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설령 곽승재가 직접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다고 해도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난 이미 아무 감정도 없거든.”민시후는 여전히 불안해하며 말했다.“우리 다른 프로젝트로 바꾸자. 신재생에너지 쪽도 괜찮아 보이잖아.”“신재생에너지도 좋지. 하지만 왜 제인 제약을 포기해야 해?”고은서가 말을 이었다.“네 말대로 곽승재가 나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거라면 내가 신재생에너지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끼어들지 않을까? 그럼 우린 매번 다 된 프로젝트를 포기하게?”민시후가 태연하게 답했다.“너를 양보하는 것만 아니라면 프로젝트는 상관없어.”고은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세상에 소문난 난봉꾼인 민 도련님이 이런 순진한 연애 바보였다니.”민시후가 고은서에게 다가가 중점만 잡아내며 말했다.“고은서, 네 말은 우리 사이가 연인 관계라는 거지?”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장난하지 말고 인제 제약 프로젝트는 포기할 수 없어.”고은서가 결정을 내리며 말했다.“송민아한테 계약서와 계획서를 수정하게 하고 내일 투자부 직원들을 모아 회의를 열 거야.”판주 투자은행과 공동투자를 하더라도 제인 제약은 매우 좋은 프로젝트였다. 고은서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민시후는 고은서를 바라보며 다소 아쉬운 듯 말했다.“그렇다면 내일 회의는 내가 주재할게. 나도 직접 참여해야겠어.”고은서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민시후, 최근에 다쳐서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건 안 돼. 곽승재는 교활한 사람이야.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지.”민시후는 단호히 거절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웃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좋아. 네 말대로 하자. 그럼 난 먼저 사무실로 돌아갈게.”고은서가 돌아가려고 하자 민시후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왜?”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이따 네 외삼촌 생일 파티에 가야 하잖아. 옷 좀 골라줘.”민시후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걸
민시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고은서, 함정 파려고 하지 마. 내가 사기꾼도 아니고 어떻게 널 가르쳐?”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동안 한 직원이 부러워하며 말했다.“대표님, 여자 친구분과 사이가 정말 좋아 보이네요.”“저는...”“말 잘하네. 전부 다 살게.”기분 좋아진 민시후가 큰손다운 기질을 발휘했다. 그 말에 직원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은서는 해명하려 했지만 끼어들 수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민시후는 그런 고은서를 보며 더욱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옷을 갈아입고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을 하자 두세 시간이 지나갔다.고은서는 거울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문적인 손길이 그녀의 모든 장점을 부각해 놓았다.민시후는 흰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올린 채 나타났다.다른 사람이 입는다면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을 민시후가 입으니 타고난 고급스러움과 매혹적인 느낌을 발산했다.두 사람은 출발 시간이 되어갈 즘 준비를 끝마쳤다.민시후의 비서는 여러 개의 선물을 들고 그들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고국성의 생일 파티는 오성급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운전기사가 호텔 정문에 차를 세우자 곧 호텔 직원들이 다가와서 차 문을 열어줬다.차에서 내린 민시후가 고은서를 향해 팔을 내밀며 팔짱을 끼라는 신호를 보냈다.비록 파티에 걸맞은 행동일 뿐이지만 오늘 파티는 고씨 집안 모든 사람과 친분이 있는 친구들과 고객들이 모이는 자리였다.고은서가 민시후와 팔짱을 끼고 들어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것은 뻔했다.“민시후, 오늘 외삼촌 생일이니 그분이 주인공이야. 우리가 주목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고은서는 어제 박지연이 흥분하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리고 말조심해 줘.”자신이 한 말들이 민시후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걸 안 고은서가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네가 예의를 모른다고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어색한 상황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그래. 너를 향한 내 마음에 확신이 생긴다면
