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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9-12 19:00:00
고은서는 간지 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슬쩍 뒤로 넘기며 물었다.

"당연하죠, 저 방금 멋있지 않았나요?"

주인혁은 고은서의 행동에 웃음을 금치 못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멋져요, 멋있고 말고요. 프로 드럼연주자와도 비겨 볼만한 실력이신데요!"

"안목 좋으시네요."

고은서는 주인혁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가요, 누나가 술 사줄게요."

"누나, 저희도요, 저희도 술 사주세요!"

밴드멤버들도 몰려왔다.

고은서는 기분이 좋아나서 손을 흔들며 통 크게 말했다.

"마셔요, 우리 모두 같이 마셔요!"

무리의 사람들은 고은서를 클럽의 넓은 좌석으로 안배한 후 넉넉한 간식과 술을 주문한 뒤 그녀를 향한 아낌없는 칭찬을 하였다.

"누나, 진짜 생각지도 못했어요. 보기엔 연약해 보였는데 드럼 연주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깐요, 드럼스틱으로 끼 부릴 때도 얼마나 멋있던지. 누나, 저희 밴드팀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세요?"

kk가 물었다.

"지민이랑 같이 드럼 연주하면 관객들이 얼마나 난리가 날가요."

"예, 맞아요. 만약 누나가 저희 밴드팀에 들어온다면 그땐 분명 주인혁보다 더 인기 있을 거예요."

"그렇고 말고요. 제가 어떻게 감히 누나랑 비기겠어요."

주인혁도 웃으면서 맞장구쳤다.

열정으로 가득 넘치는 젊은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니 고은서도 덩달아 흥분되는 듯하였다.

마지막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껏 드럼을 쳤던 때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그때 당시에도 그녀는 많은 동학들의 칭찬을 받았고 심지어 한 유명한 음악교수님마저 그녀를 눈 여겨보아 제자로 삼고 싶어 하였다.

아쉽게도 당시 고은서는 곽승재가 싫어할 것을 염려해 그 기회를 거절하였다.

후에 그 교수님의 여러 명 제자들 모두 음악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룩하였는데 만약 당시 그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그들 중의 한 명이 될수 있지 않았을가.

"여러분들이 제가 밴드그룹에 참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밴드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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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는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 뒤 전화를 받았다. "지금 클럽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무슨 일 있나요? " 아줌마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지금 11시가 되어가는데 사모님이 언제 오시나 해서요." 예전부터 아줌마는 간혹 자기 전에 고은서한테 돌아오는 시간을 묻곤 했었다. "잘 모르겠는데... 아줌마 먼저 쉬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요." "사모님, 한 가지 일이 더 있는데요." 아줌마는 다시금 은서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께서 자주 입으시던 잠옷을 못 찾겠다고 하십니다." "자주 입던 잠옷을 찾지 못했으면 다른 옷으로 바꿔 입으면 되잖아요. 설마 저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찾아줘란 소리인가요? " "도련님께서 다른 옷은 불편하다고, 사모님께서 오늘 아침 도련님보다 후에 일어나셨으니 혹여 그 잠옷을 다른 옷장에 넣으신 건 아닌지 해서요." "전 곽승재의 물건에 손대기조차 귀찮거든요! 곽승재가 어젯밤 잤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는데 그의 잠옷이 어디 있는지 알 턱도 없죠. 아줌마도 그만 신경 끄세요. 알아서 찾아 입든 말든." "하지만.... " "거기까지요 아줌마, 친구들이 불러서 이만 끊을게요." "고은서!" 고은서가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귓가에서 곽승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몇 시인데, 언제까지 클럽에 있을 예정이야." '곽승재도 옆에 있었구나.아줌마가 걸어온 이 전화, 혹여 곽승재가 지시한 건 아닐까?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항상 고은서가 곽승재한테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물어봤었는데 살다 보니 곽승재가 고은서한테 물어보는 날이 오네?'"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 곽승재가 다시금 냉랭하게 말을 했다. 고은서는 과거의 곽승재와 같은 차가운 어투로 답했다. "몰라. 귀찮게 굴지 마." 그러고선 곽승재가 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고은서는 곽승재가 부아가 치밀어 부들부들 떨고 있을 생각에 꽤 즐거워졌다. 드디어 곽승재도 할 말 채 하지 못한 채 전화가 끊기는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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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60화

