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모가 말하던데, 승재가 선물을 받을 때 엄청 기뻐했다고.”‘무슨 기뻐했겠어. 이모님이 또 과장하시는 거겠지.’고은서가 이렇게 생각하며 물었다.“외할아버지, 사신 게 뭐예요? 너무 비싸지 않으시죠?”이제 그녀는 곽승재에게 더 이상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용덕은 고은서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고작 넥타이핀 하나가 얼마나 비싸겠어?”‘넥타이핀?’고은서는 갑자기 어젯밤 곽승재가 그녀를 부축해 줄 때 넥타이와 함께 넥타이핀을 착용했던 게 떠올랐다.그때 그녀는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곽승재는 보통 정식 자리 아니면 넥타이를 매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설마 넥타이핀에 맞추기 위해 특별히 넥타이를 맸던 거야?’“은서야, 네 삼촌이 이번 사업을 성사한 건 승재가 자발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이래. 승재는 꼭 너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런 거야.”고용덕은 흐뭇해 하며 말했다.“외할아버지께서 저와 그 사이의 관계를 풀어주고 싶어 하시는 걸 알지만 정말 필요하지 않아요.”고은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지난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좋아하는 사람과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제가 내린 결정도 좀처럼 바뀌지 않죠.”“저는 승재 씨에 대한 감정을 한꺼번에 전부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 과정에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어요.”“예전에는 너무 고집을 부리며 원하는 것을 꼭 잡으려고 했는데, 많은 것들이 그렇게 간단히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을 다치게 했어요. 그래서 승재 씨를 놓아주는 것도 나 자신을 놓아주는 거라고 생각해요.”고용덕은 손녀의 진지한 눈빛 속 들어 있는 미세한 씁쓸함을 보아내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은서, 다 켰구나.”손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만큼 더 이성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니깐 말이다.그러나 그의 손에서 자란 소중한 손녀로서,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영원히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걱정 없이 크기를 바랐다.“외할아버지, 며칠 후 승재 씨 할머니
“그럼 네가 걱정하는 건 뭐야?” 할머니는 이렇게 묻고 나서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은서야, 너와 승재의 이혼 문제 말이야... 넌 아직 마음을 바꾸지 않았구나?” 고은서는 대답 대신 사과했다.“할머니, 지난번에 제 외삼촌과 이모가 할머니를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많이 신경 쓰이셨죠?” 할머니는 듣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것보다 나는 네가 그들이 말한 대로 승재와 이혼하지 않으면 좋겠어.” 고은서는 말이 없었다. 오직 이 부탁만큼은 그녀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그녀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히 알고 있었다. “은서야, 네가 이 기간에 이혼 얘기를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는데도 이혼 서류를 받았다는 건, 승재가 또 너를 슬프게 했다는 거지?” 할머니는 계속 말했다.“할머니는 네가 먼저 찾아와 얘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 없었잖아.” 예전 같았으면, 고은서는 확실히 할머니에게 자주 전화해 불만을 털어놓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걱정을 끼쳤는지 모른다. 고은서는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할머니, 이 일은 승재 씨와는 관계가 없어요. 제가 억지로 그에게 서명을 받은 거예요. 들으니 그를 꾸짖으셨다고 하던데, 사실 책임져야 하는 건 저예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봐봐, 아직도 승재 편을 들고 있잖아.”“솔직히 말해봐, 지난번 술자리 때 백유미가 방해한 것 때문에 승재에게 미리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게 한 거지?” 할머니는 인터넷을 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본 그날 밤의 일을 할머니에게 전해줬을 가능성도 있었다. 고은서가 말하려고 하자 할머니는 다시 입을 열었다.“그 여자는 예전에 곽씨 가문에 자주 있었고 승재와 아는 사이일 뿐이야. 그 둘 사이에는 절대 아무런 사적인 감정도 없어.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면 할머니가 걔를 회사에서 쫓아내줘?”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고은서가 재빨리 막았다.“그때 술자
