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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작가: 류한나
화가 나면서도 억울한 감정을 느낀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도 좀 봐주면 안 될까? 나도 조금이나마 좋아해 주면 안 돼?”

마음이 약해진 고은서는 민시후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유성준이 나한테 몇 번 고백하긴 했지만 다 거절했어. 방금전에 얘기하길 점차 내려놓고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애를 찾을 거래.”

그 말을 들은 민시후는 이내 희망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은서, 날 위해서 유성준의 고백을 거절한 거야?”

고은서는 전에도 유성준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명확하게 거절한 이유는 민시후한테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마도?”

“맞으면 맞다고 하면 되는 거지. 아마도가 뭐야.”

민시후는 그녀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만족했다.

“고은서, 다들 널 은서라고 부르던데 나도 그렇게 불러도 돼?”

고은서는 조마조마해 하는 민시후의 눈빛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칭호일 뿐인데 네 마음대로 해.”

“은서야.”

민시후가 새로운 칭호를 그녀를 불렀다.

“응.”

고은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줬다.

“은서야.”

민시후는 또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꽉 잡았다.

둘 외에 아무 사람도 없는 이 시간, 달빛과 유유히 불어오는 밤바람 때문인지 민시후의 목소리가 매우 유혹적이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사랑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고은서를 바라보는 민시후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내 진한 키스라도 할 것 같았다.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술기운 때문일까. 고은서는 민시후를 보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멀리서 차 경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하도 커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사삭 깨졌다.

고은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려던 생각을 접었다.

고은서는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러 오는 아파트 경호원을 보며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민시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돌아가서 쉬어.”

민시후는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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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시후가 이미 아래층에 도착했다는 말에 고은서는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민시후는 오늘 좀 더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흰색 후드티와 편안한 바지를 입은 그는 평소보다 더욱 잘생기고 매력적인 모습이었다.고은서도 편안함을 위해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이거 커플 룩 아니야?”민시후의 장난에 고은서가 그를 흘겼다.“말이라도 못 하면.”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근처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은 후 해성 공연장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고은서가 어젯밤에 민시현이 그를 찾아간 일에 대해 묻자 민시후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말했다.“전에 했던 얘기랑 똑같아. 내가 반응 없으니까 형도 지루해져서 그냥 갔어.”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 민시현은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고 민시후는 아마도 형한테 큰 꾸중을 들었을 것이다.고은서는 민시현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꿀 수 없었고 민시후에게 자신에 대한 감정을 접으라고 설득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현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곧 공연장에 도착했다.밴드의 팬층은 유명 가수들에 비해 적었지만 여전히 많은 젊은 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포스터를 들거나 형광봉을 흔들며 들떠 있었고 어떤 팬들은 얼굴에 밴드 이름까지 그려 넣었다. 모두 오늘 밤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형광봉을 보고 있던 민시후가 고은서에게 물었다.“우리도 저런 거 하나 살까?”고은서는 예전처럼 그렇게 흥분되거나 설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좋아!”두 사람은 형광봉과 손목띠를 고른 후, 민시후는 고은서에게 LED 미키 머리띠를 골라줬다.“이건 너무 유치하지 않아?”고은서가 질색하며 거절했지만 민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띠를 그녀의 머리에 씌워버렸다.“유치하긴, 내 눈엔 예쁜데!”“정말? 그럼 시후 씨가 한번 써볼래?”고은서가 머리띠를 그에게 건넸다.민시후는 당연히 써볼 생각이 없었고 고은서는 강제로 그에게 씌우려 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웃으며 장난

