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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Penulis: 류한나
넋을 놓고 있는 고은서의 모습을 보자 박지연은 그녀는 부축하여 병상에 눕혔다.

하지만 고은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민시후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떨칠 수 없었다.

식물인간, 이 네 글자는 마치 거대한 산처럼 고은서의 마음을 눌러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고은서는 차마 식물인간이 된 민시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슬플지, 앞으로 그들과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몰랐다.

밝았던 하늘이 점차 어두움으로 빠지자 고은서는 그제야 서서히 잠이 들었다.

깊은 밤, 고은서는 별안간 꿈에서 깨어났고 눈을 뜨니 병실에는 곽승재가 아닌 박지연과 육현석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듯 두 사람의 얼굴은 모두 심각해 보였다.

“지연아.”

고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박지연을 불렀다. 박지연과 육현석 두 사람은 동시에 다가왔다.

“깼어? 배고프지 않아? 물 가져다줄까?”

박지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먼저 물이라도 마셔.”

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아.”

육현석이 미안한 듯 말을 꺼냈다.

“미안해. 요즘 일도 많았고 또 백승엽을 조사하느라 바빠서 병문안 올 시간이 없었어. 오늘에야 겨우 시간을 내서 왔어.”

고은서는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백승엽은 어떻게 됐어요? 찾았나요?”

그 말을 듣고, 육현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그는 박지연과 시선을 마주친 뒤, 결국 입을 열었다.

“찾기는 찾았는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어. 백승엽이 죽었어.”

“죽었다고요?”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현기증이 몰려와 머리를 움켜잡았다.

“진정해, 너무 흥분하지 말고.”

박지연이 급하게 말렸다.

고은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백승엽이 정말 죽었어요?”

“그래.”

“다리가 불편한 백승엽은 경호원을 데리고 자취를 감췄어. 그런데 그도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던 거야. 그래서 우리는 아마 그들 백승엽의 고향 집에 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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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쪽 병실에서 백유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육현석은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얼굴이 굳어져서 황급히 달려갔다.“승재 형!”고은서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T 국의 그 폐창고에서도 백유미가 비슷한 비명을 지른 후 원지훈이 사고를 당했었다.고은서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혹시 백유미가 또 미친 척하고 승재 씨를 다치게 한 걸까?”“현석 씨도 너무 놀라서 착각한 거야. 백유미는 방금 수술을 마친 상태고 또 범가온한테 칼까지 맞았으니 지금은 곽 대표를 다치게 할 기운이 없을 거야.”박지연이 고은서의 생각을 알아채고 침착하게 말했다.“그리고 너도 몸이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니니까 천천히 가자.”고은서는 원래 달려갈 생각이 없었다. 곽승재의 실력으로 백유미가 그에게 상처를 입힐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곽승재가 다쳤다 해도 그녀가 달려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병실은 멀지 않았고 고은서와 박지연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병실 앞에 도착했다.병실 안의 곽승재는 정말로 멀쩡했다. 그의 큰 키와 체격은 병실을 꽉 채운 느낌이었다.“승재 형, 은서 씨도 왔어.”곽승재는 고개를 돌려 고은서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빠르게 병실을 나왔다.“은서야, 이렇게 늦었는데 왜 왔어?”고은서가 바로 말했다. “백승엽의 소식을 나도 들었어. 그래서 백유미를 만나러 온 거야.”곽승재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의사가 말하길 백유미는 이미 유산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제 아버지의 사망 소식까지 듣자 정신이 다시 이상해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어.”“연기하는 거겠죠.”박지연이 비웃으며 말했다. “사람도 눈 깜짝 안 하고 죽일 수 있는 백유미가 그런 일로 정신이 이상해진다고?”고은서도 박지연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냉혹하고 악랄한 백유미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 정도에 진짜로 미쳐버릴 리가 없었다.고은서도 조용히 병실에 들어섰다.병실 안에는 백유미 외에도 두 명의 경호원이 있었다.지금의 백유미는 병원복을 입고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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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865화

