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과 무진의 뒤를 쫓던 인물은 고성 주변을 빠르게 누비고 있었다.이리저리 여러 차례 뱅뱅 돈 후에 사람들의 추적을 피해 한 찻집으로 들어왔다.찻집 안의 룸에는 훤칠한 체구의 남자가 꽃을 조각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차를 따르는 동작은 막힘이 없이 아주 자연스러웠다.“미스터 안, 두 사람을 바로 없애 버릴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턱에서 광대뼈까지 죽 그어진 칼자국이 있었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안진검은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동작으로 맞은편의 남자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가볍게 보지 말고 계속 추적해.”적호의 온몸에서 살기가 넘쳐났다. 혈관 내에서는 피에 굶주린 흥분감이 흘러넘쳤다.그러나 일격에 죽이는 건 결코 안진검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안진검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금방 도로 토해냈다.“퉤퉤퉤, 이건 뭐야, 쓰고 떫은 이런 걸 어떻게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안진검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차를 음미하면서 중시하는 건 인내심이야. 오직 한 겹 한 겹 음미해 나가야만 차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지. 한번에 들이켜는 건 좋은 차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해. 우리 계획도 이와 같은 이치야. 그물을 넓게 펼쳐야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듯이.”안진검의 품위 넘치는 말을 듣던 적호가 바로 손사래를 쳤다.“그래, 당신 말 대로 할 테니 계획이 있으면 얼른 말해. 나는 이미 기다릴 수 없을 지경이야.”“당신이 칼에 피를 공급하는 건 알고 있어. 기회가 있으면 통쾌하게 죽이게 해줄게.” 안진검은 잔에 든 차를 한 번에 다 마셨다.허허 웃는 적호의 눈에 핏발이 섰다.고성 주변의 오래된 마을은 북성에서 가깝지는 않았다.무진과 성연은 현지의 호텔에 바로 투숙했다.“오늘 우리를 미행하던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성연은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프로였어.” 무진이 눈썹 앞머리를 치켜 세웠다.“그럼 당장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성연의
밤의 장막이 내리자, 고성 안에서는 고개만 들면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볼 수 있었다.빽빽하게 빛나는 별들이 고성을 별빛으로 감싸면서 고성에 신비한 베일을 덧입혔다.성연은 식당 위쪽에 있어서 고성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둔치 옆에는 초롱이 걸려 있었고, 때때로 유람선이 물길을 천천히 가로질렀다.이런 평온하고 한적한 생활 스타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성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저녁을 다 먹은 뒤, 무진은 성연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둔치를 따라 산책했다.한 집 건너 한 집 식으로 100% 수공예 노점들이 늘어져 있었다.종이우산과 여우 가면, 그리고 수제 자수를 놓은 향주머니도 보였다.성연은 붉은색 향주머니 두 개를 들어올렸다. 잉어 두 마리를 아주 정교하게 수를 놓은 향주머니는 생동감이 넘쳤다.향주머니를 산 성연은 무진에게 하나를 건넸다.“자, 우리 두 사람 각자 하나씩 가져요. 잃어버리면 안 돼요.”성연이 정식으로 무진에게 선물을 한 것은 이게 처음이다.하찮은 물건이지만 성연의 정성을 가득 담고 있었다.“그래.”무진은 향주머니를 양복의 안주머니에 넣어서 소중하게 지니겠다는 뜻을 표시했다.무진의 팔을 잡은 성연의 입꼬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그들은 식당에서 호텔까지 걸어갔다.어두컴컴한 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성연은 무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평생 이렇게 지내면 좋겠어요.”“네가 바로 내 평생이야.” 다소 썰렁한 목소리였지만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고 정중하게 약속했다.코가 시큰거리자 성연이 무진의 팔을 콕 찔렀다.“왜 갑자기 그렇게 말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거예요?”“난 진심이야.”성연의 어깨를 붙잡은 무진. 아득할 정도로 깊고 검은 무진의 눈동자가 성연의 눈을 똑바로 비추었다.잠시 멍해 있던 성연은 점차 그의 눈에 비친 표정에 이끌리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두 사람은 온 하늘의 별빛 아래에 서 있었다.서로의 신념이 지척에 있었고 분위기도 딱 맞았다.무진이 천천히 다가왔