  • 어게인, 비긴   제850화

    퀸이 케이지를 할퀴자 고은서는 퀸을 안아 올려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돌볼 시간이 없으면 승연이에게 줘. 마침 심리 상담사가 승연이한테 온순한 반려동물을 키우라고 권했어.”“승연이한테는 다른 애를 선물할 거야. 퀸은 내 것이니까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곽승재가 내 것이라고 말할 때 묘하게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퀸을 다시 케이지 안에 넣으며 물었다.“그래서 무슨 일이야?”곽승재가 공연 티켓을 내밀며 말했다.“할아버지한테서 들었어. 청풍 밴드 좋아한다면서? 내일 해성에서 공연이 있는데 시간 되면 같이 보러 갈래?”그가 내민 티켓을 본 순간 고은서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씁쓸한 감정이 피어올랐다.전생에서도 그녀는 청풍 밴드의 공연 티켓을 산 적이 있었다.당시 고은서는 백유미와 곽승재의 관계가 질투나 자주 울고 떼를 쓰며 곽승재를 다그쳤고 그로 인해 둘 사이는 점점 냉랭해졌다.청풍 밴드가 해성에서 공연할 때쯤 그녀는 여러 날 동안 곽승재를 보지 못해 몹시 그리워했다.마침 두 사람이 할머니 댁에서 함께 식사할 기회가 생겨 그녀는 먼저 사과하며 공연을 함께 보러 가자고 제안했었다.전미자가 자리에 있어서일까, 곽승재는 예상과 달리 거절하지 않고 그날 밤 그녀와 함께 예원 별장으로 돌아왔다.들뜬 그녀는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공연 볼 준비에 열을 올리며 입을 옷을 골랐고 응원용 스티커와 도구도 샀으며 세심하게 물과 간식까지 준비했다.마침내 저녁이 되었고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출발하느냐고 물었다.그러나 곽승재는 회의가 있다며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그녀는 곽승재가 바쁘다는 것을 알았기에 신이 나서 먼저 공연장으로 향해 그를 기다렸다.저녁 6시 공연이 시작될 때부터 입장이 마감될 때까지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곽승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집으로

  • 어게인, 비긴   제849화

    범가온은 원래 이기적이고 거칠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아들을 잃고 희망이 사라진 그녀가 이제는 손자마저 잃었으니 얼마나 미쳐 날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은서가 박지연에게 물었다.“백유미 지금 상태는 어때?”“유산도 했고 가위에 찔려서 과다 출혈로 응급실로 실려 갔어. 치료가 늦어지면 목숨도 위험할 거야. 백승엽이 곽승재한테 찾아가 백유미를 더 좋은 병원으로 옮기고 의사도 바꿔 달라고 부탁했는데 곽승재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대. 아마 곽승재 아버지한테 가서도 부탁하겠지. 그쪽에서 신경 써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곽현수는 백유미가 자기 일을 대신 처리해 준 적이 있으니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을 터였다.게다가 백승엽과의 오랜 신뢰 관계도 있으니 백유미가 죽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아마 백유미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그런 극단적인 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은서는 박지연과 몇 마디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민시후는 백유미의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백유미가 비참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기에 그는 따로 의견을 내지 않았다.대신 그는 고은서가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너 전에 청풍이라는 밴드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내일 그 밴드가 해성에서 공연한데. 같이 보러 가자.”고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형 만나야 하잖아. 내일도 나랑 연락할 수 있을까?”민시후가 콧방귀를 뀌었다.“아무리 형이라도 나를 좌지우지할 권리는 없어. 맨날 상사처럼 나한테 훈계질이야. 듣기 싫어 죽겠어. 그러니까 그냥 내일 저녁 같이 밥 먹고 공연 보러 가는 걸로 하자.”“네 형은 더더욱 내가 너한테 나쁜 영향을 준다고 확신하겠네.”“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민시후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빨리 인정하면 내 연애를 막아보겠다는 헛된 꿈도 빨리 포기하겠지.”“나 거절해도 돼?”“안 돼!”결국 고은서는 민시후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한편으로는 민시후를 도저히 이길 수 없었기 때

  • 어게인, 비긴   제848화

    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한 후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요리가 나오자 두 사람은 식사를 즐겼고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민시후가 입을 열었다.“이번 출장에서 유일 투자은행을 대신해 백씨 가문 산업에 있던 고객들과 접촉했어. 유일 투자은행이 가진 능력을 확인한 후 그쪽에서 협력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으니까 직원들에게 후속 조치를 하라고 하면 돼.”민시후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순간 얼어붙었다.‘출장을 다녀온 게 나를 돕기 위해서였어?’“그냥 겸사겸사 진행한 거야. 미래 투자은행에도 진행할 프로젝트가 있었거든.”민시후는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덧붙였다.“그리고 백유미 말인데. 우리 쪽에서 한 의사를 찾아냈어. 그 사람이 당시 정신 감정이 조작된 거라고 증언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게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나을 거야. 그러니까 이 증거는 당장 쓰지 말고 필요할 때 꺼내 써.”고은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밀려왔다.“민시후, 고마워.”“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민시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겉으로 보면 내가 널 돕는 것 같지만 사실 나를 돕는 거야. 네가 돈을 많이 벌어야 나랑 제대로 연애할 생각이 들지.”고은서는 그런 민시후를 바라보았다.평소에 보내오는 시선만으로도 그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되지 않았는데 눈동자까지 반짝이며 말하는 그를 보자 그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그래도 고마워.”고은서가 말을 마치자 핸드폰이 울렸다.박지연에게서 온 연락이었다.박지연은 다른 도시에 다녀오느라 휴가를 냈었는데 요즘 그 휴가로 인한 당직을 서느라 바빴다.시간이 나도 육현석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렇게 연락 오는 일은 드물었다.“지연아, 무슨 일이야?”“은서야, 방금 육현석이 알려줬는데 백유미가 애를 지웠대!”박지연의 목소리가 컸던 탓에 옆에 있던 민시후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민시후와 시선을 마주한 고은서가 다시 박지연에게 물었다.“어떻게

