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후에야 지환이 답을 보냈다.[그래, 이쪽 시간 좀 확인해볼게. 가능한 시간이 나오면 당신한테 알려줄게.][알았어요.]이서는 달콤한 미소를 띤 얼굴로 식사자리로 향했다.[그럼 저는 식사하러 갑니다, 당신도 일찌감치 저녁 꼭 챙겨먹어요.][응.]지환은 한글자로 답을 보냈다.하지만 지환의 눈은 이서가 오늘 보내온 문자메시지들을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교활하고 용의주도한 어르신이 기어코 직접 자기 눈으로 봐야 믿는 거겠지. 내가 이서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아마 이 일에서 손을 뗄 속셈이야. 안그러면 아마 틀림없이 끝까지 파헤칠 사람이지. 하지만 일단 만나면 정체가 드러날텐데.’하경철을 만나기 전에 이서에게 먼저 자신의 정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근데 일단 솔직해지면…….늘 일관성있고 명확한 지환의 생각이 근래 보기 드물게 혼란스럽다.지환은 눈을 살짝 감고 손끝으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한편 이서가 식사중인 식탁 위.하경철은 식사시간 내내 은철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이서하고만 대화를 나누었다.“이서야, 좀 더 먹어라. 내내 너 마른 거 봐라. 돌아가서는 신랑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달라고 해, 알았지?”“네, 할아버지, 알겠어요. 벌써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그랬냐?”하경철은 젓가락을 들고 말했다.“내 정신 좀 봐라, 사람이 늙으면 다 이렇게 되는구나. 너는 이런 할애비 싫어하고 피하지 않을 거지?”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그러겠어요,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신경 써주시는 분은 저희 같은 MZ세대들도 다 알아본다구요.”은철은 이서의 이 말을 듣고 하경철이 자신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기 이름은 입도 뻥긋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그 사람 성격이 꽤 좋아서 아마 안 그럴 거예요.”이서의 이 말 때문에 하경철은 기분이 한층 더 좋아졌다.“신랑 성격이 좋아?”지환 같은 스타일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성격이 좋을 리가 없다. 하경철 역시
은철은 어쩔 줄 몰라하며 하경철을 바라보았다.“할아버지, 이러시는 건…….”하경철은 은철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은철아, 할아버지가 그동안 너한테 참 잘못했다. 내 욕심이지, 너랑 이서 결혼시키려고 했던 거. 그것 때문에 너희 둘 사이를 내내 불편하게 만들고. 최근에 이 할애비가 많이 반성했다. 당사자들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건데, 제3자가 감놔라 배놔라 했었구나.”“이제 안심해라. 앞으로 네가 누구랑 결혼하고 싶든지 이 할애비가 다 허락해줄 거니까.”은철이 딱히 말을 못하고 있자 하경철이 다시 말했다.“맞다, 일전에 수정이랑 결혼문제 생각해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나도 다시 생각해 봤는데, 너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 가정을 이뤄야지. 정말로 수정이를 좋아하는 거면 가능한 한 빨리 이야기를 꺼내서 혼사를 추진해라. 안그러면 이래저래 윤씨 집안 볼 면목도 없고, 우리도 마찬가지고.”탁!은철이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정신없이 허리를 숙여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은철은 한참 지나서야 식탁 밑에서 고개를 들었다.“켁켁, 할아버지, 지금 하신 말씀 다 진심이세요?”“물론이다마다.”하경철이 웃으며 대답했다.은철의 기침이 더 심해졌다.하경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짐짓 물었다.“은철아, 괜찮냐?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그동안 이 할애비가 잘못했구나.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게다.”은철은 너무 놀라서 한동안 기침이 멎지 않는 바람에 한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식사시간 내내 은철은 답답했다.식사 후 함께 뒷정리를 마친 후에 이서가 하경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저 먼저 가요.”“그래라.”할아버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예전같으면 은철이에게 너 데려다주라고 할텐데 이제는 안그럴란다. 기사 시켜서 너 태워다 줄 거야. 손님한테 푸대접했다고 생각지는 말고.”‘하아, 할아버지, 오늘 진짜 웃기시다,’“아니에요.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이서 입장에서는 하경철이 은철과의 결혼을 더 이상 강
