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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Author: 류한나
물음이 입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육현석은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형의 표정을 보니, 형도 형수님이 드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몰랐던 눈치네.’

설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예전에 고은서를 싫어했던 곽승재는 그녀의 일을 자기 형제들에게 알릴 이유가 없었다.

“형수님 너무 예쁘다. 근데 난 왜 예전에 형수님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지? 이상하네...”

육현석은 혼잣말했다.

“예전에도 예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의 이런 늠름함이 없으니까 개성이 좀 덜했다고 해야 하나?”

곽승재는 말이 없었다. 동영상 속의 고은서는 밝게 웃고 있었고 한껏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이는 곽승재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손가락 사이로 드럼 스틱을 돌릴 때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교만함, 아름다움, 그리고 멋이 담겨있었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영혼마저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했다.

“대박. 형, 이 사람의 댓글 좀 읽어 봐...”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분명히 이 여자분에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보통 사람은 분위기, 기교, 비트에 대한 장악도 등에 중점을 두고 영상을 찍거든요. 근데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영상 속 주인공의 웃음과 눈빛만 찍었어요. 그래서 보는 사람도 같이 즐거워지게 만들어요.]

“밑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분이 엄청 세심하게 관찰하셨네요. 그러니까 제가 이 동영상을 볼 때 뭔가 달콤하고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했어요. 역시나 애정을 듬뿍 담아서 촬영해서였네요!]

“형...”

육현석은 곽승재에게 아래의 댓글을 더 읽어주려 했지만, 곽승재는 아예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동영상을 꺼버렸다.

“왜 그래? 설마 네티즌들의 막말을 믿는 건 아니지?”

육현석은 곽승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네티즌의 댓글을 더 읽으려 했다. 그러자 곽승재는 또 육현석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

“프로젝트 기획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게 아닐 텐데.”

육현석은 어이가 없었다.

“형, 너무하는 거 아니야?”

육현석은 참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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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64화

    육현석의 말을 듣자, 곽승재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그는 이혼이든 재혼이든 모두 저촉했다.한 달 전, 고은서가 이혼을 제기하던 그 날 밤, 곽승재는 분명 아무 느낌도 없었다.이혼하면 그만이고 걱정거리 하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왜 한 달 만에 마음이 이렇게 이상하게 변한 거지?’“형?”반나절 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자 육현석은 곽승재를 귀띔했다.“아쉬울 게 뭐 있어.”곽승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냥 결혼한 지 1년이 넘어서 나도 익숙해졌고 할머니도 은서를 마음에 들어 하니 굳이 이혼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거지.”‘알겠다. 이 형 이혼하기 싫은 거 맞네.’“이혼해도 다른 사람이랑 재혼할 생각 안 해봤다는 거지?”육현석이 묻자 곽승재는 언짢은 태도로 말했다.“한번 다녀왔으면 됐지, 결혼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다시 하겠어!”‘다행이다. 형이 형수님에 대한 감정을 잘 모르지만,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있는 건 아니네.’육현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형, 이혼하기 싫으면 형수님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지 생각 좀 해 봐. 여자들은 아주 감성적이어서, 한 가지 일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한 가지 일로 실망해서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바로 접을 수도 있어.”“실망할 게 뭐가 있어!”곽승재는 육현석의 자만한 말투에 기분이 언짢아졌다.어제까지만 해도 고은서는 곽승재를 생각해서 단은숙에게 그가 매운 걸 안 먹는다고 일깨워 주었다.그리고 고은서가 고은혜와 화장실에 말다툼할 때도 그녀는 곽승재가 다른 남자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입 말했었다.곽승재는 무심코 자신의 옷깃과 넥타이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아주 정교한 넥타이핀을 보였다.“이 핀은 은서가 어제 나에게 선물한 거야. 나한테 감정이 없는데 왜 이런 걸 선물해줘?”육현석은 넥타이핀을 관찰하더니 의혹을 제기했다.“이 핀, 형수님의 취향이 아닌 것 같은데?”“네가 은서한테서 선물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은서의 취향을 알아

