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다실에 있는 캐비닛에 올려놓았어. 꽃다발의 향기가 너무 심해서 말이야. 난 꽃 알레르기가 있거든." 수진은 말하면서 신비롭게 웃었다. "안에 카드가 있었지만 엿보지는 않았어. 지금 가지러 가봐. 나도 오늘은 택시도 타고 돌아가야해서."현이는 속으로 꽃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고 생각할수록 더 궁금해졌다.그녀는 시간을 흘끗 보았는데, 방송이 시작되기까지 아직 몇 분이나 남았다.다실은 바로 밖에 있었고 그녀가 그곳까지 갔다 오는데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생각을 마친 그녀는 수진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문자도 못 받았는데!"수진이 추측했다. "아마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나 봐!"수진은 곧 몸에 걸친 양복 외투를 갈아입었다.오늘 그녀의 이너웨어는 흰색 셔츠였는데 그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외투를 입고 머리에 있는 가발 커버를 벗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오늘 엄마, 아빠한테 너의 부모님이 저녁에 집에 갈 택시비를 줬다고 말했더니 우리 엄마, 아빠도 돈을 더 주시더라고." 수진이 거울을 보며 가발을 뜯고 있었다. "이쪽 휴게실에서 잠을 잘 못 자.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네. 퇴근했으니 얼른 가서 쉬어요! 전 꽃을 가지러 가볼게요.""갔다 와!" 수진이는 부드럽게 말하며 거울 속에서 현이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현이가 나간 후 수진이는 즉시 자신의 책상에서 폴더를 열고, 안에서 종이 몇 장을 들고나온 다음, 현이의 책상으로 가서, 그녀의 보도 자료를 몇 장 뽑아서 교체했다.이 모든 것이 1분을 넘지 않았고 모든 것은 완벽했다.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녀는 가방을 들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침착한 얼굴로 무대 뒤에서 나왔다.현이는 파란 장미 한 다발을 안고 다실에서 나왔고두 사람은 복도에서 만났다."카드를 봤는데 덕담 한마디만 있을 뿐 사인이 없었어요. 누가 제게 선물했는지 모르겠네요." 현이는 꽃을 안고 수진에게 다가갔다."오늘 팬일 수도 있으니 신경 쓰지 마. 이 꽃에 독이 없으
그녀는 페이지 원고 끝 부분을 흘끗 본 뒤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방송을 이어갔다.그때 텔레포롬프터에서는 아무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보도자료를 낭독하며 카메라를 보았다.세 번째 뉴스가 나오자 영상 역시 해당 영상으로 바뀌었다.현이는 바로 감독에게 조용히 말했다. "감독님, 원고가 달라요."현이는 인턴 이틀째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그녀는 오늘 밤 보도자료까지 모두 다 외웠지만 이번 일로 그녀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사람은 극도로 긴장하게 되면 통제력을 잃고 하려던 말을 까먹게 된다.그녀의 말을 듣고 감독은 바로 말했다. "당황하지 마세요. 영상 끝나면 바로 광고를 넣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간대 스크립트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 현이는 감독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호텔.수진은 침대 옆에 앉아 TV에서 뉴스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두 손을 꼭 쥐었다.그녀는 현이의 당황스럽고 긴장한 표정을 보고 방송이 엉망이 될 거라 생각했다. 현이 역시 잠시 멈칫하다가 잠시 마무리 멘트를 했다.그리고 지금 세 번째 뉴스 영상이 끝나자 마자 광고가 나왔다.수진은 이를 악물었다.원래라면 별도의 광고가 나오지 않는다.아마도 감독이 그녀를 돕기 위해 광고를 내보냈을 것이다.90초의 광고가 끝난 뒤, 화면이 다시 스튜디오로 전환됐다.현이의 얼굴은 평정을 되찾았고 테이블 위에는 자료가 놓여있었다.그리고 프로그램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진은 TV를 신경질적으로 끄고 머리를 헝클였다.그녀는 박현을 너무 과소 평가했다고 생각했다!박현은 원고가 없어도 최대한 당황해 하지 않고 마무리를 잘 끝냈다.수진은 자신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현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완전히 져버렸다!원래라면 현이의 실력이 자신보다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스튜디오 6번.쇼가 끝난 뒤, 현이는 무대 뒤로 돌아갔다.직원들이 모두 그녀에게
두 번 자리를 비울 동안 그녀는 원고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아마 그때 바꾼 것 같았다.그녀의 원고를 바꾼 사람은 너무 교활했다.그녀는 처음 두 뉴스 기사의 원고는 정상적이었다. 세 번째 뉴스 원고도 그녀는 절반까지 읽은 것이 기억났다.사람이 이렇게까지 독하다니!"현이 씨, 제가 원고를 바꾼 거 아닙니다. 맹세해요." 남산대 인턴 앵커 조란이었다.조란의 성격은 내성적이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각자의 자리에 다 칸막이가 쳐져있었고 조란의 위치는 가장 안쪽에 있었다."CCTV가 있을까요?" 현이가 직원에게 물었다.그녀는 증거도 없이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만약 수진이 한 일이 아니라면 분명 수진은 상처를 받을 게 뻔했다.직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복도에는 있지만 여기 방에는 없어요.""CCTV가 없으면 누가 그랬는지 알 방법이 없네요." 현이는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됐어요. 제가 앞으로 방송에 나가기 전에 꼼꼼히 확인하도록 할게요.""네, 근데 오늘 여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직원은 현이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대사를 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정말 방송 사고가 날 뻔 했네요. 하지만 앵커라며면 그 어떤 상황이라도 방송 나가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셨어야죠.""네, 제가 많이 부주의했어요." 현이는 더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그녀의 잘못이라고는 경험이 부족하고 주변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믿은 것이었다.가족들은 그녀가 신중한 성격이라고 칭찬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함이 많았다.앞으로는 더욱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네, 너무 자책하지 말구요. 오늘 정말 잘 했어요. 시청률도 높아졌고요. 퇴근하고 푹 쉬세요. 주임님께는 내일 이 일에 대해서 전달할게요." 직원이 그녀를 위로했다."아, 주임님에게 말하지 말까요?" 현이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분명 배후가 있긴 하지만 다 제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니 괜찮아요.""범인을 찾을 수 없으니 주임님에게 말해야죠. 다시는 그런 일 없게 말이에요.