갑작스러운 힘에 고은서는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그녀는 갑작스럽게 넓은 품에 안기게 되었다.익숙한 향기가 풍겨오자 고개를 돌린 고은서는 곽승재임을 확인했다.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것인지 곽승재는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싸늘한 눈빛으로 민시후를 응시하고 있었다.“누구 허락받고 만지는 거야?”곽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민시후도 싸늘한 표정으로 답했다.“무슨 상관인데? 너는 왜 고은서를 당기는데.”그 상황을 본 고은서는 곽승재의 품에서 벗어나 민시후 옆으로 서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여기 있어?”고은서의 물음에 곽승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심하게 꾸민 고은서는 평소보다 더 빛났다.심플하면서도 정교한 디자인에 몸에 맞는 흰색 드레스는 그녀를 완벽하게 감쌌다.드레스는 무릎까지 내려왔고 그녀의 가냘프고 흰 작은 다리가 드러났다. 그런 고은서의 모습은 마치 요정 같았다.흰색 정장을 입은 민시후와 함께 서 있으니 두 사람은 잘 어울리며 보기 좋았다.하지만 곽승재는 가슴 한편에서 묘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삼촌 생일이라 초대받아서 왔는데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어?”곽승재가 차갑게 말하자 고은서는 콧방귀를 뀌었다.작년에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그녀는 곽승재와 함께 외삼촌 생일 파티에 참석하려 했으나 곽승재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곽승재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와있었다.정말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웠다.“고은서, 왔으면서 왜 들어오지 않고 여기 서 있어?”그때 고은혜가 연회장에서 나와 고은서에게 인사를 건넸다.동시에 고은혜는 민시후와 곽승재를 발견했다.민시후는 흰색 정장을 입고 굉장히 잘생기고 매혹적인 모습이었고 곽승재는 전형적인 검은색 고급 정장을 입고 차가우면서도 잘 생겼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은혜는 두 사람을 보고 상황을 짐작하고는 조심스럽게 고은서에게 물었다.“둘이 어떻게 같이 온 거야? 싸우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네.”고은서는 고은혜를 흘깃 쳐다
“아니요, 은서 정말 능력 있어요.”“할아버지.”곽승재는 더 이상 듣지 않고 고준석을 부르며 고국성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삼촌, 생신 축하합니다. 제가 준비한 작은 선물인데 받아 ㅜ세요.”곽승재는 고국성에게 자수정 상자를 건넸다.단은숙이 고국성을 대신해 선물을 받아 열어보았고 그것은 고국성이 좋아하는 고급 담배통이었다.고국성도 선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고맙다. 승재야. 마음 많이 써주었구나.”“삼촌이 좋아하실 것 같아 지난번 경매에서 보고 괜찮은 것 같아 바로 사 왔어요.”곽승재도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은서야, 너는 무슨 선물 준비했어?”곽승재가 자연스럽게 고은서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그를 째려보았다.‘일부러 이러는 거야!’그녀가 준비한 선물도 담배통이었는데 백화점에서 산 것이어서 곽승재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곽승재가 먼저 선수를 친 상황에서 그녀는 준비한 선물을 자신 있게 꺼내 보일 수 없었다.“저희가 준비한 선물은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 어려워요.”민시후가 고은서의 기분을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었다.민시후가 눈빛을 보내자 운전기사가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고급 영양제뿐만 아니라 술, 담배 그리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들어 있었다.고국성은 예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우아함을 자랑하고 싶어 했고 특히 이런 고급스럽고 보기 드문 그림을 좋아했다.“시후, 안목이 좋네. 이 그림 정말 마음에 들어.”고국성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호칭마저 바꾸며 기쁜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고국성이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좋은 선물이구나. 이제 외삼촌한테 효도할 줄도 아네.”고은서는 민시후의 도움에 감사했다.하지만 곽승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는 고은서가 이런 자리에 민시후를 데려올 줄도 몰랐고 민시후가 이렇게까지 철저히 준비할 줄도 몰랐다.선물 경쟁에서 민시후는 완벽히 승리한 셈이었다.민시후는 고국성에게 그림을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단은숙에게 피부에 좋은 영양제를 고준석에게는 고급 옥돌
고은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온화한 표정을 한 유성준이 서 있었다.“성준 오빠.”고은서가 웃으며 그를 불렀다.유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시후를 보았다.“이분은 네 친구야?”“네. 민시후예요.”민시후가 유성준을 향해 신사답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유성준도 신사답게 답례하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시후 씨.”두 사람이 잠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고국성이 민시후에게 다가왔다.“시후야,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저기 내 친구도 전문가야. 같이 얘기 나눠 보지 않을래?”고은서는 외삼촌의 이런 제안이 민시후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 대신해 거절하려던 찰나 민시후가 답했다.“좋아요.”민시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삼촌께서 제가 너무 문외한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좋습니다. 