  • 어게인, 비긴   제847화

    송민준은 눈앞에서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두 형제를 바라보며 적절히 나서서 민시현을 말렸다.“형, 같은 가족끼리 싸우지 말고 시후랑 따로 시간 잡아서 얘기 나누시는 게 좋겠어요.”민시현도 지금 대화를 나누기엔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민시후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저녁에 집으로 갈게.”하지만 민시후는 그를 무시한 채 고은서의 손을 잡고 곧장 그들 앞을 지나쳤다.주차장으로 돌아와서도 민시후는 여전히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괜히 기분만 잡쳤네. 멀쩡히 잘 있다가 저 두 사람을 만날 줄이야...”반면 고은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민씨 일가 사람들이 원래부터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런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테니 말이다.“저녁에 형이 찾아온다는데 제발 싸우지 좀 마. 네 형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잖아.”그녀는 오히려 민시후를 위로하듯 장난스럽게 말했다.“재벌 집 도련님이 주변에 수많은 훌륭한 여자들을 두고 굳이 곽승재의 전처를 좋아한다면 나라도 나서서 반대했을걸?”“넌 왜 너를 그렇게 낮춰서 말해?”민시후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날 낮추는 건 아니야. 다만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지. 난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신분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은서야, 그만해.”민시후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 얘기는 수도 없이 했어. 넌 날 설득 못 해. 네가 날 덜 좋아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더 많이 좋아하면 되니까. 자, 밥 먹으러 가자.”가는 길에 민시후는 여시은을 떠봤던 결과를 물었다.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별 소득 없었어. 여시은이 곽승재를 정말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여자들 직감이 그렇게 예리하다면서 너는 직감이 고장 난 거 아냐?”민시후가 놀리듯 말했다.고은서도 자신이 둔감해졌다고 느꼈다. 예전의 그녀라면 곽승재 주변에 작은 변화만 있어도 곧바로 경계 태세를 갖췄을 텐데 지금은 그냥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마음뿐

  • 어게인, 비긴   제846화

    노을의 황금빛이 호수 위로 내려앉으며 물결이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났다.장난기가 발동한 고은서가 두 손을 벋어 저 멀리 호수 위의 부서진 다이아몬드 조각과 햇살을 한데 모아 손안에 담으려는 듯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차에서 내리던 민시후가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고은서는 고풍스러운 회랑 위에 흰색 니트에 연한 색의 롱스커트를 입고 긴 머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가녀린 손을 뻗으며 무언가를 잡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저녁노을이 드리운 호수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주황빛 석양이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까지 물들여 그녀의 존재 자체가 빛을 머금은 듯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그 순간 민시후는 먼 훗날 이 장면을 떠올리더라도 여전히 설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민시후, 거기서 뭐 해?”앞쪽에서 들려온 고은서의 청아한 목소리에 민시후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로 걸어갔다.“미안, 늦었지.”“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은서야, 손을 뻗어서 잡은 게 뭐야? 나도 좀 나눠 줄래?”고은서는 민시후의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그 눈빛을 보고 자신이 아까 허공에 손을 뻗었던 모습을 떠올렸다.순간 얼굴이 뜨거워진 고은서가 민시후에게 눈을 흘겼다.“공기야. 줄까?”그러자 민시후는 두 손을 공손히 내밀며 진지하게 말했다.“네가 주는 거라면 뭐든 좋아.”고은서는 어이없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시후야, 은서 씨?”그 순간 회랑 너머에서 익숙한 송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가 고개를 돌려보자 송민준의 옆에는 강한 위압감을 풍기는 민시현도 함께 있었다.그들 뒤로는 레스토랑 직원들과 비서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고은서가 반응할 틈도 없이 민시후는 재빠르게 고은서를 등 뒤로 감쌌다.“여긴 무슨 일이야?”민시후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레스토랑으로 예약할걸. 좋던 분위기 다 깨졌네.’민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송민준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자리를 뜨라고 제스처를 보낸 뒤

