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00화

Author: 류한나
‘대체 누가 백유미를 도와 날 해치려고 하는 거지?’

고은서와 박지연은 이 물음 하나로 한참 동안 토론해보았지만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했다.

고은서는 백유미 외에 자신이 또 누굴 건드렸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은서야, 너 오늘 일부러 기자들 앞에서 화제를 백유미한테로 이끈 거지?”

박지연이 또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곽승재가 비서한테 기자들이 촬영한 내용을 다 삭제하라고 시켰던데. 그러면 네가 했던 일들이 다 수포가 되는 거잖아. 곽승재 그 개자식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어떻게 물어보지도 않고 녹음파일이랑 동영상을 다 삭제할 수가 있어.”

‘개자식이라. 참 알맞는 별칭이네.’

고은서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수포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박지연은 어리둥절했다.

“설마 너 따로 계획해둔 게 있어?”

“계획해둔 건 없는데 미리 해놓은 건 있지.”

고은서는 폰을 꺼내 들고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백승엽이 기자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이닥칠 때 몰래 폰으로 다 녹음해뒀어. 나중에 함부로 편집한 동영상이나 거짓 기사가 뜨면 나도 반박할 증거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동영상과 거짓 기사는커녕 나만 득을 보게 되었네.”

“와, 고은서, 아까 그런 상황에서도 녹음하면서 증거 남길 생각까지 했던 거야? 너 진짜 총명하다.”

박지연이 고은서를 보며 탄복했다. 그러나 흥분해 하는 박지연과 달리 고은서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도 상응한 대가를 치렀지.’

박지연은 고은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자꾸 슬픈 과거에만 빠져있지 마.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하는 건 이 녹음파일을 어떻게 이용하겠는가야.”

고은서는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백유미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어 하는데 나도 도와야지.”

“이 녹음파일로 여론을 일으켜 곽승재를 엿먹이려는 거지? 될 수록이면 GS 그룹 주시까지 영향받게 만들어 주주들로 하여금 곽승재에게 압력을 주게 만들려는 생각인 거야?”

고은서는 박지연의 추측을 부인하지 않았다.

“주주들이 가만있는다고 해도 곽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401화

    백승엽은 억울한 듯 말을 이었다.“자식이 다치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어. 내가 선택한 방식이 잘못된 것뿐이지.”곽승재는 백승엽의 말을 무시하고 병상에 누워 있는 백유미에게 직접 물었다.“어제 어떻게 그렇게 우연히 고은서가 사고 난 근처에 있었던 거야?”백유미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잠시 후 고개를 돌린 백유미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녀는 곽승재가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승재야, 무슨 뜻이야?”“그래. 승재야. 무슨 뜻으로 유미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백승엽도 물었다.“내가 말했잖아. 유미는 산책하다가 우연히 고은서를 만난 거라고!”곽승재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백유미를 바라보았다.“고은서한테 네가 아이를 해쳤다고 했어?”백유미의 마음은 세차게 요동쳤지만 표정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그녀는 백승엽에게서 곽승재가 고은서의 병실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곽승재가 와서 따질 것이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백유미는 고은서가 어제 자신이 했던 협박을 곽승재에게 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은서의 기분대로라면 승재를 원망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아야 하지 않나? 왜 곽승재에게 이 사실을 얘기한 거지?’“그래서 정말 네가 한 거야?”백유미가 한동안 대답하지 않자 곽승재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아니야! 정말 아니야!”백승엽이 급히 답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승재야, 너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고은서의 아이를 유미가 없앴다니. 고은서가 하는 헛소리 다 믿지 마! 고은서는 우리 유미를 원망해서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야. 승재야, 절대 믿으면 안 돼.”“아버지, 나가 계세요.”백유미는 무기력하게 백승엽의 해명을 막아섰다.백승엽은 곽승재의 날카로운 표정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남아 있는 건 오히려 방해될 것 같아 그는 어쩔 수 없이 병실을 나섰다.“승재야. 유미도 모

