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혜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내가 뭘 해야 할 것 같아? 할아버지께서 설마 나를 함부로 대할까?”“게다가 내가 정말 하려고 하는 게 있다면, 네가 국내에 있든 없든 별 차이가 있을까? 네가 비즈니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니면 M-Q에 관해 이야기할 수를 가?”“너!”고은혜는 기가 차서 잠시 얼굴이 붉어졌다.“원지훈한테서 들었는데, 당신이 그와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면서요, 혹시 그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원지훈이 물론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 사실이지만, 그녀는 고은서와 원지훈의 채팅 기록을 엿보았다.주차장에서의 그날을 떠올리며 원지훈은 그녀와 함께 놀자고 권했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은서는 결국 동의하며 블랙카드를 꺼내 계산하겠다고 나섰다.원지훈이 체육관에 갔을 때 고은서도 그곳에 있었다.고은혜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니?”고은서는 비웃었다.“뇌는 생각하는 데 쓰이는 것이지, 남이 뭐라고 해서 그대로 믿는 건 아니야.”“원지훈과 곽승재가 비길 가치라도 있을까? 내가 사적으로 연락을 할 가치가 있냐고?”이렇게 말하며 고은서는 그녀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네며 물었다.“잘 봐, 내가 무슨 얘기를 했지?”고은혜는 화면을 흘끗 보았다. 매번 원지훈이 먼저 연락을 보내는 것을 그녀는 확인할 수 있었다.채팅 내용은 평범하고 정중해 보였지만, 조금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일부러 그녀를 흥분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은서가 고은혜보다 더 부유하고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고은혜는 고은서의 말투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원지훈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이 그를 쫓아다녔고, 전에 피로연에서 그는 당신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나갔어! 그리고 당신은 그 과정에서 그를 짜증 나게 할 남자를 함부로 찾은 거고, 안 그래?”고은서는 기가 차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고은서의 눈썹과 위로 올라간 입꼬리를 본 곽승재의 첫 반응은 의외로 화가 나지 않았다.지난번에 그를 놀렸던 그녀의 차가운 미소와 비웃음, 승리의 웃음을 제외하면 곽승재는 오랫동안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지 못했다.물론 지어낸 웃음이지만, 곽승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너무나 흔한 일이 이제는 드문 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의 마음이 막연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카드를 가지진 않았어도, 어차피 네 것이니까 근심하지 마.”곽승재는 반나절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을 본 고은서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고은서, 너 유치하다.”곽승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난 방금 다 말했어, 너한테 준 물건은 이미 네 것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먼저 자리를 떠난다고 너한테 알려주러 왔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주민기가 이미 처리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그렇게 말한 후 곽승재는 긴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고은서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곽승재는 오늘 조금 이상했다.두 번이나 그녀를 위해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고의적인 도발에 화도 내지 않았다.어쨌든 고은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어젯밤 일이 해결되었다는 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마침, 아름 언니가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했다.“그래!”도아름이 말했다.“서인수의 와이너리가 오늘 공식적으로 개업했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리본 커팅식을 가졌어. 근데 리본 커팅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경찰에 연행되었어.”“지금 커뮤니티에 소문이 퍼져 모두가 그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망했다며, 후에는 더 잘 안될 거라고 비웃고 있어.”“은서, 곽 총무의 업무 효율이 정말 죽이는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오늘 처리했으니 아직도 널 아끼긴 하나 봐.”도아름은 지난날 칵테일파티에서 고은서가 술에 취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연민을 느꼈다.물론 고은서의 술 취
고국성은 분에 차서 말했다. "만약 고씨 가문의 두 여식이 모두 곽승재한테 시집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비웃을까. 이혼은 꿈도 꾸지 말거라! 너의 외할아버지가 널 어여뻐해 네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지만 난 아니란다." "...... " 고은서도 식당에서까지 그들과 언쟁을 펼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이 받아들인다면야 좋겠지만 설사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여도 고은서는 따로 뭐 어찌할 생각따위는 없다. 어차피 그녀는 이미 입장발표를 확실하게 하였고 외할아버지도 반대하지 않으셨으니 이젠 그 누구도 고은서를 막을 수 없다. ...... 오후에 고은서는 명운에 들렸다. 고은서는 인터넷에서 명운이 품질이 떨어지는 술을 고급술로 둔갑하여 판매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그건 오해였음을 인정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사람은 명운의 술이 아닌 다른 술을 마시고 알코올중독에 걸렸던 것이었다. 