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인정할게요.” 고은서가 말했다. “시간 될지 확인해 보고 그쪽 개인 트레이닝 수업을 등록할게요!”주인혁은 급히 말했다. “수업을 살 필요 없어요. 공짜로 가르쳐 드릴게요.”“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고객을 밀어내다니, 내가 당신 수업을 선택한 건 당신을 인정했기 때문이에요. 잘 가르치지 못하면 바꾸면 그만이지 왜 공짜로 가르치려고 해요?”고은서의 논리적인 말에 주인혁은 설득되었다.“그럼 저 꼭 열심히 가르칠게요!”“그 정도는 돼야죠.”고은서는 돈을 지불하고 시간이 늦어지자 샤워를 한 후 가방을 들고 차를 타러 갔다. 그때 근육으로 가득한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앞에 있던 사람에게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이 자식아, 또 내 고객을 빼앗아?”고은서가 고개를 들어보니 때리는 사람은 아까 함께 운동했던 코치였고, 맞을 뻔한 사람은 주인혁이었다. 왜 ‘맞을 뻔’ 했냐면 주인혁이 빠르게 피했기 때문이다.근육남은 어디서 쌍절곤을 집어 들었는지 주인혁의 얼굴을 거칠게 내리쳤다. 이렇게 밝고 잘생긴 남자애가 얼굴을 다치면 앞으로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고은서가 그들을 말리려고 하려는 순간 주인혁이 앞으로 팔을 뻗어 쌍절곤을 바로 잡았다. 고은서가 놀랄 새도 없이 화가 난 코치는 주인혁을 잡고 땅에 내던지려 했다. 주인혁도 만만치 않았다. 쓰러지는 순간, 그의 두 다리가 코치의 목을 감고 함께 넘어졌다.쾅!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얽히며 싸우기 시작했다. 둘 다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 싸우는 모습은 마치 무술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서로 치고받았는데 한 방 한 방이 치명적이었다.“두 사람 다 일하기 싫은 거야?” 훈련관 매니저가 다가와 엄하게 꾸짖었다. “훈련관 규칙을 잊었어?”코치는 마지못해 주인혁을 놓아주며 화를 냈다. “이 자식이 내 고객을 자꾸 빼앗아 가잖아요! 그것도 꼭 예쁘고 돈 많은 사람들만 골라서! 아까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데 이 자식이 가로채 갔어요! 내가 참을 수가 있어야지!”주인혁은 얼굴이
곽승재는 냉담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고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긴 목선과 정교한 작은 얼굴이 조명 아래서 더욱 빛나 보였다.그리고 그녀가 지켜준 남자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반짝이는 눈빛이 곽승재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그렇게 정의롭게 말하지 마요. 당신도 다른 여자들처럼 집에 있는 남편이 늙고 못생겨서 이 잘생긴 녀석을 보고 수업을 신청해 꼬시려는 거 아니에요? 아우!” 코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인혁이 그의 턱에 강하게 주먹을 날렸다.“헛소리하지 마요!” 코치는 맞고 나서 바닥에 쓰러졌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입을 감싸며 울부짖었다.“미쳤어? 어떻게 이렇게 세게 때릴 수 있어!” 주인혁은 그저 아르바이트 직원일 뿐이었다. 관리자는 정직원이 피를 보자 급하게 다가왔다.“김성군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돈을 펑펑 쓰는 걸 보면 늙은 남자에게 후원을 받거나 늙은 남자랑 결혼한 거겠지!”“누굴 늙은 남자라고 하는 거지?” 고은서가 주인혁을 말리려는 찰나 앞에서 냉랭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은서가 고개를 들어보니 곽승재가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정교하고 단정한 검은 셔츠를 입고 날카로운 눈매와 높은 콧날 그리고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걸어왔다. 어제 밤의 병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차가운 분위기와 그의 외모만으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인물로 돌아왔다.훈련관 관리자와 김성군은 곽승재의 등장에 순간 얼어붙었다. 그들도 많은 사람을 보아왔지만 눈앞의 남자처럼 위엄 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이 눈에 들어왔다.“당, 당신은 누구죠?” 관리자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곽승재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고은서를 보며 긴 팔을 뻗어 그녀를 감싸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은서 남편입니다.”민시후 술집 사건 이후, 곽승재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고은서의 남편이라고 말하며 주권을