  • 어게인, 비긴   제165화

    “은서가 기분 나쁠 게 뭐 있어?”곽승재가 화를 내며 말했다.“은서가 곽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명운의 책임자를 들여보내서 그렇게 심각한 사고를 냈는데도 아무런 수습도 하지 않고 계속 술을 마시고 뉴스를 만들어 자기 소주를 광고했잖아. 내가 이 일로 은서를 탓하지도 않았고, 은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뒀는데 여기서 뭘 더 해명해야 하는데!”육현석은 중점을 콕 집어냈다.“형수님이 뭘 했든 형이 상관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안고 나간 건 사실이지?”곽승재는 육현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시급한 상황이라 은서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근데 은서는 다친 곳도 없었잖아. 그런 사람을 알아서 집 가게 내버려 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육현석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형의 이런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형수님의 마음을 되돌릴 건지... 갈 길이 너무 멀다.’“형, 형수님도 여자잖아. 연회에서 뜻밖의 사고가 생겼는데 아무리 다치지 않았다 해도 마음속으로 두려워했을 거야. 홀로 연회장에 남겨진 형수님의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당시 연회장에 얼마나 많은 GS 그룹 직원과 사업상의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들이 홀로 남겨진 곽씨 사모님을 비웃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이 말을 듣자 곽승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그는 곽씨 사모님의 술주정이라는 인기 검색어에서 고은서가 댄스 플로어에 서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고은서의 작은 얼굴에는 쓸쓸함이 가득했고, 커다란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사람들 속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게시물의 내용도 많이 지나쳤다. 무슨 외면당했네, 결혼은 억지로 끼워 맞춘 거네, 혼인에 금이 갔네 등이었다.그 당시 곽승재는 명운과 관련된 인기 검색어가 잇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앞의 기사도 고은서가 계획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었다.근데 만약 그 술주정이라는 검색어가 고은서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때 그녀는 정말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았을 거라는 것을 곽승재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이렇게

  • 어게인, 비긴   제166화

    “어젯밤, 곽승재 씨가 누나를 데리고 나가서 난감하게 하지는 않았죠?”주인혁이 물었다.고은서는 어젯밤에 곽승재가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안고 나갔다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 머쓱해서 말했다.“네, 아무 일 없었어요.”“그럼 다행이네요.”이렇게 말하고서 주인혁은 더 말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주인혁이 곧 다가올 첫 시합을 앞두고 긴장하는 줄 알고 웃는 얼굴로 격려의 말을 몇 마디 전했다.그러나 뜻밖에도 주인혁은 아주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누나, 비록 제가 지금은 누나에게 도움이 될 수 없지만, 누나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다 지지해요.”고은서는 주인혁이 자신을 관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따뜻해졌다.“인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일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수 있으니까, 인혁 씨는 시합에만 집중하세요.”전화를 끊고 고은서는 복싱관에 도착하여 복싱 훈련과 주인혁이 가르쳐준 호신술을 한동안 연습했다.지금 고은서의 주먹은 더는 예전처럼 나른하지 않고 힘이 좀 강해졌다. 코치도 고은서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할 정도로 그녀의 변화는 눈에 띄게 컸다.요즘 고은서는 잘 먹고 잘 자니까 체질이 많이 좋아진 게 확 느껴졌다. 그러나 몸무게는 여전히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겨우 두세 근밖에 늘어나지 않았다.‘기운이 좋아지고 얼굴색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조금 말라도 괜찮아.’연습을 마치고 고은서는 간단히 샤워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복싱관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찰나, 마침 복싱관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원지훈과 딱 마주쳤다.원지훈은 트리닝 복을 입지 않은 걸 보아하니, 고은서를 찾으러 전문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훈련하러 왔어?”고은서가 일부러 떠본 말에 원지훈이 대답했다.“오늘 훈련 없는 날이에요. 저는 누나와 옆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고은서는 웃으며 말했다.“커피는 됐고 볼 일이 있어서 날 찾으러 온 거라면 그냥 여기서 얘기하자.”원지훈은 휴게실을 가리키며