그 술은 그 사람 스스로 담근 술이었기에 술의 안전 여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명운의 술이 문제 있다고 오해하였다. "아마도 인수 씨가 경찰의 협조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에 놀라서 더 이상 행패 부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거예요." 도아름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졌으니 골칫거리 하나 사라진 셈이네요." 기분이 좋아진 고은서가 말했다. "전 아름언니가 시장을 크게 키우기를 기다리면서 출시 준비를 도모할게요!" 이말에 도아름 역시 두말없이 약조하였다.도아름과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와중 고은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번호를 보니 그건 바로 며칠간 연락이 없던 주인혁이였다. "누나, 저희 초보 오디션을 순조롭게 통과했어요. 이제 방송녹화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어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주인혁은 들뜬 목소리로 이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 말에 고은서도 덩달아 기뻐났다. "이건 첫걸음일 뿐이에요. 인혁씬 꼭 경쟁에서 이겨서 결승전까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누나, 저녁에 시간 있나요?" 주인혁이 물었다.
고은서는 웃으며 말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경력만은 풍부하네요."무대쪽으로 다가가니 kk와 그의 무리가 고은서를 발견하곤 너도나도 그녀와 인사를 하였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주인혁의 팀이 무대에 올라 공연할 차례가 되었다. 그들은 여유 넘치면서도 이 순간을 즐기는 듯한 기색으로 무대위의 각자의 위치에 앉고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메인보컬인 주인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중에서 제일 빛나보였다. 심플하지만 포인트 있는 검정색 티셔츠에 잘생긴 이마를 살짝 들어낸 헤어스타일, 노래 부를 때 깔끔하고도 깊은 보이스와 맑고 깔끔한 눈빛은 주인혁이 마치 동화속 왕자님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그들이 부르던 두 곡의 느린 절주의 사랑노래는 드럼소리와 함께 격정적인 반주곡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듣다보니 고은서의 지난 몇년간 잠들어 있었던 음악세포마저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하는듯 하였다. 10대시절 그녀는 학업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몇년간 드럼을 배웠었는데 당시 선생님께선 그녀의 학습능력과 리듬감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녀는 대학신입생 장기자랑 때 무대에 올랐었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었다. 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가 말괄량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소식에 이 취미마저 포기했다. 단정하고도 진취적인 모범생이 되여 곽승재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의 어떠한 노력에도 곽승재의 눈에 그녀따윈 없었다. "누나, 지난번에 저한데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드럼 칠줄 아신다고?"고은서가 지난 기억에 빠져있는 사이 주인혁은 어느샌가 노래를 마치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대의 기쁨을 흠뻑 만끽하고 와서인지 주인혁의 잘생긴 얼굴은 여유와 자신감으로 채워졌다. 그 모습에 고은서도 덩달아 흥분되는듯 하였다. "맞아요.""그럼 한 곡조 쳐보시는건 어때요?"무대우의 친근한 드럼과 주인혁의 기대감이 담긴 눈빛을 바라보노라니 고은서도 내심 연주해보고픈 맘이 생겼
고은서는 간지 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슬쩍 뒤로 넘기며 물었다. "당연하죠, 저 방금 멋있지 않았나요?" 주인혁은 고은서의 행동에 웃음을 금치 못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멋져요, 멋있고 말고요. 프로 드럼연주자와도 비겨 볼만한 실력이신데요!" "안목 좋으시네요." 고은서는 주인혁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가요, 누나가 술 사줄게요." "누나, 저희도요, 저희도 술 사주세요!" 밴드멤버들도 몰려왔다. 고은서는 기분이 좋아나서 손을 흔들며 통 크게 말했다. "마셔요, 우리 모두 같이 마셔요!" 무리의 사람들은 고은서를 클럽의 넓은 좌석으로 안배한 후 넉넉한 간식과 술을 주문한 뒤 그녀를 향한 아낌없는 칭찬을 하였다. "누나, 진짜 생각지도 못했어요. 보기엔 연약해 보였는데 드럼 연주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깐요, 드럼스틱으로 끼 부릴 때도 얼마나 멋있던지. 누나, 저희 밴드팀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세요?" kk가 물었다. "지민이랑 같이 드럼 연주하면 관객들이 얼마나 난리가 날가요." "예, 맞아요. 만약 누나가 저희 밴드팀에 들어온다면 그땐 분명 주인혁보다 더 인기 있을 거예요." "그렇고 말고요. 제가 어떻게 감히 누나랑 비기겠어요." 주인혁도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열정으로 가득 넘치는 젊은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니 고은서도 덩달아 흥분되는 듯하였다. 마지막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드럼을 쳤던 때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그때 당시에도 그녀는 많은 동학들의 칭찬을 받았고 심지어 한 유명한 음악교수님마저 그녀를 눈 여겨보아 제자로 삼고 싶어 하였다. 아쉽게도 당시 고은서는 곽승재가 싫어할 것을 염려해 그 기회를 거절하였다. 후에 그 교수님의 여러 명 제자들 모두 음악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룩하였는데 만약 당시 그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그들 중의 한 명이 될수 있지 않았을가. "여러분들이 제가 밴드그룹에 참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밴드팀을