그녀는 곽승재를 신경 쓰지 않고 주인혁에게 물었다. “다쳤어요? 병원 가서 검사 받아볼래요?”주인혁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누나, 오늘 일은 미안해요. 누나까지 끌어들여서.”“뭘요, 그들이 잘못한 거죠.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돌아가요.”주인혁이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주인혁이 떠난 뒤 고은서는 화가 난 듯 곽승재를 바라보았다. “당신 왜 그래? 주인혁 씨가 악수하려는데 왜 무시하냐고?”“너랑 친한 사람이야?” 곽승재는 담담하게 반문했다. “누나라 부를 정도로 친한가?”“누나가 뭔 문제야? 백유미도 당신한테는 ‘승재야’ 라고 부르잖아! 난 그것도 신경 안 썼어!”고은서의 말에 곽승재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고은서, 억지 그만 좀 부려! 지금 그걸 말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사람들 앞에서 다른 남자 편을 들어?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알고 있으니까 계속 언급할 필요 없어.” 고은서가 말했다. “당신이 백유미 씨 편을 든 적이 없는 것처럼 말하네.”고은서가 한숨을 내쉬며 감탄했다.“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혼하는 것도 싫고 심지어 당신을 기다리는 여자한테 명분도 주지 않고, 정말 한심하네.”더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고은서의 목구멍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곽승재는 그녀에게 말했다.“타, 묻고 싶은 게 있어.”“싫어, 여기서 말해. 차 갖고 왔으니까.”“그럼 당신 차에서 얘기해.”“돌아가서 하자. 집중해서 차를 몰아야 하니까 당신과 얘기할 시간 없어.”“고은서, 난 지금 당신이랑 협상하고 있는 게 아니야!” 곽승재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차에 끌려가기 싫으면 빨리 차 문을 열어!”고은서는 곽승재가 확실히 참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가 말한 대로 될까 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차 문을 열었다.곽승재가 조수석에 앉은 후 고은서는 차를 몰았고 곽승재의 기사는 뒤에서 따라왔다.고은서는 앞을 바라보며 좀 불만스럽게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전에 명운의 계획서, 당신
침실에 들어서자 고은서는 이미숙이 여전히 곽승재의 물건들을 치우지 않았음을 발견했다.하지만 다행히도 곽승재는 오늘 밤 그녀의 침실에 들어올 생각이 없어 보였고, 고은서는 안에서 문을 잠갔다.침대에 누우니 고은서는 여전히 그 위에 곽승재의 기운이 남아있는 것 같아 편히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차라리 일어나 곽승재의 물건들을 복도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손을 털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이제야 훨씬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고 고은서는 베개에 엎드려 잠들었다.다음 날 고은서가 일어났을 때 집에는 이미 곽승재의 흔적이 없었다.그의 물건들은 여전히 문 옆에 버려져 있었다.이미숙에게 버리라고 하고 고은서는 휴대폰을 확인했다.명운의 뉴스가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서인수와 도아름은 가장 빠른 속도로 이혼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명운의 재산도 나누었다.서인수는 자신의 기술과 거액의 현금을 가지고 독립했고, 도아름은 명운의 이름과 주식을 가져갔다.명운의 전신은 도아름의 아버지가 설립한 주류 공장이었기에 도아름이 되찾으려 한 것은 이해할 만했다.고은서는 도아름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명운에 도착했을 때 도아름은 막 회의를 마친 참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피로감이 묻어났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의기소침해 보이지도 않고 좌절한 것 같지도 않았다.“아름 언니.” 고은서가 그녀를 불렀다.도아름은 그녀를 보고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곧 사무실로 안내했다.“아름 언니, 괜찮으세요?” 고은서가 물었다.도아름은 짧은 며칠 사이에 남편의 배신을 겪었고 그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그녀는 신속하게 이혼을 마쳤고 이제 혼자서 명운을 운영해 나가야 했다.고은서는 자신이 환생한 사람이라 해도 그녀처럼 강인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도아름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요, 이미 결정을 했으니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고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명운에 서 사장님의 기술이 없는데, 언니는 어떻게 할 계획이에요?”도아름은 아버지가 예전부터 자신만의 제조법을 가지고
고은서는 명운의 현재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도아름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은서는 대화를 멈추었다.“아름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자금 문제는 방법을 찾아볼게요.”“평소엔 누구나 도와주려 하지만 어려울 때 도와주는 건 쉽지 않죠.”도아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명운의 현재 상황은 나도 잘 알아요. 누구도 감히 투자하지 않을 거예요.”고은서도 당연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도아름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명운을 나온 고은서는 박지연의 전화를 받았다.그녀도 명운의 뉴스를 봤던 것이다.“서인수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자선이란 이름으로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하다니, 경찰이 그를 체포해 조사하지 않아?” 박지연이 분개했다.“아름 언니가 이 일로 이미 신고했어. 하지만 복지원의 여자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술자리에 갔고 서인수와 함께 있는 것도 자발적이라고 했대.”