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준의 집으로 돌아온 현이는, 활짝 열린 문을 발견했다.현이가 집으로 들어가자, 서은준은 식탁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현이는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3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그때 그녀는 아직 서은준의 가정부였다. 두 사람은 매일 마주쳤다.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무슨 말이건 상대방에게 하지 못할 말이 없었다.현이는 집 안으로 들어와, 그런 서은준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침대 커버 세트를 교체한 다음 빠른 속도로 방을 정리했다.방 정리를 마치자, 배가 고파진 현이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현이는 점심으로 2인분만큼의 요리를 해두었다. 서은준이 그녀의 몫을 남겨두었을지 알 수 없었다.서은준의 곁으로 다가가자마자, 그녀는 식탁에 차려진 요리들을 발견했다.그녀가 한 음식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거의 먹지 않은 것 같았다.현이가 놀라 물었다: "대표님, 왜 식사를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침실에 들어간 것 때문에, 화가나 제가 한 음식도 먹기 싫으셨던 거예요?"서은준은 게임에 몰두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요리를 이렇게나 많이 한 걸 보면, 나 혼자 먹으라고 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 당연히 네 몫을 남겨 뒀지."현이가 밥그릇 가득 밥을 푸고는, 발그레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대표님! 이렇게 많이 남겨두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아직 식사 전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게임이 끝나자, 서은준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꼭 그렇게 유치한 질문을 해야겠어?" 서은준이 그녀의 몫을 남긴 건, 그녀가 한 요리는 한눈에 보아도 2인분이었기 때문이었다."뭐가 유치하다고 그러세요! 대표님이 좋은 분이란 뜻이었어요! 제가 오늘 정오에 어디에 갔을 지 맞혀보세요." 현이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대표님, 사용하신 그릇이랑 젓가락은 어디 있어요? 싱크대에도 안 보이던데, 대표님이 직접 설거지하신 거예요?"서은준: "난 설거지도 하면
그의 추궁에 현이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수가 제게 얘기해 줬어요."서은준: "수수가 또 너한테 무슨 말을 했어?"현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대표님, 지금 수수를 걱정하시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면, 수수가 제게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궁금해하시는 거예요?"서은준의 뺨이 ‘확’하고 붉어졌다. 그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말 안 해줄 거면 말아! 난 이만 자러 갈게."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서 주무세요! 이따가 제가 깨워드릴까요?"서은준: "됐어."서은준이 침실로 돌아간 뒤, 현이는 수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현이는 금세 부엌 정리를 끝낸 뒤, 베란다로 걸어가 소파 커버를 만져보았다.소파 커버가 다 말라 있었다.현이는 소파 커버를 가져와 소파에 씌운 다음,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켰다.그녀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그건 바로 당분간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물론 오빠의 결혼식이 있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결혼식이 끝나면 그녀는 다시 T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서은준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아주 확실했다.당시 서은준은 그녀를 대신해 할머니의 팔찌를 되찾아 왔으면서도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서은준이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은 건, 당시 그녀가 서준빈의 편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서은준은 화가 나, 그녀를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심지어는 E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에도, 서은준은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았다.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두 사람은 참 바보 같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 시기는 살면서 다시 마주하기 힘든 소중한 순간이었다.서은준은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설령 그것이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그녀는 상관없었다.그녀는 T국에 남아 서은준도 그녀를 좋아하게 될지 확인하고 싶었다.현이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저 당분간 집에 돌아
현이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네, 그럼, 그때 제게 미리 말씀해 주실 거죠?"진아연: "물론이지. 그곳에서도 항상 몸조심하렴."현이: "알았어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진아연: "그래."전화를 끊은 뒤, 진아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지금 A국은 한밤중이었다.진아연은 방금 일부러 화장실에 가서 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아연이 무거운 마음으로 잠든 박시준에게 다가가 박시준을 두드려 깨웠다."여보, 일어나 봐요." 진아연이 침대 스탠드를 켰다. "현이가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래요."그 말에, 박시준이 눈을 번쩍 뜨고는 자리에 앉았다. "현이가 돌아오지 않겠데?""그게 아니라...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거래요. 한이 결혼식 일정에 맞춰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서은준이라는 사람에 대한 자기 마음을 깨달았다면서요."그 순간, 박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 설마 그 자식이 우리 딸을..."진아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아요! 절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거예요! 