결정을 내린 할머니는 말했다.“은서야, 네 말이 맞아. 할머니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게.”“오랜만에 네가 만든 단팥빵을 먹고 싶구나. 조금 만들어 줄 수 있니? 내일 아침에 사람을 보내서 가져올게.”고은서는 이전에 주방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숙녀였지만, 남자들은 밥 잘하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말에 영향을 받아 요리 수업을 듣고 본격적으로 요리와 디저트를 배우게 되었다.그녀는 매일 따뜻한 밥과 반찬을 준비해 놓고 곽승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음식이 식을 때까지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그가 설령 집에 돌아오더라도 그녀가 만든 음식을 몇 번 먹어본 적이 없었다.그러니 이로써 그의 마음을 잡는다는 것은 더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다행히 배웠던 요리 기술은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가끔 간식을 만들어 드릴 수 있어 완전히 무용한 건 아니었다. 노인들은 너무 달거나 기름진 음식을 드실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레시피를 직접 조절하여 그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재생 이후로 요리하지 않았던 고은서는 할머니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다.“물론이죠.”“그리고, 이 기간에 승재와 잘 지내기로 약속했으니 더 이상 할머니에게 거짓말해선 안 돼, 알겠어?”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한 고은서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고 대충 대답했다.“네.”할머니의 전화 때문에 원래 외할아버지 집에서 하룻밤 자려던 고은서는 차를 타고 예원 별장으로 돌아왔다.집 문에 들어선 후 아줌마에게 빵을 만들 재료들을 준비해 달라고 하려던 참에, 그녀는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아마도 오후의 일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듯,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본 순간 눈빛이 잠시 반짝였다.“할머니와 함께 저녁 먹으러 가지 않았어?”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 혼자 본가로 돌아갔는데 할머니는 네가 안 보이니까 내가 너를 괴롭혔다고 하시면서 나를 쫓아내셨어.”곽승재는 기분이 매우 나빠 보였다.“고은서, 이 일에
그날 밤, 고은서는 밀가루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 발효시켜 다음 날 아침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직접 개량한 저당 팥앙금을 만들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샤워하고 피부 관리를 마친 후 침대에 눕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중, 서재에서 바쁘게 일하던 곽승재가 갑자기 들어왔다.고은서는 그와 대화하기 싫어서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는 물기와 샴푸 향기를 남기며 침대에 누웠다. 고은서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존재감을 줄이려 애썼다.그러나 다음 순간, 고은서의 이불이 당겨졌다. 그리고 놀랄 틈도 없이 곽승재는 그녀의 몸 위에 바로 덮쳐들었다.“너 뭐 하는 짓이야!”고은서가 눈을 뜨고 화를 내며 물었다.곽승재는 팔을 그녀의 몸 양옆에 지탱하며 깊은 눈으로 말했다.“고은서, 내가 너의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불만이었지? 지금 그 역할을 해줄게.”“야, 너 제정신이야?”고은서는 그를 밀어봤지만 그의 큰 몸집은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곽승재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강제로 밀어붙이려는 모습에 고은서는 주인혁이 가르쳐준 호신술을 떠올렸다. 그녀는 다리를 높이 들어 그의 허벅지 안쪽을 향해 강하게 찔렀다.“으악!”곽승재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서 통증을 호소하며 몸을 움츠렸다.고은서는 그 기회를 이용해 곽승재를 다시 한번 밀었고 이번에는 쉽게 그를 밀어낼 수 있었다.곽승재의 잔뜩 찡그린 이마와 창백한 얼굴, 그리고 손으로 가리는 부분을 보며 자신의 행동에 매우 뿌듯했던 고은서는 조금 난처했다.그녀는 뭔가 안 될 곳을 차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양심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급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다리를 들어 올린 것뿐인데 이렇게 될 줄은...“괜찮아?”고은서가 진심으로 물었다.곽승재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너 이러고도 정말 여자 맞아? 좀 살살하지 그래?”‘진짜로 할 생각도 아니었고 고은서가 좀 낮추는 태도만 보이면
