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이 꽤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어머, 내 정신 좀 봐.”“나는 윤 대표더러 소희를 설득해 달라는 의미였어. 오해하지는 마.” 이서는 이미 고개를 돌려 심근영과 대화를 이어가던 지환을 흘겨보다가 이지숙을 향해 말했다.“알맞은 상대를 찾는 일은 제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잖아요.” 이지숙이 말했다.“그거야 그렇지만... 윤 대표는 우리 소희의 친구잖아. 그러면 소희와 가치관이 잘 맞는다는 뜻이지 않겠어? 어쩌면 이 중에 두 사람 마음에 다 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서는 소희를 힐끗 보았는데, 그녀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현태 씨에 관해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이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진을 받고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요리가 나오는 동안, 이서는 구실을 찾아 소희와 함께 룸을 나섰다.“소희 씨, 왜 현태 씨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거야?” 소희가 말했다.“아직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 분이 현태 오빠를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고요.”“만약 반대하신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소희의 긴장한 모습을 본 이서가 웃기 시작했다.“두 분이 현태 씨를 반대할까 봐 걱정하기 시작한 거야? 현태 씨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네?” “이서 언니!”“그래, 인제 그만 웃을게.”“나는 두 분이 현태 씨의 출신을 전혀 개의치 않으실 거라고 생각해. 두 분에게는 현태 씨의 출신보다, 소희 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실 테니까.”“물론, 두 분이 소희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현태 씨의 출신을 더 중요히 여기시겠지.”“그럼 소희 씨도 두 분의 의견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되잖아?” “내 말이 틀렸어?”곰곰이 생각하던 소희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언니 말이 맞아요.”두 사람은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이지숙이 다시금 중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소희는 이서를 힐끗 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엄마, 사실... 제겐 남자 친구가 있어요.”놀란 이지숙은 대답도 잊은 채 소희를 바
병원에 도착한 이서는 우물쭈물하다가 차 안에 있는 지환을 향해 말했다.“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그 사람을 처리해 줘서?”“네.”“참,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어요? 왜 날 죽이려고 한 거죠?”“설마... 하도훈의 사람이었던 거예요?” 지환은 이서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잠시 후에야 말했다.“하은철의 죽음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하도훈은 우리 두 사람이 비밀을 누설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죽여서 분풀이하려던 거야.” 이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우리요? 누가 하지환 씨에게도 해를 가한 거예요?”“응.” 이 대답이 나오는 순간, 이서의 심장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요?”그녀가 간신히 입을 뗐다.지환은 그런 이서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날 걱정하는 거야?” 이서는 붉게 물든 얼굴로 화를 냈다.“우... 우리는 지금 협력 관계예요! 하지환 씨한테 사고가 나면, 내가 어떻게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환의 웃음기는 더욱 짙어졌다.“난 괜찮아. 어둠의 호리병이 있으니, 하도훈조차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을 거거든.” “하지만...”이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어둠의 호리병은 한 사람이잖아요. 만약 하도훈이 동시에 두 사람을 보내면 어떡해요?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은 위험에 빠질 거라고요.” “걱정하지 마. 우리 곁에 고수가 있다는 걸 안 이상, 하도훈은 당분간 우리를 해치려 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하도훈은 지금 여자를 찾아 하씨 가문의 후계자를 만드느라 바쁠걸?”이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갔다.“하도훈이 찾는 여자한테 손을 쓸 수는 없을까요?”“무슨 뜻이야?” “하도훈은 대를 잇는 것에 집중하느라 상대의 출신은 전혀 개의치 않을 거예요. 오히려 그 사람이 더욱 중요시하는 건 상대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가 하는 거겠죠.”“만약 우리가 먼저 하도훈의 조건에 맞는 여자를 골라낸다면, 그 여자를 하도훈의 곁에 두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윤이서는 결혼했다.그러나 결혼 상대는 그녀가 8년 넘게 사랑을 했던 약혼자인 하은철이 아닌 만난 지 5분도 안 된, 기본적인 정보만 대충 아는 남자였다.“후회되시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사무소 대기실에서 남자는 조금 귀찮다는 눈빛으로 윤이서를 흘겨보았다.윤이서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은 하은철의 차갑고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3일전, 줄곧 윤이서를 피했던 하은철이 직접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순간 지난 8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성껏 꾸미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은철뿐만이 아니라 그와 손을 깍지를 낀 채 휠체어에 앉아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수정도 함께 있었다.--그녀의 사촌 여동생!그녀가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고 있을 때, 하은철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네 신장을 수정이에게 주면 너와 결혼할게.”