  • 어게인, 비긴   제402화

    곽승재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극도로 차가웠다.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백유미는 등줄기로 느껴지는 싸늘함을 참아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승재야, 네가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널 위해서 그렇게 얘기한 거야.”백유미는 싸늘한 곽승재의 시선을 마주하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만약 은서 씨를 제때 구했다면 아이도 무사했겠지. 네가 내게 말한 적은 없지만 은서 씨 아이를 마음에 걸려 한다는 건 느낄 수 있었어. 나는 네가 그 어떤 불행도 겪지 않길 바랐기에 그 순간 그런 결정을 내린 거야.”곽승재는 백유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아픔을 참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 표정에는 단호한 결심과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마치 그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하여 고통스러웠지만 후회는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네 스스로도 억지스러운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아?”곽승재가 무표정하게 물었다.“네가 듣기에는 황당할 거야. 하지만 한 순간의 결정에 대해 매번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백유미의 눈가에 씁쓸함이 짙어졌다.“위대한 사람인 척 포장하려는 게 아니야. 나도 내 욕심이 있었어.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너는 단 한 번도 병문안 오지 않았어. 네가 은서 씨 일로 괴로워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면 네 고민이 적어지고 여유가 생겨서 날 보러 와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백유미의 대답에 곽승재는 믿는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는 말도 하지 않는 대신 물었다.“간호사한테 약을 타라고 한 일도 네가 송민아한테 뒤집어씌운 거야?”“아니야!”백유미는 단호하게 부정했다.“누군가가 은서 씨한테 약을 탔다는 사실은 정말 몰랐어. 그런데 어떻게 송민아에게 뒤집어씌워? 최근 병원에만 있었어. 그런 내가 송민아를 알 리도 없잖아.”곽승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승재야, 만약 내가 말한 이유가 아니라면 내가 왜 굳이 은서 씨를 자극했을

  • 어게인, 비긴   제403화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아저씨한테 잘 돌봐달라고 해. 아저씨와 GS 그룹 자회사와의 몇몇 협력은 잠시 중단할 생각이야.”곽승재가 말했다.백유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승재야, 지금 아버지 회사와의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는 거야? 아버지가 은서 씨를 찾아간 것 때문에?”곽승재는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고은서는 내 아내야.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아저씨도 연세가 있으시니 너무 과로하지 마시고 조금 쉬시라고 해.”말을 마친 곽승재가 그대로 병실을 나섰다.곽승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백유미가 침대 옆 물건들을 쓸어버리며 분노를 표출했다.그녀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둡고 서늘해졌다.때마침 병실로 돌아온 백승엽이 그 광경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유미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 승재가 돌아와서 보면 어쩌려고 그래.”백유미가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날 돌아보기나 하겠어요? 지금 승재 마음은 온통 고은서한테 가 있단 말이에요! 고은서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기세예요!”“그래도 네가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지. 승재 마음을 다시 돌려놓을 방법을 생각해야지. 함께 자란 시간도 있고 승재를 구해준 적도 있잖아. 승재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니 그런 것들을 잘 이용해 봐.”백승엽이 급박하게 말했다.백유미는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그걸 이용하지 않았으면 여기 앉아서 아버지랑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으세요?”“그런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백승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승재가 우리 회사와의 거래를 끊겠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뒷배가 없으면 회사는 어떻게 유지해요!”백유미가 이를 악물며 답했다.이 소식이 퍼지면 백씨 가문을 배신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기회를 노리고 뒤통수를 쳐 백씨 가문 회사는 큰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했다.백승엽도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어떡하면 좋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고은서 찾으러 가지 않았을 텐데... 별다른 소득도

