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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화

작가: 류한나
박지연은 육현석의 말에 기분이 은근히 좋았다.

그는 그녀의 어떤 모습도 마다하지 않고 다 좋게 봐주곤 했다.

“고마워.”

박지연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

“우리도 언젠가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어.”

육현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지연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인사치레를 하지 않는 사이라면 친구보다 더 친밀한 사이여야 했다.

갑갑해 난 박지연은 차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

박지연한테서 병원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고은서는 노발대발했다.

“진짜 자아 감각이 너무 좋은 거 아니야? 분명히 너한테 비는 입장이면서도 왜 그렇게 거만하게 구는 거래? 파렴치해도 정도껏 해야지! 지연아, 정말 일찌감치 이혼하고 그 집에서 나와서 다행이야. 그런 사람들이랑은 같이 사는 게 아니야.”

박지연도 고은서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정말 다행이야.’

“오늘 육현석 어머니랑 만났다며. 어때? 좋은 분이신 것 같아?”

고은서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

전생에는 육현석 어머니와 만날 일이 없었던 고은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간단히 인사만 했는데 엄청 온화하시고 친절하신 분 같아. 아주 단아해 보였는데 너무 큰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았어.”

박지연이 이실직고했다.

“와. 그럼 뭘 더 고민하는 거야. 얼른 육현석 고백을 받아들이고 사귀어!”

고은서가 재촉했다.

그러나 박지연은 따라 장난치는 대신 약간 망설이는 듯했다.

“육현석이 엄청 좋은 건 사실인데 내가 함부로 넘볼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박지연은 진심이었다.

사실 병원 앞에서 그녀는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저도 모르게 자비감이 생겼다.

온승준도 꽤 훌륭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와 있으면서 박지연은 단 한 번도 자비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고은서는 약간 의아해했다.

‘박지연이 자비감을 느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너 지금 사귀고 난 후에 또 이별하게 될까 봐 그러는 거지? 지연아,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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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는 살짝 놀랐다.‘외삼촌이 곽승재에게 직접 연락하다니... 혹시 도움을 청한 걸까?’“일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러나 곽승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어젯밤 주 비서에게 오미나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솔직히 말해 그의 일 처리 속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결과 나왔어?”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고 곽승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서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송민준과 KK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데 곽승재는 벌써 조사 결과를 가져왔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직접 해결하겠다고 선을 그었는데 이제 와서 결과를 묻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챈 듯한 곽승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미나의 사생활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야. 외삼촌과 실제로 사업적으로 엮여 있었고 몇 주 전에 같은 호텔에 묵었던 것도 사실이야. 현재로선 그녀가 가진 아이가 외삼촌의 아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이미 여기까지 말이 나온 이상 고은서는 자신의 의문점을 솔직하게 꺼냈다.“오미나 조건도 좋고 외적으로도 괜찮은데 외삼촌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아이를 지우겠다는 생각도 안 하고 있어.”곽승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오미나의 원래 가정은 형편이 좋지 않았어. 결혼 상대도 별로였고. 이혼했지만 전남편이 마치 기생충처럼 계속 붙어있었지. 지금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저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일 뿐이야. 가족과 전남편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외삼촌에게 접근한 걸 수도 있어. 금전적인 이유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지.”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렸다.“외삼촌과 나는 이미 금전적인 보상을 제안했어. 원하는 조건을 말해도 된다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어. 소중한 아이이니 낳아서 혼자 키우겠다고 하더라.”곽승재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MQ는 현재 외삼촌이 운영하고 있고 외삼촌

