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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2화

작가: 류한나
“게다가 한 번쯤 오해한 게 뭐가 어때서. 곽승재도 널 몇 번이고 믿지 않으면서 나무랐잖아.”

박지연이 곽승재를 향한 불만을 토로했다.

“백유미 말만 들으면서 네 말은 들어주지도 않았잖아. 그리고 백유미가 다칠 때마다 네 탓이라면서 널 비난한 게 한두 번이야?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니까. 곽승재도 한 번쯤 억울한 일을 당해봐야지. 그저 벌 받는 거라고 생각해.”

고은서는 일부러 곽승재한테 벌을 주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젯밤 민시후가 여자랑 같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곽승재의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민시후에 관한 스캔들이 갑자기 퍼지기 시작한 데다가 또 곽승재가 어젯밤에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는 소식을 이미숙한테서 전해 듣게 되면서 이내 그가 배후에서 여론을 조종하고 있다는 틀린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어 분노에 눈이 먼 고은서는 자신이 곽승재를 오해한 건 아닌지를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고 GS그룹으로 달려가 그를 비난했던 것이다.

...

송민준의 새 사무실.

민시후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그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시후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화나 있어?”

송민준은 태연자약하게 그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어젯밤 그 여자랑 아는 사이지?”

민시후는 송민준을 향해 사진 몇 장을 던지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송민준은 사진을 힐끗 보고는 덤덤하게 답했다.

“모르는 사람이야.”

“정말 모르는 사람이야?”

민시후는 새 사진 몇 장을 더 보여주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캐물었다.

“그럼 이건 뭔데?”

찻집 로비 CCTV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들이었는데 그중에는 찻집으로 들어가는 송민준의 모습과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찻집에 들어선 그 여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어제 사업 파트너 만나러 찻집에 들른 건데. 내가 카페나 술집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찻집을 더 선호한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말 돌리지 마.”