  • 어게인, 비긴   제167화

    원지훈은 고은서의 미소를 보고 마음속으로 살짝 기뻐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누나, 저는 은혜 씨를 진심으로 좋아해요. 누나도 동생인 은혜 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거 아닌가요?”고은서는 원지훈의 번지르르한 말에 토할 것 같았지만, 그의 두꺼운 낯가죽을 비웃지도 않고, 그더러 자기 신세를 제대로 알라고 충고하지도 않고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지훈 씨, 이미 나의 혼인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내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겠네?”‘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곽승재를 방패막이로 써야 하네.’“그 누구도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고은서가 덧붙여 말했다.원지훈은 이 말을 듣고 더 말하지 않았다.비록 백유미는 원지훈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더러 캐묻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지훈이 스스로 검색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었다.원지훈은 곽승재가 고은서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은서가 자신을 이용해 곽승재에게 복수하는 동시에 고은혜에게도 상처 주려는 줄 알았다.어쨌든 원지훈은 자신이 그럴 조건이 된다고 여겼다.고은서가 또 입을 열었다.“맞는 말도 있긴 해. 나는 확실히 네가 은혜와 함께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넌 은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못 돼.”이 말을 듣더니 원지훈은 얼굴색이 조금 변했다.“제가 어디가 못났는데요?”“해성에 사업하러 왔다는 사람이 일하려는 기색이 조금도 안 보이거든. 넌 그저 종일 먹고 놀기만 하면서 은혜의 주위를 맴돌고 있잖아.”고은서가 말했다.“지난번 주차장에서 너도 은혜가 승재 형부를 얼마나 숭배하는지 봤잖아. 그래서 난 은혜가 사업에 성공한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해.”고은서는 고의로 이 말을 꺼냈다.왜냐하면, 그녀는 전생에 단은숙에게서 고은혜의 남자친구는 집안도 좋고 사람도 잘나서 해성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약품의 대리를 맡고 투자도 받았다고 자랑하던 것이 어슴푸레 떠올랐다.이번 생에, 백유미는 아직 이

  • 어게인, 비긴   제168화

    민시후는 건들건들한 말투로 대답했다.“왜? 곽승재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으니까 나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고은서는 어이가 없어 허공에 대고 눈을 희번덕거렸다.‘방금 뻔뻔한 남자를 한 명 보냈는데, 여기에도 그런 사람 한 명 더 있네.’“걱정하지 마. 나 남자한테 관심 끊었어. 특히 너처럼 뻔뻔하고 자신감 넘치는 남자는 딱 질색이야.”“어구. 말투가 살벌한데?”“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어. 볼일이 있어서 전화한 거야.”“내 사무실로 와.”고은서는 익숙한 길로 민시후의 사무실에 도착했다.민시후는 여전히 껄렁껄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긴 다리를 책상 위에 얹은 채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 고은서는 민시후의 곁으로 걸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민시후는 고은서의 드럼 치는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고은서는 고의로 조금 전에 민시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다.“민 도련님, 사무실에서 혼자 내 동영상을 보고 있었어? 설마 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지?”이 말을 듣자 민시후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심지어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사실 난 네가 곽 대표와 이혼하고 나랑 같이 있겠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어. 어쨌든 넌 지금 무력도 좀 있잖아.”고은서가 말했다.“고맙긴 한데 난 널 받아들일 수 없어.”민시후가 물었다.“내가 곽 대표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데?”고은서가 대답했다.“너무 뻔뻔해서 싫어.”“나중에 너도 깨닫게 될 거야. 이게 내 장점이라는 것을.”민시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했다.“말해 봐. 무슨 일로 이렇게 급하게 날 찾아온 건데?”고은서는 핸드폰을 꺼내 그 안에서 자료 하나를 찾아냈다.“이 자료 한번 봐. 눈에 익지 않아?”민시후는 자료를 힐끗 보고 말했다.“이건 곽 대표가 투자하던 그 약물 연구소 아니야?”고은서가 물었다.“너 예전에 일부러 날 데리고 승재 씨와 관계자가 밥 먹는 자리에 나가서 난동을 부렸던 건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어서 그랬던 거 아니야