고은서는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 뒤 전화를 받았다. "지금 클럽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무슨 일 있나요? " 아줌마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지금 11시가 되어가는데 사모님이 언제 오시나 해서요." 예전부터 아줌마는 간혹 자기 전에 고은서한테 돌아오는 시간을 묻곤 했었다. "잘 모르겠는데... 아줌마 먼저 쉬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요." "사모님, 한 가지 일이 더 있는데요." 아줌마는 다시금 은서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께서 자주 입으시던 잠옷을 못 찾겠다고 하십니다." "자주 입던 잠옷을 찾지 못했으면 다른 옷으로 바꿔 입으면 되잖아요. 설마 저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찾아줘란 소리인가요? " "도련님께서 다른 옷은 불편하다고, 사모님께서 오늘 아침 도련님보다 후에 일어나셨으니 혹여 그 잠옷을 다른 옷장에 넣으신 건 아닌지 해서요." "전 곽승재의 물건에 손대기조차 귀찮거든요! 곽승재가 어젯밤 잤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는데 그의 잠옷이 어디 있는지 알 턱도 없죠. 아줌마도 그만 신경 끄세요. 알아서 찾아 입든 말든." "하지만.... " "거기까지요 아줌마, 친구들이 불러서 이만 끊을게요." "고은서!" 고은서가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귓가에서 곽승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몇 시인데, 언제까지 클럽에 있을 예정이야." '곽승재도 옆에 있었구나.아줌마가 걸어온 이 전화, 혹여 곽승재가 지시한 건 아닐까?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항상 고은서가 곽승재한테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물어봤었는데 살다 보니 곽승재가 고은서한테 물어보는 날이 오네?'"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 곽승재가 다시금 냉랭하게 말을 했다. 고은서는 과거의 곽승재와 같은 차가운 어투로 답했다. "몰라. 귀찮게 굴지 마." 그러고선 곽승재가 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고은서는 곽승재가 부아가 치밀어 부들부들 떨고 있을 생각에 꽤 즐거워졌다. 드디어 곽승재도 할 말 채 하지 못한 채 전화가 끊기는 고통을
곽승재는 불쾌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잠옷을 못 찾겠어. 돌아가서 잠옷을 찾아줘."고은서는 의아했다. 그녀는 술기운에 머리가 좀 어지럽긴 했지만 정상적인 사고조차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곽승재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그저 자신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서 화가 난 나머지 고의로 그녀한테 시비 거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내게 그럴 의무는 없어."고은서는 곽승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술잔 돌려줘!"고은서를 바라보는 곽승재의 미간이 무의식간에 좁혀졌다. "너 너무 많이 마셨어. 그만 마셔."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곽승재와 구면이였다. 지난번 곽승재가 밑도 끝도 없이 고은서를 끌고 나간 것을 보았었기에 이번엔 그녀가 다시 괴롭힘 당하는 것을 그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보세요, 아무리 은서누나가 당신의 아내라지만 술을 마시고 말고의 여부는 그쪽 권한이 아니지 않나요?""그니깐 말이에요. 너무 독단적이시다."그 말들을 들은 곽승재는 추호의 파동도 없는 눈길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워낙 강렬한 아우라를 지닌 곽승재가 무표정으로 있으니 그 압박감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곽승재의 이런 시선에 방금 말을 꺼낸 사람들은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곽승재씨, 은서누나 술 그리 많이 드시지 않으셨어요. 만약 누나가 돌아가려 한다면 저희가 집까지 모셔드릴 겁니다. 당신은 누나를 강제적으로 데려갈 수 없어요." 주인혁이 입을 열었다. 곽승재는 시선은 주인혁으로부터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술잔으로 향했다.그는 두말 않고 고은서를 가로로 안아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나머지 고은서는 외마디 고함과 함께 두 팔은 무의식간에 곽승재의 목을 감아 안았다. 그녀의 이 동작은 꽤나 곽승재의 맘에 들었다. 곽승재는 그의 거리감 느껴지는 품위를 유지하면서 그들한테 말했다. "오늘 밤 모든 비용은 제가 쏠게요. 저의 아내와 재밌게 놀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이 말과 함께 곽승재는 블랙 카드를 복무원한테 건네곤 고은서를 안은채 자리를
고은서는 박지연의 뜬금없는 호들갑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뭐가 떠?”‘저번에 술 취했을 때의 주사는 이미 지나간 일 아니었나?’“누군가 네가 엊저녁에 클럽에서 드럼 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다들 네가 예쁘고 멋있다고 난리야!”박지연은 다급하게 이 사실을 고은서와 공유했다.“전화 끊지 말고 빨리 아이패드로 확인해 봐!”“...”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에 따라 아이패드로 비디오 플랫폼을 열었다. 박지연의 말 대로 고은서가 드럼을 치는 동영상이 많은 인기를 받고 있었다.동영상을 클릭해 보니, 앞뒤가 조금 잘리고 1분가량의 킬링 파트만 남아있었다.영상 속에서 고은서는 음악에 취해 두 팔을 벌리고 능수능란하게 드럼을 치고 있었다.시청자 각도에서 자신을 바라본 고은서도 자신이 확실히 예쁘고 멋있다고 인정했다.동영상 밑의 댓글 창에는 온통 ‘멋있어요’, ‘예뻐요’, ‘반했어요’ 등 칭찬으로 도배되었다.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니, 고은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인터넷의 인기는 이삼일만 지나면 줄어드는 거라 그녀는 재미로 여기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내가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박지연은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이 계집애야, 남한테 보여주면서 왜 나는 안 불렀어!”박지연은 고은서보다 2살 많은 데다가 고은서와 같은 대학도 아니었다. 근데 잘생긴 신입생을 만나기 위해 박지연은 고은서가 다니던 대학에 몰래 갔었다.결국, 그곳에서 잘생긴 남자를 만나지 못했고, 오히려 고은서의 멋진 모습에 반해 주동적으로 그녀의 연락처를 받으면서 두 사람이 점차 친구가 되었던 것이었다.다만 그 이후로 고은서는 드럼을 치지 않았기에 박지연도 더는 눈요기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동영상을 보자마자, 박지연은 신이 나서 고은서에게 연락했다.“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너의 드럼 실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아.”박지연이 말했다.“혹시 클럽에서 매일 공연할 생각 없어? 그럼 내가 매일매일 가서 응원해 줄게!”고은서는 공기에 대고
