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계진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진양산은 분개한 모습이었고 공포에 질렸던 진혜선은 아직도 몸이 저절로 떨렸다.어릴 때부터 곱고 정숙하게 자라서 순결을 아주 중시했던 진혜선에게는, 졸지에 당했던 이 모든 일이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았다.“아저씨, 이제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세요?” 무진이 앉자 진양산이 차를 따라 주었다.“무진아, 정말 고마워. 만약 네가 아니었다면 혜선이는 아마도...”진혜선을 언뜻 보면서 무진의 어깨를 두드린 진양산은 마치 거대한 결정을 내린 듯이 엄숙한 표정이었다.“진씨 집안에서 이 혼사는 반드시 취소해야 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연계진과 같은 짐승이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돼!”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진교철이 도대체 뭘 가지고 위협한 거예요?”혼사를 취소한다는 말을 듣자 진혜선의 표정이 마침내 좀 누그러졌다.성연의 마음은 전적으로 연계진 쪽에 있었다. ‘연계진이 갑자기 깨어나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진양산의 결정은 결코 의외로 보이지 않았다.성연의 시선이 갑자기 탁자 위에 떨어졌다.순간 눈빛이 빛나면서 눈동자가 커졌다.천천히 눈빛을 돌린 성연이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성연의 눈빛과 부딪치자 진혜선은 좀 피하는 것 같았다.“고마워, 성연아! 만약 너하고 무진이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사람들을 똑바로 볼 수도 없게 되었을 거야!”진혜선이 감격스럽게 말했다.그러나 성연은 여전히 진혜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진혜선이 시선을 피한다는 걸 알았다.마음속에 갑자기 많은 의혹이 일어났다.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너무 많은 걸 추궁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성연도 무진과 함께 진양산을 바라보았다. ‘진씨 가문이 연계진과 혼인을 하지 않는 한 강씨 가문에는 계속 유리할 거야.’“강 대표, 사실... 교철이 그 녀석이 이미 집안의 모든 자금을 장악했어. 그래서 그 방계 친척들이 나를 핍박하면서 이 혼약에 동의하게 했지.”진양산은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한숨을
성연은 생각할수록 더욱 놀라게 되었다.‘아마도 이전에 사실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완전히 틀렸을 지도 몰라. 예를 들어, 혜선 언니가 내 남편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결혼한 뒤 성연은 줄곧 이렇게 생각했다.‘지금은 나를 좀 우습게 생각하겠지.’‘혜선 언니는 무진 씨하고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처럼 자랐다고 했어.’‘그리고 무진 씨의 취미, 행동 등 모든 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안 되겠어, 지금부터는 항상 이 여자를 경계해야겠어.’진혜선은 과연 줄곧 성연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진에게 차를 바꿔 주겠다고 하면서 눈앞의 그 찻잔 두 개를 슬그머니 가져갔다.무진과 진양산은 모두 연계진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빠, 저 사람이 아마도... 깨어난 것 같아요!”30분 후에 진혜선이 일깨워 주었다.무진과 성연은 피로가 가득한 표정의 연계진이 겨우 몸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몸의 통증을 느낀 연계진은 이를 악문 채 곧바로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무진의 모습을 본 연게진이 두 눈에서 갑자기 맹렬한 기색을 뿜어내면서 말했다.“강무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건가요?”“연 회장님, 깨어나셨군요! 자신이 무슨 짐승 같은 행동을 했는지 아십니까?” 소파에서 일어난 무진이 곧장 연계진에게 다가가서 내려다보았다.억지로 몸을 떠받치고 일어난 연계진이 약간 휘청거리면서 곧바로 진양산과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여기는 진씨 가문 저택이야. 그렇지요?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들은 왜 아직도 강무진과 연결되어 있는 거죠? 이전의 약속은 인정하지 않는 겁니까?”연계진은 분명히 진양산에게 진씨 가문의 기업을 포기할 것인지 경고하고 있었다.격노한 진양산은 두 눈에서 불을 뿜을 듯이 노려보면서 흥분했다.“연계진, 이 짐승 같은 놈! 결국 내 딸에게 이런 볼썽사나운 짓을 저지르다니. 하마터면 네 욕심이 실현될 뻔했어! 잘 들어. 지금부터 진씨 가문은 더 이상 너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을 거