북성으로 돌아온 무진은 잠시도 쉬지 못한 채 바로 더 많은 수하들을 모았다.이터너티의 용병들까지 모두 출동했다.이터너티는 그들 조직에만 속하는 방대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그 인맥으로 전국 구석구석까지도 침투할 수 있다.한밤중의 엠파이어 하우스.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고, 서재에만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돌아온 후 잠이 들었던 성연이 깼을 때까지도 무진은 계속 쉬지 못했다.아래층에 내려간 성연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국수를 말아 무진에게 들고 갔다.얇은 옷을 걸친 채 데스크 앞의 의자에 앉아 있는 무진. 밤을 지새운 눈에는 핏발이 서 있어 몹시 피곤해 보였다.“어떻게 그렇게 얇게 입었어요? 자기 몸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왜 몸을 아낄 줄 몰라요?” 책상 위에 국수를 놓고 돌아간 성연은 담요를 가져와서 무진의 몸을 덮었다.무진은 말없이 몸에 담요를 단단히 둘렀다.성연이 어쩌지 못하고 다시 잔소리하기도 했지만, 무진 역시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이다.성연은 국수를 테이블 위에 올린 후 앞으로 밀며 말했다.“국수가 아직 따뜻해요. 뜨거울 때 먹어요. 보니까 무진 씨 저녁도 별로 안 먹은 것 같던데, 또 이렇게 밤을 샌 거예요?”성연은 입으로는 잔소리투성이지만, 구구절절 관심과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또 무진이 너무 짜게 먹지 않도록 따뜻한 물을 한쪽에 따라주었다. ‘성연이, 말투는 날카로운 듯해도 역시 마음은 부드러워.’무진의 마음도 따뜻해져서 국수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수고했어.”가볍게 한숨을 쉰 성연이 턱을 괸 채 무진의 곁에 앉았다.“일이 진짜 그렇게 까다로워요?”“까다로운 편은 아니야. 조사해 보면 아무래도 좀 안심이 되겠지.”‘미행한 대상은 나와 성연이야.’‘목표는 우리 두 사람, 또는 두 사람 중 한 명이야.’누가 목표이든 그들은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다.’누군지 빨리 알아내야지 좀더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성연은 확실하게 깨달았다.“내가 여기 있어 줄게요.” 성연은 무진이 스
무진은 배후에서 적호를 매수한 사람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MS 가문은 지난번 반격에 승복할 수 없는 모양이군.’제이슨과 오웬 모두 MS 가문의 중요한 인물들이었다.늘 자부심 강하던 MS 가문에서 중요 인물 두 사람이 동시에 변을 당하자, 그 분노를 속으로 삭힐 수가 없었던 게 분명했다.‘의심의 여지가 없어. 적호는 MS 가문에서 보낸 놈이 틀림없어.’무진은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성연이 걱정될 뿐.‘적호,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조금만 방심해도 위험에 노출될 거야.’다음날, 잠시 눈을 붙인 무진은 성연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무진이 성연에게 죽을 떠준 후에 우유도 따주었다.“당분간은 집에서 지내. 공부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뭘 해도 돼. 하지만 당분간 밖은 돌아다니지 마.”적호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성연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성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무진 씨도 조심해야 해요.”무진의 미간은 내내 펴질 줄을 모르는 상태다.“어제 일은...”성연이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처음엔 이것저것 캐물을 생각은 없었지만, 무진이 저러는 걸 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싶었다.“우리를 미행하던 놈은 MS가문에서 보낸 놈이야. 지난번에 공개적으로 MS 가문을 도발했더니 지금 나를 죽일 작정을 한 것 같아.”무진이 두어 마디 말로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성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뿐만 아니라 무진이 자신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은 사실이 긴박한 외부 상황을 더 잘 말해 주는 것 같았다.‘보아하니 무진 씨가 곤란한 문제에 부딪친 모양이야.’“MS가문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MS 가문에 대해 성연이 느끼는 혐오감은 절대 작지 않았다.“A국 시장을 빼앗아서 우리 WS그룹을 무너뜨리려는 거겠지.”성연이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그 사람들, 정말 꿈도 크네요!”“어쨌든 MS 가문은 상대하기 쉽지 않아. 성연이 네가 집에 있어야 내가 안심할 수 있어.”저들의 목
