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저녁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밖에서 산책을 했다.소지한이 갑자기 성연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겠다고 했다.성연은 바로 승낙하지 않고 무진을 바라보았다.“소지한이 온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오늘은 성연과 무진의 두 사람만의 날이다. 성연은 방해를 받은 무진이 화를 낼까 봐 걱정했다.“오라고 그래.” 소지한이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한 무진이 승낙했다.성연은 주소를 말한 뒤 카페에 앉아서 소지한을 기다렸다.곧 소지한이 찾아왔다.원래 그는 성연과 무진 사이에 갈등이 생길까 봐 걱정했다. 그때의 일은 소지한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자신이 굳이 성연을 콘서트에 오게 하지 않았다면 성연이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 성연과 무진은 나란히 앉아서 꼭 붙어 있었다.아주 다정하고 달콤한 자태였다.그래서 소지한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괜히 지난 일을 다시 들추어서 일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소지한이 성연에게 웃으며 말했다.“성연 씨, 강 대표님. 아니 이렇게 두 분 사이가 좋은데 결혼은 언제 하실 겁니까?”“참견이 심하군요.” 성연이 아주 딱딱하게 말했지만 볼은 이미 살짝 붉어졌다.이 화제가 성연을 쑥스럽게 하는 게 분명했다.무진이 고개를 돌려 성연을 바라보았다.“나는 빨리 결혼하고 싶지만...”성연이 고개를 숙인 채 감히 무진을 바로 보지 못했다.소지한이 옆에서 무진을 부추기면서 다시 불을 지폈다.“성연씨, 강 대표님은 태도를 표명했는데, 성연씨는 하고 싶은 말이 없나요?”이미 나이가 찬 무진이 하루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 소지한이다.‘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분명히 있겠지?’‘강무진은 성연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고 기다릴 수 있을 거야.’성연은 바로 고개를 들어 소지한을 향해 빈정거렸다.“어차피 우리 두 사람 항상 함께 할 건데,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소지한 씨부터 먼저 여자 친구를 찾은 뒤에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네요.”치
소지한을 이제 다 놀렸다고 생각한 성연은 본론으로 돌아갔다.“소지한 씨는 지금 정말 연예계에서 은퇴한 거예요?”소지한이 머리를 끄덕였다.“아직 몇 군데는 계약 해지와 관련해서 처리를 해야 하지만. 다른 건 이미 다 처리했어요.”“좋아하면서 왜 계속 하지 않는 거예요?” 성연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소지한이 대답했다.“스타는 젊음과 매력을 무기로 돈을 벌지만 유통기한이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나 나름의 책임감도 가지고 있어요. 가장 좋은 모습을 팬들에게 남기는 것도 나쁠 건 없지요.”성연은 알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성연은 소지한의 콘서트에서 울부짖던 팬들을 떠올렸다.‘그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는데도 소지한이 이렇게 은퇴한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좀 아쉽네.’소지한이 무진에게 시선을 돌렸다.“강 대표님, 사업과 관련해서 제가 좀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네, 말씀하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지금 해외무역 쪽으로 발을 들여놓아도 되겠습니까? 해외무역 방면에 생각이 있습니다.”소지한 역시 시장 조사를 해 본 결과, 시장성이 상당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겉으로 아무리 좋아 보여도 경험이 있는 사람보다 더 잘 알 수는 없는 법.그래서 자신이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는 강무진에게 제일 먼저 확인해 보고 싶었다.앞에 있는 강무진은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의 스승이 분명했다.무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지금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물론 아프리카나 중동 일부 국가들 같은 경우는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고려하는 게 타당할 겁니다.”아무런 근거 없이 무작정 조언해 줄 수는 없었기에 확답은 일단 유보해 둔 채.‘지금 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여도, 시장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니 다음 순간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투자한다고 해서 반드시 큰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고.’한번 그 길로 빠지면 한동안 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꽤 높았다.‘역시 신중한 게 상책이야.’“강 대표님은