성연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무진은 추격하지 않았다.그의 실력이 결코 적호를 당해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호의 파괴력이 너무나 컸다. 몸에 총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서 적호를 가로막을 필요는 없었다.그러나 무진은 즉시 손건호와 서한기에게 알려서 진성의 모든 수하들을 적호의 추적에 참여하도록 했다.‘일단 찾기만 하면 바로 습격할 수 있어.’진씨 가문에서 돌아온 무진은 즉시 화상회의를 열었다.많은 WS그룹의 임원들은 모두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면서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임원들은 어떤 불만도 없었다. 무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면 일이 절대로 간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연운그룹이 내일 반드시 움직일 겁니다. 모든 계열사에 조심해야 한다고 전달하세요! 구멍이 있다면 빨리 구멍을 메우고, 없다면 한번 더 잘 살펴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세요!”무진이 지령을 내리자, 방대한 WS그룹의 각 부분이 톱니바퀴처럼 고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무진은 바로 일부 자회사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조작해서 연계진이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을 염려했다.그날 밤, 성연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뱃속의 아기는 마치 소란을 떠는 것처럼 끊임없이 위치를 바꿨다. 속을 거북하게 만들기도 했고 잠시 뒤에는 또 소변이 마려운 듯하게 만들면서 성연을 들볶았다.아침 10시 반이 되어서야 성연이 비로소 일어났다.무진은 이미 출근했고 서한기가 방금 돌아왔다. 눈 주위가 시커멓게 다크 서클이 내려앉은 모습이 어젯밤에 적호의 행방을 찾느라 잠도 자지 못하고 바빴던 게 분명했다.성연은 서한기에게 손건호와 번갈아 가며 주의하면 되니까 일단 좀 쉬라고 말했다.간식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오늘의 뉴스를 살펴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늘의 메가톤급 헤드라인 뉴스를 보게 되었다.WS그룹의 고위 임원 7명이 갑자기 실종되었고, 경찰이 이미 개입했다는 뉴스였다![오늘 아침 소식에 따르면 WS그룹의 부동산, 의류, 자동차무역, 식음료
연운그룹 빌딩, 대표 사무실. 연계진은 오늘의 헤드라인 기사를 보자 실눈이 되면서 웃었다.“하하하...정말 하늘이 나를 도와주었어! WS그룹은 이번에, 반드시 중상을 입게 되겠지!”연계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오늘 마시는 물이 왠지 달게 느껴졌다.‘어젯밤, 강무진에게 비참하게 당했던 상처가 입가에 아직도 남아 있어. 그런데 운명은 이렇게 재미있다니!’“확실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거야! 결국 7개의 자회사도 7명의 대주주도 아니라 7대 업무 부문이기 때문이지. 내가 조사해 보니 실종된 7명은 모두 그 분야의 핵심 엘리트 인재였어. 그들을 없다면 이 분야에서 WS그룹의 발전 목표도 모두 사라지게 될 거야.”비서 자리에 앉아 있는 조수경은 인터넷상의 정보를 열람하면서 연계진에게 보고했다.진씨 가문이 연계진과 혼인할 생각이 없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다.이 소식은 이미 조수경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뜻밖에도 WS그룹에 이렇게 거대한 변고가 일어났으니, 송성연이라는 그 여자도 틀림없이 똥 씹은 표정이 됐을 거야.’이 역시 엄청난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다.“수경아, 커피 한 잔 줘. 강무진이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봐야겠어! 정말 궁금하네. 도대체 누가 이런 큰일을 할 수 있을까?”연계진이 조수경에게 지시하자 조수경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유난히 개운한 마음으로 커피를 타서 언계진에게 건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연계진이 조수경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꽉 껴안은 채 곧바로 조수경을 쓰러뜨리고는 한바탕 진한 키스를 했다.형식적으로 발버둥치던 조수경도 곧 격렬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이제 더는 연계진을 뺏으려는 사람은 없겠지! 이제 다음 목표로 송성연에게 잔인하게 복수하는 일만 남았어.’...차를 몰고 WS그룹 본사로 간 성연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대표 집무실로 달려갔다.성연이 도착한 걸 본 비서가 신속하게 보고하자, 그 안에서 무진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여보, 들어와.”성연이 문을 열고
성연은 회사의 운영에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 편에게 줄 수 있는 건 남편을 지지하면서 모든 걸 처리하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다.할머니가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이 성연에게 눈빛을 보내자 성연은 바로 깨달았다.“할머니, 여기는 무진 씨에게 맡기시고 저와 함께 집으로 가요. 요즘 제 요리 솜씨가 많이 늘었어요. 제 솜씨를 한번 보세요!” 성연이 할머니의 손을 잡으면서 애교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노마님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젊은 부부가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자 긴장을 좀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강운경이 남아서 무진을 돕기로 하고 고모부도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성연은 확실하게 요리 기술을 과시하면서 무진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만약 자금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루카에게 연락하면 된다고 털어 놓았다. 