    “넌 나와 조건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을 텐데.”비록 곽승재와 더 이상 잘 될 가능성이 없었고 그가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백유미는 그의 그 말에 여전히 상처를 받았다.백유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승재 씨, 내가 전에 뭘 했든 단 한 번도 당신을 다치게 한 적이 없어! 당신이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지만 나는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고!”“난 지금 단지 묶인 손을 풀어주고 상처를 닦아줄 사람을 요구하는 것뿐이야. 내가 마지막 존엄을 지키며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백유미는 눈시울을 붉히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애원에 곽승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알고 있는 걸 모두 털어놓는 거야.”그 말에 백유미는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한참 웃고 나서 그녀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내가 아는 건 이미 다 말했어. 그런데 또 뭘 알고 싶다는 거야? 나는 계속 여기 갇혀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데, 승재 씨는 자꾸 내가 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그것만 말해줄 수 있어. 승재 씨는 절대로 고은서와 잘 될 수 없을 거야.”백유미는 악담을 퍼붓듯 말했다.“고은서는 재앙 그 자체야. 그 여자와 가까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불행해져. 민시후가 바로 그 증거야.”“승재 씨가 그 여자를 포기하지 않으면 다음 불행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백유미는 다시 미친 듯이 웃었다.“그러고 보니 승재 씨도 당연히 불행해져야 해. 당신은 범가온 그 여자가 나를 고문하게 방치하고 나에게 아이 낳을 걸 강요했는데도 모른 척했어.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할 수 없이 그 여자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그리고 고은서와 민시후, 그 두 사람은 서로 짜고 나를 함정에 빠뜨렸고, 우리 가문을 파산하게 만들었어. 그러니 우리 아빠가 그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 것도 전혀 잘못된 게 아니지! 하하하!”그 모습을 본 곽승재는 아무 말 없이 문 옆의 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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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된 세부 사항을 조율한 후 고은서는 외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위험했던 일은 고준석이 걱정할 것 같아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지만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기에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전화를 한참 걸었지만 고준석은 받지 않았다.고은서는 급히 오춘식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를 통해 오늘 단은숙이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을 보고 울고불고 소란을 피우다 지금 서재에서 이야기 나누고 계셔.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고은서는 순간 어제 백유미의 조롱 섞인 한마디가 떠올랐다.“이미 너랑 너희 집안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백유미가 단순히 도발하려고 한 말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 집안을 겨냥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불안해진 고은서는 유성준에게 연락해 MQ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물었다.유성준은 아무 일도 없다고 했고 오히려 MQ의 맞춤 제작 사업이 최근 좋은 성과를 내면서 바빠졌다고 덧붙였다.“은서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유성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고은서와 민시후의 교통사고 소식은 곽승재와 민씨 가문 사람들이 철저히 차단했기에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당연히 유성준도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고은서는 적당한 핑계를 둘러댄 뒤 바로 고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고은혜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나도 요즘 인턴 생활에 바빠. 우리 엄마 원래 별일도 아닌 걸로 할아버지한테 난리 치잖아.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 없어.”30분 후 마침내 고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준석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은서는 단은숙이 찾아온 이유를 알았다.단은숙은 고국성이 한 여성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했고 그 문제로 고준석에게 찾아와 심경을 토로한 것이었다.단은숙이 비록 명문가 출신은 아니지만 외모가 뛰어났고 고국성과 결혼한 이후로 고국성도 그녀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갑자기 삼촌한테 이런 스캔들이 터질 리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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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여재훈 씨가 테이프 커팅에 참석했었잖아. 그때 외할아버지와 삼촌도 있었는데 서로 아는 눈치가 아니었어.”고은서는 말을 이어갔다.“당신도 우리 삼촌을 알잖아. 조금이라도 연줄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지. 여재훈 씨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 당장 달려가서 인사하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을 거야.”사실 그날 삼촌은 여재훈과 안면을 트려고 했지만, 여재훈 주변에 중요 인물들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여시은이 오직 당신 때문에 나를 저격하는 거라고 생각해.”“당신들 둘이 Y국에서 만난 적 있잖아. 여시은은 그때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야.”고은서의 분석이 정확할 수도 있다.곽승재는 이전에 곽현수에게 왜 백유미를 귀국시켜 그와 고은서의 결혼 생활을 망쳤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그때 곽현수는 고씨 가문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여시은이 적합한 상대라고 말했었다.곽현수는 단지 할머니 때문에, 그리고 여씨 가문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혼을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다.여시은도 Y국의 파티에서 만난 두 집안 어른들이 둘을 만나게 하려 했고, 그녀도 그와의 정략결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은서의 분석이 맞았지만 곽승재는 마음이 전혀 홀가분하지 않았다.그녀의 말투가 너무나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것처럼.곽승재는 고은서의 태도에서 자신을 향한 감정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가슴 속에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려는 순간, 회의실 방향에서 여시은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곽승재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까지 다가온 여시은이 배려심 있게 말했다.“곽 대표님, 일이 있으면 먼저 처리하세요. 10분 쉬고 회의를 계속한다고 전할게요.”여시은은 말하면서 생수 한 병을 곽승재에게 건넸다.곽승재는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저

