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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4화

작가: 류한나
온승준이 박지연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 그녀는 이미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는 그녀를 쫓아갈 수 없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병실에서부터 복도까지의 거리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

박지연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고 각양각색의 불빛들이 도시 전체를 빛내고 있었다.

병원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도 하나둘씩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줄 가족을 갈망했었다.

온승준과 결혼한 이후로 그녀는 시부모님을 자신의 친부모님처럼 생각하고 모셨다.

부모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이 또한 어릴 적 느껴보지 못한 부모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시부모님이 그녀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지만 진심으로 대한다면 언젠간 자신을 받아들일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따뜻한 인심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모든 게 다 그녀의 갈망뿐이었다.

방금전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짓누르려는 조수연을 보며 박지연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득의양양한 눈빛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까 그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박지연은 등골이 오싹해났다.

‘이 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며느리 역할을 했는데도 내가 단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었던 거야? 어떻게 날 저 정도로 미워할 수가 있지...’

박지연은 고개를 들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지연아.”

바로 이때,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육현석이었다.

그의 옆에는 아주 단아한 귀부인 한 명과 선물 박스를 들고 있는 기사가 있었다.

육현석은 그녀를 향해 다가오면서 말했다.

“이분은 내 어머니셔.”

그리고 뒤돌아 자신의 어머니인 김세라를 향해 박지연을 소개했다.

“엄마, 이분은 박지연이야.”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박지연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김세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온화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 지연아. 현석이가 네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

옆에 있던 육현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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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의 질문에 전미자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구체적인 상황은 나도 잘 몰라. 연정이와 현수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분명 현수와 관련이 있을 거야.”이 말에 고은서도 깊이 공감했다.하지만 그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에 뭐라 덧붙이기도 어려웠다.“은서야, 승재는 두 사람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어. 그래서 랑과 결혼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전미자는 앨범을 내려놓고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너와 승재가 결혼하길 원했던 건 사실 개인적인 욕심이었어. 너는 밝고 자신감 넘치고 또 진심으로 승재를 좋아했잖니. 난 네가 승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승재가 떨떠름하게 승낙했을 때도 난 너희가 행복할 거라고 믿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니.”전미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고은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전미자로부터 여러 번 들었었다.전미자가 아무리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그녀가 곽승재와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는 걸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전미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전미자가 휴식을 취하겠다고 하자 고은서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유일 투자은행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은서는 유성준의 연락을 받았다.“아저씨가 경찰에 신고했어. 경찰도 고소를 받아들였어. 공식 기자회견은 모레 오후에 열릴 거야. 홍보팀에서 친분이 있는 몇몇 언론사와 약속을 잡았고 아주머니도 아저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로 했어.”빈틈없는 그의 일 처리에 고은서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게임 회사 쪽의 진행 상황을 점검한 후 그녀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 고은서는 며칠 동안 야근하던 박지연뿐만 아니라 한껏 멋을 낸 육현석도 발견했다.“은서야, 왔어?”박지연이 먼저 말을 건넸다.“육현석이 자꾸 밥 먹자고 꼬드겼는데 난 피곤해서 집에 간다고 했더니 따라왔어.”육현석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지연이가 아주머니 요리가 끝내준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 어게인, 비긴   제906화

