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초 뒤, 지성이 다시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두자!""오빠가 돕지 않으면 제가 도와줄 거예요." 현이가 말했다. "언니를 도와주지 않아서 언니가 떠나버리면 어떻게 해요?"현이의 말을 듣다 지성이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이렇게 하자. 싸우면 현이 넌 누나 편을 들고 나는 아빠 편을 드는 거야.""좋아요!" 현이는 이어서 말했다. "그럼 큰 오빠는 어디 편에 설까요?"박지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큰 형은 아빠랑 같을 거야. 점점 아빠랑 똑같아 지는 거 같아.. 아무튼 둘 다 모두 내 우상이야.""음, 아마 오빠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아니. 내 성격은 엄마를 닮았어."지성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 외모가 아빠랑 닮았지만, 성격은 엄마를 닮았거든. 사업 방면으로 딱히 야망도 없고 가족들이랑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야.”"엄마를 닮아서 좋겠어요! 전 엄마가 좋아요." 현이는 엄마를 생각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둘째 오빠, 전 누구 닮은 거 같아요?""아빠를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또 그건 아닌 거 같아. 아빠보다 더 차분하지만 또 어떨 때는 엄마처럼 밝고 따뜻해. 엄마 아빠 두 장점을 닮았달까.""둘째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깐 부끄러워요.""진짜 진심이야!" 박지성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오빠도 제가 데리고 온 남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망할 거예요?" 현이의 목소리는 뭔가 우울해 보였다."그건 왜? 설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까봐요... 남자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 매력 없다고 생각하죠?" 현이가 물었다."어... 음. 글쎄 그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나중에 내가 여자친구를 데려와도 싫어할 수 도 있고." 박지성 역시 약관 비관적으로 생각했다."그럼 우리 서로 응원하는 걸로 할까요?" 현이가 말했다."그래!" 지성이 대답했다. "그럼... 나도 누나를 응원할래. 아빠한테는 엄마가 있으니까 내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박지성은 라엘이의 맞은편에 앉아 같이 수프를 마셨다."뭐야? 너 어디 안 좋아? 얼굴은 엄청 좋아보이는데." 라엘이는 동생을 바라보며 물었다."기분이 좀 그래서..." 지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아?" 라엘이가 말했다. "너... 싸움 구경하려고 쉬는 거구나?""누나도 내가 도와주는 게 좋지 않아? 필요없으면 학교 가고..." 박지성은 누나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었기에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다."생각은 하고 살긴 사는구나?" 라엘이는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뒤 말했다. "방에 가서 내 휴대폰 좀 가지고 와.""누나, 밥 먹고 씻지도 않고?" 박지성이 말했다. "이 몰골로 부모님이랑 싸우려는 거 아니지?" 라엘이는 눈을 내리깔며 자신의 상태를 흘끗 보았다.이틀 동안 갈아입지도 않은 옷이 한참이나 구겨져 있었다.방금 내려올 때도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아 상태가 말이 아닐 것이다."엄마 아빠가 기다리다 지치면?" 라엘이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우선 방에 가서 폰부터 가져와줘.""알겠어!" 지성이는 바로 위층에 누나 휴대폰을 가지러 올라갔다.그리고 지성이가 돌아와 라엘이에게 휴대폰을 건네줄 때, 라엘이 역시 식사를 마쳤다.잘 먹고 푹 쉬었으니 힘을 내기만 하면 된다.남동생에게 휴대폰을 건네 받아 폰을 열어보니 많은 메시지가 와있었다.그리고 그 중에 김세연이 그녀에게 돌아왔는지 물어보는 메시지도 있었다.마이크 역시 그녀가 잘 도착했는지 문자를 보냈었다.그리고 현이가 보낸 문자에는 어젯밤에 부모님에게 사실대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도 있었다.라엘이는 현이에게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어젯밤에 현이가 미리 언지를 줬다면 아빠와 엄마께서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라엘이는 마이크에게 답장을 보낸 뒤, 김세연의 문자에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휴대폰 화면을 다시 껐다.벌써 부터 김세연 씨에게