  • 어게인, 비긴   제169화

    민시후는 고은서의 계획을 듣고 반대하지 않았다.“왜 이유 없이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그 사람에게 원한이라도 있어?”고은서는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물었다.“아무 이유 없이 한 사람이 싫으면 안 돼?”민시후는 고은서를 잠깐 주시하더니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당연히 되지. 게다가 이 계획이 아주 마음에 들어. 네가 밑밥을 깔지 않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어도 대답했을 거야.”고은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럼 민 도련님의 관대한 마음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만 기획안을 작성하러 들어가 볼게...”“잠깐만, 나 요구할 게 하나 있어.”민시후가 고은서를 불러 세우자 고은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무슨 요구?”민시후는 살짝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반응이 왜 그래? 내가 설마 진짜로 너에게 관심이 있겠어! 일이 끝나면 드럼 치는 거 한번 보여줘.”“거절해도 돼?”“안 돼.”민시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고은서 씨, 나 바보 아니거든. 당신은 나에게 두 가지 일을 부탁했으면서, 내 작은 부탁 하나도 못 들어줘?”“...”지금 민시후의 처지에서 볼 때 허 교수의 프로젝트는 확실히 안전한 투자 항목이 아니고, 고은서도 당분간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러자.”‘드럼을 한 토막 치는 게 뭐 큰 대수라고. 한다면 하는 거지.’...곽승재는 특별히 저녁 시간을 골라 집에 돌아왔지만, 집안에서 고은서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이미숙은 곽승재에게 알렸다.“도련님, 사모님께서 점심을 드시고 나간 후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곽승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은서는 요즘 밖에 나가는 날이 점점 많아진 것 같았다.예전에 곽승재가 언제 집에 돌아오든 고은서는 음식을 갖추고 그를 기다렸다.그러나 지금 고은서는 곽승재보다 더 늦게 들어왔다.“도련님, 오늘 사모님께서 일어나셔서 저에게 잠옷에 관해 물었습니다.”이미숙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곽승재는 안색이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알겠어요.”그는 머릿속

  • 어게인, 비긴   제170화

    ‘이 사람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예전에 내가 일부러 민소매를 입고 그의 앞에서 얼쩡거릴 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지금 내 허리를 살짝 부추기였다고 이렇게 뜨거운 눈빛을 발사하다니.’고은서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곽승재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곽승재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품속의 사람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너 뭐 하는 거야!”고은서가 화를 내자, 곽승재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지난번 GS 그룹의 파티에서 내가 먼저 떠나가서 네가 기분이 안 좋았어?”지금 두 사람의 자세는 아주 애매하고 이상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손을 애써 치우며 말했다.“먼저 날 놔줘!”곽승재는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고서 말했다.“내가 묻는 말에 먼저 대답해.”곽승재가 자기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걸 보고, 고은서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 적 없어. 이제 됐어?” 고은서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고 눈빛에는 귀찮은 기색이 분명했다.분명 집 문을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곽승재는 짜증이 치밀어올라 고은서를 놓아주고 냉랭하게 말했다.“고은서, 다시 생각해 봐. 네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내가 기분이 나빴든 말든, 그게 너에게 중요하기나 해?”고은서는 호통치며 말했다.“너 요새 너무 한가해서 병났어? 그게 언제 일인데 왜 인제 와서 갑자기 내 기분을 묻고 난리야? 날 곤란하게 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났다 해도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건 설명해야 한다. 이는 곽승재가 육현석에서 받은 충고였다.곽승재는 얇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고는 차가운 말투를 조금 줄이고 말했다.“그날 밤, 이런저런 일을 급하게 처리하느라 널 미처 돌보지 못했어.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 같아. 할머니께서 네가 줄곧 운호에 가서 온천욕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번 주 토요일 우리 회사에서 마침 그곳에서 단체워크숍을 진행해. 같이 가지 않을래?”이건 곽승재가 처음으로 성실한 태도로 고은서에게

  • 어게인, 비긴   제171화

    고은서는 이미숙에게 설명해 주기 귀찮았다.“저는 바빠서 이만 올라가 볼게요.”말을 마친 뒤 고은서는 위층으로 올라갔다.곽승재와 마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은서는 노트북을 들고 옆에 있는 객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기획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몇 시간 동안 바쁘게 정리했지만, 고은서는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찌 됐든 직접 가서 상황을 알아보지 않았으니 구체적인 수치를 들 수 없었으며 만들어낸 기획안도 어딘가 이상했다.내일 허 교수의 연구소에 찾아가 봐야 하나 생각하던 때, 고은서는 갑자기 머리 위에 그림자가 지는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어보니 곽승재가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고은서는 노트북을 닫으려고 했지만, 곽승재는 이미 내용을 내다보고 입을 열었다.“너 왜 허 교수 연구소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어?”곽승재가 이미 본 이상 이 일은 어차피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안 고은서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나는 이들의 약품이 아주 시장성이 있다고 봐. 그래서 약품 대리권을 나한테 넘겨주기를 바라는 중이야.”“너한테?”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갑자기 이런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거야?”고은서가 대답했다.“당신이 투자했다는 건 이들이 연구해 낸 약품이 전망이 있다고 믿는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내가 관심을 두는 것도 이상하지 않잖아.”곽승재는 고은서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허 교수 쪽의 상황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넌 뭘 보든, 한 발 끼어들려고 하지 좀 마.”고은서는 곽승재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고은서가 일부러 자기를 화나게 하려고 그의 프로젝트에 끼어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아무튼, 난 이 대리권을 꼭 손에 넣어야겠어.”고은서는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내 돈줄 막을 생각하지 마!”곽승재는 조금 참으며 말했다.“새로운 약품이 아직 시장에 나오지도 않았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 못 해. 만약 돈줄이 아니면 넌 어떻게 할 거야?”“괜찮아. 만약 돈줄이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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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831화

