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는 팀장과 박시준만 남았다.박시준에게 할 말이 있던 팀장이 박시준을 몰래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알 수 없었다."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박시준이 먼저 입을 열어 어색함을 깼다."박 대표님, 박 대표님은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분이세요. 전 줄곧 박 대표님께선 사업과 가정을 지키는 일 모두 성공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표님께선 분명 매우 현명한 사람이시겠죠...""알았으니, 이런 입에 발린 말은 그만하고 요점을 말해요." 팀장의 말을 듣고 있자니, 박시준은 두통이 밀려왔다.그의 아내는 그를 내쳤다. 머지않아 네 아이 역시 그를 내칠 것이다.친자 확인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내치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는 그를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중년의 남성에게 이런 상황이 주는 타격은 어마어마했다."인생의 절반을 현명하게 살아오신 분이, 왜 갑자기 이렇게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신 거예요?" 팀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진 대표님과, 네 자녀분들을 두고 왜 그런 자극을 뿌리치지 못하셨어요?"박시준: "난 그런 적 없습니다! 왜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겁니까?"팀장: "그게... 대표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진 대표님께서 왜 박 대표님을 외면하신 거예요?"박시준: "아직 나와 그 아이 사이의 친자 확인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요."팀장: "... 결과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리나요?"박시준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사흘 안에 결과를 달라라고 했습니다."팀장: "역시! 대단하세요! 친자 확인은 적어도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가 걸린다고 들었거든요. 사흘 만에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몰랐네요."박시준: "..."팀장: "방금 제가 가져온 합의서에 서명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대표님의 억울함이 입증되면, 그 합의서는 무효가 될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귀책 사유가 대표님께 있어서, 재산 분할 소송으로 대표님께서 한평생 쌓아오신 명성이 모두 무너질 수도 있어요."
진아연: "그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알았어요! 엄마, 방에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으세요? 합의서 작성이 끝나면, 아빠한테 당분간 나가 지내시라고 하는 게 어때요? 매번 잘못은 아빠가 하시는데, 벌은 엄마가 받는 것 같잖아요!" 라엘이는 엄마가 아래층으로 내려와 바람을 쐬게 하고 싶었다."동생들이 오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이번 일은 아빠가 확실하게 설명해야 할 거야." 진아연이 말했다."네. 하지만 아빤 그 아이가 아빠 아이가 아니라는 말뿐이세요." 라엘이가 아까 아빠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참, 제가 오빠에게도 전화했어요. 오빠도 곧 돌아올 거예요."진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이상, 나도 굳이 그의 체면을 살려줄 이유는 없지.""맞아요. 게다가 이번 일은 우리가 외부에 알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퍼지게 되어 있어요." 라엘이가 합의서를 들고 말했다. "우선 합의서에 사인부터 받아올게요. 그 아이가 정말 아빠 아이가 맞는다면, 아빠가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게 할 거예요."...오후 4시가 넘은 시각, 지성이가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큰일이 생겼다는 누나의 메시지에, 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갈아신으며, 박지성은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거실을 바라보았다.집 안으로 들어서자, 아빠와 누나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아빠, 누나, 저 왔어요." 지성이가 슬리퍼를 신으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라엘이가 자신이 앉은 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 와.""응..." 박지성이 순순히 라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어?"박지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박지성은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그가 ‘휙’ 하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박지성, 너도 방금 들었겠지만,
그녀가 박씨 일가로 돌아온 이후, 이런 상황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부모님과 언니, 오빠가 모두 이럴 리 없었다."현이야, 이리 와." 라엘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네." 현이가 책가방을 한편에 두고는, 언니를 향해 걸어갔다."현이에게는 내가 얘기할게!" 현이가 자신을 오해하는 게 싫었던 박시준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다. 현이는 아까 지성이가 그랬던 것처럼 크게 눈물을 터뜨리지 않길 바랐다.이번 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박시준은 크게 자책했다."그러세요! 아빠가 말씀하세요." 라엘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현이는 느낄 수 있었다.아빠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니가 이런 태도로 아빠를 대할 리 없었다."현이야, 오늘 누가 한 아이를 여기로 보냈어. 아빠 아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아빤 맹세코 너희 엄마 외에 다른 여자를 만난 적이 없어. 그 아이는 절대 내 아이가 아니야." 박시준이 오늘의 두 번째 맹세를 했다.갑자기 몰아닥친 엄청난 양의 정보에, 현이가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아빠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아빠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집안의 막내인 그녀는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와 오빠, 그리고 언니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친자 확인 검사를 하면 되지 않아요?" 