이 익숙한 호칭과 등록되지 않은 번호를 보고 고은서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도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은서야, 나 지금 TIME에 있어. 네가 좋아하는 칵테일을 마시니까 우리 함께 술 마시던 시절이 정말 그립더라.”역시나 성아연이었다. 지난 술자리 이후로 고은서는 성아연이 다시는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그녀가 다시 스스로 연락을 해왔다.만약 성아연이 이 우정을 잃기 싫어서 연락한 거라면 고은서는 절대 믿을 수 없었다.TIME은 이 도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바 중 하나로, 성아연은 자주 그곳에서 친구들을 불러내어 부잣집 딸처럼 대접을 아끼지 않았지만 사실 그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고은서였다.혹시 술을 많이 마신 탓에 호구였던 자신을 떠올렸던 걸까?“넌 나한테 절대 화내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설령 절교하더라도 나에게 한 번 기회를 주겠다고 했잖아.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성아연이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왔다.이 말들은 고은서가 실제로 한 말이었다.그때는 성아연을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했고 그녀와의 우정이 변질되지 않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그런데 그녀가 백유미와 결탁한 줄은 상상도 못 했다.사실 성아연의 말은 그리 설복력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은서 스스로 곽승재의 사랑을 너무 간절히 원했고 또 성아연과의 우정을 너무 믿었기에 매번 그녀의 조언을 따라 백유미와 맞섰다.“은서야, 전에 있었던 일은 모두 내 잘못이었어. 너에게 사죄하기 위해 아빠에게 부탁해서 향료 대리점을 하는 친구를 소개받았어. 그 친구가 MQ에서 대량의 향료를 주문할 수 있대.”고은서는 번호를 차단하고 자려고 했지만 성아연이 다시 문자를 보내자 그녀의 차단하려던 손이 잠시 멈췄다.지난 생에서도 성씨 일가는 고씨 가문에 사업을 소개해 주었고 납기 시점에 문제 발생으로 상대방이 수취를 거부했다. 그 후 MQ는 벌금까지 지불하고 그 물건은 다른 사람에게 팔지도 못하고 창고에 쌓여 있었다. 이로 인해 MQ의
고은서는 냉정하게 말했다.“아저씨께 불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해 줘. MQ는 현재 주문이 꽤 많아. 승재 씨도 최근에 우리 삼촌을 도와 빅딜을 성사했어.”말을 들은 성아연은 난감해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이 일을 계속해서 고집하려는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오히려 고은서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구하며 앞으로는 모든 발언과 행동에서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고은서는 그녀와 더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대충 몇 가지 핑계를 대어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외할아버지에게 문자를 남겨 당분간 삼촌에게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이 일들을 마친 후 고은서는 피곤해져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새로 교체한 침대 시트에서 나는 은은한 향을 맡으며 고은서는 금방 잠이 들었다.비몽사몽인 상태에서 고은서는 허리 위에 어떤 것이 눌린 것을 느꼈고, 몇 번 몸을 움직여 봤지만 그 무게를 떨칠 수 없어 결국 눈을 떴다.그러자 고은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방으로 들어와 팔을 자신의 허리 위에 올려놓고 있는 곽승재를 발견했다.그녀는 온몸을 그를 향해 자고 있었고 머리는 그의 어깨 옆에 기대어 있었으며, 눈을 뜨자마자 곽승재의 날렵한 턱선을 볼 수 있었다.비록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있었지만 이렇게 친밀한 자세로 누워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져 고은서는 급히 곽승재의 팔을 밀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곽승재는 잠결에 그녀를 흘끗 보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눈을 감고 다시 자려고 했다. 고은서는 자신의 잠꼬대가 이렇게 심한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분명히 잠들기 전에는 침대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자고 나니 이미 곽승재의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지금은 아직 이른 시간이었고 평소 자율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곽승재도 일어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고은서는 이미 잠을 다 깬 상태였기 때문에 차라리 외투를 걸치고 주방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드릴 단팥빵을 만들기로 했다.냉장고의 반죽은 이미 발효가 완료되었다. 고은서는 그 반죽을 꺼내 길게 밀어서 납작한 형태