투약한 간호사도 전에 이미 곽승재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그녀의 증언에도 진희숙만 언급되었다.고은서는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백유미의 신중함을 탄복했다. 그녀가 경각심을 낮추지 않고 제때 녹음하면서 증거를 남겼더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당사자로서 고은서는 경찰 조사에 협조한 후 나머지 일을 변호사에게 맡겼다.“걱정하지 마세요. 증거가 확실하니까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송민준이 말했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대가를 치르길 바라는 사람은 백유미이지 대신 누명을 쓴 진희숙과 간호사가 아니었다.“우리 민아도 잘못한 곳이 있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원하는 보상이라도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송민준이 말을 이어갔다.“보상은 필요 없어요. 괜찮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죠.”고은서가 말했다.“무슨 부탁이요?”“백씨 집안에서 요즘 여러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고 있다던데, 그 프로젝트들을 저 대신 산통 깨주세요.”고은서도 민시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곽수혁이 GS그룹 일에 끼어들면서 백씨 집안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그녀의 말을 들은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민아 보고 나한테도 그만 집적거리고 해. 나도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어.”옆에 있던 민시후가 갑자기 말을 보태었다.송민준은 민시후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시후야, 민아가 어릴 적부터 널 좋아한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민아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곁에서 어쩔 수 없어.”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성가시다는 듯 직설적으로 말했다.“난 어릴 적부터 송민아가 싫었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는 진짜 짝이 없다니까.”송민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고은서에게로 돌리며 물었다.“이혼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후랑 함께 있을 생각이신가요?”‘소식이 빠르네.’이혼한 지 며칠 되지도 않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민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까.”송민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혹시나 또 고집부리면서 기분 나쁘게 할까 봐 오늘 너희랑 만난다는고 얘기하지 않았어.”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좀 북제로 데려가. 해성에 계속 있게 하지 말고.”송민준은 나긋한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미 ZY 그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던데.”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살을 더 세게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송민아를 강제로 ZY 그룹에 밀어 넣은 건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나중에 또 고은서를 해치려 하거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또다시 너랑 우리 아버지 때문에 봐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고은서는 민시후를 쏘아보았다.‘나랑 송민준을 원수 사이로 만들 생각인 거야?’“뭘 쏘아봐?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민시후는 점점 더 흥분해 하며 말했다.“전에도 몇 번이고 널 협박했잖아. 심지어 간호사를 교사하여 우리 아이까지 잃게 한 사람이야. 네가 날 막지만 않았으면 내가 송민아를 가만둘 거 같아?”“...”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전에 유산한 경과를 민시후에게 간단히 알려주면서 송민아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걸 이렇게 이용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씩씩거리는 민시후를 보면서 고은서는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도 전문가에게 나가보라 하고 직접 민시후에게 차를 따라줬다.“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해.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 일 때문이야.”송민준이 말하기를 진희숙은 송민아를 친딸로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돌봐온 사람으로서 그녀가 두 사람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런 모험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송민아가 간호사랑 만난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진희숙이 그녀를 불러내 우연하게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민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형, 형수님이 민시후한테 별다른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걱정하지마.”