윤이서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몸이 굳어지며 믿을 수 없단 듯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남자의 눈빛은 시종 차갑고 증오로 가득 찼다. 마치 자신을 8년 동안 정성껏 뒷바라지 한 약혼녀가 아닌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마치 갈 곳을 잃어 절벽에서 추락하는 것 같았다.하은철과 어릴 때 약혼한 사이였고, 16살 되던 해 귀국한 후, 하은철을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다.이 8년 동안 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녀는 빨래와 밥하는 것을 배웠고, 또 그에게 걸맞는 아내가 되기 위해 피아노, 그림 등을 배웠으며 심지어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오직 그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해주기 꿈꾸며.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매몰찼다. 하은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심지어 그의 애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무슨 문제 있나요?” 하지환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윤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벌리고 있다가 또 하지환이 오해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아니요, 가요.”어차피 언젠가 마주해야 할 문제였다.도중에 윤이서는 하은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스크린이 끊임없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윤이서는 마치 지난 8년 동안 비굴했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전에는 모두 그녀가 먼저 하은철에게 전화를 걸며 그의 관심을 끌려했다.그러나 하은철은 단 한 번도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지 않았다.설령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한 마디 관심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윤수정을 위해 그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정말 컸다.“안 받아요?” 조수석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하지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윤이서는 남자의 완벽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가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입을 열기도 전에 맞은편 하은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이서! 너 당장 병원으로 오지 못해! 지금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너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수정이는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나는 이미 너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넌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윤이서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비록 하은철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은철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알잖아?” 윤이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데, 너는 줄 수 있어?”“뻔뻔한 년!”하은철은 그녀를 비꼬았다.“나는 절대로 너 같은 여자 사랑하지 않을 거야! 윤이서, 너 지금 오면 아직 하씨 집안 아
윤이서의 가슴은 놀라움에 줄곧 두근거렸다.마치 바다에서 떠 있다 마침내 부목을 잡은 것 같았다.고개를 들자 그녀는 마침 하지환의 눈빛과 부딪쳤다.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장난기가 없었고, 오히려 무척 다정했다. 그 순간, 윤이서마저 하마터면 그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다.그녀는 황급히 윤재하와 성지영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놀라서 소파에 주저앉았다.한참 뒤, 윤재하는 먼저 반응하여 고개를 들어 윤이서에게 물었다.“이서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윤이서는 막 입을 열려고 했지만 하지환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이런 전 없었던,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는 느낌은 그녀의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고 이때 귓가에서 하지환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오늘 금방 혼인 신고를 했는데, 정말 너무 바빠서 두 분께 미처 알리지 못했네요.”윤재하는 화를 참으며 이성을 유지했다.“이서야!”윤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네, 저 사람 말이 모두 사실이에요. 난 결혼했고, 그 이유는 바로 하은철과 결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지영이 달려와 윤이서의 두 어깨를 쥐고 말했다.“이서야, 너 왜 그래? 너 줄곧 은철을 좋아했잖아, 지금 은철이 마침내 너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너 어떻게…….”그녀는 갑자기 경계하며 하지환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솔직히 말해봐, 누가 널 협박한 거 아니야?”성지영이 하지환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윤이서는 얼른 설명했다.“엄마, 아무도 나를 협박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날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그녀는 지쳤다.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성지영의 손톱은 윤이서의 살에 깊이 파고들었다.“이서야, 너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 네가 은철과 혼약을 맺었을 때부터 우리는 널 그의 미래의 아내로 키웠고, 네가 시집가는 것은 윤씨 가문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 그 따위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야!”윤이서는 통증에