    곽승재는 불쾌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잠옷을 못 찾겠어. 돌아가서 잠옷을 찾아줘."고은서는 의아했다. 그녀는 술기운에 머리가 좀 어지럽긴 했지만 정상적인 사고조차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곽승재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그저 자신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서 화가 난 나머지 고의로 그녀한테 시비 거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내게 그럴 의무는 없어."고은서는 곽승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술잔 돌려줘!"고은서를 바라보는 곽승재의 미간이 무의식간에 좁혀졌다. "너 너무 많이 마셨어. 그만 마셔."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곽승재와 구면이였다. 지난번 곽승재가 밑도 끝도 없이 고은서를 끌고 나간 것을 보았었기에 이번엔 그녀가 다시 괴롭힘 당하는 것을 그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보세요, 아무리 은서누나가 당신의 아내라지만 술을 마시고 말고의 여부는 그쪽 권한이 아니지 않나요?""그니깐 말이에요. 너무 독단적이시다."그 말들을 들은 곽승재는 추호의 파동도 없는 눈길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워낙 강렬한 아우라를 지닌 곽승재가 무표정으로 있으니 그 압박감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곽승재의 이런 시선에 방금 말을 꺼낸 사람들은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곽승재씨, 은서누나 술 그리 많이 드시지 않으셨어요. 만약 누나가 돌아가려 한다면 저희가 집까지 모셔드릴 겁니다. 당신은 누나를 강제적으로 데려갈 수 없어요." 주인혁이 입을 열었다. 곽승재는 시선은 주인혁으로부터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술잔으로 향했다.그는 두말 않고 고은서를 가로로 안아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나머지 고은서는 외마디 고함과 함께 두 팔은 무의식간에 곽승재의 목을 감아 안았다. 그녀의 이 동작은 꽤나 곽승재의 맘에 들었다. 곽승재는 그의 거리감 느껴지는 품위를 유지하면서 그들한테 말했다. "오늘 밤 모든 비용은 제가 쏠게요. 저의 아내와 재밌게 놀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이 말과 함께 곽승재는 블랙 카드를 복무원한테 건네곤 고은서를 안은채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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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는 박지연의 뜬금없는 호들갑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뭐가 떠?”‘저번에 술 취했을 때의 주사는 이미 지나간 일 아니었나?’“누군가 네가 엊저녁에 클럽에서 드럼 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다들 네가 예쁘고 멋있다고 난리야!”박지연은 다급하게 이 사실을 고은서와 공유했다.“전화 끊지 말고 빨리 아이패드로 확인해 봐!”“...”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에 따라 아이패드로 비디오 플랫폼을 열었다. 박지연의 말 대로 고은서가 드럼을 치는 동영상이 많은 인기를 받고 있었다.동영상을 클릭해 보니, 앞뒤가 조금 잘리고 1분가량의 킬링 파트만 남아있었다.영상 속에서 고은서는 음악에 취해 두 팔을 벌리고 능수능란하게 드럼을 치고 있었다.시청자 각도에서 자신을 바라본 고은서도 자신이 확실히 예쁘고 멋있다고 인정했다.동영상 밑의 댓글 창에는 온통 ‘멋있어요’, ‘예뻐요’, ‘반했어요’ 등 칭찬으로 도배되었다.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니, 고은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인터넷의 인기는 이삼일만 지나면 줄어드는 거라 그녀는 재미로 여기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내가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박지연은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이 계집애야, 남한테 보여주면서 왜 나는 안 불렀어!”박지연은 고은서보다 2살 많은 데다가 고은서와 같은 대학도 아니었다. 근데 잘생긴 신입생을 만나기 위해 박지연은 고은서가 다니던 대학에 몰래 갔었다.결국, 그곳에서 잘생긴 남자를 만나지 못했고, 오히려 고은서의 멋진 모습에 반해 주동적으로 그녀의 연락처를 받으면서 두 사람이 점차 친구가 되었던 것이었다.다만 그 이후로 고은서는 드럼을 치지 않았기에 박지연도 더는 눈요기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동영상을 보자마자, 박지연은 신이 나서 고은서에게 연락했다.“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너의 드럼 실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아.”박지연이 말했다.“혹시 클럽에서 매일 공연할 생각 없어? 그럼 내가 매일매일 가서 응원해 줄게!”고은서는 공기에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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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자신의 늠름한 얼굴을 감상하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부스스한 머리, 얼굴은 깨끗한 편이지만, 눈가에는 메이크업 흔적이 조금 남아있는 모습을 보았다.고은서는 어젯밤 차 안에서 바로 잠들었기에 곽승재가 자신을 안고 방까지 올라왔는데 화장 지우는 법을 모르니까 수건으로 얼굴만 대충 닦아준 모양이었다.그렇다 한들 고은서는 여전히 이 상황이 믿겨 지지 않았다.‘어젯밤, 곽승재가 클럽에 찾아왔을 때 기분이 분명 안 좋아 보였는데, 정색해서 날 책문하지 않았을뿐더러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고?’근데 고은서가 감격해야 할 것도 없었다.고은서도 술에 취한 곽승재를 보살피느라 그의 얼굴이랑 몸을 닦아주고 옷도 갈아 입힌 적이 있었다...옷!고은서는 갑자기 자신이 지금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곽승재가 옷도 갈아 입혀준 거야?!’고은서는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 곽승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신의 목 뒤에 수상쩍은 빨간 점이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보았다.빨간 점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여서 머리카락에 가려졌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불빛에 비치니 아주 눈에 띄었다.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리며 빨간 점을 만져 보았다. 통증도 없고 가려움도 없었다.그녀는 쪼가리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예전에 룸메이트가 남자친구에게 받은 쪼가리를 본 적이 있었다.