세수를 마친 그녀는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그녀는 바로 눕지 않고 침대 옆 테이블 위 휴대폰을 바라보았다.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하지만 이 문제를 가족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그녀가 이 일에 대해서 말한다면 분명 모두 도와줄 것이 뻔했다.하지만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까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그렇게까지 생각을 하자 그녀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조해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고 조해영에게 부모님께 말하지 말라고 말했다.메시지를 보낸 뒤, 그녀는 주소록에서 서은준의 이름을 발견했다.그의 이름을 보고 현이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그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반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사실 고작 반년 밖에 안 지났는데 몇 년이나 지난 것 같았다.그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새로운 생활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서은준 역시 아마 지금 쯤이면 새로운 환경에서 잘 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그의 프로필 사진을 탭해 메시지를 편집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겨울 방학이신데 집에 돌아가셨나요? 아마 집에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네요. 제 추측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 있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저는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인턴 생활을 시작했어요. 지금 인턴으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어요. 괜찮은 직업을 가지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꿈이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또 이렇게 꿈이 빨리 이뤄지니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 보내드릴게요!—— 사진.jpg—— 어때요? 성숙해 보이지 않나요? 간혹 상상을 해요. 도련님과 마주친다면 저를 한 눈에 알아볼까 하는 상상이요.—— 졸업하려면 T국에 가야하는데 그때 T국에서 만나요....아침 9시.박시준은 주해영으로부터 두 번째 영상을 받았다.박시준은 거실에서 진아연과 함께 영상을 보고 있었다.10분
네티즌 C: "내가 이 업게 선배로서 말하는데 방송 사고는 아닌 거 같아. 작은 실수 같은 거지. 인턴 아나운서가 이런 실수 하는 거 정상이야. 그러니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고."네티즌 D: "내 생각에는 원고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네티즌 E: "원래 프롬프터가 있지 않아? 가수들이 가사 볼 때 사용하는 것처럼! 그게 아마 고장난 게 아닐까?"..."여보, 여기 사람들이 말하기를 프롬프터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거라고 하네요." 진아연은 네티즌의 댓글을 읽어 내려 갔다.딸이 지금 자고 있을 시간이라 진아연은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었다."아니면 내가 조해영 씨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 박시준은 이 일에 대해 그닥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딸이 작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방송에는 크게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더군다나 박시준은 딸이 그녀의 실수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면 그녀가 앞으로 더욱더 긴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진아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어요. 조해영 씨가 별 말이 없다면 괜찮다는 거겠죠. 실수가 있는 게 당연한 거구요.""오랫동안 일하던 아나운서들도 작은 실수들이 있는 게 당연해." 박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딸은 이미 충분히 훌륭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벌써 아나운서처럼 보여요." 진아연은 미래의 A국에서 유명한 아나운서가 될 것이라 상상했다.어떤 업계에 있든 최고의 위치에 올라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우리 딸은 아나운서만이 아닌 더욱더 유명해 질 거야." 박시준은 현이가 유명한 아나운서가 되는 사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그리고 진아연은 갑자기 지성이가 떠올랐다."그러고보니 지성이가 안 보이네요? 아직 자고 있을까요?"진아연의 말을 듣고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지성 도련님은 8시에 집을 나가셨습니다. 지금 출근하기 시작하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매일 배웅해 드리고 있습니다."진아연: "..."그녀는 아들이 이렇게 이 일에 이렇게 열중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현이가 돌
현이는 배가 너무 고파 아무 말 없이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진아연은 급히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그릇에 다시 국을 떠다줬다."국 좀 먹으면서 먹으렴. 체하겠다.""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출근하기 시작한 뒤로 배가 빨리 고파지더라고요." 현이는 국그릇을 들고 마셨다. "엄마, 저 이틀 정도 휴가 냈어요.""그럼 새해 파티 용품을 사러 나가볼까!" 진아연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현이는 지난 10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새해를 제대로 보낸 적이 없었다."좋아요! 새해에는 근데 뭘 사는 거예요?" 현이는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꽃이랑 식물을 좀 살까해. 그리고 집에 등불도 구입 좀 하고. 저녁에는 불꽃 놀이나 할까 싶은데... 아, 우리 현이 출근해야 하니깐 네 시간에 맞춰서 다 같이 불꽃 놀이 하자."