“복지원 쪽 사람들은 서인수와의 사적인 교류가 모두 복지원 업무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어. 그래서 도덕적 비난 외에는 그들을 실제로 처벌하기 어려워.”“그럼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거야?” 박지연이 화를 냈다.“서인수는 현재 명운을 떠났고 이런 추문도 있어서 다시 주류 공장을 열어도 재기하기 어려울 거야. 이것도 일종의 업보라고 볼 수 있지.”“그게 무슨 업보야. 여전히 돈 있고, 평판만 나빠졌을 뿐 아무런 손해도 없잖아!”박지연은 몇 마디 욕을 하더니 도아름의 현재 상황에 대해 물었다.고은서는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아름 언니를 어떻게 도울 계획이야? 미래 투자은행에서 명운에 다시 투자할까?” 박지연이 물었다.“아마 안 할 거야.”고은서는 자신과 민시후와의 사이가 틀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이익 측면에서 민시후는 쉽게 투자하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200억의 자금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명운 상황으로는 긴급한 위기를 모면하는 정도밖에 안 될
고은서는 정말 박지연이 정신을 차리길 바랐다. “남편의 과거 연애사에 관심을 갖는 건 절대 나쁘지 않아. 지금 당장 온 선생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줘 봐. 관심하는 동시에 그 여자 동창을 관찰할 수도 있잖아.”“알았어, 알았어. 갈게.”박지연과의 통화를 끝낸 후에도 고은서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녀는 박지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시어머니가 옥을 좋아하신다고 했지? L국의 옥 제품이 유명하잖아. 팔찌 하나 골라서 선물로 드리는 게 어때?]전생에 박지연의 말에 따르면 온 선생님의 이 첫사랑은 수준이 꽤 높았다고 한다. 박지연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온 선생님 부모님 마음도 잘 사로잡았다.이번에 귀국 후 그녀가 온 선생님 집안을 방문했을 때 가져간 선물이 바로 옥팔찌였고 온 선생님 어머니가 매우 좋아하셨다.그래서 박지연은 온 선생님과 함께 L국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었다.이번 생에는 박지연의 노력이 그녀와 온 선생님의 결말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선물 얘기가 나오자 고은서는 할머니의 생일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할머니께 특별한 선물을 골라 드리고 싶었다.손자며느리로서 할 수 있는 작은 효도라고 생각했다.앞으로 할머니의 생일을 함께 보낼 때 그녀는 기껏해야 평범한 후배일 뿐일 테니까.고은서는 먼저 쇼핑몰에 가서 보리수 염주를 주문했다. 할머니가 불교를 믿으시니 이 선물이 적합할 것 같았다.그리고 사진 액자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곳을 찾아갔다. 지난번 레스토랑 정원에서 찍은 사진들 중 예쁜 것들을 골라 할머니를 위해 정교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급 옷 몇 벌만 사라고 했는데, 꼭 이렇게 비싼 시계를 사야겠니? 돈 좀 아낄 줄 모르는구나!”사진을 고르고 있는데 약간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를 들리자 고은서는 손을 흠칫 떨었다.고은서가 환생한 지 꽤 되었지만 이 목소리를 들으니 두피가 조건반사적으로 찌릿해졌다.전생에 이 목소리의 주인공인 범가온은 그녀를 2년 넘게 괴롭혔다.매일
떠나기 전, 그녀는 ‘수리 중’ 표지판을 밖에 세워두었다.그리고 주인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컴퓨터에 아주 능숙한 친구가 있다고 했죠? 그 친구에게 부탁 좀 해줘요. XX 쇼핑몰 1층의 지난 30분간 감시 카메라 영상을 해킹해서 지워달라고요.”주인혁은 약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승낙했다. “알겠어요, 구체적인 위치를 보내줘요.”고은서는 주인혁의 SNS를 통해 그의 밴드에 실력 있는 컴퓨터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난 생에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농담 삼아 그 친구가 악기에 빠진 해커 재목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모든 것을 처리하고 나니 고은서의 마음속 분노가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고은서는 어젯밤에 침실 밖으로 던져놓은 물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명운의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성명은 이미 발표되었기에 모두가 명운의 사장이 스캔들에 휘말렸고 부부가 신속하게 이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명운이 핵심 기술을 잃었고, 서인수가 새 회사를 설립해 경쟁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어떻게 하면 이 화제성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도아름에게 불쌍한 척하라고 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는 건 동정이 아니라 모욕과 키보드 워리어들의 공격일 수도 있었다.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모두 실행하기 어려워 보였다. 고은서는 휴대폰을 열어 뉴스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그러다 한 기사를 발견했다.판주 인수를 축하하기 위해 GS 그룹이 성대한 파티를 개최하고 각계 엘리트들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지난 생에도 GS 그룹은 업계에 파티를 열었었다. 하지만 그때는 판주가 명운에 성공적으로 투자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이번엔 투자가 성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판주를 위한 성대한 파티가 열리게 된 것이다.GS 그룹이 판주를 인수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지금 파티를 여는 건 명운 사건의 실수를 덮으려는 의도였다.어쨌든 이것도 판주를 대중의 눈에