하지환은 어두운 얼굴로 사람을 조수석에 앉힌 다음 운전석으로 올라왔고 문을 쾅 닫았다.윤이서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고 하지환의 보기 흉한 안색을 슬쩍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낼 사람은 분명히 그녀인데, 왜 하지환이 그녀보다 더 화가 난 것 같지?다음 순간, 하지환은 갑자기 차에 시동을 걸었고, 차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윤이서는 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꽉 잡았고, 목소리는 바람에 의해 다르게 변했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하지환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듯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고, 검은 눈동자는 마치 어두운 밤의 야수처럼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순간, 평범한 아우디 A6는 철장에서 벗어난 맹수처럼 조용한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했다.윤이서는 창백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안전벨트를 잡았고, 큰 소리로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바람소리는 마치 블랙홀처럼 그녀의 소리를 삼켰다.그렇게 윤이서는 차츰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광풍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불도록 내버려 두며 하지환이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3일 전, 그녀는 이미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자살은 너무 아파서 그녀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부모님이 아무리 자신을 하씨 집안으로 시집가게 만들고 싶어도 하은철의 황당한 요구만 들으면 반드시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것 또한 그녀가 하지환을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그러나 부모님의 눈에는 윤씨 집안을 다시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행복보다 훨씬 중요했다.20여 년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은 지금 산산조각이 났다.바람은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향해 불었고, 그녀는 이미 눈물이 다 말랐다.마음은…… 죽었으니까.차 속도는 어느새 느려졌고 윤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차는 해변에 도착했고, 노을에 물든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들은 마치 작은 검은 점처럼 움
윤이서는 임하나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너 말이야,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그냥 상담소에서 찾은 사람이야. 하씨 집안과 관계가 없고, 유일하게 엮인 것은 그가 HS 그룹에서 일한다는 거야.”“아.”임하나는 크게 실망했다.“그러니까, 그는 심지어 하은철의 부하다 이거야? 그럼 앞으로 하은철이 너를 괴롭히려고 하면 더욱 쉬운 거 아니야?”윤이서는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아마…… 아닐 거야, 하씨 집안 어르신을 봐서라도 말이야. 게다가 난 이미 결혼했으니 하은철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임하나는 약간 안심했다. 그러나 하은철이 한 짓을 생각하면 그녀는 또 참지 못하고 절친을 위해 불평을 품었다.“그때 내가 제대로 손봐줬어야 했는데. 설마 네가 얼마나 지랑 결혼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는 거야?”윤이서는 작은 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하나야,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앞으로 나와 하은철은 각자의 삶을 사는 서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그럼 그 혼약은…….” 임하나가 물었다.“어르신 쪽은 아직 모르지? 어르신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상심할 거야.”윤이서는 방금 전까지 내려놓은 근심을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하은철의 할아버지에 대해 윤이서의 마음속에는 양심의 가책만 남았다.그녀와 하은철의 혼약은 어르신이 직접 정한 것이었다. 윤씨네 집안이 몰락한 후, 모두들 어르신이 그 약속을 회수하며 그녀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그러나 어르신은 혼약을 취소하기는커녕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그녀만 손자며느리로 인정한다고 밝혔다.심지어 그녀 때문에 어르신은 손자인 하은철과 자주 다투곤 했다.지금 일이 이렇게 되자, 윤이서는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바로 어르신이었다.“그냥…… 오늘 밤에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어.”윤이서가 말했다.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가 직접 어르신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다.임하나는 걱정을 금치 못했다.“내가 같이 가줄까?”“아니야.” 윤이서는 웃었다.“할아버지