은서야, 나 먼저 저기 가 있을게. 나중에 다시 올게.”가기 전 민시후는 고은서에게 말하고 유성준을 향해서도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민시후와 고국성이 자리를 뜨자 유성준이 민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은서야, 저 사람이 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말한 사람이지?”고은서는 유성준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씁쓸함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성준 오빠, 미안해요.”“바보같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유성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후 씨는 잘생기고 품격도 좋고 너를 아껴주는 것 같아. 네가 끌리는 것도 이해가 돼.”“성준 오빠도 좋은 사람이에요. 저를 지켜주려 한 오빠의 마음과 노력에 정말 감사해요.”고은서가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을 이었다.“더 이상 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다른 여성분을 찾아보세요.”“널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니야. 하지만 너에게 부담을 주려는 생각은 없어. MQ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나도 이 마음에 대하여 제대로 고민해 봐야겠지.”고은서가 얼른 답했다.“MQ일은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오빠 마음이 더 중요하죠.”“은서야,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는 것에 습관
질투가 밀려오자 곽승재는 마음 한편이 저릿해 났다.육현석이 전화에서 얘기했던 대로 고국성에게 예의를 다하기 위해 연회를 끝까지 참석하려고 돌아왔지만 고은서와 민시후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자 곽승재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기분이 들지 않아 다시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은서야, 곽 대표님 가셨어.”유성준이 말하자 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까 갔잖아요.”“다시 왔어.”유성준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어쩌면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꼿꼿한 자세를 한 평소와 달리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곽 대표님처럼 강한 성격을 가진 분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뜬 걸 보면 너와 시후 씨가 함께하는 모습이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거겠지.”유성준은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이렇게 생각하면 나한테 기회가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네.”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유성준은 씁쓸한 마음을 거두고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네가 여시은 씨를 위해 제작한 향수 샘플, 여시은 씨가 아주 만족스러워했어. 그분이 또 우리한테 고객을 소개해 줬는데 MQ에서 새로 영입한 조향사가 경험이 부족해서 네가 함께 만나봤으면 하는데 이번 주에 시간 될까?”MQ를 위해 맞춤 향수 라인을 개척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 고은서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그 후 유성준은 여시은과의 프로젝트는 거의 끝나고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업무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민시후가 고은서를 찾으러 왔을 때는 이미 3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이제 곧 식사가 시작되니 가서 앉자.”민시후가 자연스레 말하자 고은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성준 오빠, 오빠도 외할아버지랑 함께 앉지 않을래요?”유성준은 민시후를 잠시 보고는 부드럽게 거절했다.“괜찮아. MQ 중요 고객분들도 오셨으니 그분들과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아.”고은서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민시후
고은서는 고준석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곽승재가 개인적으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고?’T국에서 있었던 일을 솔직히 얘기할 수 없었던 고은서는 단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해 곽승재가 다쳤다고만 했다.“너 때문에 다친 거야?”고준석이 묻자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넌 전혀 감동하지 않은 거야?”고준석이 놀라며 물었다.지난 생이었다면 곽승재가 총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신해 작은 상처라도 입었어도 감동했을 것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이 상황이 피곤할 뿐이어서 간략하게 답했다.“할아버지, 당시 상황이 복잡해서 한두 마디로 설명해 드리기 어려워요.”