고은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니에요. 물 마시러 내려왔을 뿐이에요.”“도련님께서 전화하셨어요. 오늘 출장 가서 돌아오지 않으신대요.”이미숙은 이해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께서는 사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저한테 전화하신 거예요. 사실 사모님께 일정을 보고하시는 거죠.”“도련님께서 먼저 침실로 돌아오신 건 좋은 일이에요. 사모님, 도련님과 더 이상 다투지 마시고 물건들을 침실로 옮겨놓으시는 게 어떨까요?” 이미숙이 간곡히 권했다.“아주머니, 번거로우시겠지만 객실 하나를 정리해 주시겠어요? 침실은 곽승재한테 양보하겠어요.”“...”물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주인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분께 저 대신 감사 인사 전해주세요. 다음에 식사 대접할게요.]주인혁이 답장했다. [괜찮아요, 누나.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요.】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감시 카메라를 해킹해야 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이렇게 존중받는 느낌에 고은서는 주인혁에 대한 인상이 더욱 좋아졌다.다음 날, 고은서는 다시 도아름을 만나러 갔다.개인 명의로 200억을 투자하겠다고 말하며, 우선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당면한 위기를 먼저 해결하고 나중 일은 그때 가서 다시 방법을 찾으면 되었다.도아름은 고은서가 너무 고마웠다. 그녀는 시장 가격보다 높은 주식으로 환산해 주겠다고 고집했고 즉시 변호사를 불러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은서 씨, 이렇게 의리 있게 나서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건 은서 씨가 마땅히 받아야 할 거니까 사양하지 마요!”고은서도 도아름의 진심을 알았기에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도아름의 식사 초대를 정중히 거절하고 고은서는 명운을 나섰다.차를 얼마 운전하지 않았을 때 타이어 공기압이 부족하다는 표시가 나왔다.고은서가 차에서 내려 상황을 확인하려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은 두 명의 큰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들의 모습을 보니 계속 그녀의 차를 따라온 것 같았고 그녀에게 일어
육현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여자가 털썩하고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육 도련님, 저예요. 제발 경호우너을 부르지 말아 주세요.”“한 비서?”고은서가 아직도 겁에 질려 있을 때 육현석은 그 여자를 알아 보았다.삼십 대 좌우로 보였는데 GS그룹의 검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비서들처럼 자랑스럽고 우월한 면을 뽐내는 대신 공포에 질린 듯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주차장에 숨어 있는 거야?”육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그의 말을 들은 한 비서는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갑자기 그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육 도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는데 용서를 빌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주차한 곳 뒤에는 나무들이 주지어 있었고 차들이 빼곡히 들어선 탓에 사람이 숨어있는 걸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한 비서는 무릎을 꿇은 채 끊임없이 육현석을 향해 사과했다.그녀는 육현석의 차를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이곳으로 오는 걸 알고 일부러 차 뒤에 숨어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이러지 말고 일어나서 말해.”“아니요. 그냥 꿇고 말하겠습니다.”한 비서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말했다.그녀는 방금전에 머리를 땅에 박으며 절을 한 탓에 이마가 빨갛게 부어올랐고 공포 질린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면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연기하려는 거야?”육현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니요. 저는 그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한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사과하려거든 조용한 곳에 가서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해.”육현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한 비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를 본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현석 씨, 일 봐요. 저는 혼자 차 불러서 가면 돼요.”“안 돼요. 고은서 씨 용서도 받아야 하니까 같이 가요.”육현석이 말을 꺼내기도