진한 빨간 점은 컨실러로 커버되지 않으며 누르면 약간의 통증도 느껴진다고 했었다.고은서의 빨간 점은 쪼가리가 아닌 게 분명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벌레가 물었나 보네. 곽승재는 내가 취했을 때 슬그머니 내 몸에 손댈 정도로 비열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잠옷은...’고은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미숙에게 물었다.“아줌마가 어젯밤에 제 옷을 갈아 입혀준 건가요?”이미숙은 상을 치우면서 대답했다.“네. 사모님이 어제 취해서 깨지 못하니까 도련님이 저보고 잠옷으로 갈아 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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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음이 입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육현석은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형의 표정을 보니, 형도 형수님이 드럼 칠 줄 안다는 사실을 몰랐던 눈치네.’설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예전에 고은서를 싫어했던 곽승재는 그녀의 일을 자기 형제들에게 알릴 이유가 없었다.“형수님 너무 예쁘다. 근데 난 왜 예전에 형수님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지? 이상하네...”육현석은 혼잣말했다.“예전에도 예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의 이런 늠름함이 없으니까 개성이 좀 덜했다고 해야 하나?”곽승재는 말이 없었다. 동영상 속의 고은서는 밝게 웃고 있었고 한껏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는데, 이는 곽승재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특히 손가락 사이로 드럼 스틱을 돌릴 때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교만함, 아름다움, 그리고 멋이 담겨있었다.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영혼마저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했다.“대박. 형, 이 사람의 댓글 좀 읽어 봐...”[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분명히 이 여자분에게 관심이 있는 거예요. 보통 사람은 분위기, 기교, 비트에 대한 장악도 등에 중점을 두고 영상을 찍거든요. 근데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영상 속 주인공의 웃음과 눈빛만 찍었어요. 그래서 보는 사람도 같이 즐거워지게 만들어요.]“밑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어요!”[이분이 엄청 세심하게 관찰하셨네요. 그러니까 제가 이 동영상을 볼 때 뭔가 달콤하고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했어요. 역시나 애정을 듬뿍 담아서 촬영해서였네요!]“형...”육현석은 곽승재에게 아래의 댓글을 더 읽어주려 했지만, 곽승재는 아예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동영상을 꺼버렸다.“왜 그래? 설마 네티즌들의 막말을 믿는 건 아니지?”육현석은 곽승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네티즌의 댓글을 더 읽으려 했다. 그러자 곽승재는 또 육현석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프로젝트 기획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게 아닐 텐데.”육현석은 어이가 없었다.“형, 너무하는 거 아니야?”육현석은 참지 못하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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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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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손을 거들던 장정들도 그 모습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백유미를 희롱하는 행렬에 끼어들었다.이내 백유미의 입에 물려있던 수건이 떨어졌지만 그녀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다른 것으로 입이 가득 차 버렸다.남자들의 음탕한 신음과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순식간에 창고를 채웠다.모든 일든 불과 일이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은서는 구석에 숨어서 원지훈이 차버린 쇠막대기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떨리는 심장은 평온을 되찾을 수 없었다.몇 명의 남자들이 각 방향에서 백유미를 희롱하고 있었다.고은서는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내가 원지훈을 회유하지 않았더라면 저기에 누워있는 건 나였겠지.’백유미는 동정받을 처지가 아니었다.고은서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비록 돈으로 매수했다고는 하나 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시선을 그녀에게 돌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밖에 백유미가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뭔가 이상함이라도 눈치채고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고은서는 자신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고은서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백유미의 핸드폰을 켜려고 했지만 땅에 부딪히며 떨어질 때 전원이 나가버렸다.그녀는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핸드폰을 켤 수 있었지만 비밀번호에 막혀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백유미의 생일, 곽승재의 생일을 입력했지만 비밀번호는 맞지 않았다.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남자들이었기에 고은서는 소리를 내어 그들의 시선을 끌 수조차 없었고 백유미에게 비밀번호를 물을 수조차 없었다.고은서는 긴급버튼을 눌렀지만 백유미는 긴급 연락망을 따로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고 국내의 비상 번호는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어떡하지?’고은서가 원지훈을 불러 도박하려고 할 때 백유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핸드폰에는 알파벳 C만 떠 있을 뿐이었다.잠시 생각한 고은서가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고은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핸드폰을 움켜쥐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