꽤나 힘을 쏟아 붇고 또 적지 않은 인원을 희생시킨 뒤에야 비로소 적호의 행적을 쫓을 수 있었다.무진이 직접 수하들을 데리고 적호의 임시 처소로 향했다.교외의 어느 한 별장.주위에 인적이 없을 정도로 황량한 가운데, 바로 이 별장에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었다.담력이 약한 수하들은 벌써 침을 꼴깍 삼켰다.무진이 침착한 음성으로 지휘했다.“손건호, 너는 애들을 데리고 왼쪽으로 가. 나는 애들을 데리고 오른쪽으로 갈 거야. 적호를 포위한 후에 도망갈 기회를 절대 주지 마.”“예.”두 조로 나뉜 사람들이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고요하고 캄캄한 밤에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뚜렷하게 들렸다.“쾅.” 무진이 굳게 닫힌 별장 문을 걷어찼다.그 힘을 견디지 못한 문짝이 흔들리더니 다시 ‘끼긱’ 소리를 내면서 튕겨져 나갔다.수하들이 흔들거리는 문을 잡아 고정해서 무진이 들어가게 도왔다.재빨리 달려온 손건호가 무진의 곁을 지키면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했다.1층에서 2층까지 천천히 수색하였다.별장 안에서 사람이 기거했던 흔적을 어렴풋이 찾아볼 수 있었다.쓰레기통에는 엊그제 주문한 배달 음식 상자도 있었다.아무래도 적호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것 같았다.이쪽에서 들이닥치기 전에 먼저 도망쳤는지, 그들이 왔을 때는 이미 달아난 뒤, 별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안팎으로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별장 내에 사람이 기거했다는 점을 알아낸 것 외에는 전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잔뜩 화가 난 무진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꽤 오랜 시간을 쫓아다녔는데도 결국 놓쳤어.’“보스, 이것 좀 보세요...”손건호가 손에 물건을 하나 들고서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무진이 손을 뻗어 건네받았다.그것은 총알인데 총알 위에는 호랑이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무진의 동공이 수축했다.“이 총알, 어디서 발견했어?”“바로 저 구석방의 테이블 위에 총알이 놓여 있었습니다.”무진이 총알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면서 생각에 잠겼다.‘이건
북성에서 일년에 한 번 열리는 경제인 모임.각계의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권력자들 또한 모두 참석하는 모임이기에 그들과 인맥을 쌓고 세를 불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조건에 부합되는 사람만 초청되는 모임이다.이 모임 자체가 지니는 엄청난 가치 때문에 초대장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온갖 지혜를 다 짜낸다.바로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 한두 명의 거물과 연결만 되면 빠른 출세길은 보장되는 셈이다.그리고 무진은 항상 이 모임의 최우선적으로 초대되었다.비교적 젊은 경제인들 사이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인물이기 때문.무진은 이 경제인 모임에 초대를 받았지만 원래 거절하려던 터였다.아무래도 모임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데다가 적호라는 잠재적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터라 안심할 수가 없었다.무진이 거절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모임 주관자가 무진을 한참 설득했다.설득을 해도 아무런 성과 없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오후, WS그룹에서는 모임을 주관하는 서 회장의 방문을 맞이했다.무진이 직접 나가서 서 회장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은회색 수트에 은테 안경을 쓴 우아한 중년의 신사, 서 회장.“강 대표가 이번 모임의 초대를 거절했다면서요?” 시원시원한 성격의 서 회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옆에 선 비서 손건호가 두 사람의 잔에 차를 따랐다.무진이 찻잔을 들고 살짝 한 모금 마셨다.서 회장과는 예전부터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라 할 수 있다.초대를 거절한 게 솔직히 좀 미안하기도 했다.그래서 무진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제 신변상의 안전 문제 때문입니다. 경제인 모임에는 경호원을 대동할 수가 없잖습니까?”서 회장도 찻잔을 들어올리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이번 모임은 정부 당국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깥에 실탄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죽음을 자초하겠습니까!”이런 때에 총구를 향해 달려드는 눈먼 자는 없을 것이다.정부의 엄호 아래 어떤 도발