육현석의 관심사는 정말 유별나게 독특했다.고은서가 걱정하는 것이 육현석이 생각하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녀는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생각이었다.‘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곽승재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해.’“삼촌 일 때문에 영향 받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예요. 곽 회장님께서 곽승재의 꼬투리를 잡을 만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으니까요.”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육현석도 고국성의 일에 관해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곽현수 성격에 확실히 그럴만 하지.’“그날 삼촌 일이 승재 형 아버님이랑 연관 있다고 했잖아. 나중에 확인해 봤어?”육현석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곽현수는 애초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러나 이걸 그대로 육현석에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은서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부인했다.“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어요.”“그럼 오늘 나랑 승재 형 찾으러 온 것도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야?”육현석이 무언 갈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그렇죠.”어이가 없었지만 고은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그후로 한참 동안 사무실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곽승재는 나타나지 않았다.고은서는 육현석의 말을 듣고 곽승재한테 연락해 보았으나 여전히 그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은서는 이내 주민기한테 연락했다.얼마 후, 주민기가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고은서는 주민기의 아주 공식적인 말투를 들으면서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주민시 씨, 곽승재 혹시 다쳐서 병원에 있는 건 아니죠?”주민기는 멈칫하다가 이내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등을 다치긴 했으나 지금은 별다른 문제 없습니다.”‘그날 정말 다친 거였어? 그런데 왜 병원도 가지 않고 나한테 거짓말이라고 한 거지?’고은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났다.“곽승재 지금 어디 있죠?”주민기는 그녀의 물음을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답했다.“지금 GS그룹의 주주분을 만나러 와서
고은서는 육현석을 막았다.“그래도 곽승재 사무실인데 그냥 들어온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물건은 함부로 다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러나 육현석은 괜찮다면서 손짓했다.“괜찮아. 우리가 낯선 사람도 아니고 설마 내가 승재 형 물건을 훔치겠어? 게다가 네 물건을 가지는 건데 뭐가 어때.”“...”고은서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육현석은 이미 사무실 책상 옆으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있는 캐비닛을 열고 가지런히 접혀있는 회색 담요 하나를 꺼냈다.“계속 여기 있을 줄 알았다니까.”육현석은 이내 담요를 고은서한테 건네주었다.“은서야, 봐봐. 익숙하지 않아?”익숙하다고 느낀 고은서는 문뜩 자신이 예원 별장에 있을 때 귀비 의자에 깔고 발을 덮는데 썼던 담요라는 걸 발견했다.“이 담요가 왜 여기 있는 거죠?”고은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승재 형이 넣어둔 거겠지.”그러나 육현석은 이내 놀라 하며 물었다.“설마 네가 승재 형한테 준 건 아니지?”‘승재 형이 고은서가 준 담요까지 소장할 정도로 변태적인 사람이었어?’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부인하려고 할 때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예원 별장에 있을 때 이미숙이 한 번 소파에 있는 곽승재한테 관심을 표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곽승재의 도움을 받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담요 하나를 이미숙한테 건네주면서 그에게 덮어주라고 했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발을 놓는데 쓰던 낡은 담요를 아줌마가 이미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곽승재 사무실에 있는 거야?’“진짜 형이 훔친 거야?”육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은서를 보면서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고은서는 어색해하며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부인했다.“그럼 네가 준 거네.”육현석이 이내 흥분해 하며 말했다.“은서야, 형이 이 담요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내가 한 번 우연하게 덮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날 꾸짖기까지 했다니까.