게다가 말에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아 라엘이는 꼼짝 않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박지성은 누나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고 바로 누나의 물컵에 물을 한 잔 받아 가져다 주었다.라엘이는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진아연을 향해 바라보았다: "엄마, 엄마 생각은 어때요?"박시준은 끊임없이 아내에게 눈길을 주었다.아내가 자신의 편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진아연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라엘이의 편에 든다면 박시준이 서운해 할 것이고 박시준의 편에 든다면 라엘이 역시 속상해 할 것이다.잠시 고민한 후 그녀는 끝끝내 아무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엄마는 이만 물러날게."라엘, 박시준, 박지성: "........"이래도 되는 건가?"내 소원은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거야." 진아연이 말했다. "방금 아버지가 한 얘기 한 번 잘 생각해봐. 아버지가 한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으면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고, 아버지가 방금 한 말이 전혀 설득이 안되면 아버지랑 다시 얘기해봐도 좋아."라엘이는 고개를 떨구었다.푹 쉬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진 못한 것 같았다.머릿속이 텅 빈 백지장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저 일단 샤워하러 갈게요." 라엘이는 코를 만지작 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 윗층을 향해 올라갔다.지성이도 곧바로 누나의 뒤를 따라갔다."지성아, 누나 샤워하러 가는데 왜 쫓아가는 거야?" 박시준은 지성이가 라엘이에게 헛된 아이디어를 말할까봐 걱정되었다."저.... 저도 누나 설득해 볼게요." 박지성이 이렇게 말하니 박시준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박지성은 라엘이를 따라 2층에 올라간 후, 라엘이는 지성이를 노려보았다."나 기분 안 좋은 거 안보여?" 라엘이는 말하며 성큼성큼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조그만게 뭘 설득하겠다는 거야?""난 누나가
김세연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저 귀국했어요." 라엘이는 그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방금 아버지랑 얘기 나눠 봤어요."라엘이는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상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김세연도 잘 알고있을 것이다."아버지는 제가 세연 씨랑 만나는 거 반대하세요." 라엘이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우린 정말 인연이 아닌가 봐요."김세연은 이 결론을 듣고 심경에 별로 큰 변화가 없었다.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결과였기 때문이다."자꾸 인연이 언제 나타날까 하는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인연은 언젠가 자연스레 나타날 거야." 김세연은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럼 세연 씨의 인연은요? 세연 씨가 계속 인연을 기다리고 생각하고 있어서 여태것 나타나지 않은 거예요?" 라엘이는 그의 말에 반박했다. "제 생각엔 이미 씨도 아주 괜찮은 사람 같던데요.""좋은 사람이지, 그 사람한테 밥 한끼 대접해야 해." 김세연은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김세연은 굳이 결혼을 해야 하는 게 아니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혼자 사는데 익숙한 상태였다."세연 씨한테 그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밥 한끼로 되겠어요?" 라엘이는 놀리듯 말했다. "너무 쪼잔한 거 아니예요?""밥은 전에 사기로 한 거고. 이번에는 내가 그 사람한테 큰 신세 하나 졌지.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조건없이 도와줘야지.""네." 라엘이는 문득 더 이상 김세연과 할 얘기가 없음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지금 뭐하고 계세요?""책 읽고있어.""무슨 책이요?""최근에는 '백년의 고독' 읽었고 지금은 '사피엔스' 읽고있어.""네.... 밖에도 좀 다니세요! 매일 집에서 책만 읽는 거 답답하지 않으세요?" 라엘이가 말했다.사실 정작 그녀 본인도 집순이였다.특히 일을 시작한 후부터는 더 밖에 나가기 싫었다.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도 하루종일 회사에 있다보면 체력이 거의 소진되곤 한다. 그래서 퇴근하고 나면