  • 어게인, 비긴   제898화

    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진짜 할아버지의 사위였을 때는 이렇게 효심이 깊고 시간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곽승재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예전에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앞으로라도 보상하고 싶어서 그래.”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고은서는 그의 말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중요한 일을 얘기하러 온 터라 곽승재와 말싸움을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고은서는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할아버지 얼굴도 봤으니 이제 돌아가도 되겠네.”고준석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은서야, 그렇게 예의 없이 구는 거 아니야. 승재는 나 보러 일부러 온 거야. 내가 저녁도 같이 먹고 가라고 했어.”고은서는 고준석의 말을 무시한 채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곽승재, 갈 거야? 안 갈 거야?”“은서야!”고준석이 다시 고은서를 불렀다.하지만 곽승재는 여전히 태연하게 답했다.“할아버지, 괜찮아요. 오늘은 은서가 올 줄 몰랐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괜찮으니 여기서 저녁 먹고 가거라. 벌써 식사 준비도 다 됐어.”고준석이 만류했지만 곽승재는 깊은 눈동자로 고은서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다음에 다시 올게요.”고준석은 그런 그의 태도에 고은서를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다.“승재야, 바쁘면 굳이 나 보러 오지 않아도 돼.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곽승재가 뭐라 하기도 전에 고은서가 먼저 고준석에게 다가갔다.“할아버지, 안으로 들어가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너 이 녀석...”“은서야.”고준석이 핀잔을 주려던 순간 곽승재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고은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물었다.“또 뭔데?”곽승재는 입술을 깨물다 말했다.“할 말이 있어.”“말해.”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지만 곽승재는 고개를 저었다.“단둘이 얘기하는 게 좋겠어.”고은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

  • 어게인, 비긴   제897화

    주인혁이 답했다.“맞아요. 누나, 혹시 조사할 사람 있어요?”“네. KK 연락처 넘겨줘요. 직접 얘기할게요.”주인혁은 더 묻지 않고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그 후 주인혁은 자신이 참여한 드라마 촬영이 며칠 내로 끝날 예정이라 곧 해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고은서는 드라마가 대박 나길 기원한다고 하고는 해성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통화를 마친 후 고은서는 바로 KK에게 연락했고 KK는 그녀에게 꽤 친절하게 응대했다.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연예계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사설탐정 사무소를 차렸다고 했다. 음악은 그저 취미로 남겨두었다고 했다.이런 이야기는 이미 주인혁에게 들은 바 있었고 고은서는 KK의 해킹 실력도 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고은서는 오미나의 정보를 KK에게 보내고 송민준에게 부탁했던 대로 동일한 요구를 전달했다.사실 고은서가 송민준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 단순히 조사를 맡기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떠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그날 저녁 고은서가 막 오미나의 아파트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민준의 차와 마주했다.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이전 유일 투자은행 오픈 행사 때 송민준이 그녀를 대신해 페인트 공격을 막아준 적이 있었지만 민시후는 그의 의도를 의심하며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했다.또한 그녀의 유산은 송민준과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백씨 가문을 견제하며 그녀를 돕기도 했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송민아의 가정부가 옛정을 생각해서 백유미에게 협조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은 송민준이었다.민시후는 송민준이 평범한 사람처럼 감정 기복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했지만 고은서는 그가 자신에게 묘한 친밀감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물론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송민준의 행동과 의도는 충분히 의심해 볼 가치가 있었다.만약 백유미가 의도적으로

  • 어게인, 비긴   제896화

    송민준이 말한 것처럼 송민아가 아니더라도 다른 여자가 있을 것이었다.고은서는 한순간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질투도 원망도 아니었다.어차피 그녀가 민시후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보다 감동이 더 컸으니까 말이다.그녀는 단지 민시후가 기억을 되찾고 나서 모두가 자신에게 이렇게 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지 걱정될 뿐이었다.“어찌 됐든 가족들은 시후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시후라면 이해할 거예요.”송민준은 마치 고은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서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송민준이 이 이야기를 한 것도 절반은 민씨 가문 사람들의 뜻일 것이다.그녀가 민시후에게 더 이상 어떤 희망도 품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일 테니까.“저도 참... 사과하려고 식사에 초대한 건데 괜히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네요. 제 잘못입니다. 술 대신 차라도 한잔 올리죠.”송민준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고은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괜찮아요. 이런 건 불편한 이야기도 아니에요. 민시후가 건강을 회복하는 게 제겐 가장 좋은 결과니까요.”송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은서 씨, 시후는 지금 해성에 없어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제가 비록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할게요.”고은서는 찻잔을 들어 송민준과 가볍게 부딪쳤다.“사실 오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부탁이라니요. 은서 씨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감사합니다. 한 사람을 조사하고 싶은데 적당한 업체를 찾기가 어려워서요. 혹시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분이 있을까요?”송민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있네요. 조사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관련 정보를 보내주시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고은서는 오미나의 정보를 바로 송민준에게 보냈다.“이 여자가 최근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제 외삼촌에게 접근한 건 아닌지 그리고 그녀가 가진 아이가 정말 제 외삼촌의 아이가 맞는지 알고 싶어요.”그 말을 들은 송민준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고은서가 이런 이야