육현석은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고은서가 회사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멀리서 그의 차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고은서가 차에 오르자마자 육현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은서야, 무슨 일 있었어? 승재 형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그의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고은서는 방금전에 경찰과 했던 통화내용을 육현석한테 다 알려주었다.그도 듣자마자 약간 의아해했다.“갑자기 진짜 정신병 환자가 되었다고? 전에 갔을 땐 다 연기였잖아.”“전에는 연기지만 그사이에 정신병 환자가 될만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잖아요.”고은서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유의 몸도 아닌 사람이 무슨 일을 겪겠어?”육현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묻자 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그래서 정신병원에 가서 백유미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경찰 측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걸 피면하기 위해 특별 병실에 안배해 놓았다고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그 말을 들은 육현석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헛된 생각은 그만하고 승재 형 찾으러 가자. 승재 형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백유미가 정말 전문가까지 속일 정도의 정신병을 앓고 있거든 곽승재도 그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곽승재의 생각을 한번 들어봐야겠어.’고은서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육현석과 함께 GS그룹으로 향했다.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고은서를 알아보고 공손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다가왔다.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약간 불편했던 고은서는 호칭을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죄송하지만 현재 저랑 곽승재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 그냥 은서 씨라고 불러주세요.”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뜻대로 고은서 씨라고 불렀다.그리고 이내 공손하게 물었다.“곽 대표님 찾으러 오신 거죠?”“네. 승재 형 찾으러 왔어요. 위에 있죠?”“요즘 바쁘셔서 지금 회사에 안 계세요. 찾으시려거든 직접 전화하시는 게 더 나을 것
유일 투자 은행에 도착한 후, 고은서는 먼저 직원들과 함께 간단한 업무 회의를 열고 곽승재의 스케줄을 알아보기 위해 육현석한테 연락했다.“은서야,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육현석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승재 형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러는데 혹시 승재 형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게 있어?”정보를 캐내려고 전화했는데 도리어 정보를 알려주는 입장이 될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다.“저도 잘 몰라요. 연락이 안 되나요?”고은서가 물었다.육현석은 곽승재가 연락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주민기도 연락이 안 되어서 비서실에 전화 해보았는데 비서는 그저 곽승재가 바쁘다고만 했다고 말했다.“은서야, 혹시 승재 형이랑 싸웠어?”고은서는 곽승재가 그녀 대신 스테인리스 철봉 공격을 막아준 그 날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은 탓에 그가 약간 기분 나빠했던 일이 떠올랐다.‘내가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건가? 아니면 그날 진짜 다치기라도 한 거야?’고은서는 또 그날 육현석이 곽승재한테 전화했을 때 전화 너머로부터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 게 떠올랐다.‘그럼 그 여자는 곽승재가 다쳐서 마음 아파서 운 거야?’“은서야, 우리 승재 형 찾으러 같이 GS그룹으로 가보지 않으래?”평소 같으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지금은 곽현수가 준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곽승재를 어떻게서든 만나야 했다.그러나 육현석의 의심을 받는 걸 피면하기 위해 그녀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척하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나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유일 투자 은행 근처에 있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가방을 들고 내려가려고 할 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육현석이 까먹은 일이라도 있는가 해서 폰을 들고 확인해 보았는데 낯선 유선전화 번호였다.받아보니 다름 아닌 해성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상대방은 아주 예의 바르게 백유미가 거의 완치 되어서 전에 얘기했던 정신병 위장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끔