    “민준 씨,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고은서가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송민준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은서는 전화를 끊었다.‘오미나에 대한 일을 숨기지 않은 걸 보면 삼촌과 관련이 없겠어. 민시후가 나를 좋아해서 송민아와 파혼한 일 외에는 특별한 갈등도 없잖아. 처음 만났을 때 싸늘한 시선은 동생의 파혼 때문이었나 보다. 이후에 조금 친절해진 것도 송민아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한 편이라고 했으니까.’송민준에 대한 의심을 거둔 고은서는 컴퓨터 속 자료를 바라보았다.‘오미나와 곽현수의 비서가 만난 적 있다고? 우연일까? 백승엽의 청부 폭행 사건에서 곽현수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유미를 귀국시키고 원지훈과 함께 회사를 차리도록 지원한 것도 곽현수야. 이혼하긴 했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나를 잡으려고 하고 있어. 그것 때문에 삼촌한테 손댄 건가?’고은서는 곽현수가 대체 왜 이런 일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동안 전미자를 찾아뵙지 못한 게 떠오른 고은서는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혹시 그녀에게서 무언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전화를 걸어 전미자가 시간이 된다는 걸 확인한 후 고은서는 전미자의 집으로 향했다.전미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여전히 다정하게 맞아주었다.“왜 이렇게 말랐어!”그녀는 걱정스럽게 고은서를 바라보며 주방에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은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비록 곽승재와 이혼했지만 전미자는 여전히 변함없이 그녀를 아껴주고 있었다.식사 후 고은서는 전미자와 담소를 나누고 소파에 함께 앉아 오래된 사진 앨범을 넘겼다.고은서는 젊은 시절의 곽현수를 보고는 무심코 말했다.“할머니, 아저씨 젊었을 때 정말 잘생기셨네요. 분명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감정적인 문제는 없었나요?”전미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 고집불통이 무

  • 어게인, 비긴   제905화

    ‘억울하게 오해했더라도 곽승재도 나를 속였으니 사과하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고은혜에게 앞으로 절대 곽승재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둔 뒤 강현철의 상황을 물었다.“그 사람은 곽 대표님 경호원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어. 그런데 아빠는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처벌을 원치 않으신대.”“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다음엔 더 심해질 거야! 절대 가만둬선 안 돼!”고은혜는 난감해하며 답했다.“그 사람이 와서 난리 칠 때 그러더라. 무슨 일을 당한다면 자기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아빠의 추문을 전부 폭로해 버리겠다고 협박했어.”고은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숨길 수도 없었다.고은서는 직접 고국성을 찾아가 이번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설득하기로 했다.비록 명예가 다소 손상될지는 몰라도 약점을 잡혀 협박받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차를 부르려던 고은서는 곽승재의 차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차창이 내려졌지만 뒷좌석에서 곽승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아가씨, 타시죠. 곽 대표님께서 바래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운전기사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곽승재의 상태를 묻기도 귀찮았던 고은서는 그냥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고은서는 바로 고국성의 집으로 향해 제안했지만 고국성은 단호하게 반대했다.“나는 누명을 쓴 거야! 내가 왜 잘못을 인정해야 해? 그럼 내 체면은? 직원들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난 절대 동의 못 해!”“삼촌, 누명을 썼다면 더더욱 공개적으로 해명해야 해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녀서는 안 돼요. 경찰에 신고해서 조사하게 하면 되잖아요.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도 이해할 거고요.”고국성이 망설이는 사이 단은숙이 격앙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모든 사람이 네 삼촌이 바람피우고 사생아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다른 사모들이 나를 얼마나 비웃겠어!”고은서는 지금 이 상황이 피곤했다.단순히 고국성 개인의 문제였다면 협박을 당하든 망신을 당하든 신

  • 어게인, 비긴   제904화

    곽승재는 오랫동안 저자세로 나왔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고은서의 태도를 보고 조금 속상했다.고은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아무리 고치겠다고 해도 본성은 여전히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사람이야. 지금 가지고 있는 죄책감이 사라지거나 소위 말하는 호감이 식어버리면 결국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곽승재의 잘생긴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네 말은 내가 그동안 해온 모든 행동이 전부 네가 돌아오게 하려는 연기였다는 뜻이야?”“난 그저 사실을 얘기하는 거야. 당신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었고 원하는 건 다 가졌지. 한때 당신한테 그렇게 매달렸던 내가 이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이러는 걸 수도 있잖아. 오늘 구해준 건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앞으로 내 일에 신경 쓰지 마. 누군가에게 계속 감시당하는 기분 썩 좋지 않거든.”고은서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그는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고은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치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듯했다.고은서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겉으로 보기엔 고은서가 은혜도 모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그녀를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기색조차 없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곽현수처럼 사람을 시켜 감시하지 않으면 그녀의 상황을 제때 알 수도 없었고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두 사람은 몇십 초간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러던 중 곽승재의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눈에 띄게 표정을 굳혔다.속도를 줄인 운전기사는 병원에 도착했음을 알렸다.“차 돌려서 본사로 가죠.”막 차 문을 열려던 고은서는 싸늘하게 기사를 향해 명령하는 곽승재의 목소리를 들었다.“너 많이 다쳤...”“거짓말이야.”고은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승재는 무표정하게 답했다.그녀는 말문이 막혔다.“어디로 데려다줄까?”고은서는 이미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딘 상태였다.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았다.“기사 불러서 알아서 갈게.”말을 마친 그녀는