  • 어게인, 비긴   제648화

    “끈은 혼자서 칼로 푼 것 같아요. 제가 얼른 다시 묶을게요! 이번에는 절대 풀 수 없을 거예요.”말을 마친 원지훈이 밧줄을 챙겨 고은서에게 다가가려 했다.“됐어!”백유미가 원지훈을 제지했다.“누나, 왜 그래요?”백유미는 쇠막대기를 거두며 얼굴에 음험한 미소를 떠올렸다.“챙겨온 술은 다 마셨어?”원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고마워요. 누나.”“뭔가 치밀어 오르는 충동이거나 특별한 감각은 없고?”백유미가 물었다.그 말을 들은 원지훈은 바로 백유미가 술에 최음제를 탔음을 눈치챘고 달아오르는 몸을 느꼈다.“안 그래도 조금 덥네요.”“그렇다면 뭘 기다리고 있어? 저기 해소할 만한 사람 하나 있잖아?”원지훈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누나, 후에 데려온 두 사람 먼저 들여보낼까요? 하지만 두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은 것 같던데요.”“그 사람들은 놔두고 먼저 온 사람들만 들여보내.”백유미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30분 줄게.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원하는 대로 해.”원지훈은 고은서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불렀다.백유미는 원망과 경멸 섞인 시선으로 칼을 손에 쥔 채 구석에서 떨고 있는 고은서를 바라보았다.“밖에 있는 남자들은 네가 유흥가로 가기 전에 적응하는 단계라고 생각해.”고은서가 경악하며 물었다.“백유미,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아니면?”백유미의 얼굴에 서린 경멸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고은서, 어차피 곽승재랑도 많이 잤잖아. 유산까지 해본 사람이면 닳을 대로 닳은 여자잖아. 여기까지 와서 왜 성녀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있어? 있는 대로 즐겨.”그때 밖에서 남자들이 걸어들어왔다.그들의 벨트는 이미 풀려있었고 흉한 뱃살과 속옷도 내놓고 있었다.원지훈은 밖에 있던 두 사람과 말을 나눈 후 이내 창고 문을 닫았다.“그래, 이참에 너도 잘 즐겨야지.”고은서는 작은 틈을 이용해 침대 위에 있던 낡은 수건을 재빨리 백유미의 입에 쑤셔넣었다.