결국 루카의 투자회사에는 충분한 자금이 있으니까.[당분간은 필요 없어! 이 일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야. 다만 WS그룹의 미래에 대한 영향은 좀 클 거야. 내가 지금 7명의 임원이 실종되기 전 상황을 조사하고 있어. 돈 때문인지, 아니면 원한이 있는지 항상 먼저 똑똑히 조사해야 해.][진성의 인원 중에서 일부를 빼낼 수 있어요. 적호의 행방을 추적해야 하지만, 지금 적호가 급하게 손을 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항상 손 비서하고 같이 다니세요. 나도 당신이 걱정돼요!][괜찮아! 할머니를 잘 돌봐 드려. 할머니가 너무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성연은 마지막으로 사랑의 키스를 날리자, 무진도 결국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다섯 가지 반찬과 국! 한 시간 남짓 노력해서 성연은 마침내 큰 성과를 거두었다.성연은 할머니에게 밥을 드리고 하나씩 시식하게 했는데, 할머니는 꽤 놀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성연이가 현모양처 역할을 잘 하는 모양이구나. 어쩐지 무진이가 너를 그렇게 사랑하더라니.” 할머니는 활짝 웃으셨다. 지금의 나이까지 살면서 큰 풍파를 너무나 많이 겪었다.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 것이야말로 가장 얻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성연은 머릿속에서는 반응이 없었다.‘스승님께서는 내가 마지막 제자라고 말씀하셨어. 그 전에 내가 알던 사람은 현수 사형뿐이야.’‘스승님이 그 후에 또 다른 제자를 받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어,’‘그런데 또 웬 후배?’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이를 눈치챈 안금여가 물었다. “성연아, 왜 그래?” 정신을 차린 성연은 할머니를 너무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단지 무진 씨가 바빠서 식사하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좀 있다가 찌개를 좀 끓여서 갖다 줘야겠어요!”안금여가 씩 웃었다.‘성연이의 지금 모습은 확실히 현모양처 스타일이야. 우리 무진이게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되겠지.’말을 하면 바로 하는 스타일의 성연은 한 시간 동안 찌개를 만든 뒤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밥도 잘 못 먹었겠지요. 찌개를 좀 했는데 바로 갖다 줄게요!”“당신은 나한테 정말 잘해 줘! 정말 밥 먹을 겨를이 없었는데, 그럼 당신 찌개를 먹을 때까지 기다릴게!”찌개를 배달하면서 성연이 몇 번이나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봤지만, 그 어린 사매라고 말하던 사람은 더는 아무 정보도 보내지 않았다.성연은 상대방이 한 그 말을 다시 반복해서 보았다.“WS그룹을 구하고 싶습니까?”‘이 말은 이 사람이 오늘 WS그룹에서 일어난 큰일과 관련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겠어?’곧바로 차를 길가에 세운 성연이 문자를 보냈다.“당신은 도대체 누군가요? WS그룹의 사태는 당신이 일으킨 건가요? 당신은 도대체 어쩔 생각인가요?”그리고 상대방이 답장을 보내기를 묵묵히 기다렸다.하지만 한참동안 상대방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성연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혹시 조수경이 심심해서 장난친 건가?’이런 생각이 들자, 성연은 일단 그 문자는 잠시 내려놓은 채 계속 WS그룹으로 찌개를 배달할 수밖에 없었다.대표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이미 원래의 기운을
성연은 마침내 핸드폰으로 그 전화번호에서 보내온 동영상을 받았다.동영상에는 아마도 다른 나라의 저택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일곱 명의 임원들이 꼿꼿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빈 자리에 있는 여자는 모습만 찍혔을 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성연은 놀라서 멍해졌다. 이 동영상은 두말할 것 없이 지금 WS그룹을 뒤흔든 국면을 조성한 사람이 바로 이 여자, 자칭 막내 사매라고 하는 여자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그리고 그 7명의 임원들의 상태를 보면 협박을 받은 건 아닌 것 같아.’‘스스로 원해서 WS그룹을 배신한 거야?’한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성연이 무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미 육개장을 다 먹은 무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왜 그래, 몸이 안 좋아? 혹시 뱃속의 꼬마들이 칭얼대는 거야?” 무진이 다정하게 물었다.성연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에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는 걸 숨긴 채, 억지로 버티면서 씩 웃었다.