현이 말로는, 3년 전에 서은준이 자기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걸 알게 되었다고 했어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대요."박시준: "큰 도움이라니, 무슨 큰 도움?""나도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어요. 여보,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 살펴봐야겠어요."박시준: "내가 직접 갈게!""당신이 가면 현이의 정체만 탄로 날 거에요." 진아연이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박시준을 제지하며 말했다. "게다가 지금 우린 한이의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잖아요. 한이의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현이가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면, 그땐 우리가 T국으로 가요.""여보, 현이가 T국으로 시집가는 거, 난 절대 용납 못 해. 현이가 기어코 그 자식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부리면, 그 자식이 A국으로 와야 해.""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에요." 진아연이 대답했다. "현이는 우리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요."T국.현이와 서은준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이것이 현이와의 마지막
서은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야?"현이: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바로 제가 마음을 바꾼 이유예요. 전 이제 막 졸업해서, 앞으로 당장 급한 일이 없거든요."서은준: "A국과 T국이 얼마나 먼데, 부모님은 여기 남아 일해도 괜찮다고 하셔?"현이: "이미 말씀드렸어요. 별로 내켜 하시진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저를 말리지도 않으실 거예요."서은준: "부모님께서 내켜 하지 않으실 걸 알면서도 이곳에 남겠다니... 부모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현이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맞아요. 전 부모님과 다툰 적도 없죠. 그렇지만 제가 이곳에 영원히 남을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제가 지금 잠깐 이곳에 남는다 해서 부모님께서도 크게 화를 내진 않으실 거예요."아무리 숙맥인 서은준이라도, 지금 현이가 기어코 T국에 남겠다고 고집하는 이유 정도는 알 수 있었다."나 때문이군." 서은준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우리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게 했더니, 우리 집에서 요리와 집안일을 하겠다고 했지. 귀국할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고. 설마... 나 좋아해?"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녀는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그녀가 아주 티 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대표님을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현이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여자친구 없으시잖아요? 여자친구만 없으면, 제가 좋아해도 문제없는 거 아니에요?"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서은준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아까 그랬잖아. 언젠가는 A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럼 우린 어차피 이루어지기 힘든 사이인데, 뭐 하러 시간 낭비해?" 서은준이 정중하게 거절했다.현이: "제가 돌아가는 건 나중 일이에요!"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 서은준이 얼굴이 붉혔다: "참 앞서가네. 우린 어울리지 않아. 난 너에게 시간 낭비할 생각도 없고.""대표님께 제게 시간 낭비하라고 한 적 없어요. 그러니 대표님도 제가
현이는 두 뺨이 화끈거렸다: "그럴 리가요. 은준 씨가 정말로 절 좋아하게 된다면, 전 은준 씨와 함께 돌아갈 거예요."그 순간, 조난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그럼, 난 앞으로 널 경계해야겠는데? 네 야심이 이렇게 클 줄이야. 우리 회사의 대표를 빼돌릴 생각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현이: "그 사람을 좀 믿어 줘요. 오빤 그 사람이 연애에 빠져 사리 분별도 못 하는 그런 사람 같아요?"조난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은준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도 사리 분별은 할 사람이야. 그러니, 힘내! 은준이가 너와 함께 떠나게 만드는 데 성공하면, 그땐 나도 인정하고 받아들일게!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이 나도 같이 데리고 가!"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난 오빠, 오빤 집에 돈도 많으면서, 왜 굳이 서은준 씨와 함께하려고 해요?"조난: "우리 집에 돈이 많다고 누가 그래?"현이: "오빠가 그랬잖아요! 오빠가 이 회사에 투자했다면서요."조난: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가 돈이 많다는 뜻은 아니야! 내 투자금은 우리 아버지의 사망보상금이었거든."현이: "..."조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돌아가셨어. 혼자 지내기 허해서 은준이와 파트너가 되기로 한 거야."현이: "조난 오빠, 그렇게 힘든 상황을 겪었어요?"조난: "그래! 정말 힘들었지."현이가 재빨리 감정을 조절한 뒤 말했다: "사실, 오빠도 그렇게까지 비참할 건 없어요. 오빠보다 더 비참한 상황을 겪은 사람과 만난 적 있거든요."조난: "그렇게 말하자면, 난 당연히 가장 비참한 사람은 아니지. 이 세상에 부모님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려서부터 부모님 없이 자란 사람도 참 많고.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돌아가셨어. 게다가 내게 막대한 사망보상금까지 남겨 주셨고... 어쨌거나 난 은준이에 비하면 조금 나은 것 같아. 은준이의 부모님은 아직 살아계시지만, 은준이는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고, 어머니