30분 지난 후, 윤이서는 어르신이 준비한 차를 타고 천해 호텔로 갔다.룸 입구에 도착해서야 윤이서는 오늘 밤 하씨네 집안에 환영회가 있다는 것을 집사로부터 들었다.“하은철도 있나요?” 윤이서가 물었다. 그녀는 지금 그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집사는 그녀의 뜻을 오해하고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안심하세요. 도련님은 곧 오실 거예요.”“…….”‘지금 갈까?’그러나 뒤쪽의 문이 열렸다.윤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님.”“그래!” 어르신은 윤이서를 보며 주름살이 펴질 정도로 웃었다.“우리 이서 왔구나. 자,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거라.”윤이서는 어르신 곁에 자리를 잡았다.그리고 그녀는 앉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 아무도 아직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아마 중요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윤이서의 마음을 간파한 듯 하 어르신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은 은철이 둘째 작은아버지가 귀국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란.”비록 하지환이 귀국 소식을 비밀로 할 것을 요구했지만, 어르신은 윤이서를 무척이나 신임했다.그녀는 절대로 이 사실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윤이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무언가가 생각났다.어르신에게는 형이 하나 더 있었는데, 젊었을 때 외국에 가서 혼자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더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사장직을 맡은 후, 1년도 안 되어 회사를 지역 내 가장 큰 회사로 만들었다고 했었다.다만 그 아들은 무척이나 겸손하여 언론 앞에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오늘 밤 이 전설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윤이서는 은근 기대감이 부풀었다.바로 이때, 문이 다시 열렸다.윤이서는 궁금해하며 바라보았다.그리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그녀는 눈빛이 싸늘해졌다.하은철도 웃음이 굳어졌고 눈빛에서 혐오감이 조성되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윤이서는 그에 대한 원한을 숨긴 채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할아버님 보러 왔지.”하은철은 냉
병원에 도착한 이서는 우물쭈물하다가 차 안에 있는 지환을 향해 말했다.“오늘은 정말 고마웠어요.” “그 사람을 처리해 줘서?”“네.”“참,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어요? 왜 날 죽이려고 한 거죠?”“설마... 하도훈의 사람이었던 거예요?” 지환은 이서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잠시 후에야 말했다.“하은철의 죽음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하도훈은 우리 두 사람이 비밀을 누설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죽여서 분풀이하려던 거야.” 이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우리요? 누가 하지환 씨에게도 해를 가한 거예요?”“응.” 이 대답이 나오는 순간, 이서의 심장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요?”그녀가 간신히 입을 뗐다.지환은 그런 이서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날 걱정하는 거야?” 이서는 붉게 물든 얼굴로 화를 냈다.“우... 우리는 지금 협력 관계예요! 하지환 씨한테 사고가 나면, 내가 어떻게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환의 웃음기는 더욱 짙어졌다.“난 괜찮아. 어둠의 호리병이 있으니, 하도훈조차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을 거거든.” “하지만...”이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어둠의 호리병은 한 사람이잖아요. 만약 하도훈이 동시에 두 사람을 보내면 어떡해요?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은 위험에 빠질 거라고요.” “걱정하지 마. 우리 곁에 고수가 있다는 걸 안 이상, 하도훈은 당분간 우리를 해치려 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하도훈은 지금 여자를 찾아 하씨 가문의 후계자를 만드느라 바쁠걸?”이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차 안으로 돌아갔다.“하도훈이 찾는 여자한테 손을 쓸 수는 없을까요?”“무슨 뜻이야?” “하도훈은 대를 잇는 것에 집중하느라 상대의 출신은 전혀 개의치 않을 거예요. 오히려 그 사람이 더욱 중요시하는 건 상대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가 하는 거겠죠.”“만약 우리가 먼저 하도훈의 조건에 맞는 여자를 골라낸다면, 그 여자를 하도훈의 곁에 두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이지숙이 꽤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어머, 내 정신 좀 봐.”“나는 윤 대표더러 소희를 설득해 달라는 의미였어. 오해하지는 마.” 이서는 이미 고개를 돌려 심근영과 대화를 이어가던 지환을 흘겨보다가 이지숙을 향해 말했다.“알맞은 상대를 찾는 일은 제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잖아요.” 이지숙이 말했다.“그거야 그렇지만... 윤 대표는 우리 소희의 친구잖아. 그러면 소희와 가치관이 잘 맞는다는 뜻이지 않겠어? 어쩌면 이 중에 두 사람 마음에 다 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서는 소희를 힐끗 보았는데, 그녀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현태 씨에 관해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이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진을 받고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요리가 나오는 동안, 이서는 구실을 찾아 소희와 함께 룸을 나섰다.“소희 씨, 왜 현태 씨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거야?” 소희가 말했다.“아직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 분이 현태 오빠를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고요.”“만약 반대하신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소희의 긴장한 모습을 본 이서가 웃기 시작했다.“두 분이 현태 씨를 반대할까 봐 걱정하기 시작한 거야? 현태 씨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네?” “이서 언니!”“그래, 인제 그만 웃을게.”“나는 두 분이 현태 씨의 출신을 전혀 개의치 않으실 거라고 생각해. 두 분에게는 현태 씨의 출신보다, 소희 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실 테니까.”“물론, 두 분이 소희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현태 씨의 출신을 더 중요히 여기시겠지.”“그럼 소희 씨도 두 분의 의견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되잖아?” “내 말이 틀렸어?”곰곰이 생각하던 소희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언니 말이 맞아요.”두 사람은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이지숙이 다시금 중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소희는 이서를 힐끗 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엄마, 사실... 제겐 남자 친구가 있어요.”놀란 이지숙은 대답도 잊은 채 소희를 바