겉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는 일인데 그가 너무 센 힘으로 반죽을 눌렀더니 반죽 모양이 한 번에 망가져 버렸다.“이러다가 도마까지 부서지겠네.”고은서가 불평하며 말했다.“그만하고, 내가 평평하게 만든 반죽에 속을 넣어서 모양을 잡아줘.”곽승재는 고은서를 한 번 쳐다본 후 말없이 지시대로 속을 쌌다.하지만 동작은 여전히 서툴렀고 앙금 속이 전혀 균일하지 않았다. 반죽 모양을 잡을 때는 더구나 엉망이었고 하마터면 앙금 속이 터져 나올 뻔했다.“어휴, 그만해!”고은서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무 한심해서 못 봐주겠다. 너 그냥 나가 있어. 오히려 방해야. 할머니께서 점심 때까지 기다리셔도 못 드실까 봐 걱정이야.”“고은서, 방금 내가 한심하다고 했어?”곽승재는 그녀의 불평에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그러자 고은서가 말했다.“이렇게 쉬운 일도 못 하잖아. 너도 자신이 한심하지 않아?”예전에 곽승재를 너무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그가 이렇게 서투르다는 걸 일찍 알았다면 아마 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곽승재는 고은서가 머리를 저으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홧김에 밀대를 빼앗아 그녀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너는 그냥 옆에 있어. 내가 할게!”‘그 한마디에 멘탈 나갔나 보네.’“좋아! 기대할게.”고은서는 여유롭게 말하며 동시에 앞치마를 벗고 그에게 물 었다.“매 줄까?”곽승재는 냉담한 시선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고은서도 그를 강요하지 않았고 아줌마가 집에 없으니 옷이 더러워지면 스스로 세탁하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옆에서 곽승재의 솜씨를 감상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되도록 고은서에게 깔보이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훨씬 더 어려웠다. 겨우 반죽을 밀어 평평하게 만들었지만 두께가 불균일하고 어떤 곳은 아예 구멍이 나버렸다.고은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반죽을 들어 자기 얼굴 앞에 가리면서 그 구멍을 통해 곽승재를 바라보며 물었다.“한번 비교해 봐. 내 눈과 이 구
“읍!”곽승재의 점점 더 선을 넘는 행동을 느끼며 고은서는 화가 나고 초조해져 몸을 비틀며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곽승재의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해 지금 이 자세로 그녀는 어떤 방어 기술도 쓸 수 없었다.이 상태에서 더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니 고은서는 결국 불편함을 참으며 곽승재의 가슴에 몸을 기대었다. 이렇게 하면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긴 하지만 적어도 그의 음란한 손길을 피할 수 있었다.그녀의 순응을 느낀 곽승재는 격렬했던 키스를 조금 늦추었고 고은서는 그 기회를 이용해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쓰읍...”곽승재는 아픔에 낮은 신음을 내었다.그가 화를 내며 그녀를 밀어낼 줄 알았지만 곽승재는 오히려 더 자극을 받은 듯하였고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 혀를 빨기 시작했다.‘미친 XX...’고은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혀끝을 물어버렸다.그러자 곽승재는 드디어 좀 아팠는지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서, 너 자꾸 이럴래?”고은서는 산소 부족으로 신선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헐떡이며 말했다.“이 나쁜 XX...”‘아무렇지 않게 반죽 만들다가 왜 갑자기 욕구불만인 거야?’고은서의 붉어진 얼굴과 키스 때문에 촉촉해진 입술을 보며 곽승재 마음속의 이상한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하지만 고은서의 눈빛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조금만 더 건드리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맞장 뜰 기세로 서 있었다.곽승재는 참느라 상당히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여성을 강박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성인이 된 이후로 그에게 관심 갖고 다가오려는 여성은 많았지만 그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예전의 고은서가 매일 그에게 달라붙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감정적인 충동도 느끼지 못했다.그는 항상 자제력이 강했다.‘하지만 왜 요즘 고은서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의 향기를 맡으면 그녀를 괴롭히고 싶고, 울리고 싶은 이상한 충동이 드는 걸까? 혹시 그녀가 사용하는 향수가 욕망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걸까?’