두 사람은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옆에 있던 성연은 끼어들 틈도 없었다.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두 사람, 뭐 마실래요? 제가 커피를 좀 뽑아 올게요.”무진이 먼저 성연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나는 다 괜찮아. 네가 원하는 걸로 가져다줘.”무진은 성연이 심심해할까 염려가 되었다.소지한도 옆에서 총알같이 대답했다.“저도 강 대표님과 같이요.”성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카운터로 다가갔다.성연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던 무진이 고개를 돌려 소지한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회를 포착한 듯이 다그쳐 묻기 시작했다.“소지한 씨, 혹시 목현수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습니까?”소지한은 강무진이 왜 갑자기 목현수의 이름을 언급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그러나 조금 전 자신의 사업에 대해 무진이 기탄없이 조언해 준 걸 생각해서 소지한 역시 사실대로 말했다.“목현수에 대해서라면 잘 압니다. 왜 그러십니까? 강 대표님.”자신과 목현수의 사이를 말할라치면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가야 한다.“목현수 씨를 본 적이 있습니까?” 목현수라는 인물을 언급하면서부터 무진의 표정이 짐짓 굳어졌다.달리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무진의 기운이 싸늘하게 변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다시 성연을 떠올리던 소지한은 바로 간파했다. ‘이건 강무진이 목현수를 무척 의식하고 있다는 건데, 음, 연적이 될까 걱정하는 거지?그러나 목현수가 아주 강력한 상대인 건 분명했다. 성연의 마음속에 아주 큰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만난 적이 있긴 한데, 강 대표님은 어떤 부분에 대해 알고 싶으신가요?” 소지한이 물었다.“성연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알고 싶어요.” 무진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목현수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고 돌아온 후, 무진 역시 목현수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묵서한에 대한 것들은 대부분 최고의 보안등급으로 여겨져, 일부 기본적인 자료들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이른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소지한은 곧 입을 열어 목현수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말했다.“목현수는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성연이의 사형인데, 놀라운 의술을 가졌죠. 그런데 성연의 스승이 목현수를 사문에서 쫓아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사정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묵현수는 예전부터 한결같이 암암리에 성연을 보호하고 있어요.”애초에 목현수가 사문을 떠났을 때, 상심한 성연이 한동안 자신을 찾아와서 울며불며 하소연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런 얘기는 강무진 앞에서 할 필요가 없지.’성연이에게 있어서 목현수가 아주 좋은 사형인 것은 확실하다.자초지종을 듣고 난 무진은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목현수가 유럽에 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지난 시간,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 성연과 만나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계속 성연의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무진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다.성연이에 충분히 잘해 주지도 못했다.성연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보다 더 오랜 시간 성연과 함께 했다. 심지어 자신은 성연이 위험할 때 옆에서 지켜보며 보호할 방법이 없었다.무진의 안색이 점점 침중해지자, 소지한은 속으로 기억을 떠올려 봤다.‘설마 내가 두 사람을 비교하는 말을 한 건 아니겠지?’이런 것들이 무진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지한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소지한은 자신이 한 말들 때문에 성연과 무진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소지한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강 대표님, 너무 많이 걱정하지 마세요. 성연 씨가 진짜 강 대표님을 좋아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제일 중요한 거죠.”무진은 소지한의 말을 듣고 마음이 다소 안정되었다.커피를 뽑아 돌아온 성연의 눈에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분위기가 어째 상당히 진지한 것 같은데?’성연은 무진과 소지한의 테이블 위에 커피를 올려놓으며 물었다.“왜 그래요? 뭐가 그렇게 심각해 보여요?”소지한은 해명하고 나섰다.“