이서의 심장 소리가 욕실 안을 가득 메웠다.거부할 수 없는 그의 손길,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은근한 기대가 피어올랐다.그 순간, 지환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이 많이 차갑네. 평소에 신경 좀 써.’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섰을 때는 5분이 흐른 후였다. 뺨에 오른 붉은 기운은 이미 옅어졌지만, 귓불의 붉은 기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다시 운전석에 앉은 지환의 모습이 맑고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자, 이서는 방금 욕실에서 느꼈던 감정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환 씨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떨칠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이서와 지환은 마침에 호텔에 다다랐다.심근영 부부와 소희는 이미 도착해 있었는데, 두 사람을 보고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게다가 심근영은 이 기회를 틈타 지환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하 대표님, 저희 체면을 세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지환의 표정은 매우 담담했다. 하지만 심근영은 그의 행동 스타일을 일찌감치 들은 모양인지, 전혀 개의치 않고 이서와 악수를 하려 했다.그가 손을 뻗으려던 찰나, 지환이 이를 저지했다.“늦게 왔는데, 주문부터 하시죠.”심근영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지만, 곧 상황을 이해하고는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소희에게 두 사람의 일을 들은 상태였다.‘참, 두 사람이 싸우는 중이라 했었지?’‘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곧 화해하겠는걸?’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심근영이 지환에게 메뉴를 건넸고, 지환은 이서에게 메뉴를 건넸다. 이서는 모두의 권유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문하기 시작했다.그녀가 주문한 요리는 모두의 입맛을 고려한 것이었는데, 음식이 식탁에 오르자 모두가 만족했다. 다만, 심근영과 지환은 사업상의 일을 이야기했으며, 이지숙과 소희, 그리고 이서는 생활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끝은 ‘결혼’이었다.“소희야, 너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곧 결혼해야 해.” “...엄마, 서두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는 거야?’‘맞는 말이었잖아.’‘당신들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애정행각을 벌였다고!’한편, 차에 오른 이서가 지환에게 물었다.“소희 씨한테 전화해서 약속을 취소할까요?” 지환이 시계를 힐끗 보았다.“안 늦었어.”“안 늦었다고요? 하지만 나는...” 차가 갑자기 멈추자, 이서가 이상하다는 듯 지환을 바라보았다.“왜 그래요?”“도착했어.” 이서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집을 보고는 멍해졌다.순간, 지난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했다.‘여긴... 우리가 전에 살던 곳이잖아?’이서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익숙한 감정이 불쑥 다가와 그녀의 숨통을 조였다.‘여기서... 내 인생의 최고의 시간을 보냈었지.’“어서 들어가.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이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욕실로 들어가 몸에 묻은 핏자국을 씻어냈다.하지만 옷에 묻은 핏자국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옷을 갈아입어야겠어.’ ‘참, 이 집에도 옷이 있을 텐데...’잠시 머뭇거리던 이서는 욕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지환 씨는... 거실에 없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까치발을 들고 2층으로 향했다.하지만 계단 입구에 다다르자마자 지환과 맞닥뜨렸다.이서는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채 목욕 수건만 두른 상태였고, 한 손은 가슴 위에 얹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서 있던 지환은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그의 목젖이 힘겹게 미끄러지자, 이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비... 비켜요. 옷 가지러 갈 거라고요...!”지환은 힘겹게 시선을 돌려 2층을 바라보았다.“내가 가져다줄게. 너는 욕실로 돌아가.”이서는 이 말을 끝으로 쏜살같이 욕실로 돌아갔다.그녀는 눈앞의 위기를 해결하느라, 이후의 어색함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자, 한창 샤워하던 이서는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문