여시은은 흰색 운동복을 벗고 귀여운 스타일의 치마를 입고 있었고 덕분에 한층 더 상큼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곽승재를 본 여시은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곽 대표님, 은서 씨 보러 오신 건가요?”“은서 씨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다니! 오후에 회의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에... 회의가 아직 끝나지 않으셨을 텐데요?”곽승재는 여시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은서를 보며 말했다.“돌아갈 때 내가 태워 줄까?”“괜찮아.”고은서가 정중히 거절하며 대답했다.“고객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그럼 이만.”곽승재는 계속 시간을 확인하는 고은서를 보며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알았어. 그럼 조심해서 가.”곽승재가 다정하게 말했다.그의 다정함에 고은서는 약간 어색함을 느끼며 그를 무시한 채 여시은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탈의실로 향했다.곽승재의 시선이 여전히 고은서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걸 발견하고 여시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곽 대표님, 이렇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시니 은서 씨도 언젠가는 감동할 거예요.”곽승재는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사실, 고은서가 예전처럼 그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아직 감동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여시은이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아버지께 두 가문의 협력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저를 놀리시면서 ‘너랑 곽씨 가문이 무슨 관계가 있냐? 왜 그렇게 급하게 도와주려 하느냐?’고 하셨어요.”여시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아버지는 또 곽씨 가문이 해성에서나 국내에서나 저희 집안보다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제가 이런 일에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곽 대표님...”여시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승재는 급하게 핸드폰을 열었다.“은서야, 무슨 일이야?”상대방의 말에 곽승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알았어. 기다릴게.”그 뒤, 곽승재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여시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죄송해요. 방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죠?
고은서는 이상하다고 느꼈다.‘건장한 중년 남자가 골프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다칠 수 있을까?’사람들에게 물어본 후, 고은서는 남자가 탄 골프카트에 문제가 생겨 운전 중 갑자기 밑에 있는 인공 호수로 돌진했다고 알게 되었다.중년 남자는 차가 부딪치는 충격으로 머리와 다리가 꽤 심하게 다친 것으로 보였다.유명하고 오래된 골프장이라 이런 사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며 골프장의 안전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은서는 중년 남자의 부상에 대해 계속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 꼬집을 수 없었다.직원들은 현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고 고은서는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고객들에게 저녁을 제안했다.고객은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고 고은서를 따라 골프카트를 타고 잔디밭을 떠나 휴게실로 돌아갔다.고은서가 휴대폰을 꺼내자 마침 게임 회사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그녀는 직원에게 고객을 남자 탈의실로 안내하라고 눈짓하고 송민아와 다른 직원들은 여자 탈의실로 갔다.고은서는 전화를 받자 게임 회사에서는 고은서와 유일 투자은행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협력하고 싶다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고은서는 상대방에게 게임 프로젝트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와 투자 예상 금액 등을 검토한 후 나중에 세부 사항을 논의하자고 말했다.상대방은 기쁜 마음으로 최대한 빨리 보고서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은서야.”전화를 마친 후,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은서가 고개를 돌리니 곽승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정장과 넥타이를 잘 갖춰 입고 마치 중요한 자리를 마친 듯한 모습이었다.“괜찮아?”곽승재가 급하게 고은서를 살폈고 그녀는 의아해하며 말했다.“괜찮아. 왜 그렇게 물어?”곽승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골프카가 고장 나서 다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네가 전화를 안 받아서 혹시 다친 건 아닌지 걱정했어.”고은서는 휴대