고준석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은서야, 나는 네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 사람을 좋아해서 새로운 인연을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고은서도 고준석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절대 곽승재 심기를 어지럽히려고 민시후의 마음을 받아주려는 게 아니에요.”고준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우리 은서 이제 다 컸네.”얼마간 이야기를 나누자 밖의 연회도 마무리 되어 갔다. 고은서는 바로 고준석을 차에 태우고 민시후를 찾으러 연회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는 바로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민시후는 술을 많이 마셨는지 취한 기색이 보였다.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고은서를 바라보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고은서,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여기 있잖아.”고은서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얼마나 마신 거야? 취했어?”지난번 클럽에서 민시후와 곽승재가 내기했을 때 고은서는 민시후가 술을 잘 마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주량을 보니 내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안 취했어.”민시후가 고은서의 생각을 눈치채고 말했다.“나 술 잘 마셔. 너무 오래 안 마셔서 상태가 안 좋을 뿐이야.”고은서는 취한 사람과 논쟁을 이어가지 않기로 했다.“알았어. 너 술 잘 마셔. 가자. 바래다줄게.”민시후가 고은서의 옆
화가 나면서도 억울한 감정을 느낀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나도 좀 봐주면 안 될까? 나도 조금이나마 좋아해 주면 안 돼?”마음이 약해진 고은서는 민시후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유성준이 나한테 몇 번 고백하긴 했지만 다 거절했어. 방금전에 얘기하길 점차 내려놓고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애를 찾을 거래.”그 말을 들은 민시후는 이내 희망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고은서, 날 위해서 유성준의 고백을 거절한 거야?”고은서는 전에도 유성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명확하게 거절한 이유는 민시후한테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아마도?”“맞으면 맞다고 하면 되는 거지. 아마도가 뭐야.”민시후는 그녀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만족했다.“고은서, 다들 널 은서라고 부르던데 나도 그렇게 불러도 돼?”고은서는 조마조마해 하는 민시후의 눈빛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냥 칭호일 뿐인데 네 마음대로 해.”“은서야.”민시후가 새로운 칭호를 그녀를 불렀다.“응.”고은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줬다.“은서야.”민시후는 또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꽉 잡았다.둘 외에 아무 사람도 없는 이 시간, 달빛과 유유히 불어오는 밤바람 때문인지 민시후의 목소리가 매우 유혹적이고 부드럽게 느껴졌다.사랑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는 민시후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내 진한 키스라도 할 것 같았다.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술기운 때문일까. 고은서는 민시후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갑자기 멀리서 차 경보 소리가 들려왔다.소리가 하도 커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사삭 깨졌다.고은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려던 생각을 접었다.고은서는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러 오는 아파트 경호원을 보며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민시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서 쉬어.”민시후는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곽승재는 고은서를 꼭 끌어안은 채 말을 이어갔다.“은서야, 네가 날 원망하고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나도 너한테 더 잘해주지 못한 내가, 너를 향한 내 감정을 더 빨리 발견하지 못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 내가 다 잘못했어. 이후로 너를 더 아껴줄게. 그러니까 제발 날 버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나에게도 사죄할 수는 기회를 주면 안 될까?”곽승재의 품에 안긴 고은서의 귓가에는 온통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그의 목소리뿐이었다.이미 곽승재를 향한 사랑을 다 거두어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다.“모든 상처가 다 사죄한다고 나아질 수 있는 게 아니야.”고은서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사과는 받아줄게. 하지만 나 당신한테 이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기회를 준다는 것도 불가능하단 말이야.”“민시후 때문이야?”곽승재가 고개를 들고 아주 쓸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민시후가 아니더라도 언젠간 또다른 남자가 생길 거야. 