  • 어게인, 비긴   제647화

    백유미가 입을 열었다.“고은서, 여기서는 사람을 가축처럼 팔아버릴 수도 있다는 걸 몰랐어?”백유미는 마치 애완동물을 파는 이야기를 하듯 가볍게 말했다.“운이 좋으면 유흥가로 팔려 가겠지. 네 몸매와 얼굴로 부잣집 딸이라는 자존심만 내려놓으면 손님을 받기는 쉬울 거야. 운이 나쁘면 손발이 잘리고 신장이나 간이 적출되어 거지가 되거나 장난감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지. 결과는 네 운명에 달렸어.”백유미의 부드러운 말투는 고은서에게 오히려 독을 품은 뱀이 주는 온기로 느껴졌다.그녀는 가식적인 백유미의 모습에 속이 울렁거리며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미쳤어? 내가 무슨 일을 당하면 너라고 무사할 줄 알아?”백유미는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쇠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한 단씩 늘려 고정한 뒤 고은서의 가느다란 목에 겨눴다.“고은서, 곽승재를 언급했지? 그 사람이 널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차가운 쇠막대가 피부에 닿자 고은서는 몸을 움찔했다.백유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곽승재가 소식을 들을 때쯤이면 넌 이미 팔려 가고 난 후일 거야. 설령 널 찾더라도 너는 이미 망가진 상태일 텐데 그 남자가 여전히 널 원하겠어?”고은서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곽승재가 날 원하든 말든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이런 짓을 한 걸 알게 되면 분명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내가 뭘 했는데?”백유미는 마치 작은 강아지를 놀리듯 쇠막대로 고은서의 목을 쿡 찌르며 물었다.“나는 T 국에 사업차 온 거야. 증인도 있고 증거도 있어. 네가 무슨 일을 당했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고은서는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쇠막대기를 뿌리치고 백유미를 제압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백유미가 새로 데려온 두 사람이 바로 문밖에 있었고 그들은 무기도 소지한 듯해 보였다.혹시라도 백유미를 단번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다행히 백유미는 아직 고은서가 반격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뜨리지는 않았다.고은서는 고통

  • 어게인, 비긴   제646화

    원지훈도 백유미를 증오하고 있었기에 고은서의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동의했다.“알았어. 그때는 내가 제일 먼저 나설게.”‘역시 원지훈은 믿지 못할 놈이야. 백유미가 먼 친척 누나라는 자각은 있나? 이런 생각을 품는다는 게 놀랍네. 아니지. 지금은 이럴 생각할 시간이 없어.’고은서는 속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을 참으며 말했다.“시간 없어. 얼른 내 가방에 들어있는 호신용 무기 가져와 줘.”백유미가 다른 사람을 더 데리고 올지,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움직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래서 밖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매수했다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원지훈도 곧 도착할 백유미를 두려워하며 고은서의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고 그녀에게 호신용 도구를 건넸다.밖으로 나가기 전 원지훈은 고은서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너도 알아서 살아남아. 상황이 안 좋으면 약속했던 건 나도 못 지켜.”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고은서도 단지 원지훈을 이용해 백유미의 시간을 더 끌어보려 했을 뿐이었다.그렇게 하면 민시후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 사람을 데리고 그녀를 구하러 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으니 말이다.돈으로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했던가, 돈의 힘으로 원지훈은 손쉽게 밖에 있던 사람들을 다시 매수했다.바로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백유미가 도착했나 보네.’손에 묶인 밧줄은 느슨하게 풀어졌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손발이 묶인 척하며 침대 한구석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누나, 드디어 오셨네요! 고은서도 이제 깨어났어요. 방금 들어가서 살짝 경고 줬는데 정말 입에 독침이라도 품었는지 험한 말을 서슴지 않더라고요.”원지훈은 아첨하는 듯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누나 기분 상하게 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제가 대신 혼내줄게요!”“수고했어. 차에 먹을 것과 마실 것 준비해 놓았으니 가서 가져와. 조금 있다 너희 도움이 필요할 거야.”“고마워요, 누나.”곧 창고 문이 열리고 백유미가 하이힐을 신은 채

  • 어게인, 비긴   제645화

    고은서의 말에 원지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핵심을 찔렀다는 것을 눈치챈 고은서는 계속 차분한 말로 설득했다.“같이 해외로 나왔으니 같은 사건에 휘말렸다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겠어? 우리 둘을 같이 제거하면 백유미는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고 여전히 평온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야. 백유미에게는 아버지가 있고 백씨 가문 산업이 있지만 너는 애꿎은 목숨 하나 날리는 거지.”고은서가 말을 이었다.“정말 백 보 물러나서 백유미가 너를 살려준다고 해도 너는 평생 숨어지내야 할 텐데 어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너도 그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겠어?”원지훈은 사색에 잠겼다.전에 내비치던 우월감과 경멸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고은서는 속으로 초조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여유로운 척하며 말했다.“백유미가 곧 도착할 거야. 그러니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해.”마침내 고개를 든 원지훈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백유미 말을 따르지 않고도 살아남을 길이 있다고? 내가 너를 이런 곳에 데려왔는데 네가 날 용서해 줄 리가 있겠어?”고은서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네가 나를 배신한 건 정말 화가 나. 앞으로도 널 신뢰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건 이해해. 그리고 나는 뻔뻔하게 널 괴롭힐 생각은 없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큰돈을 줄게. 그 돈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비록 영광스러운 귀향은 아니겠지만 풍족하고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지금 상황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고은서는 이어 원지훈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고향은 너에게 익숙한 곳이고 백씨 가문과는 어쨌든 친척 관계잖아. 해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백유미도 굳이 너희를 어떻게 하진 않을 거야.”고은서의 말에 원지훈의 마음은 기울기 시작했다.백유미의 잔혹함으로 보건대 고은서가 말한 일들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이번에 백유미를 배신한다면 죽을 길밖에 없겠지만 배신하지 않아도 좋은 날을 없을 거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은

