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요.” 임영은은 빙그레 웃으며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주희진은 영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임신중절수술 이후로 그녀는 임문정와 주희진이 부모로서 딸을 도와주지 않아 아이를 잃어버렸다면 원망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하인성에게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지금도 그를 포기하지 않았을지 몰랐다. 주희진은 영은의 마음이 자기 부부와 멀어졌음을 분명히 느꼈다. 관계를 완화시키려 했지만 영은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오늘에야 비로소 영은의 마음이 열린 것 같았다. 그녀는 영은이
주희진은 휴대폰을 들고 112에 전화하려고 했다. 고개를 들자 임영은의 방 안이 온통 핏빛인 것을 발견했다.“아!” 주희진은 피를 흘린 채 쓰러진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이 사람은 지명 수배자 설도엽이잖아!’그녀는 너무 놀라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영은은 자기 옆으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녀는 주희진이 기절한 것을 보고 속으로 저주했다. ‘정말 도움이 안돼!’그녀의 코 속으로 피비린내가 스며 들어왔다. 갑자기 역겨워졌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임문정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임문정은 만신창이가 된 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빛을 잃은 눈과 함께 그는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설도엽의 시신은 치웠나요?”문소남이 물었다.“음.” 임문정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서려있었다.“칼날이 목덜미까지 파고들어 경동맥이 완전히 절단되있었어.”이것은 법의조사관의 1차 판단이었다. 임문정은 설도엽의 시신을 보았을 때 잘린 피부를 통해 뼈까지 보일 정도였다. 뼈들을 마치 피에 담근 것 같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소남은 오늘, 설도엽의 죽음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
장정안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모두 원아 때문이었다. 눈앞의 서류를 보고, 그는 잠시 생각하다, 솔직히 털어 놓았다.“난 정말 원아가 그날 사고가 날 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잘 몰라.”송현욱은 와인을 마시며, 미간을 찌푸렸다.‘벌써 이렇게 다 털어 놓는 거야?’“네가 아는 것을 전부 다 말해!”문소남은 이미 사람을 농장에 보냈고, 그가 거짓말을 했는지는,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것이다.“그 자는 너나 내가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장정안은 눈시울을 붉히며, 소남을 쳐다보았다.“원아가
이연은 그가 수제비 반죽을 모조리 넣는 것을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얼른 국자로 휘휘 저은 후, 뚜껑을 덮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송현욱은 팔짱을 낀 채 이연이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꼈다.이연은 채소를 자르다가,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물었다.“원아 소식은 있어요?”오늘 그녀는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그가 전화를 받고 일어나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원아와 장정안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아니.” 송현욱은 고개를 저으
원아는 하나라도 놓칠까 봐, 다닐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다닐의 설명을 들은 원아는, 약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위해가 없다는 것을 알자, 조금 실망했다.다닐은 원아와 알리사 두 사람이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계속 설명하면서 기기 조작법을 알려 주었다.원아는 학교 다닐 때, 이런 것들을 만져본 적이 있었기에, 알리사에 비해 손이 빨랐다. 다닐이 미션을 주자, 원아는 매우 빠르게, 약재들을 잘 혼합하고 정제했다. 그는 원아가 만든 약의 냄새를 맡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믿겠어?” 안드레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도 몇 마디 말로 문소남과 원아의 관계를 이간질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더 할 말없으면, 먼저 돌아갈게요.” 원아는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안드레이는 자기 말 때문에 절대 낙담하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독사처럼 음험하고 매서운 눈빛으로, 나중에 장나라가 사진을 보내왔을 때도 지금처럼 그렇게 도도한 모습일지, 지켜보기로 작정했다. 방으로 돌아온 원아는, 온몸의 힘이 빠지며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소남 씨…….’안드레이의 입에서, 그의 이름을 들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방금 너무 무서웠는데, 다닐 선생님이 도와줘서 다행이에요…….”원아는 평온한 얼굴로 생각했다. ‘봐, 알리사가 또 다닐을 언급했어.’원아는 알리사의 속마음을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스며 있는 수줍음은, 열 아홉 살 소녀가, 다른 사람을 짝사랑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었다.알리사는 더는 비밀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아가씨, 저보다 식견이 더 많으시니 물어볼게요. 다닐 선생님이,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