민시후가 짜증을 내며 송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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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민시후는 송민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쓸데없는 말로 얼버무릴 생각하지마.”민시후의 목소리가 한없이 차가웠다.“얼마 전에 고은서랑 밥 먹을 때도 송민아를 데리고 우리 앞에 나타났잖아. 그리고 이번에 날 모함하려고 든 이 여자도 십분 간격을 두고 당신이랑 똑같은 찻집에 나타났어. 그리고 전에 고은서랑 옥방에서도 만났다며. 이 많은 일이 다 우연이라고? 그게 말이 돼?”“시후야, 다 아주 일상적인 일이잖아.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송민준은 단아한 자세로 자리에 앉은 채 나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그리고 자꾸 고은서 씨 얘기를 하는데 설마 내가 고은서 씨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거야? 예쁘게 생긴 건 인정할게. 민아를 친구로 사귀면서 잘 지내는 걸 봐서는 의리도 있고 사람도 꽤 괜찮아 보였어. 하지만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게다가 하마터면 네 매형이 될 뻔한 사람인데 내가 왜 네가 좋아하는 여자를 넘보겠어.”송민준이 차근차근 설명했다.“레스토랑에서 만나고 옥방에서 만난 건 정말 다 우연이야. 어제도 진짜 파트너 만나러 간 거고. 이런 이유로 날 의심한다는 게 너무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민시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젯밤의 일은 여러모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그래서 민시후는 그 여자가 송민준이랑 같은 찻집에 나타났다는 걸 조사해내자마자 순간 송민준이 꾸민 일이라는 직감이 들었다.평소에 만나기도 어려웠던 사람이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다는 게 너무 의심스러웠다.그 여자가 자신의 행적을 숨김없이 말했더라면 그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다.그러나 그녀가 행적을 숨기려 하는 바람에 일이 범상치 않다는 게 수면 위로 드러났다.“어젯밤 일 나도 전해 들었어. 그런데 내가 널 해칠 이유가 없잖아. 민아도 이젠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굳이 손해를 보면서 이런 모험을 해야 했을까? 그리고 은서 씨도 명석한 분이어서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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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터가 도로 나오면서 고은서에게 전했다.“민 도련님께서 지금 시간이 없으니까 할 얘기가 있으시면 내일 사무실에 하라고 하십니다.”고은서는 웨이터의 말을 무시한 채 바로 룸 안으로 들어갔다.“민시후, 나와 봐.”그녀는 곧장 민시후 앞에 다가가 말했다.그는 한창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고 있었는데 마침 주사위로 승부를 가릴 때라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하하. 민 도련님, 확실한가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시지 그러세요. 이번 판엔 저희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에요. 지게 되면 이 상에 있는 술을 절반은 혼자 다 마셔야 해요.”“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열기나 해.”“좋아요. 민 도련님이 원한다면 우리 같이 열도록 해요. 원하는 만큼 다 마시게 해드릴 테니까요.”“하나, 둘, 셋...”“민시후!”같이 주사위를 공개하려던 찰나, 스피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말 안 들려? 당장 나랑 나가서 얘기 좀 해.”그러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다 마이크가 있는 쪽으로 쏠렸는데 그 자리에는 아주 단아한 옷차림을 한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그녀는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민시후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민 도련님, 이 이쁜 아가씨는 누구예요? 설마 여기까지 민 도련님 따라온 거예요?”옆에 있던 부잣집 도련님 한 명이 물었다.“역시 우리 민 도련님 매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이렇게 이쁜 아가씨도 쫓아오고 말이야.”“그러니까. 생김새랑 기질만 봐서만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다 닥쳐.”민시후는 한마디 호통을 치고는 휘청거리며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고은서도 마이크를 내려놓고 따라 나갔다.“무슨 일인데?”민시후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물었다.복도의 등이 예상 밖으로 밝은 덕분에 민시후의 얼굴이 꽤 잘 보였는데 그는 평소처럼 껄렁대며 웃는 대신 일부러 그녀를 멀리하는 듯한 서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요즘 왜 회사에도 안 나오고 내 전화도 안 받는 거야?”“진 비서한테서 못 들었어? 나 요즘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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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를 빼앗긴 민시후는 어쩔 수 없이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놀았다.그는 방금전에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천천히 뱉어내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 그날 밤 나한테 실망감을 느끼지 않았어?”“아니.”고은서가 단호하게 부인하면서 고개를 저었다.“네가 술 마시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그러자 민시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내가 다른 여자랑 알몸으로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분노와 실망감도 느끼지 않은 게 고작 날 믿기 때문이라는 거야?”고은서는 그의 미소가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민시후는 이내 헛웃음을 쳤다.“만약 곽승재가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곽승재가 가슴에 다른 여자한테 긁힌 손톱자국을 하고 그 여자랑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는데 이유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났다.아마 과거의 고은서였다면 울부짖으면서 달려들어가 따졌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목격하고도 홱 돌아 나가버릴 가능성이 더 컸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가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물어보는 이유를 알아차렸다.‘내 반응이 너무 평온해서 오해하고 있는 건가?’고은서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민시후는 그녀가 지금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만약 곽승연이었다면 넌 아마 화를 내며 달려가 싸대기를 날리고 울면서 달아났겠지.”민시후는 고은서 대신 답하면서 담뱃갑 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그날 저녁 모함당한 건 맞아. 하지만 그 또한 내가 자초한 거야. 내가 전에 그 여자들을 건들지만 않았으면 걔네도 이런 일로 날 성가시게 만들진 않았겠지.”담배 연기 때문에 민시후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스캔들이 퍼지면서 사람들도 다 날 당해도 마땅하다고 평가하더라. 전에 여자들과 노는 걸 하도 좋아해서 말이야.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도 이런

  • 어게인, 비긴   제7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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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7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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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연이 고개를 들자 육현석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바로 박지연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박지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온승준의 부모님도 자연스레 육현석을 바라보았다.조수연은 육현석을 알고 있었고 박지연과 그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이미 생각했기에 두 사람이 손을 잡은 모습을 보며 조금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육현석 씨죠? 지연이는 우리 승준이 아내인데 이렇게 손잡는 건 부적절하지 않나요?”육현석이 차분히 답했다.“여사님, 그 말씀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연이는 이미 온 선생님과 이혼했고 이제는 제 여자 친구예요.”여자 친구라는 단어가 나오자 두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특히 조수연은 육현석이 박지연을 여자 친구로 삼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육현석이 부유한 집 아들이기에 단지 박지연을 새로운 맛에 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박지연이 이혼한 걸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지연이 체면 좀 살려주려고 그러는 걸 거야.’조수연은 육현석과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박지연에게 충고를 시작했다.“지연아, 너도 승준이랑 2년을 함께 해서 알겠지만 승준이는 한 번도 너에게 심한 말을 한 적이 없어. 집안일은 전부 네 말에 따르고 간섭도 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승준이는 생활 루틴도 깨끗해. 도박도 하지 않고 여자를 만나지도 않고 접대로 하지 않아. 성격이 조금 둔할 뿐이지. 다른 남자들처럼 달콤한 말을 속삭이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헤쳐나가는 생활에서는 승준이처럼 신중한 사람이 더 좋지 않겠니?”조수연이 간절하게 말을 이었다.“승준이는 이혼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겠대. 지금까지 이렇게 고집부리는 건 처음이야. 승준이랑 재결합해서 살면 우리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온범준도 말을 보탰다.“지연아, 네가 심성이 착한 아이라는 거 우리도 잘 알고 있어. 예전 일은 정말 미안하다. 원하는 보상이나 요구가 있으면 말해보거라. 다 들어줄게.”박지