  • 어게인, 비긴   제903화

    고은서의 외침과 함께 곽승재의 경호원들이 재빠르게 달려왔다.“곽 대표가 다쳤어요!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강현철은 결코 가벼운 힘으로 안내판을 내리친 게 아니었다.곽승재가 온몸으로 받아냈으니 부상이 심각할 것이었다.고은서는 그래도 머리를 맞은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곽승재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고통이 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듯 고은서에게 완전히 기대어 있었다.그때 곽승재의 차가 도착하고 경호원들이 서둘러 고은서와 함께 곽승재를 부축해 조심스럽게 차에 태웠다.그리고 한 명은 남아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차 안에서도 곽승재는 여전히 고은서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두 사람의 팔이 맞닿았고 턱과 이마도 살짝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숨결과 체온이 교차하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다.곽승재가 그녀 때문에 다친 탓에 고은서는 그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곽승재는 그녀보다 덩치가 훨씬 컸고 체중 차이도 상당했다.그가 기대고 있으니 고은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여 창문 쪽으로 자리를 피하려 했다.곽승재는 그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다시 가까이 다가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은서야, 아까는 날 다급하게 불렀잖아. 걱정한 거 맞지?”‘걱정은. 빚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지!’고은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몸도 성치 않은데 말 좀 아껴.”“평소에는 날 밀어내기만 하고 제대로 상대해 주지조차 않잖아.”곽승재는 어딘가 씁쓸한 어조로 덧붙였다.‘할 말이 없으니까 말할 의지도 안 생기는 거지.’고은서는 속으로 생각했다.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곽승재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은서야, 나랑 조금만 이야기해 주면 안 돼?”그의 낮고 쉰 듯한 목소리는 마치 애원하는 듯했다.고은서는 그 목소리를 듣고 이전의 자신이 떠올랐다.‘나도 전에는 이렇게 애원했었지.’[승재 오빠, 메일 그만 보고 나랑 이야기 좀 해주면 안 돼요?][승재 오빠, 나랑 꽃 보러 가요. 온실에 꽃이 너무 예쁘게 피

  • 어게인, 비긴   제902화

    고은서는 이런 악질적인 행동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거부하면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컸다.그녀는 일단 조건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고국성을 무사히 구출한 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다.“당신 요구 들어줄게요. 먼저 삼촌부터 풀어줘요. 다른 곳에서 기다리면 사람을 시켜 돈을 준비해서 가져올게요.”“내가 바보인 줄 알아?”남자는 고은서를 믿지 않았다.“돈을 손에 넣기 전에는 절대 안 놔. 어차피 쪽팔리는 건 내가 아니거든.”고은서는 이 남자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그래서 고은서는 남자 앞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재무팀에 당장 돈을 준비해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오미나의 전남편, 강현철이 고은서의 말을 듣고 손아귀에 힘을 풀자 고국성은 그 틈을 타 남자의 팔을 힘껏 깨물었다.강현철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고국성은 그를 힘껏 밀치고는 달아났다.남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가는 고국성을 쫓으려 했다.고국성이 강현철에게 잡히면 전보다 더 심하게 당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고은서는 반사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있는 힘껏 강현철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핸드폰은 정통으로 남자의 이마를 가격했다.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문지르더니 이내 살벌한 눈빛을 띠었다.고은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즉시 외쳤다.“저 남자를 잡아주는 사람에게는 2천만 원 줄게요!”이전까지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며 단번에 강현철을 향해 덤벼들었다.아무리 신체 능력이 좋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강현철이 고은서를 향해 돌진했다.고은서와 가까운 곳에 있고 목적도 명확했던 탓에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철은 이미 고은서 앞까지 다가왔다.고은서는 반사적으로 발을 뻗어 그를 걷어찼지만 덩치도 크고 체력도 월등한 강현철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게다가 몸이 아직 다 낫지 않았던 터라 그 위력은 더욱 미미했고 오히려 그를 격분시켰다.강현철