  • 어게인, 비긴   제404화

    고은서가 곽승재가 조사해 낸 서류를 송민준에게 내밀며 말했다.“한번 보시죠.”송민준이 파일을 열어보자 송민아도 고개를 내밀어 들여다보았다.사진 속에는 송민아가 낯선 여인과 함께 있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송민아를 보살피는 가정부가 낯선 여인에게 송금한 기록도 담겨 있었다. 송민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사진은 뭐예요? 왜 아주머니의 송금 기록도 같이 있는 거죠?”고은서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민아 씨가 사진 속 간호사를 매수해 저에게 유산하는 약을 전달하게 해서 유산하게 된 거예요. 이건 민아 씨 가정부가 간호사에게 송금한 기록이고요.”그 말을 들은 송민아는 충격에 휩싸여 넋을 잃었다.“저는 간호사가 누군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간호사를 매수해서 은서 씨한테 약을 써요? 이 자료 가짜 아니에요?”고은서는 송민아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눈길을 송민준에게 돌렸다.“송민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송민준이 서류를 덮으며 답했다.“이건 제가 더 자세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민아가 이런 일을 할 리 없다고 믿습니다.”“왜요?”고은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송민아 씨는 이미 몇 번이나 제 아이를 없애겠다고 협박했어요. 또한 가만두지 않겠다고도 했고요. 명백한 증거도 있고 누가 봐도 송민아 씨가 범인이잖아요.”“아니에요! 저는 그런 짓 한 적 없어요.”송민아가 크게 외치며 말했다.“은서 씨한테 아이를 없애라고 협박하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건 맞지만 은서 씨를 건드리면 시후 오빠가 저를 더 미워하고 멀리할까 봐 두려워서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어요! 이건 누군가가 저를 모함하는 거라고요! 아주머니한테 전화해서 송금 기록은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볼게요!”송민아가 진숙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아주머니가 고향에 일이 생겨서 휴가를 내셨어요. 신호가 잘 안 터져서 그런 것 같은데 다시 연락해 볼게요. 어쨌든 이 일은 저랑 상관없어요.”송민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주장했다.“그래요?”고

  • 어게인, 비긴   제405화

    고은서가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솔직히 답했다.“빈틈이 안 보여.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허술한 구석이 없더라.”“그러니까 민시후가 너한테 그 사람은 속을 알기 힘든 사람이라고 하지. 역시 쉽지 않은 상대인가 보네.”박지연이 청포도 한 알을 입에 넣으며 덧붙였다.“네 추측이 틀린 건 아닐까? 송민준이 왜 백유미와 손을 잡고 자기 동생을 모함하겠어?”고은서가 답했다.“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상한 점이 많아서 그래. 송민아 가정부가 그렇게 쉽게 매수될 리도 없고 백유미가 아무리 치밀하게 행동했다고 해도 아무런 꼬투리도 잡히지 않는다는 게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송민준이 가장 의심스러워. 클럽에서 나를 본 눈빛도 섬뜩했어. 마치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리고 하필 송민준이 나타난 날 밤 내가 사고를 당했잖아. 그리고 서승현도 그래. 민시후 말로는 해외로 이미 도망갔을 수도 있다더라. 민시후와 곽승재 눈을 피해서 그렇게 사람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박지연이 청포도 한 알을 더 먹으며 말했다.“하지만 그 사람이 너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런 일을 벌여? 네가 민시후와 가까운 사이여서 송민아 대신 복수하기 위해서?”고은서는 남은 사과 조각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병상에 누웠다.“단순히 송민아를 위해서였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나에게 경고할 수 있었을 거야. 굳이 백유미와 손잡을 필요가 있었을까? 말이 안 돼.”박지연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만 생각해. 어차피 네 추측일 뿐이잖아. 송민준과 상관없을 수도 있잖아. 백유미 배후에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일단 쉬어. 또 피곤해서 쓰러지지 말고.”박지연의 말에 과장도 있었지만 오늘 확실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은서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고 확실히 피곤했다.“지연아, 잠시 잘 거니까 음성 파일은 네가 계속 신경 써줄래?”“그래.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나한테 맡겨.”다음 날 아침, 박지연이 흥분한 목소리로 고은서

  • 어게인, 비긴   제406화

    박지연의 걱정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곽승재가 고은서의 뜻대로 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이후로부터 그는 이혼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고은서가 민시후의 아이를 가졌다고 자극해도, 여러 번 모진 말을 해도 곽승재는 일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고 아이를 지우고 예원 별장으로 돌아가라고 할 뿐이었다.이제 아이마저 없어진 상황에서 고가승재는 더더욱 이혼을 승낙하지 않을 게 뻔했다.“은서야, 이혼하지 않고 그냥 사는 건 어때?”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물었다.“백유미는 너희 사이를 갈라놓고 본처 자리를 꿰차려고 하는 거잖아? 그 여자 뜻대로 되지 않게 버텨봐. 백유미는 속이 뒤집어질 거야.”고은서도 그 방법이 백유미의 화를 돋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더 불편해질 것 같았다.“조언 고마워. 하지만 상대방에서 엿 먹이려고 나도 같이 고생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고은서의 표현에 박지연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은서야, 전에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억해?”고은서가 답했다.“그래서 더 빨리 벗어나서 진짜 행복을 찾고 싶어.”박지연은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박지연은 링거를 챙기러 밖으로 향했다.고은서가 핸드폰을 꺼내 박지연의 어머니에게 귀국 여부를 물으려 했지만 핸드폰에 주인혁의 이체 기록이 떠 있었다.[누나, 저 드디어 매니지먼트랑 계약했어요. 광고 촬영도 해서 회사에서 상여금 받아서 조금 더 갚아요. 나머지는 천천히 갚을게요.]주인혁이 말하지 않았다면 고은서는 주인혁이 돈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을 터였다.[급할 거 없어요. 나중에 갚아도 돼요. 대회 준비하며 돈 쓸 곳이 많을 텐데 그것부터 신경 쓰세요.]고은서가 답장을 보내자마자 주인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누나, 요즘 잘 지내셨어요? 저는 매일 훈련하고 대회 준비하느라 정신없어서 연락 못 드렸어요. 늦게 연락하면 방해될까 봐 조심스러웠어요.”고은서가 웃으며 답했다.“그냥 그렇죠 뭐. 나쁘지도 좋지도