하지만 둘째 오빠가 집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직접 해결할 수 있다고 현이더러 학교에 가라고 했다. 그리고 설사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다투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왜냐하면 여태껏 심각하게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현이는 둘째 오빠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엄마도 그녀에게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잘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현이는 그냥 학교로 왔다.하지만 둘째 오빠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현이는 여전히 많이 속상했다.둘째 오빠한테서 누나가 포기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현이가 속상한 이유는 전에 언니가 김세연을 얼마나 많이 좋아하는지 여러 번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나가 포기했어'라는 메시지를 보았을 때 현이는 언니도 많이 속상했겠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현이 씨, 안녕하세요? 혹시 친구 해도 될까요?" 안경을 쓰고 젊잖아 보이는 한 남자애가 현이의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현이는 상대방을 흘끗 보았다.이번 수업은 전공수업이라 이 남자애도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일 것이다.현이는 이 남자애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오다가다 우연히 몇 번 마주친 적 있었던 것 같았다."안녕하세요, 오늘은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현이는 상대방과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그녀가 자고자대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대학에 진학한 후 같은 과 몇 명의 여학생들과 친구를 사귀었을 뿐 남학생들에게는 항상 경계심을 지니고 다녔다.우선 그녀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연애할 계획이 없었다.다음으로는 그녀는 이성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몰랐다.여태껏 살아오며 그녀는 서은준을 제외한 기타 이성과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다.처음 서은준과 접촉했을 때도 친구사이가 아닌 주인과 하인의 관계였기 때문에 현이는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그럼 일단 연락처 교환하고 친구 추가해요! 시간 있을 때 같이 놀아도 되잖아요! 같이 운동해도 되고
현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도 괜찮아요. 메시지 보낼 때마다 답장 안하고 무시하면 그 학생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예요. 이런 작은 일로 아버지 귀찮게 할 필요 없어요.""이 자식이 자기 분수도 모르고 감히 누구한테 연락처를 달라고 대시하는 거야?" 장 기사님은 욕을 퍼부으며 말했다."저 학생은 제 가정상황에 대해서 몰라요. 그냥 제가 예뻐서 연락처 달라고 한 거예요.""그래도 자기 분수 모르는 거지! 그 자식이 너한테 계속 메시지 보내면서 귀찮게 할가봐 걱정되네. 계속 귀찮게 하면 참지 말고 직접적으로 얘기해. 얘기해도 소용 없으면 바로 아저씨한테 말하고." 장 기사님은 현이가 마음이 약해질가봐 걱정되였다. 교문까지 따라나오게 한 것만 봐도 현이의 성격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네. 언니는 어떻게 됐어요?" 현이가 물었다."내가 나올 때 언니 방안에 있었어. 다투진 않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네, 둘째 오빠가 얘기해 줬어요. 그래도 언니 마음 속으로는 힘들어 할 것 같아요.""네가 돌아가서 잘 타일러 봐.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가족들이랑 다투고 할 필요는 없잖아."현이는 장 기사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감정 없는 기계가 아닌지라 괴로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집에 돌아온 현이는 신발을 갈아신고 바로 2층 언니의 방으로 향했다.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언니를 불렀다.라엘이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 다행히 라엘이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현이는 가방에서 사탕을 한 웅큼 꺼내가 라엘이에게 주었다: "점심에 산 건데요. 이런 사탕이 시큼하고 달달해서 식욕도 돋구고 맛있어요.""그래! 한 번 먹어볼게. 사탕 먹어본 지도 오래됐네." 라엘이는 사탕 한 알을 꺼내며 껍질을 벗기고 입에 넣었다. "확실히 좀 시큼하네.""처음에는 좀 신데 신맛 지나가면 달콤해요." 현이도 한 알 벗겨서 입속에 넣었