당신한테서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더는 사랑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나도 언젠간 새로운 사랑을 찾는 날이 올거야. 자존심 때문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내려놔. 계속 집착한다고 해도 더 비호감으로 느껴질 뿐이니까.”곽승재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은서야, 나 일시적인 승부욕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 네가 누구랑 사귀든 난 절대 포기 못 해.”고은서는 끝까지 고집부리는 곽승재를 보며 순간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포기하든 말든 당신 일이야. 아무튼 난 더는 당신이랑 함께 할 생각이 없어. 그리고 경고하는데 ZY그룹이나 민시후를 해치려는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 민씨 가문의 힘을 빌리는 걸 싫어한다고 해도 당신이 손을 쓰는 순간 민시후 아버지랑 형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곽승재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고은서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지금 내 뜻을 오해한 것도 모자라 내가 민시후를 해칠
화가 나면서도 억울한 감정을 느낀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나도 좀 봐주면 안 될까? 나도 조금이나마 좋아해 주면 안 돼?”마음이 약해진 고은서는 민시후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유성준이 나한테 몇 번 고백하긴 했지만 다 거절했어. 방금전에 얘기하길 점차 내려놓고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애를 찾을 거래.”그 말을 들은 민시후는 이내 희망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고은서, 날 위해서 유성준의 고백을 거절한 거야?”고은서는 전에도 유성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명확하게 거절한 이유는 민시후한테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아마도?”“맞으면 맞다고 하면 되는 거지. 아마도가 뭐야.”민시후는 그녀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만족했다.“고은서, 다들 널 은서라고 부르던데 나도 그렇게 불러도 돼?”고은서는 조마조마해 하는 민시후의 눈빛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냥 칭호일 뿐인데 네 마음대로 해.”“은서야.”민시후가 새로운 칭호를 그녀를 불렀다.“응.”고은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줬다.“은서야.”민시후는 또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꽉 잡았다.둘 외에 아무 사람도 없는 이 시간, 달빛과 유유히 불어오는 밤바람 때문인지 민시후의 목소리가 매우 유혹적이고 부드럽게 느껴졌다.사랑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는 민시후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내 진한 키스라도 할 것 같았다.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술기운 때문일까. 고은서는 민시후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갑자기 멀리서 차 경보 소리가 들려왔다.소리가 하도 커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사삭 깨졌다.고은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려던 생각을 접었다.고은서는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러 오는 아파트 경호원을 보며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민시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서 쉬어.”민시후는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고은서는 고준석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곽승재가 개인적으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고?’T국에서 있었던 일을 솔직히 얘기할 수 없었던 고은서는 단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해 곽승재가 다쳤다고만 했다.“너 때문에 다친 거야?”고준석이 묻자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넌 전혀 감동하지 않은 거야?”고준석이 놀라며 물었다.지난 생이었다면 곽승재가 총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신해 작은 상처라도 입었어도 감동했을 것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이 상황이 피곤할 뿐이어서 간략하게 답했다.“할아버지, 당시 상황이 복잡해서 한두 마디로 설명해 드리기 어려워요.”고준석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은서야, 나는 네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 사람을 좋아해서 새로운 인연을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고은서도 고준석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절대 곽승재 심기를 어지럽히려고 민시후의 마음을 받아주려는 게 아니에요.”고준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우리 은서 이제 다 컸네.”얼마간 이야기를 나누자 밖의 연회도 마무리 되어 갔다. 