현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맞아. 이미 사람이 와서 혈액 채취를 해갔어. 사흘 안에 결과가 나올 거야." 박시준이 말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모두 나를 너무 냉대하지 말아줘. 만약 검사 결과가 나와 그 아이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걸로 나오면, 다들 내가 받은 상처를 어떻게 위로하려고 그래?"박시준은 오늘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오늘 받은 충격에 비하면, 지난 몇 년 동안 받았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아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현이야, 넌 마음이 너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현이는 마음이 녹아내렸다.하지만 이 아기가 아빠의 사생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현이는 곧바로 차오르는 애정을 거두었다."눈이 정말 크네요." 현이가 객관적으로 말했다."아빠 눈도 커." 라엘이가 대답했다."..." 현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 아이는 보면 볼수록 정말 귀여웠다. 아빠의 사생아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네가 보기에 아빠와 닮은 것 같아? 조금 닮았지?" 라엘이가 물었다."조금 닮은 것 같긴 한데... 확실한 건 검사 결과가 나오면 알게 되겠지." 현이는 아이가 아빠를 조금 닮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넘겨짚고 싶지 않았다.저녁 식사 시간.진아연과 세 아이는 주방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박시준은 홀로 거실에 앉아 가정부가 가져다준 저녁을 먹었다.라엘이가 그에게 혼자 식사하라고 한 것이다.라엘이도 그럴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를 보면 화가 나 음식이 넘어가지 않을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박시준은 딸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진아연이 식사를 하지 못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은 시큰할 수밖에 없었다.어디에서도 뒤지지 않는 ST 그룹의 회장이 자기 식탁에서 식사하지 못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하지만 박시준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일로는 오래 속상해하지 않았다.오늘 밤은 분명 침실에서 자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를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진아연이, 그와 한 침대에서 자려 할 리 없었다.가정부에게 손님방을 정리하라고 해야 할 듯했다.저녁 식사가 끝난 후, 라엘이는 오늘 밤 엄마와 함께 자기로 했다.그러고는 라엘이가 먼저 가정부에게 박시준이 쓸 손님방 하나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가정부는 몹시 난처했다.어쨌거나 이 집의 주인은 박시준 아닌가.식사를 마친 박시준이 주방 문으로 다가와 말했다: "라엘이 말대로 하세요! 자식은 다 컸고, 난 이제 늙었으니, 자식 말을 따라야죠."박시준은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밤사이, 박시준은 1층 손님방에서 잠을 청했다.하지만 그가 어떻게 잠들 수 있겠는가?샤워를 마친 후, 그는 성빈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어찌 된 일인지, 이번 일을 주변 친구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난 정말로 아연이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적 없어! 가족들이 나를 믿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너까지 나를 믿지 않을 수 있어?" 박시준이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허리를 짚은 채, 똥 묻은 개처럼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성빈: "네 아내도 너를 믿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믿어! 너와 아연 씨와 어떤 사이인데, 그 아이가 네 아이인지 아닌지 아연 씨는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보았을 거 아니야!"박시준: "어쨌든 난 모르겠어!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왜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거냐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미덥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야?"성빈: "정말로 네 아이가 아니라면, 잠자코 친자 확인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 돼. 이렇게 화낼 필요 없어."박시준: "화가 나 죽겠는데 어떡해! 오늘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네가 몰라서 그래! 아연이는 나를 믿지도 않고 내쳤어. 세 아이도 마찬가지고. 특히 라엘이, 라엘이의 말이 얼마나 상처였는지 몰라! 라엘이가 한 말 중 제일 심했던 말이 뭔지 알아? 바로 한이가 돌아오면 내게 손찌검할지도 모른다고 한 거야!"그를 위로하려던 성빈이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박시준: "..."이럴 수가!이렇게 큰 소리로 웃다니!"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정관 수술했던 거 기억 안 나?" 한동안 웃음을 터뜨리던 성빈이 물었다.박시준은 순간 멍해졌다: "맞아! 나 예전에 정관수술을 했었지! 그런데 내가 어떻게 밖에서 아이를 만들어 올 수 있겠어!"이 말을 끝으로, 박시준은 전화를 끊은 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진아연을 찾아 나섰다.2층.라엘이와 엄마는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주로 앞으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진