“괜찮아요, 육개장은 맛있었어요? 앞으로 시간이 나면 매일 찌개를 끓여 줄게요!”“마누라가 끓이면 분명히 맛있을 거야. 그래도 그렇게 고생하지 마. 이제 뱃속의 녀석들을 잘 보살펴야지!” 손을 뻗어 성연의 배를 어루만지면서, 무진은 정말 아이들을 만지는 듯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막내 사매’에게 빨리 다시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 모든 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알고 싶었다.‘남편이 중요 업무 분야의 책임자로 선정했다면, 분명히 WS그룹에 뛰어난 공헌을 했고 충성심도 확보했을 거야.’‘그런데 왜, 7명의 임원들이 모두 그 여자에게 매수된 걸까?’‘이것도 정말 미스터리야.’“정말 몸이 안 좋아? 여기 있지 말고 그냥 돌아가서 쉬도록 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섬세하게 살피면서 아내가 걱정이 된 무진이 말했다.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피곤하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집에 가서 좀 쉬면 돼요. 무진 씨도 너무 피곤하게
유럽, 샤넬 가문의 저택.샤넬의 배는 이미 수박처럼 동그랗게 변했고, 출산 예정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샤넬이 여전히 주전자를 들고 꽃에 물을 주고 있는 걸 본 목현수가 얼른 가서 샤넬을 부축했다.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이런 건 이제 하지 마. 이런 일들은 정원사에게 맡기면 돼. 지금 당신은 반드시 뱃속의 아기를 잘 보호해야 해.”샤넬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었다.“괜찮아요. 당신 나라에서는 출산에 대한 생각이 우리하고 큰 차이가 있어요. 임산부는 사실 생각만큼 연약하지 않어요. 내가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의사도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출산 과정에서 위험이 증가될 수 있어요!”“내가 의사인데 내 말을 들어야지, 다른 의사의 말을 듣는 거야?”목현수는 갑자기 화가 난 척하면서 샤넬의 손에 든 주전자를 빼앗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샤넬을 정원의 나무 의자에 앉게 한 뒤, 내친 김에 과일도 가져왔다.“여보, 빨리 봐요! 녀석이 또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계속 나를 차고 있어요!”부랴부랴 목현수를 소환한 샤넬이 손으로 배를 덮자, 갑자기 배에 자국이 나면서 움직였다.심지어 그게 아기의 작은 발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툭툭툭...‘정말 세게 차네!’목현수가 언뜻 보니 샤넬이 눈살을 찌푸린 모습이 아기가 걷어차서 시큰시큰한 게 분명했다. 바로 정색을 하고 아내의 배에 다가가서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이 나쁜 녀석, 그렇게 세게 네 엄마를 걷어차면 안 돼! 자꾸 그러면 나중에 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아빠가 때려줄 거야!”목현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뱃속의 아기에게 들리는 것처럼 정말 효과가 있었다. 순간 움직임이 뚝 멈췄다.“응, 그래야 착한 아기지! 우리는 함께 엄마를 보호해야 해. 매일 엄마를 괴롭히지 말고. 들었지? 네가 세상에 나오면 아빠가 재미있는 쿵푸를 가르쳐 줄게. 어때?”목현수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아내의 배를 향해 혼잣말을 했다.그런 모습을 보는 샤
눈썹을 찌푸리면서 이마를 짚은 채 입으로는 무정하게 말하면서도, 그 처량한 모습을 보자 결국 예민주에게 다가갔다.“됐어, 내 잘못이야. 나는 네가 접근하는 걸 거절한 게 아니야. 내가 결벽증이 있다는 걸 알잖아.” “젖은 옷을 휴지로 닦는 것보다는 차라리 옷을 갈아입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응?”예민주를 한 손으로 감싼 무진의 눈빛은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목소리도 조금 전처럼 뻣뻣하고 직설적이지 않았다.다른 한 손으로는 휴지로 예민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가만히 위로했다.“오빠는, 오빠는 내가 다가가는 걸 거부했어요. 여자의 젊은 시절이 얼마나 가겠어요?” “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모두 오빠에게 줬지만, 오빠는 결국 나를 이렇게 대했어요.”예민주는 말을 할수록 억울한 모습이었고, 눈가의 눈물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무진은 이런 상황을 그저 조용하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도...어쩔 수 없이 눈길을 떨어뜨린 무진의 입가에 냉담한 기색이 스쳐갔다. 예민주의 어깨에 두 손을 가볍게 걸친 채 다독이면서 말투도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이렇게 소란 피우지 마. 아직 할 일이 많아. 늦게까지 일해야 하니까, 내 말대로 빨리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오빠는 매번 이럴 때마다 도망가려고 해요. 왜 매번 그러는 거예요!”예민주는 눈썹을 찌푸린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방금 전의 눈물이 연기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말로 억울한 심정이었다.‘여자의 청춘은 천금으로도 살 수 없어. 처음에 무진 오빠에게 접근한 목적이 단순하지 않았다 해도, 요 몇 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냈어.” ‘어떻게 진실한 감정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 거야?’‘안 돼, 지금 이런 형세에서는 더 이상 무진 오빠가 도망가게 놔둘 수 없어!’이렇게 생각한 예민주는 두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다음 순간, 두 손으로 무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흐느꼈다. 시선을 늘어뜨린 예민주의 모습은 무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우리가 이렇게