  • 어게인, 비긴   제780화

    저녁이 되어 간신히 손에 쥔 일을 마무리한 박지연은 미리 아래층으로 가 육현석을 기다리기로 했다.병원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온범준이 휠체어에 앉은 조수연을 밀고 오고 있었다.박지연은 두 사람을 마주하고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곧바로 옆길로 발걸음을 돌렸다.“지연아, 잠깐만 기다려줘.”온범준이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그리고 이내 온범준은 조수연을 이끌고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지난번 병실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박지연은 지금 상황이 귀찮게 여겼다.“또 저를 괴롭히거나 모욕적인 말씀을 하실 거면 바로 신고할 거예요.”“아니야. 지연아, 오해하지 마. 우리는 너에게 사과하러 왔어.”놀랍게도 조수연은 자세를 낮추었다.“맞아. 지연아. 우리는 정말 너랑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 자리 옮겨서 얘기 좀 할까?”온범준은 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자존심을 챙기고 싶었는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원치 않았다.박지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두 분이랑 할 얘기 없습니다. 저는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지연아, 미안해!”박지연이 발을 떼기도 전에 조수연이 갑자기 큰 소리로 사과했다.박지연은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수연을 쳐다보았다.조수연은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지연아, 전에는 이 엄마가 잘못했다. 너한테 그렇게 엄하게 굴지 말아야 했어. 그리고 너희 두 사람 일에 지나친 간섭은 하지 말았어야...”“그만하세요!”박지연이 조수연의 말을 끊었다.“조 여사님, 제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호칭 좀 주의해 주세요.”조수연은 비난을 받아도 화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지연아, 네가 많이 참았다는 거 알아. 다 내 잘못이야. 진심으로 사과할게.”온범준이 기침 두 번하며 말했다.“지연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집안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너무 많은 걸 감내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나도 진심으로 사과한다.”박지연은 두 사람의 행동에 혼란스러웠다.‘지금 이게 또 뭐 하는 거

  • 어게인, 비긴   제779화

    온승준은 등산을 좋아하는 병원 주임의 권유로 산에 오르게 되었다.원래는 참여할 마음이 없었지만 주임의 무심한 한마디가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다.“온 선생, 맨날 그렇게 무뚝뚝하게 있으면 안 돼요. 가끔 바람도 쐬고 그래야지. 안 그러면 누가 그런 성격 좋아하겠어요.”온승준이 박지연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일은 병원 내에서 이미 퍼져 있었고 주임 역시 그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그의 농담 같은 말은 온승준으로 하여금 박지연을 떠올리게 했다.이전 박지연은 그에게 너무 무뚝뚝하다고 가끔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했던 적도 있었다.L 국에 있을 때는 그녀와 함께 몇 번 외출했었는데 당시 박지연은 그 시간을 무척 즐거워하며 허니문 여행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결국 온승준은 주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러나 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박지연이 한 남자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그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부드럽고도 절제된 모습으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태양은 이미 떠올라 있었고 산을 오르느라 땀범벅이 되었음에도 온승준은 그 장면을 본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온승준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키스를 마친 두 사람은 떨어졌고 박지연의 얼굴은 발그레해져 있었다.그녀의 눈은 부끄러움과 기쁨으로 반짝였고 온 신경은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남자 역시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야에는 오직 서로만이 존재하는 듯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온승준 같은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두 사람 사이에 넘치는 사랑이 주변의 모든 것을 그림자처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온승준은 자신이 어떻게 그곳을 떠났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그저 다리가 납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기계적으로 한 걸음씩 내디뎠을 뿐이었다....다음 날 박지연이 출근했을 때 한 간호사가 그녀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온 선생님 어제 사직서 제출했대요. 국경 없는