고은서는 고씨 집안 본가에 들렀다.비록 며칠 전에 고준석을 만났지만 지금도 너무 보고 싶었는지라 가서 함께 앉아 소소한 대화라도 나눌 생각이었다.그날 고은서가 고국성 집에서 나오면서 고준석한테 고국성 일에 관해 다 알린 탓에 그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화를 내긴 했으나 그녀가 유성준과 함께 고국성을 도와 일을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 달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이도 있고 유성준을 굳게 믿어서인지 직접 나서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다.고국성도 이미 마흔이 넘어갔고 MQ의 현 관리자로서 회사 일에 이미 손을 뗀 고준석이 계속 모든 일을 일일이 신경 써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은서가 본가에 도착했을 때 고준석은 오춘식과 함께 정자에서 바둑을 하고 있었다.그녀가 고준석을 향해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오춘식은 눈치 있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준석은 다가와 다정하게 자신의 어깨에 기대는 고은서를 보면서 웃으며 물었다.“아이고, 우리 은서 얼마 만에 애교를 부리는 거야? 할아버지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고준석은 고은서를 매우 아꼈는데 그녀가 애교만 부리면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도 다 응해 줬었다.그 때문에 고은서는 자신이 모든 걸 쉽사리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전생에 자신이 곽승재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고은서는 자신만만하게 전미자한테 곽씨 가문 며느리 직책을 잘 이행하고 꼭 곽승재가 자신을 사랑하게끔 만들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러나 고은서는 정신병원에서 자살하고서야 이 세상엔 원하는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쉽다고 느낀 건 누군가가 대신 그 대가를 치러줬기 때문이라는 것도 깊게 깨달았다.이번 생만큼은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그녀는 곽승재랑 이혼만 하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현실은 그보다 더 잔인했다.“은서야,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 누가 널 괴롭혔어?”
고은서는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면 삼촌 일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승재가 도와준다고 한 번 더 넘어갈 생각이야?”곽현수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고은서는 곽현수가 직접 나선 이상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어제 오미나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녀의 배 속의 아이가 십중팔구 고국성의 아이가 맞을 것이다.아이를 지우지 않는다면 시한폭탄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리고 곽현수가 마음만 먹는다면 경찰에 잡힌 강현철을 데리고 나오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어느 날엔가 갑자기 고준석 앞에 나타나거나 또는 고국성을 대하듯이 똑같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고은서는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곽승재는 현재 회사 일을 처리하기도 바쁠 텐데 더는 민폐를 끼쳐서는 안 돼.’시가 가게의 부드러운 불빛이 유독 눈부시게 느껴지는 때이다.사실 곽현수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곽승재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자신을 좋아하든 원망하든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었다.생각을 마친 고은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곽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고은서가 떠난 후 곽현수는 VIP룸 뒤에 있는 실내 정원으로 갔다.그곳에는 트위드 자켓을 입은 여시은이 고양이를 그네 위에 앉아 함께 놀고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는 장면이었다.곽현수를 발견한 여시은은 이내 그네에서 내려오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버님이라고 불렀다.“시은아, 많이 기다렸지?”곽현수가 웃으면서 물었다.“아니에요. 여기 풍경도 좋고 캣닢도 있어서 쿠아랑 엄청 재밌게 놀고 있었어요.”여시은이 달달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저기 가서 앉자.”곽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손짓했다.“좋아요!”여시은은 쿠아를 캣닢 옆에 내려놓고 곽현수와 함께 파라솔 아래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직원은 두 사람을 위해 차와 주스를 가져다주었다.여시은은 한 입 맛보고는 이내 똘망똘망한 눈