  • 어게인, 비긴   제407화

    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해졌다.지난 생에서 백승엽은 곽승재를 등에 업고 사업을 원활히 이어나갔다.많은 사람들이 백유미와 곽승재가 친밀한 사이라는 말에 백승엽에게 붙어 잘 보이려 애썼다. 하여 백승엽은 그 누구보다 풍요롭고 기세등등하게 살아왔다.‘이번에는 곽승재가 백승엽과 관계를 끊는다고?’“듣자 하니 어제 백유미가 엄청나게 화내면서 병실 물건을 다 부쉈대. 백유미 아버지도 고개를 푹 숙이며 병든 닭처럼 돌아갔대.”백유미는 흥미롭게 소문을 전했다.간호사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은 신뢰성이 높았다.아무래도 곽승재가 백씨 가문에 강수를 둔 듯했다.“백씨 가문도 자업자득이지 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 꼴이야.”백지연이 계속하여 비꼬며 말을 이었다.“어제 백유미 아버지가 너 때릴뻔했잖아. 내가 말리게도 못하고... 곽승재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넌 그대로 맞았을 거야!”고은서가 답했다.“맞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나도 반격할 준비는 해뒀어. 그때는 백승엽을 자극해서 실수를 유도하려고 했던 거야. 그래야 약점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오히려 네가 허리를 다쳤잖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 아니면 온 닥터가 나한테 뭐라 했을걸?”말하며 고은서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러고 보니 이틀이나 집에 안 갔잖아. 온 닥터한테 전화도 안 왔어?”“바빠.”박지연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미리 얘기해 둬서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아. 굳이 전화 안 해도 돼.”“매일 그렇게 바쁘면 너랑 대화할 시간도 없지 않아?”고은서가 물었다.“괜찮아. 나도 너무 질척거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해.”“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복도에서 다른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박지연이 병실 문을 열자 곽승재가 복도에 서 있었다.곽승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수려한 몸을 난간에 기댄 채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여기서 뭐 하세요?”박지연이 묻자 곽승재는 담배를 버리고 긴 다리로 성큼

  • 어게인, 비긴   제408화

    일부러 그녀가 들으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던 탓에 고은서는 곽승재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내가 걱정하던 대로야. 곽승재는 바로 네가 했다는 걸 알아차렸어. 태도도 강경해. 곽승재가 나서면 화제성도 금방 잠잠해질 거야.”고은서가 병상에 누운 채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박지연의 어머니 윤성희에게서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귀국 중인 것 같았다.“안색이 왜 그렇게 어두워? 이혼 문제 때문에 그래? 아니면 약을 탄 사람이 백유미가 아니라는 걸 들어서 그래?”박지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은서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곽승재가 백유미와 간호사 사이에 아무 관련도 없다고 단언한 순간, 고은서의 마음은 허탈해졌다.백유미는 언제나 곽승재의 신임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곽승재가 백씨 가문과의 거래를 중단한 건 시작일 뿐이었다.시간이 지나 백유미와 백승엽이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신세 한탄을 하면 곽승재는 다시 백씨 가문 사업을 도와줄 가능성이 높았다.지난 생에서 고은서는 백유미의 그늘 속에서 살았다. 비록 이번 생의 곽승재에게 변화가 생겼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백유미에 대한 옛정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고은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둘 사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그때 박지연의 핸드폰이 울렸다.“언니! 병동 아래에서 싸움 났어요.”박지연이 전화를 받자 상대방이 다급하게 말했다.박지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환자 가족이 소란을 피우는 건가요? 왜 보안팀에 연락하지 않았죠?”“환자 가족이 아니라 언니 친구의 남편, 곽 대표님과 다른 남자가 싸우고 있어요. 내려와 보시는 게 어떠세요? 어제 원장님이 곽씨 가문 일에는 간섭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잖아요. 그래서 나서는 사람이 없어요. 저도 몰래 연락하는 거예요.”“알겠어요. 바로 내려갈게요.”고은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민시후가 왔나 보네. 나도 같이 내려갈게.”곽승재가 엄한 사랑과 시비가 붙을 리는 없었다. 아마 병원을 나서며 들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669화