  • 어게인, 비긴   제778화

    “알고 있어.”민시후의 잘생긴 얼굴에 진지함이 어렸다.“은서야, 형이 널 찾아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그리고 예전부터 너와 내 관계를 오해하도록 내버렸던 것도 내 잘못이야. 그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너에게 안 좋은 인상을 가졌어. 모든 게 내 경솔함에서 비롯된 거야.”민시후가 말을 이었다.“널 힘들게 한 점 진심으로 미안해. 우리 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너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게. 하지만 은서야, 네가 내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괜찮아. 그렇지만 제발 나를 네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진 말아줘.”민시후의 진지한 표정과 간절함이 섞인 목소리에 고은서의 마음은 또다시 흔들렸다.“우리 아직 친구잖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널 어떻게 지워.”고은서는 일부러 가볍게 답했다.그 말을 들은 민시후도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네가 부람스러워할까 봐 그런 거야. 차라리 안 보면 편할까 해서.”하지만 그들의 가벼운 대화는 결국 억지로 만들어낸 분위기에 불과했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분위기는 가벼워지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이는 고은서가 민시후와 알고 지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두 사람은 항상 서로 투덕거리거나 웃고 떠들기에 바빴는데 지금의 침묵은 고은서를 어색하게 만들었다.“맞다. 여시은 씨가 너한테 밥 사겠대. 지난번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고은서는 문득 떠올린 듯 말했다.민시후가 고개를 저었다.“여시은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지난번 일은 민시현이 꾸민 일이야.”고은서가 놀라지 않는 것을 보고 민시후가 물었다.“이미 알고 있었어?”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곽승재를 탓했던 일과 곽승재가 이를 조사했던 사실을 민시후에게 이야기했다.민시후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차의 머리 받침에 기대며 약간 자조적으로 말했다.“나보다 더 철저히 조사했네. 나는 송민준까지만 알아냈지 민시현까지는 못 알아냈어. 은서야, 네가 날 너무 좋아하지 않는

  • 어게인, 비긴   제777화

    민시후를 본 고은서는 약간 놀랐다.‘북성으로 가서 오늘 해성에 오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생각에 잠겨 있을 사이 민시후는 이미 그녀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그리고 그는 뒷자리에 앉아 있는 곽승재를 보았다.민시후의 얼굴에 뚜렷한 불쾌감이 떠올랐다.“곽 대표, 왜 어디나 다 당신이 있는 걸까?”곽승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그 말은 그대로 돌려줘야겠는데?”“곽 대표, 지나간 버스는 다시 잡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민시후는 곽승재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며 말했다.“은서에게 잘해줬다면 전 남편이 될 리가 없었겠지?”곽승재는 그 말에 화가 난 듯 얼굴이 굳어졌고 차가운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렸다.“늦었어. 돌아가.”고은서는 두 사람이 또 다툴까 걱정되어 곽승재에게 한마디 하고는 차 문을 닫으며 이혁재에게 말했다.“아저씨, 출발해 주세요. 운전 조심하시고요.”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곽승재는 차창 너머로 나란히 서 있는 고은서와 민시후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였고 그 광경에 눈이 시려왔다.어쩌면 눈뿐만 아니라 마음도 시려지는 듯했다.그는 당장 차에서 내려 고은서를 안아 들고 예원 별장으로 데려가 다시는 민시후와 못 만나게 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고은서가 자신을 더 미워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곽승재는 차 안의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셔츠 목 부분의 단추를 풀었지만 여전히 숨이 막혀온 그는 외투를 벗으려다 포켓에 든 돈을 건드리게 되었다.문득 고은서가 치료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건넬 때의 냉랭한 표정이 떠올랐다.마치 남을 대하듯 선을 긋는듯한 모습이었다.고은서도 그가 원하는 것이 돈도 치료비도 아닌 그녀의 미소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민시후를 도와 진실을 밝힌 것도 자신이 그렇게 비열하지 않다는 것을 고은서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런 것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속에서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듯했다.곽승

  • 어게인, 비긴   제776화

    고은서는 조향실에서 일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때로는 너무 늦어져 집에서 자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곽승재가 그녀를 기다리기 위해 집 근처에서 머물렀을 가능성은 작았다.나아가 고은서는 지난번 곽승재를 이유 없이 오해한 일이 떠올라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은서가 승낙하자 운전기사는 다시 곽승재를 설득하며 직접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곽승재는 그제야 천천히 차에 올라탔고 차 안으로 밤공기와 담배 향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그는 고은서 옆에 앉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곽승재의 운전기사는 차 문을 닫고 고은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혁재는 바로 출발했고 차는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차 안에서 곽승재는 먼저 고은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또한 그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정말 차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지 동승한 것처럼 보였다.“지난번 민시후와 관련된 일은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었어. 오해해서 미안해.”복수해야 할 것은 확실하게, 잘못도 제때 인정하는 것이 고은서의 원칙이었다.지난번 GS 그룹에서 그녀는 시시비비도 제대로 가리지 않고 곽승재를 비난했고 며칠 전 그가 찾아왔을 때도 오해하여 그에게 손찌검까지 했다.고은서의 충동임이 틀림없었다.그녀의 사과를 들은 곽승재는 살짝 비웃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현금 뭉치를 꺼냈다.“이거 받아.”지난번 M 국에서 노숙자에게 쫓기고 나서 고은서는 현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데 익숙해졌고 마침 쓸모가 생겼다.곽승재는 그녀가 내민 돈을 보고 눈빛을 가늘게 떴다. 그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치료비에 대한 보상이야.”그녀는 곽승재를 몇 번이나 때렸고 비록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약이라도 발라야 했을 테니 보상으로 돈을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곽승재의 차분했던 표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은서, 이렇게 대충 넘어가려고?”그의 목소리는 억눌린 분노와 서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니면?”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775화