“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 그래?”곽승재가 약간 어색해하며 말했다.“이미 이혼한 사이인데 고은서가 누구한테 마음이 가든 누구랑 있든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아까 썩은 표정을 하고 경적을 울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육현석이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러나 갑자기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면서 변명거리를 찾았다.“맞아, 맞아. 형 말이 맞아. 형수님이 누구랑 있든 형이랑 이젠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역시 이혼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속상해하는 일은 전혀 없는 우리 형, 상남자답다니까.”곽승재의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발견한 육현석은 이내 입을 화제를 돌렸다.“형, 형수님이 형을 보기 싫어하는 것도 화나서 그러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자존심 때문에 고집부려서는 안 된다니까. 형수님한테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할 거 아니야.”그의 말을 들은 곽승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가 말했다시피 날 싫어하잖아. 그런데 무슨 존재감을 나타내라는 거야?”“지금 상대방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기 싫은 사람은 형이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형수님이 스스로 돌아올 것 같아? 형, 자존심 따위 버리지 않으면 형수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육현석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전에 낯선 사람 사이로 지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아주 흔쾌히 된다고 답하던 고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어제 점심, 그가 스케줄을 바꾸면서까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고은서가 이혼해서 무척 기쁘다고 하면서 자신의 뒤담화를 하는 걸 들었다.그러나 방금전 민시후와 다정하게 장난치면서 자신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이건 자존심을 내려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은서가 이젠 진짜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곽승재는 눈살을 질끈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고은서랑 다시 화해하고 싶다고 했어? 인제
민시후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는 고은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오글거려 죽겠네.”고은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방금전 손을 닦던 물티슈를 그를 향해 던졌다.“누가 오글거린다는 거야! 사람 호기심 불러일으켜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짜증 나는 자식아!”“고은서!”물티슈에 얼굴을 맞은 민시후가 물티슈를 다시 주어 그녀를 향해 던지려고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빵빵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와 민시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급 SUV 한 대가 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운전석에는 육현석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곽승재였다.육현석은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옆에 있는 곽승재를 힐끔힐끔 보았다. 방금 경적 소리를 낸 게 그가 아니라 곽승재인 것이 분명했다.SUV 차량 높이가 꽤 있었기에 아마 방금전에 그녀와 민시후가 장난치는 걸 본 모양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앉아있는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성가시다는 듯 몸을 홱 돌리면서 민시후에게 말했다.“초록불이야. 안 가고 뭐 해?”민시후도 차 안에 앉아있는 육현석과 곽승재를 보았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액셀을 밟기는커녕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여기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그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전에 두 사람이 운전하면서 맞부딪친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꼭 쥐고 말했다.“민시후, 우리 약속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이상한 짓 하지마.”민시후는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전에 내 차를 먼저 박은 사람은 곽승재거든.”‘네가 곽승재 차 앞에 막아서서 시비 걸지 않았으면 곽승재가 널 박을 리도 없었거든.’고은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민시후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러면 나 먼저 차에서 내려도 돼?”“너 언제부터