  • 어게인, 비긴   제1086화

    “외할아버지, 숙모 말로는 엄마가 북성에 있을 때 가슴 아픈 연애사가 있었던 것 같대요. 제 생부는 아닐 거라고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고은서는 돌직구를 날렸다.“그럴 리 없어. 네 엄마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지만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주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어.”고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점에서는 네가 엄마를 똑 닮았어. 그래서 그때 곽승재와의 결혼을 허락했던 건데...”‘왜 갑자기 내 얘기로 넘어간 거지?’“북성에 연인이 없었거나, 있었다면 제 생부란 말씀인가요?”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생부일 가능성이 낮아. 북성에서 돌아왔을 때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와 별다른 정서 변화가 없었거든.”고준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엄마가 유부남과 엮였을 리 없어. 송민준 부모의 이혼이 엄마와 상관없을 거야.’“오히려 해외에 머물던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깜짝선물을 준비했다며 신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말을 이어가던 고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애하는 줄 알고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될 줄은...”“은서야, 네 엄마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네 생부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알아.”고준석은 외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때 네 엄마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을 앓은 것도 아니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너무 지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목이 멘 듯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은서도 코끝이 찡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인의 아픔을 다시 건드린 자신이 미웠다.고은서는 고준석의 손을 꼭 잡았다.“외할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엄마는 외할아버지같이 이해심이 넘치는 분을 아버지로 두어 너무 행복했을 거예요.”하지만 고준석은 더 슬퍼 보였다.“가끔은 내가 너무 자유를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어. 조금 구속했으면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 어게인, 비긴   제1085화

    고은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가 미혼모 신분으로 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북성에 첫사랑까지 있었다고? 이렇게 복잡한 연애사가 있었다니.’“내가 그냥 제멋대로 추측한 거야.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형님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일 수도 있지.”단은숙은 가방을 손에 들고 고은서에게 주의를 주었다.“이 얘기를 외할아버지나 삼촌한테 절대 하지 마.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했다고 나무랄 거야.”외할아버지는 고은서의 엄마를 각별히 아꼈다. 미혼모가 됐어도 한 마디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며 그녀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집은 따뜻한 피난처였고, 엄마는 그 안에서 조용히 상처를 치유했다.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털어놓을 것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아픈 기억일 테니 가족들이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고은서의 엄마는 조향사로서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MQ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고, 이는 MQ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래서 삼촌 부부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주변 사람들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은서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큰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씨 가문을 노리는 세력이 나타나서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엄마의 과거를 캐지 않았을 것이다.단은숙은 가방을 부인들 단톡방에서 자랑하기 위해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엄마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엄마는 북성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까? 정말 첫사랑이 있을까? 혹시 송씨 집안 사람?’문득 송민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송민준과 송민아는 이복남매였다.‘그렇다면 송민준의 친모가 아버지와 이혼하셨다는 건데, 설마 엄마가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니겠지?’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만약 송민준이 정말 C선생이라면, 그가 고씨 가문을 증오하는 이유는 충분하다.하지만 고은서는 엄마

  • 어게인, 비긴   제1084화

    “네 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송씨 집안 사람과 안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고준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은서야, 왜 갑자기 송씨 집안 사람을 아는지 묻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아직 모든 게 오리무중이라 고은서는 외할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그 집안 따님이랑 친한 친구이고 아드님과도 아는 사이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어른끼리 아는 사이가 아닌지 여쭤본 거예요.”“집안 어른까지 알아보면서 결혼 생각이 없다고?”단은숙이 다시 흥분했다.“은서야, 솔직히 말해봐. 그 송민준이라는 청년이 너를 좋아하지? 너를 쫓아다니지?”고은서는 황당해하며 부인했다.“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저와 송민준은 그냥 친구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반드시 숙모께 첫 번째로 말씀드릴게요.”“여보, 자꾸 결혼 얘기로 애를 못살게 굴지 마. 우리 은서는 능력도 뛰어난데 시집가지 않아도 괜찮아.”고국성이 뜻밖에 그녀 편을 들어주었다. 영악하고 연줄을 대기 좋아하는 삼촌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숙모가 화내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다.“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한 것도 아니잖아요. 곽승재와 비슷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죠...”“괜찮아요. 숙모도 저를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죠.”고은서는 적당히 무마한 후 넉살스럽게 단은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숙모, 제가 최근에 G브랜드 핸드백을 샀는데 디자인이 예뻐요. 한번 보실래요? 마음에 드시면 드릴게요.”이렇게 좋은 일을 마다할 리 없는 단은숙은 급히 일어섰다.“아이고, 은서가 숙모 생각도 해주고! 은혜 그 계집애보다 백배 낫네.”“엄마, 다 들려!”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은혜가 기분 상한 듯 소리쳤다.“들리든 말든. 내가 틀린 말 했나?”단은숙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은서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고은서는 차에서 포장