  • 어게인, 비긴   제644화

    “백유미가 제가 누나한테 돈을 받고 누나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을 시켜서 저를 한바탕 때렸어요.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서 지금도 기침하면 아파요. 그리고 엄마도 매일 개장 안에 갇혀 몇 시간 동안 무릎 꿇는 자세를 강요받고 있어요. 시간을 못 채우면 풀어주지도 않는데 제가 백유미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어요?”고은서는 많이 놀랐다.‘역시 백유미는 원지훈이 나한테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하지만 고은서는 백유미가 원지훈 모자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한 수를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지훈에게 반박할 힘이 없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이 사실을 전혀 티 내지 않은 것도 충격적이었다.“전에 고은혜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한 것도 백유미가 시킨 거야?”고은서가 묻자 원지훈은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의도를 솔직히 얘기했다.“그건 제 생각이었죠. 지난번 대원에서 발생해야 했던 일을 현실화시킨다면 백유미가 저를 그냥 놔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정말 짐승만도 못한 놈이야.’지금 이 일로 화를 낼 겨를도 없었던 고은서가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이렇게 큰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왜 나한테 말해서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지 않았어?”“절 위해 해결책을 찾는다고요? 누나가 원하는 건 제가 더 망가지는 거 아니에요?”원지훈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제가 모를 것 같아요? 누나는 속으로 저를 무시하며 저를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잖아요.”원지훈이 말하는 무시는 고은혜와 관련된 일을 지적하는 것이 분명했다.고은서가 답했다.“네가 은혜랑 잘되길 원하지 않았던 건 맞아. 우리 사이도 결국 이익 관계니까. 하지만 이익으로 묶여 있기에 넌 더 나를 믿어야 했어!”원지훈이 갑자기 폭발하며 소리쳤다.“믿지 않아! 그 누구도 믿지 않아! 너희 중 누구도 좋은 사람은 없어! 고은서! 내가 들어 온 것도 너에게 백유미가 곧 도착할 거라고 알려주기 위해서야. 오늘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 그리고 누구도 널 구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

  • 어게인, 비긴   제643화

    “괜한 힘 빼지 마요.”조수석에 앉아 있던 원지훈이 냉소적으로 말했다.“아까 물 줬는데 안 마신 건 누나 탓이죠.”온몸에 힘이 빠진 고은서는 머리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가 보면 알겠죠.”원지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자신이 위험에 빠졌음을 직감했다.그녀는 차 뒷좌석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은 채 마지막 힘을 다해 가방 속 핸드폰을 더듬어 찾았다.그리고 그녀는 힘껏 옆면에 있는 긴급 전화 버튼을 눌렀다.이는 경호원들과 미리 문제가 생기면 즉시 연락하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고은서는 어지럽고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원지훈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그녀는 혀를 꽉 깨물며 간신히 의식을 유지했다.희미해진 시야로 화면을 바라보며 SOS 번호를 누르려 했으나 제대로 눌렀는지 통화가 연결됐는지는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차는 계속 질주했고 고은서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 나갈 기력조차 남지 않았다.혀를 깨물 힘마저 사라진 그녀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고은서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허름한 창고의 방 안에 누워 있었다.주위는 매우 더러웠고 악취마저 풍겼다.고은서는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로 나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밖에서는 몇몇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현지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는데 간혹 한국어가 섞여 있기도 했다.‘원지훈 혼자서 T 국 사람들과 이런 일을 꾸밀 수는 없어. 백유미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게 분명해. 온갖 방법으로 해외로 데려온 이유는 국내에서는 쉽게 구해질 것 같아서인가? 의식을 잃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경호원들은 위험을 눈치챘나? 민시후도 T 국에 온다고 했는데 호텔에 도착하지 않은 걸 알게 되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겠지?’생각을 마친 고은서는 얼마간 안심이 되었다.몸을 움직여보니 체력이 조금 돌아왔음을 느꼈지만 손발이 꽉 묶여 있던 터라 뼛속까지 욱신거리며 통증이 심했다.겨우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려던 순간 침대 옆의 낡은 서랍장을 건드렸다