책상 앞으로 다가온 예민주는 손에 든 우유를 놓고 두 손으로 책상을 가볍게 잡았다.“오빠도 아직 자지 않았잖아요. 나도 아직은 졸리지 않아요. 이쪽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오빠가 또 야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그윽한 향기가 사방으로 풍기는 듯했다. 냄새에 무척 민감한 무진은 눈썹을 가볍게 찡그렸다.그러나 눈썹만 찌푸릴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응.”단지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다시 눈앞의 서류로 눈빛을 돌렸다.예민주는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 유혹하는데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남자가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자, 마음속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이렇게 늦게까지 일했는데, 우선 좀 쉬면서 우유를 좀 마셔요.”예민주는 다시 책상에 놔둔 우유잔을 무진의 앞으로 밀었다.무진은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빠. 좀 있다가 마실 테니까 일단 한쪽에 둬.”하지만... 예민주는 무진의 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내밀었다.무진의 눈앞에 놓인 우유!“잠깐만요.”탁- 무진은 무의식적으로 거절하려고 했다. 눈앞을 가리는 우유잔을 자기도 모르게 밀쳐내는 순간, 무진의 가슴팍은 쏟아진 우유로 흠뻑 젖었다.우유 때문에 무진의 가슴이 축축하게 젖은 모습을 보면서, 예민주는 이미 다음 준비가 되어 있었다.다음 순간.자책하는 표정으로 휴지를 찾다가 무진의 오른쪽 옆에 있던 휴지에 시선이 닿았다.“어머, 무진 오빠, 컵을 잘못 놓은 제 잘못이에요... 내가 휴지로 좀 닦아 줄게요.”말을 마치고는, 반대편의 휴지를 잡은 척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무진에게 몸을 숙였다.지금 자신의 행동이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 채.예민주의 행동을 본 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빛 속에 피곤한 기색이 스쳐가더니,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서서 예민주의 접근을 차단했다.“옷을 갈아입으면 돼. 휴지로 닦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무진은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갑자기 처량한 여자의 목
무진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어?”예민주는 아주 똑똑한 여자다. 무진의 표정을 주시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오빠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럼 나는 샤워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 이미 조금 전의 느끼함은 사라졌고, 예민주는 곧바로 자기 방으로 갔다.무진을 등지는 순간, 생긋 웃던 미소는 이미 사라졌다. 입술을 꽉 다문 채, 예민주의 눈빛에는 교활한 기색이 번뜩였다.방에 온 예민주는 곧장 옷방의 가장 안쪽에서 옷 하나를 꺼냈다.이 옷은 자신이 일찌감치 준비해 둔 ‘비밀무기’다. 예민주는 빼어난 몸매를 자랑했다. 외국의 풍만한 글래머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바디 라인도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무진이 5년 동안 줄곧 자신과 교재하면서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선을 넘는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그전까진 그렇다고 쳐. 틀림없이 무진 씨가 내게 최고를 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으니까.’‘그러나 오늘 연회장에서 송성연을 봤을 때, 무진 씨의 눈빛과 반응은 여전히 당황스러웠어.’‘아무래도 좀 더 일찍 행동해야 할 것 같아.’몇 분 뒤.예민주는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아래층.“프로젝트 계획서는 바로 내 이메일로 보내고, 내일 아침 9시에 회의를 하기로 하지.”“오후에 처리하지 않은 서류도 함께 보내도록 해.”투명하고 거대한 통유리창을 통해서, 실내에서도 파도치는 바다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지금 그 창가에는 무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통화하고 있지만, 무진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집에서 식사하던 중에 전화로 대표의 지시를 받게 되자, 상대방은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최근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세력이 WS그룹의 사업을 줄곧 비밀리에 차단해 왔지만, 누군지 파악하려고 해도 언제나 실패해서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이런 의미 없는 일은 사람을