    고은서가 계속해서 뒤를 보고 있자 민시후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매번 여시은이 나타나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고은서가 민시후를 바라봤다. 설마 그렇겠냐고 말하다 곧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 여시은을 만난 건 고양이 쿠아를 구할 때였다. 그 후 서운에서 여시은의 방에서 불이 났고, 이사 파티에서는 민시후가 함정에 빠졌다.유일 투자은행 개업식에서 페인트가 뿌려졌고 지난번 골프장에서는 곽현수와 골프를 치던 장우현도 다쳤었다.모든 사건이 여시은이 직접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이렇게 많은 우연이 있을까?’‘하지만 만약 우연이 아니었다면 여시은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고은서는 더 이상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고객을 만나러 간다며? 나를 병원 앞에 내려주면 돼.”민시후는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깟 고객 때문에 다친 너를 그냥 두고 가는 사람 같아 보여?”고은서는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말했다.“중요한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민시후가 고은서를 바라보며 감정을 억누른 채 물었다.“왜 혼자 이런 곳에 왔어? 비서도 기사도 없이?”“새 프로젝트 때문에 온 거야. 그 회사의 작업실이 근처에 있거든.”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운전기사 부를 시간이 없었고 송민아는 다른 프로젝트로 바빠서 이번엔 그냥 혼자 왔어.”민시후는 다시 한번 말없이 고은서를 바라보았다. 다만 조금 더 차분해 보였고 무언가 애써 참는 것처럼 보였다.고은서의 요청대로 민시후는 그녀를 근처의 한 동네 병원에 데려갔다.동네 병원은 예약이 필요 없었고 진료도 비교적 간편했다.다행히 고은서의 팔에 난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하지만 약 10cm 정도 되는 길이의 상처였고 지금은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았지만 주변이 이미 검붉게 부어 있어 보기에 꽤 충격적이었다.의사는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준 후,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혔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 어게인, 비긴   제830화

    “시은 씨, 전 괜찮아요.”고은서는 팔이 조금 아팠지만 상처를 보니 긁혔을 뿐 살까지 깊게 파고들지 않아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약국에 가서 씻고 약만 바르면 돼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그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요!” 여시은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혹시라도 감염되면 큰일이에요! 제 기사님이 앞에 있어요. 그분이 병원에 데려다 줄 거예요. 저가 대신 여기서 경찰을 기다릴게요!”말을 마친 여시은은 고은서가 거절할 새도 없이 자기 사를 부르러 갔다.“은서 씨?”도로 옆에서 깜짝 놀란 듯 급하게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은서가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캐주얼 슈트를 입고 차에서 뛰어 내려오는 민시후의 모습이 보였다.개업식 때 민시후가 고은서를 도와 성동욱 일을 처리해 준 후, 그녀와는 거의 연락 하지 않았다. 그의 비서가 두 번 전화를 걸어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어왔으며 민시후가 최근 업무 때문에 너무 바빠서 살도 빠졌다는 얘기를 했었다.눈앞에서 다가오는 민시후를 보고 고은서는 갑자기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왜 여기에 있어? 손은 왜 그래?” 민시후는 고은서의 손을 잡고 긴장하며 물었다.“별거 아니 야.” 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숙자들과 싸우다 철판에 긁혔어. 다행히 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 같아. 시후 씨는 어떻게 여기 있어?”“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지나가던 길이야!”그때 여시은의 운전기사가 다가왔다. “지금 병원에 모셔다드릴까요?”여시은이 웃으며 말했다. “민시후 씨가 계시니 저는 빠져도 될 것 같아요. 빨리 은서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세요!”“시은 씨는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민시후가 물었다.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이 여시은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녀의 가정부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민시후는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차가워졌다.여시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여기 유명한 동물