    고은서는 몽롱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품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너무 허약한 탓에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몸도 따라서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그 사람은 등 뒤로 조심스럽게 그녀를 꼭 끌어안으면서 얼굴을 그녀 이마 가까이 붙였다.체온이 하도 높아서 불편함을 느낀 고은서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상대방은 더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등이 점점 더 뜨거워 난 고은서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한 탓에 제대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얼마 후, 그 사람은 그녀를 다시 꼭 끌어안으면서 손으로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흐느끼는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심상치 않음을 느낀 고은서는 눈을 번쩍 떴다.그러나 뒤돌아 확인하려고 할 때 그가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은서야, 미안해...”귓가에서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예전처럼 발버둥 치며 화를 내면서 그를 내쫓는 대신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곽승재는 여전히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약간 울먹이면서 말했다.“은서야, 미안해.”고은서는 곽승재가 오후에 박지연한테서 들은 말 때문에 이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지연이 혼자만의 생각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고은서의 말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당신 아버지랑 백승엽까지 여기로 온 이상 당신도 어쩔 수가 없었겠지. 할 만큼 했다는 거 나도 알아.”곽승재는 그녀를 놓아주기는커녕 방금전보다 더 세게 끌어안았다.고은서는 목 쪽으로 뜨거운 액체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은서야, 차라리 욕이라도 해...”곽승재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에서 그가 무척 후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고은서는 여전히 담담했다.“곽승재, 굳이 이러지 않아도 돼. 난 당신이 한 말을 애초에 믿은 적이 없으니까.”곽승재는 순간 몸이 굳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치 이번이 그녀를 안아볼

  • 어게인, 비긴   제668화

    병실로 들어오자마자 이 광경을 주민기는 황급히 벨을 누르며 의사를 불렀다.“의사 선생님...”...고은서의 병실로 다시 돌아간 박지연은 방금전 씩씩거리며 나가던 모습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거봐, 내가 가지 말라고 했지?”고은서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위안했다.“화 풀고 나랑 내일 귀국할 준비 하자. 돌아가고 나서 나 밥 사줘. 그리고 SPA도 하고 싶은데 네가 쏠 거지?”박지연은 한참 동안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은서야, 곽승재한테 목매지 말고 우리 다른 남자 찾아보자. 넌 곽승재가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어.”박지연은 평소에 이런 오글거리는 행동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런 행위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곤 했었다.‘곽승재한테 찾아가더니 화가 많이 난 모양이네.’“알겠어.”고은서가 박지연의 등을 토닥이며 웃으면서 답했다.민시후도 어느새 백유미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백유미 정신질환 진단서에 관해서는 이미 조사해보라고 사람 시켰어. 민시현한테도 원지훈 사망 사건에 관해 다시 조사하게끔 당지 경찰 측에 말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괜찮아.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이라서 큰 변화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다시 조사해달라고 형을 귀찮게 굴지 않아도 돼.”고은서가 답했다.“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는 데 써먹을 수 있을 때 써야지.”민시후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난 네 형한테 불리워 가서 밥 먹기 싫어.”고은서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말싸움을 했다.“민시후, 비록 네 선택이기는 하지만 다신 이런 일에 끼어들지 마. 나 때문에 네가 다치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좋겠어.”민시후는 이번 일로 며칠 동안 병상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지금도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됐다.그녀가 보기에도 엄청 안쓰러운데 그의 가족들은 오죽할까.“네가 다치는 일이 없는 한 이건 약속 못 하겠는데.”