해변의 별장.‘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법이야. 누구라도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쉽지 않아.’오늘 성연을 보자, 순간 예민주의 마음은 흐트러졌다.‘송성연이 돌아온 목적이 뭘까? 나를 겨냥한 걸까?‘그 당시 송성연은 단지 조금밖에 몰랐잖아...’돌아온 후부터 예민주는 줄곧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자신의 기억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느라, 뒤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무진은 약간의 결벽증이 있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첫 번째 하는 일은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지금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소파 앞에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예민주를 발견했다.“민주, 오늘 돌아온 뒤로 왜 좀 이상한 거야?”예민주의 소파 옆에 앉은 무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성연을 겨냥할 방법을 찾던 에민주는 무진의 말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와, 왔어요?”긴장한 탓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온 후에 줄곧 여기에 앉아 있었어.”예민주는 눈썹이 움츠러들면서 순간 당황했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성연의 잘못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송성연이 갑자기 돌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긴장했겠어?’‘외국에 잘 처박혀서 살다가, 왜 계속 외국에 있지 않고 꼭 돌아와서 내 행복한 생활을 방해하겠다는 거야!’마음속으로 한바탕 욕을 하자, 마음은 오히려 아까보다 많이 상쾌해졌다.약간 굳은 표정의 예민주가 서글픈 표정을 하고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탄했다.“무진 오빠, 단지 오늘 연회에서 감정이 좀 복받쳤을 뿐, 아무 일도 없어요.”보아하니 오늘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호기심 때문인지 지금 무진은 뜻밖에도 이에 대해서 흥미를 보였다.“무슨 감정이 복받치는 일이 있었는지 한번 말해 봐.”무진이 뜻밖에도 먼저 자신에게 고민을 말해보라고 하는 말을 듣자 예민주는 다소 의아했다.요 몇 년 동안 둘이 사이
성연은 원래 안금여와 아이들에게 이 만남의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오늘은 아이들이 ‘아빠의 신분'을 묻지 않았지만, 앞으로 할머니와 자주 만난다면 오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야.’하지만... 지금 성연은 약간 망설였다.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안금여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그리고 머리도 잘 보이지 않는 두 아이가 각각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우리 손자놈이 귀신에 홀렸는지, 그런 황당한 행동을 해서 정말 네게 죄를 지었어!”안금여는 지금 이미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양심의 가책이 가득한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면서 작은 소리로 무진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급히 일어나 막으려 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살짝 움직였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지금 성연의 과도한 반응은 단지 자신이 너무 절박하게 보일 뿐이다.한참 뒤.결국 모질게 마음을 먹지 못한 성연은, 안금여에게 두 아이를 자주 보러 와 달라고 부탁하며 타협해야 했다.산 중턱 별장 대문 쪽.성연은 양쪽에 두 아이를 데리고 문 앞에 서 있었다.“돌아가신 뒤에는 건강에 주의하시고 너무 과로하지 마세요.”성연은 노부인에 대해서 여전히 약간의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다.결국 자신이 강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할머니는 성연을 정말 아꼈다. 비록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시절에 무진이 이혼을 결정했을 때도, 안금여는 여전히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말리려고 했다.비록...결국 효과는 없었지만.“엄마, 앞으로도 증조할머니를 자주 볼 수 있을까?”검은색 벤틀리가 점차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시선에서 멀어지자, 사진이 고개를 들어 성연을 바라보았다.“너는 증조할머니가 좋아?”딸아이의 이 말을 듣고도, 성연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고개를 까닥거리는 아이의 두 뺨이 반짝거려서 정말 손에 꼭 쥐고 싶었다.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복잡함에 입술을 살짝 오므