고은서는 바로 고준석을 차에 태우고 민시후를 찾으러 연회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는 바로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민시후는 술을 많이 마셨는지 취한 기색이 보였다.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고은서를 바라보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고은서,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여기 있잖아.”고은서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얼마나 마신 거야? 취했어?”지난번 클럽에서 민시후와 곽승재가 내기했을 때 고은서는 민시후가 술을 잘 마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주량을 보니 내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안 취했어.”민시후가 고은서의 생각을 눈치채고 말했다.“나 술 잘 마셔. 너무 오래 안 마셔서 상태가 안 좋을 뿐이야.”고은서는 취한 사람과 논쟁을 이어가지 않기로 했다.“알았어. 너 술 잘 마셔. 가자. 바래다줄게.”민시후가 고은서의 옆
질투가 밀려오자 곽승재는 마음 한편이 저릿해 났다.육현석이 전화에서 얘기했던 대로 고국성에게 예의를 다하기 위해 연회를 끝까지 참석하려고 돌아왔지만 고은서와 민시후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자 곽승재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기분이 들지 않아 다시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은서야, 곽 대표님 가셨어.”유성준이 말하자 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까 갔잖아요.”“다시 왔어.”유성준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어쩌면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꼿꼿한 자세를 한 평소와 달리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곽 대표님처럼 강한 성격을 가진 분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뜬 걸 보면 너와 시후 씨가 함께하는 모습이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거겠지.”유성준은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이렇게 생각하면 나한테 기회가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네.”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유성준은 씁쓸한 마음을 거두고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네가 여시은 씨를 위해 제작한 향수 샘플, 여시은 씨가 아주 만족스러워했어. 그분이 또 우리한테 고객을 소개해 줬는데 MQ에서 새로 영입한 조향사가 경험이 부족해서 네가 함께 만나봤으면 하는데 이번 주에 시간 될까?”MQ를 위해 맞춤 향수 라인을 개척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 고은서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그 후 유성준은 여시은과의 프로젝트는 거의 끝나고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업무 이야기를 하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민시후가 고은서를 찾으러 왔을 때는 이미 3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이제 곧 식사가 시작되니 가서 앉자.”민시후가 자연스레 말하자 고은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성준 오빠, 오빠도 외할아버지랑 함께 앉지 않을래요?”유성준은 민시후를 잠시 보고는 부드럽게 거절했다.“괜찮아. MQ 중요 고객분들도 오셨으니 그분들과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아.”고은서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민시후
고은서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온화한 표정을 한 유성준이 서 있었다.“성준 오빠.”고은서가 웃으며 그를 불렀다.유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민시후를 보았다.“이분은 네 친구야?”“네. 민시후예요.”민시후가 유성준을 향해 신사답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유성준도 신사답게 답례하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시후 씨.”두 사람이 잠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고국성이 민시후에게 다가왔다.“시후야,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저기 내 친구도 전문가야. 같이 얘기 나눠 보지 않을래?”고은서는 외삼촌의 이런 제안이 민시후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 대신해 거절하려던 찰나 민시후가 답했다.“좋아요.”민시후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삼촌께서 제가 너무 문외한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좋습니다. 은서야, 나 먼저 저기 가 있을게. 나중에 다시 올게.”가기 전 민시후는 고은서에게 말하고 유성준을 향해서도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민시후와 고국성이 자리를 뜨자 유성준이 민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은서야, 저 사람이 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말한 사람이지?”고은서는 유성준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씁쓸함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성준 오빠, 미안해요.”