  • 어게인, 비긴   제667화

    곽승재는 눈앞에 놓인 종이를 보며 그대로 얼어붙었다.박지연은 콧방귀를 뀌면서 곽승재한테 고은서가 유산한 날 동료한테 부탁해서 그가 썼던 수건에 있던 머리카락으로 유전자검사를 했다면서 알려줬다.“고은서가 계속 마음에 못을 박는 소리를 해왔지만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원래는 당신이 고은서의 마음을 되돌리고 두 사람이 재혼하게 되는 그날에 이 모든 걸 알려주면서 은서는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당신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당신은 진짜 구제불능인 것 같네요. 어떻게 자기 아내랑 아이를 죽이려고 했던 범인을 이대로 놓아줄 수가 있죠? 당신은 은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박지연이 화를 내며 호통쳤다.고은서가 유산했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구슬프게 우는 모습을 떠올린 박지연은 지금이라도 곽승재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은서가 그 아이가 태어나길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요?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애가 행복하게 클 수 있는지를 얼마나 고민해왔는데. 그런데 결국에는 백유미 그 악독한 여자가 이 모든 걸 망쳐버렸잖아요.”박지연은 말하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아이가 만약 살아있었다면 당신이 은서를 굳게 믿었다면 굳이 이혼할 일도 없었을 거예요. 아마 지금쯤 두 사람이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곽승재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은서가 당신 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부터 아주 큰 착오였어. 당신은 단 한 번도 은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 보지 않았잖아요. 단 한 번도 은서 입장에 서서 고려해본 적이 없잖아요! 민시후가 계속 눈에 거슬린다고 했죠? 그런데 민시후가 당신보다 백 배는 나아요. 적어도 은서를 웃게 하려고 노력하고 안전감을 주려고 노력하잖아요. 고은서가 무슨 일이 있든 항상 발 벗고 나서주잖아요.”박지연은 계속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그의 마음에 칼을 꽂았다.“고은서가 백유미한테 반격하려는 일을 민시후한테

  • 어게인, 비긴   제666화

    박지연은 종래로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깊은 사고를 거친 후에야 결정을 내리는 타입이었다.그뿐만 아니라 고은서와 마찬가지로 결정한 일이라면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고은서는 아무리 설득해도 그녀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부했다.“적당히 해. 화내면서 눈물 흘리며 찾아오기 없기야.”박지연은 고은서의 농담을 뒤로 한 채 마치 곽승재를 후회하게 만들 히든카드라도 손에 쥐고 있는 듯 아주 결연한 표정으로 병실을 나섰다.고은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육현석이 아침에 어머니한테 불리워 해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나마 나랑 함께 지연이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됐어. 당하고 나면 알아서 정신 차리겠지 뭐.’...박지연은 이내 곽승재가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어깨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 탓인지 그의 얼굴은 아직도 창백해 보였다. 그녀가 병실로 들어갈 때 그는 병상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옆에는 비서 주민기가 서 있었다.주민기는 그녀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눈치 있게 자리를 피해줬다.곽승재는 그녀가 찾아올 거라는 걸 먼저 예상이라도 한 건지 아주 덤덤한 표정을 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박지연 씨가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죠?”박지연은 냉소를 흘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곽 대표님, 백유미가 은서한테 얼마 악독한 짓을 했는지 알면서도 고작 정신병원 진단서 하나 때문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건가요?”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은서한테 백유미를 대가 치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요. 이게 곽 대표님이 말한 그 대가인가요?”박지연이 계속 캐물었다.곽승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해성으로 돌아간 후 정신병원으로 보낼 거예요.”“거참. 고작 정신병원 하나로 끝내겠단 말씀이세요?”박지연이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 백유미가 아무런 병이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지금 그저 핑