현이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새해에 사람들 모두 잠을 자지 않을 거야. 여기 사람들도 밖에서 밤새 불꽃 놀이를 한단다."현이가 궁금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그렇게 시끄러우면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할 텐데요?""1년에 한 번인 걸. 괜찮아.""그렇군요. 불꽃 놀이를 하려면 혹시 저기 광장까지 가야 할까요?" 현이가 물었다."마당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진아연은 웃으며 말했다. "이웃들도 다 그렇게 한단다.""언니는 새해에 어디에 있을 거래요?" 현이는 문득 큰 오빠가 돌아올 거라는 사실에 언니가 생각났다.현이의 질문에 진아연과 박시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라엘이와 이 일에 대해 대화를 하진 않았다.라엘이 역시 새해에 오겠다는 말도 먼저 하지 않았다.사실 라엘이와 김세연은 아직 법적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가족들을 보러 오는 것이 맞다.하지만 아직 라엘이와 김세연의 관계를 좋게만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현이야, 네가 한번 언니한테 물어보지 그래?" 진아연은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네!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그리고 현이는 밥 한 공기를 더 달라고
현이: "선배님, 어제는 제가 화장실 갈 때랑 잠시 물을 떠올 때 자리를 두 번 비웠어요. 혹시 그때 왔던 사람이 있을까요?"조란: "글쎄요. 제 자리가 등지고 있는 자리라 저 역시 원고를 읽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진 못했어요."현이: "알겠어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조란: "현이 씨, 혹시 의심이 가는 사람은 없을까요?"현이: "있지만 증거가 없네요."조란: "그래서 그냥 이렇게 넘어가실 건가요?"현이: "증거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뭔가 둘의 대화에 기시감이 느껴졌다.조란은 그녀에게 수진이를 의심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현이는 조란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아마 어제 일이 아니었다면 둘 다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평상시에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에 많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조란: "그럼 앞으로 좀 조심하세요. 아, 하지만 어제 방송 대처 능력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현이: "별 말씀을요."조란과의 대화를 나눈 뒤, 현이는 언니가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 "새해에 집에 당연히 돌아가야지. 김세연 씨와 법적 부부가 되더라도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어!"언니의 대답에 현이는 기뻤다.새해를 맞이해 언니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도 알게 된다면 매우 기뻐하실 게 분명했다.현이는 언니에게 대답했다. "그러면 형부랑은 따로 새해를 맞이할 거예요?"라엘: "같이 갈 생각이야! 시부모님에게도 이야기는 해 놓았어. 다만 아직 세연 씨와는 상의는 하지 않았지만."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럼 언니... 형부랑 이야기 해보고 엄마 아빠한테 말할게요."라엘: "왜? 엄마 아빠가 물어보라고 했어?"현이: "... 네."라엘: "왜 나한테 직접 물어보지 않고?"현이: "아마도 언니가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라엘: "부담은 무슨? 김세연 씨랑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새해에는 당연히 집에 가야지!"현이: "언니 말도 맞아요."라엘: "그
수진은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혹시 지금 전화 통화 가능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현이는 솔직히 수진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지금은 좀 그래요."수진: "그래, 알겠어! 현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절대 아니야."현이: "감독님께서 조사한다고 했으니 일단 지켜볼게요!"수진: "응! 그럼 오늘부터 휴가인 거야? 나도 그런데. 만나서 쇼핑이나 할래?"현이: "가족이랑 보내려고요."수진: "아, 알겠어. 가족들이 걱정 많이 했겠다. 방금 다시 보기를 통해서 봤는데 대처를 아주 잘 한 거 같아!"그저 정상적인 동료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녀는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고마워.'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수진이었기 때문에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수진과의 대화창을 닫았다."현이야, 언니가 뭐래?" 진아연은 현이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언니가 형부랑 같이 오겠데요.""어머, 그래?!" 진아연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현이야, 더 쉬지 않아도 되겠어?""엄마, 지금은 괜찮아요." 현이는 엄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쇼핑 가요!""그래.""그럼 옷 갈아 입고 올게요." 현이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아연은 딸아이의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진아연의 휴대폰이 울렸다.라엘이에게서 온 전화였다.진아연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엄마, 뭐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진아연은 라엘이의 전화에 자기도 모르게 박시준을 쳐다보았다.박시준은 아내의 눈빛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임을 짐작했다."무슨 일이니?" 진아연은 박시준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전화를 숨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게... 가족 관계 등록부 저한테 좀 주실 수 있어요?" 라엘이는 매우 조용히 말했다. "김세연 씨 가족 관계 등록부는 받았어요."진아연은 바로 라엘이의 의도를 이해했다."그건 세연 씨와 상의를 해야지! 설마 구청에 가서 말할 생각이었니?" 진아연은 매우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