“어디예요?” 호텔 로비에 선 여자가 수상쩍은 모습으로 부지런히 주변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301호야, 올라와.” 휴대폰 건너편에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어둠 속에 묻혀 있던 신형이 걸어나왔다. 바로 조수경이다.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얼굴을 철저하게 가린 상태.위층으로 올라간 조수경은 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다.똑, 똑, 똑.301호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 문이 열렸다.그리고 조수경을 안으로 홱 끌어당기더니 곧바로 얼굴을 덮치며 입술을 부딪혀왔다.남자의 목을 반쯤 껴안은 조수경이 손으로 살짝 밀어내는 제스처를 취했다. 거부하는 듯하면서도 적극 입을 맞추는 태도였다.키스를 끝낸 후, 조수경이 손가락으로 남자의 이마를 살짝 짚으며 따졌다.“왜 이렇게 조급하게 굴어요?”조수경을 끌어안고 있는 손민철의 두 눈에 정욕이 끓어오르고 있었다.“그러는 넌?”조수경이 코웃음을 치며 먼저 키스를 시작했다.한밤중이 되어서야 비로소 잠잠해진 두 사람.손끝에 담배를 끼운 채 침대보드에 기댄 손민철.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작은 새처럼 조수경이 손민철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지난번에 말했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조수경의 손끝이 손민철의 가슴을 따라 가볍게 미끄러졌다.손민철이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몸을 돌려 조수경의 몸 위로 올라갔다.“오늘 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조수경이 간드러지게 웃자 눈이 가느다랗게 접혔다.“당연히 당신이 그리웠기 때문이죠.”손민철이 조수경의 입술을 깊이 베어 물었다.“내가 널 도울 거야.”적극적인 조수경 앞에서 손민철은 저항 능력이 전혀 없었다.“역시 우리 민철 씨가 진짜 남자야.” 조수경은 능동적으로 손민철의 몸 위에 올라앉았다. 하지만 눈에는 혐오의 기색이 떠올랐다 사라졌다.송성연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손민철에게 이런 부탁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송성연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 언제든지 강씨 집안과 WS그룹에서 자신을 쫓아낼 수 있었다.지금
며칠 동안 조사를 진행했지만, 손건호는 이상한 정황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사실대로 보스 무진에게 보고했지만, 여전히 수상한 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무진이 말했다.“계속 관찰해 봐.”손건호가 나간 뒤, 대표실 밖에서 다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들어온 사람은 사업부 팀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조수경이 따라 들어왔다.“대표님, 여기 저희 팀의 실적 보고서입니다.” 사업부 팀장이 관련 서류를 무진의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이런 현저한 실적이 있으면, 팀장의 말에 힘이 많이 실렸다.의심의 여지없이 조수경의 실적이 가장 높았다.혼자서 사업부의 실적을 이렇게 끌어올린 것이다.“훌륭하군요.” 무진이 보고서를 잠시 훑은 후에 데스크 위에 내려놓았다.사업부 팀장이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그렇습니다, 대표님. 조수경 씨의 업무 능력은 저희 모두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일개 직원으로 그냥 두기에는 실력을 너무 낭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말씀하세요.”사업부 팀장은 슬쩍 조수경을 돌아본 후에 다시 말했다.“제 생각에는 조수경 씨를 끌어올려서 이 팀의 부팀장으로 삼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밑의 직원들에게 좋은 본보기도 될 수 있을 겁니다. 조수경 씨의 실력이면 모두들 승복할 겁니다.”조수경의 마음은 당연히 즐거웠다.승진, 자신이 강무진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계속 사양하면서 아울러 상당히 난감하다는 태도를 취했다.“대표님, 팀장님, 저는 진짜 그 직책을 감당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회사에 들어온 지도 얼마되지 않고요. 부팀장 자리는 경력이 더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조수경의 겸손한 모습을 보면서 팀장은 속으로 조수경이 더 마음에 들었다.‘조수경, 나이는 어리지만 교만하지도 성급하지도 않아. 앞으로 더 높이 올라갈 게 분명해.’팀장은 무진에게 더 강력하게 조수경을 추