  • 어게인, 비긴   제665화

    박지연은 또 다른 한 가지 소식을 고은서에게 전했다.범가온이 원지훈 유품을 확인할 때 그의 폰에서 백유미가 성폭행당하는 동영상을 발견했다고 한다.아마 원지훈이 자신의 앞날을 위해 그 동영상으로 백유미를 협박하려고 했던 모양이다.동영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었다.백유미한테는 기필코 아주 큰 타격이 될 것이다.범가온은 동영상을 확인한 후 아들의 죄를 덮어주기는커녕 사람을 찾아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다고 한다.그 동영상은 업데이트되자마자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고 여론이 점점 커져갔다.“조회수가 어마어마하대. 특히 외국 사이트는 심사가 별로 엄하지 않아서 벌써 T국 여러 사이트 실검에 올랐어. 비록 국내에서는 동영상 풀버전을 볼 수는 없지만 전파 속도가 하도 빨라서 이미 본 사람들이 꽤 많을 거야. 백유미 이번엔 진짜 끝장이야.”그러나 고은서는 마음이 별로 놓이지 않았다.백유미에겐 곽현수라는 조력자가 있었고 그가 직접 나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아니나 다를까, 오후쯤이 되어서 고은서는 휠체어에 앉은 백승엽과 곽현수가 T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비록 이미 GS그룹 경영권을 곽승재에게 물려주고 회사 일에서 손을 뗐다고 하지만 T국 상류계층 사람들마저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명성은 여전했다.그 사람들과 곽현수의 참견으로 T국 경찰 측에서는 얼마 되지 않아 원지훈을 죽인 백유미의 행위가 정당방위라는 조사결과를 공포했다.왜냐하면 원지훈이 찍은 동영상에서 백유미를 죽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의 목소리가 함께 녹음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경찰 측에서는 원지훈이 앙심을 품고 백유미를 죽이려 하다가 도리어 칼을 들고 정당방위 하는 그녀에게 목이 찔려 죽었다고 판단했다.고은서 납치 사건에 관해서는 녹음 파일과 증인이 다 있었기에 백유미는 거의 유죄 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백승엽이 이름 있는 정신병원 진단서를 내밀며 백유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 어게인, 비긴   제664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차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형, 전생이 존재한다는 게 말이 돼? 요즘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그저 악몽 꾼 걸 거야.”비록 고은서의 변화와 곽승재의 말들을 잘 되새겨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육현석 또한 전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형수님처럼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가 자살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자신의 주장도 과감하게 제기할 줄 알고 또 하고 싶은 일도 한다면 하는 사람인 데다가 자신을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사람이 왜 자살을 한다는 거야?”그러나 곽승재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은 듯했다.‘육현석의 말대로 고은서는 자신을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살한다는 건 얼마나 큰 절망을 느껴서였을까?’“형, 방금전에 백유미 찾아가지 않았어? 어떻게 됐어?”육현석이 일부러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손에 있는 증거를 경찰 측에 넘기면 되잖아. 왜 굳이 직접 찾아간 거야?”곽승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증거가 나타난 타이밍이 너무 수상해.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자꾸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뭐? 누군데?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건데?”육현석은 놀라움을 참지 못했다.“그저 내 직감일뿐이야.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 해.”곽승재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튿날, 고은서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약 효과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인지 머리가 계속 띄엄띄엄 어지러워 났다.“고은서!”그녀가 누워서 좀 더 쉬려고 할 때 박지연이 흥분해 하며 병실로 달려 들어왔다.“빅뉴스야!”반면 고은서는 약간 풀이 죽어 있었다.“뭔데?”“백유미가 다른 사람한테 맞아서 지금 중환자실에 들어갔대.”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누가 때린 건데?”“누가 때렸는지 한 번 맞춰봐.”박지연이 웃으면서 일부러 뜸을 들였다.고은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T국에 있는 백유미랑

  • 어게인, 비긴   제663화

    곽승재는 육현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아직도 아침의 그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은서는 정신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뼈밖에 안 보일 정도로 살이 빠져있었고 얼굴도 전과 다르게 핼쑥해져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그가 알고 있는 그녀의 똘망똘망한 눈빛과 다르게 꿈속의 그녀는 절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냉소를 흘리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고은서는 이미 피바다 속에 쓰러져있었다.그 순간 그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형, 왜 그래...”육현석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내가 잘못 본 거겠지. 형 지금 눈시울이 빨개진 거야?’오랫동안 곽승재와 지내오면서 그의 이런 모습은 육현석도 처음이었다.마치 하나뿐인 동반자를 잃은 늑대처럼 처절하고 비참하면서도 후회막심해 보였다.“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육현석이 위안했다.곽승재는 또다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목이 쉰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어제 백유미가 칼을 들고 자살하려고 할 때 유난히 당황스러웠어. 마치 백유미를 막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아침에 이 꿈을 꾸고 난 후로 그 이유를 알겠더라. 고은서도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그땐 내가 미처 구하지 못했다는 걸.”“그러니까 지금 전생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거지? 방금전에 말한 일도 전생에 발생한 일이고.”육현석이 물었다.그러나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전생이 존재한다는 게 아주 황당한 생각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꿈에서 봤던 일들이 진짜 현실에서 발생한 것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육현석은 곽승재의 이런 모습이 약간 적응되지 않았다.항상 강인한 모습만 보이며 할 줄 모르는 게 거의 없었던 곽승재가 갑자기 전생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이토록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형, 그저 꿈일 뿐이야. 너무 자책하지마.”육현석이 애써 그를 위안