민시후는 송민준과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날씨가 참 좋았다.민시후는 기사 대신 직접 하늘색 스포츠카를 운전했다.고은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보며 말했다.“민 도련님, 패션 워크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스토랑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해야 할까요?”“그냥 평범한 스포츠카일 뿐인데 어디가 눈에 띈다는 거야? 잔말 말고 얼른 타.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민시후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스포츠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길에 차들이 적었던 탓에 다행히도 너무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중에 ZY 그룹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곽승재가 ZY 그룹을 타깃으로 삶고 짓누르려고 할 때 민시후가 제때 빠르게 대응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허 교수님 쪽에 의약 프로젝트가 아주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어. 후기도 꽤 괜찮고.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민시후는 회사 일을 얘기할 때만은 진지했다.“대리권도 네가 쟁취해 온 거니까 융자에 관한 일도 네가 책임지고 잘 해봐.”고은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전에 박지연한테서 곽승재가 융자에 관한 일을 백유미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의문스러웠다.그녀는 궁금증을 덜기 위해 민시후에게 물었다.“곽승재 아버지가 얼마 전에 귀국하셨는데 회사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곽승재한테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이번 일도 곽승재가 아버지 건의를 거절하고 직접 내린 결정일 거야.”‘그렇구나. 그런데 회장님이신 자기 아버지랑 맞붙는 거 보아서는 아마 두 사람도 사이가 별로인가 보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 아버지가 전에 편찮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아버지는 괜찮으셔?”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민시후는 피곤하다는
백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 시켜 조사중이니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너도 말했다시피 이미 일은 발생했고 손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 말인즉슨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야.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넌 명예랑 돈을 얻고 망하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일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백유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프로젝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은 너야. 그리고 회사 최고 결책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너랑 네 엄마 감방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원지훈은 백유미가 화난 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하늘 정상으로 보낼 능력이 있는 만큼 다시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요?”원지훈이 물었다.백유미는 독사처럼 살기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돈은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테고. 그런데 그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방금전까지 덤덤하던 원지훈도 점점 섬뜩해졌다.“무슨 일인데요?”“당연히 이 손해를 메꿀만한 일이지.”원지훈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이 일을 별 탈 없이 해주면 이번 손해는 그냥 넘어가 줄게. 혹은 네 엄마랑 함께 죽을 때까지 감방에 들어가 있든가. 한 가지만 선택해. 삼 일 줄게. 사흘 후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 너도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고 있을 거야.”백유미는 말하고 이내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범가온이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지훈아, 괜찮아? 유미가 또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나가 있으라고 한 거지?”그러나 원지훈은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지금 음식이 넘어가?”범가온은 호통치고는 슬쩍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계약 체결할 때 따로 돈 받
“고은서 눈에 네가 들어오기나 하겠어?”백유미는 곽승재도 사랑하지 않은 고은서가 원지훈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곳이 어디가 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왜 저를 위해 음식까지 주문해주면서 저를 먼저 찾아오겠어요?”“그래, 유미야. 지훈이가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 지방에서 살 때도 여러 여자애들이 얘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창업한 이후로 더 많은 여자들이 지훈이를 가지지 못해 안달이나 한다니까.”범가온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백유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원지훈에게 캐물었다.“고은서가 오늘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뭔데?”원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별일 아니었어요. 너무 오래 못 봤다고 밥 사준다고 만나자 했는데 시간 없다고 했어요.”백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원지훈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은서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변해버렸다. 전에는 툭 건들기만 하면 펄쩍 뛰면서 화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따라 곽승재가 무슨 일을 해도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심지어 민시후와 무척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곽승재의 아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호텔로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재 원지훈과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너무도 수상했다.