운전기사는 놀라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아직 의식이 남아 있던 이서는 잠시나마 그 남자의 눈동자를 응시했다.‘날 노리는 거구나.’ 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어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문을 열기도 전에 남자의 차가운 손이 목덜미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뼈를 깎는 고통이 밀려오자, 이서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커다란 손을 뻗어 이서의 눈을 가렸다.“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도 너처럼 보기 드문 미인을 죽여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깝거든? 그런데 어쩌겠어? 그게 내 임무인걸. 임무는...”이서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뜨거운 선혈이 자기 얼굴과 목, 그리고 온몸에 튀는 것을 느꼈다. 그 선혈은 뜨겁고 끈적거리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분명히 이서의 피는 아니었다.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쿵!잠시 후, 그 남자가 굉음을 내며 그녀의 곁에 쓰러졌다. 이서는 그제야 남자의 손을 떨쳐내고 세상의 빛을 마주했다. 차량 지붕에는 굽은 칼을 현란하게 돌리고 있는 어둠의 호리병이 있었다. 그가 쥔 칼에 검붉은 선혈이 묻어 있는 것을 본 순간, 이서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당신이 죽인 거예요?!”이서는 자신이 보기에도 매우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하지만 어둠의 호리병은 개의치 않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왜요, 문제 있어요?” 이서는 재빨리 좌우를 살폈는데,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녀는 어둠의 호리병을 보며 말했다.“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라고요!!” 어둠의 호리병은 의외라는 듯 이서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이런 일을 처리해 본 적이 있는 겁니까?”이서가 말했다.“그럴 리가요.”“아주 능숙해 보이는데요?”어둠의 호리병은 이서의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라는 말, 정말입니까?” 이서는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다만, 이번에는 망설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화 연결음이 이어지던 찰나
점심부터 마음이 흐트러져 있던 이서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섰다.부하 직원들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윤 대표님이요,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네요.”“그러게요, 데이트 가시는 건 아니겠죠?”“데이트는 무슨요, 대표님은 이미 결혼하셨잖아요.” “결혼이라뇨, 이미 이혼한 것 같던데요? 그렇지 않으면, 윤 대표님의 남편분이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을 리 없잖아요.” “참, 요즘 윤 대표님의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 보였잖아요. 어쩌면 정말 이혼을 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않을까요? 윤 대표님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지셨잖아요.” “지금도 평범한 직장인과 어울리는 건, 윤 대표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말도 마세요.”“생각 좀 해보세요, 누가 대표님의 남편분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비아냥댄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한창 열띤 이야기가 오가던 찰나,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뭐가 기분 나쁘다는 거죠? 어차피 윤 대표님은 조만간 그분을 본인과 같은 위치로 올려놓으실 텐데요.”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떨어졌다. 그녀는 고이서였는데,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고 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님께서 남편 분을 도와 회사를 차리게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고이서는 영문을 모르는 바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와, 윤 대표님의 남편분이 정말 부러워요. 가진 것도 없이 돈줄과 결혼해서 인생이 편 거잖아요.” “그러게요, 윤 대표님께서 회사를 차려주신다니,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네요!”“저도 그런 와이프를 얻고 싶습니다!” “...”고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우스워졌고, 이미 차에 오른 이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곧 숨길 수 없는 광기가 드러났다.‘다 내가 가져야 했던 것들이야!’ ‘네 것이 아닌 내 것!’‘저
이서가 이상하다는 듯 고이서를 바라보았다.“저는 단지... 고 팀장님, 아무래도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넋이 나간 고이서는 그제야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급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면 다행이네요. 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상사분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거든요.”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에는 반감을 보이기도 하셨어요.”“죄송합니다. 윤 대표님, 제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신다면, 언제든지 숨기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는 고 팀장님이 다정히 대해주시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인간미 있어 보이잖아요.”이서의 표정에 확실히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고이서는 그제야 몰래 한숨을 돌리고 살짝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나섰다.하지만 이서는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순간 생각에 잠겼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 다시금 고이서의 자료를 살폈다.하지만 그 어떠한 문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 그 표정은...’‘그 당황한 표정은 절대 꾸며낼 수 없는 거였어.’‘왜 그렇게 당황한 거지?’ 이서는 하루 종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느라 소희가 걸어온 전화를 못 받을 뻔했다.“나한테 밥을 사주겠다고?”이서가 웃으며 말했다.“심 대표님이 윤씨 그룹의 대표인 나와 결탁했다고 오해할까 봐 두렵진 않아? 다른 심씨 가문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 사람들은 형부가 YS 그룹의 대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절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오히려 매일 같이 언니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게다가 저희 아빠는 언니가 우리를 도와줬다고, 언니와 형부가 아니었으면 제가 얄짤없이 심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두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으시대요.]“이제야 호칭을 바꿨구나.”이서가 웃으며 물었다.“어때, 새 부모님을 받아들인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소희는 다소 쑥스러워했다.[예전에는 왜 저를 잃어버렸는지 원망했었는데, 지금