한 시간 후.성연이 서재로 걸어 나왔다. 계단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아래층에서 전해지는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성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깊고 맑은 눈동자는 아래층을 향했다. 세 사람의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자, 마음속에 다소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증조할머니, 빨리 보세요. 사진이가 만든 게 이게 뭔지 아세요?”“증조할머니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 귀여운 사진이가 작은 호랑이를 만들었을 걸.”아이들도 어른이 자신에게 맞춰서 노는 걸 좋아했다. 노는 이 시간이 두 아이에게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안금여가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는 걸 듣자, 사진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작은 얼굴은 이미 안금여의 품에 거의 파묻힐 정도였다.“맞아요, 증조할머니는 너무 똑똑해요. 이거, 이거, 이거는 작은 호랑이고, 사진이는 몽둥이에요. 아주 비슷하게 만들었지요.”자상한 표정의 안금여는 한 손으로 사진의 이마 위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어루만졌다.“우리 귀염둥이 사진이가 하는 건 뭐든지 최고야. 증조할머니는 가장 맘에 들어.”이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든 사진은, 포도처럼 동그란 큰 눈을 반짝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히히히.”소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성연은 한참동안 있었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도, 세 사람이 그렇게 즐겁게 노는 모습을 어떻게 깨뜨려야 할지 몰랐기에.지금 이 조그만 녀석이 줄곧 강씨 가문의 할머니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자, 정말 견딜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다.“사진아. 계속 증조할머니한테 기대면 안 돼. 할머니가 힘드셔서 안 돼.”갑자기 엄하면서도 가볍고,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위엄이 있는 목소리가 뒤에서 흘러나왔다. 성연도 이미 소파 앞으로 다가왔다.“엄마!” 엄마를 본 사진이 달콤하게 소리쳤다.성연의 차분한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약간 느슨해 보이는 입꼬리는 오히려 친근감을 주었다.그러나 성연은 맞은편을 바라보는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증조할머니는
두 아이가 지금 자신의 옆에서 즐겁게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안금여의 그윽한 두 눈에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결국 안금여는 감정은 잠시 가슴속에 담아두기로 결정했다.잠시 후, 안금여는 다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얘들아, 증조할머니하고 함께 노는 건 어때?”“좋아, 좋아요, 증조할머니 너무 예뻐요. 사진이는 예쁜 증조할머니와 같이 노는 게 좋아요!”사진은 아주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눈빛에는 흥분이 가득했고, 안금여에 대해서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진이 방금 전 안금여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자신에 대한 아이의 이런 열정을 알게 되자, 안금여의 마음도 당연히 즐거웠다. 눈가의 미소도 끊임없이 이어졌다.옆에서 줄곧 말수가 적은 사무도 비록 말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안금여의 옆에 있으려고 했다. 안금여가 자신을 계속 안고 있어도 전혀 거절하지 않았다.“증조할머니. 이게 무슨 모양인지 보실래요?”“이거? 이런 추상적인 도안은 정말 증조할머니한테는 어려운 걸. 증조할머니가 한번 생각해 볼게.”안금여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하면서 장난감을 쥐고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되자, 안금여의 마음도 한결 밝아졌다.그렇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마음속에 궁금하던 걸 물어보았다.“우리 귀염둥이들, 너희들은 요 몇 년 동안 외국에서 잘 지냈니?”사진은 아래턱을 약간 치켜세우면서 엉뚱한 대답을 했다.“아니요, A국에 있을 때는 이렇게 재미있는 장난감도 맛있는 것도 없었어요. 모두 단 음식만 있었어요.”어린 사진은 작은 소리로 항의하듯이 말했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항의했지만, 점점 흥분하면서 점차 소리도 커졌다.작은 입으로 계속 재잘거리면서 사진의 눈꼬리는 목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눈살을 찌푸렸다가 웃으면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증조할머니, 운성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요!”사진은 잔뜩 뾰로통한 모습으