고은서는 옅게 미소 지으며 여시은과 더 깊이 이야기하지 않고 대신 여재훈을 데려와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여재훈이 참석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유일 투자은행의 실력을 다시금 평가하게 되었고 개업식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이제 몇 개의 프로젝트만 더 따낸다면 유일 투자은행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터였다.여시은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친구잖아요.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도와야죠! 아빠도 마침 시간 되길래 같이 가자고 했어요.”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시은의 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은 그녀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말했다.“정말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며칠 더 쉬게 한 후에 제가 데리러 갈게요.”통화를 마친 여시은은 먼저 고은서에게 쿠아가 다쳤다는 사실을 설명했다.“며칠 전 쿠아가 위층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앞다리가 골절되고 이빨도 하나 부러졌어요. 방금 수의사가 추가 검진을 마치고 다친 다리도 붕대로 잘 감싸 놓았다고 연락하셨어요.”말을 마친 여시은은 쿠아가 다쳤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사진 속 쿠아는 대리석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입 주변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엉망이 된 털, 몸을 웅크린 앞발, 반쯤 감긴 눈에는 공포와 경계심이 가득 차 있었다.고은서는 사진만 봐도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은서 씨 개업식 날 저녁에 떨어졌어요. 제가 그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르실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다행히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여시은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쿠아가 그렇게 말썽꾸러기였어요?”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녀도 쿠아를 여러 번 안아봤지만 쿠아는 겁이 많고 심지어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그런 녀석이 활발하게 뛰어다니다가 위층에서 떨어졌다고? 고양이들은 유연성이 좋아서 웬만해선 크게 다칠 일이 없을 텐데...’여시은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이죠. 미리 케이지에 넣어놔
여재훈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중년 남자는 다시 한번 감탄하며 말했다.“특히 이 눈썹과 눈매. 마치 똑같은 틀에서 찍어낸 것 같네.”고은서는 여재훈의 날카로운 눈매를 바라보았다.그는 이미 중년이 되었지만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이목구비에서 강한 기품이 느껴졌다. 젊었을 때는 분명 완벽한 미남이었을 것이다.자신도 외모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두 사람을 부녀로 착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은서가 당황해하며 해명하려던 찰나 앞쪽에서 되돌아오는 여시은이 보였다.아마도 중년 남자의 말을 들었는지 여시은의 얼굴이 잠깐 굳어진 듯했다.“장 대표, 내 딸은 저쪽에 있네.”여재훈이 여시은을 바라보며 손짓했다.여시은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늘 그렇듯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아빠!”여재훈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개했다.“전에 말한 적 있지? 한라 그룹 장 대표야. 조금 늦게 왔어.”여시은이 달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장우현은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아하! 여기가 우리 조카였네. 내가 착각했어. 우리 조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네. 분위기만 봐도 명문가 아가씨라는 게 티 나네.”여시은도 웃으며 말했다.“제가 엄마를 더 닮았어요. 아저씨는 전에 저를 만난 적이 없으니 착각하실 만도 하죠.”그러고는 다정하게 고은서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여기는 제 친구예요. 은서 씨는 능력 있는 친구예요. 직접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저씨도 관련된 업무 있으시면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장우현이 호쾌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럼, 그럼. 조카의 친구인데 당연히 잘 챙겨야지.”그렇게 답한 장우현은 실수한 것을 만회하려는 듯 여시은을 한참 동안 칭찬했다.“아저씨, 아빠랑 가서 라운딩하세요. 아버님도 저쪽에 계세요.”여시은은 다시 환하게 웃으며 여재훈을 향해 말했다.“아빠, 저는 은서 씨랑 얘기 좀 나눌 테니까 아빠는 가서 아버님이랑 있어 주세요.”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서가 먼저 투자의사를 비추자 상대방은 당연히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동시에 몇 가지 의문도 품고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서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로 약속했다.명운 주류의 상장 일정이 확정되고 판매 상황도 안정적이었다.상장만 하면 도아름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아름에게 아첨하려고 했고 그녀가 유일 투자은행에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교육 관련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었다.교육 관련 프로젝트는 상당히 성숙한 분야 이를 추진하려는 회사들도 많았기에 좋은 프로젝트로 평가받았다.고은서는 도아름에게 연락처를 받은 후 대표와 골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오후가 되어 고은서는 송민아와 전문 투자 분석가와 함께 해성에 있는 유명한 골프장으로 향했다.