  • 어게인, 비긴   제829화

    게임 회사의 작업실은 다소 오래된 작은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었고 단지에는 경비나 순찰을 하는 경비원도 없었다.골목에는 가로등이 있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비해 꽤 외진 곳이었다.차는 골목에 주차되어 있었고 고은서는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두 남자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들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두 남자는 하나는 마르고 키가 컸고 다른 하나는 까무잡잡했다. 그들은 헤진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 든 짐 꾸러미에는 많은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근처에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 사람들인 듯했고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났다.고은서는 속으로 구역질을 참으며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그녀는 차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자 차에 기대게 되었다.이제 차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이미 늦었고 두 남자가 점점 다가오고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두 남자의 눈가는 이상하리만치 붉었고 고은서를 발견하자 점점 더 흥분된 듯 보였다. 그들은 입에서 지저분한 욕설을 뱉으며 다가왔다.“젠장, 오늘 운이 정말 좋아! 이 근처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울 수 있을 줄 몰랐네. 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도 만날 줄은!”“그렇지, 도시의 여자는 역시 다르네. 이 피부를 보라고. 아주 보드라워! 하하하, 집으로 끌고 가서 잘 놀아보자고!”그때, 악취 나는 마르고 키 큰 남자가 더럽게 손을 뻗으려 했고 고은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의 아랫배를 향해 강하게 발길질했다!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아랫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다.까무잡잡한 남자는 그제야 반응해 고은서를 잡으려 했고 고은서는 틈을 타 재빨리 몸을 틀어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하지만 남자는 상대적으로 더 강한 체격을 가졌고 고은서는 서 있는 자세 때문에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어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다.그러자 남자는 화가 난 듯 욕설을 퍼부으며 팔을 휘둘러 고은서를 향해 달려왔다.고은서는 민첩하게 몸을 낮추며 땅에 떨어진

  • 어게인, 비긴   제828화

    육현석은 박지연의 말을 듣고 눈이 반짝였다.“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줘!”박지연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그를 바라보며 더 분명하게 말했다.“말했잖아, 현석 씨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만약 빨리 돌아올 수 없다면 내가 당장 현석 씨를 찾아갈 거야!”육현석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듯, 바로 대답했다.“정말? 그럼 내가 비행기 표 예약해 줄게! 짐 싸고 있어, 내가 기사 불러서 병원으로 데리러 갈게!”“응!”박지연은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미처 멀리서 혼자 서 있는 온승준을 보지 못했다.박지연이 남자 친구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온승준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졌다. 예전에, 그녀도 그렇게 그를 바라봤었고 그를 볼 때마다 눈이 반짝였었다.그는 그를 위해 L 국까지 갔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다른 남자에게로 돌아갔고 박지연의 마음속에 그의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그 순간, 온승준은 박지연을 완전히 잃었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차가웠고 무관심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박지연이 원한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는 그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전화를 끊은 박지연은 복도에 서 있는 온승준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서리 맞은 배추처럼 기운이 빠져서 문을 붙잡고 있었다.“괜찮아? 의사 불러줄까?”박지연은 그가 몸이 불편해 보여 물었다.온승준은 그녀의 촉촉한 눈과 입가의 미소를 보며 가슴이 더 아파졌다.“지연아, 미안해.”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박지연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의 아내를 소중히 여기길 바라.”그 말을 끝으로 박지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급히 떠났다.저녁 무렵, 게임 회사에서 나온 고은서는 박지연의 전화를 받았다.그리고 해주시로 간 박지연이 육현석과 이모와 함께 셋이서 식사를 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이제 양가 부모님을 만나는 단