이서의 집으로 향하는 은철의 차 안에서 둘 중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이서는 오히려 이런 침묵을 즐겼다.하지만 은철이 하필 이런 때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말씀 신경 쓰지 마.”이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은철을 보고 말했다.“무슨 소리야?”은철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냥, 너랑 네 남편 잘 살라는 말씀이라고.”이서는 뒷좌석에서 의자에 바짝 다가 앉아 말했다.“그럼, 그다음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이혼하라는 말인거야?이봐, 하은철 씨, 당신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해?내 인생 어떻게 살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지,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주제가 아니라구!”은철은 이서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간신히 한마디 꺼냈다.“그 사람, 너랑 안 어울려.”“뭐가 안 어울린다는 거야?”‘다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지만 지환에 관한 문제는 확실히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어.’“이 세상에서 그 사람만큼 나랑 잘 맞는 사람 찾기 힘들어. 소울메이트라는 말 들어봤어? 그 사람이 내 소울메이트야. 내 눈빛만 봐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라구.”하은철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가슴 속에 큰 돌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날 지환과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윤이서는 내가 갖지 못한 존재야. 그래서 꼭 갖고 싶은 거라고.’하지만 이제 이서가 이렇게 지환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을 듣고 잔뜩 불편한 감정에 휩싸였다.더 이상 이서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이서가 말하는 그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그 순간 핸들을 잡은 은철의 손이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내가 이서와 결혼하고 싶었던 건가?’‘아니야, 말도 안 돼, 안 돼! 내가 그럴 리 없어.’냉정을 되찾고 나자 또다시 이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그 생각이 은철의 머릿속을 온통 점령해버렸다.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이 당황스러운 생각을 억눌렀다.이서는 평소와 많이 다르게 은철이 한참동
은철의 말에 너무 놀라 여러 갈래로 흩어지던 여러 생각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은철이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은철은 잠시 멈칫했다.“수정이가 자주 찾아가서 귀찮게 구는 거야?”은철의 말을 듣자 이서는 웃음이 나왔다.“몰랐어? 일부러 없는 병을 만들어서 아픈 척 내 신장을 떼어달라고 한 일을 몰랐다고? 이미 다 알고 있잖아, 모르는 척하는 거 별로 이제 안먹혀.”“그 건은 이미 너한테 사과하라고 했어. 수정이가 그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 할아버지가 그 때 너랑 결혼하라고 강요만 안하셨더라도…….”“아, 이유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해쳐도 되는 거구나, 그럼 나도 이유 있으면 사람 죽여도 되겠네?”이서는 은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아직 살아있으니 당신한테 말하고, 나를 스스로 변호도 하는 거야. 만약 그 때 내가 죽었으면…….”여기까지 말하자 이서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당신들은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할 뿐이지.”“나는…….”이서는 은철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아서 손사래를 쳤다.“하나 물어보자, 왜 이렇게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는 거야?”이서의 말을 듣자 은철은 예닐곱살 때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그 해에 하경철은 은철과 이서를 함께 데리고 출국했었다.당시 어렸던 수정도 떼를 부리며 같이 데려가 달라고 보챘다.양쪽 집안 모두 여러 아이들이 같이 가면 잘 어울릴 거라며 수정도 함께 동행하게 했다.두 집 모두 여러 아이가 어울려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수정을 함께 데리고 갔다.그들은 출발 후에 HK시에서 다른 비행편으로 환승할 예정이었다.당시의 HK시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부유층 인사나 그 가족들이 납치되었다는 뉴스가 자주 나왔었다.그래서 그날 환승했던 공항에서 하경철은 30명은 족히 넘을 경호원을 동원했다.