‘곽승재의 이목을 끌고 그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기려는 수단인 건가?’“설마 이미 고은서에게 들킨 건 아니지?”백유미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원지훈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답했다.“뭐가 들켰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누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심심해서 고은서 앞에서 누나 얘기를 꺼내겠어요? 게다가 사람 뒷조사하는 거에 능하잖아요. 의심되면 조사해보면 될 거 아니에요.”나중에 조사는 해볼 것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비서는 선 자리에 그댈 얼어붙었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어두운 얼굴빛을 하고 서 있었다.“대... 대표님, 제가 그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곽승재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졌다.“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라는 뜻이 아닌가?”‘갑자기 쓰레기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하는 얘기랑 완전 다른 얘기잖아.’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표님, 인혜 씨는 그 뜻이 아니라...”옆에서 보고 있던 주민기가 마지못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그를 쏘아보았다.“너도 이번 달 보너스 취소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보너스까지 취소하는 거야?’주민기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레스토랑 룸.원지훈이 룸으로 들어갔을 때, 룸 안에는 차가운 표정을 한 백유미와 범가온이 앉아있었다.테이블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유미야, 우리 지훈이 화내지 마. 이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지훈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어.”범가온은 백유미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반면 백유미는 걸어들어오는 원지훈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지훈아, 왜 이제야 왔어. 얼른 유미한테 설명해. 요즘 회사 일로 바삐 보낼 뿐, 유미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원지훈은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 앉으면서 말했다.“누나, 또 왜 그러는 거예요? 밥 먹자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밥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백유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사진 한 뭉치와 여러 서류들을 원지훈을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너 대체 고은서랑 무슨 사이야? 고은서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이유는 또 뭐고?”원지훈이 서류와 사진을 들고 확인해 보니 그중에는 오늘 그가 고은서 사무실을 찾아간 모습과 전에 고은서와 복싱관에서 만난 모습이 찍혀있었다.이외에도 그가 고은서에게 연락했던 통화기록과 그녀가 그를 위
곽승재는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어젯밤 곽승재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고은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곽승재는 계속 백유미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나랑 이혼하기 싫다는 모습을 비췄잖아. 그렇게 보면 쓰레기 같은 본성을 지녔다는 건 사실이잖아.’“대표님, 조리실 구경해 보실 건가요?”누군가가 곽승재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진거로 봐서는 일행이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다.“주인공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험담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박지연이 물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들으면 듣는 거지 뭐. 난 험담한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거야.”“GS 그룹에서 시찰 나오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곽승재가 직접. 은서야, 혹시 네가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온 거 아닐까?”고은서는 바로 부정했다.“아니야.”박지연이 말했다.“그래도 인연인가 보네.”“그런 인연은 필요 없어.”곽승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깨진 상황에서 고은서는 더 이상 박지연을 설득하지 않았다.박지연은 언제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다.또한 사람이라는 게, 남을 설득하는 것은 쉬워도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법이었다.마치 전생의 고은서와 곽승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GS 그룹 대표실에서 주민기는 곽승재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했다.요즘 곽승재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화를 누르며 가엾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곽승재는 갑자기 병원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일정을 변경했다.실사를 마치고 돌아온 곽승재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대표실 전체에 한파가 닥친 듯했다.비서가 서류를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