무진은 잠시 한가한 틈을 빌어 성연과 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산과 들로 쫓아다니면서.북성의 명소들과 주변의 놀이 기구들은 빠짐없이 모두 즐겼다.오늘 두 사람이 찾아온 곳은 한 고성.고성과 현지인들의 복식과 장신구는 농후한 고전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나무로 지어진 집들과 글자를 새긴 상점 입구의 간판들은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고풍스럽고 신비한 환경을 더욱 음미하게 했다.성연은 이런 곳에 처음 와서인지 아주 신기했다.마음속으로 아주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수천 년 이어진 우리 문화는 광대하고 심오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너무 적어.’“먹을래?” 귓가에 매력적인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자, 무진이 밝고 선명한 색의 탕후루 두 개를 들고서 그녀 앞에 놓았다.설탕 시럽을 듬뿍 바른 탕후루는 햇빛 아래서 매혹적인 광택을 빛내고 있었다.성연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먹을래요!”그녀는 한 손에 하나씩 탕후루를 쥐었다. 무진은 시시때때로 냅킨으로 성연의 입술 주위에 묻은 설탕 얼룩을 닦아주었다.성연이 두 번째 탕후루를 먹으면서 무진의 입가에 탕후루 꼬치를 갖다 대었다.“아주 맛있어요.”성연의 빛나는 눈동자에 담긴 기대감에 무진은 차마 거절하지 못한 채 달짝지근해 보이는 탕후루를 힐끗 쳐다보았다.한 알을 먹은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주 맛있네.”“그렇죠?” 성연은 탕후루를 다시 그의 앞에 내밀었다. “더 먹을래요?”고개를 저은 무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작게 헛기침을 내뱉었다.“너 먹어.”무진을 보지 않은 채 몸을 돌린 성연은 다시 눈앞에 나타난 다른 새로운 것들에 빠져들었다.그 틈을 탄 무진이 한 번에 물을 반 병이나 비운 뒤에야 입안에 남은 달짝지근한 느낌을 씻을 수 있었다.“무진 씨, 자, 우리 사진 한 장 찍어요.” 일찌감치 탕후루를 다 먹어 치운 성연이 한쪽에 세워진 벽 앞에 섰다.벽에는 목을 맞댄 원앙 두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휴대폰을 꺼낸 무진이 성연의 사진을
성현과 무진의 뒤를 쫓던 인물은 고성 주변을 빠르게 누비고 있었다.이리저리 여러 차례 뱅뱅 돈 후에 사람들의 추적을 피해 한 찻집으로 들어왔다.찻집 안의 룸에는 훤칠한 체구의 남자가 꽃을 조각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차를 따르는 동작은 막힘이 없이 아주 자연스러웠다.“미스터 안, 두 사람을 바로 없애 버릴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턱에서 광대뼈까지 죽 그어진 칼자국이 있었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잔인하기 그지없었다.안진검은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동작으로 맞은편의 남자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가볍게 보지 말고 계속 추적해.”적호의 온몸에서 살기가 넘쳐났다. 혈관 내에서는 피에 굶주린 흥분감이 흘러넘쳤다.그러나 일격에 죽이는 건 결코 안진검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안진검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금방 도로 토해냈다.“퉤퉤퉤, 이건 뭐야, 쓰고 떫은 이런 걸 어떻게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안진검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차를 음미하면서 중시하는 건 인내심이야. 오직 한 겹 한 겹 음미해 나가야만 차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지. 한번에 들이켜는 건 좋은 차를 낭비하는 것에 불과해. 우리 계획도 이와 같은 이치야. 그물을 넓게 펼쳐야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듯이.”안진검의 품위 넘치는 말을 듣던 적호가 바로 손사래를 쳤다.“그래, 당신 말 대로 할 테니 계획이 있으면 얼른 말해. 나는 이미 기다릴 수 없을 지경이야.”“당신이 칼에 피를 공급하는 건 알고 있어. 기회가 있으면 통쾌하게 죽이게 해줄게.” 안진검은 잔에 든 차를 한 번에 다 마셨다.허허 웃는 적호의 눈에 핏발이 섰다.고성 주변의 오래된 마을은 북성에서 가깝지는 않았다.무진과 성연은 현지의 호텔에 바로 투숙했다.“오늘 우리를 미행하던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성연은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프로였어.” 무진이 눈썹 앞머리를 치켜 세웠다.“그럼 당장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성연의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