  • 어게인, 비긴   제901화

    현장은 고은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고국성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입가와 눈 주변도 멍투성이였다.그런데도 덩치 크고 흉악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는 여전히 고국성의 목을 거칠게 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었다.고은혜는 겁에 질려 단은숙의 옆에 몸을 숨겼고 단은숙 역시 두려움에 떨었지만 돈을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이 인간은 이번 일에 참견할 자격이 없어!”주변에는 몇몇 차주들과 경비원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자극적인 스캔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법이었다.지켜보던 사람들은 사건이 해결되기보다 더 커지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 오히려 슬쩍 핸드폰을 꺼내 촬영하고 있었다.심지어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달려왔다.“언니! 빨리 왔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덩치 큰 남자가 그녀를 쳐다봤다.“무슨 대단한 인물이 오는 줄 알았더니 고작 계집애야?”그는 비웃으며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내 조건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 남자 그냥 보내진 않을 테니까.”고은서는 그의 무례하고 거친 태도를 신경 쓰지 않고 고은혜에게 물었다.“저 사람이 원하는 조건이 뭔데?”고은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빠가 타고 다니는 이 차를 자기한테 넘기고 4억을 달래.”“안 돼! 절대 못 들어줘!”단은숙이 날카롭게 외쳤다.“오늘은 차랑 돈을 내놓으라 하겠지만 내일은 또 뭐라고 협박할지 어떻게 알아? 난 이딴 협박에 절대 넘어가지 않을 거야!”단은숙의 말은 다소 냉정하게 들렸지만 고은서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런 유형의 인간은 한 번 돈을 받아내면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협박해올 게 뻔했다.끝없는 악순환이 될 뿐이었다.“넌 그 여자의 전남편일 뿐이잖아! 무슨 자격으로 바람났다고 난리야? 피해자는 오히려 우리라고!”단은숙은 남자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진짜 용기 있으면

  • 어게인, 비긴   제900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갔어요.”“은서야, 왜 아직도 승재한테 그런 태도야?”고준석이 타이르듯 말했다.“지난번에 민시후랑 가능성이 없다고 했잖아. 승재 때문 아니었어?”민시후의 이름이 나오자 고은서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하지만 고준석이 더 이상 묻지 않게 하려고 애써 밝은 척하며 답했다.“할아버지, 누가 곽승재 때문이라고 했어요? 곽승재에게 남은 감정이 없다는 걸 왜 믿어주시지 않는 거예요?”“이 할아버지는 당연히 믿지.”고준석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네가 이혼하려고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기억해. 다만 혹시나 쌓인 감정 때문에 네 마음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될 뿐이야. 승재도 요즘 많이 변했더구나. 너한테도 정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혹시라도 승재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면 할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을 거야.”“저를 위해 많은 걸 해줬다는 건 알아요. 예전에는 제가 집착해서 그 사람을 귀찮게 했고 그건 제 책임이기도 해요. 심지어 승재가 저를 싫어했던 이유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걸 안다고 해도 제가 받았던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고준석은 고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은서야, 두 사람 다시 만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다만 나는 네가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 승재에 대한 사랑이든 원망이든 말이야. 만약 완전히 놓아주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네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 그렇지 않으면 네가 너무 힘들 거야.”고은서가 자신은 힘들지 않다고 말하려던 순간 벨 소리가 울렸다.고은혜에게서 온 연락이었다.고준석도 화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너희 둘 사이가 꽤 좋아진 것 같구나.”고은서는 고준석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당연하죠. 애초에 우리가 깊은 원한을 가질 이유도 없었어요. 할아버지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고은서는 한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언니! 아빠한테 또 일이 생겼어!”전화를 받자마자 고은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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