  • 어게인, 비긴   제1083화

    고준석과 고국성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해성의 곽씨 일가, 북성의 송씨 가문, 민씨 가문은 모두 명문가였다.“당연히 알지.”남편과 시아버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은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송씨 집안의 가주가 훈훈한 외모를 가진, 유명한 독신남이라는 것도 알아.”“은서야, 송씨 가문은 왜 물어?”단은숙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너 설마 송씨 가문에 시집가려고?”“맞네! 송씨 가문이 해성에 지사를 세웠다더니 너와 사업 거래가 있었구나.”단은숙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집안 아드님이 우리 은서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게 틀림없어.”“...”그녀가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숙모는 기관총 쏘듯 수십 마디를 내뱉었다. ‘첫눈에 반했다’, ‘결혼한다’, 이런 말까지 나오니 고은서는 어느 것부터 반박해야 할지 난감했다.“바쁜 애가 언제 연애할 시간이 있겠어? 넘겨짚지 말고 은서 말을 들어보자꾸나.”단은숙은 화내지 않고 고은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정확한 소식을 기다렸다.명문가와의 혼인, 이에 대한 숙모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숙모, 너무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어떻게 아무 남자나 저를 좋아하고 저와 결혼하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우리가 과거에 송씨 가문과 무슨 거래가 없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은 단은숙은 모른다고 했다.고준석과 고국성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고씨 가문은 줄곧 북성에 있었던 송씨 가문과 거래할 기회가 없었다.“사업 거래도 없었어요? 송씨 가문에서 향료와 관련된 사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면 두 분이 사업차 북성에 갔다가 송씨 가문 사람과 마주친 적도 없으세요?”고국성이 입을 열었다.“송씨 가문은 줄곧 부동산 사업을 해왔고 송민준이 개척한 새로운 사업도 향료와는 무관한데, 우리와 무슨 사업 거래가 있었겠어?”고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결과였다.‘하지만 두 가문이 아예 모르는 사이

  • 어게인, 비긴   제1082화

    건전복 상자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단은숙이 고은서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은서 왔어?”그녀가 고국성의 일을 도와준 뒤로 단은숙은 그녀를 훨씬 살갑게 대했다.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다.단은숙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은서야, 거기 서서 뭐 해? 얼른 외할아버지 곁으로 와.”고준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모두에게 인사하면서 고준석 곁으로 갔다.아내의 부름을 받은 고국성은 식재료를 손질하러 주방에 갔고, 고은서는 외할아버지 곁에 앉았다.“은서야,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니?”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일이 바빠도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지.”“할아버지 너무 해요.”고은혜가 입을 삐죽거리며 끼어들었다.“저한테는 살이 찐 게 아니냐고 하시더니 언니한테는 살이 빠졌다고 하시고. 언니만 일이 바쁜 게 아니라 저도 바쁘거든요.”고준석이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일이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군턱이 진 것을 보니 끼니는 굶지 않은 것 같구나.”“할아버지, 저 군턱이 지지 않았어요.”오기가 생긴 고은혜는 증명해 보이려고 목을 쭉 빼 들었다.“보세요. 전혀 안... 콜록!”목을 너무 세게 빼든 탓에 말이 끝나기 전에 사레가 들렸다.그녀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연거푸 기침했다. 유성준이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물과 휴지를 건넸다.“회사에서 센 척하더니 집에서도 이러네.”“콜록콜록! 제가 언제 센 척했다고 그래요?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콜록!”고은혜는 기침하면서도 발끈했다.이 정겨운 모습을 보고, 고은서는 문득 유성준과 고은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세심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덜렁대는 성격이다.다만 숙모 단은숙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고은혜가 명문가에 시집가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그녀였다.유성준도 집안이나 능력이 빠지지 않았지만,

  • 어게인, 비긴   제1081화

    고은서가 이미 생각을 정했다는 것을 확인한 곽승재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단지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할 말을 다 한 고은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늦었는데 일찍 들어가 쉬어.”곽승재는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억지로 머물 핑계를 찾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때마침 영상전화가 걸려 오자, 고은서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영상전화를 받았다.문 쪽으로 걸어가던 곽승재가 무심결에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한쪽 발을 다른쪽 무릎에 올리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했던 조금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곽승재는 이혼하기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외할아버지 댁에 같이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은서가 삐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며칠째 외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 일을 알게 된 할머니가 그를 고씨 가문으로 보냈다.그때의 고은서도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엎드려 두 발을 흔들거리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곽승재는 그 순간 모든 불쾌감이 사라졌다. 원래 불만 가득했던 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은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도우미가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렸다.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은서는 흠 잡을 데 없이 단정한 차림에 화장도 완벽하게 끝낸 상태였다.그와 함께 마구 뛰던 곽승재의 심장도 평온을 찾았다. 고은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잠깐 넋을 잃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이 실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했다...고은서와 이야기하던 중, 고은혜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언니, 저기 혹시... 형부?”고은서가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는 여전히 문어귀에 서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언뜻 보였다.‘갑자기 왜 저런 표정이지?’고은서가 자세히 보려고 일어났을 때는 그가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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