하지만 혼란한 틈을 타 은철, 이서, 수정 세 사람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묶여서 납치된 후 이 세 아이들은 이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은철은 자신이 내린 결론이 맞는지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16세가 되던 해에 이서가 귀국하자 아름답고 여린 그녀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서는 전에 겪었던 사고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것 때문에 은철은 대단히 화가 나서 자신을 구한 사람이 수정일거라고 더욱 확신했다.이 역시 은철이 이서를 그렇게나 싫어하는 이유이다.그는 여전히 꿈 속에서 그 때의 일들을 떠올리고 힘들어하지만 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그는 이서에게 수차례 그 때 일이 기억나는지 물었지만, 그녀는 항상 고개를 저으며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다.그러기를 수차례, 은철은 오늘도 운전석에서 고개를 돌려 다시 이서에게 물었다.“너는 내가 일곱 살 때쯤, 그러니까 네가 다섯살 때 우리가 납치당했던 일을 기억하니?”이서는 알 수 없다는 듯 은철을 쳐다봤다.은철은 이미 여러 차례 이서에게 이 질문을 해왔다.그녀가 16살 되던 해에 외국에서 돌아와 처음 만났을 때 은철은 이 문제를 물었다.후에 은철은 이서와 만날 때마다 집요하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그리고 매번 모진 눈빛으로 이서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이 배신자.’“이미 수없이 너에게 대답한 것 같은데? 어렸을 때의 기억이 완전히 뒤죽박죽되어서 전혀 기억 안나.”이서 자신도 스스로 왜 기억을 잃었는지 모른다.그냥 예전 일들이 기억나지 않을 뿐이다.이서의 아버지 윤재하 부부는 이서가 매우 불행한 일을 겪었고, 그 때문에 심한 충격을 받아 어린 시절의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고 했었다.은철은 피식 웃었다.“만약 네가 그 사고에 대해 기억해낸다면, 내가 왜 이렇게 수정이를 싸고 도는지 알게 될거야.”말이 끝나자 그는 머리를 뒤로 젖혀 헤드레스트에 가볍게 대고 앞을 바라보았다.“다 왔어.”이서는 아직 좀 전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도착했다는 은철의 말을 듣고 확실히 집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서는 팔을 뻗어 지환의 허리를 껴안았다.“안심해요, 저는 절대로 돌아와요. 설사 아무리 내가 오늘 죽을 운명이어도 당신과 한 약속은 꼭 지켜요.”지환은 이서를 껴안았던 팔을 살짝 풀고 이서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웃었다.“들어와.”“네.”이서는 지환에게 안겨 방으로 들어왔다.“지환 씨…….”“응.”“지환씨는 어릴 때 있었던 일들 기억해요?”지환은 이서를 의자에 앉혀놓고 이서의 신발을 벗겨주다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어렸을 때라, 얼마나 어렸을 때를 말하는 건데?”“음, 대여섯 살쯤?”“기억하지.”이서의 눈이 반짝였다.“그 때 지환 씨는 뭐 했어요?”지환은 자신이 대여섯 살 때 이미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장사를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보통 사람들과 똑같지. 유치원 다니고, 친구랑 함께 놀기도 하고, 가끔 아버지랑 놀이공원도 가고 그러는 거지…….”이서가 턱을 괴고 말했다.“부럽다. 나는 내가 대여섯 살 때 무엇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참 이상하지 않아요? 분명 일곱 살 여덟 살 무렵은 기억나는데, 바로 그 전에는 뭘 했는지 기억이 전혀 없어요.마치 칼로 싹뚝 썰어서 잘라 내버린 것처럼 내 대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어요. 여덟 살 이후부터만 기억이 있어요.”지환은 이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마도…… 어렸을 때 머리통이 너무 작아서 옛날 일이 다 저장이 안된 건가?”이서는 웃으며 지환의 목을 껴안았다.“그럼 미래의 어느 날 당신이 늙고 두뇌용량이 다시 작아지면 지환씨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 아니예요?”“그럴 리가!”지환은 이서를 안고 침실로 걸어가며 자신있게 말했다.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요새 알츠하이머나 치매가 있는 노인의 비율도 적지 않아요.” “나한테 만약은 없어.”지환은 이서의 입술을 가볍게 물고 가볍게 숨을 이서의 볼에 불었다.“나는 내 머리로 너를 기억하는 게 아니야. 이 가슴으로 너를 기억하는 거지.”이서의 속눈썹