“하지만, 1위와 2위는 오랫동안 주문을 받지 못했어.”지환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이서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녀는 모처럼 지환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지환은 이 기회를 틈타 허튼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그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사람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 이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요? 하지환 씨는 다른 사람의 소문을 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지환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어쨌든 전설적인 인물들이잖아. 어때, 들어볼래?” 이서도 지환과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지환은 표정을 풀고 이야기를 엮기 시작했다.“다크웹의 1등과 2등은 부부 사이이고,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대. 하지만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결국은 도둑질에 발을 들인 거야.”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고, 남자는 반죽음이 되어 목숨까지 잃을 뻔했대.”“그 후에 강해져야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훈련을 시작한 거래.” “결국은 다크웹의 거물급 인물이 돼서 소문만으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게 된 거지.”이서가 이 말을 듣고 잠이 밀려오는 듯했다.“아, 그래요? 진부한 무협 이야기 같은데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 지환이 무의식적으로 말했다.“미안해.”“사실 내가 지어낸 이야기야. 이서야,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어.” 그 순간, 옆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환은 고개를 한쪽으로 치우친 채 두 눈을 꼭 감은 이서를 보자, 긴장된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그는 손을 들어 이서의 뺨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에도 이서가 눈을 뜨지 않자, 그제야 안심한 지환은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익숙한 촉감에 지환은 심장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다음날.잠에서 깨어난 이서는 자신이 병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서가 말했다.“저야 모르죠. 오빠가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상언은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역시 훌륭한 여동생이라니까.”상언이 떠나자, 어둠의 호리병이 말했다.“저도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이미 약속한 이상, 의사를 번복하진 않을게요.”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한 어둠의 호리병은 조급해했다.“약속한 건 지킬 건데, 그 표정은 뭡니까? 과연 부부답네요. 표정까지 똑같으니까요.” 이서와 지환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어둠의 호리병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보세요, 얼굴색은 물론이고, 표정까지 똑같잖아요.” “됐어요, 됐어.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요. 여기에 더 있다가는 눈칫밥만 먹을 것 같다고요.” “저희는...”이서가 막 입을 열었는데, 어둠의 호리병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참, 하 대표님, 보수는 두둑이 챙겨주실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한 값을 드릴 테니까요.”지환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어둠의 호리병은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하며 떠났다.별장 안에는 이제 이서와 지환만 남았다. 이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엇이든 말하지 않고 가버리면 지환에게 항복하는 것 같아서 계속 망설였다. “먼... 먼저 가볼게요.”이서가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이서야.”지환이 이서를 부르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날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지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용서해 줘.”이서는 고개를 돌렸으나, 지환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언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네가 소지태를 만났던 날 말이야. 내 질투로 네가 상처받게 해서 미안해. 나는 몇 번이고 너한테 내 진짜 신분을 말할 기회가 있었어. 내가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우리 사이도 오늘처럼 되진 않았을 거야.”“하지만...” “내 분노마저 너한테 풀었으니, 나는 용서받을 수 없겠지.” 그 순간, 이서가 고개를 들어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게다가 그 일에는 하지환 씨뿐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