조난의 따뜻한 말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현이가 물었다: "회사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있나 봐요? 정말 잘됐네요! 투자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죠!"조난: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은준 씨는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에게 휘둘리게 될까 봐 걱정스러운가 봐..."현이: "그러니 더욱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죠! 상대방이 경영권을 요구하면, 투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잖아요."조난이 서은준을 바라보았다: "내가 투자자들과 일정을 잡을 테니, 우리 회사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어때?"서은준: "그러면 그렇게 하자!"조난이 손으로 OK 사인을 보낸 뒤, 자리를 떠났다.사무실 문이 닫히자마자 현이가 서은준에게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대표님, 정말 대단하세요! 회사 규모가 작은데도, 투자자가 이렇게 직접 문 앞까지 찾아왔잖아요! 그만큼 대표님 회사의 제품이 훌륭하다는 뜻이에요!"서은준: "우리 회사 제품은 아직 공식적으로 출시되지 않았습니다."현이: "..."서은준: "내가 대학생 때, 게임 몇 개를 만들어 다른 회사에 팔곤 했어."현이는 문득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대표님의 재능을 알아본 거죠! 대표님, 정말 대단하세요! 대학생 때부터 벌써 돈을 벌기 시작하셨다니, 아버지께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쏟아지는 현이의 칭찬에 서은준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이가 곧바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대표님. 제 말은, 어머니께서 아주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는 뜻이었어요!"서은준: "내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현이: "딱히 비밀도 아닌 것 같던데요! 대표님은 서씨 가문의 혼외 자식이시잖아요. 성인이 된 뒤에야 아버지의 손에 서씨 가문으로 돌아가셨죠. 대표님의 아버지가 대표님을 홀대하신 건 아니지만, 대표님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표님을 돌보지 않으셨으니, 훌륭한 아버지라고 할 수는
현이는 오빠의 결정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그리고 이 사실을 서은준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성호와 현이가 함께 회사에 도착했다.미칠듯한 지루함에, 성호는 어젯밤 현이를 찾아가 현이에게 다크 준 테크놀로지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현이가 성호와 함께 온 것을 보고는 조난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현이가 조난에게 성호를 소개했다: "조난 오빠, 여긴 제 사촌 오빠에요. 부잣집 아드님이라, 저와 함께 인생 경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요. 오빠가 회사에 있어도 괜찮을까요? 혹시 오빠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뭐든 시켜주세요. 급여는 필요 없어요."조난: "..."성호가 조난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조난 형님, 어려워하지 마시고 마음껏 부려 먹어 주세요! 몸 쓰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머리 쓰는 일은 못 하니 알아주시고요!"조난: "..."조난이 한눈에 보기에도, 현이의 사촌 오빠라는 이 남자는 매우 건장해 보였지만, 머리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부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괴롭혔지, 절대 괴롭힘을 당하는 타입은 아니다.조난: "현이 사촌 오빠분, 우리 회사에는 몸 쓰는 일이 없습니다."성호: "간단한 일이라면, 머리 쓰는 일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프런트 데스크 업무 같은 것이요!"조난: 내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될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조난: "알겠습니다! 그러면, 프런트 데스크를 맡아주세요! 일을 잘 해내시면 급여를 드리겠습니다. 많은 금액은 아니겠지만요."성호: "편하신 대로 하세요." 이 말을 끝으로, 성호가 프런트 데스크 의자에 앉았다.서씨 가문이 그에게 제안한 급여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가 현이를 따라 다크 준 테크놀로지에 온 건, 말로는 지루해서라고 했지만, 사실 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조난이 현이에게 말했다: "마침 오늘 투자자가 오기로 했어. 내가 지금 나가서 모셔 올 거야."현이가 물었다: "투자자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몇 명이나
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요."서은준: "그러면 이따가 어디 숨어 있어."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전 이따가 옆에서 조용히 있을게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서은준: "내가 투자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네가 왜 내 사무실에 있어?" 서은준은 현이가 자기 비서라는 걸 잊은 듯했다.현이: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조난 오빠 말로는, 대표님은 이번 투자를 크게 원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럼,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없지 않나요? 제가 조언을 해드릴 수도 있잖아요. 만약 상대방이 함정을 파면, 제가 말씀드릴 수도 있고요."서은준: "상대방이 나한테 함정을 파면 내가 알아채지 못할 거로 생각해?"현이가 목을 가다듬었다: "물론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제 말은... 제가 여기에 있어도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듣지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저도 듣고 배우고 싶어서 그래요. 성가시게 하지 않을게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요."서은준의 시선이 몇 초간 현이에게 머물렀다.그녀가 사무실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게 해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대표님, 차 한 잔 드실래요? 제가 어젯밤에 화차 한 캔을 샀어요. 한 잔 만들어 드릴 테니, 드셔보세요!" 현이가 옆에 있던 진열장에서 화차 캔을 꺼내더니, 서은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은준의 물컵을 빼앗아 탕비실로 갔다.서은준: "..."현이가 그의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줄곧 일종의 착각이 들었다.그건 바로, 현이가 그의 주인이고, 그는 현이가 마음대로 조종하는 말이 된 것 같은 착각이었다.물론 현이가 그에게 하는 행동은 모두 그를 위한 것임은 그 역시 알고 있었다.이를테면, 그의 집을 청소하고, 그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 같은 건, 다른 사람들이라면 결코 대가 없이 해줄 리 없는 일이다.그래서 그는 현이를 모질게 대하기 어려웠다.결국 현이의 목적은 다른 곳에 섞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붙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