  • 어게인, 비긴   제845화

    서연정의 질문에 고은서는 왠지 모르게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어제 그 남자는 분명 서연정을 향해 호감을 보였고 당시 고은서는 곽승재가 그 장면을 보고 불필요한 오해를 할까 봐 무의식적으로 그 사실을 숨겼다.“죄송해요, 어머니.”서연정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널 탓하는 건 아니야. 넌 착한 아이니 나랑 승재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혹시 불필요한 오해로 갈등이 깊어질까 봐 말하지 않은 거겠지.”서연정이 말을 이었다.“어제 그 친구와는 꽤 오랜 인연이 있어. 예전에 Y 국에서 일했는데 최근에야 귀국했어.”서연정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은서는 그 남자가 서연정 때문에 귀국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눈치챘다.담담하면서도 온화한 서연정의 표정을 바라보며 고은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머니, 그분 혹시 어머니 좋아하시나요?”서연정은 가볍게 웃었다.“우리 나이쯤 되면 좋아한다는 감정에 그리 열정적이거나 충동적이지 않아. 그 사람은 젊을 때 우리 아버지의 신세를 졌고 오랜 세월 나를 가족처럼 생각해 왔어.”고은서는 순간 곽현수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또한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게 그 사람 때문인지도 묻고 싶었지만 고은서는 궁금증을 꾹 참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서연정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승재 아버지 사이의 문제는 다른 사람이랑 상관없어.”고은서도 두 사람의 갈등이 단순한 오해나 제삼자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훨씬 깊고 복잡한 문제 같았다.그때 곽승연이 다가오며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났다.전시회 관람을 마치자 이미 오후였다.서연정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제안할 때 마침 고은서의 전화가 울렸다.민시후에게서 온 연락이었다.“은서야, 나 출장 끝나고 돌아왔어.”민시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리고 네게 전할 소식이 하나 있어.”“무슨 소식인데?”고은서가 묻자 민시후는 장난스럽게 말했다.“궁금하면 시간 내서 이 도련님이랑 밥이

  • 어게인, 비긴   제844화

    그 말에 서연정의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사라졌고 담담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다음 날 일요일 아침 고은서는 서연정의 연락을 받았다.그녀는 해성에서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데 곽승연을 데려가 보고 싶다며 함께 갈 시간이 있는지 물어왔다.서연정이 곽승연을 데리고 호원 저택으로 옮긴 이후로 고은서는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서연정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해 보여서 고은서는 함께 가기로 했다.고은서가 전시장에 도착했을 때 서연정과 곽승연은 이미 와 있었다.“언니!”오랜만에 만난 곽승연은 그녀를 보자 기뻐했다.“승연아, 어머니.”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언니! 이거 제가 그린 그림인데 선물로 줄게요.”곽승연은 그림을 내밀었다.고은서가 받아 보니 그것은 지난번 본가에서 자신이 드럼을 치던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비록 단순한 그림이었지만 당당한 그녀의 자태가 잘 표현되어 있었다.“고마워, 승연아. 정말 잘 그렸네. 너무 마음에 들어.”고은서는 그림을 소중히 가방에 넣었다.“갖고 싶은 선물 있으면 언니가 사줄게.”곽승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그냥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언니처럼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고은서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승연아, 금방 좋아질 거야. 우리 들어가서 전시회 보자.”그림을 좋아하는 곽승연은 난해해 보이는 예술 작품도 깊이 빠져들어 감상했다.그녀가 몰입해서 감상하는 동안 고은서와 서연정은 휴게 공간에 있는 작은 카페로 향했다.“은서야, 승재 통해 보낸 캔들 잘 받았어. 고마워.”서연정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네가 요즘 바쁜 것 같아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어.”고은서도 웃으며 답했다.“어머니, 방해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두 사람이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커피가 나왔다.고은서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은서야, 혹시 지난번 고양이 행사에 갔었어?”서연정이 갑자기 묻자 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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