넌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잖아. 괜히 나 때문에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푹 쉬어.”“다음 주에 휴가받으면 또 올게.” “그래, 알겠어.”이서의 시선이 하나의 뒤에 있던 상언에게 떨어졌다.“이 선생님께서 널 돌봐주신다니까 나도 안심이야.”“이서야, 그게 무슨 소리야.”볼이 약간 붉어진 하나가 상언을 보며 말했다.“그냥 데려다주시려는 거야.”이서가 웃으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하나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그녀는 이서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듯했다.“됐어, 너랑 이야기 안 할래.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손을 흔들며 하나와 작별한 이서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바로 이때, 이서의 귓가에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부러워?” 놀라서 고개를 돌린 이서의 얼굴색이 약간 변했다.‘H선생님?’“언제 오신 거예요?”‘H선생님께서 오신 줄은 전혀 몰랐어.’ “방금 왔어.”지환이 이서 곁으로 가서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부러워?”“뭐가요?”이서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 말이야.”말을 마친 지환은 멍해지는 듯했다. ‘내가 상언이를 부러워하는 날이 올 줄이야.’바닥을 바라보는 이서의 입가에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하나는 이 선생님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지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두 사람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단 말이지.’“아마... 우리도 저 두 사람처럼 될 수 있을 거야.”놀란 이서가 연거푸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H선생
이서는 지환의 팔을 가볍게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우리가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또 어떤 관계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H선생님이 제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어요.”“그리고... 왜 제 곁을 지켜주시는 건지, 또 우리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는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H선생님의 마음속에 있다던 그 분의 대역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지환의 눈동자에 옅은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해명하지 않았고, 이서가 두드린 자신의 팔을 바라볼 뿐이었다. ‘기억을 잃은 이서가 처음으로 날 건드렸어.’지환이 고개를 들어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바라보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어.’그는 그제야 마이클 천이 한 말을 믿기 시작한 듯했다. ‘언젠가 이서는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릴 거야.’‘이서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 기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거야. 그렇다면 작은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것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겠지.’‘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나는 언제까지든 기다릴 각오가 되어 있어.’“이서야, 내가 말했잖아. 넌 절대 그 사람의 대역이 아니야. 그리고, 그 누구도 너를 대신할 수는 없어.” 이서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H선생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전히 H선생님의 말을 믿는 걸 보면... 내 병이 가볍지는 않은 것 같아.’지환의 가면을 쳐다보던 이서의 심장이 또 한 번 꿈틀거렸다. ‘가면 아래에 있는 H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모든 일이 더 수월해지겠지?’‘하지만...’‘저 가면을 벗길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할까?’ 지환은 이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그녀가 잃어버린 기억을 곱씹는 것이라 생각한 그가 또 한 번 위로를 건넸다.“생각하지 마. 너무 깊이 생각해서 좋을 건 없어.”깜짝 놀란 이서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환을 바라보았다.‘설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계시는 건가?’“혹시...”“이제 그만 돌아가자, 여기 이렇게 오
하나의 마음이 혼란으로 인해 소용돌이칠 때, 그 여자는 이미 상언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이 선생님, 대체 언제 오신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소식을 왜 진작 알려주지 않으신 거죠? 우리 두 사람, 친구 아니었나요?” 그 여자가 가볍게 쥔 주먹으로 상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두 사람, 꽤 가까운 사이인가 봐.’ 하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오랜만에 친구분을 만나신 것 같으니, 저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하나는 상언의 곁에서 빨리 떠나고 싶었다.그 여자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이분은?”그녀는 그제야 하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했다.상언이 하나를 붙잡으며 말했다.“내 여자 친구야.” 하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여자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하나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에야 얼굴의 충격을 거두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 이 선생님의 여자 친구분이시구나. 실례가 많았어요.”“그러고 보니, 지난번 병원에서도 얼굴을 뵀던 것 같은데... 오늘은 화장하신 거죠?”“H국의 화장술은 정말 대단해서 화장 전후가 완전히 다르다면서요?”“어쩐지 못 알아보겠더라니...” 하나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여자... 보통이 아닌데?’ ‘내가 화장해서 이 정도이고, 이 선생님의 곁에는 본인과 같은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은근히 알려주려는 심산이잖아.’ 상언의 얼굴색도 변했다. 하나의 손을 꼭 잡은 그의 손에는 땀이 약간 배어나는 듯했다. 상언이 냉엄한 눈빛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케이티!”이상한 낌새를 느낀 케이티가 당황하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제가 말실수라도 한 거예요?”상언이 하나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오늘은 이만 가볼게.” 상언은 더 이상 케이티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것을 본 케이티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상언이 M국에 왔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선생님이 H국에 있을 때, H국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더니, 그 소문이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