만나자마자 양측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형식적인 대화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협력을 요청했었는지 상대방은 고은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그들이 새로 시작한 회사라는 사실을 알자 협력 의사가 전혀 없는 듯해 보였다.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은서는 상대방이 골프를 좋아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비즈니스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고은서도 골프를 할 줄 알았지만 오랜만이라 약간 서툴렀다.송민아는 자진해서 골프를 잘한다며 몇 게임 함께 치자고 제안했다.상대방도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열고 함께 골프 코스로 향했다.“우와, 내가 이겼어!”그때 멀리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가 고개를 들어 보니 역시나 여시은이 있었다.그녀는 흰색 골프복을 입고 흰색 장갑을 끼고 기뻐하며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다.“은서 씨!”여시은도 그녀를 발견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여시은이 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 여재훈을 데리고 왔다는 생각에 고은서는 감사 인사를 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송민아와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시은에게 다가갔다.고은서가
고은서는 잠시 생각한 후 거절했다.“고맙지만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돌볼 시간이 없을 것 같네.”곽승재가 차분히 답했다.“그럼 아주머니가 계속 여기 남아서 돌봐주면 되겠네.”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좋아한다고 해서 꼭 소유해야 하는 건 아니야. 그냥 가끔 보는 걸로 만족할게.”곽승재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이미숙이 차를 가져와 고은서와 곽승재에게 각각 한 잔씩 건넸다.고은서는 작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이미숙에게 말했다.“며칠 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 나았으니 짐 정리하셔서 승재랑 예원 별장으로 돌아가셔도 돼요.”그 말을 들은 이미숙이 급히 말했다.“사모님,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예원 별장에는 이미 가정부가 많이 있어서 제가 없어도 괜찮아요. 예전에도 말씀하셨잖아요. 같이 나와서 돌봐달라고. 저 여기 남아도 괜찮을까요?”고은서는 예원 별장을 나오기 전 이미숙을 설득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신중하고 음식도 잘하고 나쁜 습관도 없었다.하지만 이미숙은 그녀가 곽승재를 사랑한 과거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지금에 와서 집에 남긴다면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어쩌면 그녀의 행방을 곽승재에게 이를지도 몰랐다.“네 일정 알기는 쉬워. 아주머니가 아니더라도 알아낼 방법은 많아.”고은서의 생각을 눈치챈 곽승재가 담담히 말했다.“잘 생각해 봐. 아주머니를 남기고 싶으면 앞으로 네가 월급을 주면 돼. 주 비서에게 계약 해지 하라고 통보할게.”곽승재는 공사를 구분해서 말했다.“사모님, 사모님과 지연 아가씨 두 분 모두 출근해야 하잖아요. 스스로 돌보기도 어려우니 제가 남으면 두 분 잘 도와드릴 수 있어요.”이미숙의 말에 고은서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지금까지 밥은 항상 박지연이 하고 있어 그녀도 부담스러운 참이었다.적당한 가정부를 찾고 싶었던 차에 이미숙이 자발적으로 남고 싶다고 하니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럼 아주머니가 수고해 주세요.”“감사합니다. 사모님!”이미숙은 기뻐
곽승재가 태연히 답했다.“목적지가 같은 데 왜 같이 안 가? 너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잖아.”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결국 운전대는 곽승재의 손으로 넘어갔다.그가 내세운 이유는 고은서가 하루 종일 피곤하게 돌아다녔으니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운전하는 건 피로 운전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다.차에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은서는 주인혁의 연락을 받았다.주인혁이 명운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나서 두 사람의 연락은 줄어들었다.주인혁의 매니저가 좋은 배역을 따내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전생에서 주인혁은 가요계에서만 발전하고 영화계거나 드라마계에는 들어가지 않았었다.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왜 마음을 바꿨는지는 몰라도 고은서는 그를 응원했다.“인혁 씨, 촬영은 다 끝났어요?”고은서가 물었다.“아니요. 아직 촬영 중이에요.”주인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부드러웠다.“누나, 오늘 회사 개업했다면서요? 죄송해요. 이제야 소식을 들어서 축하 화환도 보내지 못했네요.”고은서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괜찮아요. 촬영이 중요하죠.”“며칠 뒤에 해성에 돌아가는데 밥이라도 한 끼 살게요.”고은서가 장난스럽게 답했다.“팬도 많은 가요계 왕자인데 함부로 밥을 어떻게 먹어요. 혹시나 팬들에게 사진이라도 찍히는 날에는 팬들이 저를 괴롭힐지도 몰라요.”“누나, 놀리지 마세요.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도 직업일 뿐이에요. 사생활까지 다 빼앗길 순 없죠.”주인혁은 마음이 급했다.고은서가 웃으며 답했다.“농담이에요. 촬영 잘하고 해성으로 오면 연락해요.”“네.”주인혁은 전화를 끊기 아쉬운 듯 다시 말했다.“누나, 바빠도 몸 잘 챙기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요.”“내가 누나인데 그런 건 동생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고은서가 장난스럽게 답했다.“걱정하지 마요. 신경 쓸게요.”주인혁이 잠시 멈칫하여 말했다.“누나, 지금은 제가 크게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그래요. 인혁 씨도 몸 잘 챙겨요.”전화를