고은서는 순간 죄책감에 휩싸였다.육현석도 전에 곽승재가 회사 내부에서 곽현수와 기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고 했는데 또 고국성 일로 꼬투리까지 잡힌 이상 많이 힘들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제인 제약 사건은 판주 투자 은행과도 연관된 일이었기에 곽현수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고국성 일은 확실히 공사가 선명하지 못하다고 꼬투리가 잡힐 만 했다.방금전 곽현수가 한 말도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가 곽승재를 쫓아내려거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승재가 너 때문에 이성을 잃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난 그게 무지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곽현수가 말을 이어갔다.“입으로는 승재랑 더는 같이 있을 리가 절대 없다고 하지만 한두 번은 그렇다 쳐도 승재가 열 번 심지어 스무 번이 되도록 너를 향해 구애한다고 해도 네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 시간만 나면 네 할아버지랑 바둑하고 얘기 나누러 고씨 가문 본가로 찾아가는데 아버지인 나도 그런 혜택을 누린 적이 없어. 게다가 네 가족들도 두 사람이 이혼하지 않은 것처럼 승재를 계속 사위로 대하면서 걔한테서 얻을 만큼 얻어 가졌잖아.”곽현수가 하찮다는 듯 비아냥거렸다.“네가 말로만 하는 보장은 단지 너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거겠지.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거야. 그런데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아?”고은서는 순간 난감해졌다.‘할아버지한테는 곽승재가 스스로 찾아간 게 맞겠지만 삼촌이랑 숙모 쪽은 분명히 아닐 거야. 곽승재가 나랑 재혼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일부러 나를 속이고 MQ 일로 여러 번 찾아간 게 분명해.’고은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보장이 없는 거짓말로 들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확실히 곽승재의 도움으로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린 이상 곽현수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곽현수가 삼촌 일로 나를 만나자 한 것도 또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마 다 원하는 바가 있어서겠지.’고은서는 더는 변명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
전미자 생일 연회 때마침 성씨 집안 소개로 새로운 사업 계약서를 체결한 고국성은 눈에 띄게 우쭐대며 다녔는데 곽씨 집안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의 업적을 적지 않게 으리으리하게 포장해서 떠벌리고 다녔었다.그래서 곽현수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어색해 났다.그녀는 그가 자신은 고국성처럼 천한 사람을 직접 처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은서는 화내는 대신 아주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우리 삼촌이 약간 잘난 체하면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긴 해요. 하지만 이건 삼촌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이 이유로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죠. 회장님께서 우리 삼촌이 면한 일에 관해 잘 모르신다면 제가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그녀는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는지라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면 어제 오미나 씨랑 대화한 내용을 녹음해 두었는데 직접 들어보실래요?”곽현수는 당연하게도 고은서의 설명과 녹음파일 같은 걸 계속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그는 오미나에 관해서도 더는 묻지 않고 찻잔을 들고 아주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앉으면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오늘 찾아온 이유가 대체 오미나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야 아니면 네 삼촌 일을 해결하고 싶어서야?”“삼촌 일을 해결할 겸 오미나가 누구인지도 알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사실 그보다 우리 삼촌이 어느 면에서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더 알고 싶네요.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은데 회장님께서 알려줬으면 좋겠네요.”고은서도 꿀리지 않고 곽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생각보다 더 총명하네.”곽현수는 여전히 거만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총명해 보았자 당신 같은 사람 눈에는 들지 않겠지.’고은서는 티 내지 않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곽현수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잠시 후, 곽현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승재가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