“바보같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유성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후 씨는 잘생기고 품격도 좋고 너를 아껴주는 것 같아. 네가 끌리는 것도 이해가 돼.”“성준 오빠도 좋은 사람이에요. 저를 지켜주려 한 오빠의 마음과 노력에 정말 감사해요.”고은서가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을 이었다.“더 이상 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다른 여성분을 찾아보세요.”“널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니야. 하지만 너에게 부담을 주려는 생각은 없어. MQ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나도 이 마음에 대하여 제대로 고민해 봐야겠지.”고은서가 얼른 답했다.“MQ일은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오빠 마음이 더 중요하죠.”“은서야,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는 것에 습관
“아니요, 은서 정말 능력 있어요.”“할아버지.”곽승재는 더 이상 듣지 않고 고준석을 부르며 고국성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삼촌, 생신 축하합니다. 제가 준비한 작은 선물인데 받아 ㅜ세요.”곽승재는 고국성에게 자수정 상자를 건넸다.단은숙이 고국성을 대신해 선물을 받아 열어보았고 그것은 고국성이 좋아하는 고급 담배통이었다.고국성도 선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고맙다. 승재야. 마음 많이 써주었구나.”“삼촌이 좋아하실 것 같아 지난번 경매에서 보고 괜찮은 것 같아 바로 사 왔어요.”곽승재도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은서야, 너는 무슨 선물 준비했어?”곽승재가 자연스럽게 고은서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그를 째려보았다.‘일부러 이러는 거야!’그녀가 준비한 선물도 담배통이었는데 백화점에서 산 것이어서 곽승재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곽승재가 먼저 선수를 친 상황에서 그녀는 준비한 선물을 자신 있게 꺼내 보일 수 없었다.“저희가 준비한 선물은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 어려워요.”민시후가 고은서의 기분을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었다.민시후가 눈빛을 보내자 운전기사가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고급 영양제뿐만 아니라 술, 담배 그리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들어 있었다.고국성은 예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우아함을 자랑하고 싶어 했고 특히 이런 고급스럽고 보기 드문 그림을 좋아했다.“시후, 안목이 좋네. 이 그림 정말 마음에 들어.”고국성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호칭마저 바꾸며 기쁜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고국성이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좋은 선물이구나. 이제 외삼촌한테 효도할 줄도 아네.”고은서는 민시후의 도움에 감사했다.하지만 곽승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는 고은서가 이런 자리에 민시후를 데려올 줄도 몰랐고 민시후가 이렇게까지 철저히 준비할 줄도 몰랐다.선물 경쟁에서 민시후는 완벽히 승리한 셈이었다.민시후는 고국성에게 그림을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단은숙에게 피부에 좋은 영양제를 고준석에게는 고급 옥돌
갑작스러운 힘에 고은서는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그녀는 갑작스럽게 넓은 품에 안기게 되었다.익숙한 향기가 풍겨오자 고개를 돌린 고은서는 곽승재임을 확인했다.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것인지 곽승재는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싸늘한 눈빛으로 민시후를 응시하고 있었다.“누구 허락받고 만지는 거야?”곽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민시후도 싸늘한 표정으로 답했다.“무슨 상관인데? 너는 왜 고은서를 당기는데.”그 상황을 본 고은서는 곽승재의 품에서 벗어나 민시후 옆으로 서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여기 있어?”고은서의 물음에 곽승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심하게 꾸민 고은서는 평소보다 더 빛났다.심플하면서도 정교한 디자인에 몸에 맞는 흰색 드레스는 그녀를 완벽하게 감쌌다.드레스는 무릎까지 내려왔고 그녀의 가냘프고 흰 작은 다리가 드러났다. 그런 고은서의 모습은 마치 요정 같았다.흰색 정장을 입은 민시후와 함께 서 있으니 두 사람은 잘 어울리며 보기 좋았다.하지만 곽승재는 가슴 한편에서 묘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삼촌 생일이라 초대받아서 왔는데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어?”곽승재가 차갑게 말하자 고은서는 콧방귀를 뀌었다.작년에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그녀는 곽승재와 함께 외삼촌 생일 파티에 참석하려 했으나 곽승재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곽승재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와있었다.정말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웠다.“고은서, 왔으면서 왜 들어오지 않고 여기 서 있어?”그때 고은혜가 연회장에서 나와 고은서에게 인사를 건넸다.동시에 고은혜는 민시후와 곽승재를 발견했다.민시후는 흰색 정장을 입고 굉장히 잘생기고 매혹적인 모습이었고 곽승재는 전형적인 검은색 고급 정장을 입고 차가우면서도 잘 생겼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은혜는 두 사람을 보고 상황을 짐작하고는 조심스럽게 고은서에게 물었다.“둘이 어떻게 같이 온 거야? 싸우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네.”고은서는 고은혜를 흘깃 쳐다