무진이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왔다.무진이 출근한 이후, 성연이 정원을 산책하거나 책을 보는 동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성연아, 가서 드레스 골라 봐. 오늘 저녁에 나하고 같이 경제인 모임에 참석해야 해.”무진이 수트 상의를 한쪽에 내려놓은 후에 소파에 앉았다.“알았어요.” 성연의 방에 있는 한 옷장에는 드레스가 가득 들어 있었다.모두 안금여와 강운경이 선물한 것들이다.입어보지도 않은 옷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나갈 필요가 없었는데, 마침 유용하게 쓰이게 됐네?’“내가 샵에 말해서 좀 갖고 오라고 할까?”무진이 물었다.“아니요, 옷 많아요.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내려 올게요.” 성연이 손사래를 치면서 위층으로 뛰어갔다.무진과 같이 모임에 참석한다는 생각에 성연은 기분이 좋았다.‘사람들에게 언행을 자제하도록 선언할 때가 되었어.’‘모임 내내 얼굴에 철판 깔고 무진 씨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지. 무진 씨에게 임자가 없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게 말이야.’지난 번 생일 파티를 제외하면, 무진이 성연을 데리고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이번이 두 번째.그러니 반드시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한다.성연은 옷장 안을 한참 동안 뒤진 끝에 살구색 드레스를 골랐다.어깨 위로 같은 톤의 숄을 둘러 매치하게끔 된 의상이다.온화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디자인이 완벽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드레스를 입은 성연은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시작했다.드레스에 맞춰 헤어 드라이어로 웨이브를 만들어서 더욱 성숙해 보이게 했다.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도 다 생략하고 성연 혼자서 다 끝냈다.성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고개를 든 무진의 눈에 놀란 빛이 스쳤다.무진이 몇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성연의 손을 잡았다.“정말 예뻐.”...경제인 모임이 열리는 연회장.화려한 조명들이 연회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연회장에 있는 남성들은 모두 연미복을, 여성들은 화려한 드레스로 성장한 모습들이다.북성에서 내노라 하는 사람들은 거진
‘저 아가씨가 전에 시골 출신이라고 알려졌던 강무진의 약혼녀라고?’다들 믿기지 않는 듯했다.예전에 무진이 성연과 약혼했을 당시, 북성의 상류층에서는 한동안 두 사람을 비웃었다.미친 놈과 시골뜨기 커플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그러나 이후 무진이 점차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경악시켰다.그리고 잘 생기고 능력도 뛰어난 그는 WS그룹을 손에 쥐게 되었다.명문가 여식들이 모두 무진과 맺어지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그런데 무진이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때에 약혼녀가 생긴 것이다. 연회장 내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연을 질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왜? 가장 갖고 싶은 남자를 송성연이 뺏아 갔으니까.만약 송성연이 재빨리 강무진을 낚아채지만 않았더라면, 자신들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성연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에는 강렬한 적의가 들어있었다.적의 가득한 시선을 성연도 느꼈지만 대범한 모습으로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다.성연의 목적은 연회장 내의 여자들에게 강무진의 약혼녀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눈으로 직접 봤으니 됐어.’무진이 연회장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무진에게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 아이고, 강 대표가 안 오는 줄 알았어요.”“지금 강 대표는 우리 북성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네, 정말 대단해.”“강 대표, 우리 지난번에 이야기하던 그 교외 부지는 생각해 봤습니까?”사람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서 무진은 연회장 내 가장 핫한 인물이 되었다.무진의 곁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점차 가로 밀려난 성연은 무진의 곁에서 떨어졌다.성연은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어떻게 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는가?지금 무진의 지위는 예전과 달라졌다.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 성연의 신분은 자연히 무진과 어울리지 않았다.‘어쩌면 사람들은 나를 무진 씨 주변의 꽃병이나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할 지도 몰라.’사람들이 무진을 빼곡하게 에워싼 채 점점 안으로 들어가던 순간.갑자기 무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