  • 어게인, 비긴   제895화

    송민준 말처럼 차가 고장 났기에 계속 몰았다가 불의의 사고라도 날까 봐 겁이 난 동시에 송민준한테 할 말도 있었는지라 고은서는 망설임 없이 그의 차에 올랐다.그녀가 차에 오른 후 옆자리에 올랐다.아직 서먹한 탓인지 꽤 멀리 떨어져 앉았다고 해도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고은서는 슬쩍 차창 쪽으로 붙어 앉았다.반면 송민준은 아주 태연해 보였다.“죄송해요, 은서 씨. 기사님 때문에 은서 씨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네요.”“누구도 사고가 날 거라고 예상치 못했잖아요.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고은서가 나긋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곧 저녁 시간인데 제가 사과의 의미로 밥 한 끼 사드려도 될까요?”송민준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확실히 곧 저녁 시간이기도 했고 또 차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에 고은서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송민준은 고은서의 음식 습관에 관해 물은 후 이내 기사에게 맵기로 유명한 중식집으로 가라고 지시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고은서는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민준 씨가 매운 음식을 안 좋아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평소에도 엄청 담백하게 드시잖아요.”곽승재랑 똑같았는데 그는 생신한 음식이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았고 또 조금이라도 양념 냄새가 심하면 쳐다보지도 않았다.송민아도 매운 음식을 별로 즐겨 먹지 않는데 송민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었다.“아마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걸 거예요.”송민준이 웃으면서 답했다.그러나 이내 무언갈 떠올렸는지 그의 웃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고은서는 송민아를 통해 두 사람이 배다른 남매라는 걸 들은 바가 있었는데 아마 갑자기 어머니 얘기에 좋지 일이 떠오른 듯했다.하지만 고은서는 그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캐묻는 사람이 아니었다.“민준 씨, 이만 들어가죠.”송민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은서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이름난 음식을 몇 가지 주문한 후 웨이터는 나가고 룸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고은서는 송민준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민준 씨, 전에 민아를

  • 어게인, 비긴   제894화

    차가 본선으로 진입한 지 얼마 되지 갑자기 강하게 흔들리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뒤에서 고은서의 차를 박았다.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고은서는 순간 얼마 전에 민시후와 함께 겪었던 교통사고가 떠올랐다.‘이번에도 누가 날 해치려고 일부러 내 차를 박은 건가?’공포에 휩싸인 고은서는 몸이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고 얼굴도 사색이 되었다.“언니?”고은혜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보면서 물었다.“왜 그래? 밖에 지금 누가 창을 두드리고 있어.”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차창 밖을 내다보니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남성 한 명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고은서는 떨리는 손을 애써 공제하며 차창을 내렸다.중년남성은 먼저 사과하고 이어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핸들을 급하게 돌리는 바람에 실수로 고은서의 차를 박았다고 설명했다.그는 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을 보태었다.아직 경각심이 풀리지 않은 고은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중년남성한테 나중에 배상금액이 나오면 연락하겠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길 곳곳마다 감시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중년남성이 이후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도 불가능했기에 고은서는 차에서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중년남성도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연락처를 건네주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아직도 긴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고은서는 백미러를 통해 상대 차량이 시동을 거는 걸 보고 있었다.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 차가 고은서의 차 옆에 멈춰 섰다.이내 기사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아가씨, 우리 대표님께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고개를 돌려보니 뒷좌석에는 아주 익숙한 사람 한 명이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송민준이었다.목적지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금방 일을 꺼내고 나오는 길인지 그는 아주 깔끔하게 블랙 정장과 흰색 셔츠를 차려입고 있었다.송민준도 그녀를 보고 약간 의아해했다.그는 이내 온화한 미소를 띠고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 씨, 이렇게