민시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고은서, 함정 파려고 하지 마. 내가 사기꾼도 아니고 어떻게 널 가르쳐?”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동안 한 직원이 부러워하며 말했다.“대표님, 여자 친구분과 사이가 정말 좋아 보이네요.”“저는...”“말 잘하네. 전부 다 살게.”기분 좋아진 민시후가 큰손다운 기질을 발휘했다. 그 말에 직원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은서는 해명하려 했지만 끼어들 수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민시후는 그런 고은서를 보며 더욱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옷을 갈아입고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을 하자 두세 시간이 지나갔다.고은서는 거울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문적인 손길이 그녀의 모든 장점을 부각해 놓았다.민시후는 흰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올린 채 나타났다.다른 사람이 입는다면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을 민시후가 입으니 타고난 고급스러움과 매혹적인 느낌을 발산했다.두 사람은 출발 시간이 되어갈 즘 준비를 끝마쳤다.민시후의 비서는 여러 개의 선물을 들고 그들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고국성의 생일 파티는 오성급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운전기사가 호텔 정문에 차를 세우자 곧 호텔 직원들이 다가와서 차 문을 열어줬다.차에서 내린 민시후가 고은서를 향해 팔을 내밀며 팔짱을 끼라는 신호를 보냈다.비록 파티에 걸맞은 행동일 뿐이지만 오늘 파티는 고씨 집안 모든 사람과 친분이 있는 친구들과 고객들이 모이는 자리였다.고은서가 민시후와 팔짱을 끼고 들어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것은 뻔했다.“민시후, 오늘 외삼촌 생일이니 그분이 주인공이야. 우리가 주목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고은서는 어제 박지연이 흥분하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리고 말조심해 줘.”자신이 한 말들이 민시후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걸 안 고은서가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네가 예의를 모른다고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어색한 상황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그래. 너를 향한 내 마음에 확신이 생긴다면
고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설령 곽승재가 직접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다고 해도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난 이미 아무 감정도 없거든.”민시후는 여전히 불안해하며 말했다.“우리 다른 프로젝트로 바꾸자. 신재생에너지 쪽도 괜찮아 보이잖아.”“신재생에너지도 좋지. 하지만 왜 제인 제약을 포기해야 해?”고은서가 말을 이었다.“네 말대로 곽승재가 나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거라면 내가 신재생에너지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끼어들지 않을까? 그럼 우린 매번 다 된 프로젝트를 포기하게?”민시후가 태연하게 답했다.“너를 양보하는 것만 아니라면 프로젝트는 상관없어.”고은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세상에 소문난 난봉꾼인 민 도련님이 이런 순진한 연애 바보였다니.”민시후가 고은서에게 다가가 중점만 잡아내며 말했다.“고은서, 네 말은 우리 사이가 연인 관계라는 거지?”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장난하지 말고 인제 제약 프로젝트는 포기할 수 없어.”고은서가 결정을 내리며 말했다.“송민아한테 계약서와 계획서를 수정하게 하고 내일 투자부 직원들을 모아 회의를 열 거야.”판주 투자은행과 공동투자를 하더라도 제인 제약은 매우 좋은 프로젝트였다. 고은서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민시후는 고은서를 바라보며 다소 아쉬운 듯 말했다.“그렇다면 내일 회의는 내가 주재할게. 나도 직접 참여해야겠어.”고은서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민시후, 최근에 다쳐서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건 안 돼. 곽승재는 교활한 사람이야.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지.”민시후는 단호히 거절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웃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좋아. 네 말대로 하자. 그럼 난 먼저 사무실로 돌아갈게.”고은서가 돌아가려고 하자 민시후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왜?”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이따 네 외삼촌 생일 파티에 가야 하잖아. 옷 좀 골라줘.”민시후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