  • 어게인, 비긴   제642화

    원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별일 아니에요. 비즈니스석이 처음이라서 조금 어색하네요.”비행기에서 내리니 시차 때문에 T 국은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다.고은서가 핸드폰 전원을 켜자마자 민시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원지훈에게 먼저 가서 차를 잡으라고 한 뒤 고은서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고은서, 어디 갔어? 송민아 말로는 이틀 동안 회사에 안 나온다던데?”고은서는 T 국에서 볼일이 있다고 솔직히 알렸다.“백씨 가문과 관련된 그 프로젝트?”민시후는 바로 눈치챘다.고은서는 부정하지 않았다.“담당자랑 만나서 얘기 나누기로 했어. 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갈게.”“호텔 위치 보내. 조금 있다 갈게.”“네가 와서 뭐 하게?”“다른 나라에서 너랑 나 둘뿐인데 내가 뭘 하고 싶을 것 같아?”“그럼 주소는 안 보낼래.”“고은서, 지금 누구를 경계하는 거야? T 국에서 가서 특색 요리 좀 먹으려고 그런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십중팔구 그녀가 혼자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해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게다가 그가 오기로 결심했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민시후의 끈질긴 전화 공세를 막기 위해 고은서는 결국 호텔 이름을 그에게 보냈다.[방 하나 더 예약해 줄게.][고은서,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랑 같은 방 쓰고 싶었던 거야?][자꾸 그러면 차단할 거야.][알았어. 알았어. 내가 졌어.]“은서 누나. 우리 차례예요. 가시죠.”원지훈이 앞쪽의 택시를 가리키며 말했다.경호원들이 고은서에게 비행기에서 내려 몰래 뒤따라오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고은서는 문자를 확인한 후 핸드폰을 넣고 원지훈과 함께 택시에 탔다.운전기사는 현지인인 듯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했다.고은서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원지훈은 비행기에서의 긴장이 사라진 듯 몇 가지 지역 특산품에 관해 물어봤다.“누나, 목마르지 않아요? 물 좀 마실래요?”원지훈은 말하며 개봉하지 않은 생수병을 건넸지만 고은서는 받지 않았다.“괜찮아.”원지훈은

  • 어게인, 비긴   제641화

    고준석이 입을 열었다.“우리 집에 와서 잠깐 바둑을 둘 때 네가 할머니 보러 가서 브로치를 놓고 왔다면서 마침 전해주더라구나.”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곽승재 정말 대단하네. 오전에 할머니 댁에 보낸 브로치를 오후에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져오다니. 조금 전 골동품 가게에서 마주쳤을 때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으면서...’“은서야, 왜 말이 없어? 또 할아버지가 승재랑 만났다고 화내는 거야?”고준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에도 말했지만 너희가 이혼했다 뿐이지 원수가 된 건 아니잖니. 날 보러 왔다는데 그냥 내쫓을 수는 없잖아.”고준석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고은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애교 몇 마디로 웃어넘기고는 전화를 끊었다.잠시 고민한 고은서는 굳이 곽승재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브로치를 가져갈 생각이 없다면 다시 경매에 올려서 돈으로 송금해 주면 되지 뭐.’...다음 날, 고은서는 원지훈의 연락을 받았다.원지훈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상대방이 최후통첩했어요. 이틀 안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하네요.”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면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어제 민시후는 원지훈에게서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백유미는 최근 판주 투자은행에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어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고은서는 원지훈과 함께 T 국에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은서 누나, 조금 전에 알아봤는데 점심 항공편이 있대요. 그걸로 가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원지훈이 말했다.“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건 어려울 것 같네. 신분증 보내주면 다 처리하고 나서 항공편 알려줄게.”‘원지훈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 혹시 클라이언트랑 음모라도 꾸며서 나한테 사기 치는 거라면 미리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해. 출장 일정도 완전히 맡길 수는 없어. 안 그래도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 비행기 티켓까지 나한테 맡기지 않는 건 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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