  • 어게인, 비긴   제827화

    박지연은 온승준이 휴대폰을 꺼내 드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봤다. 화면에 나타난 발신자는 온승준의 어머니였고 박지연은 유혜린과 관련된 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온승준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말을 이어갔다.“지연아, 우리 부모님이 약속하셨어. 내가 유 닥터랑 결혼만 하면 더 이상 너한테 연락하지 않겠다고.”그는 간절히 부탁했다.“나도 이제 곧 이 병원을 떠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만날 기회가 없을 거야. 그냥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정말 안 받을 거야?”“응, 받을 수 없어.”박지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든, 결혼을 하기로 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고 잘 살아.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이제 다른 여자에게는 더 이상 상처 주지 말았으면 해.”온승준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사실 그가 할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한 건 그 자신이었다. 박지연과 재혼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타협했던 것이었다.그때, 안소희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지연 언니,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안소희의 얼굴에 떠오른 흥분을 본 박지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안소희는 온승준을 한 번 쳐다본 뒤 박지연을 문밖으로 끌고 가며 말했다.“저쪽이요. 배달원이 본인 사인이 필요하다 해서요. 전화가 무음이라서 연결이 안 되길래 제가 배달원 데리고 왔어요!”“여기요! 여기로 가져다주세요!”안소희가 말을 마치자 배달원이 큰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다.“박지연 씨, 본인 맞으시죠? 육 대표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여기다 사인해 주세요.”박지연은 서명을 마친 후 꽃다발을 받았다. 그 안에는 푸른 장미가 들어 있었고, 그 속에 길고 정교한 보석 상자가 들어 있었다.“빨리 열어보세요!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요!”안소희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육현석과 박지연의 연애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달콤한 순간을 보는 걸 좋아했다.박지연은 천천히 상자를 열

  • 어게인, 비긴   제826화

    박지연은 순간 온승준이 술에 취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그날 밤, 유혜린은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밤새 그를 돌봐주었다.‘그날 밤, 무언가 일이 생겼던 걸까?’“그날, 나는 유 닥터가 단순히 나를 돌봐준 거라고만 생각했어.”온승준은 마치 박지연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근데 유 닥터 말로는 내가 유 닥터를 너로 착각했다고 하더라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기를 방으로 끌고 갔다고...”“나는 술에 취해본 적이 없어서 술 취한 후 행동이 어떤지 몰라. 그런데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설민희 씨가 내가 술에 취해 너를 끌어안고 집에 데려가겠다고 하는 영상을 보여줬어. 그래서 내가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긴 해.”온승준은 이미 이 사실을 받아들인 듯했고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차분했다.“유 닥터는 원래 그 일을 없었던 걸로 하려고 했대. 나한테 말할 생각도 없었는데 며칠 전에 자기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거야.”“유 닥터가 그 소식을 보냈을 때 나는 병원에서 어머니 퇴원 수속을 돕고 있었어. 그때 마침 어머니가 그 메시지를 봤고 그 후 나한테 유 닥터랑 결혼하라고 하셨어...”온승준은 박지연에게 설명하는 동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박지연은 그가 반항하려 했을 수도 있었지만 손주를 원하는 부모님을 이기기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담담하게 말했다.“굳이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우리는 이미 이혼했잖아. 결혼이든 재혼이든 그건 자유야. 게다가 나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어.”‘남자 친구’라는 말에 온승준의 표정이 잠시 흐려졌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박지연 앞에 놓았다.“이거 주고 싶었어.”박지연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어제 악세서리 가게에서 봤던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목걸이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하나하나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고 조명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진열장에 전시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는 건, 그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 어게인, 비긴   제825화

    박지연은 온승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승준은 박지연의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박지연은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두 분 결혼 축하해요. 행복하시길 바랄게요.”예상치 못한 말에 온승준은 말문이 막혔고 유혜린은 그의 팔을 자연스럽게 감싸며 말했다.“지연 씨, 축하해 주셔서 고마워요.”박지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은서와 함께 가게를 떠났다.차에 타자 박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말해. 난 괜찮아.”고은서는 그제야 불만을 터뜨렸다.“온 닥터 뭐야? 해외로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갑자기 유혜린이랑 결혼한다고 할 수 있지?”박지연은 차분히 대답했다.“아마 그 사람 부모님이 원해서 하는 결혼일 거야. 온 닥터도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시부모와 관계 좋은 아내라면 그도 나쁘지 않으니까.”박지연은 자신의 전 시부모를 잘 알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아들을 붙잡으려고 했고 그런 술책과 애처로운 연극은 계속될 거였다.온승준이 양보하는 건 그다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유혜린은 그의 첫사랑이었으니까. 고은서는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여전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전에 네가 상심해서 떠났을 때도 그 여자와 재혼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분명히 얼마 전에 너와 합치려 하다 거절당하자 그 길로 첫사랑과 결혼하게 틀림없어. 너무한 거 아니야?”박지연의 2년 넘은 연애와 헌신이 우스울 정도였다.하지만 박지연은 오히려 별다른 감정 없이 말했다.“그 두 사람 결혼하는 것도 잘된 일이지. 적어도 그 사람 부모님이 만족할 거고 그가 평온을 찾을 수 있으면 나도 더 편해질 거니까.”고은서는 이 부분에서는 동의했다.“그 집은 진짜 지옥이야. 일찍 빠져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냥 좀 화가 나서 그래. 온 닥터