라엘: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 내일부터 출근하면 본가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주말에는 돌아오는 거죠!""물론이지. 비록 아버지랑 협상이 잘 끝나진 않았지만 이 일 때문에 여태껏 받아온 아버지의 사랑을 부정할 순 없어." 라엘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아, 언니 너무 걱정 안해도 되. 네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질 거야.""언니, 저랑 같이 산책하러 가요! 지금 밖에 덥지도 않고 좋아요." 현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지금 나가서 신선한 공기도 마실겸 산책하기 딱 좋다고 생각했다."그래. 사탕 몇 개 더 줘봐. 꽤나 맛있는데?" 라엘이는 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현이는 모든 사탕을 언니에게 다 주었다: "원래부터 언니 주려고 산 거예요."두 자매는 집에서 나와 동네에서 천천히 걸었다."언니, 오늘 수업 끝나고 어떤 남학생이 제게 연락처 달라고 했어요." 현이는 일부러 화제를 돌리며 언니의 관심사를 돌렸다.이 말을 들은 라엘이는 바로 표정이 바뀌더니 물었다: "잘생겼어? 그 학생에 대한 첫인상은 어때?"현이: "전 남학생과 친구 사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근데 그 학생이 교문까지 계속 따라왔어요, 마침 장 아저씨도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고 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냥 연락처 알려줬어요."라엘: "그 학생이 계속 귀찮게 하면 어쩌려고 그래? 관심없는 사람한테는 차라리 너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게 좋아. 다음에 또 쫓아다니면 그냥 꺼지라고 해."아마도 여태껏 자라온 현이의 환경이 현이를 이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녀의 할머니가 어려서부터 늘 다른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참을 수 있으면 참으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언니가 말한 것처럼 상대방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다음에 또 쫓아오면 그때는 제대로 거절할게요." 현이가 말했다."그래. 두려울 것 없어. 우리 가족 모두가 너의 든든한 방패니까 아무도 감히 널 함부로 괴롭
라엘이는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는 동생을 보며 웃픈 느낌이 들었다."네가 작성한 글 보니까 나도 막 숨 막히는 기분이 드네, 그 남학생도 보고 질겁하겠는걸."현이: "계속 자기 집에 돈 있다고 하면서 또 서로 집안 형편이 비슷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라엘이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근데 학교에서 막 소문내고 다니면 어떡해?""그럼 더 잘됐죠! 그렇게 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사회생활도 안해도 되고 귀찮은 일도 많이 없어질 것 같아요." 현이는 메시지를 보낸 후 상대방이 계속 입력 중인 것을 보았다, 하지만 결국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아마 그 남학생도 망설이며 깊은 고민에 빠졌나보다.현이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언니의 손을 잡고 동네 입구로 향해 걸어갔다."언니, 우리 쇼핑하러 갈까요?" 현이는 개학한 후 여태껏 쇼핑한 적이 없었다."걸어서 가자고?" 라엘이는 쇼핑하러 가려면 돌아가 차를 가지러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시내로 가려면 택시 타고 가도 되구요." 현이가 말했다. "아니면 우리 동네 근처로 갈려면 걸어서 가도 되고요.""그래! 그럼 걸어서 가자! 어차피 계속 집에만 있어서 별로 힘도 없었는데 오히려 나와 걸으니까 정신도 맑아진 거 같은데.""집에서 매일 우울한 생각만 하니까 더 힘이 빠지고 맥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나와서 바깥 공기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하면 분명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현이야, 넌 정말 내 소울 메이트야.""언니, 난 언니가 매일매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그럴게."이틀 뒤.라엘이는 본가로 돌아온 후 저녁을 먹으며 자신이 곧 출장할 거라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렸다."북쪽 나라는 너무 먼데, 그리고 엄마 기억 속에는 아주 추웠던 거 같아." 진아연은 딸이 북쪽 나라로 출장간다는 소식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쯤이면 한창 눈 내리고 있을 걸."박시준은 휴대폰을 꺼내 북쪽 나라의 날씨를 확인했다."