‘전혀 감정이 없다면, 아이의 이름도 그렇게 짓지 않았겠지.’이렇게 생각하자, 안금여는 셩연의 눈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다.안금여의 품에 안긴 사진은 아주 여유 있는 자세였다. 한쪽 손은 허리춤에 걸치고 한쪽 손으로 즐겁게 간식을 먹으면서도 아주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갑자기 고개를 든 사진이 뭔가 탐구하려는 욕망이 가득한 표정으로 안금여를 바라보았다.“증조할머니, 우리 아빠 할머니가 맞아요?”눈에 한껏 미소를 짓고 있던 안금여는 사진의 이 말을 듣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멍한 눈빛으로 변하면서, 입은 천근만근인 것처럼 전혀 입을 뗄 수가 없었다.입술을 벌린 채 안금여의 눈길은 맞은편의 성연에게 향했다.성연도 아이가 지금 이런 말을 물을 줄은 몰랐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잠시 생각을 멈추고 한순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우리 귀염둥이, 엄마하고 오빠, 이렇게 셋이서 약속했잖아? 잊어버린 거 아니야?”성연의 눈길에는 온정이 어려 있었다.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태연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갖추고 있었다.‘마치... 마치 이미 어떤 약속이 있었던 것 같아.’과연 성연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안금여의 품에 안겨 있던 사진의 얼굴에서는 이미 조금 전의 궁금하던 기색이 없어졌다. 눈동자를 살짝 굴리는 영리하고 귀여운 사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웠다.“아, 내가 잊었다. 엄마하고 우리 사이의 약속인데, 사진이가 반드시 지켜야 해!”‘마치 선서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한 아이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탄복할 수밖에 없어.’‘이렇게 어린 아이인데 정말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어.’“성연아, 요 몇 년 동안 너 혼자 이 두 아이를 돌보느라 정말 고생했어.”성연이 아이에게 말을 걸 때의 그 기세와 아이의 반응을 보자, 안금여의 눈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반짝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안금여의 말을 듣자, 테이블 위에 놓인 성연의 손가락이 살짝 멈칫했다. 마치 명치 부분을 은은하게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다.5년 동안 자신이 아이를
“안녕하세요, 증조할머니, 저는 송사무입니다.”남자아이는 여전히 냉담한 표정이지만, 뜻밖에도 손을 뻗어서 자신의 태도를 나타냈다.바로 앞에 있는 증손자의 작은 손을 멍하니 보던 안금여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답하면서 사무를 품에 안았다.“이름이 뭐라고?”주변에 어떤 시끄러운 소리도 없고 방해받지 않았는데도, 안금여는 결국 자신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이전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사무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그러나 안금여가 말을 하자마자 사무는 어떤 감정도 없이 다시 대답했다.“송사무요.”“사무, 사무라! 그래, 아주 좋은 이름이구나!”안금여는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어린 증손자의 손을 끊임없이 어루만졌다. 심지어 꿰뚫어 보듯이 사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었다.아까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아이를 안고 보니, 사무의 이목구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은 완전히 무진이 축소판이잖아!’‘이 녀석은 완전히 자기 아버지하고 판박이야.’‘무진이 어릴 때 사진하고 지금 안고 있는 아이를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을 거야!’“그래, 이 아가는 이름이 뭐야?”사진이 맞은편에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오빠를 보자, 할머니와 증손자 두 사람의 모습은 아주 온화하고 따뜻해 보였다. 성연의 품속에 안겨 있던 사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성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한이 가득한 성연의 눈은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사진이 츤데레한 말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흥, 할머니는 오빠만 좋아하고 나는 안아주지도 않으니까, 내 이름을 안 가르쳐 줄 거야!”성연은 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딸을 안고 있던 손에 힘을 약간 주면서 ‘귀염둥이’를 가볍게 끌어당겼다.“흥!”“아이고, 우리 증손녀 아가야! 증조할머니가 잘못했어. 증조할머니 잘못이야! 같이 안아 줄게. 자, 할머니한테 이리 오렴!”말을 하면서 안금여는 온통 기대하는 표정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