    고준석은 고은서의 불쾌한 표정을 알아채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승재가 먼저 약속 잡고 나랑 바둑 두러 온 거야.”고은서가 입을 삐죽거리며 물었다.“그 사람 집에 자주 와요?”‘전에는 이렇게 한가해 보이지 않더니...’고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일주일에 한두 번은 와.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나랑 바둑 두는 게 좋다며 굳이 오더라. 심지어 네가 싫어할까 봐 너한테는 말하지 말라더라.”‘내가 싫어할 걸 알면서도 온다고?’고은서가 더 말하려는 순간 곽승재가 이미 집 안으로 들어섰다.곽승재는 그녀를 보고 약간 놀라는 듯했지만 곧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하지만 그는 고은서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할아버지, 저 왔어요.”곽승재는 고준석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승재 왔니? 앉아라.”고준석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번에도 녹차로 줄까?”“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곽승재는 자연스럽게 고준석 옆 의자에 앉았다.이를 본 고은서는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할아버지, 저는 조향실에 좀 있다가 올게요.”“과일차 마시고 싶다며? 지금 아주머니가 준비하고 있어.”“준비되면 조향실로 가져다 달라고 해주세요.”고은서는 말을 마치고 거실을 떠났다.“애도 참.”고준석이 한숨을 내쉬며 곽승재에게 말했다.“승재야, 은서 원래 저런 성격이니까 네가 이해해 줘.”곽승재는 아무 말 없이 깊은 눈으로 고은서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고준석은 곽승재가 고은서를 붙잡으려 한다는 걸 알았지만 이 문제에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은서의 마음은 스스로 선택해야 할 몫이지.’최근 곽승연을 위해 조향한 아로마 캔들의 효과는 괜찮은 편이었다. 기분도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인 터라 고은서는 이를 더 개선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두세 시간이 지나 있었고 어깨를 주무르며 거실로 돌아왔을 때 곽승재는 이미 떠나고 고준석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은

  • 어게인, 비긴   제774화

    “백유미가 먼저 자살 시도를 하고 곽승재는 그 후에 수술을 받았는데 그런 졸렬한 변명이 통할 거로 생각하나?”박지연은 아무렴 믿지 않을 거라는 표정을 지었다.육현석이 머쓱한지 코를 만지며 답했다.“승재 형 그 얘기 할 때 꽤 슬퍼 보였어. 난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정말 친동생보다 더 친한 사이네.”육현석과 박지연은 티격태격 말다툼을 시작했고 그 사이 도아름은 생각에 잠겨 있는 고은서를 바라보았다.도아름은 T 국에서 고은서가 겪었던 일과 백유미의 몇몇 추문 그리고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은서야, 괜찮아?”도아름은 고은서가 슬퍼하는 줄 알고 걱정스레 물었다.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괜찮아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곽 대표가 일부러 너를 슬프게 하려 했을 것 같지는 않아. 아마 그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은서야, 화해를 강요하려는 건 아니지만 감정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법이야. 난 네가 막다른 길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긍정적으로 앞을 바라보면 돼.”고은서가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저도 알아요.”전생에 곽승재에게 자신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상관없었다.하지만 그가 싸늘한 말투로 죽고 싶으면 죽으라고 말한 건 사실이었고 그녀도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아름 언니, 저 회사 차리면 주주로 들어오실래요?”도아름은 흔쾌히 승낙했다.“우리 명운을 알아보고 투자했으니 나도 참여해야지.”“나도 참여하게 해 줘!”육현석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나도 할래. 난 그냥 주주로만 있을게. 경영이나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그 정도로 날 믿어도 돼? 혹시 손해 보면 어쩌려고?”“그럴 리가! 난 네가 큰돈을 벌 거라는 예감이 들어!”“그럼 네 말대로 되길 빌게!”식사를 마친 후 고은서는 육현석에게 박지연을 데려다주라고 했고 그녀는 도아름과 함께 명운으로 가서 전문가들과 회사를 설립하는 일에 대해 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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