  • 어게인, 비긴   제662화

    목소리가 별로 크진 않았지만 민시후는 아주 똑똑히 들었다.그는 육현석을 힐끗 째려보고는 고은서를 향해 아양을 떨며 말했다.“은서야, 방금 깎아준 사과 엄청 달고 맛있는데 한 조각만 더 먹여주면 안 될까?”나머지 세 사람은 충격적인 그의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육현석은 진저리를 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민 대표님, 은서랑 얘기 더 나누세요. 저는 먼저 밥 먹으러 가볼게요.”박지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하고는 쌩하고 달아났다.병실 안에는 고은서와 민시후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다음에는 연기하기 전에 나한테 미리 따로 신호 보내주면 안 될까?”고은서는 아직도 방금전의 놀라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곽승재 껌딱지 새끼를 가만두면 안 되지.”민시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한 시간 후, 육현석은 곽승재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형, 민시후 그 새끼 진짜 사람 약 올리는 데는 짝이 없어. 형수님 옆에 꼭 붙어있으면서 심지어 사과까지 먹여달라고 한다니까.”방금전 민시후의 모습을 떠올린 육현석은 씩씩거리며 말했다.“형수님을 바라보는 눈길은 또 어찌나 오글거리던지. 형수님을 완전히 자기 소유로 생각하고 있다니까. 환자만 아니었으면 정말 달려가서 한 대 치는 건데.”그는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그 많은 여자 중에서 왜 하필 형수님을 좋아한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니까.”그러다 육현석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형, 내 말 듣고 있어? 형은 화 안 나?”곽승재는 방금전부터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육현석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형,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하필 그 위급한 상황에 백유미를 구하려고 한 거야?”육현석은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답답해 났다.“그 많은 인력과 재력을 소모하면서 힘겹게 형수님을 찾았으면 당시 상황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형수님 곁

  • 어게인, 비긴   제661화

    민시후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뭐가?”고은서는 고개를 들고 의문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우리 서로 알고 지낸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잖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날 좋아하게 된 거야?”“왜 갑자기 널 좋아하게 됐다니?”민시후는 거동만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일어나 그녀의 이마를 한 대 콩하고 치고 싶었다.“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을 의심하는 거야? 지금까지 내가 널 좋아한다는 말을 거짓말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고은서는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종일 껄렁대고 다니는데 뭐가 진심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어떻게 구분해.”“고은서, 너 진짜 한 대 맞을래?”민시후가 화를 내면서 얼굴을 홱 돌렸다.고은서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알고 있었다.민시후가 그녀를 도와 백유미한테 함정을 파줄 뿐만 아니라 집까지 사주고 또 서운도 함께 가주고 심지어 동물원까지 선물하는 걸 봐서는 그는 처음부터 진심이었다.그저 그녀가 계속 의심하면서 그의 진심을 의심했을 뿐.고은서는 씩씩거리고 있는 민시후를 보면서 조심스레 사과 한 조각을 그의 입 가까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맛 좀 보지 않을래?”“싫어.”민시후가 그녀를 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고은서, 넌 확실히 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매력적이기는커녕 보는 사람 화날 정도로 멍청해. 내가 순간 눈이 멀고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널 좋아하게 되었나 봐. 됐지?”“...”고은서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넌 왜 자꾸 너 자신을 비하하는 거야? 대체 곽승재한테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으면 자신을 그 정도로 내리까냐고.”민시후가 씩씩거리며 물었다.“어느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 최선을 다해 그 여자를 지키려 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 그런데 왜 너는 자꾸 그걸 부담으로 생각하는 건데?”민시후는 자책하는 고은서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화가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