이서는 일어나서 하이먼 스웨이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다.“정말 잘됐네요! 지금 어디 있대요?”하이먼 스웨이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확 가라앉았다[아직 찾지는 못했대. 단지 아이가 H국의 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는 것만 알아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그 부부는 바로 북성 사람이고. 이미 내 매니저랑 이야기 끝냈어. 바로 오늘 저녁에 북성으로 갈 거야.]이서가 시간을 확인했다.외국에 있는 하이먼 스웨이가 있는 곳은 지금 저녁 시간일 것이다.“비행기 도착 예정 시간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마중나갈게요.”[됐어!] 하이먼 스웨이가 말했다. [이서야, 내 딸 찾으면 다 네 덕분이야. 신세 꼭 갚을게.]이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요.”[이만 끊자. 나 곧 출발하려면 준비할 것들이 많겠어.]“네.”이서가 전화를 끊었다.지환이 마침 물이 담긴 컵을 들고 들어왔다. 질투심 가득한 말투로 이서에게 말했다.“누구 전환데 이렇게 좋아해?”이서가 웃으며 말했다.“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이요. 지환 씨는 여자한테도 질투해요?”지환은 순간 당황했다.그는 또 은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분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너한테 무슨 일로?”이서는 순식간에 눈썹을 치켜세웠다“작가님이 오래전에 유괴당한 딸 소식을 최근에 들으셨고, H국의 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는 걸 막 알게 됐나봐요. 그것 때문에 지금 H국에 오신대요.”지환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서가 말했다.“왜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 오시는데 기쁘지 않아요?”지환은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기쁘지. 그냥…….”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이 누구인지를 안다.그리고 애초에 바다의 딸 시나리오를 MH그룹에게 넘기려 했던 것은 순전히 지환 때문이었다.‘그녀가 만약 H국에 도착한다면 곧 딸을 찾게 될 텐데.’시간이 걸리게 되면 하이먼 스웨이는 그 사이에 이서와 연락이 닿게 될 것이고 그때는…….지환은 이서가 물을 마시는 틈을 타 뒤돌아 이마를 짚었다.‘일이 왜 갈수록 이렇게 복잡
“그래, 기다릴게, 지환 씨가 나타날 때까지.”“내가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면?”“계속 기다릴게.”침묵을 지키던 지환은 한참이 지나서야 이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그만 자.”“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봐?”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지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자신을 바라보는 이서의 모습에 지환은 이서를 향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듯했다.“계속 안 자면 나…….”“아, 잘못했어!”이서가 재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지환은 번데기가 된 듯한 이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런 지환의 눈빛은 너무 고요하고도 쓸쓸했다.‘신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런 행복한 나날들은 꿈이 되고 말 거야…….’3일째 되던 날, 이서는 또 한 번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전화를 받았다.함께 식사를 하자는 연락이었다. 이서는 두말없이 하이먼 스웨이 여사의 제안을 승낙했다.하이먼 스웨이 여사는 북성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을 예약하는 일은 자연스레 이서의 일이 되었다.이서가 또 하이먼 스웨이 여사와 만남을 가진다는 소식을 들은 소희는 감격에 겨워 이서에게 물었다. “이서 언니,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사인을 좀 부탁해도 될까요?”“소희 씨도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팬이야?”“아니면 어때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시잖아요. 하이먼 스웨이 작가님의 사인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할 거예요.”소희가 대답했다.이서가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내일 현태 씨랑 데이트할 때 뭐 입을지는 생각해 봤어?”소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이서 언니!”“놀리기만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니까. 소희 씨, 하나한테 뻔뻔함을 좀 배워야겠어.”소희가 웃었다.“그건 그래요. 맞다, 하나 언니랑 이 선생님은 어떻게 됐어요? 며칠 전에도 같이 계신 거 봤는데, 아마 샤브샤브를 먹은 다음날이었던 것 같아요.”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화제를 돌렸다.“소희 씨, 나 아직 대답 못 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