곽승재는 고은서를 바라보며 속에 있는 실망감을 감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은서야, 널 돕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니야.”고은서는 갑자기 짜증 내며 답했다.“곽승재, 정말 이럴 필요 없어. 난 당신한테 감정이 식었어.”곽승재는 잠시 침묵한 후 단호하게 말했다“알아. 네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말했잖아. 네 결정에도 간섭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를 좋아하고 널 위해 움직이는 건 내 선택이고 내 권리야. 그걸 네가 막을 수는 없어.”고은서는 말로 다 하지 못할 느낌을 받았다.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곽승재는 근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직원들은 음식을 보고 고은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대표님 정말 통이 크시네.”직원들은 모두 큰 책상에 둘러 앉아 함께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곽승재도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앉았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곽승재를 알고 있었고 고은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고은서 옆자리를 그에게 양보했다.곽승재는 고은서가 좋아하는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많이 먹어. 요즘 살이 많이 빠졌더라.”고은서가 그를 경고하듯이 바라보자 곽승재는 더 이상 음식을 집지 않고 대신 고은서에게 물과 휴지를 건넸다.“대표님, 곽 대표님 정말 다정하시네요.”한 직원이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 정말 너무 보기 좋으세요. 저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네요.”곽승재의 외모도 자신감 있는 분위기는 다른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렵게 했다.하지만 그런 사람이 고은서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은서가 말한 여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보는 사람마다 응원하다가는 큰코다칠 거예요.”“몰라요. 너무 보기 좋은 걸 어떡해요! 곽 대표님, 힘내세요! 저희가 열심히 응원해 드릴게요.”곽승재는 고은서를 향해 말했다.“노력할게요.”“와!”곽승재의 대답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고은서의 반응을 기대했다.“다들 그만 떠들고 밥이나 먹어요.”고은서는 직원들의 호들갑을
고은서가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 곽승재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러나 그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손에는 처리하지 못한 메시지가 담긴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그의 얼굴은 고된 일정을 나타내듯 미간은 찌푸려지고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고은서는 육현석에게서 곽승재가 제인 제약 프로젝트로 인해 주주들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GS 그룹 다음 분기 실적의 상승을 약속했다고 들었다.그로 인해 최근 거의 매일 같이 야근하고 있다고 했다.“은서야, 볼일은 다 끝났어?”고은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중 곽승재가 눈을 떴다.시선이 마주치자 곽승재의 검은 눈동자에 또렷한 눈이 반짝였고 목소리에는 낮고 유혹적인 톤이 섞여 있었다.고은서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왜 아직 안 갔어? 할 말이라도 있어?”“저녁 안 먹었지? 옆에 가서 뭐라도 좀 먹을래?”곽승재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제안했다.고은서도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밖에 나갈 시간이 없었다.“괜찮아. 배 안 고파.”하지만 곽승재는 굽히지 않았다.“그럼 음식 좀 배달시킬게.”곽승재는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을 많이 보내라고 지시했다.“직원들도 아직 저녁 못 먹었을 거 아니야. 다 같이 먹자.”곽승재가 말을 덧붙였다.고은서는 이미 주문된 음식이었으므로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얼마야? 송금해 줄게.”곽승재가 깊은 눈동자로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은서야, 나랑 그렇게 내외하지 않아도 돼.”“나눌 건 나눠야지. 우리가 무슨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네게 빚질 수는 없잖아.”곽승재는 고은서의 목소리에서 불쾌함과 짜증을 느꼈다.하지만 곽승재는 화내지 않고 오히려 그게 좋은 신호라 생각했다.그는 고은서가 그에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반응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 정도 불만을 가지는 것이 더 나았다고 느꼈다.하여 곽승재는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현금으로 줘. 지난번에 준 치료비랑 합쳐서 적금하면 되겠다.”고은서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