  • 어게인, 비긴   제893화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고은서가 이어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자 안에 있던 오미나는 머뭇거리다가 끝내는 문을 열어줬다.문이 열리자 삼십 대 좌우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고은서의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오버사이즈 옷을 입고 있었고 단은숙과 비겼을 때 외모가 너무 눈에 띄게 출중하진 않았지만 아주 아련한 상을 하고 있었다.또 단은숙처럼 기가 세가 총명해 보이진 않았으나 연약하면서 강인한 아주 전통적인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엔 아직도 손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고은서와 고은혜를 보고도 욕설을 퍼붓거나 냉대하는 대신 겁에 질린 듯 문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은서는 그제야 왜 고국성이 이 여자한테만 무방비하게 굴었는지 알 것 같았다.너무 공격성이 없는 외모 때문에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고국성과 어울리는 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은서가 오미나를 관찰하고 있을 때 고은혜도 똑같이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었다.방금 집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지금 자신의 엄마보다 훨씬 젊고 기품이 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당장이라도 덮쳐들어 한 대 때리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녀의 분노를 느낀 오미나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감쌌다.덕분에 고은혜의 분노가 세게 들끓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고은서가 진정하라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오미나 씨,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눠도 될까요?”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고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미나는 두 사람을 힐끔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들어오세요.”고은서는 소파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미나 씨, 우선 우리 삼촌을 대신해 사과드리죠. 어떻든 이 일은 우리 삼촌 책임이니까요.”여자는 전혀 꿀리지 않고 답했다.“국성 씨 탓이 아니에요. 누구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예상치 못했으니까요.”“예상치 못한 일인 걸 알면 우리 아빠랑 깨끗하게 끝냈어야죠. 왜 아이로 우리 아빠를 협박하는 건데요!”고은혜가 분

  • 어게인, 비긴   제892화

    “그럴 시간에 조금 이따 그 여자랑 어떻게 얘기할지나 생각해 봐.”고은서가 고은혜에게 주의를 줬다.그 말을 들은 고은혜의 표정이 순간 굳어버렸다.“언니, 나 이런 일 못 하는 거 알잖아. 그 여자랑도 언니가 나서서 얘기해야 할 걸. 난 그저 집에 있기 싫은 데다가 언니를 응원해주러 따라가는 것뿐이야.”고은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오미나를 만나러 가는 도중 유성준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그는 전화가 통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은서야, 미안해. 요즘 너무 바빠서 미처 연락하지 못했어. 다름이 아니라 오늘 아저씨한테 문제가 생긴 것 같던데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고마워요, 오빠. 저도 이미 들었어요.”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말을 꺼낼만한 일은 아니지만 고은서에게 있어 유성준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는 숨김없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유성준은 약간 놀라긴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내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어?”“아직까진 괜찮은 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빠한테 연락할게요. 오빠, 그보다 요즘 MQ에는 별다른 일 없죠? 업무 리스트 같은 것도 다 확인했을 텐데 문제가 될 만한 곳은 없었어요?”고은서가 진지하게 물었다.유성준은 긴장해 하는 고은서의 말에 약간 어리둥절하기 했으나 현재 상황 그대로 말했다.“MQ는 정상으로 운영되고 있어. 은서야, 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야? 어디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했어?”성아연이 저지른 세무 사건 때문에 유성준도 덩달아 긴장되었다.“아니에요. 그저 생각나서 물어본 것뿐이에요. 오빠, 요즘 MQ에 좀 더 많이 신경 써주세요. 삼촌 일이 좀 많이 복잡할 것 같아서요.”고은서가 유성준에게 부탁했다.“걱정하지마.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요즘 본가에 가지 않았다며?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 거야? 몸도 챙겨가면서 해.”고은서는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에 관해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필경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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