  • 어게인, 비긴   제824화

    박지연은 육현석이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충분한 안전감을 주겠다고 다짐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고은서가 기분 좋은 박지연을 보며 물었다.“너 이모가 해주시에 계신다고 하지 않았어? 현석 씨랑 같이 가서 이모에게 소개해 주지 그래?”박지연이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조금 더 지켜보려고. 급한 건 아니니까.”고은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아직 온 닥터를 잊지 못한 거야?”“그럴 리가!”박지연이 단호하게 말했다.“현석 씨랑 함께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다만 현석 씨가 너무 완벽해서 가끔은 지금의 행복이 다시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해서 그래.”고은서가 박지연의 팔을 감싸며 말했다.“그런 생각은 그만! 그 사람 정말 괜찮지만 너도 꿀리지 않아!”“응, 알겠어!”두 사람은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먼저 쇼핑몰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잠시 쇼핑을 즐기다가, 박지연의 시선은 보석 가게 진열창에 놓인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고정되었다.“한번 들어가서 볼까?”고은서가 물었다.“좋아!”박지연이 흔쾌히 대답했다.예전의 박지연은 이런 비싼 물건을 사는 걸 아까워하며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더 아끼고 싶었고 사지 않더라도 한번 시도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판매 직원이 목걸이를 꺼내자 박지연은 주저하지 않고 착용해 보았다. 고은서에게 어울리는지 물어보려던 찰나,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승준 씨, 이 반지 정말 예쁘지 않아? 우리 들어가서 보자.”박지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유혜린이었고 그 옆에는 온승준이 서 있었다.오랜만에 본 유혜린은 조금 더 풍만해진 모습이었고 다정하게 온승준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유혜린은 박지연을 발견하자 더욱 밝게 웃으며 말했다.“지연 씨, 정말 우연이네요. 친구분과 같이 악세서리 보러 오셨나 봐요?”그리고 박지연이 착용한 목걸이를 보고 덧붙였다.“이 다이아몬드 목걸이 정말

  • 어게인, 비긴   제823화

    그 말을 들은 곽승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은서를 쳐다보았다.고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중요한 회의가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가봐.”곽승재는 고은서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뵙죠.”남자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곽승재가 떠난 후, 남자는 이전의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고은서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식사 중에도 그녀에게 끊임없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협력 제안을 적극적으로 했다.고은서는 그가 태도를 바꾼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연 대표님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최대한 빠르게 실행 가능한 투자 계획서를 준비해 귀사에 전달하겠습니다. 그 내용을 보시고 저희의 능력과 실력에 확신이 생기시면 그때 확답을 주셔도 됩니다.”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연 대표님께서 단지 곽 대표님의 체면을 봐서 협력을 고려하셨다면 저희와의 협력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와 곽 대표님은 그다지 특별한 관계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실망을 드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고은서의 직설적인 말에 연중서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는 처음에 고은서를 단지 외모만 반반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자신의 가치를 높여 재벌 가문에 시집가기 위한 수단일 거라고 여겼다.그리고 방금 곽승재가 그녀에게 보여준 배려를 보며 연중서는 자기 생각을 굳혔다.그는 곽승재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그래서 고은서와의 협력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고은서가 그 모든 것을 직접 언급하며 대놓고 말했다.“고 대표님도 정말 농담을 잘하시네요. 방금 곽 대표님의 태도를 보세요. 고 대표님 말씀대로 고분고분 회의하러 가시던데요? 그런데 관계가 별로라니요?”연중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저는 그냥 곽 대표님과 친구가 되고 싶은 것뿐이에요. 고 대표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고은서는 미소를 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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