"잘 들리지 않아요.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아요.""언니, 오늘 저와 함께 자요!" 현이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저희가 진짜 아빠를 오해했을 수도 있어요.”"근데 저 어린애가...""그리고 아빠와 닮지도 않았어요. 아니면 저희 다시 내려가서 볼까요?" 현이는 조심스럽게 그녀한테 물었다."그래! 다시 내려가 보자."두 사람은 말을 다하자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침실.박시준이 하고 싶은 얘기를 끝내자 진아연도 차츰 진정되었다."정관수술을 해도 100% 피임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의사가 처음에 수술 성공하면 거의 100%라고 했어." 박시준은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전에 받았던 수술에 문제가 있는지 지금 병원에 가서 검사 받아볼까?”진아연은 그의 말에 시간을 힐끗 보고 곧 9시임을 확인했다."지금까지 피임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임신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왜 다른 여자가 내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박시준은 말할수록 당당한 모습을 보였고말하면서 딸의 분홍색 베개를 치우고 침대에 앉았다.진아연은 박시준의 말을 곱씹으면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진아연, 사람 사이에서 기본적인 믿음은? 지금까지 네 곁을 지켜왔던 나조차 믿을 수 없는 거야?" 박시준은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 말을 이었다. "진짜 너무 속상하네! 매일 같이 지내왔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는 거야?!""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불평하는 거예요?" 진아연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내 아이가 아니니까 그러는 거잖아. 난 당당해. 그리고 오늘 여기에서 잘 거야." 박시준은 말하면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다음날 진자한은 바로 귀국했고공항에서 나오자 바로 택시를 타고 박시준의 저택으로 향했다.일부러 기사님에게 부탁하지 않은 이유는박씨 집안의 모든 것이 여전히 박시준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진지한은 만약 어머니와 박시준이 이혼하면 박시준은 무조건 빈털터리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어머니를 B국으로 모셔서 함께
진지한도 궁금한지 물컵을 내려놨고라엘은 바로 가정부한테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했다.아이는 지금 새곤새곤 잠들어 있었다.아직 어린 나이기 때문에 밥 아니면 잠이 필요했다.가정부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고 한이에게 다가갔다."한이 도련님, 너무 아버님에게 화내지 마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앞으로 누구 닮을지 아무도 몰라요!" 가정부는 한이가 아이를 보고 박시준과 닮았을 거라 생각할까 봐 걱정이었다.물론 그녀 또한 아이를 챙기면서 볼수록 박시준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절대 입 밖으로 말할 수 없었다.진지한은 아이를 보면서작다는 느낌과찡그린 얼굴이 못생겼다는 생각뿐이었다.아직 어려서 그럴 수도 있지만, 원래부터 못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때 라엘은 오빠의 표정을 보더니 바로 다가가 설명했다. “눈이 엄청 커. 방금 자고 있어서 뜨지 못하는 거야.”"왜? 얘가 많이 좋은가 봐?" 진지한은 동생의 말에 그녀를 비웃었다.라엘: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갑자기 좋아해. 아빠도 참, 누가 아이를 우리 집으로 보냈어도 바로 데리고 오면 어떡해. 혹시 전염병이나 폭탄을 가지고 있으면 어떡해?”진지한은 동생의 말에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진아연: "라엘아, 그런 건 아닐 거야. 얼핏 봐도 아이가 건강해 보이잖아."라엘: "그럼 혹시 아이 이불 속에 폭탄이라도 있으면요?"진아연: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일어날 확률이 작다고 봐도 괜찮아. 우리나라는 폭발물에 관하여 엄격한 규제가 있잖아.""그래도 TV 보면 범인들이 스스로 폭발물을 만들 수 있잖아요.""그렇지. 그래서 가능성은 있다고 했잖아."진지한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저 그냥 밥 먹으러 갈게요!" 진지한은 말을 마치자 소파에서 일어났다.아빠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를 보면 아빠가 아빠의 결백을 믿고 있는 듯했다.그럼 이제 남은 건 감정 결과를 기다리는 것 뿐이네."오빠, 오랜만에 왔는데 며칠 더 놀다 가!
"오빠는 아직 젊어서 급히 결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진지한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알렸다.라엘: "오빠, 왜 아직 젊다고 생각해? 얼굴 봐. 전처럼 그리 뽀송하지 않아. 많이 늙었어. 사람이 25살 넘으면 몸도 따라가지 못해. 이제부터 점점 더 늙어갈 거야."진지한: "굳이 그런 얘기 할 필요 없어. 우리 사실 같은 나이고 내가 나이를 먹으면 너도 나이 먹는 거잖아.""하하,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라엘은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엄마, 뭐라고 좀 해보세요."진아연: "한이야, 다른 사람이 소개해 준 여자들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야?"진지한: "..."라엘: "하하! 오빠, 그런 생각이었어?"진지한: "엄마, 그런 생각 아니에요. 평소 업무도 많아 결혼해도 같이 있을 시간이 없잖아요. 차라리 일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일은 어찌 보면 전부터 꽤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잖아." 진아연은 그의 말에 바로 반박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열심히 일해왔는데, 슬슬 생활 패턴도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최근 회사에서 새로운 방향을 지정했고 저 또한 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어서 말이죠..." 진지한은 어머니에게 사업에 관한 얘기를 나눴지만진아연은 그의 사업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아들이 자신만의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아들의 실력 또한 믿고 있지만지금은 오로지 아들의 개인 생활에 가장 관심 많았다.항상 혼자 지내던 아들이고 여자친구는 물론 친구조차 몇 명 없어서 그저 걱정 뿐이었다.한이는 어릴 때부터 친구 몇 명 없었고라엘과 지성이처럼 친구를 집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오빠, 설마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 되고 싶은 거야?" 라엘은 웃으면서 진지한을 놀렸다. "만약 세계 갑부가 될 자신 있으면 굳이 여자친구를 소개해 주지 않을게. 왜냐면 세계 갑부가 되면 88세 노인이여도 18세 같은 이쁜 여자가 결혼을 원할 테니까."진지한은 여동생의 놀림에 화는커녕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세계 갑부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